곽서연의 말에 윤상후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좋아했던 여자가 드디어 그의 여자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한다.윤상후는 어릴 적 바이올린 콩쿠르에 참가한 날 구석에 숨어서 울고 있는 그에게 사탕을 쥐여주던 여자아이의 모습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그날 여자아이는 작은 손으로 그의 눈물을 닦아주며 위로했다.“오빠, 이 사탕 먹으면 슬프지 않을 거예요. 아주 신통한데 한번 먹어볼래요?”여자아이의 큰 눈이 반짝이며 그를 바라보자 윤상후의 부서진 마음은 한순간에 풀리는 것 같았고 순간 암담했던 생활에 한 줄기 햇빛이 비
박서준은 왠지 모르게 가슴에 큰 바위가 들어앉은 것처럼 숨이 막혔고, 지금 당장 달려나가 윤상후의 손에서 곽서연을 끌어당기고 싶은 충동도 들었다.박서준은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미친것 같아 속으로 꾸짖었다.‘왜 이런 생각을 하는 거야? 날 잊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잘 된 거지. 원했던 게 이런 거 아니었어?’바로 그때 곽서연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작은 삼촌, 둘째 삼촌, 여긴 윤상후라고 해요. 제 남자친구예요.”곽서연의 입에서 ‘남자친구’라는 말을 듣자 박서준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파져 왔다. 그는 자기도
“곽 씨 집안과 비교하면 우리 집은 확실히 평범해요. 어머니는 그냥 학교 교사이고 저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와 함께 자랐어요. 하지만 꼭 노력해서 서연이에게는 좋은 생활환경을 마련해 줄 거예요.”곽명원은 이상한 듯 물었다.“그럼 아버지는? 아버지는 연락 없는 거야?”윤상후는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어릴 때부터 본 적이 없어요. 어머니가 혼전임신이라 혼자서 저를 키우셨어요.”윤상후의 말에 곽명원은 마음이 좀 언짢았다. 윤상후의 가족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가정은 아이의 마음에 그늘을 드리울 수밖에 없었다.곽명원의 가
한시라도 빨리 박서준의 시야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곽서연은 그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곽서연은 자신이 꾸민 모든 일이 들킬까 걱정돼 감히 박서준을 돌아보지도 못한 채 제자리에 서서 박서준을 등지고 한참 동안 감정을 추스르고 나서야 천천히 몸을 돌려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무슨 일 있어요?”박서준은 곽서연에게 다가가 그의 눈을 피하는 곽서연을 빤히 보며 물었다.“솔직히 말해봐. 윤상후를 진심으로 좋아해서 사귀는 거야 아니면 날 피하기 위해서야?”“삼촌은 내가 그렇게 감정을 마음대로 갖고 노는 사람으로 보이세
곽서연은 천우처럼 항상 박서준에게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가져다주곤 했다.곽서연이 마음속으로 그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난 뒤로 박서준은 예전처럼 가까이 지내면 곽서연이 자신한테 더 깊이 빠져들 거로 생각하고 그녀를 의도적으로 피했다. 그래야만 죄책감이 덜할 것 같았다.그리고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심은하의 제안을 받아들었고 곽서연이 상처받을 거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지만, 오히려 자신에 대한 마음을 접는 데 도움이 될 거로 생각했다.그런데 곽서연이 윤상후와 사귀는 걸 보자 마음이 아팠다.‘원하던 게 이런 거 아니었어
박서준은 즉시 걱정스럽게 물었다.“갑자기 배가 왜 아파?”심은하는 한참을 망설이다 대답했다.“생리통이야. 매번 이래.”심은하는 아파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고 얼굴에는 식은땀이 맺혔다. 이를 본 박서준은 즉시 분부했다.“가까운 병원으로 가주세요.”운전기사는 곧바로 유턴해 가장 가까운 병원을 향해 질주했다. 병원에 도착하자 심은하는 뒷자리에 누운 채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술까지 떨고 있었다.박서준은 조용히 외쳤다.“심은하.”심은하는 힘겹게 눈을 뜨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서준아, 나 못 걸을 거 같으니까 휠체어
이제 다시는 박서준의 옆에 갈 수 없겠다고 생각한 곽서연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바로 이때 윤상후한테서 전화가 걸려왔고 곽서연은 즉시 감정을 추스르고 전화를 받았다.“선배.”“서연아, 일어났어? 내가 부근에 한식집을 찾아놨어. 너 한식 먹고 싶다고 했잖아. 같이 가자.”곽서연은 바로 침대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알았어요. 잠깐만 기다려요. 금방 내려갈게요.”30분 뒤에 일 층으로 내려온 곽서연의 눈에는 기숙사 입구에 서 있는 윤상후가 들어왔다. 그의 품에는 곽서연이 좋아하는 곰돌이 인형이 안겨있었다.곽서연은 즉시 웃으며
윤상후는 몸을 앞으로 숙여 곽서연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비록 박서준을 등지고 있었지만, 윤상후의 입술이 곽서연의 입술에 맞닿은 것을 본 박서준은 마치 마른벼락이 온몸을 내리치는 것 같았다.줄곧 침착하게 앉아있던 박서준은 즉시 일어나 어두운 얼굴로 그들을 향해 걸어가더니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두 사람 지금 뭐 하는 거야?”박서준의 목소리에 윤상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가셔지지 않은 뜨거운 눈빛을 머금은 채 박서준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둘째 삼촌, 죄송해요. 방금 참지 못하고 서연이한테 입을 맞췄어요.
차유라와 말다툼이 벌어지려는 찰나 지켜보던 경호원이 다가가 제지하며 말했다.“고의로 대표님 약혼자의 헛소문을 퍼뜨리고 헐뜯는 당신들은 육엔 그룹에서 출근할 자격이 없습니다. 당장 이곳에서 나가세요.”쫓겨나는 여자들을 지켜보던 차유라는 그제야 뭔가를 깨달았다.사실 육천우는 그녀를 용서하는척하면서 이 모든 걸 직접 보면서 마음을 접기를 바란 거였다.차유라는 화가 나서 이를 악문 채 강당 위에서 다정한 눈빛으로 허나연에게 목걸이를 걸어주는 육천우를 노려보았다.간간이 들리는 축복의 소리에 이가 부서지도록 악물고 있는데 차 교수의
내연녀라는 말에도 허나연은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차유라 씨, 이 시점에도 그런 말을 하는 거 보면 간이 배 밖으로 나왔네요?”“허나연 씨, 저의 아빠가 천우의 스승이라는 걸 잊었어요? 천우가 배은망덕한 사람도 아니고 날 뭐 어떻게 할 거로 생각하는 거예요? 천우야, 안 그래?”차유라는 육천우한테 눈길을 돌렸다.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육천우는 침대에서 내려오더니 허나연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자기야, 우리 일단 연회에 먼저 참가하고 차유라는 연회
육천우는 손님들 접대하느라 한 바퀴 돌고 나니 머리가 좀 어지러워지자 자리를 찾아 앉아 휴식을 취했다.혼자 앉아 있는 육천우를 발견한 차유라는 바로 앞으로 다가가서 말했다.“천우야, 왜 그래? 술 많이 마신 거야?”육천우는 반쯤 감은 눈을 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머리가 좀 어지럽네.”“내가 부축할게. 위층에 올라가 좀 셔.”차유라는 복무원을 불러 함께 육천우를 부축해 위층 방으로 들어갔다.들어가자마자 육천우는 침대에 쓰러져 꼼짝하지 못했고 차유라는 그런 육천우에게 다가가며 불렀다.“천우야, 천우야.”아무리 불러
허나연은 그들의 말에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어머니의 명성을 희롱하는 소리를 듣고 더는 억제 할 수 없어서 홧김에 달려 나가 그 여자의 뺨을 후려쳤다.“누가 감히 뒤에서 우리 엄마를 희롱하고 있어?”“허나연, 내가 틀린 말 했어? 차유라 씨랑 육 대표님이 서로 좋아하는 사이인 걸 알면서 매일 대표님 사무실에 드나들더니 내연녀가 아니면 뭔데?”허나연은 그들을 비웃으면서 말했다.“차유라가 당신들한테 그렇게 말한 거야?”“차유라 씨가 말해줄 필요가 있겠어? 회사 사람들 전부 그렇게 알고 있는데. 해외에 있는 3년 동안 차유라
육천우는 대중들의 환호 속에서 허나연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주고는 몸을 일으켜 허나연을 바라보면서 말했다.“나연아, 나 이제 키스해도 돼?”이 말은 분명 물음형이었지만 허나연이 대답도 하기 전에 커다란 손은 이미 그녀의 머리를 감싸 쥐고 촉촉한 입술로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고 있었다.현장에서는 축하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고 허나연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지만 육천우의 애틋한 마음에 그녀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둘은 얼마 동안 키스를 했는지도 모르고 서아의 목소리가 들릴 때 대서야 키스를 멈췄다.“아빠, 삼촌이랑 이모가 뽀뽀하
육천우의 말을 듣던 허나연은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며 코를 훌쩍거리며 말했다.“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잘해주는 거야? 조금이라도 나쁘게 대했어도 내가 이 정도로 슬프진 않았을 거잖아.”육천우는 허나연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달래며 말했다.“애기야, 울지마. 오빠한테 이거 하나만 대답해 줄래?”허나연은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오빠가 묻고 싶은 게 뭔지 나도 알아. 천우 오빠, 나 어릴 적부터 오빠랑 붙어 있는 걸 좋아했고 커서도 항상 오빠 옆에만 있었고 후에 사춘기가 되니까 오빠가 너무 간섭해서 자유가 없는 것이 싫
허나연은 의아해하며 고개 들어 까맣고 반짝이는 눈동자로 육천우를 바라보며 물었다.“어떤 이벤트길래 이렇게 비밀스럽게 행동하는 거야?”허나연은 겉으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척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수도 없이 긴장해 하고 있었고 머릿속에 한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가면서 기대하면서도 긴장한 듯 하였다.육천우는 허나연의 눈을 막고 지하실에 있는 극장 쪽으로 향했고 따라가는 허나연의 궁금증은 점점 커져만 갔다.“육천우, 대체 어딜 데리고 가는 거야?”육천우는 극장의 문을 열고 허나연의 눈을 가린 커다란 손을 내리며 사랑이 가득 담긴 목
“오빠 이제 다신 어딜 안 갈 거야. 알았지?”허나연은 붉어진 눈으로 입을 삐쭉 내밀면서 말했다.“거짓말하지 마. 3년 전에 떠나면서 매일 연락한다고 해놓고 가서는 내 연락도 다 무시해 버렸으면서. 나 밤마다 오빠 전화 기다리다 잠들었단 말이야.”허나연은 술땜에 말투가 흐트러졌지만 육천우는 다 알아들을 수 있었고 듣고 나서 그의 마음은 칼로 베는 듯 아팠다.여태껏 육천우는 허나연이 자신을 귀찮아한다고만 생각했고 서로 성장 공간을 가져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해외에 나간 건데 허나연이 이런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 줄은
허나연은 입을 쀼죽하게 내밀고 육천우를 바라보며 말했다.“뭔 생각했다고 그래. 나 혼자서 얼마나 자유스러웠는데.”허나연은 사실 자유스러웠던 건 맞지만 마음은 많은 공허함을 느꼈다.육천우가 항상 옆에서 이것저것 참견하여 허나연은 귀찮게만 느꼈었지만, 그가 해외로 떠나고 나서야 그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다.허나연은 사람들이 없을 때면 항상 조용하게 혼자 육천우랑 함께했던 나날들을 회상했었고, 커플들끼리 꽁냥 거리는것을 볼 때면 항상 옆에 있어 줬던 육천우를 생각했다.이 말을 들은 육천우는 웃으면서 허나연의 머리를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