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서연은 천우처럼 항상 박서준에게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가져다주곤 했다.곽서연이 마음속으로 그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난 뒤로 박서준은 예전처럼 가까이 지내면 곽서연이 자신한테 더 깊이 빠져들 거로 생각하고 그녀를 의도적으로 피했다. 그래야만 죄책감이 덜할 것 같았다.그리고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심은하의 제안을 받아들었고 곽서연이 상처받을 거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지만, 오히려 자신에 대한 마음을 접는 데 도움이 될 거로 생각했다.그런데 곽서연이 윤상후와 사귀는 걸 보자 마음이 아팠다.‘원하던 게 이런 거 아니었어
박서준은 즉시 걱정스럽게 물었다.“갑자기 배가 왜 아파?”심은하는 한참을 망설이다 대답했다.“생리통이야. 매번 이래.”심은하는 아파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고 얼굴에는 식은땀이 맺혔다. 이를 본 박서준은 즉시 분부했다.“가까운 병원으로 가주세요.”운전기사는 곧바로 유턴해 가장 가까운 병원을 향해 질주했다. 병원에 도착하자 심은하는 뒷자리에 누운 채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술까지 떨고 있었다.박서준은 조용히 외쳤다.“심은하.”심은하는 힘겹게 눈을 뜨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서준아, 나 못 걸을 거 같으니까 휠체어
이제 다시는 박서준의 옆에 갈 수 없겠다고 생각한 곽서연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바로 이때 윤상후한테서 전화가 걸려왔고 곽서연은 즉시 감정을 추스르고 전화를 받았다.“선배.”“서연아, 일어났어? 내가 부근에 한식집을 찾아놨어. 너 한식 먹고 싶다고 했잖아. 같이 가자.”곽서연은 바로 침대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알았어요. 잠깐만 기다려요. 금방 내려갈게요.”30분 뒤에 일 층으로 내려온 곽서연의 눈에는 기숙사 입구에 서 있는 윤상후가 들어왔다. 그의 품에는 곽서연이 좋아하는 곰돌이 인형이 안겨있었다.곽서연은 즉시 웃으며
윤상후는 몸을 앞으로 숙여 곽서연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비록 박서준을 등지고 있었지만, 윤상후의 입술이 곽서연의 입술에 맞닿은 것을 본 박서준은 마치 마른벼락이 온몸을 내리치는 것 같았다.줄곧 침착하게 앉아있던 박서준은 즉시 일어나 어두운 얼굴로 그들을 향해 걸어가더니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두 사람 지금 뭐 하는 거야?”박서준의 목소리에 윤상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가셔지지 않은 뜨거운 눈빛을 머금은 채 박서준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둘째 삼촌, 죄송해요. 방금 참지 못하고 서연이한테 입을 맞췄어요.
입술을 닦아준 윤상후는 곽서연에게 물었다.“서연아, 둘째 삼촌이 우리가 사귀는 걸 정말로 믿게 하고 싶어?”박서준이 아직도 자신의 마음을 신경 쓰는 것이 싫었던 곽서연은 확실히 마음을 단념했음을 보여주고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윤상후는 즉시 손가락을 그녀의 입술 위에 댄 뒤 머리를 숙여 손가락을 사이에 두고 입을 맞추었다.결국, 그들의 계획대로 박서준은 두 사람이 입을 맞췄다고 오해했다.박서준이 아까 했던 말을 떠올리던 곽서연은 담담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곽서연은 예나 지금이나 박서준이 잘해줬던 건 그냥 곽명원 때문이
박서준의 머릿속에는 곽서연이 납치되는 장면들이 자꾸 떠올랐다.곽서연은 어렸을 때 벌어졌던 일 때문에 이미 심한 스트레스성 장애를 겪었었는데 만약 다시 재발하게 된다면 그 결과는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혼자 차를 몰고 곧장 거래 장소로 달려간 박서준이 대문을 걷어차자, 큰 나무에 묶여 있는 곽서연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공포에 가득 찬 눈으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곽서연을 보자 박서준은 수없이 많은 칼이 한 번에 심장에 박히듯 아파져 왔다. 말할 수 없는 고통에 두 다리는 자기도 모르게 부르르 떨려왔다.침착하고 냉정하게
박서준은 허리를 굽혀 칼을 손에 쥔 채 곽서연을 애틋하게 바라보았다.“서연아, 울지 마. 삼촌 안 죽어.”곽서연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말했다.“삼촌이 불구가 되는 게 싫어요. 그러니까 하지 말아요. 두 번 다시 누가 나 때문에 희생하는 걸 보고 싶지가 않다고요. 한평생을 갚아도 못 갚잖아요.”곽서연은 자신의 삼촌을 통하여 알게 된 박서준이 그녀를 위해 다리를 잃는 게 싫었고 자신은 박서준한테 그렇게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곽서연의 말뜻을 알아차린 박서준은 가슴이 지끈거렸다.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지며 지체할
박서준은 아픈 허벅지를 이끌며 힘겹게 달려가 곽서연을 온몸으로 끌어안았다.그는 곽서연이 다치는 게 싫었고 다시 병이 발작할까 봐 두려웠다.순간 박서준의 머릿속에는 그날 곽서연이 해변에서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삼촌, 저는 삼촌이 저를 구해준 그 날부터 삼촌을 좋아하게 됐어요.”“삼촌 옆에 가까이 있기 위해 유학을 선택한 거예요.”“삼촌, 저는 앞으로 계속 삼촌을 좋아할 거예요.”한마디 한마디 떠오를 때마다 박서준은 마음이 점점 더 아파 났다.인제 와서 생각해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박서준은 곽서연을 좋아하고 있었다.
통화 목소리만 들어도 박서준은 육상근이 지금 엄청나게 화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 저 지금 미래의 아버지 며느리를 달래주는 중이거든요. 금방 들어갈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박서준, 그 마음 당장 접어. 두 사람 사이 절대 동의 못 해. 그러니까 빨리 들어와. 지금 서연이 할아버지 할머니도 이쪽으로 오고 있어. 우리 집을 박살 내겠다고 하니까 네가 와서 해결해.”육상근의 말에 박서준은 겁을 먹기는커녕 오히려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화를 풀려면 그
곽서연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분명히 내가 먼저 삼촌을 좋아한 거잖아요. 왜 거짓말해요?”박서준은 웃으며 말했다.“누가 먼저 좋아했던 그게 뭐가 중요해. 넌 지금 내가 싫고 내가 널 쫓아다니는 건 사실이잖아. 서연아, 이 일이 비록 공개적으로 보도되지는 않겠지만 육 씨 집안과 곽 씨 집안에서는 이미 다 알고 있을 거야. 우리 이제는 현실을 직시해야 해.”곽서연은 긴장한 표정으로 박서준을 바라보았다.“어떡해요? 할아버지가 삼촌 아빠한테 가서 뭐라 하는 거 아니에요?”“두 사람이 힘을 합쳐 나를 때릴까 봐 걱정해야 하는
“곽서연 씨, 박 대표하고는 삼촌 조카의 사이 아닌가요? 두 분 금기된 사랑을 하고 있는데 누가 먼저 시작한 거죠?”“가족들은 두 사람이 사귀는 걸 알고 있나요? 반대는 안 하던가요?”“윤상후는 자신이 쓴 곡도 전부 곽서연 씨한테 줄 만큼 당신한테 잘해줬는데, 이렇게 그를 배신하면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가요?”갑작스러운 질문에 놀란 곽서연은 트로피를 품에 끌어안은 채 떨리는 심장을 안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번 시합을 가족들 모두 주목하고 있는데 만약 이 보도가 나간다면 박서준과 곽서연의 일은 전부 들통날 수밖에 없었다.곽서
박서준은 빈혜경과 함께 그 자리를 떠났고 밖에서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자 곽서연은 그제야 이불속에서 머리를 내밀고 깊은숨을 몰아쉬었다.예쁘장한 눈에는 긴장감이 서려 있었고 목소리는 당황함에 떨리고 있었다.“삼촌이랑 할머니 가셨어요?”박서준은 웃으며 곽서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갔어.”곽서연이 즉시 이불에서 나오려고 몸을 일으키는 찰나 박서준은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서연아, 네 삼촌이 다른 가문에 인사하러 가자고 하면 가지 마. 알았지?”따뜻한 온기에 곽서연의 심장은 자기도 모르게 빨리 뛰기 시작했고 작고 하얀 얼
곽명원의 목소리에 곽서연은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녀와 박서준의 일을 이미 알고 있는 광명원이 그녀가 박서준의 방에 혼자 들어와 있는 것을 보게 된다면 반드시 화를 낼 거로 생각하고 순간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했다.박서준은 곽서연의 손목을 덥석 잡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소리 내지 마.”곽서연이 숨자마자 방문이 열리더니 곽명원이 걸어들어왔다. 그는 박서준을 힐끗 쳐다보고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몇 대 맞았다고 설쇠느라 다 모여있는데 나오지도 않아? 너무하는 거 아니야?”박서준은 얼굴에
박주영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박서준을 바라보았다.“누굴 좋아하면 안 돼서 하필이면 서연이니. 네 아버지도 동의하지 않을 텐데. 너희 두 사람 만약 이루어진다면 네 아버지가 큰아버지보다 촌수가 한 급 낮아지는 건데 그걸 받아들이겠어?”“알고 있어요. 나중에 말씀드려야죠. 엄마, 저 좀 도와주시겠어요? ”아들의 부탁에 박주영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박주영은 어릴 때부터 자신과 함께 고생만 했던 박서준이 안쓰러웠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마음, 확실한 거지?”“네. 확실해요. 엄마, 저 진
다음 날 아침 천우는 눈을 뜨자마자 박서준의 방으로 갔다.짧은 다리를 힘껏 뻗어 박서준의 침대 위로 올라갔다.“둘째 삼촌, 내일이면 새해인데 아직도 아내를 찾지 못한 거예요?”천우는 침대에 올라가서야 박서준의 얼굴에 멍이 든 것을 발견했다.놀란 천우는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둘째 삼촌, 누가 때린 건지 말만 해요. 제가 가서 혼내줄게요.”박서준은 웃으며 천우의 작은 머리통을 어루만졌다.“내가 너를 아낀 게 헛되지는 않은 모양이구나. 하지만 그 사람은 이 둘째 삼촌이 덤빌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천우는 잠깐 눈알을
곽명원의 말을 들은 곽서연은 어딘가 잘못됐음을 느끼고는 얼른 다시 물었다.“삼촌, 누굴 때렸어요?”“누구겠어, 당연히 박서준 그 개자식이지. 감히 널 속상하게 만들었으니 맞아도 싼 놈이야. 아까 얼마나 처참했는지 서연이 넌 모르지? 나한테 얻어맞아서 땅에 바짝 엎드려서는 찍소리 못했어.”곽명원의 말을 들은 곽서연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박서준이 삼촌에게 솔직하게 다 털어놓았을 테고 그에 삼촌이 참지 못하고 손을 썼을 게 불 보듯 뻔했다.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곽서연은 화가 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
“쌤통이다! 만약 서연이가 너를 막 좋아하기 시작했을 때 네가 받아줬다면 난 기껏해야 널 한 대 쥐어박고 말았을 거야. 그런데 이젠 네가 서연이를 그렇게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한 걸 내가 알았으니 절대 쉽게 허락하는 일은 없어.”박서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저도 알고 있어요. 서연이가 저를 용서해줄 수 있도록 제가 노력할 거예요. 만약 저희 둘이 화해를 하게 되면 형이 큰아버지와 큰어머니께 잘 좀 말해줄래요?”박서준은 호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곽명원에게 전해주었다.“곽씨 가문이 M국에서 사업을 발전시키려고 하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