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아해하는 박서준의 모습을 본 심은하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않아도 돼. 서연이는 조만간 크면 연애도 할 거야. 게다가 두 사람은 말도 잘 통하고 상후도 서연이에게 잘해주니 시름 놓고 그녀를 맡겨도 돼.”자신의 시야에서 그들의 뒷모습이 사라지는 순간 박서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그는 이 느낌이 곽서연의 연애에 대한 걱정인지 아니면 다른 감정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이 문제로 박서준은 곽명원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서연에게 잘해주기만 한다면 그들은 따로 의견이 없다고 하였다.곽명원이 그렇게 말했기에 더 이상 막을 이유
이 말을 듣고 곽서연은 슬픈 심정을 더 이상 억제 할 수 없었고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윤상후의 부드러움과 자상한 배려를 알고 있었으나 그녀는 몇 년 전 박서준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린 후 그에 대한 감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눈물을 글썽이며 윤상후를 바라보던 그녀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선배, 나에게 시간을 좀 줘요.”이 말을 들은 윤상후는 두 눈을 반짝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서연아, 나에게 기회 줘서 고마워, 내가 반드시 네가 나를 사랑하도록 노력할 거야.”둘이 말하고 있을 때 누군가 다가와서 곽서연의 공연
임혜나는 스크린을 가리키며 고발했다.“이 대회의 주요 협찬사가 운성그룹인데 곽서연의 말한 남자 친구인 서준 대표가 편의를 봐줬기에 고작 대학교 2학년생이 이렇게 중요한 상을 받았다고 확신해요. 다른 선수들에게는 불공정한 심사이니 그들을 대표해 서연 씨의 부정행위를 고발함으로써 이번 경기의 성적을 취소해 주시길 바랍니다.”임혜나의 말이 끝나자 잇달아 학생들의 고발이 이어지며 현장이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대회는 항상 공정하고 공평함을 기본 원칙으로 하지 않습니까? 대회에 참가한 선수의 남자 친구가 투자자라면 이것은 명백한 부정행
어쩔 줄 몰라 망설이고 있는 곽서연의 모습에 박서준은 주먹을 불끈 쥐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같이 올라가자.”박서준이 심은하의 손을 잡고 천천히 무대 위로 올라가자 기자들은 순식간에 들고 있던 카메라를 박서준한테 들이밀며 질문을 퍼부었다.“박 대표님, 곽서연 씨와 정말 연인 사이인가요? 정말 연애라도 하는 거예요? 아니면 그냥 보호자인가요?”“박 대표님, 임혜나 씨와 오래전에 혼인을 약속했다가 최근에 취소했다고 들었는데 전부 곽서연 씨 때문인가요? 그녀가 개입해서 이 혼약을 취소하신 거예요?”기자들의 추궁에 박서준은 냉담
곽서연의 ‘숙모’라는 호칭에 박서준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마음이 복잡했다.박서준은 곽서연의 눈빛에서 그녀의 감정을 충분히 알아차렸지만 어떠한 위로도 건넬 수 없었다. 어쩌면 이 방법이 오히려 곽서연이 자신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고 단념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심은하는 곽서연의 기분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웃으며 말했다.“고맙기는. 당연한 거지. 앞으로 이곳에 있을 테니까 누구든 널 괴롭히지 못하게 내가 널 챙겨줄게. 네 삼촌은 종일 일 때문에 바빠서 널 신경 쓸 겨를이 없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된 임혜나는 지금 당장 심은하의 멱살을 잡고 욕을 퍼붓고 싶었지만 그러면 많은 기자 앞에서 자기 절로 자기 뺨을 때리는 격이라 아무것도 못 하고 억지로 화를 누른 채 조용히 공연장을 떠났다.박서준한테 약혼녀가 있다는 소식은 국내에 빠르게 전해졌다. 박주영은 이 소식을 듣고 기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내가 심은하가 서준이하고도 잘 어울리고 사람도 좋다고 했잖아요. 서준이도 초반에는 연락도 자주 안 하더니 두 사람 같은 곳에 있으니까 즉시 약혼 소식이 퍼지는 것 봐요. 나 또 시어머니가 되는 거예요
곽명원의 말에 곽서연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윤상후는 그냥 사귀는 척하는 사람일 뿐이었는데 박서준은 그걸 진짜라고 오해하고 있었다.‘삼촌한테 분명히 윤상후는 남자친구가 아니라고 했는데, 날 얼마나 밀어내고 싶으면 명원 삼촌한테 이렇게 말한 거야?’‘남자친구를 가족들한테 소개해 준다면 아마 삼촌에 대한 내 마음은 누구도 모르겠지. 삼촌이 원하는 게 어쩌면 이런 거 일지도 몰라.”여기까지 생각한 곽서연은 씁쓸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남자친구가 시간 있는지 물어볼게요. 된다면 함께 나갈게요.”곽서연의 말
곽서연의 말에 윤상후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좋아했던 여자가 드디어 그의 여자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한다.윤상후는 어릴 적 바이올린 콩쿠르에 참가한 날 구석에 숨어서 울고 있는 그에게 사탕을 쥐여주던 여자아이의 모습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그날 여자아이는 작은 손으로 그의 눈물을 닦아주며 위로했다.“오빠, 이 사탕 먹으면 슬프지 않을 거예요. 아주 신통한데 한번 먹어볼래요?”여자아이의 큰 눈이 반짝이며 그를 바라보자 윤상후의 부서진 마음은 한순간에 풀리는 것 같았고 순간 암담했던 생활에 한 줄기 햇빛이 비
곽서연의 눈빛에는 감출 수 없는 아픔이 서려 있었고 얼굴의 근육이 파르르 떨렸다.심은하의 입에서 ‘어머니'라는 호칭이 나오자 곽서연은 마지막 남은 이성의 끈이 끊어진 듯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져 방 안에 있는 사람들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몸 전체의 신경 하나하나가 무언가에 찔리는 듯 아파져 왔다.곽서연의 모습을 본 박서준은 가슴이 아파 한층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서연아.”박서준은 당장이라도 침대에서 일어나고 싶었고 심지어 곽서연의 앞에 뛰어가고 싶었지만, 다리에 있는 상처 때문에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박서준의 부름에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갖고 싶고 혼자만 차지하고 싶은 건 당연한 거였다. 마치 그가 곽서연과 윤상후가 함께 있는 것을 봤을 때 느꼈던 그 감정처럼.박서준은 심은하의 마음이 넓은 이해심인지 아니면 그가 모르는 다른 이유인지 좀처럼 종잡을 수 없었다. 박서준이 막 입을 열려는 찰나 병실 문이 열렸고 누군가 들어왔다. 병실에 들어선 사람을 본 박서준은 심은하를 보며 무뚝뚝한 말투로 물었다.“네가 엄마한테 알려준 거야?”심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아까 의사가 너 다리 부상이 심해서 장애인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그러길래 너무 무서워서
박서준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심은하는 순간 눈빛이 흔들렸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미안해. 사실 서연이가 네 조카라는 건 진작 알고 있었어. 계속 모른 척했던 건 내가 널 따로 조사했다는 걸 너는 몰랐으면 했거든. 널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어. 서준아, 솔직히 말하면 처음 소개팅을 했던 그 날부터 나는 네가 마음에 들었어. 여기까지 이직해서 온 것도 너랑 가까이 있고 싶어서였고 자주 만나다 보면 너도 나한테 감정이 생길 거로 생각해. 내가 우리 관계에 대해 별로 미련이 없는척하
병실로 돌아온 심은하는 곽서연을 온화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서연아, 삼촌은 내가 돌보고 있을게. 의사가 너한테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으니까 윤상후랑같이 먼저 들어가서 쉬어.”말을 마친 심은하는 진심으로 걱정하며 어린아이를 달래듯 곽서연을 안고 등을 토닥여줬다. 현재 심정을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곽서연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삼촌이 깨어나는 걸 보고 가면 안 될까요?”심은하는 가볍게 곽서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서연아, 숙모 말 들어. 오늘에는 일단 돌아가서 푹 쉬어. 삼촌이 너를 구하려고
박서준은 아픈 허벅지를 이끌며 힘겹게 달려가 곽서연을 온몸으로 끌어안았다.그는 곽서연이 다치는 게 싫었고 다시 병이 발작할까 봐 두려웠다.순간 박서준의 머릿속에는 그날 곽서연이 해변에서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삼촌, 저는 삼촌이 저를 구해준 그 날부터 삼촌을 좋아하게 됐어요.”“삼촌 옆에 가까이 있기 위해 유학을 선택한 거예요.”“삼촌, 저는 앞으로 계속 삼촌을 좋아할 거예요.”한마디 한마디 떠오를 때마다 박서준은 마음이 점점 더 아파 났다.인제 와서 생각해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박서준은 곽서연을 좋아하고 있었다.
박서준은 허리를 굽혀 칼을 손에 쥔 채 곽서연을 애틋하게 바라보았다.“서연아, 울지 마. 삼촌 안 죽어.”곽서연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말했다.“삼촌이 불구가 되는 게 싫어요. 그러니까 하지 말아요. 두 번 다시 누가 나 때문에 희생하는 걸 보고 싶지가 않다고요. 한평생을 갚아도 못 갚잖아요.”곽서연은 자신의 삼촌을 통하여 알게 된 박서준이 그녀를 위해 다리를 잃는 게 싫었고 자신은 박서준한테 그렇게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곽서연의 말뜻을 알아차린 박서준은 가슴이 지끈거렸다.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지며 지체할
박서준의 머릿속에는 곽서연이 납치되는 장면들이 자꾸 떠올랐다.곽서연은 어렸을 때 벌어졌던 일 때문에 이미 심한 스트레스성 장애를 겪었었는데 만약 다시 재발하게 된다면 그 결과는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혼자 차를 몰고 곧장 거래 장소로 달려간 박서준이 대문을 걷어차자, 큰 나무에 묶여 있는 곽서연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공포에 가득 찬 눈으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곽서연을 보자 박서준은 수없이 많은 칼이 한 번에 심장에 박히듯 아파져 왔다. 말할 수 없는 고통에 두 다리는 자기도 모르게 부르르 떨려왔다.침착하고 냉정하게
입술을 닦아준 윤상후는 곽서연에게 물었다.“서연아, 둘째 삼촌이 우리가 사귀는 걸 정말로 믿게 하고 싶어?”박서준이 아직도 자신의 마음을 신경 쓰는 것이 싫었던 곽서연은 확실히 마음을 단념했음을 보여주고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윤상후는 즉시 손가락을 그녀의 입술 위에 댄 뒤 머리를 숙여 손가락을 사이에 두고 입을 맞추었다.결국, 그들의 계획대로 박서준은 두 사람이 입을 맞췄다고 오해했다.박서준이 아까 했던 말을 떠올리던 곽서연은 담담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곽서연은 예나 지금이나 박서준이 잘해줬던 건 그냥 곽명원 때문이
윤상후는 몸을 앞으로 숙여 곽서연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비록 박서준을 등지고 있었지만, 윤상후의 입술이 곽서연의 입술에 맞닿은 것을 본 박서준은 마치 마른벼락이 온몸을 내리치는 것 같았다.줄곧 침착하게 앉아있던 박서준은 즉시 일어나 어두운 얼굴로 그들을 향해 걸어가더니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두 사람 지금 뭐 하는 거야?”박서준의 목소리에 윤상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가셔지지 않은 뜨거운 눈빛을 머금은 채 박서준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둘째 삼촌, 죄송해요. 방금 참지 못하고 서연이한테 입을 맞췄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