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원의 말에 박서준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한참 뒤에야 말했다.“알았어요. 귀국하면 학교에 찾아갈게요.”두 집안의 관계가 있는 이상 박서준은 곽서연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다.하지만 더는 예전처럼 간섭할 수도 없었고 곽서연의 안전만 보장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박서준은 바로 곽서연의 대학교로 찾아갔고 일 층에 도착하자 마침 곽서연의 룸메이트를 만났다.예전에 박서준을 본 적이 있는 학생은 웃으며 물었다.“서연이 찾으러 온 거예요?”박서준은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내려오라고 전해줄래요?
육연희는 웃으며 곽서연의 머리를 쓰다듬고 말했다.“여동생이 두 명이라 그래.”“정말요? 쌍둥이 유전자가 있어서 정말 좋네요. 고모, 고모부 축하해요.”곽서연의 귀여운 모습과 달곰한 말에 육연희는 웃음을 터드렸다.“이따가 공연 끝나면 고모가 밥 사줄게. 둘째 삼촌도 왔어.”두 달 만에 박서준의 소식을 듣자 곽서연은 가슴이 바늘로 찔리듯이 아팠다.두 달 동안 곽서연은 거의 매일 밤 박서준을 만나는 꿈을 꿀만큼 그가 보고 싶었다.하지만 이제 두 사람은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고 있던 곽서연은 더는 박서준한테 어떠한 스트레스도
곽서연은 남자의 초대를 거절하려다 박서준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선배, 우리 샤부샤부 먹으러 가요. 친구들이 그러는데 여기 새로 생긴 샤부샤부 가게가 맛도 있고 괜찮대요.”곽서연의 대답에 윤상후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알았어. 바로 예약할게.”말을 마친 윤상후는 입가에 억누를 수 없는 미소를 머금은 채 곽서연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모든 걸 지켜보던 박서준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곽서연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 그녀의 손을 잡은 윤상후를 한 번 보고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곽서연
“알았어. 돌아가자. 나 배고파.”“그래. 네가 좋아하는 반찬도 준비시키고 서연이가 좋아하는 양념게장도 만들었는데 못 먹여 보내서 아쉽네.”곽서연의 얘기에 박서준은 괜히 또 마음이 답답해 났다.그는 곽서연이 정말 연애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를 피하기 위한 건지 알 수 없었다.여기까지 생각한 박서준은 지금 당장 곽서연에게 가서 자초지종을 묻고 싶었다.윤상후를 끌고 공연장을 나온 곽서연은 눈물이 더는 주체할 수 없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일부러 머리카락으로 얼굴의 반을 가렸지만 그래도 윤상후에게 들켰다.윤상후는 곽서연의 머
곽서연은 누군가의 가슴에 와락 끌어당겨 안겨졌고 당황하는 순간 윤상후의 어두운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윤상후는 무대에 설 때의 단정함과 우아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마치 사나운 맹수라도 된 듯 문신이 있는 남자를 향해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곽서연은 너무 놀라 숨도 못 쉰 채 어안이 벙벙하여 윤상후가 세 남자를 하나씩 쓰러뜨리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바로 그때, 한 남자가 술병 하나를 주워들고 곽서연 쪽을 향해 공격했다술병이 그녀의 머리를 내리치려는 찰나 윤상후가 갑자기 곽서연의 방향으로 돌진하며 온몸으로 그녀를 감싸 안아
박서준이 누구인지 모르는 학부모들은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먼저 유혹한 사람은 저 여자야. 우리 아들이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니 때리라고 이남자한테 지시까지 했는데 이렇게 쉽게 끝날 수 없어!”박서준은 검은 눈동자로 냉랭하게 그들을 흘겨보며 말했다.“나의 변호사가 그들이랑 잘 해결해 볼 거니 절대 쉽게 넘어갈 수는 없을 거야!”공공장소에서 낯선 여자를 희롱한 것도 모자라 술병으로 때리려고 했는데 이대로 쉽게 끝날 수는 없지.”그의 말투를 들은 몇몇 학부모들은 연합하여 욕하기 시작했다.“헛소리하지 마! 분명히 이 불여우가 이
이 말을 들은 박서준은 입꼬리를 심하게 실룩거리며 천천히 박서연의 옆으로 걸어가 온기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상후의 진료비는 이미 수납이 끝났고 그가 후유증이 남지 않도록 후속 치료도 사람을 시켜 지켜볼 거니 걱정하지 마.”곽서연은 그의 눈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고마워요, 삼촌. 잠시 후 저는 선배랑 함께 학교에 돌아갈 거니 먼저 가서 일 보세요.”“나한테 할 말 없어?”그의 질문을 들은 곽서연은 방금 그녀가 한 말을 박서준이 다 들었다는 것을 알았다.입술을 꿈틀거리며 병실에서 나온 곽서연의 눈시울
박서준이 나타나자 입가에 우아한 미소가 번진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서준아, 일하는 데 방해한 건 아니지?”낯익은 기숙사를 한번 바라본 박서준은 말했다.“아니, 괜찮아. 왜 호텔 아닌 기숙사에 투숙한 거야?”“교류 시간이 길다 보니 호텔비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일부 학생들은 호텔비 부담하기가 힘들어. 이 학교 기숙사는 조건이 좋아서 나는 무척 마음에 들어.”“마음에 들면 됐어. 내가 밥 살 테니 얼른 차에 타.”차에 타려는 순간 뒤에서 학생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심 선생님.”고개를 돌린 심은하는 그들
곽서연의 눈빛에는 감출 수 없는 아픔이 서려 있었고 얼굴의 근육이 파르르 떨렸다.심은하의 입에서 ‘어머니'라는 호칭이 나오자 곽서연은 마지막 남은 이성의 끈이 끊어진 듯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져 방 안에 있는 사람들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몸 전체의 신경 하나하나가 무언가에 찔리는 듯 아파져 왔다.곽서연의 모습을 본 박서준은 가슴이 아파 한층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서연아.”박서준은 당장이라도 침대에서 일어나고 싶었고 심지어 곽서연의 앞에 뛰어가고 싶었지만, 다리에 있는 상처 때문에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박서준의 부름에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갖고 싶고 혼자만 차지하고 싶은 건 당연한 거였다. 마치 그가 곽서연과 윤상후가 함께 있는 것을 봤을 때 느꼈던 그 감정처럼.박서준은 심은하의 마음이 넓은 이해심인지 아니면 그가 모르는 다른 이유인지 좀처럼 종잡을 수 없었다. 박서준이 막 입을 열려는 찰나 병실 문이 열렸고 누군가 들어왔다. 병실에 들어선 사람을 본 박서준은 심은하를 보며 무뚝뚝한 말투로 물었다.“네가 엄마한테 알려준 거야?”심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아까 의사가 너 다리 부상이 심해서 장애인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그러길래 너무 무서워서
박서준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심은하는 순간 눈빛이 흔들렸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미안해. 사실 서연이가 네 조카라는 건 진작 알고 있었어. 계속 모른 척했던 건 내가 널 따로 조사했다는 걸 너는 몰랐으면 했거든. 널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어. 서준아, 솔직히 말하면 처음 소개팅을 했던 그 날부터 나는 네가 마음에 들었어. 여기까지 이직해서 온 것도 너랑 가까이 있고 싶어서였고 자주 만나다 보면 너도 나한테 감정이 생길 거로 생각해. 내가 우리 관계에 대해 별로 미련이 없는척하
병실로 돌아온 심은하는 곽서연을 온화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서연아, 삼촌은 내가 돌보고 있을게. 의사가 너한테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으니까 윤상후랑같이 먼저 들어가서 쉬어.”말을 마친 심은하는 진심으로 걱정하며 어린아이를 달래듯 곽서연을 안고 등을 토닥여줬다. 현재 심정을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곽서연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삼촌이 깨어나는 걸 보고 가면 안 될까요?”심은하는 가볍게 곽서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서연아, 숙모 말 들어. 오늘에는 일단 돌아가서 푹 쉬어. 삼촌이 너를 구하려고
박서준은 아픈 허벅지를 이끌며 힘겹게 달려가 곽서연을 온몸으로 끌어안았다.그는 곽서연이 다치는 게 싫었고 다시 병이 발작할까 봐 두려웠다.순간 박서준의 머릿속에는 그날 곽서연이 해변에서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삼촌, 저는 삼촌이 저를 구해준 그 날부터 삼촌을 좋아하게 됐어요.”“삼촌 옆에 가까이 있기 위해 유학을 선택한 거예요.”“삼촌, 저는 앞으로 계속 삼촌을 좋아할 거예요.”한마디 한마디 떠오를 때마다 박서준은 마음이 점점 더 아파 났다.인제 와서 생각해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박서준은 곽서연을 좋아하고 있었다.
박서준은 허리를 굽혀 칼을 손에 쥔 채 곽서연을 애틋하게 바라보았다.“서연아, 울지 마. 삼촌 안 죽어.”곽서연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말했다.“삼촌이 불구가 되는 게 싫어요. 그러니까 하지 말아요. 두 번 다시 누가 나 때문에 희생하는 걸 보고 싶지가 않다고요. 한평생을 갚아도 못 갚잖아요.”곽서연은 자신의 삼촌을 통하여 알게 된 박서준이 그녀를 위해 다리를 잃는 게 싫었고 자신은 박서준한테 그렇게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곽서연의 말뜻을 알아차린 박서준은 가슴이 지끈거렸다.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지며 지체할
박서준의 머릿속에는 곽서연이 납치되는 장면들이 자꾸 떠올랐다.곽서연은 어렸을 때 벌어졌던 일 때문에 이미 심한 스트레스성 장애를 겪었었는데 만약 다시 재발하게 된다면 그 결과는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혼자 차를 몰고 곧장 거래 장소로 달려간 박서준이 대문을 걷어차자, 큰 나무에 묶여 있는 곽서연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공포에 가득 찬 눈으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곽서연을 보자 박서준은 수없이 많은 칼이 한 번에 심장에 박히듯 아파져 왔다. 말할 수 없는 고통에 두 다리는 자기도 모르게 부르르 떨려왔다.침착하고 냉정하게
입술을 닦아준 윤상후는 곽서연에게 물었다.“서연아, 둘째 삼촌이 우리가 사귀는 걸 정말로 믿게 하고 싶어?”박서준이 아직도 자신의 마음을 신경 쓰는 것이 싫었던 곽서연은 확실히 마음을 단념했음을 보여주고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윤상후는 즉시 손가락을 그녀의 입술 위에 댄 뒤 머리를 숙여 손가락을 사이에 두고 입을 맞추었다.결국, 그들의 계획대로 박서준은 두 사람이 입을 맞췄다고 오해했다.박서준이 아까 했던 말을 떠올리던 곽서연은 담담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곽서연은 예나 지금이나 박서준이 잘해줬던 건 그냥 곽명원 때문이
윤상후는 몸을 앞으로 숙여 곽서연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비록 박서준을 등지고 있었지만, 윤상후의 입술이 곽서연의 입술에 맞닿은 것을 본 박서준은 마치 마른벼락이 온몸을 내리치는 것 같았다.줄곧 침착하게 앉아있던 박서준은 즉시 일어나 어두운 얼굴로 그들을 향해 걸어가더니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두 사람 지금 뭐 하는 거야?”박서준의 목소리에 윤상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가셔지지 않은 뜨거운 눈빛을 머금은 채 박서준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둘째 삼촌, 죄송해요. 방금 참지 못하고 서연이한테 입을 맞췄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