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문주는 말을 하는 와중에 커다란 손으로 조수아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웃음 띤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얘기하는 모습이 마치 그들이 돌아가야 할 집이 사랑으로 가득한 보금자리라도 되는 듯했다. 조수아는 누군가 제 심장을 쿡 찌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뇌리에 자신이 그 집을 떠나오던 모습이 오버랩 되며 다시 떠올랐다. 조수아가 그 집을 위해 들인 정성만큼 거기를 떠나올 때의 가슴이 그만큼 아팠다. 손끝이 떨리는 걸 애써 억누르며 담연한 표정의 조수아가 조병윤을 향해 답했다.“아빠, 나 아빠가 아직은
자신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싶다라. 육문주는 문득 가슴이 답답해지는 기분에 넥타이를 끌어내리며 혼자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두 사람은 앞뒤로 줄 지어 서서 한 남성복 매장으로 들어갔다.그들의 인상착의와 분위기를 본 점원은 곧바로 VIP 손님이 찾아왔음을 깨달았다. 노련하게 웃음을 장착한 점원이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어서오세요. 혹시 찾으시라는 거라도 있으실까요?”육문주는 얼굴을 굳힌 채 대답도 없이 소파로 바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털썩 앉아 휴대폰을 꺼내들고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조수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뒤 셔츠
조수아는 벗어나고 싶었으나 상대의 현란한 키스에 얼마 안 가 몸에 힘이 쭉 빠지고 말았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몰랐다. 드디어 몸을 천천히 물린 육문주는 손끝의 도톰한 부분으로 조수아의 살짝 부어오른 입술을 살며시 쓸며 동굴 같은 목소리를 냈다.“아까 했던 거 마저 하지, 조 비서.”조수아는 깜짝 놀라 얼굴을 비틀며 말했다.“대체 어디까지 갈 건데!”고개 숙인 육문주가 웃음을 터뜨렸다.“난 옷 갈아입는 거 계속하자는 뜻이었는데. 무슨 야한 생각을 한 거야?”두 사람이 탈의실에서 나오자 점원이 얼른 다가왔다.
조수아가 의아한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아니요. 왜요?”당민석은 사내 채팅방에 들어가 사진 하나를 확대해서 조수아에게 보여주었다.“조 비서님이랑 어떤 남자가 엄청 가까워 보이는 모습이 채팅방에 올라왔거든요. 그래서 지금 회사의 모든 직원이 조 비서님한테 남자친구가 있는 거 알고 있어요. 그것도 재벌2세인 남자친구요.”사진을 본 조수아는 긴장으로 팽팽하게 당겨졌던 신경줄이 느슨해지는 것을 느꼈다. 다행히 사진에는 정면 얼굴이 찍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 그러면 대체 어떤 풍파가 일어났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조수아는 별
육문주는 처음부터 자신의 어머니 때문에 그녀의 아버지가 죽을 뻔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사실을 그녀한테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녀와 함께 아버지 앞에서 연기를 한 것도 그녀가 안타까워서가 아니라 제 어머니가 저지른 잘못을 조금이라도 더 줄일 수 없을까, 해서였다. 필경 그녀의 아버지가 정말로 죽게 되면 자신의 어머니가 법적 책임을 일부라도 지게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니까 말이다. 조수아는 온몸이 차갑게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그나마 며칠간 남자한테 쌓였던 일말의 호감도 방금 전의 말과 함께 연기처럼 사라지는 기분이
하지만 조수아는 하나도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의 손바닥을 타고 흐르는 피를 본 연성빈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수아야, 어서 손 펴!”연성빈이 그녀의 주먹을 풀려고 할 수록 조수아의 손에 힘이 더 크게 실렸다. 결국 연성빈은 살살 달래는 지경에까지 갔다.“수아야, 내 말 들어. 빨리 주먹 펴. 그 영상이 없어도 내가 송사에 이길 수 있게 도와줄게.”드디어 조수아가 주먹을 폈을 땐 이미 핀이 살갗에 완전히 파묻힌 뒤였다. 연성빈은 심장이 조여지는 것처럼 아파왔다.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낸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수아는 육문주의 얼굴을 향해 뺨을 날렸다. 힘이 많이 실린 건 아니지만 지극히 모욕스러운 한 방이었다. 육문주가 누구인가. 그는 B시에서 피라미드 꼭대기에 위치한 인물이자, 누구도 감히 건드릴 자가 없는 대마왕 그 자체였다. 또한 육 씨 가문의 냉혈무정한 황태자였다. 그런 육문주에게 뺨은 고사하고, 그의 면전에 대고 안 좋은 소리를 해도 죽음의 위협을 받을 정도였다. 허연후는 저도 모르게 조수아를 대신해서 손에 땀을 쥐었다. 육문주를 단단히 잡은 그가 좋은 말로 친구를 달래기 시작했다.“문주야, 조수아 씨 술 많이 마셨어.
육문주의 키스는 짧았으나 소유권을 주장하는 기세가 강렬했다. 조수아의 입술을 잘근 씹은 그가 야릇한 목소리로 말했다.“착하지. 나랑 같이 집에 가자.”허리 숙여 조수아를 안아든 육문주는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눈빛으로 연성빈을 보며 말했다. “이제 제 여자인 걸 알았죠?”말을 마친 그는 연성빈이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밖을 향해 걸었다. 허연후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제 친구가 끼를 부리기 시작하면 아무리 자신이어도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오지 못한 얼굴로 허연후는 연성빈의 어깨를 두
강한나가 4년을 기다려 기다려온 것은 송학진이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때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이 허망한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그 소식이 가짜라 생각했고 송학진이 다른 여자를 좋아할 리가 없다고 자신을 위로했다. 강한나는 송학진과 다시 시작하고 싶어서 외국에서 돌아왔는데 한차례 모욕을 받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오늘 아침에 발생한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뺨이라도 처맞은 것처럼 얼굴이 얼얼했고 가슴이 아파 났다.그녀는 독기를 품은 눈빛으로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말했다.“내 남자는 영원히 내 것이야. 누구도 빼앗
송학진이 차서윤과 아림을 데리고 행복한 모습으로 레스토랑에 나타난 것을 본 강한나는 치밀어 오르는 질투심을 참을 길이 없었다.오늘 저녁은 친구들이 그녀를 위해 마련해준 자리였다. 그녀의 친구들은 송학진을 알고 있었고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알고 있었다.너무나도 거북한 장면에 강한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어색한 웃음을 자아냈다.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송학진을 불렀다.“학진아.”강한나의 부름 소리를 들은 송학진은 아무런 표정 없이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서윤과 아림을 끌어안고 예약한 자리로 갔다.강한나의 친구들
“그런다고 제가 용서해 줄 것 같아요?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저한테 손대지 마세요.”“여보, 그건 너무했어. 벌써 금욕이라니! 내가 참지 못하고 죽으면 어떡해. 다음에 주의할 테니까 제발 용서해 줘.”두 사람이 차 옆에서 티격태격하고 있을 때 매니저가 아림을 데리고 멀리서부터 다가왔다.아림은 팝콘을 품에 안고 활짝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아빠, 엄마. 얘기 끝나셨어요?”송학진이 허리를 굽혀 아림을 안아 들고 어린이의 볼에 입을 맞춘 뒤 웃으며 대답했다.“응, 얘기 다 끝났어. 근데 어쩌지? 엄마가 아빠 때문에 많이 화
송학진의 갑작스러운 키스에 놀란 차서윤은 아무런 반응도 못 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피팅룸에 놓인 커다란 거울에는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 거울 앞에서 남자에게 입술을 약탈당하는 모습이 비쳐있었다.거울 속 두 사람의 모습을 본 차서윤은 너무 부끄러워 토마토처럼 목과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키스가 끝나자 수치스러운 마음에 그녀는 송학진의 어깨에 이빨 자국을 남기고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이건 너무했어요!”송학진은 어깨에서 느껴지는 아픔에 잠깐 미간을 찌푸린 뒤 웃으며 대답했다.“미안해.근데 너 아
아림의 말에 송학진은 웃으며 말했다.“요놈이 너한테 뭘 가르친 거야. 이제 보면 엉덩이를 때릴 거야.”“천우 오빠 때리지 마세요. 쌍둥이한테 뽀뽀도 할 수 있게 하고 날 엄청나게 예뻐한단 말이에요. 아빠, 쌍둥이들이 너무 귀여웠어요. 손도 너무 작고 보들보들해요. 나도 여동생을 갖고 싶어요.”아림의 말에 송학진은 웃으며 차서윤의 입술에 뽀뽀하고 그녀의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이건 엄마가 허락해야 해. 여보, 우리 오늘 밤에 딸 소원을 들어줄까?”차서윤은 송학진을 흘겨보며 말했다.“애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어요.”송학
아림은 방긋 웃으며 손뼉을 치고 말했다.“좋아요. 엄마 반지도 사요. 결혼하려면 다이아몬드 반지가 있어야 하잖아요.”송학진은 웃으며 아림의 볼을 꼬집고 말했다.“그래. 겸사겸사 웨딩드레스도 보자. 아림이가 결혼식 때 엄마 아빠의 화동이 되어줄래?”“좋아요. 천우 오빠가 진작에 알려줬어요. 화동하면 돈 봉투도 준다고 그러던데. 아빠, 저한테도 줄 거예요?”“당연하지. 아빠가 돈 봉투를 두둑하게 챙겨줄게. 우리 아림은 어떻게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럽지?”송학진은 또 차서윤의 어깨를 감싸 안고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
강한나는 가슴이 찢어지듯 슬퍼 애처롭게 울며 진심을 담아 간절하게 말했지만, 송학진은 일말의 동정심도 없이 차서윤만 바라보다 강한나를 곁눈질하며 말했다.“너에 대한 지난 내 감정을 부정하는 거 아니야. 네 말대로 널 얻기 위해 노력을 했었지. 하지만 네가 떠나는 순간에 알았어. 너의 인생에서 난 유일한 존재가 아니었구나. 심지어 넌 나보다 사업이 더 중요했잖아. 아무리 내가 감정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야. 굳이 나한테 진심이었던 적도 없던 여자 때문에 내가 슬퍼할 필요는 없잖아. 하지만 차서윤은 달라. 차서
송학진의 말에 차서윤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솔직히 말해서, 강한나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차서윤은 줄곧 불안했고 자신이 어렵게 얻은 행복이 이제 막 시작되려다가 금세 끝날 것 같았다.강한나와 비교하면 차서윤은 아이가 있다는 것 외에는 비교의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차서윤은 강한나처럼 좋은 집안 배경도 없었고 송학진과 함께 지낸 시간도 길지 않았으며 그녀처럼 화려한 직업도 없었다.차서윤은 그냥 평범 하려야 더 평범할 수 없는 비서일 뿐이었다.그리고 송학진과 강한나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했으니 좋은 추억도 많았을 것으로 생각했던 차서
차서윤은 물끄러미 송학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앞으로 우리 계속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요?”“당연하지. 나랑 이혼하고 싶어?”“너무 정신없이 여기까지 왔잖아요. 그래서 자꾸 꿈만 같아요.”송학진은 차서윤의 귓가에 엎드려 그녀의 귓불을 살짝 깨물고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어젯밤 내가 너무 살살했지? 그래서 아직도 꿈같다는 거야? 오늘에는 안 봐줄 테니까 날 탓하지 마.”말을 마친 송학진은 고개를 숙여 차서윤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어젯밤이 마른 장작불이었다면 지금은 불난 집에 휘발유를 부은 정도였다.이내 방안은 뜨거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