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아의 말에 조자현이 바닥에서 구르다시피 기어서 일어나며 육문주를 향해 덜덜 떨며 말했다.“육 대표님, 수아가 저 용서한다는데 그럼 저 이제 가도 되는 거죠?”육문주가 차가운 목소리로 답했다.“꺼져!”공포스러운 상대 앞에서 장현숙도 더는 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조자현 모자를 데리고 세 사람이 사라지자 거실에 다시금 정적이 찾아왔다.조병윤이 탄식하며 말했다.“기껏 좋았던 분위기가 저 사람들 때문에 다 망쳤군.”조수아가 나서서 그를 위로했다“아빠, 주방 이모한테 얘기해서 요리를 몇 가지 더 준비하라고 할 테니까 우리
육문주는 말을 하는 와중에 커다란 손으로 조수아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웃음 띤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얘기하는 모습이 마치 그들이 돌아가야 할 집이 사랑으로 가득한 보금자리라도 되는 듯했다. 조수아는 누군가 제 심장을 쿡 찌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뇌리에 자신이 그 집을 떠나오던 모습이 오버랩 되며 다시 떠올랐다. 조수아가 그 집을 위해 들인 정성만큼 거기를 떠나올 때의 가슴이 그만큼 아팠다. 손끝이 떨리는 걸 애써 억누르며 담연한 표정의 조수아가 조병윤을 향해 답했다.“아빠, 나 아빠가 아직은
자신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싶다라. 육문주는 문득 가슴이 답답해지는 기분에 넥타이를 끌어내리며 혼자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두 사람은 앞뒤로 줄 지어 서서 한 남성복 매장으로 들어갔다.그들의 인상착의와 분위기를 본 점원은 곧바로 VIP 손님이 찾아왔음을 깨달았다. 노련하게 웃음을 장착한 점원이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어서오세요. 혹시 찾으시라는 거라도 있으실까요?”육문주는 얼굴을 굳힌 채 대답도 없이 소파로 바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털썩 앉아 휴대폰을 꺼내들고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조수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뒤 셔츠
조수아는 벗어나고 싶었으나 상대의 현란한 키스에 얼마 안 가 몸에 힘이 쭉 빠지고 말았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몰랐다. 드디어 몸을 천천히 물린 육문주는 손끝의 도톰한 부분으로 조수아의 살짝 부어오른 입술을 살며시 쓸며 동굴 같은 목소리를 냈다.“아까 했던 거 마저 하지, 조 비서.”조수아는 깜짝 놀라 얼굴을 비틀며 말했다.“대체 어디까지 갈 건데!”고개 숙인 육문주가 웃음을 터뜨렸다.“난 옷 갈아입는 거 계속하자는 뜻이었는데. 무슨 야한 생각을 한 거야?”두 사람이 탈의실에서 나오자 점원이 얼른 다가왔다.
조수아가 의아한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아니요. 왜요?”당민석은 사내 채팅방에 들어가 사진 하나를 확대해서 조수아에게 보여주었다.“조 비서님이랑 어떤 남자가 엄청 가까워 보이는 모습이 채팅방에 올라왔거든요. 그래서 지금 회사의 모든 직원이 조 비서님한테 남자친구가 있는 거 알고 있어요. 그것도 재벌2세인 남자친구요.”사진을 본 조수아는 긴장으로 팽팽하게 당겨졌던 신경줄이 느슨해지는 것을 느꼈다. 다행히 사진에는 정면 얼굴이 찍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 그러면 대체 어떤 풍파가 일어났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조수아는 별
육문주는 처음부터 자신의 어머니 때문에 그녀의 아버지가 죽을 뻔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사실을 그녀한테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녀와 함께 아버지 앞에서 연기를 한 것도 그녀가 안타까워서가 아니라 제 어머니가 저지른 잘못을 조금이라도 더 줄일 수 없을까, 해서였다. 필경 그녀의 아버지가 정말로 죽게 되면 자신의 어머니가 법적 책임을 일부라도 지게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니까 말이다. 조수아는 온몸이 차갑게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그나마 며칠간 남자한테 쌓였던 일말의 호감도 방금 전의 말과 함께 연기처럼 사라지는 기분이
하지만 조수아는 하나도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의 손바닥을 타고 흐르는 피를 본 연성빈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수아야, 어서 손 펴!”연성빈이 그녀의 주먹을 풀려고 할 수록 조수아의 손에 힘이 더 크게 실렸다. 결국 연성빈은 살살 달래는 지경에까지 갔다.“수아야, 내 말 들어. 빨리 주먹 펴. 그 영상이 없어도 내가 송사에 이길 수 있게 도와줄게.”드디어 조수아가 주먹을 폈을 땐 이미 핀이 살갗에 완전히 파묻힌 뒤였다. 연성빈은 심장이 조여지는 것처럼 아파왔다.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낸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수아는 육문주의 얼굴을 향해 뺨을 날렸다. 힘이 많이 실린 건 아니지만 지극히 모욕스러운 한 방이었다. 육문주가 누구인가. 그는 B시에서 피라미드 꼭대기에 위치한 인물이자, 누구도 감히 건드릴 자가 없는 대마왕 그 자체였다. 또한 육 씨 가문의 냉혈무정한 황태자였다. 그런 육문주에게 뺨은 고사하고, 그의 면전에 대고 안 좋은 소리를 해도 죽음의 위협을 받을 정도였다. 허연후는 저도 모르게 조수아를 대신해서 손에 땀을 쥐었다. 육문주를 단단히 잡은 그가 좋은 말로 친구를 달래기 시작했다.“문주야, 조수아 씨 술 많이 마셨어.
육천우는 웃으면서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졌다.“확실하지는 않아. 됐어. 이제는 그만 놀릴게. 아직 아침을 먹지 않은 것을 알고 비서더러 네가 좋아하는 슈 크림빵이랑 치즈케이크를 사 오라고 했으니 얼른 먹어.”육천우는 허나연의 손을 잡고 식탁 앞에 왔다.그녀에게 만두 하나를 짚어주고 우유 한잔을 따라준 후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좀 처리할 서류가 있으니 혼자 먹고 있어.”허나연은 스스럼없이 만두를 입에 집어넣고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육 대표님은 모든 직원에게 이렇게 친절합니까? 외국에 있을 때도 아침을 사
차유라는 허나연의 사원증에 똑똑히 ‘대표 비서 허나연’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았다.그녀는 주먹을 꽉 쥐였다.업계의 모든 사람은 육천우에게는 불문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그의 비서는 줄곧 남자였다.허나연을 만난 후 육천우는 정략결혼의 압박 때문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그녀를 편애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오래된 습관을 버렸다.마음속으로 질투를 억누른 차유라는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축하해요. 하지만 제가 미리 말씀드리는데 대표님의 비서는 전문적인 지식과 수양을 갖춰야 하는 직업이지 아이들의 소꿉장난 아니에요. 무용수인 나연 씨
이 문제를 이전에 두었더라면 허나연은 망설였을 것이지만 차유라의 등장으로 그녀의 마음에 큰 변화가 생겼다.차유라가 육천우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화가 난 허나연은 그를 뺏길까 봐 일부러 그들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알렸다.예전처럼 다른 사람과 육천우를 공유하기 싫었고 혼자만 그를 소유하고 싶었다.육천우가 그녀에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육천우에 대한 사랑이 그만큼 뜨겁지 않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하여도 꼭 소유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던 그녀였다.까맣게 반짝이는 눈동자를 늘어뜨린 허나연은 수줍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나마 조금은
그가 접근하자 허나연의 심장은 쿵쿵 뛰었고 그 하얀 얼굴도 점점 뜨거워졌다.어린 시절 단순했던 감정도 어느새 맛이 변해 버렸다.차유라가 육천우를 바라보던 눈빛을 생각하니 가슴이 시큰거렸다.그들은 지난 3년 동안 함께 일했다.육천우가 그녀와 연락이 줄어들었던 것도 옆에 미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 허나연은 화가나 육천우를 발로 걷어찼다.“나를 건드리지 말고 유라 씨한테 가.”뾰로통한 허나연의 모습을 본 육천우는 그녀의 볼을 꼬집었다.“아직도 질투하는 거야?”“내가 무슨 질투를 해. 우리 집이 식초 공장을 하는 것도
허나연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네, 알았어요. 하지만 의사 진료에 협조하겠다고 먼저 약속해 주세요.”이렇게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을 본 차 교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좋아. 너희들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말을 듣고 수술을 받을게.”육천우는 농담조로 말했다.“저의 아내가 말 한마디로 스승님이 수술을 받으시게 했네요, 나연이의 능력을 새삼 새롭게 보게 되네요.”애정 어린 눈빛으로 허나연을 바라보던 육천우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옆에서 얼굴이 하얗게 질려 서 있는 차유라를 본 차 교수는 입술을 살짝 치켜올렸다.“됐어
수표를 받아 쥔 차유라의 손가락은 새하얗게 변했고 가슴은 간간이 쿡쿡 찌르는듯한 통증이 전해졌다.차유라는 아버지 덕에 육천우 마음속의 유일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미 그녀 전에 그는 혼약이 있었다.눈시울이 붉어진 차유라는 가련한 눈빛으로 육천우를 바라보았다.“천우야, 나연 씨랑 결혼 할 거야?”육천우가 대답하기도 전에 허나연은 웃음을 터뜨렸다.“유라 씨의 뜻은 저랑 천우가 감정이 하나도 없는 정략결혼이기에 언젠가 헤어질 거라고 말하고 싶으신 거죠? 제 말 맞죠?”“아니요, 그냥 궁금해서요, 왜냐하면 외
허나연은 어릴 때부터 말싸움으로 육천우를 이긴 적이 없다.억울함이 가득한 표정을 한 그녀는 조수아의 품으로 달려들었다.“이모, 천우 오빠가 또 저를 괴롭혀요.”조수아는 웃으면서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이따가 천우에게 밥을 주지 말고 굶기자. 자신이 못생겼다는 것을 모르다니, 우리 나연이가 천우보다 백배는 예뻐, 제일 예뻐.”허나연은 육천우를 향하여 의기양양하게 웃었다.“네가 못생긴 거야.”육천우는 어처구니가 없었다.“네, 네. 그렇게 나연이 응석을 항상 받아주세요, 앞으로 결혼한 후 말을 듣지 않는다고 저한테 고자
이 소식을 들은 육천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며칠 전 스승님과 함께 식사한 적이 있는데 왜 그때 이 일을 언급하지 않으셨지?”차유라는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네가 알게 되면 BM 투자프로젝트에 참여하지 못하게 할까 봐 아버지께서 말하지 말라고 하셨어. 아버지께서는 네가 그의 제일 자랑스러운 제자가 되길 바라고 있어.”육천우가 ZERO 그룹을 인수한 직후 유럽발 금융위기를 겪고 있을 때 금융 전문가인 차 교수의 도움 덕에 여러 투자 프로젝트에서 부활할 수 있었으므로 ‘스승님’이라고 부르며 그를 존경하고 있
방금 누그러졌던 허나연은 다시 조롱을 받고 놀라서 육예람의 입을 틀어막고 애원하는 눈빛으로 말했다.“제발 그만 좀 말해. 네가 마음에 들었던 가방을 사줄게.”육예람은 웃으면서 허나연의 볼을 꼬집었다.“비밀 하나에 차 한 대와 가방 하나를 맞바꾸는 건 너무 실속 있는 거래야. 다음에 무엇을 뜯어낼지 고민해 볼 테니 반드시 꼭 나한테 미리 말해줘.”육천우는 다가가 육예람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렸다.“꿈 깨! 내가 바보인 줄 알아? 나연이랑 할 말 있으니 자리 좀 비켜줘.”화가 난 육예람은 눈을 부릅뜨고 육천우를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