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리는 서준혁의 말뜻을 알고 있었다. 선택권은 그녀에게 있다.하지만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고, 또 어떻게 할 수 있을까?신유리의 머릿속은 마치 고장난 기계처럼 그대로 멈춰 있었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이때 갑자기 벨소리가 울렸다. 신유리의 핸드폰이었다.그녀는 숨 쉴 틈을 찾은 듯 거의 즉시 핸드폰을 들고 일어나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죄송합니다. 전화 받고 올게요.”회의실에서 나온 후에야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난 느낌이었다. 그녀는 누구에게서 걸려 온 전화인지도 제대로 보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유 원장의 조급한 목소리가 들렸다.“유리 씨, 할아버지께서 유리 씨 어머님 찾으러 가셨어요! 아침에 유리 씨랑 통화를 끝내고 가겠다고 하는 걸 말렸거든요. 그런데 방금 점심 먹는 사이에 사라졌어요.”“경비원도 어디로 갔는지 못 봤대요. 아마 근무 교대할 때 나간 것 같아요.”신유리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그녀는 옆에 벽을 짚으며 침착하게 말했다.“제가 지금 그쪽으로 갈게요. 유 원장님이랑 간병일 분도 그쪽으로 와주세요.”그녀는 재빨리 말하고 떠나려 했다.그녀는 아래층에 도착해서야 양예슬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회의실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양예슬은 전화를 끊고 서준혁을 조심스럽게 쳐다보았다.“서 대표님, 유리 언니가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간다고 하네요.”서준혁이 눈꺼풀을 젖히며 물었다.“무슨 일이죠?”“모르겠어요. 그런데 정말 급해 보였어요. 지금 아마 주차장에 있을 거예요.”서준혁은 손을 살짝 멈칫하더니 자리에서 일어서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회의 끝."송지음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 책상 위에 놓여있던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는 전화를 한 번 보더니 바로 끊어버렸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서준혁을 따라 나갔다.신유리는 바로 운전하고 이연지가 묵고 있는 호텔로 갔다. 운전을 너무 빨리해서 가는 도중 몇 번이나 신호등을
병원 응급실 밖.신유리는 응급실 밖 의자에 앉아 있었다. 유 원장과 요양원 원장도 그녀와 함께 있었다.유 원장은 멍하니 앉아있는 신유리의 모습에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그들이 호텔에 도착했을 때 할아버지는 이미 몸을 통제할 수 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병원에 실려 왔을 때 의사도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고 말했다.할아버지는 혈압이 높으신 데다 이전에 남아있던 후유증과 기저질환이 많기 때문에 너무 흥분하면 안 된다고 의사는 거듭 강조한다.이연지는 맞은편 의자에 혼자 앉아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비비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유 원장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유리 씨, 걱정하지 마요. 며칠 쉬면 괜찮아질 수도 있어요. 할아버지는 좋은 분이시니까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신유리는 그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여기에 앉아있는 것조차 큰 힘이 들었다. 할아버지의 방금 전 모습이 끊임없이 뇌리에 떠올랐다. 신유리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을 감쌌다. 지금만큼 무기력하고 막막한 순간이 없었다.“유리 언니!”갑자기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양예슬의 목소리에 신유리는 공허한 생각을 멈췄다.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양예슬이 걸어오는 것을 바라보았다.“어떻게 왔어요?”말을 하자, 신유리는 자신의 목소리가 이미 심하게 쉬어 있단 걸 알았다. 낮고 무거운 목소리가 평소 그녀의 목소리와 완전히 달랐다.양예슬이 제대로 들었는지도 몰랐다.하지만 그녀는 다시 한번 반복해 말할 힘도 없었다. 그녀는 한마디하고 다시 고개를 숙이고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그때 응급실 문이 열리자, 신유리 벌떡 일어나 안에서 나오는 의사를 쳐다보았다.“환자분이 나이가 너무 많으시고, 혈압도 높으신 데다 이번 상태가 유독 심각하기 때문에 가족분들은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실 것 같습니다.”의사는 마스크를 벗으면서 말했다.의사의 말에 신유리의 얼굴은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그녀는 멍하니 의사를 쳐다보
요양원 원장은 자리를 만들어 신유리에게 여기에 앉으라며 손짓했다.그러나 신유리는 병상에 누워 있는 외할아버지를 바라보며 발걸음을 떼는 것조차 힘들어했다.그녀는 외할아버지와 함께 자랐다. 외할아버지는 비오는 날이면 그녀를 데리고 나와 함께 웅덩이를 밟아주었고, 맑은 날에는 같이 연을 날리곤 했다.그는 그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녀를 위해 바람개비까지 만들어주었다.하지만 그는 지금은 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허약해진 상태라 병원 침대에 누워 있을 수 밖에 없었다.외할아버지 젊은 시절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었기에 이연지와 신유리 둘 다 외할아버지의 장점인 외모를 그대로 물려받았다.신유리는 침대 끝에 섰는데, 그녀의 손이 살짝 떨렸다. 그녀는 눈 앞에 있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중풍으로 얼굴의 절반이 일그러져 있었고 입꼬리는 비정상적으로 뒤틀려 있었다. 그럼에도 외할아버지는 신유리에게 할 말이 많은 듯 여전히 입술을 움직이고 있었다.신유리는 쪼그리고 앉아 외할아버지의 입술에 귀를 갖다 대는 것밖에 해 드릴 수가 없었다.하지만 산소마스크를 씌워져 있었기에 얼굴이 뒤틀려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녀가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외할아버지는 다급해하며 흐릿한 눈빛으로 신유리를 바라보았다. 주름진 눈가에서는 천천히 눈물이 흘러내렸다.신유리는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외할아버지의 앞이라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외할아버지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종이 한 장을 들고는 괜찮은 척하며 말했다. “외할아버지, 연세가 일흔이 넘으셨는데 왜 울고 그러세요?”외할아버지는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신유리에게 손짓했다.그녀는 잠시 당황했으나 그의 뜻을 이해하고는 외할아버지의 손가락 아래에 손바닥을 펼쳤다.외할아버지는 정말 작은 면적에만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었기에 한 획 한 획 아주 천천히 써 내려갔다. 하지만 힘겹게 글자들을 쓴 뒤 그는 힘에 겨워 손을 침대 위로 떨어트리고 눈을 감았다.병원을 떠나기 전, 신
신유리는 멈칫했다. "이게 최선입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댓글들을 다 봤습니다. 제 생각엔 화인이 이번일을 계기로 화인만의 사회적 이미지를 확립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그녀는 말은 매우 절제되어 있었다. 마치 자신의 일을 얘기하는 게 아닐 정도였다. 양예슬만이 그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신유리가 왜 이런 짓을 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어제 병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화인만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그런 무의미한 일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서준혁은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거절했다.신유리는 침착하게 그를 바라보며 떨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회사를 고발하는 것이 걱정되시는 거라면, 다시 보상에 관한 계약을 체결할 수도 있습니다."회의실은 완전히 조용해졌다. 그들은 기업이 일을 정리하기 위해 직원을 해고하는 것을 본적 있었다.하지만 자진해서 회사에 해고를 요청하는 사람은 본 적 없었다. 한 고위 임원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신유리에게 물었다. "신유리 씨, 도대체 어쩌려는 겁니까?"신유리의 얼굴은 차분했지만 테이블 위에 놓인 손가락은 떨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를 최대한 억누르며 말했다. "해고된 직원들은 일반적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제 생각에 이건 저희끼리 협의를 봐야 할 것 같아요. 저는 모든 문제를 안고 갈 의향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게 다입니다.”서준혁의 눈빛은 싸늘했다. 그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더니 눈을 가늘게 뜬 채 차가운 시선으로 신유리를 바라보았다. "이게 당신이 생각해 낸 최선인가요?"신유리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말했다. "화인 주가가 다시 떨어지는 것이 싫으시다면, 이게 최선의 방법입니다." 그녀는 오늘 아침 출근 전 인터넷 뉴스를 클릭해 살펴봤다. 수많은 인기 동영상이 올라와 있었지만 모든 동영상에는 "화인직원"이라는 4 글자가 포함되어 있었다.경쟁사가 이 상황을 이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어찌되었든 이에 비해
사실 회사 내에서 신유리가 어디에 사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이석민은 말했다. "신유리 씨의 집은 서 대표님와 같은 단지에 있어요. 남부 부촌 동네요."이 말이 내포하고 있는 정보는 매우 많았다. 서준혁이 살고 있는 럭셔리 하우스가 성남에서 유명한최고급 아파트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던 사실이다. 평범한 회사원이라면 평생을 일해도 그곳 화장실 하나 살 수 없었다.신유리의 집을 구하는 업무를 담당했던 사람이 이석민이라 서준혁이 신유리를 위해 구매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다음은 몰랐다.그렇기 때문에 이석민은 회사에서 항상 신유리에게 좋은 태도를 취했다. 신유리 외에는 서준혁이 집을 사준 여자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여자를 향한 남자의 진심은 돈을 얼마나 쓰는지에 드러난다.송지음은 그의 말을 듣자마자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서준혁이 그 집을 사준 걸까, 아니면 운 좋게 싼 값에 럭셔리 하우스에 들어가게 된 것일까?그렇다면 그녀는?그녀와 그녀의 부모님은 아직도 18평의 작은 아파트에 비좁게 살고 있었다. 서준혁이 이를 모르고 있는 걸까?송지음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고,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신유리는 회사에서 나온 뒤 바로 병원으로 갔다.도중에 이신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사고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신과 연우진이 많은 메시지를 보내며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신유리는 기분이 너무 좋지 않은 탓에 답장을 주지 못했다.어제 외할아버지에게 있었던 일이 더해져 신유리는 다른 일을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다.휴대폰 벨소리가 계속 울렸다. 신유리는 운전 중이었기에 차량 블루투스에 연결해서 전화를 받았다.이신의 굵은 목소리가 바로 들려왔다. "어디야?""차 안이야." 말을 마친 신유리가 한마디 덧붙였다. "지금 병원으로 가려고."옆에서 연우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지금 어디 아파?"그는 매우 걱정되었다. “유리야, 걱정하지 마. 가장 중요한 건 너 자신을 돌보는 거야. 분명 다 잘 해결될 거야.”사실 이건 해
신유리는 테이프 쳐져 있는 문을 바라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전에 하정숙의 말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관리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관리인은 매우 애매한 태도를 보였다. “죄송합니다, 유리 아가씨. 저희는 그저 관리인이라 문제가 생기신 거라면 서 대표님과 얘기를 나눠주세요.”럭셔리 하우스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유한 사람들이였으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연인을 만났다.그들이 밖에서 바람을 피고 결국 재산을 압수하러 와서 추악한 상황을 벌이는 것을 이곳 관리인들은 많이 봐왔다.더욱이 이 동네 부자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성격이 까탈스러웠다. 평범한 사람들인 그들이 그들을 기분 상하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면 그들은 눈을 감고 모른 척하였다. 신유리는 전화를 끊고 뒤돌아 단지를 나왔다.다행히 지갑이 있어 일단 호텔에 갈 수는 있었지만,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서야 짐을 챙겨야 했다.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요 며칠 동안 그녀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쳐 있었기에 쫓겨났다는 사실을 알고도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정말 답답하고 가슴이 아파왔다. 다행히 근처에 호텔이 있어서 신유리는 멀지 않은 곳으로 가 방을 잡았다. 그러던 와중 호텔 로비에서 임아중을 만났다.임아중은 또 다른 잘생긴 남자와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녀는 신유리를 보고 잠시 멈칫하더니 그녀에게 다가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진짜 우연이다, 너는 왜 여기에 있어?"신유리는 임아중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서 자려고."신유리의 일은 요 며칠간 세간에 널리 퍼져있었고, 임아중은 잠시 고민했다. 그녀는 문득 뭔가를 깨달은 듯 말했다. “기분이 안 좋아 집에서 잠을 못 자고 호텔로 왔구나?”신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부잣집 아가씨들이나 잠이 안 올 때 호텔로 가서 환경을 바꿔가며 쉬는 거였다.임아중은 계속해서 말했다. "사실 그렇게 많이 생각할 필요는 없어. 사람들은 결과가 어떻든 하고 싶은 말만 하거든. 아무튼 자
신유리가 막 이신에게 기획 일에 대해 이야기하려던 참에, 곡연의 참을 수 없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신유리의 어깨를 붙잡고 웃으며 말했다. "역시 유리 언니야. 형님이랑 이런 말투로 말하는 여자는 언니가 처음이예요."신유리는 어리둥절해져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아뇨 아뇨 아뇨, 그냥 애둘러 거절하는 거 같아서요." 곡연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신유리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런 농담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이신은 원래 말이 많은 편이 아닌지라 당연히 곡연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테이블 위 물병을 신유리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아직 완성할 그림이 남아있어. 서재에 책도 있으니 시끄러울 거 같으면 가서 읽어."신유리도 일어섰다. "뭐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 전에 듣기로는 정리해야 할 자료가 많다고 했었던 거 같은데?"그녀는 이신이 건네준 물병을 들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때문에 시간 버린 건데,필요한 게 있으면 도울게."곡연과 허경천은 서로를 바라본 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 도와줘야 할게 있나? 그냥 얘기 좀 하고 싶은데."하지만 그녀가 말을 마치자마자 이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료가 많긴 해. 다 서재에 있어."신유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곧바로 서재로 들어갔다.곡연은 그녀가 들어가자마자 고개를 푹 숙였고 이내 증오스러운 표정으로 이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형,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유리 언니 기분 안 좋은 거 안 보여?""낮에 작업하던 스케치 아직 안 끝났으니 이리로 와서 도와주기나 해." 그러나 이신은 곡연을 무시하고 허경천에게 말했다.곡연만이 홀로 남아 그 자리에서 중얼거리며 불평했다. 신유리는 서재에서 쌓여져 있는 자료를 발견했다. 며칠 동안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아서인지 몸이 뻐근해진 것 같았다. 곧 서서히 몸이 풀릴 것이기에 손을 움직여 정리하기 시작했다.서재 문은 살짝 열려 있었고, 밖에서는 곡연과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신기하게도 이런 환경
신유리는 새 입주자라는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지만, 빨리 정신을 차리고는 짐을 싸기 위해 집으로 들어갔다.외할아버지의 물건은 모두 상자에 담겨 있었고, 신유리는 상자를 열어 빠진 것이 없는지 확인한 후 짐을 꾸리기 시작했습니다.이 집은 그녀가 정규직이 된 직후 서준혁이 직접 집 열쇠를 건네주었던 곳이다.당시 신유리는 성북의 오래된 집에서 살고 있었고, 서준혁은 그녀가 왔다 갔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그냥 그녀를 럭셔리 하우스에 살게 해줬다.신유리는 이곳에서 6년을 살았고, 이것 저것 지니고 있는 물건이 많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진짜 그녀의 물건은 고작 몇 가지가 전부라 상자 하나와 여행가방 두 개에 다 들어갔다.오히려 서준혁의 것이 더 많았다.그가 멋대로 두고 간 옷과 넥타이, 신유리가 준비해 주었던 숙취약, 그가 가장 좋아하는 디퓨저, 평소 즐겨 착용하던 커프스단추, 사용했던 컵 등 그의 물건이 매우 많았다.거의 온 집안 곳곳에 서준혁의 흔적이 남아있었다.이 모든 것들을 다 정리하고 방이 텅 빈 뒤에야 신유리는 이 집의 인테리어 스타일마저도 서준혁이 좋아하는 스타일이라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지난 몇 년 동안 남의 집에 사는 것 같은 처량한 느낌을 받았다. 심지어 이제 그들이 그녀를 원하지 않으니 그녀는 떠나야만 했다.그녀는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이제 와서 생각해도 소용없었다.신유리는 고개를 숙이고 상자를 옮기려 했다. 그때 마디가 굵은 손이 튀어나와 그녀를 막아 세웠다.이신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할게.”그렇게 말한 뒤 그는 신유리의 대답과는 상관없이 곧바로 상자를 옮겼다.신유리의 상자가 크지는 않았지만, 안에 책이 많아 무거웠다.그녀는 눈살을 찌푸렸다. "같이 옮기는 게 어때?"이신은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별로 안 힘든데?"신유리는 시한에서 그가 그녀를 한 손으로 안아 올렸던 것을 떠올렸다. 또한 평소 이신이 무대 세팅을 할 때도 수백 킬로그램의 나무 자제를 손 쉽게 옮겼던 것을 생각하니 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