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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화

작가: 박혜은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02-29 21:57:21
연우진의 전화가 걸려 왔을 때, 신유리는 소파에 잠들어 있었다.

벨소리에 잠을 깬 후에야 그녀는 겨우 눈을 떴다. 방안은 어둑했고 거실 커튼도 쳐져 있지 않았다. 바깥 가로등 불빛 덕분에 그나마 시야가 조금 드러났다.

신유리는 핸드폰 화면의 밝기를 따라 손을 뻗어 갔다. 그녀가 전화를 받자마자 연우진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유리야, 괜찮아?”

신유리는 얼굴을 만지며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난 괜찮아.”

“인터넷 일은 걱정하지 마. 나랑 신이가 이미 친구 찾아서 처리 부탁했어. 신이가 나한테 네 엄마 얘기했어. 네 잘못이 아니야.”

연우진의 온화하고 차분한 목소리는 밤에 특히 편안하게 들렸다. 하지만 신유리는 대화 요점을 놓치지 않았다.

“인터넷 무슨 일?”

연우진은 잠시 침묵했다.

“오후에 누가 너랑 네 엄마 영상을 숏폼 플랫폼에 올렸어. 그래서 지금 난리가 났어.”

“어떤 사람은 네가 화인 그룹 비서라는 것까지 밝혀냈어. 지금 인터넷에 너에 대한 정보가 많이 노출되어 있어.”

연우진이 걱정스레 말했다.

“너 며칠 휴가 내고 밖에 나가지 않는게 좋을 것 같아.”

신유리는 전화를 끊고 그 자리에 그대로 굳었다.

방금 연우진의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똑똑히 들었지만 무슨 뜻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신유라는 숏폼 플랫폼을 열었다. 그러자 첫 번째 영상이 바로 이연지가 무릎을 꿇는 영상이었다.

곧 두 번째 영상이 떴는데, 회사 익명 단톡방 영상이었다.

댓글 창을 열어보니 정말 못 봐줄 정도였다. 거의 다 신유리를 욕하는 말들이었다.

회사 단톡방도 난리가 났다. 다들 흥분해서 이 일을 토론하고 있었다.

그리고 양예슬, 곽정희 그리고 몇몇 친한 사람들이 튀어나와 다들 그만하라고 말하는 것도 보였다. 하지만 이내 다른 메시지에 밀려 올라갔다.

그녀가 회사를 그만둔다는 소식은 이미 오래전부터 회사 내에 퍼졌다. 그래서 지금 다들 강 건너 불구경하는 마음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GT 바 시점.

밖에서 전화를 받고 돌아온 우서진은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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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유리는 할아버지에게 말하는 건지 아니면 자신을 위로하는 건지 알 수 없게 중얼거렸다.인터넷의 열기는 아직도 뜨거웠다. 심지어 많은 인플루언서들도 이 일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신유리의 핸드폰에 많은 문자가 쏟아져 들어왔다. 신유리는 무음모드로 설정하고 핸드폰을 테이블 위로 던졌다. 그녀는 밤새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제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했다.다만 생각할수록 머리는 점점 더 어지러워졌고, 오전쯤, 위가 뒤틀리는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그제야 며칠 동안 밥을 제대로 먹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그녀는 부엌으로 대충 빵을 집어 들고 냉장고에서 금방 꺼낸 음식을 차갑든 말든 그래도 입안으로 집어넣었다.그녀는 아무리 먹으려고 노력해도 빵 반 조각밖에 먹을 수 없었다. 한 입만 더 먹어도 토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양예슬의 전화가 걸려 왔을 때 신유리는 베란다에 앉아 책을 읽으며 이 상황을 잊어버리려 애쓰고 있었다.신유리는 양예슬의 이름을 보고 멈칫하다 전화를 받았다.“유리 언니.”양예슬은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언니, 괜찮아요?”신유리는 목이 쉰 상태였다. 그렇게 오랫동안 물을 마시지 않았으니 말이다.“괜찮아.”양예슬은 그녀의 무기력한 목소리를 듣고는 머뭇거리다 말했다.“그럼 오후에 회사에 한 번 오실 수 있어요? 홍보부에서 공관팀을 연결했어요. 이 일을 잘 처리하기 위해 제공해야 할 자료가 있다고 해서요.”신유리는 뒤늦게야 양예슬의 말뜻을 알아챘다.그녀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오후에 갈게요.”화인이 나서는 건 당연한 일이다. 화인 그룹 건물 입구에서 벌어진 일이니, 말이다.이연지가 정말 장소 하나는 잘 골랐다.신유리는 회사에 가기 전에 씻고 화장을 했다. 그러니 적어도 그치 초췌해 보이지는 않았다.그녀가 회사에 도착했을 때 마침 퇴근 시간이었다. 그녀는 하이힐을 밟고 퇴근하는 사람들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들어가 엘리베이터에 탔다.그녀는 사람들의 눈빛을 무시하고 바로 양예슬이 말한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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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말고 다   제139화

    신유리는 서준혁의 말뜻을 알고 있었다. 선택권은 그녀에게 있다.하지만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고, 또 어떻게 할 수 있을까?신유리의 머릿속은 마치 고장난 기계처럼 그대로 멈춰 있었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이때 갑자기 벨소리가 울렸다. 신유리의 핸드폰이었다.그녀는 숨 쉴 틈을 찾은 듯 거의 즉시 핸드폰을 들고 일어나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죄송합니다. 전화 받고 올게요.”회의실에서 나온 후에야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난 느낌이었다. 그녀는 누구에게서 걸려 온 전화인지도 제대로 보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유 원장의 조급한 목소리가 들렸다.“유리 씨, 할아버지께서 유리 씨 어머님 찾으러 가셨어요! 아침에 유리 씨랑 통화를 끝내고 가겠다고 하는 걸 말렸거든요. 그런데 방금 점심 먹는 사이에 사라졌어요.”“경비원도 어디로 갔는지 못 봤대요. 아마 근무 교대할 때 나간 것 같아요.”신유리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그녀는 옆에 벽을 짚으며 침착하게 말했다.“제가 지금 그쪽으로 갈게요. 유 원장님이랑 간병일 분도 그쪽으로 와주세요.”그녀는 재빨리 말하고 떠나려 했다.그녀는 아래층에 도착해서야 양예슬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회의실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양예슬은 전화를 끊고 서준혁을 조심스럽게 쳐다보았다.“서 대표님, 유리 언니가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간다고 하네요.”서준혁이 눈꺼풀을 젖히며 물었다.“무슨 일이죠?”“모르겠어요. 그런데 정말 급해 보였어요. 지금 아마 주차장에 있을 거예요.”서준혁은 손을 살짝 멈칫하더니 자리에서 일어서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회의 끝."송지음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 책상 위에 놓여있던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는 전화를 한 번 보더니 바로 끊어버렸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서준혁을 따라 나갔다.신유리는 바로 운전하고 이연지가 묵고 있는 호텔로 갔다. 운전을 너무 빨리해서 가는 도중 몇 번이나 신호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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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말고 다   제140화

    병원 응급실 밖.신유리는 응급실 밖 의자에 앉아 있었다. 유 원장과 요양원 원장도 그녀와 함께 있었다.유 원장은 멍하니 앉아있는 신유리의 모습에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그들이 호텔에 도착했을 때 할아버지는 이미 몸을 통제할 수 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병원에 실려 왔을 때 의사도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고 말했다.할아버지는 혈압이 높으신 데다 이전에 남아있던 후유증과 기저질환이 많기 때문에 너무 흥분하면 안 된다고 의사는 거듭 강조한다.이연지는 맞은편 의자에 혼자 앉아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비비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유 원장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유리 씨, 걱정하지 마요. 며칠 쉬면 괜찮아질 수도 있어요. 할아버지는 좋은 분이시니까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신유리는 그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여기에 앉아있는 것조차 큰 힘이 들었다. 할아버지의 방금 전 모습이 끊임없이 뇌리에 떠올랐다. 신유리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을 감쌌다. 지금만큼 무기력하고 막막한 순간이 없었다.“유리 언니!”갑자기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양예슬의 목소리에 신유리는 공허한 생각을 멈췄다.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양예슬이 걸어오는 것을 바라보았다.“어떻게 왔어요?”말을 하자, 신유리는 자신의 목소리가 이미 심하게 쉬어 있단 걸 알았다. 낮고 무거운 목소리가 평소 그녀의 목소리와 완전히 달랐다.양예슬이 제대로 들었는지도 몰랐다.하지만 그녀는 다시 한번 반복해 말할 힘도 없었다. 그녀는 한마디하고 다시 고개를 숙이고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그때 응급실 문이 열리자, 신유리 벌떡 일어나 안에서 나오는 의사를 쳐다보았다.“환자분이 나이가 너무 많으시고, 혈압도 높으신 데다 이번 상태가 유독 심각하기 때문에 가족분들은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실 것 같습니다.”의사는 마스크를 벗으면서 말했다.의사의 말에 신유리의 얼굴은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그녀는 멍하니 의사를 쳐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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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말고 다   제141화

    요양원 원장은 자리를 만들어 신유리에게 여기에 앉으라며 ​​손짓했다.그러나 신유리는 병상에 누워 있는 외할아버지를 바라보며 발걸음을 떼는 것조차 힘들어했다.그녀는 외할아버지와 함께 자랐다. 외할아버지는 비오는 날이면 그녀를 데리고 나와 함께 웅덩이를 밟아주었고, 맑은 날에는 같이 연을 날리곤 했다.그는 그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녀를 위해 바람개비까지 만들어주었다.하지만 그는 지금은 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허약해진 상태라 병원 침대에 누워 있을 수 밖에 없었다.외할아버지 젊은 시절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었기에 이연지와 신유리 둘 다 외할아버지의 장점인 외모를 그대로 물려받았다.신유리는 침대 끝에 섰는데, 그녀의 손이 살짝 떨렸다. 그녀는 눈 앞에 있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중풍으로 얼굴의 절반이 일그러져 있었고 입꼬리는 비정상적으로 뒤틀려 있었다. 그럼에도 외할아버지는 신유리에게 할 말이 많은 듯 여전히 입술을 움직이고 있었다.신유리는 쪼그리고 앉아 외할아버지의 입술에 귀를 갖다 대는 것밖에 해 드릴 수가 없었다.하지만 산소마스크를 씌워져 있었기에 얼굴이 뒤틀려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녀가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외할아버지는 다급해하며 흐릿한 눈빛으로 신유리를 바라보았다. 주름진 눈가에서는 천천히 눈물이 흘러내렸다.신유리는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외할아버지의 앞이라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외할아버지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종이 한 장을 들고는 괜찮은 척하며 말했다. “외할아버지, 연세가 일흔이 넘으셨는데 왜 울고 그러세요?”외할아버지는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신유리에게 손짓했다.그녀는 잠시 당황했으나 그의 뜻을 이해하고는 외할아버지의 손가락 아래에 손바닥을 펼쳤다.외할아버지는 정말 작은 면적에만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었기에 한 획 한 획 아주 천천히 써 내려갔다. 하지만 힘겹게 글자들을 쓴 뒤 그는 힘에 겨워 손을 침대 위로 떨어트리고 눈을 감았다.병원을 떠나기 전,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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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말고 다   제142화

    신유리는 멈칫했다. "이게 최선입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댓글들을 다 봤습니다. 제 생각엔 화인이 이번일을 계기로 화인만의 사회적 이미지를 확립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그녀는 말은 매우 절제되어 있었다. 마치 자신의 일을 얘기하는 게 아닐 정도였다. 양예슬만이 그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신유리가 왜 이런 짓을 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어제 병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화인만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그런 무의미한 일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서준혁은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거절했다.신유리는 침착하게 그를 바라보며 떨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회사를 고발하는 것이 걱정되시는 거라면, 다시 보상에 관한 계약을 체결할 수도 있습니다."회의실은 완전히 조용해졌다. 그들은 기업이 일을 정리하기 위해 직원을 해고하는 것을 본적 있었다.하지만 자진해서 회사에 해고를 요청하는 사람은 본 적 없었다. 한 고위 임원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신유리에게 물었다. "신유리 씨, 도대체 어쩌려는 겁니까?"신유리의 얼굴은 차분했지만 테이블 위에 놓인 손가락은 떨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를 최대한 억누르며 말했다. "해고된 직원들은 일반적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제 생각에 이건 저희끼리 협의를 봐야 할 것 같아요. 저는 모든 문제를 안고 갈 의향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게 다입니다.”서준혁의 눈빛은 싸늘했다. 그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더니 눈을 가늘게 뜬 채 차가운 시선으로 신유리를 바라보았다. "이게 당신이 생각해 낸 최선인가요?"신유리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말했다. "화인 주가가 다시 떨어지는 것이 싫으시다면, 이게 최선의 방법입니다." 그녀는 오늘 아침 출근 전 인터넷 뉴스를 클릭해 살펴봤다. 수많은 인기 동영상이 올라와 있었지만 모든 동영상에는 "화인직원"이라는 4 글자가 포함되어 있었다.경쟁사가 이 상황을 이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어찌되었든 이에 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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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말고 다   제143화

    사실 회사 내에서 신유리가 어디에 사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이석민은 말했다. "신유리 씨의 집은 서 대표님와 같은 단지에 있어요. 남부 부촌 동네요."이 말이 내포하고 있는 정보는 매우 많았다. 서준혁이 살고 있는 럭셔리 하우스가 성남에서 유명한최고급 아파트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던 사실이다. 평범한 회사원이라면 평생을 일해도 그곳 화장실 하나 살 수 없었다.신유리의 집을 구하는 업무를 담당했던 사람이 이석민이라 서준혁이 신유리를 위해 구매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다음은 몰랐다.그렇기 때문에 이석민은 회사에서 항상 신유리에게 좋은 태도를 취했다. 신유리 외에는 서준혁이 집을 사준 여자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여자를 향한 남자의 진심은 돈을 얼마나 쓰는지에 드러난다.송지음은 그의 말을 듣자마자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서준혁이 그 집을 사준 걸까, 아니면 운 좋게 싼 값에 럭셔리 하우스에 들어가게 된 것일까?그렇다면 그녀는?그녀와 그녀의 부모님은 아직도 18평의 작은 아파트에 비좁게 살고 있었다. 서준혁이 이를 모르고 있는 걸까?송지음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고,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신유리는 회사에서 나온 뒤 바로 병원으로 갔다.도중에 이신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사고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신과 연우진이 많은 메시지를 보내며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신유리는 기분이 너무 좋지 않은 탓에 답장을 주지 못했다.어제 외할아버지에게 있었던 일이 더해져 신유리는 다른 일을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다.휴대폰 벨소리가 계속 울렸다. 신유리는 운전 중이었기에 차량 블루투스에 연결해서 전화를 받았다.이신의 굵은 목소리가 바로 들려왔다. "어디야?""차 안이야." 말을 마친 신유리가 한마디 덧붙였다. "지금 병원으로 가려고."옆에서 연우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지금 어디 아파?"그는 매우 걱정되었다. “유리야, 걱정하지 마. 가장 중요한 건 너 자신을 돌보는 거야. 분명 다 잘 해결될 거야.”사실 이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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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송백은 신연을 향해 내리치려 했다.태지연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본능적으로 신연을 밀어내며 그의 앞을 막아섰다.태송백은 태지연을 보더니 급하게 행동을 멈췄다.그러나 이미 큰 힘을 실은 탓에 갑자기 멈추려 해도 늦었다. 그는 급히 방향을 틀었지만 결국 태지연의 어깨에 맞았다.뼈가 부딪히는 고통에 태지연은 휘청거리며 균형을 잃었다. 팔을 타고 내려오는 통증에 그녀는 눈앞이 어지러워지더니 옆으로 쓰러지며 머리를 부딪혔다. 곧이어 머리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바닥에는 유리 파편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모든 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다.신연이 반응했을 때 태지연은 이미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쥐 죽은 듯 고요한 방 안에는 태지연의 신음소리만 울려 퍼졌다.“아파...”신연의 눈에는 깊고 검은 파도가 일었다. 그는 태지연의 곁에 무릎을 꿇은 채 다급하게 소리쳤다.“성한빈, 당장 구급차 불러! 지금 당장!”그는 태지연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녀가 다칠까 봐 두려웠다.신연은 이내 고개를 들어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태송백을 노려보며 당장이라도 그를 죽일 것 같은 기세였다.태송백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급히 다가왔다.“태지연... 지연아...”그는 어찌할 바를 모르며 아까의 광기 어린 얼굴은 온데간데없어진 채 공포에 질려 있었다.태지연은 그를 바라보더니 손을 들어 태송백의 옷자락을 붙잡으며 힘겹게 말을 꺼냈다.“오빠... 내 말부터 들어줄래?”태송백은 숨을 죽이며 말했다.“그래, 네 말 들을게. 오빠가 나빴어. 오빠가 미안해... 지연아, 나 진짜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알아. 오빠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거. 오빠는 항상 나를 제일 아껴줬잖아.”태지연은 여전히 고통에 시달린 채 서서히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정신이 점점 혼미해져 갔지만 그녀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며 낮게 말했다.“오빠, 난 신연 편을 들고 싶은 게 아니었어. 그저 엄마 아빠가 더 이상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야. 우리 가족이 다시

  • 나 말고 다   제636화

    태송백은 한층 더 날카로운 눈빛으로 신연을 노려봤다. 한참 후에야 이를 악문 채 말을 내뱉었다.“뒤에서 숨고만 있다가 부하들만 짖게 놔두더니 이제야 직접 나선 거냐? 나한테 기회를 준다고? 신연, 너 진짜 죽을 때까지 정신 못 차리는구나?”태송백은 태지연을 흘겨보며 비웃음을 흘렸다.“너 내 동생을 완전히 속였잖아. 지금도 태지연이 여기까지 와서 헛소리나 지껄이고 있고.”태송백의 말은 가시처럼 날카롭게 태지연의 가슴에 박혔다. 그녀는 주먹을 움켜쥐며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었다.“오빠, 제발 진정 좀 해요.”“태지연, 넌 입 다물어. 계속해서 그 새끼 편을 들면 넌 더 이상 내 여동생도 태씨 가문의 딸도 아니야!”태송백은 격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우리 태씨 가문이 이 꼴이 된 건 전부 그 새끼 때문이야! 아버지께서 지금 병원에 누워 있는 데다 나도 집에 돌아가지 못한 채 숨어 다녀야 하지. 내가 밖에서 무슨 꼴을 당하는지 알기나 해? 모든 게 다 저 새끼 때문이라고.”“엄마는 창녀에 아빠는 손님이고. 참, 너도 신유리 알지? 걘 얼마나 똑똑한지 저 새끼랑 상종도 안 해. 너 혼자 보물인 양 여기고 있는 거야.”태송백은 쌓여 있던 울분을 쏟아냈다. 둘 사이의 갈등은 이미 단순히 말로 풀 수 있는 정도가 아닌 자존심 문제였다.그는 반드시 신연에게 자신이 당한 굴욕을 몇 배로 돌려주겠다고 결심했다.태송백은 한 마디 한 마디에 독설을 내뱉었다.“태지연, 넌 더럽지 않냐?”그녀는 마치 얼어붙은 듯 제자리 굳어버린 채 태송백을 바라보며 연신 고개를 저었다.“오빠, 그만해요... 제발 그만 말하세요.”그녀는 차마 신연을 돌아볼 용기도 없었다.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녀는 목이 바싹 말라오더니 눈앞이 흐려졌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신연 앞을 막아서며 무시해 버리라고 하고 싶었지만 마치 나무 말뚝에 묶인 것처럼 꼼짝할 수 없었다.태송백의 독설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악의 어린 말들이 허공에 울려 퍼지

  • 나 말고 다   제635화

    성한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둘째 도련님께서 문이 열릴 때마다... 전에 우리 쪽 사람들이 다친 적도 있었습니다. 도저히 대화가 통하지 않습니다.”신연은 바닥에 부서진 유리 조각들을 흘겨보더니 무표정으로 말했다.“아직도 부술 게 남아있어?”성한빈은 순간 안색이 굳어졌다.태지연은 그들의 대화를 신경 쓰지도 못한 채 바닥에 흩어진 유리 조각들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잠시 자리 좀 비켜줄 수 있어? 오빠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어.”신연은 눈을 내리깔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약속하듯 말했다.“아무것도 안 할게. 믿어줘, 응?”“아직 불안정할 텐데. 너희 둘만 남겨둘 수 없어.”“걱정 마. 아무 짓도 안 할 거야. 그래도 내 오빠잖아. 어렸을 때부터 나를 가장 아껴주던 사람이야.”태지연은 신연을 바라보며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물건을 너한테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잖아. 나야말로 누구보다도 이 일이 빨리 끝나길 바라고 있어.”“우리도 빨리 예전으로 돌아가자. 아무리 예전처럼 되지 못하더라도 이 일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어.”태지연의 목소리는 다소 지친 듯했다.“연아, 나 정말 너무 힘들어.”신연은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한참 지나서야 그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한번 얘기해 봐.”태지연이 대답하기도 전에 신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근데 나가진 않을 거야. 보다시피 최근 태송백 상태가 불안정해. 단둘이 두는 건 불안해서 안 되겠어. 여기서 기다릴게.”현관에서는 안쪽 상황을 볼 수 없었다.그녀는 신연이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걸 알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바닥의 유리 조각들을 피하며 안으로 들어갔다.안쪽은 더 엉망이었다. 바닥에는 온갖 유리 파편들과 장식품들이 흩어져 있었다.태송백은 원래 성격이 좋지 않은 편인데 얼마나 화가 났는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그녀는 바닥의 유리 조각들을 피해 가며 간신히 거실까지 다가갔다. 순간 태송백의 격앙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내가 나가라고

  • 나 말고 다   제634화

    다음 날 아침, 신연은 평소처럼 아침을 준비해 두었다.테이블 위에는 더 이상 초콜릿케이크가 보이지 않았고 신연도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행동했다.그는 우유 한 잔을 따라 식탁 위에 놓더니 입을 열었다.“얼른 씻고 아침 먹어. 나 오늘은 일이 있어서 점심에 못 올 거야. 점심은 호텔에서 보내줄 거야.”태지연은 순간 마음이 움찔하며 신연에게 물었다.“회사? 아니면 어디?”신연은 동작을 멈추더니 속눈썹을 내리깐 채 일부러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응, 회사.”“연아.”태지연은 의자 등받이를 꽉 잡으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어젯밤 한 말은 전부 진심이야. 만약 네가 오빠를 건드리면 절대 용서 못 해.”그녀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가라앉았고 손가락이 하얘질 정도로 의자 등받이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신연은 그제야 동작을 멈추고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태지연은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말했다.“만약 네가 오빠를 건드리면 나중에 내가 부모님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어?”조금 이기적일 수도 있는 말이지만 그녀는 어쩔 수 없었다. 어젯밤에 들은 말로만 신연이 정확히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태도를 봐서는 만약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면 태송백을 순순히 놓아주지 않을 게 분명했다.태지연은 손에 힘을 풀더니 힘겹게 신연 곁으로 다가갔다.“연아, 원하는 게 있으면 나한테 말해. 내가 대신 찾아줄게.”순간 신연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목젖을 울렁이며 태지연을 내려다보았다.“내가 물건을 찾고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태지연은 잠시 멈췄다가 대답했다.“오빠가 말했어. 자기 손에 너한테 아주 중요한 게 있다고. 연아... 내가 찾아줄게. 내 오빠잖아, 내가 말해볼게.”어젯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에 그녀의 안색은 좋지 않았고 목소리도 다소 잠겨 있었다.순간 머릿속이 약간 혼란스러워졌다.신연은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마음이 급해진 그녀는

  • 나 말고 다   제633화

    태지연은 말을 마치고 신연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신연은 눈을 내리깐 채 무심한 시선으로 그녀를 훑어보더니 일으켜 세웠다.“네가 좋아하는 케이크 사 왔어. 얼른 먹어봐.”태지연은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신연을 쳐다보며 손을 뿌리치려고 했으나 되레 단단히 잡혔다.신연은 식탁 앞으로 가서 조심스레 케이크 상자를 열고는 라즈베리 초콜릿케이크를 꺼냈다.태지연이 가장 좋아하는 가게의 케이크였다. 평소에도 그녀는 신연한테 퇴근길에 케이크를 사 오라고 조르기도 했었다.하지만 그녀는 가장 즐겨 먹던 케이크를 보면서도 전혀 입맛이 돌지 않았다.그녀는 태송백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다. “오빠가...”그러나 신연이 바로 말을 끊어버렸다. “케이크 가게 주인이 또 둘째를 낳았대. 너도 기억하더라. 시간 되면 한번 들르라고 하길래 내가 대신 대답했어.”“신연...”“맛 좀 봐.”신연은 케이크를 그녀 앞에 건네며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봤다.태지연은 깊이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지금 먹고 싶지 않아. 연아, 다시는 나한테 거짓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 그러니까 솔직하게 대답해 줘. 네가 오빠를 데려갔어?”태지연의 말이 끝나자 거실에는 침묵만이 흘렀다.신연은 그녀를 바라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이것뿐이야?”태지연은 한 글자씩 또박또박 뱉어냈다. “대답해.”신연은 말했다. “일단 케이크부터 먹어봐.”태지연은 움직이지 않고 애써 차오르는 분노를 억눌렀다. 그녀는 이 상황에 점점 지쳐갔다.순간 가족과 신연 사이에서 고민하며 최선의 해결책을 찾으려 했던 자신이 우스꽝스러웠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신연과 가족이 서로 평화롭게 지내길 바랐다.하지만 그녀는 이제야 그토록 바라던 작은 소망이 애초에 이룰 수 없는 꿈이었음을 깨달았다.신연과 태씨 가문은 이미 끊어진 실처럼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사이였다.모두가 이제는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오직 그녀만이 되돌릴 수 있다는

  • 나 말고 다   제632화

    태은정은 안색이 어두워진 채 눈 밑에 다크서클이 드리워져 있었다.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일들이 그녀를 지치게 했다. 그녀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지연아, 신연이 송백을 어디로 데려갔는지 알고 있어?”태지연은 잠시 멍해 있다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언니, 왜 항상 무슨 일만 생기면 내가 무조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마치 사람들이 모든 걸 나에게 털어놓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태지연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사실 진실을 모르는 사람은 유일하게 그녀뿐이었는데 말이다.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태은정은 멈칫하더니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무언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태지연을 한참 바라보더니 갑자기 반응하며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피곤한 듯 소파에 몸을 기댄 채 말했다.“그래. 내가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미안해. 지연아, 내가 너무 급했나 봐.”태은정은 미안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눈썹을 만지작거렸는데 이는 태은정이 곤란할 때 나오는 작은 습관이었다.태지연은 고개를 저었다.“방금 신연이 오빠를 데려갔다고? 그게 무슨 뜻이야?”태은정은 지금도 상황이 엉망진창이라고 느꼈다. 태송백은 이미 이틀째 연락 두절인 상태였고 아무리 연락을 해도 닿지 않았다.전혜린과 태성민은 신연의 짓이라고 확신했다. 게다가 태지연과도 연락이 닿지 않다 보니 한편으로는 부모님을 달래야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태송백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연락을 돌려야 했다.게다가 업친 데 덮친 격으로 자신의 문제까지 해결해야 했다. 그녀는 외국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도 이렇게 바쁜 적이 없었다.태은정은 한숨을 내쉬며 신중하게 말을 이어갔다.“그럼 신연이 요즘 뭐 하고 있는지는 알아?”태지연은 대답했다.“대부분은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어. 그리고 나머지 시간엔 회사에 있을 거야.”그녀는 잠시 멈춘 후 덧붙였다.“근데 나도 확신할 수 없어. 보통 자세한 건 나한테 말하지 않

  • 나 말고 다   제631화

    태지연은 마땅한 핑계조차 찾을 수 없었다. 신연은 그녀에 대해 잘 알다 못해 속마음까지 꿰뚫고 있을 정도였다.태지연은 눈물을 흘리며 처량한 모습으로 바라봤다.“왜겠어? 연아, 네가 생각해 봐.”“우리 아빠는 지금 병원에 있고 엄마랑 오빠는 널 원수처럼 대하는데 도대체 내가 어떡해야 하는 건데?”“누굴 탓해야 할까? 내 의사를 물어본 사람은 있어? 나도 모르겠어. 일이 왜 이 지경까지 되어버렸는지...”다들 그녀가 당연히 자신의 편에 서야 할 뿐만아니라 자신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누구도 그녀의 의사에 대해 물어본 적이 없었다.태지연은 바닥에 다리를 웅크리고 앉은 채 서로 사랑하던 사람이 갑자기 왜 그녀의 가족을 해치려는 사람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때 그녀를 아껴주던 부모와 오빠조차 이제는 그녀를 이용하려고만 했다.모두 그녀를 속이면서 정작 그녀한테는 진심을 다하라고 요구했다.태지연은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며 쉬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왜 내가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일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거야?”“날 위해서라는 핑계를 대면서 날 속이는데 왜 난 그걸 받아들여야만 하는 거야? 난 전혀 원하지 않는다고. 진실만을 원할 뿐이야. 그게 다야.”“이렇게 간단한 일조차 해줄 수 없는 거야?”“왜? 내가 바보 같아? 난 그냥 진실을 알고 싶었을 뿐인데 왜 너희는 날 바보 취급하는 거야?”그녀의 눈물은 순식간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머리를 무릎에 묻은 채 어깨가 떨릴 정도로 흐느꼈다.진실이 그녀 앞에 명백히 놓여 있었지만 누구도 진실을 말하려 하지 않았다.그들은 태지연이 절망에 빠진 채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도 계속해서 속이려고만 했다.무언의 눈물에서 작게 흐느끼다 마지막에는 이를 악문 채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태지연은 자신이 고집하는 게 과연 무엇인지 몰랐다. 그저 입술이 터져 피비린내가 느껴질 때까지 입술을 깨물었다.그 순간, 누군가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신연은 그녀의

  • 나 말고 다   제630화

    신연은 언제나 태지연에게 다정하게 대했다.그의 눈빛은 차분했고 그 어떤 흔들림도 없었다.하지만 태지연은 마치 약점을 찔린 듯 몸이 굳어버린 채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신연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지나치게 평온한 시선이 되레 태지연의 마음을 한껏 졸여왔다.“왜?”신연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지연아, 너도 그 계약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는 거지?”“착하지, 그만 돌려줘.”신연은 아이를 타이르듯 다정하게 말했다. “너한테 있는 거 알아.”“...없어.”태지연은 점점 눈빛이 흐려지더니 힘겹게 입을 뗐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 계약서라니, 난 모르는 일이야.”그녀는 주먹을 꽉 움켜쥐며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그제야 의지와는 다르게 부들부들 떨려오는 손을 진정시켰다.그녀는 오빠가 신연을 해치지 않기를 바랐고 마찬가지로 신연이 오빠에게 어떤 해를 끼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태지연은 누구에게도 그 계약서를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그녀는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을 내리며 모든 생각을 숨기려 했다.신연은 한참 그녀를 바라보더니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지연아, 나 거짓말하는 거 제일 싫어해.”태지연은 순간 몸이 굳었지만 여전히 고집스럽게 말했다. “나 아니야...”“정말이야?”신연이 다시 물었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응.””그럼 이게 뭔지 설명해 줄 수 있겠어?”신연은 말을 마치고 서랍에서 약병과 약을 꺼내 테이블 위에 던졌다.그녀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전에 침대 옆 서랍에 숨겨둔 비타민 약병과 피임약이었다.최근에 산 피임약을 아직 비타민 약병에 넣을 시간이 없었다. 태송백이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깜빡 잊고 있었다.신연은 순간적으로 창백해진 그녀의 얼굴을 보며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지연아, 말해 봐. 집에 왜 이런 약이 있는 거야?”그녀는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신연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 잠긴 목소리로 변명했

  • 나 말고 다   제629화

    태지연은 눈앞이 흐려진 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앞만 보고 계속 걸어갔다. 머릿속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고 오직 신연만이 떠올랐다.그렇게 자존심 강한 사람이 어떻게 그런 가정에서 자랐을까? 신연이 그렇게 말하기를 꺼렸던 그의 가정은 도대체 어떤 모습이었을까? 더군다나 신기철이 진정 신연에게 미안하다면 왜 그에게 한 번도 어떤 보상을 하지 않았을까?모두가 신연이 차갑다고 말했지만 태지연만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신연은 단지 그녀 앞에 갑작스럽게 나타나 자신을 지켜준 소년만이 아니었다. 사실 그 역시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그녀는 고등학교 뒤편 작은 정원에 항상 떠돌이 고양이들이 많았던 게 기억났다. 그리고 신연이 작은 난간에 기댄 채 고양이들에게 사료를 나누어주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새끼 고양이들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항상 신연 주위에 모여서는 그의 다리를 비볐다.그는 분명 귀찮아하는 표정이 있었지만 고양이들을 밀어내지 않았고 마지막에는 새끼 고양이가 그의 발치에서 잠드는 것도 허락했다. 동물들의 감각은 예리한 법이다. 그들은 항상 신연을 잘 따랐다.그런 신연의 모습이 계속해서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며 애써 억눌렀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그녀가 사랑했던 신연은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 너무나도 좋은 사람이었다....갑자기 손목이 세차게 잡히며 태지연은 발걸음을 멈췄다. 그제야 눈앞의 상황이 서서히 선명해지며 뒤에서 태은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딜 그렇게 급하게 뛰어가는 거야?”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엘리베이터 앞까지 와 있었다. 방금 태은정이 그녀를 붙잡지 않았더라면 환자를 밀고 지나가던 간호사랑 부딪힐 뻔했다.그녀는 무언가 말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태은정은 그녀를 흘겨보더니 아무 말 없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데려갔다.차에 타고 나서야 태지연은 정신을 차리고 나지막이 속삭였다.“고마워.”“고맙긴. 내가 네 언니인데.”태은정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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