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효연의 별장은 교외에 있다.문밖을 나선 송재이는 한참 걷고 나서야 겨우 택시를 잡았다.늦가을의 밤은 늘 그렇듯 조금 쌀쌀했다.바람이 일자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주변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날을 세어보니 올해 구정은 2월이었다.이젠 고작 3개월밖에 안 남았다.이전 같으면 송재이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올해 그녀는 엄마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렸고 첫 아이까지 유산했으니 인생의 변화무쌍함과 처량함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고작 25살 어린 나이인데...동년배의 유은정은 갓 데뷔한 신인 아이돌의 사진과 영상을 보낸다거나, 신상 립스틱 색상을 의논하고 있는데 송재이는 정작 이런 것들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하지만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절대 이렇지 않았다.송재이는 하이힐을 신고 평탄한 돌담길을 걸었다.그녀는 길을 걸을 때 바닥을 내려다보는 습관이 있어 고개를 반쯤 숙였다.가끔 바람이 불면 얼굴 양옆의 머리가 가볍게 흩날린다.그러면 그녀는 자연스럽게 귀 뒤로 흘려넘긴다.사실 송재이 본인은 자신의 이 동작이 매우 여성스럽다는 걸 전혀 모른다.그녀와 가까운 거리를 사이에 두고 차 한 대가 줄곧 천천히 그녀를 따라왔다.도정원은 조수석에 앉아 한 손을 차창에 걸치고 있었다.그도 똑같이 송재이를 한참 응시했다.그러다 결국 머리를 돌려 설영준을 바라봤다.“송 선생님이랑 알고 지낸 지 얼마나 되셨어요?”설영준의 눈동자가 반짝였다.“3년이요.”“두 분 무슨 사이에요?”“연우 가르치기 전에 제 남동생 피아노 선생님이었어요.”“그리고요?”도정원이 눈썹을 들썩거리며 보기 드문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설영준과 송재이의 관계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걸 바로 알아챈 듯싶다.설영준은 그를 힐긋 쳐다봤다.도정원은 양손을 들어 항복하는 자세를 하며 더는 따져 묻지 않았다.그는 곧바로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왔다.“송재이 씨를 처음 봤을 때부터 살짝 눈에 익었어요...”“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이런 방식으
송재이는 탐구하는 듯한 설영준의 눈빛을 바로 느꼈다.잠시 후에야 그가 천천히 질문했다.“잘 지냈으면 좋겠어 못 지냈으면 좋겠어?”“뭐? 아니 난 그게 아니라...”그녀는 묻자마자 바로 후회돼서 이 화제를 대충 얼버무려 끝내려고 했다.설영준은 왠지 모르게 화가 치밀었다.그는 다시 시동을 걸고 핸들을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나랑 현아 당연히 잘 지내지. 안 그러면 약혼 준비할 필요도 없잖아...”송재이의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았다.설영준은 계속 말을 이었다.“그러는 넌? 나랑 끝내고 지민건 외에 또 다른 남자랑 데이트는 해봤어? 어떤 사람을 원하는 건데? 말해봐 봐.”설영준의 이 물음에 송재이는 진짜 진지하게 고민해봤다.사실 그녀의 요구도 그리 높은 건 아니다. 상대가 진솔하고 그녀와 경제력이 비슷하다면 앞으로 두 사람이 가정을 이루어 서로 도와주고 모든 일을 함께 상의하며 살아갈 수 있다.다만 이런 요구들을 입밖에 내뱉지 않았다. 얼마 전 그녀는 아이를 한 명 유산했으니까.다른 남자와 잔 거랑,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진 건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지금 송재이가 고려해야 할 것은 나중에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자신의 과거를 말해줄 필요가 있느냐 없느냐이다.그녀가 솔직하게 고백했을 때 과연 이런 과거를 받아들이는 남자가 존재하긴 할까? 한때 딴 남자의 아이를 가졌던 여자를 여자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송재이는 문득 짜증이 밀려왔다!설영준을 만난 이후로 달콤했던 추억과 아픈 추억 모두 그의 의지대로 끌려가는 것 같았다.이별한 후에도 설영준은 아무렇지 않았으나 그녀는 몸과 마음이 다 너덜너덜해지고 나중에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도 문제가 돼버렸다.“지금은 내가 누군가를 고를 처지가 아니야. 상대가 날 싫어하는지부터 봐야 해!”송재이가 홧김에 말을 내뱉었다.그녀는 이젠 설영준에게 원망도 있고 증오도 있으며 내가 갖지 못한 이 사람을 누군가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아쉬움과 미련도 남아있다!“왜 널 싫어하는데?”차는 계속
설영준은 그녀가 차에서 내린 후에야 고개를 돌렸다.그는 송재이의 뒷모습이 가로등 불빛 속에서 멀리 사라질 때까지 빤히 쳐다봤다.다 버리라고 한다. 그녀가 물건을 전부 버리라고 한다!역시 전에는 설영준이 그녀를 만만하게 본 듯싶다. 이 여자는 정말 미련 따위 없는 쿨한 여자였다!하지만 방금 송재이가 눈물을 흘렸는데?이토록 치밀한 여자가 또 있을까? 아마 둘도 없겠지!...이번 만남으로 설영준은 왠지 자꾸 송재이가 어딘가 달라진 것 같았다.딱히 말로 표현할 수는 없는 느낌이었다.민효연 옆에서 연우에게 피아노를 가르칠 때 갑자기 뜬금없이 눈물을 흘릴 때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다.설영준은 여자가 우는 걸 싫어한다.특히 송재이가 우는 걸 싫어한다.그러니까 송재이는 방금 그의 앞에서 밀당을 한 걸까? 일부러 흘리는 거였네!‘좋아, 아주 완벽해!’설영준은 코웃음 치고 담배를 꺼내 불을 지폈다.송재이가 차에서 내리기 전부터 담배를 피우고 싶었지만 줄곧 참았었다.이젠 혼자 남았으니 담배를 깊게 한 모금 빨았다.차 안에 불을 켜지 않아 조금 어두웠다.창밖의 가로등 불빛이 그의 얼굴을 스치며 어둑어둑하게 지나갔다.이때 휴대폰이 울렸다.설영준은 고개 숙여 휴대폰 액정을 들여다봤다.몇 초 동안 침묵한 후 그는 문득 입꼬리가 올라갔다....송재이는 항상 오케스트라의 수석이 되고 싶었지만 명액은 단 하나였다.휴식할 때 유은정과 함께 밥 먹으면서도 이 얘기를 했었다.유은정이 그녀를 응원했다.“걱정 마! 내가 볼 땐 연지수 실력이 너보단 약해. 비록 나도 음악을 잘 모르지만 수석 자리는 반드시 네가 차지할 거야!”송재이는 알고 있다. 유은정은 지금 친구로서 그녀를 다독여주고 있었다.아무 조건 없이 항상 내 편이 되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실질적인 도움이 없어도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법이다.밥을 먹던 와중에 유은정은 문예슬에게 걸려온 긴급 전화를 받았다.한편 유은정은 잠시 듣더니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통화를 마친 그녀는 송재이를 끌
단장은 카톡으로 이렇게 말했다.[이번 공모 명액이 하나뿐이고 네가 이 자리에 아주 적합하다는 걸 알아. 다만 지금 어떤 분이 우리 오케스트라에 400억의 광고 비용을 투자하고 1년 동안 후원도 해주겠대. 조건은 단 하나, 한 사람을 지목해서 수석 자리에 올리겠대. 네가 썩 내키지 않는 거 알아. 장담할게, 다음엔 꼭 너를 수석 자리에 올릴 거야, 무조건!]400억이란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하여 수석 자리에 올리려는 사람은 단연코 그녀가 아니었다.단장도 마음이 찔렸던지 감히 직접 말하진 못하고 카톡을 보내왔다. 다음번엔 꼭 송재이에게 기회를 준다면서 화난 마음을 달래주었다.‘웃기지도 않네!’송재이는 웃으며 머리를 들었다. 이때 마침 연지수가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단장 사무실에서 걸어 나왔다.송재이를 본 그녀는 요염한 눈동자를 반짝이며 거만을 떨었다. 두 눈에는 송재이를 향한 도발이 가득 차 있었다.주변 사람들은 두 여자를 몰래 살펴봤다.송재이와 연지수의 경쟁은 이미 오랜 시간 이어져 왔다.다만 오늘 결과가 나오자 사람들은 여전히 놀랍고 의외일 따름이었다.단장은 송재이에게 단독으로 카톡을 보냈다.하지만 누군가가 연지수를 후원해준다는 소식은 오케스트라에서 널리 퍼졌다.다들 연지수가 어느 사장님의 마음을 꿰찼는지 의논이 분분했다.뒷배가 아주 막강해 보였다.송재이는 줄곧 참으며 아무 말이 없었다.점심시간, 그녀가 아래층 식당에서 올라올 때 마침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연지수와 마주쳤다.“이번엔 아쉽게 됐네요. 하지만 저도 결국 실력으로 따낸 거니 재이 씨는 다음 기회를 기다려봐요!”송재이는 그녀를 거들떠보지 않고 옆을 스쳐 지나갔다.연지수는 지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송재이의 어두운 표정을 보니 온몸이 짜릿했다!게다가 가장 중요한 건 그녀를 위해 광고를 투자하고 후원해주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오직 단장과 연지수 본인만 알고 있다는 점이다.연지수는 오케스트라에서 송재이를 이겼을 뿐만 아니라 남자 방면으로도 완벽하게 이겨버렸다!...연지
송재이를 유산 시킨 후 지민건은 늘 자괴감에 빠져 있었다.며칠이 지나도 밤마다 꿈속에 송재이의 눈물 맺힌 눈동자가 보인다.처음엔 가여운 모습이었는데 갑자기 분노로 바뀌며 험상궂게 변해갔다.그는 송재이와 알고 지낸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그의 인간 됨됨이로 볼 때 이제 막 알고 지낸 여자에게 딱히 측은지심을 느낄 사람이 아니다.하지만 왜 송재이에게 자꾸 미안해지는 걸까? 지민건은 본인조차도 몰랐다.양심의 가책을 느꼈다고 하는 수밖에...이 사건은 확실히 지민건 때문에 벌어진 거니까!그는 어쩌면 밤에 제대로 된 잠을 자고 싶어 송재이에게 이런 보양식을 보내왔을지도 모른다.송재이는 물건을 받은 후 지민건에게 전화해 한바탕 욕설을 퍼부었다.그가 미처 변명을 내두르기 전에 송재이는 쓰레기 같은 보양식을 상자째로 창밖에 내던졌다!다음날 지민건이 또다시 문자를 보내왔다.그는 송재이가 자신을 얼마나 증오하는지 모르는 듯싶다.‘X발, 빌어먹을 개자식이!’송재이는 지민건의 음성 메시지를 다 듣지도 않고 바로 그를 블랙리스트에 넣었다....연지수가 오케스트라의 수석이 되었다고 정식 발표한 날, 그녀는 거만을 떨며 오케스트라의 모든 이가 축하 파티에 참석해줘야 한다고 했다.뭇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그녀는 송재이의 앞으로 다가와 입이 귀에 걸릴 지경으로 활짝 웃으며 아주 정중하게 말했다.“재이 씨, 와주실 거죠?”서유리는 송재이가 참지 못하고 귀싸대기를 날릴까 봐 아래에서 힘껏 그녀를 제지했다.다만 송재이는 전혀 분노하지 않고 되레 웃으며 답했다.“물론이죠. 걱정 마세요. 꼭 갈 테니까!”연지수는 지금 오케스트라의 모든 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일부러 송재이를 난처하게 굴고 있다. 송재이가 그걸 모를 리 있을까.송재이는 절대 피하지 않을 것이다!갈 뿐만 아니라 쫙 빼입고 우아하게 참석할 것이다!...유은정과 송재이는 몸매가 비슷하다.연지수가 어느 부자의 후원을 받고 이번에 오케스트라의 수석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유은정은 울화가
한편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송재이도 추태를 보이고 싶지 않았다.다른 사람들이 다가와 인사를 나눌 때 그녀도 곧장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송재이는 웃을 때 눈이 반달 모양이 되어 아주 달콤했다.마치 어린 소녀처럼 순수하면서도 성인 여자의 요염함도 지니고 있어 남자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 이게 바로 그녀의 매력이다.설영준은 연지수의 허리에 손을 걸치고 무대 중앙으로 걸어갔다.뭇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그는 여유 넘치게 음악에 몸을 맡겼다.연지수는 그에게 곧 달라붙을 기세로 귓가에 대고 뭐라 말하며 즐겁게 웃었다.설영준은 늘 다정하면서도 무관심한 듯한 미소를 짓고 있어 아무도 그의 속내를 파헤칠 수 없었다.그는 송재이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듯싶었다.연지수를 안고 몸을 살짝 돌리자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송재이가 바로 보였다.그의 시선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고 심지어 송재이를 향해 예의상 머리를 끄덕이기도 했다.설영준과 연지수에게 모든 포커스가 맞춰졌다.다만 송재이도 소외된 것만은 아니었다....누군가가 다가와 그녀에게 함께 춤을 추자고 요청했고 이에 송재이는 설영준을 힐긋 쳐다봤다.이때 연지수가 발꿈치를 들고 그에게 무언가 속삭였다.줄곧 미소 짓던 설영준의 얼굴이 순간 굳어지고 싸늘한 한기가 감돌았다. 그 표정은 실로 섬뜩할 따름이었다.다만 이때 송재이의 시선은 더 이상 설영준에게 꽂혀있지 않았다.그녀는 돌아서서 다른 남자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그 남자는 훤칠한 키에 어깨가 매우 넓었다.비록 설영준과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나름대로 안정감이 느껴졌다.송재이는 이곳에 왔을 때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설영준과 연지수가 함께 있는 걸 봐서 기분이 잡쳤던 걸까?그녀와 아무 연관이 없지만 기분 나쁜 건 어쩔 수가 없었다!한편 송재이와 춤을 추는 남자도 그녀가 텐션이 낮고 의기소침해하니 재미있게 해주려고 농담도 많이 건넸다.송재이는 이런 농담들이 전혀 안 웃겼다.그녀는 애써 미소를 지었고 그 남자도 바로 알아챘다.곧이어 남
송재이는 이 순간 머리가 백지장이 되었다.그를 따라 움직이던 몸짓도 한순간 굳어져 버렸다.그녀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온몸이 파르르 떨렸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어떻게 알았어?”마냥 차가운 이 남자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미처 몰랐다.그녀는 전혀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설영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한마디 물었다.“누구 애야?”이 한마디가 송재이의 심장을 다시 한번 지옥으로 떨어트렸다.그의 물음은 보이지 않는 칼이 되어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붙였다!누구 애냐니?설마 이 기간에 그녀가 딴 남자랑 잤을 거라고 여긴 걸까?그는 송재이가 쉬운 여자라고 생각하는 걸까?문란하고 음탕한 여자라고 여긴 걸까?!설영준이 그녀를 쳐다보는 눈빛은 차가운 살기가 깃들어있을 뿐만 아니라 강압적으로 몰아붙이는 기세도 드러났다. 또한 천한 여자를 쳐다보는 듯한 경멸의 뜻도 담겨 있었다!이런 능멸의 눈빛에 송재이는 가녀린 마음이 벼랑 끝으로 툭 떨어지듯 거센 타격을 받았다.“그건... 나도 몰라!”송재이가 홧김에 쏘아붙였다.일촉즉발의 분위기 속에서 두 사람 사이에 팽팽한 신경전이 감돌았다.송재이는 더 이상 이 지긋지긋한 관계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홀로 묵묵히 감수하는 것도 극에 달했다!그녀는 주현아와 지민건 이 두 악마를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었다.그 두 인간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식으로 그녀를 단숨에 이 불의의 재난을 감당하게 했다.그녀 스스로 이 두 사람을 상대할 순 없지만 설영준은 가능하다.그에게 이 수모를 하소연하고 싶었고 그를 향한 마음도 전달하고 싶었는데 누구 아이냐는 그 한 마디가 모든 걸 몰살했다!설영준은 아예 그녀를 믿지 않았다!그녀에게 감정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녀라는 사람 자체를 매우 경솔하게 보고 있다.이런 치욕감에 송재이의 마음이 재가 되었다.입원했던 그 며칠 동안 침울한 절망감에 빠져 있었는데 지금 이 순간 또다시 그때의 기분으로 돌아온 것만 같았다.“누구 애인지 모르겠어. 너랑
송재이는 연지수가 어떻게 자신이 유산한 일을 알게 됐는지 전혀 모른다.연지수 말고 또 누가 더 알고 있을까?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젠 다 아무 소용이 없다.그녀가 가장 숨기고 싶었던 사람이 알게 됐으니까.설영준이 알아버렸는데 온 세상이 안다고 해도 뭐가 달라질까?연지수는 거들먹거리며 웃다가 아무런 경계 없이 송재이에게 뺨을 맞았다.“야! 네가 감히 날 때려?”그녀는 못 믿겠다는 듯이 반쪽 얼굴을 가렸다.방금 송재이는 절대 가볍게 내리친 게 아니다.연지수는 머리가 헝클어지고 볼이 서서히 빨갛게 달아올랐다.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송재이를 가리키며 이를 악물고 경고했다.“넌 그냥 딴 남자에게 놀아난 걸레야. 유산까지 했으니 나중에 누가 너 만나주겠어? 오늘 이 뺨 맞은 거 나 꼭 기억할게. 돌아가서 영준 씨한테 알릴 거야. 나 이젠 영준 씨 사람이야. 과연 영준 씨가 널 가만 내버려 둘까? 송재이, 넌 이젠 끝장이야!”송재이는 경멸의 눈빛으로 그녀를 흘겨보며 쓴웃음을 지었다.“그래, 기다릴게. 네 스폰서더러 얼른 나서라고 해!”스폰서라...설영준을 말하는 걸까?물론 이는 연지수의 일방적인 생각일 뿐이다.설영준 측에서는 인정한다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하지만 송재이도 지금은 연지수와 설영준이 한패라고 생각하고 있다.그녀가 연지수를 때렸으니 설영준이 과연 어떻게 나올까?이판사판이 되니 더는 눈에 뵈는 게 없었다.어차피 설영준과도 사이가 완전히 틀어졌다.또 무슨 일이 발생하든 그녀는 전혀 신경 쓸 게 없었다.송재이는 이젠 아무것도 걱정할 게 없다!유산한 일을 연지수가 알게 되면 동네방네 떠들어댈 줄 알았다.하지만 다음날 오케스트라에 갔을 때 예전처럼 평범한 일상이었다.그저 연지수가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에 분노가 좀 더 많이 섞여 있을 뿐이다.가끔 휴식실에서 마주쳐도 연지수는 일부러 문을 더 세게 닫고 나간다.그러다가 며칠 지나자 그녀는 다시 기분이 좋아진 듯싶었다.누군가는 연지수와 설영준이 함께 밥 먹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