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이는 연지수가 어떻게 자신이 유산한 일을 알게 됐는지 전혀 모른다.연지수 말고 또 누가 더 알고 있을까?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젠 다 아무 소용이 없다.그녀가 가장 숨기고 싶었던 사람이 알게 됐으니까.설영준이 알아버렸는데 온 세상이 안다고 해도 뭐가 달라질까?연지수는 거들먹거리며 웃다가 아무런 경계 없이 송재이에게 뺨을 맞았다.“야! 네가 감히 날 때려?”그녀는 못 믿겠다는 듯이 반쪽 얼굴을 가렸다.방금 송재이는 절대 가볍게 내리친 게 아니다.연지수는 머리가 헝클어지고 볼이 서서히 빨갛게 달아올랐다.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송재이를 가리키며 이를 악물고 경고했다.“넌 그냥 딴 남자에게 놀아난 걸레야. 유산까지 했으니 나중에 누가 너 만나주겠어? 오늘 이 뺨 맞은 거 나 꼭 기억할게. 돌아가서 영준 씨한테 알릴 거야. 나 이젠 영준 씨 사람이야. 과연 영준 씨가 널 가만 내버려 둘까? 송재이, 넌 이젠 끝장이야!”송재이는 경멸의 눈빛으로 그녀를 흘겨보며 쓴웃음을 지었다.“그래, 기다릴게. 네 스폰서더러 얼른 나서라고 해!”스폰서라...설영준을 말하는 걸까?물론 이는 연지수의 일방적인 생각일 뿐이다.설영준 측에서는 인정한다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하지만 송재이도 지금은 연지수와 설영준이 한패라고 생각하고 있다.그녀가 연지수를 때렸으니 설영준이 과연 어떻게 나올까?이판사판이 되니 더는 눈에 뵈는 게 없었다.어차피 설영준과도 사이가 완전히 틀어졌다.또 무슨 일이 발생하든 그녀는 전혀 신경 쓸 게 없었다.송재이는 이젠 아무것도 걱정할 게 없다!유산한 일을 연지수가 알게 되면 동네방네 떠들어댈 줄 알았다.하지만 다음날 오케스트라에 갔을 때 예전처럼 평범한 일상이었다.그저 연지수가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에 분노가 좀 더 많이 섞여 있을 뿐이다.가끔 휴식실에서 마주쳐도 연지수는 일부러 문을 더 세게 닫고 나간다.그러다가 며칠 지나자 그녀는 다시 기분이 좋아진 듯싶었다.누군가는 연지수와 설영준이 함께 밥 먹는 걸
가끔 울화가 치밀 때 충동적인 말을 내뱉을 때가 있다.그러다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면 진실된 느낌과 판단력을 되찾게 된다.설영준은 송재이와 알고 지낸 지 3년이다. 결코 3일이 아니란 말이다.그녀가 딴 남자랑 쉽게 잠자리를 갖는 여자라고? 설영준은 절대 이를 믿을 리가 없다.하지만 송재이는 아무런 해명도 없었고 심지어 일부러 그를 약 올리는 말을 내뱉었다. 설영준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요 며칠 그는 줄곧 마음이 심란했다.전에는 아이에 관한 일을 생각해본 적이 없고 송재이와 아이를 낳을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처음부터 그녀가 임신한 걸 알게 됐다면 그는 과연 이 아이를 낳게 했을까?어쨌거나 설영준은 진짜 송재이와 결혼할 생각이 없었으니까.그렇다고 밖에 사생아가 있다는 건 설영준에게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다만 지금 그의 앞에 놓인 건 결과뿐이다.그런 고민과 갈등의 과정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기뻐해야 마땅한데, 그를 위해 수많은 고뇌를 덜어줬으니까!하지만 왜 기쁘지도 않을망정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한 걸까?가끔 설영준은 홀로 사무실에서 담배를 수없이 피우며 이를 악물고 차오르는 원망과 증오를 추스른다!그는 지금 송재이가 너무 얄밉다. 제멋대로 하는 그녀가 너무 얄밉다!...그날 설영준이 막 사무실에 돌아왔을 때 박경이라는 사람이 그를 찾아왔다.설영준을 꼭 한번 뵙고 싶다고 했다.설영준은 시답잖은 사람들을 일일이 상대할 기분이 아닌지라 여진 비서에게 분부하여 돌려보내라고 했다.10분 후 여진 비서가 다시 노크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대표님, 박경 씨가 말하길... 대표님 아드님과 관련된 일이라고 합니다.”여진 비서는 내용을 전달하는 담당이니 박경의 말을 그대로 전하면서 갈피가 안 잡히긴 마찬가지였다.설영준은 결혼도 안 했는데 갑자기 아들이 웬 말일까?사무실 책상 앞에 마주한 남자는 한창 머리를 숙이고 글을 쓰는 중이었다.이 말을 들은 설영준은 그제야 고개를 들고 펜을 쥔 손에 살짝 힘을 주며 이를 악물었다.“들어
박경의 혼자 힘으로는 세력이 너무 약하다.하지만 지민건이 저지른 일만 생각하면 이가 갈리고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박경은 설영준이 누군가에게 쉽게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란 걸 잘 알기에 이 사건의 진실을 그에게 털어놓기로 했다.설영준이 그 아이에 대한 감정이 어느 정도인지, 또 혹은 두 범인을 상대할지 말지는 박경이 신경 쓸 부분이 아니다.그는 녹음본을 남긴 후 자리를 떠났다....설영준은 홀로 사무실에 앉아서 더할 나위 없이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는 녹음을 다시 틀었다.두 남녀의 대화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었다.지민건의 비겁한 인성은 딱히 놀랄 것도 없었다.하지만 주현아가 이런 사람일 줄은 전혀 상상치도 못했다.어쨌거나 수년간 알고 지낸 재벌가의 따님이었으니.전에 주승아와 약혼했을 때 주현아는 껌딱지처럼 그들 뒤를 따라다녔다.인상 속 주현아는 얌전하고 온순하며 착한 아이였는데 이 녹음이 폭로되면서 그녀에 대한 이미지가 산산조각이 났다.주현아의 언니 주승아는 몇 년 전에 사망했다.주씨 일가와 혼약을 맺는 건 이미 다 정해진 일이다.다만 요즘 설영준은 확실히 마음을 집중할 수가 없다.그는 무심코 사무실 서랍을 열었다.서류 더미 밑에서 반지가 하나 굴러 나왔다.이 반지는 전에 주현아가 끼고 다니던 반지였다. 그녀는 이 반지를 애지중지 아껴왔다.왜냐하면 이 반지는 그녀가 곧 ‘설영준의 아내’가 된다는 걸 증명해주니까.나중에 주현아가 잃어버렸는데 설영준이 얼떨결에 주웠다.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반지를 주현아에게 돌려주고 싶지 않았다.설영준은 ‘아내’라는 신분에 딱히 큰 기대가 없다.늘 그렇듯 재벌가에서 조건이 비슷한 현모양처 신붓감을 골라서 결혼하면 그만이다.전에 설영준은 주현아가 이 조건에 매우 적합하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이젠 다시 고려해봐야 할 듯싶다.감히 제멋대로 이런 짓을 벌이다니. 잔혹한 수법으로 그의 핏줄을 살해한 건 이미 그의 역린을 건드린 거나 다름없다!설영준은 주현아와의 혼약을 취소할 생각이었
설영준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휴대폰이 주머니에서 떨어졌다.그는 허리 숙여 휴대폰을 줍다가 부주의로 갤러리를 눌렀다.그의 갤러리에는 대부분 비즈니스 계약서에 관한 사진들이었다.그중 한 장이 유난히 돋보였다.바로 며칠 전 송재이가 호텔 입구에 서서 가방을 뒤질 때 설영준이 차 안에서 찍었던 그녀의 사진이다.그땐 순전히 송재이의 몸매가 예뻐 보여서 사진을 찍었다.수없이 만져봤지만 여전히 그녀를 원했다.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축축하고 흐린 날, 그녀는 흰색 치마에 가는 허리띠를 걸치고 날씬한 몸매를 한껏 드러냈다.하늘거리는 그녀의 몸짓을 떠올리며 설영준은 무언가에 홀린 듯 사진을 확대하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3일 후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송재이는 한창 오케스트라에 있었다.휴식 시간, 그녀는 벤치에 앉아 물을 마셨다.휴대폰을 꺼내 보니 유은정의 부재중 전화가 몇 통이나 와 있었다.송재이는 바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재이야, 왜 인제 받아? 뉴스 봤어? 지민건 회사가 하루아침에 와장창 무너졌어. 전에 그 회사에 대출해줬던 빚쟁이들이 전부 찾아와서 빚 갚으라고 다그친대!”“그리고 걔 요즘 계약한 몇 개 프로젝트도 갑자기 상대측에서 줄줄이 계약을 해지했대. 지민건 혹시 무슨 큰 인물이라도 잘못 건드린 거 아니야?”유은정이 말을 더듬거렸다.“사실 우리 아빠도 걔네 회사에 100억 가까이 투자했는데 지금 전화해도 안 받는대. 어떡해? 그 돈 못 받아오면...”송재이는 화들짝 놀랐다.‘큰 인물을 잘못 건드리다니?’그녀의 머릿속에 문득 한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유은정과 오랜 시간 알고 지냈지만 지금처럼 당황해하는 그녀의 모습은 이번이 처음이다.그들 부녀는 도저히 도움을 청할 곳이 없어서 마지못해 송재이를 찾아온 듯싶다.“재이야, 너 전에 설영준 씨 만났었잖아. 알아, 지금은 헤어진 거. 그래도... 한때 연인이었던 정을 봐서라도 나 대신 설영준 씨한테 한번 도와달라고 부탁하면 안 될까?”설영준은 인맥도 넓고 수단이 잔혹해 그가 나섰
송재이는 낯선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절대 안 받는다.다만 이 사람도 집착이 꽤 심했다. 그녀가 안 받으니 계속 전화를 걸어왔다.결국 송재이는 마지못해 통화 버튼을 눌렀다.“재이 씨, 지금 시간 돼? 밥 사주고 싶은데.”전화기 너머로 익숙하면서도 음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송재이는 순간 핸드폰을 쥔 손이 움찔거렸다. 역시 양반은 못 된다고.상대는 바로 지민건이었다!전에 그녀는 지민건의 모든 연락처를 블랙리스트에 넣었다.지금 걸어온 이 번호는 다른 사람 휴대폰을 빌렸거나 혹은 새로 구한 전화번호거나 둘 중 하나이다.어찌 됐든 송재이는 이젠 지민건이란 사람에게 생리적 혐오감을 느낀다.목소리만 들어도 온몸이 불편해진다.제일 먼저 든 생각은 식사 장소에 나가기 싫다는 것이었다.지민건은 지금 여기저기 쫓겨 다니는 신세가 돼버렸다.한 무리의 빚쟁이들과 뿔뿔이 투자금을 빼가는 주주들 때문에 그는 이미 제 코가 석 자이다.그런 인간이 송재이에게 밥을 사줄 여유나 있을까?이중엔 분명 또 어떤 음모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게다가 그는 송재이의 아이까지 해친 장본인이다.송재이는 이런 경험도 적고 너그러운 아량도 못 돼 자신의 원수와 평화롭게 대면할 순 없다.다만 거절하려던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결국 삼키고 말았다.유중건이 연루되어 있으니까.송재이는 일단 설영준을 걸치지 않고 유중건의 돈을 돌려받으려고 했다.물론 그럴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걸 잘 알지만 그래도 한 번 시도는 해보고 싶었다.또한 지민건이 이런 처지가 된 게 진짜 그 사람 때문인지 확인하고 싶기도 했다! 어쩌면 그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럴만한 능력이 있을 것 같았다.몇 초 동안 침묵한 후 송재이는 끝내 그의 요구에 응했다.“그래, 좋아.”...한편 식사 장소는 송재이가 정했다.그곳은 오픈된 야외 식당이었다.송재이는 일부러 룸을 피했다. 지민건이 갑자기 과격한 행동을 보일까 봐서.그녀 눈에 이 사람은 일찌감치 이성을 놓은 사람이다.사면초가에 빠진 지금, 자포자기하는
지민건 회사의 자금줄이 갑자기 끊긴 건 경주의 어느 한 거물에게 미움을 샀기 때문이다.상대의 정체에 대해서는 업계 내부의 모든 이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다들 알고만 있을 뿐 감히 발설하지 못했다.요 며칠 주현아는 집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이뤘다.지민건의 일이 동네방네 소문이 쫙 퍼졌다.설영준은 분명 무언가를 알게 되어 지민건을 궁지로 몰아넣었을 것이다. 주현아는 바로 짐작이 갔다.지민건이 주현아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한때 그의 비서였던 박경은 둘 사이가 틀어지자 이 사건을 도화선으로 삼고 수행비서라는 공식적인 신분을 이용해 악의적으로 지민건 회사의 계열사를 파산에 이르게 했다.사실 대부분 돈은 박경이 챙겨서 도망갔다.그리고 모든 빚쟁이는 지민건에게 책임을 따져 물었다.그는 지금 본사를 간신히 운영해 나가지만 이 또한 거의 무너질 지경이다.그러니까 주현아는 제발 나 몰라라 하지 말고 도움의 손길을 건네주길 바랐다.한편 주현아는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지금은 그녀 본인조차도 밤낮없이 걱정에 휩싸여 있는데 언제 딴사람을 신경 쓸 겨를이 있을까?그녀는 이 불똥이 자신에게 튈까 봐 너무 두려웠다.아빠 회사 상황은 어떤지, 아직 괜찮은지 무심코 묻기도 했었다.잔잔한 바람이 스쳐도 그녀는 심장이 바짝 조이는 느낌이 들었다.다만 설영준은 일부러 그녀를 입맛이 달아오르게 하고 있다.그녀가 불안해할수록 그는 더 침착하고 차분했다.상대가 아무런 인기척이 없으니 주현아는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그날 지민건과 밥을 먹은 후 송재이는 확신하게 되었다. 설영준은 바로 그녀가 유산 당한 진실을 알게 되어 지민건에게 잔혹한 수법을 쓴 것이다.지민건을 파산하게 한 것도 설영준의 의도였다.한편 송재이는 유은정을 도와 하루빨리 방법을 생각해서 유중건이 투자한 금액을 돌려받아야 한다.지민건은 이미 최악의 상황이라 더는 신경 쓸 게 없었고 가진 돈도 전혀 없었다!송재이는 별다른 수가 없었다. 결국 또
한 달 만에 보는 설영준은 조금 야윈 듯한 모습이었다.하지만 그윽한 두 눈동자는 여전히 눈부셨고 강렬한 포스가 은은하게 뿜어져 나왔다.그는 훤칠한 키에 날카로운 눈매를 지녔다.그녀 앞에서 설영준은 자연스럽게 머리를 살짝 숙였다.“할 말이 있어서...”그녀가 나지막이 속삭였다.설영준은 사실 지난번에 송재이가 지민건과 함께 중식당에 있는 모습을 길옆에서 지켜보았었다. 송재이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른 채 그때 서로 불쾌하게 헤어진 이후로 처음 만나는 거로 생각했다.설영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그는 이미 아이의 유산에 관한 진실을 알고 있다.유산을 겪은 후 그녀 홀로 아이를 잃은 슬픔을 어떻게 마주했을지, 그 힘들었던 나날을 어떻게 견뎌왔을지 대충 짐작이 갔다.물론 지난번에 그녀를 향한 ‘불신’으로 얼마나 큰 마음의 상처를 남겼을지도 알고 있다.설영준은 그녀를 스쳐지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송재이도 정신을 차리고 얼른 따라 들어왔다.“영준 씨한테 할 얘기 있는데 지금 시간 돼?”엘리베이터 안에는 두 사람뿐이었다.설영준은 손을 들어 사무실이 위치한 층수를 눌렀다.그녀는 조심스럽게 이 남자의 안색을 살폈다.그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고 딱히 거절하지도 않았다.그렇다면 묵인은 곧 허락이겠지?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닫혔다.송재이는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아이를 잃은 후 그녀는 이 남자를 단독으로 마주할 때마다 유난히 쉽게 연약해지고 전보다 마음이 자꾸 예민해진다.두 사람은 더 이상 함께할 가능성이 없지만 그녀의 몸과 마음은 왜 이렇게 통제받지 못한 채 이 남자의 강렬한 분위기에 휩쓸리는 걸까?이 남자가 첫사랑이자 처음 잠자리를 가진 남자라서? 또한 그녀를 임신하게 한 남자라서?이런 경험과 느낌은 아마 이번 생에 다른 남자를 만나도 충분히 구별이 가능할 것이다.설영준...이름 석 자가 그녀의 머릿속에 맴돌았다.엘리베이터가 서서히 올라갔다.바로 이때 주변이 갑자기 확 어두워졌다.머리 위의 전구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발
송재이는 순간 구분이 잘되지 않았다. 설영준이 말한 ‘내 사람’은 그녀를 말하는 건지 아니면 그녀가 임신한 아이를 말하는 건지 말이다.재벌은 늘 그렇듯 아이를 중시했다.결혼 후든 전이든 아이만 남기는 경우가 태반이었다.송재이는 설영준의 품에 안겨 작은 소리로 울먹였다.정신을 차린 설영준이 송재이를 더 꼭 끌어안았다.지금 설영준의 마음은 부드럽기 그지없었고 말투도 온화함이 극을 달했다.“저번엔 내가 오해했어. 아무리 화난다 해도 그런 말은 하지 마. 나는 너 그런 말 하는 거 싫어.”설영준은 이렇게 말하며 그녀를 안은 채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어둠 속에서 엘리베이터 무전을 찾아 통화 버튼을 여러 번 눌렀다.수리하는 사람들이 오기 전에 송재이는 계속 설영준의 품속에 안겨 있었다.송재이는 울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나를 얕잡아 보면서 방탕하고 음란한 여자라고 생각했잖아.”“아니야.”“아니긴, 맞아...”“...”설영준은 말문이 막혔다.송재이의 울음에서 진실과 거짓은 얼마 정도 될까?심장이 벌렁대는 건 확실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송재이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들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지나간 화제를 다시 이어갔다.“지민건을 처리하는 건 나도 반대하지 않을게. 근데 은정이 아버지가 전에 지민건의 회사에 투자한 돈이 있거든? 지금 이런 상황에 그 돈이 수포가 되면 어떡하지?”말이 끝나기 바쁘게 엘리베이터 안은 숨 막힐 듯한 정적이 흘렀다....설영준의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송재이는 분위기가 딱딱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송재이는 아무 말 없이 설영준이 대답하기를 기다렸다.결국 설영준이 이렇게 말했다.“친구 아버지 이름이 뭐라고?”“유중건.”“알았어.”설영준이 덤덤하게 말했다. 이 말을 뒤로 설영준은 더는 말이 없었다.송재이는 설영준이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다.하여 입을 뻐끔거리며 뭔가 말하려는데 설영준이 말을 이어갔다.“유 대표님한테 프로젝트 하나 줄게. 지민건 회사에 얼마를 투자한 거야?”“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