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연우 아빠입니다.”도정원은 중저음의 감미로운 목소리로 말하며 그윽한 눈길로 송재이를 쳐다봤는데 은근 살펴보는 것 같기도 했다.한편 옆에 있던 민효연은 도정원이 자신을 ‘연우 아빠’라고 소개할 때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그녀는 대놓고 경멸하듯 코웃음을 쳤다!민효연은 머리를 갸웃거리고 애써 감정을 짓누르고 있었다.송재이는 그녀가 줄곧 제 팔을 꼬집는 걸 주의 깊게 살펴봤다.2층에서 은은한 인기척이 들려왔다.송재이가 머리를 들자 연우가 가정부와 함께 방에서 나왔다.도정원을 본 아이는 정신이 흐리멍덩해졌다.연우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결국 가정부가 움츠리고 앉아 아이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그제야 연우도 천천히 앞으로 다가왔다.계단을 반쯤 내려왔을 때 도정원이 늘씬한 다리로 성큼성큼 나아가 연우를 덥석 끌어안았다.연우는 그가 낯설지는 않지만 또 그렇게 친한 것도 아니다.아이는 새하얀 팔로 이 남자의 목을 엉성하게 안았다.송재이는 전에 몇 번 이리로 왔었지만 도정원은 오늘 처음 본다.민효연도 연우의 아빠가 어디 갔는지 말한 적이 없다.오늘 보니 도정원은 아빠로서 평소에 연우를 그다지 보살피고 신경 써주지 못한 듯싶었다.연우의 엄마는 세상을 떠났고 이 아이는 자폐증을 앓고 있다.외할머니인 민효연이 아무리 잘해줘도 연우의 부모를 대체할 순 없다.이렇게 되니 민효연이 도정원에게 시큰둥하고 원한이 맺혀있는 것도 가히 이해가 됐다!민효연은 결국 교양이 있는 사람이다.연우의 면을 봐서라도 부녀가 함께하는 걸 막지 않았다.연우 앞에서 그녀는 도정원에게 그리 차갑지도, 또 그리 살갑지도 않은 태도였다.도정원은 연우와 한참 친하게 지냈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아이가 처음엔 좀 무뚝뚝하더니 뒤로 가면서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었다.연우는 도정원의 넥타이에 새겨진 꽃무늬가 신기한지 작은 손으로 줄곧 잡고 있었다.넥타이가 다 구겨졌지만 도정원은 전혀 불쾌한 기색이 없었다.과외 시간
송재이는 그의 손을 뿌리쳤다.티슈를 건네받으며 애써 담담한 척 눈물을 닦았다.“고마워.”그녀는 왜 울었는지 해명하지 않았고 심지어 방금 운 사람이 자신이 아닌 척했다.곧장 돌아앉더니 또다시 피아노 건반에 손을 올렸다.설영준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려던 말을 멈췄다.이때 주방에서 갑자기 컵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곧이어 민효연이 안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오며 화를 냈다!도정원이 뒤따라오며 말했다.“사장님...”민효연은 고개도 안 돌린 채 2층으로 올라갔다.그녀는 반쯤 올라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 돌려 도정원에게 말했다.“연우 못 데려가. 그건 꿈도 꾸지 마.”그녀는 거의 이를 악물고 이 말을 내뱉었다.송재이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도정원이 연우를 데려가려 한다고?’그 시각 도정원의 눈빛이 한없이 짙어졌다.그는 1층 계단에 서서 머리를 살짝 들고 대답했다.“저 연우 아빠예요. 연우는 제 딸이라고요.”“딸?”민효연이 눈썹을 치키고 난간을 잡은 손에 힘을 더 주었다.도정원이 온 뒤로 민효연은 자꾸만 쉽게 화내고 흥분한다.그녀는 고개 돌려 가정부를 쳐다봤다.가정부는 옆에 서서 식겁한 채 몸을 벌벌 떨었다.민효연이 눈치를 주자 가정부는 황급히 앞으로 나아가 연우를 안고 2층에 올라갔다.결국 아래층에는 어른들만 몇 명 남게 됐다.민효연은 자꾸만 흘러내리는 숄을 움켜잡고 계단을 내려왔다.그녀는 비록 여자이지만 나이와 연륜을 무시할 순 없다.민효연은 강렬한 포스를 내뿜으며 도정원을 빤히 쳐다봤다.“너도 부모의 마음이 어떤 건지 잘 아나 보네? 네 아이만 네 아이야? 그럼 내 아이는?”민효연은 언성을 높이지도 않고 아주 담담하게 하지만 질문 조로 정색하며 쏘아붙였다.송재이는 그녀가 말하는 ‘아이’가 주현아는 아닐 거라고 추측했다.주현아는 민효연의 둘째 딸이다.전에 설도영에게 들었는데 주씨 일가에 원래 큰딸이 한 명 더 있다고 한다.애초에 설영준과 혼약을 맺기도 했었다.다만 나중에 어떻게 된 영문인지 혼약이 취
민효연의 별장은 교외에 있다.문밖을 나선 송재이는 한참 걷고 나서야 겨우 택시를 잡았다.늦가을의 밤은 늘 그렇듯 조금 쌀쌀했다.바람이 일자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주변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날을 세어보니 올해 구정은 2월이었다.이젠 고작 3개월밖에 안 남았다.이전 같으면 송재이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올해 그녀는 엄마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렸고 첫 아이까지 유산했으니 인생의 변화무쌍함과 처량함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고작 25살 어린 나이인데...동년배의 유은정은 갓 데뷔한 신인 아이돌의 사진과 영상을 보낸다거나, 신상 립스틱 색상을 의논하고 있는데 송재이는 정작 이런 것들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하지만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절대 이렇지 않았다.송재이는 하이힐을 신고 평탄한 돌담길을 걸었다.그녀는 길을 걸을 때 바닥을 내려다보는 습관이 있어 고개를 반쯤 숙였다.가끔 바람이 불면 얼굴 양옆의 머리가 가볍게 흩날린다.그러면 그녀는 자연스럽게 귀 뒤로 흘려넘긴다.사실 송재이 본인은 자신의 이 동작이 매우 여성스럽다는 걸 전혀 모른다.그녀와 가까운 거리를 사이에 두고 차 한 대가 줄곧 천천히 그녀를 따라왔다.도정원은 조수석에 앉아 한 손을 차창에 걸치고 있었다.그도 똑같이 송재이를 한참 응시했다.그러다 결국 머리를 돌려 설영준을 바라봤다.“송 선생님이랑 알고 지낸 지 얼마나 되셨어요?”설영준의 눈동자가 반짝였다.“3년이요.”“두 분 무슨 사이에요?”“연우 가르치기 전에 제 남동생 피아노 선생님이었어요.”“그리고요?”도정원이 눈썹을 들썩거리며 보기 드문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설영준과 송재이의 관계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걸 바로 알아챈 듯싶다.설영준은 그를 힐긋 쳐다봤다.도정원은 양손을 들어 항복하는 자세를 하며 더는 따져 묻지 않았다.그는 곧바로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왔다.“송재이 씨를 처음 봤을 때부터 살짝 눈에 익었어요...”“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이런 방식으
송재이는 탐구하는 듯한 설영준의 눈빛을 바로 느꼈다.잠시 후에야 그가 천천히 질문했다.“잘 지냈으면 좋겠어 못 지냈으면 좋겠어?”“뭐? 아니 난 그게 아니라...”그녀는 묻자마자 바로 후회돼서 이 화제를 대충 얼버무려 끝내려고 했다.설영준은 왠지 모르게 화가 치밀었다.그는 다시 시동을 걸고 핸들을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나랑 현아 당연히 잘 지내지. 안 그러면 약혼 준비할 필요도 없잖아...”송재이의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았다.설영준은 계속 말을 이었다.“그러는 넌? 나랑 끝내고 지민건 외에 또 다른 남자랑 데이트는 해봤어? 어떤 사람을 원하는 건데? 말해봐 봐.”설영준의 이 물음에 송재이는 진짜 진지하게 고민해봤다.사실 그녀의 요구도 그리 높은 건 아니다. 상대가 진솔하고 그녀와 경제력이 비슷하다면 앞으로 두 사람이 가정을 이루어 서로 도와주고 모든 일을 함께 상의하며 살아갈 수 있다.다만 이런 요구들을 입밖에 내뱉지 않았다. 얼마 전 그녀는 아이를 한 명 유산했으니까.다른 남자와 잔 거랑,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진 건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지금 송재이가 고려해야 할 것은 나중에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자신의 과거를 말해줄 필요가 있느냐 없느냐이다.그녀가 솔직하게 고백했을 때 과연 이런 과거를 받아들이는 남자가 존재하긴 할까? 한때 딴 남자의 아이를 가졌던 여자를 여자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송재이는 문득 짜증이 밀려왔다!설영준을 만난 이후로 달콤했던 추억과 아픈 추억 모두 그의 의지대로 끌려가는 것 같았다.이별한 후에도 설영준은 아무렇지 않았으나 그녀는 몸과 마음이 다 너덜너덜해지고 나중에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도 문제가 돼버렸다.“지금은 내가 누군가를 고를 처지가 아니야. 상대가 날 싫어하는지부터 봐야 해!”송재이가 홧김에 말을 내뱉었다.그녀는 이젠 설영준에게 원망도 있고 증오도 있으며 내가 갖지 못한 이 사람을 누군가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아쉬움과 미련도 남아있다!“왜 널 싫어하는데?”차는 계속
설영준은 그녀가 차에서 내린 후에야 고개를 돌렸다.그는 송재이의 뒷모습이 가로등 불빛 속에서 멀리 사라질 때까지 빤히 쳐다봤다.다 버리라고 한다. 그녀가 물건을 전부 버리라고 한다!역시 전에는 설영준이 그녀를 만만하게 본 듯싶다. 이 여자는 정말 미련 따위 없는 쿨한 여자였다!하지만 방금 송재이가 눈물을 흘렸는데?이토록 치밀한 여자가 또 있을까? 아마 둘도 없겠지!...이번 만남으로 설영준은 왠지 자꾸 송재이가 어딘가 달라진 것 같았다.딱히 말로 표현할 수는 없는 느낌이었다.민효연 옆에서 연우에게 피아노를 가르칠 때 갑자기 뜬금없이 눈물을 흘릴 때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다.설영준은 여자가 우는 걸 싫어한다.특히 송재이가 우는 걸 싫어한다.그러니까 송재이는 방금 그의 앞에서 밀당을 한 걸까? 일부러 흘리는 거였네!‘좋아, 아주 완벽해!’설영준은 코웃음 치고 담배를 꺼내 불을 지폈다.송재이가 차에서 내리기 전부터 담배를 피우고 싶었지만 줄곧 참았었다.이젠 혼자 남았으니 담배를 깊게 한 모금 빨았다.차 안에 불을 켜지 않아 조금 어두웠다.창밖의 가로등 불빛이 그의 얼굴을 스치며 어둑어둑하게 지나갔다.이때 휴대폰이 울렸다.설영준은 고개 숙여 휴대폰 액정을 들여다봤다.몇 초 동안 침묵한 후 그는 문득 입꼬리가 올라갔다....송재이는 항상 오케스트라의 수석이 되고 싶었지만 명액은 단 하나였다.휴식할 때 유은정과 함께 밥 먹으면서도 이 얘기를 했었다.유은정이 그녀를 응원했다.“걱정 마! 내가 볼 땐 연지수 실력이 너보단 약해. 비록 나도 음악을 잘 모르지만 수석 자리는 반드시 네가 차지할 거야!”송재이는 알고 있다. 유은정은 지금 친구로서 그녀를 다독여주고 있었다.아무 조건 없이 항상 내 편이 되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실질적인 도움이 없어도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법이다.밥을 먹던 와중에 유은정은 문예슬에게 걸려온 긴급 전화를 받았다.한편 유은정은 잠시 듣더니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통화를 마친 그녀는 송재이를 끌
단장은 카톡으로 이렇게 말했다.[이번 공모 명액이 하나뿐이고 네가 이 자리에 아주 적합하다는 걸 알아. 다만 지금 어떤 분이 우리 오케스트라에 400억의 광고 비용을 투자하고 1년 동안 후원도 해주겠대. 조건은 단 하나, 한 사람을 지목해서 수석 자리에 올리겠대. 네가 썩 내키지 않는 거 알아. 장담할게, 다음엔 꼭 너를 수석 자리에 올릴 거야, 무조건!]400억이란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하여 수석 자리에 올리려는 사람은 단연코 그녀가 아니었다.단장도 마음이 찔렸던지 감히 직접 말하진 못하고 카톡을 보내왔다. 다음번엔 꼭 송재이에게 기회를 준다면서 화난 마음을 달래주었다.‘웃기지도 않네!’송재이는 웃으며 머리를 들었다. 이때 마침 연지수가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단장 사무실에서 걸어 나왔다.송재이를 본 그녀는 요염한 눈동자를 반짝이며 거만을 떨었다. 두 눈에는 송재이를 향한 도발이 가득 차 있었다.주변 사람들은 두 여자를 몰래 살펴봤다.송재이와 연지수의 경쟁은 이미 오랜 시간 이어져 왔다.다만 오늘 결과가 나오자 사람들은 여전히 놀랍고 의외일 따름이었다.단장은 송재이에게 단독으로 카톡을 보냈다.하지만 누군가가 연지수를 후원해준다는 소식은 오케스트라에서 널리 퍼졌다.다들 연지수가 어느 사장님의 마음을 꿰찼는지 의논이 분분했다.뒷배가 아주 막강해 보였다.송재이는 줄곧 참으며 아무 말이 없었다.점심시간, 그녀가 아래층 식당에서 올라올 때 마침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연지수와 마주쳤다.“이번엔 아쉽게 됐네요. 하지만 저도 결국 실력으로 따낸 거니 재이 씨는 다음 기회를 기다려봐요!”송재이는 그녀를 거들떠보지 않고 옆을 스쳐 지나갔다.연지수는 지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송재이의 어두운 표정을 보니 온몸이 짜릿했다!게다가 가장 중요한 건 그녀를 위해 광고를 투자하고 후원해주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오직 단장과 연지수 본인만 알고 있다는 점이다.연지수는 오케스트라에서 송재이를 이겼을 뿐만 아니라 남자 방면으로도 완벽하게 이겨버렸다!...연지
송재이를 유산 시킨 후 지민건은 늘 자괴감에 빠져 있었다.며칠이 지나도 밤마다 꿈속에 송재이의 눈물 맺힌 눈동자가 보인다.처음엔 가여운 모습이었는데 갑자기 분노로 바뀌며 험상궂게 변해갔다.그는 송재이와 알고 지낸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그의 인간 됨됨이로 볼 때 이제 막 알고 지낸 여자에게 딱히 측은지심을 느낄 사람이 아니다.하지만 왜 송재이에게 자꾸 미안해지는 걸까? 지민건은 본인조차도 몰랐다.양심의 가책을 느꼈다고 하는 수밖에...이 사건은 확실히 지민건 때문에 벌어진 거니까!그는 어쩌면 밤에 제대로 된 잠을 자고 싶어 송재이에게 이런 보양식을 보내왔을지도 모른다.송재이는 물건을 받은 후 지민건에게 전화해 한바탕 욕설을 퍼부었다.그가 미처 변명을 내두르기 전에 송재이는 쓰레기 같은 보양식을 상자째로 창밖에 내던졌다!다음날 지민건이 또다시 문자를 보내왔다.그는 송재이가 자신을 얼마나 증오하는지 모르는 듯싶다.‘X발, 빌어먹을 개자식이!’송재이는 지민건의 음성 메시지를 다 듣지도 않고 바로 그를 블랙리스트에 넣었다....연지수가 오케스트라의 수석이 되었다고 정식 발표한 날, 그녀는 거만을 떨며 오케스트라의 모든 이가 축하 파티에 참석해줘야 한다고 했다.뭇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그녀는 송재이의 앞으로 다가와 입이 귀에 걸릴 지경으로 활짝 웃으며 아주 정중하게 말했다.“재이 씨, 와주실 거죠?”서유리는 송재이가 참지 못하고 귀싸대기를 날릴까 봐 아래에서 힘껏 그녀를 제지했다.다만 송재이는 전혀 분노하지 않고 되레 웃으며 답했다.“물론이죠. 걱정 마세요. 꼭 갈 테니까!”연지수는 지금 오케스트라의 모든 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일부러 송재이를 난처하게 굴고 있다. 송재이가 그걸 모를 리 있을까.송재이는 절대 피하지 않을 것이다!갈 뿐만 아니라 쫙 빼입고 우아하게 참석할 것이다!...유은정과 송재이는 몸매가 비슷하다.연지수가 어느 부자의 후원을 받고 이번에 오케스트라의 수석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유은정은 울화가
한편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송재이도 추태를 보이고 싶지 않았다.다른 사람들이 다가와 인사를 나눌 때 그녀도 곧장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송재이는 웃을 때 눈이 반달 모양이 되어 아주 달콤했다.마치 어린 소녀처럼 순수하면서도 성인 여자의 요염함도 지니고 있어 남자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 이게 바로 그녀의 매력이다.설영준은 연지수의 허리에 손을 걸치고 무대 중앙으로 걸어갔다.뭇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그는 여유 넘치게 음악에 몸을 맡겼다.연지수는 그에게 곧 달라붙을 기세로 귓가에 대고 뭐라 말하며 즐겁게 웃었다.설영준은 늘 다정하면서도 무관심한 듯한 미소를 짓고 있어 아무도 그의 속내를 파헤칠 수 없었다.그는 송재이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듯싶었다.연지수를 안고 몸을 살짝 돌리자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송재이가 바로 보였다.그의 시선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고 심지어 송재이를 향해 예의상 머리를 끄덕이기도 했다.설영준과 연지수에게 모든 포커스가 맞춰졌다.다만 송재이도 소외된 것만은 아니었다....누군가가 다가와 그녀에게 함께 춤을 추자고 요청했고 이에 송재이는 설영준을 힐긋 쳐다봤다.이때 연지수가 발꿈치를 들고 그에게 무언가 속삭였다.줄곧 미소 짓던 설영준의 얼굴이 순간 굳어지고 싸늘한 한기가 감돌았다. 그 표정은 실로 섬뜩할 따름이었다.다만 이때 송재이의 시선은 더 이상 설영준에게 꽂혀있지 않았다.그녀는 돌아서서 다른 남자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그 남자는 훤칠한 키에 어깨가 매우 넓었다.비록 설영준과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나름대로 안정감이 느껴졌다.송재이는 이곳에 왔을 때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설영준과 연지수가 함께 있는 걸 봐서 기분이 잡쳤던 걸까?그녀와 아무 연관이 없지만 기분 나쁜 건 어쩔 수가 없었다!한편 송재이와 춤을 추는 남자도 그녀가 텐션이 낮고 의기소침해하니 재미있게 해주려고 농담도 많이 건넸다.송재이는 이런 농담들이 전혀 안 웃겼다.그녀는 애써 미소를 지었고 그 남자도 바로 알아챘다.곧이어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