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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1화

작가: 노혜아
상대는 릴리를 죽이려고 여러 번이나 치명적인 공격을 퍼부었지만 릴리는 전부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마지막에 그 칼이 부러지지 않았더라면 상대는 아마 이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고우신은 지금까지 안일하게 살아왔다. 유일한 자극이라면 아마 레이싱카를 타고 질주할 때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 비하면 레이싱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

릴리의 잔인하고 과감한 움직임을 보면 이런 상황을 대체 얼마나 겪었는지 가히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대체 얼마나 싸워야 이 정도가 된단 말인가...

고우신의 머릿속은 여전히 뒤죽박죽이었고 그를 신경 쓸 기분이 아니었던 릴리는 곧장 밖으로 나가려 했다.

불길은 점점 더 거세졌고 연기도 마구 들어와 오래 머무를 곳이 아니었다. 게다가 언니까지 데리러 왔다니 신속하게 나가야 했다.

그런데 옆에 서 있던 두 경호원이 릴리를 막으면서 귀띔했다.

“아가씨, 잠시만요.”

릴리의 날카로운 눈빛에 두 경호원은 긴장한 얼굴로 다급하게 설명했다.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육 회장님 아직 안 오셨어요.”

혹시라도 릴리가 따귀라도 때릴까 두려워 아주 빨리 말했다. 설령 릴리가 때린다고 해도 그들은 감히 반격할 수 없었다.

다행히 말이 끝나자마자 문밖에서 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문을 들이박는 소리였다. 경호원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셨네요.”

두 경호원은 조금 전 릴리와 싸웠던 두 사람을 아주 쉽게 제압해버렸다. 수단이 어찌나 잔인한지 릴리 못지않았다. 게다가 릴리보다 더 강했는데 딱 봐도 프로였다.

두 사람을 제압한 후 팔을 부러뜨렸고 발로 다리 관절을 가차 없이 짓밟았다. 비명과 함께 임무를 마친 네 사람은 창문을 통해 소리 없이 사라졌다...

그 모습에 릴리는 말을 잇지 못했다. 현장에 성신영과 고우신, 릴리, 그리고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두 경호원만 남게 되었다. 참으로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다.

릴리는 잠깐 멈칫하다가 매캐한 연기를 참으며 고우신을 협박의 눈빛으로 돌아보았다. 눈치 빠른 고우신은 어찌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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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우신이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던 그때 제복 차림의 경찰들이 인질을 구출하러 달려왔다.그런데 사람들이 다 멀쩡하게 서 있어 누가 인질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신하균이 뒤에서 다가와 그들을 훑어보며 말했다.“안 나가고 뭐 해요? 계속 여기 있을 거예요?”이 빌라는 아주 오래된 빌라였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마당의 작은 공지였고 정자를 지나서야 빌라 밖의 큰 마당으로 나왔다. 마당에 적지 않은 사람과 경찰차가 서 있었고 소방차도 와있었다.릴리는 고정철 부자가 경찰차에 압송되는 모습을 보고 의아해했다. 릴리를 본 고한빈의 얼굴에 분노가 가득했고 당장이라도 달려와 그녀의 목을 조를 기세였다.“너 아주 대단하다 그래! 본인이 죽더라도 우리를 잡겠다 이거야?”그런데 양옆의 경찰이 그를 제압하고 강제로 차에 태웠다.“가만히 있어!”릴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그때 강미영과 바론이 다가왔다. 그들 뒤로 지팡이를 짚은 강씨 어르신도 따라왔다.“할아버지,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강씨 어르신이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대체 어떻게 된 거야? 왜 여기로 왔어?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 감히 우리 외손녀를 괴롭혀?”“딸, 괜찮아? 어디 다친 데 없어?”강미영이 걱정스럽게 물었다.이들 중에서 가장 차분한 건 바론이었다. 바론은 릴리가 다친 데 없는지 꼼꼼하게 살핀 후 더는 묻지 않았다.릴리도 그가 잘 살피도록 고분고분 말을 들었다. 커다란 두 눈에 의아함이 가득했다.‘누가 이 상황을 설명 좀... 대체 어떻게 된 거야?’강미영과 바론은 오기 전까지 이 일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다들 베테랑들이라 결과를 보자마자 바로 내막이 어떤지 눈치챘다.딸의 어리둥절한 눈빛에 설명해 주려던 그때 신하균이 다가왔다. 결국 강미영은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다시 삼켰다.“돌아가서 얘기해.”그러고는 신하균을 보며 말했다.“하균아, 미안하지만 여길 부탁할게. 네가 알아서 정리해줘.”신하균이 고개를 끄덕였다.“미안하긴요. 당연히 해야 하는걸요.”신하균

  • 그래, 나 부자 맞아   제99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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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 나 부자 맞아   제994화

    “...”결정이 나지 않았다. 각자 본인의 생각을 고집하느라 양보하는 이가 없었다.결국 강미영과 강학도가 한차에 탔고, 강유리와 육시준, 바론, 신하균과 릴리 5명이 한 차에 앉았다.불은 서서히 꺼졌고 차도 하나둘 떠났다.강학도는 차에 오르자 혼탁하던 눈빛이 점차 또렷해졌다. 그는 옆에 있던 딸에게 물었다.“그 형사 우리 릴리에게 호감이 있는 거 같지?”신하균은 비록 그다지 적극적이지는 않았으나 조금 전 가장 앞에 나서기도 했고 같잖은 핑계를 대면서 릴리를 바래다주겠다고 했다.“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아쉽게도 릴리가 예전처럼 그렇게 열정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요.”강미영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게 아니라면 아까처럼 좋은 기회가 있었는데 왜 그의 차에 타는 것을 거절했겠는가?불쌍한 척해서 동정심을 얻어 그 기회를 틈타 그를 공략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강학도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고심했다.그는 외손녀에게 짝사랑하는 남자가 있고 그의 직업이 형사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사실 전에는 외손녀가 힘들어 보여서 마음이 아팠었는데 지금은 그 형사가 안타까웠다.외손녀는 이미 마음이 식은 상태인데, 상대는 이제야 진지해졌으니 말이다.두 사람이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있을 때, 다른 쪽은 분위기가 아주 어색했다.차 안, 육시준은 운전을 하고 있었고 강유리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뒷좌석에는 세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릴리가 중간에 앉아서 양쪽에 있는 남자를 힐끔댔다. 그녀는 호기심이 줄어들고 지능이 상승했다.릴리는 그제야 조금 전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차를 어떻게 나눠탈지에 대해 의논했는지를 깨달았다.릴리는 당장 엄마가 있는 차로 바꿔타고 싶었다.바론은 운전석 뒤쪽에 앉아서 이따금 대각선 자리에 앉아 있는 강유리를 힐끔댔다. 그는 할 말이 많은 얼굴이었고 꽤 난감해 보였다.신하균은 조수석 뒤쪽에 앉아서 미리 준비해 두었던 약상자를 열어 필요한 것들을 꺼낸 뒤 곧장 릴리의 오른손을 쥐었다.다른 곳에 정신이 팔렸던 릴리는 누군가 자신의 손

  • 그래, 나 부자 맞아   제995화

    “이것 좀 봐. 네 여동생이 잘못됐으면 어쩔 뻔했어!”“...”바론은 누군가를 애틋하게 여길 줄도 몰랐고 누군가를 먼저 걱정할 줄도 몰랐다.그러나 딸이 엉엉 울면서 엄살을 부리는 데는 면역이 없었다. 지금처럼 말이다.그는 바로 릴리의 편을 들면서 일을 제대로 처리 못 했다는 이유로 육시준을 나무랐다.강유리는 원래 육시준에게 화를 낼 생각이었으나 릴리와 바론이 손을 잡고 자기 남편을 탓하자 순간 원망스러운 마음이 줄어들었다.특히 경호원 네 명이 다른 두 명을 상대할 수 있었고, 릴리 본인도 실력이 좋았기에 확실히 목숨이 위험할 뻔한 건 아니었다.그녀는 망설이는 눈빛으로 뒤쪽을 살짝 훔쳐보았다. 이때 신하균은 상처 부위의 소독을 거의 다 끝마친 상태였다.희고 보드라운 손을 보니 손아귀 쪽이 살짝 붉은 것을 제외하면 큰 상처는 없었다.그래서 원망스러운 마음이 사라진 강유리는 곧바로 육시준의 편을 들었다.“경호원이 네 명인데 왜 네가 나선 거야?”릴리는 시선을 내려뜨리며 자신의 손을 치료해 주는 신하균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제가 나서면 안 될 이유가 있나요? 저 엄청 강하다고요.”릴리는 아주 당당했다. 그러나 그녀를 사실 살짝 찔렸다.그녀가 먼저 나서서 싸웠기 때문에 다친 것이지, 경호원들이 본인의 의무에 충실하지 않아서 그녀가 다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당시 그녀는 육시준이 한 말을 잊고 상대에게 덤볐었다.가족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이런 상황을 혼자서 감당하려고 했던 것이 버릇이 된 탓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강유리 등을 유인하려고 파놓은 함정이라는 말을 듣자 충동적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조금만 더 상황을 지켜봤었더라면 자기편을 알아봤을 텐데 말이다.“네가 강하다고? 그렇게 강하면 다치지 말았어야지! 별거 아닌 걸로 엄살을 부리고, 자기를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다고 남을 탓하기나 하고 말이야!””강유리가 작게 투덜댔다.릴리는 시선을 들어 그녀를 보았다.“언니 변했어요. 조금 전에는 절 걱정했잖아요.”강유리는 입을 비죽였다

  • 그래, 나 부자 맞아   제996화

    고한빈은 알리바이를 만들었는데도 이곳에 나타났고 심지어 끌려갔다.참 아리송한 일이었다.사람들은 의문 어린 시선으로 육시준을 바라보았다.육시준은 앞쪽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다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그들 부자는 상대의 내막을 몰라서 진 거야. 그들의 사람을 매수하여 말을 전하게 해서 그들로 하여금 현장에 오게 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지...”그들이 출발하기 전, 고정철은 문자를 받았다. 고한빈이 교외에 있는 빌라에서 릴리와 함께 죽으려고 한다는 문자였다.고정철은 그 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최근 들어 고한빈이 매우 수상쩍었기 때문이다.그는 재산을 빼돌렸을 뿐만 아니라 빌라를 사서 개조했다. 마치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처럼 말이다.그것도 본인의 죽음을 말이다.아들이 충격을 받고 자살할까 봐 두려워진 고정철은 하고 있던 일을 내버려두고 부랴부랴 현장으로 갔다.고정철 쪽을 해결했으니 고한빈을 속이기는 더욱 쉬웠다. 계획이 실패했다고 하면 끝이었기 때문이다. 상대가 미리 준비를 해서 고정철을 잡았고, 지금 빌라 쪽 상황을 알 수 없다고 하면 되었다.이러한 상황이라면 동귀어진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아무도 동귀어진할 생각이 없었는데 말이다.다들 자신의 죽음이, 그리고 자신이 아끼는 사람의 죽음이 두려웠다.특히 고한빈은 릴리를 조사해 본 적이 있어서 그녀의 실력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릴리가 상황을 뒤엎었다는 것이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그는 심지어 경호원들을 데리고 그곳으로 향했다. 상대와 목숨 걸고 싸울 준비를 한 것이다.하지만 빌라 문을 열고 멀쩡한 모습으로 마당에 서 있는 고정철을 보았을 때, 고한빈은 자신이 당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러나 이미 늦은 상태였다. 문은 이미 잠겼다.미리 잠복해 있다가 문을 잠근 이는 고한빈이 고용한 사람이었다.아는 사이가 아니라 그저 돈을 받고 일을 하는 사람이라 고한빈의 정체가 드러날 리가 없었다.그러나 반대로 아는 사이가 아니기 때문에 그는 고한빈을 알지 못했고, 그저

  • 그래, 나 부자 맞아   제99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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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쪽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상대방도 자신만큼 놀란 모습을 상상하며 육경서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었다.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송미연은 놀랐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유리 찾으러 갔어? 프로그램을 녹화한다며 왜 그들을 찾으러 갔어? 거기는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아? 이맘때면 유리는 잠을 잘 자지도 못했을 건데...”송미연은 육경서가 철이 없이 강유리가 잘 쉬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한바탕 야단을 쳤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한 가지 중요한 소식을 알렸다.“진작 알고 있었어요?”“물론이지!”송미연은 자랑스럽게 말했다.“며느리가 임신했는데 이렇게 큰 소식을 어떻게 바로 나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있겠어? 경고하는데 너무 떠들지 마. 네 형수님을 화나게 하면 안 돼! 그냥 녹화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주리가 널 용서했어? 왜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의 가십거리를 알아내려고 해! 이번에 돌아와서 주리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넌 아예 돌아오지도 마!”...화제가 자신을 욕하는 방향으로 변해버리자 육경서의 열정은 순식간에 식어버렸고 목소리도 누그러들어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알았어요. 알았어요. 제가 원한 줄 아세요? 이것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잖아요...”“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모두 네가 자초한 거잖아! 쌤통이야!”“...”“섬에서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니 넌 주리를 잘 돌봐야 해. 난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을 살펴보고 있을 테니 넌 주리 괴롭히지 마.”송미연이 또 당부했다.육경서는 머뭇거리다가 정색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송미연은 또 몇 마디 더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육경서는 어두워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잘됐어. 아빠 엄마가 다 주리를 좋아하니 나중에 언제든지 주리는 억울함 당하는 일이 없을 거야. 적어도 내가 있는 한 억울함 당하지 않을 거야...”...점심은 빌라의 셰프가 만든 영양식이다. 맛은 좋지만 오래 먹으면 질릴 수 있어 강유리는 이 음식을 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

  • 그래, 나 부자 맞아   제1377화

    그러나 앉은 자리가 아직 따뜻해지기도 전에 육경서는 흥분된 듯 바로 일어나 소리쳤다. “뭐? 임신했다고?” 바론 공작은 짜증 섞인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목소리 좀 낮춰. 뭘 그렇게 놀라!” 그는 지금까지는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소식을 들었을 땐 당황하고 흥분했던 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육경서는 입을 막으며 어색하게 다시 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반짝이며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드러났다. ‘나 이제 삼촌 된다! 삼촌 된다!’ “의사가 말하기를 첫 3개월은 불안정하니까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공개하지 말고 태아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셨다.” 바론 공작은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그는 그 말을 끝내며 신주리를 한번 훑어봤다. “그래서 나는 유리를 위해 사람들을 안배해 가까이서 돌보게 한 거다.” 그의 시선을 느낀 신주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공작을 한 번 보고 다시 눈을 내리깔며 강유리의 아랫배를 바라봤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치 한번 만져보고 싶은 듯했지만 참았다. 그녀의 눈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육경서와 같이 흥분과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유리의 아랫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이 안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는 거야?” “맞아.” 강유리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신주리는 표정은 진지했지만 눈 속에 담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만져봐도 돼?” 육경서도 순간 정신을 차리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안 돼!” “안 돼!” 두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차갑게 외쳤다.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바로 거절했다. 강유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두 남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들에게 체면을 차리지 않았고 대신 신주리에게만 속삭였다. “조금 있다가 방에 들어가면 만져도 돼.” 육시준과 바론 공작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우리가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나?’ 육경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강유리를

  • 그래, 나 부자 맞아   제1376화

    육경서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채 입을 열려던 순간 정원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유창한 한국어로 두 사람에게 따뜻하게 인사했다. “이쪽이 둘째 도련님이랑 신주리 씨 맞으시죠? 강유리 아가씨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 부탁드려요.” 신주리가 부드럽고 예의 있게 대답했다. 육경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 왜 이렇게 때맞춰 나타나는 거지? 다른 때는 왜 안 오고, 바로 이때 오냐고!’ “잠깐만요. 저희 형수 말고 일단 먼저 빌라를 둘러보고 싶어요!” 그가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안내하는 집사를 붙잡았다. 집사는 그의 눈을 한 번 쳐다본 뒤 다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멈췄다. 신주리는 미소를 띤 채 침착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낯을 가려서 그래요.” 육경서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낯을 가린다고? 왜 그렇게 갑자기...’ 집사는 이해한 듯 웃으며 공작님도 그들의 방문을 매우 기쁘게 생각해 오늘 특별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육경서는 그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않았고 눈앞의 신주리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주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 너무 쉽게 대답해서 다시 부정하려는 건가?’ 그들이 정원으로 들어섰고 이곳은 여전히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한쪽에서 차와 다과가 준비된 작은 테이블이 보였다. 강유리는 햇볕을 가린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육시준이 전화를 끊고 있었다. 바론 공작이 불만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그 전화기 들고 있으면 안 돼! 그렇게 바빠? 전자기기 방사선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지? 의사 선생님이 말했잖아. 첫 세 달은 불안정하다고, 푹 쉬어야 한다고!” 육시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난달에 돌아갔으면 이미 처리했을 일인데요.” 바론 공작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일이라는 게 끝날 수 있나? 돌아가면 내 딸과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까 몰라!” 육시준이 말하려던 순간 강유

  • 그래, 나 부자 맞아   제1375화

    감독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강하게 반박하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규정에 따르면 녹화 중에는 제작진 팀을 이탈하면 안 됩니다.” 역시나 신주리는 가볍게 되물었다. “녹화 시작할 때 그런 규정은 없었잖아요? 갑자기 추가된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그럼 우리를 일부러 견제하려는 건가요? 그럼 그냥 프로그램 안 하면 되죠?” 감독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 첫 번째 시즌에서 육경서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 그는 이미 이 두 사람에게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조건을 협상하든 규칙을 정하든 이 둘이 하겠다고 하면 다행이고 안 하겠다고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결국 이를 악물고 그는 포기했다. “알겠어요, 알겠어! 두 분 다 제가 졌습니다! 하지만 어디 가든 꼭 행선지를 알려주시고 제작진 팀에서 두 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점심 먹고 바로 돌아올게요!” 신주리가 대범하게 말했다. ‘점심도 먹고 온다고?’ 하지만 그가 불만을 표현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이미 유유히 그의 앞을 지나쳐 나가버렸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감독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강 대표님, 경서 씨랑 주리 씨가 지금 강 대표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효과를 위해서 행선지에 대한 건 절대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감독이 진지하게 말했다. 강유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만약 제가 발설하면요?” 감독은 순간 당황했다. 그는 이런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우리 회사의 프로그램 아니었나?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 거야? 시청률이 안 오르면 강 대표님에게도 손해 아닌가?’ 감독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든 이 대형 회사를 설득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강유리는 그의 말을 끊으며 다시 말했다. “농담이에요. 발설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

  • 그래, 나 부자 맞아   제1374화

    비행기에 오를 때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고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음 날 새벽이었다. 제작진 팀은 미리 준비한 차를 타고 그들을 예약된 호텔로 보냈다. 해변가에 위치한 경치가 아름다운 5성급 호텔이었다.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제작진 팀 정말 큰돈 쓴 거네! 이게 진짜 여행 같아!” “그렇지. 갑작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일정은 꽤 합리적이네!” “응, 또 감사한 건 처음에 우리 주리랑 경서에게 그 사건이 터진 후로 대우가 점점 더 좋아졌다는 거야. 그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얻은 거라니까!” 모두가 웃으며 체크인 절차를 마쳤다. 그때 감독 팀에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내일은 섬으로 갑니다.” 모두들 당황했다. ‘그래서 목적지는 여기가 아닌가?’ “목적지는 반대편에 있는 작은 관광 섬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관광업이 급성장했습니다. 얼마 전 이 섬의 소유자가 바뀌어서 다시 한번 큰 화제를 일으켰죠.” 감독이 그렇게 말하자 신주리는 점점 더 익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바론 공작이 유리에게 선물한 섬이죠?”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육경서는 감탄하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우리 형수를 설득했어요?” 감독 팀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지 않았다. 실시간 채팅창에서는 감탄이 이어졌다. [유리 언니가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진짜 대규모로 투자한 거네!] [하하하, 유리 언니가 투자한 건 아니야. 그냥 완전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덕분에 도련님과 미래의 동서가 혜택을 보는 거고!” “나도 섬 주인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유리 언니 우정 출연할지 궁금하다!” 아침 식사 후 모두 방으로 돌아가 시차를 맞추기 위해 잠을 청했다. 카메라는 잠시 쉬어갔다. 신주리는 비행기에서 잠깐 눈을 붙였기에 이제는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호텔 방을 몰래 빠져나

  • 그래, 나 부자 맞아   제1373화

    심지어 원피스까지 캐리어 하나에 다 준비해 놨다. “안 믿을지 몰라도 내가 쇼핑 리스트까지 작성했어. 엄마한테도 참고를 부탁했거든! 원피스는 엄마가 골랐어. 안심해, 눈썰미는 진짜 좋아!” 말을 하면서 그는 정말로 쇼핑 리스트를 꺼내서 신주리에게 보여줬다. 신주리는 그 리스트를 보지 않아도 이미 믿고 있었다. 심지어 조금 놀랐다. “너 그럼 네 짐은 어쩌고? 얼마나 챙겨왔어?” “짐 하나야. 나중에 필요하면 제작진 팀에 부탁할 거야!” 육경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 신주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육경서를 바라보고 있었던 탓인지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를 쳐다보던 신주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육경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왜?” 신주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려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많아?” 육경서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많은 건 아니야. Y 국에 있는 우리 회사 지사에서 몇 가지 더 준비해 줬거든...” 그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칫했다. 불필요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신주리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갑자기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목적지는 네가 제작진 팀에 요청한 거 아니야?” “무슨 말이야?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아?” 육경서는 당황한 듯 대답했다. “네가 그런 사람 아닌가?” 육경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고백했다. “맞아, 그런 사람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아니야! 사실 내가 쓴 목적지는 원래 해변이었어. 이런 건 결국 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잖아.” 신주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제는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진태와 소지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진태는 진지하게 소지석에게 도씨 가문의 그 양성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계획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완전히 그들

  • 그래, 나 부자 맞아   제1372화

    [하하하, 이게 무슨 이상한 조합이야? 어쩐지 묘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또 웃기기도 하네!] [처음부터 차 안에서 자리싸움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어색하지는 않았겠지.] [우리 지원 언니 한마디로 모든 흐름이 뒤집혔어!] [강미영은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우리 지석이를 일부러 피하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지석 팬들 너무 이기적이지 마! 누구든 미영 언니에게 다가갈 수 있고 미영 언니는 모두를 거절할 권리가 있어!] 좌석이 정리되고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자 라이브 방송은 일시적으로 종료되었다. 이런 24시간 라이브 촬영 프로그램에서도 이렇게 잠깐 동안만은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미영은 라이브 방송이 종료된 뒤 의아한 표정으로 한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왜 한지원이 굳이 자신과 함께 앉으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누가 자신에게 같이 앉자고 했어도 마다하지는 않았겠지만... “미영 언니, 난 저 커플 팬이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그러니까 제발 내 최애 커플 깨지지 않게 도와줘!” 한지원은 진지한 얼굴로 이유를 털어놓았다. 강미영은 살짝 멍해지더니 결국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앞으로 네 최애 커플 잘 지켜주도록 할게.” 한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밝게 웃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내 최애 커플이 마음 편히 연애할 수 있게 됐어!” 강미영은 눈가를 약간 찡그리며 물었다. “근데 언제부터 걔네 둘의 팬이 된 거야? 그리고 지금 걔네 둘 관계 꽤 안정적이던데 내가 굳이 뭐 하러 그걸 망치겠어?” 한지원은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영 언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이런 카메라 밖에서의 달달한 순간들이지.” 강미영은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혹시 영감이라도 떠오른 거야?” 한지원은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의 작은 호의 하나가 한 명의 유명 만화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어!” 강

  • 그래, 나 부자 맞아   제1371화

    그는 단지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강미영에게 그를 좀 더 이해할 기회를 주고 소지석에게는 그가 혼자서만 밀어붙이지 않도록 눈에 띄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이 행동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 팬들은 그를 오해하거나 비판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서진태는 너무 경계가 없지 않나요? 경쟁하고 싶다 해도 이렇게까지 급하게 해야 하나요? 왜 꼭 같이 앉아야만 하는 거죠?] [맞아요! 강미영 언니는 분명히 불편해 보였고 바로 피해서 조수석에 앉았잖아요!] [좋아한다고 해도 좀 경계를 두고 해야죠.] [근데 소지석 팬들 너무 이중잣대 아니에요? 오빠가 같이 앉고 싶으면 직설적으로 다가가도 ‘멋지다, 드디어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서진태가 다가가면 ‘경계가 없다’고 비판하잖아요?] [맞아요. 서진태는 사실 강미영 언니와 앉고 싶은 것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댓글창은 점점 떠들썩해졌다. 신주리와 육경서의 강미영에 대한 이해도는 완벽했다. 감정상에서 경쟁이 시작되면 그녀는 주저 없이 피할 것이다. 강미영은 감정을 물건처럼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에서는 남성들끼리의 경쟁이나 여성들끼리의 경쟁이 감정을 더 순수하지 않게 만들 수 있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런 외적인 압박이 감정을 더 강화시키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사실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지는 걸 참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와 고정남의 관계도 그랬다. 주위에서 반대할수록 더 진지하게 여겨졌던 그 감정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엉망이 된 감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네가 졌으니까 내 선물 잊지 말고 사 와.” 신주리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육경서는 그 결과를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돌아서서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번엔 네가 이겼어.” 신주리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이번? 그럼 다음에도 나랑 내기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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