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신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하지만 이미 늦었다.릴리는 핸들을 왼쪽으로 틀고 곧장 도로 옆을 향해 부딪혔다.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아 부딪혀도 죽지는 않을 것이다.그리고 죽는다고 해도 그 사람이 릴리는 아니다...릴리는 손을 쓰기 전에 이미 마음속으로 계산을 끝냈기 때문에 행동할 때 한 치의 주저도 없었다.고우신이 순발력으로 핸들을 옆으로 약간 튼 덕분에 차는 도로를 스쳐 지났다.“너 미쳤어!”고우신의 목소리가 부쩍 높아졌다.“맞아요. 저는 기분이 나쁘면 미쳐버리는 경향이 있어요.”힘을 꽉 주고 있는 손과 달리 릴리의 목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차분했다. 고우신이 동공 지진을 하고 무슨 말을 하려는 찰나 차는 이미 그린벨트와 충돌했다.릴리는 이번 내기에서 이겼다. 실랑이를 벌이는 틈을 타 고우신이 브레이크를 밟았다.‘펑’하는 소리와 함께 강력한 충돌에 두 사람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릴리는 미리 계획했던 것처럼 손으로 시트를 잡고 안전벨트의 힘을 빌려 빠르게 다시 균형을 잡았다.하지만 고우신은 허둥지둥하다가 핸들에 머리를 부딪혔다.상대방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틈을 타서 릴리는 재빨리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재빨리 휴대폰 잠금을 풀고 신하균에게 위치를 다시 보냈다. 이번엔 강유리에게도 위치를 보냈다.현 위치는 고성그룹과는 거리가 있다. 그들의 예리함이라면 이상함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이 모든걸 마친 후 전화를 걸려는데 릴리는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했다...두 줄기의 눈부신 불빛이 릴리가 눈을 뜰 수 없게 했다.릴리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눈을 막았다. 뒤에 있던 두 대의 승용차가 재빨리 따라오더니 릴리를 앞뒤로 막았다.고우신은 머리를 비비며 운전석에서 비틀비틀 내렸다.‘뭐야 따라온 사람이 더 있었어? ’‘하긴, 이 멍청한 놈이 혼자서 이런 일을 벌일 리는 없지.’승용차에서 검은 정장을 입은 경호원이 내리더니 릴리의 손에 들린 휴대폰을 낚아채 땅에 세게 내던졌다. 휴대폰이 땅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다
차가 시동을 걸 때까지 고우신은 자신 납치범에서 납치 피해자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릴리의 손목에 지어진 매듭은 전통적인 매듭으로 발버둥 칠수록 더욱 조여든다. 그래서 릴리는 아예 힘을 아끼려고 움직이지 않았다.하지만 트렁크는 좁고 둘 다 움츠려 있어서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차가 두 대나 있는데 굳이 같은 트렁크에 넣을 게 뭐야. 저 여자 바보 아니야! 자원 분배도 모르나?”“지금 욕할 기분이 들어?”고우신은 분노와 충격에 휩싸였다.그가 분노할수록 릴리는 더욱 차분해졌다.방금 그가 바보같이 자기편을 들어주다가 함께 묶인 것을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둘은 남매 아니었나요? 한 편 아니었어요? 이렇게 간단히 배신당한다고요?”고우신이 분노하며 말했다. “지금 똑같이 묶인 상황에 꼭 날 비웃어야겠어?”“저희 둘은 다르죠. 저는 원래도 납치당할 상황이었고 당신은 배신당한 거잖아요.”릴리는 여유롭게 손목을 휘적였다.“...”그가 아무리 어리석더라도 지금 상황이 유리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처음에 성신영은 그와 릴리의 관계를 이간질하려고 했다. 릴리가 고성그룹의 재산을 노리고 있다고 그를 선동했다.그리고 이 망할 계집애가 권력을 넘기도록 계획을 마련해 주었다...고우신은 성신영의 계획이 실행 가능하다고 생각하여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다.성신영은 끊임없이 그를 세뇌시키며 오늘 밤이 가장 적합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이후에는 이런 기회를 찾기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오늘 밤이 지나면 모든 일이 결정되어 다시는 되돌릴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했다.고우신은 비록 성신영의 계획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관점에는 찬성했다.하지만 그는 자신의 모든 행동을 성신영이 감시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지루한데 둘이 어떻게 엮이게 됐는지나 얘기해 보시겠어요? 성신영 같은 여자를 이렇게나 오래 믿다니. 당신도 정말 대단해요. 요 몇 년 동안 밥은 거저먹었나 봐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키만 크고 지능은 하나도 안 높
릴리의 추측이 맞았다. 10분도 안 되어 차의 속도가 느려졌다.그리고 마침내 천천히 멈추었다.트렁크를 열자 눈부신 빛이 비춰들어 릴리는 한순간 적응하지 못하고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밝기에 적응한 후에야 릴리는 바깥 환경을 훑어보았다...“둘을 들여보내. 우리 오빠는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예.”이 지시대로 릴리와 고우신은 경호원들에 의해 어깨에 메어져서 들어왔다.거꾸로 된 느낌은 좋지 않았지만 트렁크 안보다는 시야가 넓었다.릴리는 재빨리 주위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대충 상황 파악이 되었다.이곳은 확실히 고한빈이 사들인 정원이 맞다. 서울에서 100km 정도 떨어져 있는 교외 공장 지역에 가깝다.하지만 공장 구역도 그가 사버렸으니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아무도 모를 것이다.그때 이곳을 찾아냈을 때 릴리는 몰래 와서 이쪽 상황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멀리서 보았을 뿐 들어오지는 않았다. 이 허름한 곳에 발 디딜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었다.그 당시 릴리는 순진하게 이곳이 단지 돈세탁을 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퍽! “윽!”릴리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딱딱하고 차가운 바닥에 릴리는 뼈가 아파왔다.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몸을 추스른 릴리는 일어나 앉아 주위를 살폈다.이 정원의 내부환경은 외관과 일치한다. 모두 낡고 허름하다. 의자와 일부 가구는 눈으로 봐도 몇 년은 되어 보였다. 그리고 나무는 모두 썩어 있었다.옆에는 유럽식 가죽 소파가 있었는데 가죽이 벗겨지고 내용물이 보였지만 이 중에서는 그나마 깨끗해 보였다.성신영은 이 유일하게 깨끗한 소파에 앉아 한가롭게 손가락을 놀고 있었다.“보아하니 캐번디시 집안의 공주님이 고성그룹의 폐인 도련님보다는 확실히 더 총명하군요. 보세요. 납치당한 긴장감이 전혀 없잖아요.”성신영이 웃으며 말했다.릴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고우신이 입을 열었다. “성신영!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이 사람들은 다 어디서 온 사람들이고!”성신영은 입을 가
릴리는 말로 성신영의 주의를 돌렸다. “그가 당신한테 얼마를 주었길래 당신이 이렇게 목숨 바쳐 일할 수 있는 겁니까?”고우신은 어리둥절하여 고개를 돌려 목소리를 낮추고 릴리에게 물었다.“누가 뭘 줬는데?”“꺼져!”릴리는 전혀 그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이 멍청이! 저 미친 여자가 자기를 엄청 신경 쓴다는 걸 모르나?’그가 자기를 감싸는 모습을 보일수록 성신영을 더 자극하는 셈이다...“목숨을 바친다고?”성신영이 시큰둥하게 웃었다. “그 사람이 뭐라고? 명분도 없이 더러운 돈만 좀 있는 주제에 무슨 자격으로 나더러 목숨까지 팔게 하지?”“그래서. 그가 당신에게 돈을 주었나요? 당신이 다른 곳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을 만큼?”릴리는 흥미를 보였다.성신영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릴리를 내려다보며 웃었다. “시간을 끌면 누군가가 너를 구하러 올 것 같아?”두 발이 풀렸지만 릴리는 급하게 움직이거나 발목의 줄을 던지지 않았다.여전히 묶인 자세로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네가 똑똑하다는 것을 알아. 그리고 강유리와 텔레파시가 잘 통한다는 것도 알고. 아마 너를 구하러 오고 있겠지.”성신영은 앞으로 두 걸음 나아가 릴리 앞에 반쯤 웅크리고 앉아 한 마디 한 마디 말했다.“하지만 그들이 너를 구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죽으러 오는 거라면?”릴리는 머릿속에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다.그리고 릴리의 추측에 부응하듯 은은하게 코를 찌르던 주변의 냄새가 더욱 선명해졌다.나무 썩은 냄새 사이로 휘발유 냄새가 났다...“뭘 하려는 겁니까?”릴리가 진지하게 말했다.“내가 뭘 할 수 있겠어? 나는 단지 모두를 저승으로 데리고 가고 싶을 뿐이야. 이승에서 강유리를 이길 수 없다면 아래에 내려가서 계속 싸워야지.”“...”릴리는 입을 떡 벌리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납치된 후로부터 지금까지 릴리는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당황했다.‘미친년. ’이 여자는 정말 릴리보다 더 또라이다.머릿속에 많은 일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방금 고우신
고우신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바닥과 닿은 손에 날카롭고 차가운 무언가가 잡히는 것 같았다. 고우신은 아무도 모르게 그 물건을 꽉 움켜쥐었다.성신영은 고우신의 모습에 너무도 화가 나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원래는 그냥 풀어줄 생각이었는데 동생을 이렇게도 끔찍하게 아끼니 그냥 같이 죽어요!”그녀는 티테이블 위의 도자기를 바닥에 냅다 던졌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밖에 불이 반짝였다.불길이 점점 거세지더니 순식간에 빌라 밖을 집어삼켰다.성신영은 미친 듯이 웃으며 릴리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네 언니도 곧 올 거야. 네가 죽든 살든 무조건 안으로 들어올걸?”릴리는 그녀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목을 조여 죽이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으며 그녀의 얘기를 계속 들었다.“난 당신들이랑 함께할 생각 없어. 이 일이 끝나면 명성과 목숨 다 가질 거거든. 그리고 당신들이 죽어야만 내가 더 멀리 날아갈 수 있어. 안 그러면 타향에서 편히 못 지내. 하하...”그런데 성신영의 웃음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제압당해 바닥에서 반항조차 할 수 없었던 릴리가 벌떡 일어났기 때문이었다.릴리는 빠른 몸놀림으로 경호원들을 가볍게 피한 뒤 성신영의 옆으로 다가가 한 손으로는 그녀의 팔을, 다른 한 손으로는 목을 꽉 잡았다. 그러고는 검지에 낀 반지에 감춘 날카로운 칼로 그녀의 대동맥을 겨누었다.“나랑 같이 죽을 용기는 없나 봐요? 차라리 잘됐네요. 난 죽는 게 두렵지 않거든요.”경호원이 몇 발짝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릴리가 칼을 들고 있어 결국 그 자리에 멈추는 수밖에 없었다.릴리는 그녀를 인질로 잡은 채 일어나는 고우신을 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다 비켜! 우신 오빠, 가서 대문 열어요.”원래는 궁지에 몰린 이상 그냥 마지막 발악이나 하려 했는데 전부 다 연기였을 줄은 몰랐다. 죽고 싶지 않다면 얘기가 달라지지...불길이 점점 더 거세지자 방 안의 온도도 급격하게 상승했고 연기도 자욱해졌다.한시도 지체할 수 없었던 고우신은 손목을 묶고 있던 끈을 자른 후 자리
“아무 일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그럼 다행이고.”차가 빠르게 달려 빌라에 도착했을 때 불길은 놀랄 정도로 매우 거셌다.강유리는 그 광경을 보자마자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재빨리 차에서 내려 본능적으로 앞으로 달려가려는데 육시준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조금만 더 기다려.”강유리는 한시도 지체할 수가 없었다.“더 기다렸다간 누구 하나 죽어 나가겠어. 이게 지금 괜찮은 거로 보여?”육시준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뭐라 얘기하려던 그때 경적이 들리더니 점점 가까워졌다. 곧이어 낯익은 차 한 대가 눈앞에 나타났다.육시준은 고개를 돌려 다가오는 경호원에게 눈짓을 보내고는 입을 열었다.“문 열어.”경호원은 고개를 끄덕인 후 재빨리 다가갔다.강유리는 그가 확신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시름을 놓을 수가 없었다. 사람 목숨으로 장난칠 수도 없었고 릴리도 걱정되어 다급한 마음에 경호원과 함께 문을 부쉈다....방 안의 릴리는 처음에 경호원과 대치하면서 어떻게 탈출할까 계속 머리를 굴렸다. 그러다가 밖에 인기척이 들려오자 성신영이 고소해하며 말했다.“왔네! 네 언니가 널 구하러 왔나 봐. 그런데 아쉬워서 어쩌나? 마당에 다른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몰라서. 이곳은 한번 들어오면 나갈 수 없어...”릴리는 온몸을 파르르 떨었고 두 눈에 살기도 스쳤다.“그럼 당신 소원대로 다 같이 죽죠, 뭐.”미친 듯이 웃던 성신영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어떻게 된 건지 파악하기도 전에 무릎이 찌릿했다.“으악!”성신영은 비명을 지르면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무릎을 꿇은 순간 눈앞에 검은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더니 의자를 들고 그녀의 다른 한쪽 멀쩡한 다리를 힘껏 내리쳤다.“으악!”돼지 멱따는 소리와 함께 성신영은 바닥에 움츠러들었다.고우신은 릴리의 민첩하고 잔인한 움직임을 보고 여간 놀란 게 아니었다. 말릴 틈도 없이 릴리는 티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녹이 슨 과일칼을 들고 경호원을 향해 달려갔다.맨 앞에 서 있던 두 경호원은 릴리의 모습을 보고도 한 치
릴리는 본능적으로 주먹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완전히 낯선 얼굴이었는데 정말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그들을 납치했을 때도 이 사람은 이곳에 있었다.대체 어떻게 된 걸까?어리둥절한 건 그녀뿐만이 아니라 목을 움켜쥔 경호원도 멍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경호원은 계속 공격하려 했다.2대 1로 싸우는 건 누가 봐도 불공평했다. 옆에서 무뚝뚝하게 지켜만 보던 다른 경호원도 이 싸움에 끼어들었다.상황이 점점 이상하게 돌아갔다. 방에 총 여섯 명의 경호원이 있었는데 지금 2대 2로 싸우고 있었고 나머지 두 명은 여전히 강 건너 불구경했다.릴리는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구경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물었다.“당신들 대체 누구 편이야?”“우린 릴리 씨의 안전만 책임지면 됩니다. 보스께서 릴리 씨가 우릴 때리지 않는 이상 가만히 있으라고 하셨거든요.”‘어쩐지... 이러니까 아까 가만히 있었지.’릴리는 손잡이가 끊어진 과일칼을 던지고 저릿한 손목을 어루만졌다.“그럼 날 공격한 저 둘은 뭐야?”그러자 상대가 대답했다.“성신영 씨가 데리고 온 사람입니다. 보스께서 이 연기가 실감 나려면 저 사람들을 남겨야 한댔어요.”“당신네 보스가 혹시 육시준이야?”릴리는 그제야 조금 이해가 갔다.“네.”‘그런 거였구나. 언니가 형부한테 계획이 있다더니 정말로 있었어.’하지만 이 계획이 너무도 진짜 같아서 조금 전 하마터면 상대와 같이 죽으려 할 뻔했다. 자기편이 있는 줄 진작 알았더라면 아까 그렇게 진지하게 싸우지도 않았을 텐데.릴리가 뭐라 얘기하려던 그때 교전 중이던 한 경호원이 자기 보스의 호감도를 사기 위해 한마디 했다.“릴리 씨, 저의 보스는 육 회장님이 아니라 신하균이에요. 릴리 씨의 안전이 걱정돼서 저더러 따라가라고 했거든요.”릴리는 할 말을 잃었다.‘굳이 그렇게까지 확실하게 선을 그을 필요는 없는데. 그러니까 저 사람들은 다 연기라는 걸 알고 있었고 나만 진지했다 이거야? 아,
상대는 릴리를 죽이려고 여러 번이나 치명적인 공격을 퍼부었지만 릴리는 전부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마지막에 그 칼이 부러지지 않았더라면 상대는 아마 이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고우신은 지금까지 안일하게 살아왔다. 유일한 자극이라면 아마 레이싱카를 타고 질주할 때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 비하면 레이싱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릴리의 잔인하고 과감한 움직임을 보면 이런 상황을 대체 얼마나 겪었는지 가히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대체 얼마나 싸워야 이 정도가 된단 말인가...고우신의 머릿속은 여전히 뒤죽박죽이었고 그를 신경 쓸 기분이 아니었던 릴리는 곧장 밖으로 나가려 했다.불길은 점점 더 거세졌고 연기도 마구 들어와 오래 머무를 곳이 아니었다. 게다가 언니까지 데리러 왔다니 신속하게 나가야 했다.그런데 옆에 서 있던 두 경호원이 릴리를 막으면서 귀띔했다.“아가씨, 잠시만요.”릴리의 날카로운 눈빛에 두 경호원은 긴장한 얼굴로 다급하게 설명했다.“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육 회장님 아직 안 오셨어요.”혹시라도 릴리가 따귀라도 때릴까 두려워 아주 빨리 말했다. 설령 릴리가 때린다고 해도 그들은 감히 반격할 수 없었다.다행히 말이 끝나자마자 문밖에서 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문을 들이박는 소리였다. 경호원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오셨네요.”두 경호원은 조금 전 릴리와 싸웠던 두 사람을 아주 쉽게 제압해버렸다. 수단이 어찌나 잔인한지 릴리 못지않았다. 게다가 릴리보다 더 강했는데 딱 봐도 프로였다.두 사람을 제압한 후 팔을 부러뜨렸고 발로 다리 관절을 가차 없이 짓밟았다. 비명과 함께 임무를 마친 네 사람은 창문을 통해 소리 없이 사라졌다...그 모습에 릴리는 말을 잇지 못했다. 현장에 성신영과 고우신, 릴리, 그리고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두 경호원만 남게 되었다. 참으로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다.릴리는 잠깐 멈칫하다가 매캐한 연기를 참으며 고우신을 협박의 눈빛으로 돌아보았다. 눈치 빠른 고우신은 어찌해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