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문이 나간 후, 릴리는 잠시 냉정해진 뒤 느릿느릿 일어났다.화장실 가는 길에 그녀는 이 작은 아파트의 배치를 살펴보았다.스타일이 간결하고 장식이 별로 없어 방안은 쓸쓸하게 느껴져 거주한 흔적이 별로 없다.독신남자의 거처라고 하지만 방금 그녀가 묵은 침실에는 분명히 여성스러운 것이 있는데, 예를 들면 스탠드나 화장대 같은 것이었다.슬리퍼도 발에 잘 맞아서 임시로 사온 것 같지는 않았다.화장대 위에는 어지럽게 널려 있는 병들이 모두 유명 스킨케어 제품들이었다.일회용 세면도구도 많이 있었다.그녀는 양미간을 찌푸렸다.겉으로는 시크한 신한문이 몰래 여자를 이렇게 많이 만난다고?호화로운 집에 미녀를 데려다 노는 거겠지?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반쯤 쓴 크림을 집어들어 두 눈을 훑어보고는 혀를 내둘렀다.한 사람당 한 스킨케어 제품인건가?돈 지랄을 하네 진짜.앞에 다녀 온 여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 모르겠다.경멸하듯 유리병을 유리 테이블로 던지고 테이블 표면을 따라 원을 그리며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씻고 아침 먹을 마음이 사라지자 미련 없이 돌아섰다.응접실을 지날 때, 곁눈으로 신한문이 식탁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이 언뜻 보였는데 마치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신한문은 식탁 앞에 앉아 그녀를 따라 입구까지 시선을 옮겼고,눈초리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약간 틀어졌다.“아침 안 먹어요?”"한문 씨가 준비한 아침 식사는 제가 받을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다른...”말이 여기까지 나오다 말았다.신발을 신는 동작도 멈췄다.신발장은 여성용 신발로 가득 차 있고, 하이힐이 많고, 각양각색의 브랜드가 있었다.맨 앞줄은 눈에 익었는데 대부분 레드카펫을 밟은 신주리가 신은 신발이었고 알아보니 모두 패션위크 한정 신상품이었다.그녀의 패션계 인맥을 이용해 맘에 드는 신발을 집으로 가져가 그녀의 신발장에 진열했다.익숙한 스타일들이 시각적 충격을 안겨 주었다.숙취 후 흐린 머리가 갑자기 맑아졌다.혹시 여기가 신주리의 집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릴리의 입술이 천천히 곡선을 그리고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음식을 능숙하고 천천히 자르며 말했다."어젯밤 왜 고성그룹으로 가지 않았어요?”신한문이 눈꺼풀을 올리지 않고 말했다.“고성그룹에는 주정뱅이를 케어할 사람이 없으니까요.”릴리의 웃음이 사라졌다.“...”고성그룹이 별로인가 보네.그녀는 몇 초간 묵묵히 있다가 다시 물었다."제가 어떻게 올라왔죠? 왜 기억이 안 나지?”남자는 물컵을 들어 한 모금 마셨고 그녀의 애매한 말투에 개의치 않고 말했다."인사불성인 사람에게 기억을 바라지 않습니다.”"그래요? 그럼 인사불성이 된 사람이 어떻게 올라왔죠?”릴리는 빙그레 웃으며 계속 추궁하자 신한문이 미적지근하게 말했다."어떻게 올라올 수 있겠어요. 들쳐메고 올라왔죠."릴리의 얼굴에 미소가 눈에 띄게 사라졌다.그래, 이 무뚝뚝한 남자가 어떻게 공주님 안기를 했겠어.그건 사치지.그녀를 지하실에서 하룻밤 묵게 하지 않은 것만 해도 이미 그의 가장 큰 배려였다.“고맙습니다.”“천만에요.”“...”식탁은 조용하고 음식을 씹는 소리만 들린다.신한문은 살짝 눈을 들어 음식물을 입에 가득 넣은 채 볼을 불룩하게 부풀린 작은 햄스터 같은 여자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의 눈매가 부드러웠다.다시 말꼬리를 틀었지만 혼 내는 말투였다."앞으로는 술 취해서 남자 집에 가자고 하지 마시죠. 안 그러면 언제 손해 볼지도 모르는데. 여자가...”"조선시대에서 오셨어요?”릴리가 포크를 잡고 눈을 들어 그를 엷게 바라보았다.의혹의 눈빛에 그녀가 말했다."여자가 왜요? 여자가 여기처럼 좋은 곳에서 자는 것도 사실은 밎진게 아니라 번거에요. 다행히 제가 주사가 없어서 망정이지 주사 있는 여자였으면 당신은 어젯밤에 끝났어요. 당신 그렇게 쉽게 여자들을 집에 데려오면 조만간 손해를 볼 거에요!”신한문은 수저를 내려놓고는 갑자기 웃었다.“정말 자기 처지를 조금도 걱정하지 않아요?”원래 그는 그녀가 진정되면 그녀에게 설명하려고 했는데, 어젯밤에 그는 여기에서 자
신한문이 말하려 할 때 릴리가 먼저 말했다."해명은 남들이 믿든 안 믿든 상관없지만 사과는 남들이 받아줘야 하는 것 아니에요?”그가 자신과 같은 변명을 할까봐, 남들이 믿든 말든 상관없이 해명만 하면 된다는 뜻이었다.그녀는 방금 그의 퇴로를 막았다.오늘의 신한문은 유난히 말을 잘 들었고 그녀를 인정해 주었다."그렇죠,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받아들일 수 있어요?”“...”릴리의 눈꼬리가 가늘어지고 눈 밑은 반짝반짝 빛났다.”어떻게 해도 되요?”신한문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도덕적 선에 어긋나지 않고, 풍속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그럼 내 남자친구는요?”신한문의 그윽한 눈동자가 그녀의 얼굴에 떨어졌다.보조개가 진 여자의 웃음은 꽃처럼 보였다. 그녀의 얼굴은 순진하고 단순했으며 웃음은 맑고 깨끗하여 마치 세상 물정에 어두운 소녀 같았다.물론 눈밑에 감출 수 없는 교활함이 있었지만.그는 입을 열려고 했지만 상대방은 오히려 손을 내저었다."농담이에요.”남자는 안색이 어두워지고 언성이 낮아졌다.“농담 싫어한다고 했는데요.”릴리의 눈썹꼬리가 가늘어지며 말했다. "그래요, 앞으로 이런 농담은 하지 않을게요.”신한문은 차가운 입술이 움직였다가 말을 멈추었다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릴리는 스스로 어색함을 풀고, 한 손으로 뺨을 괴고 생각을 하면서 무엇을 요구하면 좋을지 중얼거렸다."이렇게 하죠. 전 꽤 오랫동안 국내에 있을 거에요. 제 경호원이 되어 줄래요?”신한문이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고 차갑게 부정했다. "나는 직업이 있어요. 한가한 사람이 아니에요 아가씨.”"하긴, 일이 그렇게 바쁜데.”신한문이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뭐 하길래 경호원이 필요해요?”릴리가 눈꺼풀을 늘어뜨리고 작은 손으로 포크를 잡고 음식을 무심코 찌르다가 결국 올려다보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학교 가기 싫다고 생각해요.”"학교를 안 다닌다고요? 그러면?”"언니처럼 사업을 하고 싶어요. 하
”...”"그리고 우리 형부도 알았어요. 그들이 우리 관계를 오해하는 거 아니에요?”“...”아침 식사는 침묵 속에서 끝났다.신한문은 무표정한 얼굴 같지만 사실은 머리가 아팠다.그는 육시준의 사람됨을 알고 있었다. 그의 보호 범위는 자신이 아끼는 사람에 국한되지 않고 자신이 아끼는 사람이 신경 쓰는 것도 있었다.그 사람이 자기와 릴리를 오해하면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아침 식사 후 그는 에둘러서 사람을 쫓아냈다.“모셔다 드릴게요."릴리는 소파에 웅크리고 있는데 자리를 옮길 생각이 없는 모습이다."유리의 결혼식 날 당신이 받은 돈 봉투 바꿨어요?"신한문이 침묵하자 릴리가 참지 못하고 똑바로 앉았다.“저는 차 한 대와 집 한 채를 가지고 있어요!”침묵이 턱을 살짝 치켜들며 말했다."바꾸러 같이 가죠.”릴리는 그의 집에 틀어박혀 그를 놀리려고 했지만 지금은 더 흥미 있는 일이 있어서 그런 나쁜 생각들을 제쳐놨다.게다가 그가 같이 가자고 했다.10분 후.검은색 차량이 지하 차고를 빠져나와 갓 들어온 롤스로이스를 스쳐 지나갔다.롤스로이스 안에서 강유리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주소를 보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신한문 씨 밖에 작은 아파트가 따로 있어? 점잖은 척 하더니 여자가 많나 보네.”육시준은 옆을 힐끗 쳐다보더니 말했다."그럴 마음이 있어도 시간이 없을테니까 아마 이곳은 신주리의 거처일 거야.”“...”강유리는 그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그때, 차가 차고에 들어서자마자 유턴을 하려고 해서 그녀가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왜? 길을 잘못 들었어?"육시준이 말했다. "방금 그들의 차가 나가는 걸 봤어.”“?”이럴 수가!롤스로이스는 유턴을 하고 빠른 속도로 차고를 빠져 나갔다.강유리의 작은 얼굴은 흥분되어 있었는데 아마도 속도의 영향 때문인지 온몸의 피가 점차 끓어오르기 시작했다.그녀는 앞에 있는 검은색 지프차를 노려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너무 자극적이야! 여보, 우리 지금 작전하는 것 같지
강유리는 신주리로부터 주소를 달라고 했다.여자들이 가십을 좋아한다는 걸로 미루어 봤을 때 신주리가 가만 있을리가 없다.그리고 그녀는 자기 친구나 남자를 데리고 올지도 모른다.그러자 그가 말을 보충했다."세 명 혹은 그 이상.”이쪽에서는 한가하게 내기나 하고 있었지만 앞차의 분위기는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차 안에 네 사람.한 사람이 운전을 하고, 다른 세 사람은 눈이 휘둥그레져 서로 다른 생각을 했다.조수석에 앉은 육경서는 운전석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그의 무표정이 없어지는 모습을보고싶어 안달났다.뒷좌석에 앉은 신주리는 옆자리의 릴리를 보며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다.결국 그녀가 먼저 입을 열어 침묵을 깼다."그래서 그를 잡기 위해 원칙도 포기한 거야?”"아니. 네 오빠가 어젯밤에 같이 안 잤다고 했는데. 아마 여기서 안 잤을 거야."조심스레 웃는 얼굴은 평소 날뛰던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났다."아마도?”신주리는 목소리를 높였다.“왜 이렇게 아무렇지 않아?”그녀는 강유리로 부터 이 두 사람이 어젯밤에 같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릴리가 귀국할 때 그녀는 그들이 만나지 않도록 조심했지만, 그렇게 만반의 대비를 했어도 여전히 막지 못했다.게다가 지금 이 지경에 이르렀다."내 술버릇 너도 알잖아. 나는 주사없어."릴리가 설명을 계속한다."하지만 그는 남자야. 술주정을 하든 말든 만약 그가 야만적이면 어떡해? 너는 평소에 똑똑해 보이는데 어떻게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하니? 너희 언니가 너랑 우리 집 사람 사이가 복잡해졌다는 걸 알게 되면 나랑 절교하지 않겠어?”“...”이 말을 듣자마자 신문한도 어리둥절해졌다.무슨 뜻이지?전에 여동생이 릴리랑 너무 가까이 가지 말라고 주의를 줬었다. 그녀를 조심하라고, 그녀에게 감정을 주지 말라고 했다.하지만 지금 이런 오해가 생겼을 때,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그가 아니라 릴리였다.그가 따지기도 전에 조수석의 육경서도 입을 열었다. "한문이 형, 평소에는 점잖게 보였는데 뜻밖에도 이
"내가 언제 귀찮다고 했지?"신문한이 그녀의 말을 끊자 신주리는 잠시 반응하지 못했다.오히려 릴리가 흥분해서 말했다."그래서 귀찮지 않아요? 당신도 나한테 감정이 있어요?”"쓸데없는 소리. 이 사람이 널 싫어한다면 어젯밤에 너를 속여 자기 집으로 데려갔겠어?"육경서가 말했다.릴리는 얼굴이 붉어지고 눈 밑에 어두운 빛이 돌았다. "그러게요, 게다가 오늘 아침에...”육경서와 신주리가 입을 모아 말했다."아침에?”신주리는 릴리의 수줍은 표정을 보고 목소리가 무너져서 꼬치꼬치 캐물었다."아니, 어젯밤에 같이 안 잤다고 하지 않았어? 어젯밤에 여기에서 자지 않았다며?”릴리는 자리에 앉아 옷자락을 잡아당기고 머리를 숙인 채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그가 말한거지 나도 잘 사실 몰라요. 그리고 개의치도 않고요!”"...""..."신문한은 자신이 그들의 리듬을 전혀 따라갈 수 없다고 느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담담하게 신주리를 심문해 화제를 돌리려 했는데 웬일인지 화제의 방향이 이상하게 돌아가더니 이젠 진짜로 잔게 되었다.그는 가슴이 답답했다.이 두 사람이 따라오는 건 그야말로 그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다."어디 가? 어디서 내리게?"그래서 그들을 더 이상 자기 일에 끼어들지 않게 그냥 쫓아냈다."벌써부터 우리가 거추장스러워? 우리를 따돌리려고?”신문한이 말했다."주소 안 말하면 앞 길목에 내려준다.”신주리는 한참 동안 넋을 잃고 그를 바라보았다."이제 설명도 안 해? 내가 동생인데 이렇게 날 속이다니. 양심 있어? 엄마가 여자 친구 찾으라고 재촉하는 건 알고 있지만 그렇게 감정적으로 무책임해서는 안 돼.”사거리.신주리와 육경서가 차에서 내렸다.검은 차가 떠나자 두 사람은 길가에 서서 배기가스를 한 모금 마셨다.신주리가 차를 가리키며 말했다."신문한 딱 기다려. 내가 엄마한테 말할거야. 네가 다른 사람의 명성을 망치고 소녀의 감정을 속인다고.”육경서는 그녀가 차도로 돌진할까 봐 급히 손을 들어 그녀를 붙잡았다.신주리는
차 안.릴리는 뒷좌석에 무릎을 꿇고 앉아 차 뒷유리에서 멀어져 가는 사람들을 보며 넋을 잃고 있었다.신문한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오늘 아침, 뭐 어쨌는데요?"남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그녀의 생각을 끌어당겼다. 그가 그녀에게 오해의 소지가 있는 그 말을 추궁했다.릴리가 윙크를 했다. "오늘 아침, 내가 방안의 장식품을 보고 당신이 여자를 집에 데려온다고 오해한 것을 알고 나에게 해명했잖아요?”신문한이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게 해명이라고요?”"당연하죠! 안 그러면 주리 언니 얘기는 왜 해요? 그냥 나랑 아침 먹고 싶은 거 아니에요?”"..."신문한은 말하지 않았고 부인도 하지 않았다."그런 말을 하면 쉽게 오해를 살 수 있다는 거 알아요?”"무슨 오해요? 그럼 아까는 왜 설명 안 했어요? 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내가 지금 전화해서 주리 언니한테 직접 해명할까요?”"됐어요."릴리가 머리를 기울여 그를 바라보았다. "왜 해명하지 않는 거죠? 부모님 재촉때문에 나를 거절하지 않는거예요?”"거절했어요.”"아, 그래요. 깜빡했네.”"..."두 사람은 가는 길에 말이 없었다.도착한 후, 신문한은 주차장에서 내리지 않고 백미러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이제 우리 둘 사이는 정리된겁니다.""무슨 정리?”"어젯밤 당신 기분을 상하게 한 거에 대해 사과할게요.”"누가 정리를 그렇게 해요? 경찰 아저씨는 모두 이렇게 오만해요?”“...”신문한이 얼굴을 찡그렸고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이 언짢았다."이게 직업이랑 무슨 상관이죠?"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항상 이렇게 강요하는 타입이에요? 사과하려고 하는거면 내가 당신한테 뭘 요구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당신이 생각하기에 정리되면 다 정리되는 거에요?”신문한이 차갑게 입술을 오므렸다."상의하고 있잖아요.”방금 어떻게 하면 그녀가 받아들일 수 있는지 물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경호원이 될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그건 누가봐도 무리였다.
릴리는 잠시 동작을 멈췄다. "저랑 같이 안 가시나요? 데려다주기만 하시는 거예요?”신하균이 담백하게 말했다. "저는 아직 볼일이 남아서요."릴리는 눈썹을 찡긋하고는 신하균을 꼿꼿이 쳐다보았다. 지금 휴가 중이라고 알고 있는데, 무슨 할 일? 릴리는 신하균이 정말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차를 가지러 온다는 핑계로 나를 데려온 것은 내가 자기 집에 눌러 있을까봐 두려워서겠지?릴리는 자기를 비웃듯이 살짝 웃었다. 자신이 이렇게 미움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하지만 릴리의 장점은 아무리 좋아도 매달리지 않는 것이다. 이전의 연애에서도 아무리 아쉬운 상대라도 모두 깔끔하게 헤어져 주었다.신하균도 마찬가지다.안영 언니의 말이 맞다. 세상에 남자가 몇인데, 정 안되면 바꾸면 그만이지.게다가 릴리는 나이도 어리니 한 남자에 목맬 필요는 더더욱 없다.릴리는 가방을 들고 우아하게 차에서 내렸다.두 걸음쯤 걸어 나온 릴리는 무엇이 떠올랐는지 되돌아가 차창을 두드렸다. 운전석 창문이 내려오자, 릴리는 작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 "교환권이요."신하균은 잠시 멈칫한 뒤, 차에서 미리 준비한 분홍색 카드를 꺼내 릴리에게 주었다.릴리와 판매원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신하균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정말로 혼자 갔다고?예전의 릴리라면 반드시 애교를 부리며 가장 순진한 말투로 그를 협박하여 그가 차마 거절할 수 없게 할 것이다.게다가 같이 오기까지 했는데 더구나 혼자 들어갈 이유가 없다.그런데...이렇게 갑자기 쿨하게 포기한다고?신하균은 아직 조금은 적응이 안 됐다.그리고 이런 자신을 의식하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자기가 이렇게 모순이 되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신하균은 차에 시동을 걸고 주차장을 빠져나갔다.유턴하자마자 익숙한 롤스로이스에 길이 막혔다.롤스로이스는 길 한가운데를 가로막았다. 조수석 문이 열리고 연두색 옷을 입은 여인이 차에서 내려 하이힐을 밟으며 다가왔다.신하균은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