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확신했다. 안지영이 정말로 나태웅이 뛰어내리는 모습을 보러 간 거라고. 그리고 나태웅은... 그는 이렇게 안지영을 속여서 끌어들였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지영이 그냥 그가 뛰어내릴지 안 뛰어내릴지를 확인하러 갔다는 것에 대해서는 무슨 기분이었을지 잘 모르겠다고 느꼈다. 사실 안지영은 그런 게 아니었다. 물론 그녀도 나태웅이 뛰어내리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속였기 때문에 그녀는 마음속으로 약간의 원망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어떻게든 나태웅에게 뛰어내리지 말라고 설득할 방법을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긴장된 준비 끝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게 바로 놀아난 거 아닌가? 그래도 일이 생기지 않았으니 다행이었다. 두 사람은 조금 더 대화를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이제 장선명은 안지영이 나태웅을 보러 병원에 갔다고 해도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알았다. 이 여자, 감정 표현이 서툴고 둔감한 사람이라는걸. 이때 육범수가 장선명의 옆에 있었다. 장선명이 전화를 끊고 계속 웃고 있으니까 육범수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왜 웃고 있는 거야?” “나태웅 때문에. 우리 태현이 형의 동생, 정말 대단하네.” 장선명이 웃으며 말했다. “그 사람 좀 그만 욕해. 나태웅 요즘 마음 아파 죽을 것 같을걸.” “누구 잘못이야?” 장선명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래, 그렇게 따져보면 결국 이 모든 게 안지영 탓은 아니었다. 육범수가 말을 하려는 찰나 장선명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때 그 사람이 얼마나 사람을 겁먹게 했는지 너는 상상도 못 할 거야.” 그때 안지영이 그를 찾아왔을 때 장선명은 아직도 그날 밤 안지영의 말이 어눌했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었다. 비에 젖은 안지영은 마치 아무런 힘이 없는 작은 아이 같아 보였다. 그동안 그의 곁을 맴돈 많은 여자들 중 대다수는 그저 공허한 속셈을 숨기고 있었지만 그 의도는 너무나 뻔히 보였다. 하지만 안지영만큼은
동영 그룹에서 일할 때 안지영은 영업부에 소속되어 있어 매일 여러 곳을 돌아야 했다. 비록 그녀가 안씨 가문에서 유일한 딸이지만 동영 그룹에서 공부하던 시절 안진섭은 그녀에게 매우 엄격했다. 그래서 그녀는 돈을 아껴야 했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차를 거의 사용할 수 없었다. 그때 그녀의 체력이 정말 좋았는데 하늘 그룹으로 돌아온 지 며칠 만에 체력이 이렇게 떨어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안지영은 안 그래도 참고 있었는데 나태웅이 이런 말투로 자신에게 말을 하는 것에 격분하면서 바로 폭발했다. “네가 신경 쓸 일 아냐! 너 미쳤어? 뛰어내린다면서? 여기가 뛰어내리는 곳이야?” 물을 따르고 있던 진이훈은 할 말을 잃었다. 안지영의 불평과 원망 섞인 목소리를 듣고 둘 다 얼어붙었다. 그녀의 말을 들어 보니 나태웅이 오늘 뛰어내리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것 같았다. 진이훈은 깜짝 놀랐다. “안지영 씨, 진정 좀 해주세요.” 진이훈은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사실 지금까지 진이훈은 나태웅의 손목에 있는 상처가 안지영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기 보스를 미쳤다고 여겼다. 한 여자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으려고 한다니. 그런데 이렇게 나쁜 상황에서 왜 더 자극을 주는 거지? “진정? 제가 왜 진정해야 해요? 저는 충분히 진정하고 있는 거예요! 나태웅, 너 진짜 개새끼라고 생각해!” 그녀는 진정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도저히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정말 최대한 참아가며 말하고 있었다. 진이훈은 입술을 움찔하며 재빨리 다가갔다. “안지영 씨, 우리 잠깐 나가서 이야기할까요?” “이거 놔요!” “저와 잠깐만 이야기 좀 합시다.” 진이훈은 그녀를 잡고 말했다. 머리에 문제가 생긴 사람을 자극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진짜 이러는 게 맞나 싶었다. 게다가 이 사람이 미친 이유가 그녀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이훈이 계속해서 눈치를 주자 안지영은 겨우 이성을 되찾았다. 하지만 자신이 아까처럼 힘들게 뛰어오느라 지친 걸 떠올리며 여전
하지만 나태웅의 머리가 이상해졌을 가능성을 생각하니 안지영은 명확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깊은숨을 들이쉬며 가슴속의 답답함을 억누르며 말했다. “괜찮은 거지?” “넌 어떻게 생각해?” “난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 어차피 너는...” 뭐라고 해야 할까? 안지영은 본능적으로 전에 동영 그룹 시절을 떠올리려 했지만 지금 나태웅의 머리가 이상해졌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말을 입 밖으로 내기 전에 바로 멈췄다. 옛일들을 꺼내는 건 그 사람을 미치게 만들 것이라는 걸 알았다. 진짜 이 상황은 너무 어렵다. 나태웅은 그녀의 말을 듣고 차갑게 쏘아보았다. “나는 뭐지?” 차갑고 무자비하며 날카로우면서도 예리했다. 그건 그녀가 동영 그룹에서 나태웅을 볼 때 내린 평가였다. 안지영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말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전화한 이유가 뭐지?” 그녀는 가슴속에 쌓인 분노를 더 이상 표현할 수 없었다. 이 답답한 기분은 정말 끔찍하다. 나태웅은 그녀를 다시 차갑게 쏘아보았다. 그 눈빛은 깊고 그 속에 담긴 의미는 알 수 없었다. “만약 이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면 내가 돈을 돌려줄까?” 그녀는 매우 조심스러워하며 의견을 묻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돌려준다고?” 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좀 더 너그럽게 생각해. 사실 그때 당신이 나를 그렇게 속이지 않았으면 나도 당신을 속이지 않았을 거야.” 분명히 그의 잘못이었는데 이 사람은 전혀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없었다. ‘정말 못 해먹겠다.' 그 생각에 안지영은 마음속으로 불만이 터져 나오지만 그 불만을 표출할 수 없었다. 그녀가 이렇게 조심스럽게 말하는 모습을 보고 나태웅은 차갑게 웃었다. “내가 너에게 전화한 이유가 돈 때문이라고 생각하냐? 혹은 일이 이렇게까지 된 게 다 돈 때문이라고 생각하냐?” 두 번의 질문에 안지영은 멍해졌다. 그녀는 어리둥절하게 나태웅을 바라보았다. “돈 때문 아니야?” 그렇다면 진짜 감정 때문일까? 감정이라면...! 이제 안지영
‘이 사람 진짜 상도덕에 어긋나네!’‘내 감정 발달이 제대로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그게 이 사람이랑 무슨 상관이지?’ 안지영은 진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그녀는 지금 나태웅에게 정말로 욕 한마디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머리가 원래 이상한데 지금 그를 자극했다가 문제 생기면 정말 큰일이 난다. 어쩌면 그녀는 정말로 윤리의 심판을 받을지도 모른다. “너랑 더 얘기 안 할 거야. 간다!” 그녀는 정말 미쳤다. 전화로 했던 말을 듣고 오다니. 게다가 그가 진짜 자살을 했다면 그녀도...하지만 그녀는 인정한다. 이 일에서 자신이 조금 성인군자처럼 행동 했다는 걸. 성인군자 역할을 하는 건 정말 큰 손해를 본다.그녀는 맹세했다. 앞으로 성인군자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그런데 문 손잡이를 잡았을 때 뒤에서 나태웅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일 아침에 만두와 인절미를 먹고 싶어.” “네가 뭘 먹고 싶은지 나랑 무슨 상관이야?” “8시까지 배달해 줘.” “야, 아직도 안 끝났다는 거지?” 특히 지금 나태웅의 목소리가 아주 평온했지만 그 말투는 뭔가 위협적인 느낌이 들었다. 맞다, 그는 자신을 협박하고 있었다.안지영은 돌아서서 나태웅을 쏘아봤다. “너 진짜 미쳤어?” 그의 평온한 눈빛과 마주쳤을 때 안지영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미친 사람의 눈빛이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그가 방금 자신에게 말을 할 때도 사고와 논리가 꽤 명확했다. 하지만 차분히 생각해 보니 그가 자신과 말한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나태웅은 눈을 잠시 감고 나서 말했다. “네가 오지 않으면 화장터에서 연락이 갈 거야.”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녀는 숨이 멎을 듯했다. ‘뭐라고? 화장터에서 연락이? 누굴 태운다는 거지? 나태웅을?’ 이건 정말... 안지영은 아까 의심스러웠던 눈빛이 이제 확신에 찬 공포로 바뀌었다. 그는 정말 미쳤다, 정말로...“너, 너!” 하지만 안지영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명백히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러나 나태웅의 얼굴은
진이훈은 참을 수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에이, 이거 다 마음의 병이네!” “저 돈은 꼭 갚을게요. 집에 돌아가서 바로 송금할 거예요.” 진이훈이 마음의 병이라는 말을 하자 안지영은 더 크게 놀랐다. 그녀는 맹세코 자신은 그렇게 악독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비록 그 일이 당시에는 좀 악독하게 보였지만 나태웅이 자신을 그렇게 협박하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이럴 일은 없었을 거다. 정말 의도한 게 아니었고 이건 전혀 그녀의 잘못이 아니다. “그게...” “이렇게 하는 걸로 해요. 그 사람에게 계좌를 확인하라고 하세요. 돈은 반드시 갚을게요. 꼭 갚을 거예요!” 말을 마친 안지영은 서둘러 방을 나갔다. 그 뒷모습은 마치 도망치듯 급히 나가고 있었다. 그녀는 빨리 도망가지 않으면 정말로 큰일이 생길까 봐 두려운 마음이었다. 엘리베이터에 들어선 뒤 문이 닫히고 나서야 겨우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쥐며 스스로 중얼거렸다. “젠장, 이게 정말 내 잘못인가?” 나태웅이 이런 식으로 자신을 몰아가니 안지영은 자신이 나태웅 문제를 정말 잘못 처리한 건 아닌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때 당시에 만약 장선명이 말한 대로 하지 않았다면 나태웅은 분명히 장선명을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냉혹하고 잔인한 사람이었다. 이제 자신까지 불쌍한 사람처럼 몰고 가는 데 이게 진짜 맞는 건가? 안지영은 정말 미칠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분노는 어디에 풀어야 할지 막막했다. 한편, 차 안에서는 배준우가 고은영을 데리고 란완리조트에 도착했다. 그동안 고은영은 내내 배준우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배준우 역시 머릿속이 조금 복잡해 보였다. 란완리조트에 도착하자 진정훈은 자리에 없었다. 라 집사가 두 사람을 보고 공손히 다가왔다. “선생님, 사모님.” 배준우는 고은영의 머리카락을 애정 어린 손길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는 서재에 가야겠어. 너는 아기 보러 가면 되겠다.” 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자기 동생이 어떤 사람인지는 나태현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여자 문제에 대해서 그는 항상 반응이 무던했다. 아마 안지영은 그에게 특별한 사람일지도 모르지만 그 때문에 미쳐버릴 정도는 아닐 거라 생각했다. 분명히 지금 나태현도 나태웅이 안지영 때문에 미친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배준우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 안지영이 굉장히 급하게 병원에 갔고 제 아내에게 나태웅이 자살하려 한다고 말했어요.” “오늘?” 나태현은 놀라서 물었다. “네, 오늘 오전에 그랬어요.” 이제 그는 차분할 수 없었다. 자기 동생은 항상 걱정거리였지만 지금 벌어진 일이 너무 심각했다. “설마?” 그는 아직도 믿기 어려워했다. 배준우는 이런 일이 믿기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태현이 믿지 못하는 것도 이해하고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안지영은 지금 나태웅을 피하듯 멀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큰일이 아니면 아마 병원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안지영이 병원에 나타난 것은 아마 가장 좋은 증거일 것이다. 배준우는 이마를 문지르며 말했다. “저도 이게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형이 나태웅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상황을 파악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정말 사실이라면 그 상황에서 아무리 말을 해도 그다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술에 취한 사람은 자기 술을 마셨다고 인정하는 것도 힘든 법이다. “알았어.” 그는 지금 머리가 ‘윙윙'거리는 것 같았다. 배준우의 전화 한 통이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그는 지금 매우 불안했다. “너무 서두르지 말고 만약 사실이라면 합리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을 찾으면 돼요.” 즉, 미쳤다면 미친 거고 치료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뜻이었다. 나태현은 대답했지만 그는 분명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는 듯했다. “그리고 형 몸도 챙겨요. 만약 정말 상황이 심각하면 저한테 연락해요. 제가 의사를 준비해 줄게요.” 이 나태웅, 지금 당장 칼로 그를 찌르고 싶을 지경이었
“너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정말 안지영 때문에 목숨까지 버리겠다는 거야?” 나태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나태현의 기운이 점점 심상치 않아졌다. “아니, 너 정말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 나태현은 화가 치밀었다. 그는 나태웅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그의 손목에 있던 상처도 이미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또다시 병원에 돌아오다니. ‘설마 배준우가 말한 대로 정말 머리에 문제가 생겨 자기 행동을 통제하지 못하게 된 건가?’ 그런 가능성을 생각하니 나태현은 숨이 가빠졌다. 나태웅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나태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나태현을 더욱 미치게 했다. “말 좀 해!” 말투가 점점 더 거칠고 조급해졌다. “그럼 형은? 아이가 있는 여자를 위해서 형은 그럴 필요가 있어?” “너...” 나태현의 숨이 더 가빠졌다. 그는 지금 나태웅과 이런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단 한 마디만 묻고 싶었다. “지금 네 머리에 정말 문제가 없는 거 맞아?” “없어!” “근데 지금 전 세계 사람들이 네 머리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알아?” “내가 그 사람들 생각까지 신경 써야 해?” “그럼 안지영은?” 나태현의 말투는 더 날카로워졌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상관하지 않지만 문제는 지금 나씨 가문에서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그가 병실로 오기 전 배준우뿐만 아니라 아버지에게서도 전화를 받았다. 나태웅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가 정말 미쳤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더 심각하게 오해할 것이 뻔했다. 안지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나태웅은 다시 침묵에 빠졌다. 그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은 게 분명했다. 나태현은 그가 또다시 말을 잇지 않자 속이 타들어갔다. 그는 정말 몇 마디 말을 꺼내기도 어려운 사람과 대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내가 의사 불러줄까?” “
‘나태웅 이 자식!’ 지금 이런 상황이라니. 그를 아끼는 사람들이 얼마나 속이 상할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정말 믿기 어렵다. 나태웅이 결국 한 여자 때문에 이렇게까지 몰릴 줄이야. 이 순간, 배준우는 예전에 안지영 문제로 나태웅이 자신에게 했던 질문이 떠올랐다. ‘나태웅이 뭐라고 물었더라?’ 고은영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대했는데 그녀는 곁에 잘 있으면서 아이까지 가졌는데 왜 안지영은 떠난 건지 물어봤었다. ‘감정을 되짚어보니 그때부터 이미 나태웅의 마음속에 큰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그리고 그 문제가 혹시 나 때문에 생긴 건 아닐까?’ 왜냐하면 나태웅이 안지영을 쫓는 방식은 배준우에게서 그대로 베낀 거였으니까. 배준우는 순간 머리가 띵해졌다. 그가 계단을 내려가고 있을 때 마침 고은영이 고희주의 방에서 막 내려오고 있었다. 고은영은 배준우의 잔뜩 찌푸린 얼굴을 보며 다가왔다. “무슨 일이에요? 왜 이렇게 기분 나쁜 얼굴을 하고 있어요?” 고은영을 보자 배준우는 문득 나태웅이 왜 안지영 때문에 이렇게 되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아이가 내 곁을 떠난다면 나도 미칠 거야.’ 아니, 어쩌면 나태웅보다 더 심하게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배준우는 갑자기 고은영을 와락 끌어안았다. 고은영은 그 갑작스러운 행동에 깜짝 놀라며 외쳤다. “뭐, 뭐 하는 거예요!” “앞으로 너는 안지영이랑 절대 어울리지 마.” 배준우의 목소리는 낮고 답답한 톤이었다. 그 말에 고은영은 더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왜요?” “그 애는 좋은 사람이 아니야.” ‘뭐라고? 안지영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고은영은 어이가 없었다. “안지영은 정말 좋은 사람이거든요.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세요!” 그녀는 처음으로 배준우의 의견을 따르지 않고 단호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배준우와 함께한 지난 몇 년간 그녀는 항상 그의 말에 따랐다. 그가 어떤 일이 잘못되었다고 하면 그녀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해도 반박하지 않았다.
“너...!” 그 말은 안지영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하준성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의미였다. 이미 화가 나 있던 하준성은 나태웅의 이 냉정한 태도에 이성을 완전히 잃었다. ‘이 녀석은 진짜 예사롭지 않은 놈이었다!’ 나태웅은 더 이상 말할 필요 없이 간단히 말을 마친 후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 그러자 하준성은 또 한 마디 덧붙였다. “그럼 적어도 주원이에게 사과라도 시키지. 나태웅, 너도 알잖아, 나는 내 가족이 괴롭힘당하는 걸 못 참아!” 그 말은 명백히 나태웅을 비꼬는 말이었다. 집 밖의 사람을 위해 집안사람은 못 챙기고 오히려 괴롭히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하준성은 그동안 보여준 적 없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나태웅은 발걸음을 잠시 멈추었지만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때, 하준성은 또 물었다. “안열 그 여자는 너와 관계가 없지? 그거라도 확실히 해야겠어. 내 딸이 이렇게 맞았는데 그대로 참고 있을 순 없잖아! 남자로서 체면이 있지 않냐!” 안열와 관련된 얘기가 나오자 나태웅의 눈에 서늘한 기운이 번뜩였다. 그 후, 그는 짧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상관없습니다.” 그 말은 안열과의 관계는 없으며 하준성이 그 여자를 어떻게 하든 신경 쓰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화가 난 하준성은 나태웅의 말에 조금은 위안을 얻은 듯했다. ‘상관없다니, 그럼 괜찮겠군.’ 한편, 안지영의 상황은 달랐다. 고은영이 안지영이 맞았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왔다. 고은영은 안지영의 얼굴에 난 상처를 보고는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이고, 울지 마. 나 안 아프다니까.” 안지영은 황급히 그녀를 달래며 말했다. 정말로 안지영은 이 세상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심지어 아버지가 그녀를 동영 그룹에 보내고 모든 카드를 끊어버린 일도 그녀에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고은영이 울면 다르다. 고은영이 울면 안지영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마음이 혼란스러워진다. 예전에 절에 갔을 때 스님이 그녀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아마
나태웅은 자신이 오늘 하늘 그룹에서 벌인 일로 인해 안지영과 장선명이 진지하게 동거하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 병원에서는 하주원의 손목이 마치 만두처럼 부풀어 올라서 아예 움직일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소식을 들은 하준성은 급히 병원에 도착했고 자신의 딸이 이렇게 다친 모습을 보고 얼굴에 분노가 가득했다. “이게 안씨 가문 그년이 한 거냐?” 자신의 유일한 딸이 병원에 누워 있는데 그녀는 대체 무슨 배짱으로 이렇게 대담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장씨 가문이냐? 지금 그 여자는 장씨 가문의 며느리가 아니지 않나!’ 하주원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아버지를 한 번 보고 그 후 나태웅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태도는 이미 너무나도 분명했다. 하준성은 나태웅을 보며 다가가서 물었다. “태웅아, 너는 안씨 가문 그년과 친한 거냐?” 나태웅은 대답 없이 그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하준성은 금테 안경을 밀어 올리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년에게 전해라. 이번 일에 대해서 나는 반드시 해명 받아야 한다고.” “주원이를 다치게 한건 안지영이 아니에요.” 나태웅은 차갑게 말했다. 하준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럼 누구냐? 너는 그 여자 편을 든 거냐?” 나태웅이 안지영에 대해 어떤 마음인지 이제 나씨 가문 사람들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동안 나태범은 그 일 때문에 거의 병원에 실려 갔을 정도였으니 하준성이 모를 리 없었다. 하준성은 나태웅이 안지영를 감싸고 있다는 뉘앙스로 얘기했고 나태웅은 말없이 담배를 하나 꺼내 물며 말했다. “손목에 있는 상처는 장씨 넷째 도련님 옆에 있는 안열이 한 거예요.” “안열? 안칼?” ‘그 배경도 없고 오로지 자신의 냉혹함과 장씨 가문의 후원 덕분에 강성에서 입지를 다진 여자가? 그 여자 감히 하씨 가문 사람에게 손을 대다니? 아니, 강성에서 몇 년 동안 장씨 가문의 면전에서 아무도 그 여자를 건드리지 않았다고 그녀가 이제는 자기 자신에게 몇 분의 자리가 있다고
‘다음에 또 하주원 같은 사람이 찾아오면 내가 적어도 한 방은 먹여줘야지. 지금처럼 겨우 맞대응만 하다 끝나는 건 싫어. 하지만 싸움에서 이긴다는 건 쉽지 않은데.’ 그녀는 크게 숨을 들이쉬며 결심한 듯 말했다. “오늘 밤부터 저도 킹덤 타운에서 살 거예요!” 안열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안 대표님 원래도 킹덤 타운에서 살지 않았어요?” “아니에요. 가끔 장선명 씨랑 일 얘기할 때만 잠깐씩 갔던 거예요. 하지만 오늘부터는 제대로 이사해서 살려고요!” 안열은 그녀의 결연한 표정을 보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왜 갑자기 킹덤 타운에 살겠다는 거예요?” “다음에 하주원 같은 사람이 오면 제가 다시는 제 얼굴에 상처 입는 꼴은 못 보겠거든요!” 안지영이 단호하게 말했다. 안열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뭐, 그게 이유라면야 나름 진지한 거긴 하네요. 근데 진짜 킹덤 타운으로 가실 거예요?” “당연하죠!” “근데 넷째 도련님의 운동 스케줄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장선명의 악명 높은 운동 루틴을 떠올리며 안열은 몸서리를 쳤다. 그녀 자신도 근육이 제법 붙은 편이었지만 그의 훈련 강도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었다. 안지영은 잠깐만 달려도 숨이 차는데 장선명의 훈련 강도를 견딜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안지영은 의문스럽게 물었다. “그 사람이 그렇게 심하게 운동해요?” 안열은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전에 부하 중 한 명이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뛰었다는데, 어떨 것 같아요?” 안지영은 말을 잃었다. ‘다리가 부러질 정도라고?’ 순간, 그녀의 마음속 결심은 산산조각 났다.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아무래도 포기해야겠어. 내가 체력으로 장선명과 겨룬다고? 웃기지도 않아.’ 하지만 장선명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안열이 방을 나간 지 채 10분도 되지 않아 장선명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안지영이 전화를 받았다. “비밀번호.” “무슨 비밀번호요?” 갑작스러운 요구
‘내가 이렇게까지 다쳤는데 그걸 보고도 날 못났다고 하다니!’ “다른 사람과 싸우다가 이렇게 된 주제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안지영은 억울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건 너무 갑작스러웠다고요! 선명 씨는 하주원이 얼마나 막 나가는 사람인지 몰라서 그래요.” 하주원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안지영은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랑 나태웅이 무슨 큰일을 벌인 것도 아닌데 찾아와서 때리다니! 정말 말이 안 돼!’ 장선명은 그녀의 화난 얼굴을 가만히 보다가 다치지 않은 부위를 손으로 가볍게 눌렀다. “말은 됐고 나중에 다 나으면 제 일과를 따라야 해요.” “무슨 일과를 왜 따라야 하는데요?” “운동 시간이요.” 안지영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안 하면 안 되나? 체력을 너무 소모하는 건 싫은데.’ 하지만 장선명이 그녀에게 운동을 시키려는 이유는 명백했다. 싸움에서 이기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 사람은 정말, 출발선부터 남들과 달랐다. 장선명이 정성껏 그녀의 상처에 약을 발라준 뒤에야 자리를 떴다. 장선명이 하늘 그룹 본사를 나서자마자 그는 곁에 있던 구이준에게 물었다. “하씨 가문 사람이냐?” “네, 나태웅 씨의 사촌 여동생입니다.” 구이준이 대답했다. 장선명의 눈에 싸늘한 빛이 스쳤다. “하씨 가문이라, 좋아. 아주 좋아.” ‘나태웅이 사과를 요구한다고? 그렇다면 이번엔 나태웅에게 보여주겠다. 누가 누구에게 사과해야 하는지.’ 하씨 가문은 겉보기엔 만만치 않은 집안처럼 보일지 몰라도 본질적으로는 질이 나쁜 집안이었다. 장선명은 하씨 가문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늘 일이 나태웅에게서 비롯된 건 이미 뻔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나태웅은 가족을 감싸느라 도를 넘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그들이 건드린 사람은 안지영이었다. 그리고 장선명은 이를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그 시각, 안지영은 거울을 보며 얼굴에 난 손톱자국을 확인하고 있었다. 약을 바른 덕분에 시원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나태웅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한 번 바라봤다. “여기 왜 온 거야?” 비록 감정을 억누른 듯한 목소리였지만 옆에 있던 진이훈조차 그의 불만이 섞인 말투를 알아챌 수 있었다. 나태웅의 물음에 하주원은 금세 얼굴에 억울함이 가득 차올랐다. 이내 울먹이며 말했다. “내가 해외에 있는 동안 안지영이 오빠의 감정을 짓밟았다는 얘기를 들었어. 그래서 너무 마음이 아팠고 오빠를 대신해 정의를 되찾으러 온 거야.” 말투와 표정 모두 그럴듯했다. 하지만 옆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진이훈은 속에서 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았다. ‘마음이 아프다니, 정의를 되찾겠다니? 그게 아니라 안지영을 적대시하고 일부러 괴롭히려고 온 거겠지. 정의를 운운하며 나태웅을 돕는다니 말도 안 돼.' 나태웅의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 “앞으로는 여기 오지 마.” “응, 오빠 말 들을게.” 하주원은 나태웅 앞에서 완전히 순종적인 태도를 취하며 착한 아이로 변했다. 그녀의 이런 모습에 나태웅도 마음 한구석에 쌓였던 울분이 조금은 풀리는 듯했다. 그는 다시 진이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여자한테 전해. 사흘 안에 사과하지 않으면 하늘 그룹은 강성에서 사라질 거라고.” ‘뭐라고? 안 대표님이 사과를 해야 한다고?’ 방금 전 구이준에게 두들겨 맞은 것을 떠올리며 진이훈은 온몸이 다시 풀리는 것 같았다. ‘이 타이밍에 가서 안지영 씨를 찾으라고? 그럼 이번엔 구이준뿐 아니라 장선명 씨한테도 맞는 거 아냐?’ 진이훈은 속으로 울고 싶었다. “근데 왜 꼭 안 대표님이 사과를 해야 하는 거죠?” ‘지금까지 저질렀던 일들은 다 안지영 씨와 화해하려고 한 거 아니었어? 그런데 이건 화해를 포기하겠다는 건가?’ 그의 의문에 나태웅은 바보를 보듯 그를 흘겨보더니 하주원을 향해 말했다. “가자. 병원에 데려다줄게.” “좋아.” 병원에 데려다준다는 말을 들은 하주원의 얼굴은 금세 환해졌다. 그녀의 손목은 진짜 너무 아팠다. ‘그 못된 안지영, 그리고 안열 때문에 지금 내
원래는 기고만장했던 하주원이었지만 지금 안열의 눈빛을 마주한 순간, 겁에 질려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손목을 빼내려고 했지만 안열의 손은 절대 놓아주지 않았다. “너 당장 놔!” 고통에 찬 하주원은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했다. 방금까지 안열을 비서라고 무시하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두려움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녀의 두려운 눈빛을 본 안열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집에 돌아가서 네 아버지에게 말해. 오늘 네 딸은 안열이라는 여자에게 맞아서 이렇게 됐다고.” “너!” “그리고 네가 안지영에 대해 한 마디라도 입에 올린다면 네 이 손목은 완전히 잘려 나갈 줄 알아.” 하주원은 경악하며 더듬거렸다. “너, 너 지금 나를 협박하는 거야?” 안열은 차분히 대답했다. “협박이 아니라 경고야. 이 일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말해주는 것뿐이지.” 하주원은 그녀의 차가운 눈빛에 온몸이 떨려왔다. 안열은 그런 하주원의 모습을 보며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알겠어? 확실히 기억했으면 대답해.” 그 순간, 나태웅이 나섰다. 그는 안열의 손목을 잡아 제지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해. 이제 충분하지 않아?” 안열은 그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쏘아보며 손목을 빼냈다. 지금 이 순간, 안지영의 눈빛은 엄청 차가워졌다. 하주원은 안열을 노려보고 억울하다는 듯이 나태웅에게 매달렸다. “사촌 오빠, 저 너무 아파요!” 나태웅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며 안열을 향한 적대감이 뚜렷해졌다. “안열, 네가 정말 내가 널 못 건드릴 거라고 생각해?” 안열은 비웃으며 대꾸했다. “물론 건드릴 수야 있겠죠. 하지만 저를 어떻게 할 건데요?” 그녀의 태도는 전혀 꺾이지 않았고 오히려 더 당당해 보였다. ‘이 여자가 대체 어디서 그런 자신감을 얻은 거야? 감히 사촌 오빠한테 이런 말을 하다니!’ 두 사람이 할 말을 잃자 안열은 비웃으며 말했다. “할 수 있는 것과 하는 건 두 가지 일입니다. 나 대표님, 제 말이 틀리나요?” “
‘사과? 하주원에게 사과를 하라고?’ 이제야 그녀는 진이훈이 왜 맞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원래 장선명의 주먹은 나태웅을 겨냥한 것이었다. 진이훈을 때린 것은 분명 그들에게 경고하는 의미였다. 이 일을 더 물고 늘어진다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말이다. 하지만 나태웅은 이런 경고를 정말로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이해하고도 무시한 것인지 여전히 끈질기게 얽매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하주원은 나태웅이 자신을 위해 정의를 주장하며 나서는 모습을 보고 더욱 기고만장해졌다. 그녀는 안열을 향해 도발적으로 말했다. “못 들었어? 빨리 너희 안 대표님을 불러와서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해!” ‘무릎 꿇고 사과하라니?’ 진이훈은 속으로 혀를 찼다. 지금 당장이라도 하주원에게 무릎을 꿇고 말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 여자가 도대체 안지영이 어떤 사람인지나 알고 이런 소리를 하는 건가? 확실한 것은 하나였다. 오늘 일을 계기로 안지영과 나태웅 사이의 관계는 영원히 끝났다는 것이다. 진이훈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태웅이 안지영에게 사과를 요구하다니, 이 사람 머릿속엔 도대체 뭐가 들었지?’ 그는 속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나태웅은 안지영 때문에 심리 상담까지 받았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런 일을 벌이다니 이건 그야말로 안지영을 완전히 떠밀어내는 꼴 아닌가. 진이훈은 숨이 턱 막혔다. 안열은 하주원의 말을 듣고 마치 우스운 소리라도 들은 듯이 되물었다. “당신한테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물론이지! 당장 불러와서 내 앞에 무릎 꿇고 사과하면 이 일은 여기서 끝낼게.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으려고요?” 하주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열이 차갑게 말을 끊었다. 하주원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렇지 않으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안열은 냉소를 지으며 앞으로 한발 다가섰다. 그녀의 얼굴에는 깊은 경멸과 혐오가 서려 있었다. 그녀는 손을 들어 하주원의 얼굴을 내리쳤다. ‘찰싹!’ 날카로운
모두가 안지영이 흉터라는 한마디를 듣고 자리를 떠나버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지금 이 상황에 얼마나 심각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지 알고 있는 걸까? 그녀가 이렇게 떠나는 게 정말 적절한가? 하지만 적절하든 말든 안지영은 결국 떠났다. 그녀는 나태웅에 대한 분노와 실망감을 안고 떠난 것이었다. 몇 년을 알고 지냈던 사람인데 그녀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나태웅이 이렇게까지 판단력이 흐린 사람일 줄이야. 방금 그는 상황을 묻지도 않고 그녀더러 하주원에게 사과하라고 강요했다. 다행히도 지금 결혼을 논의 중인 사람이 나태웅이 아니었다. 만약 나태웅이였다면 그녀는 그야말로 울분이 터졌을 것이다. 이번 일을 겪고 안지영은 나태웅이란 사람을 더 명확히 알게 되었다. 그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이라면 오늘 같은 상황에서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이훈은 구이준에게 한 대 얻어맞고 결국 입을 다물었다. 나태웅은 진지한 눈빛으로 장선명을 보며 말했다. “이게 장씨 넷째 도련님이 일 처리하는 방식입니까?” 장선명은 차가운 미소를 날리며 답했다. “제 방식은 이거예요. 마음에 안 들면 당신 방식대로 해 봐요. 근데 별로 좋지도 않은 것 같던데. 안지영 씨가 이 정체불명의 여자한테 사과해야 한다고요? 저 여자가 그럴 자격이라도 있나요?” 방금 나태웅이 벌인 일 때문에 안지영이 참을 수 없는 건 물론이고 장선명조차도 참을 수 없었다. 남자라면 자기 여자가 억울한 일을 겪게 놔두면 안 된다. 그제야 장선명은 안지영이 왜 그때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했는지 이해했다. 그녀 주변에는 자기를 물어뜯는 개 같은 사람들이 득실거렸다. 나태웅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럼 장씨 넷째 도련님은 아직 내 방식이 뭔지 모르는 것 같군요.” 이때 안열이 장선명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나태웅을 한 번 보더니 경고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그 눈빛은 이 상황에서 한마디라도 더 하면 오늘 이 싸움은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암시하는 것 같았다. 문제는 크
안지영은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 하주원을 때리는 것뿐만 아니라 나태웅에게 달려가서 바로 그의 얼굴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장선명은 황급히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지영 씨!” 안지영은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 “저 자식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는지 봐요!” “일단 지영 씨 먼저 사무실로 가요.” 장선명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분명 위협이 묻어 있었다. 이 순간, 장선명은 나태웅의 행동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나태웅이 여기서 안지영 씨에게 사과하라고 한다고?’ 오늘 이 일은 절대로 안지영의 잘못이 아니었다. 설령 안지영에게 잘못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녀가 사과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저 자식을 찢어버릴 거예요!” 지금 그녀는 이성을 잃었고 진짜로 나태웅을 찢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녀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온 걸 보면 이 순간의 안지영은 행동으로 옮기고 싶다는 마음이 확고해졌다. 장선명은 그녀의 얼굴에 난 상처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상처는 깊지 않았지만 그의 손이 닿자 안지영은 느껴지는 통증에 소리쳤다. “아, 아파요!” “약 안 바르면 진짜 흉터 남을 거예요.” 장선명은 부드럽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안지영은 더욱 참을 수 없었다. ‘나씨 가문 사람들은 진짜 미쳤어! 확실히 다들 미쳤어!’ 그녀는 아직도 나태웅을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얼굴이 흉지게 될 걸 생각하니 결국 약을 바르러 가기로 했다. “그럼 여기 처리 좀 해줘요.” 안지영은 장선명에게 말했다. 장선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요. 지영 씨가 만족하게끔 처리할게요!” 그의 말은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진이훈은 몸을 움츠렸다. 만약 예전이었다면 안지영은 장선명이 어떤 방법을 쓸지 상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화가 난 그녀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녀는 문 앞까지 이르렀을 때 갑자기 진이훈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 “안지영 씨!” “구이준.” 진이훈이 말을 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