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호영의 그 한마디에 고은영은 더 이상 그와 대화를 이어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녀는 몸을 돌려 그대로 걸어가려 했지만 진호영은 다급하게 외쳤다. “너 정말 이렇게 냉정할 거야?” 그는 절박해 보였다. 요즘 진씨 가문의 상황이 어떤지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알면서도 그녀가 이토록 냉정할 수 있다니 그녀는 정말 마음이 없는 건가 싶었다. 고은영은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며 말했다. “제가 냉정하다고요?” 그 말은 그녀의 가치관과 정의관을 완전히 뒤흔드는 충격이었다. 진호영이 그녀더러 냉정하다고 말하다니! 진호영은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를 한 번도 찾아보지도 않았잖아. 할머니 역시 너의 윗사람인데 네가 아무리 진유경이 너의 자리를 가로챘다고 생각하더라도 그들은 네 혈육이야!” 고은영은 잠시 침묵했지만 곧 고개를 들었다. “혈육?” 그녀는 그 단어가 참으로 가소롭게 들렸다. 혈육이라니, 그 말은 정말 듣기 좋게 꾸며진 명분이었다. 그들이 그녀가 존재한다는 걸 알았을 때 삼 일 동안조차 그녀를 찾지도 않았고 찾아왔을 때도 목적은 단 하나, 진유경을 진씨 가문에 남기기 위해 그녀더러 진정훈에게 부탁하라고 했을 뿐이었다. ‘그것이 혈육이라고?’ 고은영은 깊이 숨을 들이쉬고 조소를 띠며 말했다. “혈육이라니, 정말 잘도 말하는군요.” 진호영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그녀는 날카롭게 반문했다. “제가 존재한다는 걸 알고 나서 당신은 언제 저를 찾아왔죠?” 진호영의 이런 모습에도 고은영은 전혀 봐 줄 마음이 없었다. 그녀는 하고 싶은 얘기들을 다 내뱉었다. 고은영의 말은 진호영의 마음을 강하게 찔렀다. 그는 말문이 막힌 채 가슴속 통증이 더욱 심해지는 걸 느꼈다. “제가 냉정하다고요? 그럼 진씨 가문과 저 사이에서 대체 누가 더 냉정한 거죠?” 그녀는 진씨 가문에서 마치 환영받지 못하는 아이와 같았다. 게다가 그것도 양녀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부모
‘진유경뿐만 아니라 이젠 나도 형에게서 완전히 버림받은 건가?’ 진호영은 숨이 막히는 듯한 심정으로 진정훈을 바라보았다. 진정훈은 차갑게 말했다. “아직도 안 꺼져?” 그는 이제 진호영에게 한 점의 인내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미 할 말을 다 했는데도 진호영은 여전히 그쪽에 서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렇다면 그를 형제로 여길 수는 없었다. 진호영은 답답한 마음에 물었다. “정말로 할머니와 유경이 그 주식들을 내놓아야 유경이를 진씨 가문에 남기겠다는 거야?” 진정훈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래.” 진호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들이 주식을 내놓지 않는다면 형은 끝까지 난리를 칠 작정이라는 건가?’ 가족을 상대로도 이렇게 비정하고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라니. 이런 진정훈을 보며 진호영은 그가 마치 낯선 사람처럼 느껴졌다. 결국 그는 실망감에 빠져 자리를 떠났다. 진정훈이 집으로 들어가니 고은영은 이미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서둘러 다가가며 말했다. “밥 먹으면서 나를 안 기다려?” 고은영은 무심하게 대답했다. “여기선 그렇게 까다로운 규칙은 없어요.” 진정훈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규칙이 없다고? 웃기고 있네.’ 배씨 가문은 강성의 제일가는 명문가라는 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의 규칙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다만 지금 고은영이 배준우와 함께 란완리조트에 살고 있어서 규칙을 무시할 수 있는 것뿐이다. 진짜 배씨 가문에 가면 과연 어찌 될까? 이때 도우미가 진정훈에게 밥을 떠 주었다. 진정훈은 고은영에게 물었다. “배준우는 어디 갔어?” “오늘 밤 접대할 자리가 있어서 나갔어요.” “그래.” 진정훈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고은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접대 자리는 남자들에게 결코 좋은 장소가 아니야. 조심해.” 고은영은 이 말이 듣기 싫었다. 그녀는 곧바로 진정훈을 째려보며 말했다. “당신과 같다고 생각해요?” “뭐? 내가 뭘 어쨌다고?” 고은영은 더 이상 말하고
저녁 식사 자리에서 또 잔뜩 먹어치운 진정훈의 모습에 고은영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밤에는 좀 적당히 먹어요.” “내가 너무 많이 먹어서 불만이야? 생활비를 더 낼 수도 있어!” “제가 걱정하는 건 건강이에요.” 과도한 식사는 몸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진정훈은 웃음을 터트렸다. “봐, 이제 나를 걱정해 주네. 내가 너를 아껴온 보람이 있어.” 고은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를 아껴왔다고?’ 뭐 사실 생각해 보면 진정훈과 진윤이 정말 자신을 잘 챙겨준 건 맞았다. 최근에만 해도 좋은 물건들을 이것저것 사다 줬는데 아마도 그녀가 배준우와 함께라서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 진정훈과 진윤이 준 선물들에 고은영은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다른 진씨 가문 사람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그들의 태도는 진심으로 느껴졌다. 한편, 란완리조트에서의 화목한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진호영은 잔뜩 풀이 죽은 모습으로 진씨 가문로 돌아왔다. 지금의 진씨 가문은 완전히 먹구름이 드리운 상태였다. 김영희는 며칠간 온라인에서 떠도는 이야기들로 인해 몹시 불쾌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섣불리 대응할 수 없었다. 인터넷에서 사람들은 마치 미친 듯이 스크린 너머로 김영희를 삼키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모든 사태를 초래한 장본인은 바로 고은영 그 죽일 놈의 여자아이였다! 김영희가 불편함을 느끼면서부터 진유경은 매일 전전긍긍하며 지냈다. 진호영이 집에 들어오는 걸 보자 그녀는 서둘러 다가가며 말했다. “셋째 오빠, 드디어 돌아왔군요.” 진호영은 그녀의 초췌한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밥은 먹었니?” 진유경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며칠째 그녀는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진정훈의 강경한 태도는 그녀를 꼭 진씨 가문에서 내쫓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두려움이 사무친 그녀는 매일 불안에 떨며 지내고 있었고 입맛도 없었다. 진호영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진씨 가문? 결국 지금 그녀에게 닥친 상황은 진씨 가문에 남을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주식을 지킬 것인지 선택하라는 압박이었다. 주식과 진씨 가문 중 진정훈은 하나만 선택하도록 그녀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진유경의 가슴은 더 답답하고 아팠다. 자신과 진씨 가문이 이런 관계로 치닫게 되었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진호영은 침묵하는 진유경을 보며 계속 말했다. “유경아, 진씨 가문에 남아 있어야 너도 강성에서 위치를 지킬 수 있단 걸 알지 않니?” 진유경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런 건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매년 그녀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주는 주식을 그렇게 순순히 내어주라고? 그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진정훈이 자신에게 가하는 가혹한 태도를 떠올리면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녀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정말 꼭 주식을 넘겨야 하나요?” 진호영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너도 봤잖아. 형은 지금 너 때문에 할머니를 공격하고 있어. 이렇게 나이가 많은 할머니가 계속 비난을 받아야 하는 걸 네가 정말 보고만 있을 수 있겠니?” 진유경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진호영이 이 문제를 꺼내들었을 때 그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만약 할머니 때문이라면 그녀는 어차피 주식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진씨 가문에서 나가야 했고 아니면 주식을 넘기고 계속 남아야 했다. ‘둘째 오빠는 정말 나에게 이 정도로까지 무자비해질 수 있는 사람인 걸까?’ 진호영은 부드럽게 타일렀다. “유경아, 할머니께서는 늘 너를 예뻐해 주셨잖아. 그렇지 않니?” 진유경은 침묵했다. 할머니가 자신을 예뻐했다는 것은 그녀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주식을 내어주겠다는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여전히 망설여졌다. 진호영은 그녀의 침묵에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할머니를 위해서도 못 하겠니?” 그의 목소리에는 실망이 배어 있었다. 그는 비
저녁 식사가 끝난 뒤 진정훈은 필요하지도 않은데 굳이 나서서 고은영의 아이를 돌봤다. 그는 특히 이 조카를 아끼는 듯했고 아기도 그가 안아주면 유난히 좋아하며 웃었다. “크크, 이게 바로 혈연이라는 거지. 내 품에 안겨서 이렇게 웃는 걸 봐.” 고은영은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 완전히 자랑하는 말투였다. 고은영과 배준우는 원래 저녁에만 겨우 아이를 볼 수 있었기에 집에 오면 서로 안아보려고 애썼다. 그런데 이제 이곳에 하나 더 추가된 경쟁자가 생겼으니, 바로 진정훈이였다. 그는 정말 성가신 존재였다. 진정훈이 아이와 놀아주고 있을 때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황급히 아이를 고은영에게 넘기고 전화를 받으러 나갔다. “여보세요.” 전화기 너머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태도는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이어 진정훈이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응, 지금 바로 돌아갈게.” 그렇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더니 고은영을 돌아보며 말했다. “잠깐 외출 좀 해야겠어. 한 시간 안에 돌아올게.” 고은영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한테 스케줄을 굳이 보고할 필요가 있나?’ 결국 그는 떠났다. 배준우는 그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네 둘째 오빠, 정말 짜증 나.” 그는 한마디로 ‘고출력 전구’같았다. 이런 사람은 정말 피곤했다. “그럼 진정훈을 어쩔 건데요?” 그녀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너 진정훈을 아예 쫓아낼 수 있어?” 집 안에 한 명이 더 있으니 완전히 분위기가 달랐다. 물론 지금도 사람이 적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들 필요할 때만 나타나고 필요하지 않을 때는 조용히 물러나 있었다. 그런데 진정훈은 달랐다. 그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고은영 앞에 나타났다. 언제 어디서나 그녀와 형제애를 쌓겠다는 의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고은영은 도전적인 눈빛으로 배준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준우 씨라도 한 번 해봐요.” 배준우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고은영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
진호영이 황급히 뒤쫓아 나갔다. “둘째 형!” “무슨 일이야?” “내일이면 더는 그 말도 안 되는 소문들을 안 봐도 되는 거지?” 진호영은 숨을 죽이며 물었다. 이틀 동안 외부의 악의적인 보도들은 그들의 숨통을 옥죄어 오고 있었다. 지금 진유경이 이미 주식 양도서에 서명을 했으니 이제 모든 일이 끝난 거 아니냐는 기대감이었다. 그러나 진정훈은 고개를 돌려 차가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건 모두 할머니의 태도에 달렸지.” 이 말에 진호영은 순간적으로 누가 머리를 한대 친 것 같았다. 할머니의 태도라니. “형, 그게 무슨 뜻이야?” ‘설마 이제 할머니의 주식까지 노리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자 진호영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미친 거 아니야?” 진정훈은 대꾸하지 않고 가볍게 돌아서 떠났다. 진호영은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형이 지금 대체 뭘 하려는 거지?’ ‘단지 고은영이 그동안 겪은 고생을 보상하기 위해서 온 가족을 이렇게 희생시키는 건가? 고은영이 겪은 어려움은 우리가 만든 것도 아닌데 왜 모두가 함께 보상해야 하는 거지? 보상하고 싶으면 고은영을 집에 데려오는 걸로 끝내면 될 일 아닌가? 왜 사태를 이렇게까지 키우는 건데?’ 진호영은 이해할 수 없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였다. 진정훈은 진씨 가문을 떠나 곧장 란완리조트로 돌아갔다. 고은영과 배준우는 아직 안 자고 있었다. 그가 돌아오자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어찌나 묘한지 진정훈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왜 그렇게들 쳐다보는 건데?” 배준우가 말을 꺼냈다. “저랑 은영이는 둘째를 가질 계획이에요.” “뭐라고?” ‘둘째라니! 첫째가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둘째라니? 아니, 둘째를 가질 거면 그냥 가지면 되는 거 아니야? 굳이 나를 그렇게 쳐다볼 필요가 있냐고!’ 고은영은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몰랐다. 배준우의 무책임한 발언에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물들었다. ‘이 사람, 뭔
“고마워요, 둘째 오빠.” 진정훈은 충분히 둘째 오빠라는 단어를 들을 자격이 있었다. 그저 최근에 너무 많은 일이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건 그의 강압적인 태도가 효과를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고은영이 드디어 그를 오빠라고 부르는 것을 들은 순간 진정훈의 마음은 순식간에 녹아내릴 듯했다. “에이, 며칠 뒤에 또 있어!” 배준우는 무심결에 진정훈을 쳐다봤다. ‘이 사람, 정말 단순히 오빠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 이토록 무지막지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건가?’ 그는 지난 며칠 동안 태풍처럼 진씨 가문을 휩쓸고 다녔다. 도대체 무슨 수를 써서 진호영의 지분을 빼앗았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진유경의 지분마저도 강제로 가져왔다. 그는 고은영에게 조금이라도 잘못했던 사람들에게 반드시 그녀를 위한 대가를 치르게 하고 있었다. 특히 진유경. 그가 고은영에게 했던 짓은 진정훈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그녀를 겨냥했던 것이다. “사실 굳이 이럴 필요는 없는데...” “오빠가 준 거잖아. 받아.” 고은영은 무심결에 거절하려 했으나 배준우가 말을 가로막았다. 고은영은 배준우를 쳐다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이미 충분히 많이 받았는데 왜 더 받아야 하냐는 표정이었다. 배준우는 그녀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안심시키려 했다. 진정훈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내가 주는 거니까 받아. 겁낼 거 없어.” 겁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진정훈은 진씨 가문에서 자라며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 고은영은 그가 자신 때문에 가족들과 너무 심하게 대립하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지금 진정훈은 분명 그들에게 완전히 실망한 듯했다. 고은영의 설득조차 들으려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방으로 돌아온 뒤에 고은영은 배준우에게 물었다. “왜 자꾸 받으라고 해요?” “원래 네 거였으니까.” “뭐라고요?” 배준우는 단호히 말했다. “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너에게 남겨둔 지분이었어. 그
역시 자기 동생이다 보니 어딜 봐도 귀엽기만 했다! 키는 꽤 컸지만 이건 아마도 진씨 가문의 유전일 것이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여자애는 잠을 많이 자야 빨리 늙지 않아.” 그는 정말 모르는 게 없는 것 같았다. 고은영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정훈 전에 외국에서 대체 뭘 한 거야? 어쩜 이렇게 많은 걸 알고 있는 거지?’눈을 비비며 말했다. “오늘 병원에 가야 해요. 언니가 수술을 받아요.” “고은지 말하는 거야?” “응.” 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정훈은 사실 고은지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예전에 고은영의 어린 시절을 조사하면서 고은지가 그녀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절 그 할머니가 고은영을 데리고 있었지만 사실 이미 나이가 많아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 고은지는 자주 몰래 그녀들을 도와줬다. 이렇게 착한 여자아이가 하필이면 량천옥의 딸이라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 ‘량천옥은 대체 무슨 복을 타고났길래 저런 딸을 두게 된 거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럼 내가 같이 갈까?” 어쨌든 동생의 은인이니 곧 그의 은인이기도 했다. 진정훈은 늘 은혜와 원한을 확실히 구분하는 사람이었다. 때려야 할 사람은 때리고 감사해야 할 사람에게는 진심으로 감사를 전했다. 그리고 고은지는 분명 그가 감사해야 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고은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 혼자 가면 돼요!” 고은영은 진정훈이 같이 가는 걸 원치 않았다. 진정훈은 잠깐 더 고집을 부리려 했지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꺼내 확인하니 진씨 가문의 집 전화였다. 고은영을 한 번 보고는 그녀 앞에서 전화를 받지 않고 옆으로 걸어가 받아들었다. “여보세요.” “당장 집으로 돌아와라!” 전화기 너머로 할머니가 이를 악물고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진정훈이 진유경과 진호영의 지분을 가져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모양이었다. 진정훈은 태
안지영은 오후 두 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열은 사무실에서 안지영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내가 한눈판 사이에 두 분이 나간 건가?’1시 30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은 급한 마음에 얼른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장선명이었다.“무슨 일이야.”그 말에서 안열은 이미 장선명의 짜증을 읽어냈다.안열은 약간 놀랐다.“선, 선명 도련님? 30분 뒤 안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지금 안 대표님은 어디에...”휴게실에 있는 장선명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자고 있는 안지영을 쳐다보았다.오전에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안지영은 계속 쭉 자고 있었다.“그냥 회의를 취소해.”“네? 그건...”“무슨 문제라도 있어?”“아, 아니요. 오늘 회의는 부승호도 참석하는 회의라... 알잖습니까.”부승호는 바로 하늘 그룹을 배신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장선명은 바로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부승호한테 얘기해. 오늘 저녁 날 만나러 오라고.”“직접 나서서 안 대표님을 대신하실 생각입니까?”안열이 놀라서 물었다.예전에는 안지영이 성장할 수 있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던가.그래서 안열과 장선명 다 안지영의 뒤에서 묵묵히 안지영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안지영은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부승호와 마주하는 것도 안지영에게 있어서는 그동안의 실력을 검증할 가장 좋은 기회다.“무슨 문제라도 있어?”그 말에 안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닙니다!”안열은 여전히 장선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장선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안열은 얼른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장선명은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안지영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지금 몇 시예요?”“피곤하면 그냥 자.”장선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안지영은 눈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
안지영은 약간 생각하더니 얘기했다.“그런데 그렇게 욕한 게 오늘이 처음인 건 아니지 않아요?”“...”안지영이 그렇게 얘기하자 안열은 더욱 화가 났다.“저를 볼 때마다 저한테 개라고 욕해요. 개자식... 개같은 건 본인이면서! 나씨 가문 전체가 그냥 다 개예요!”안지영은 이마를 짚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안열 씨를 그렇게 욕하고서도 잘 살아있다니... 신기할 정도네요.”안열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이제는 안지영도 잘 알았다.하지만 나태웅은 번마다 안열을 욕하면서 멀쩡히 살아있으니, 안지영은 약간 놀라웠다.“못 이긴다니까요!”“...”도대체 나태웅의 실력이 얼마나 좋기에 안열도 상대할 수 없는 걸까.“됐어요. 나태웅 얘기하면 기분이 잡치니까 그만 해요.”나태웅은 그런 존재다.언급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사람이다.“그건 맞아요. 짜증 나는 사람이죠.”안지영은 나태웅이 정말 너무 싫었다.“그러니까 무조건 승소해요!”너무 화가 나니 아무리 나태웅 얘기를 꺼내지 말자고 해도 결국 나태웅 얘기를 꺼내게 된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분명 승소할 겁니다!”안지영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안열뿐만이 아니라 안지영도 화가 난 상태다.안지영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 화를 전부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었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꼭 이기게 해줄게요!”나태웅을 고소하려던 건 안지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그 뜻인즉슨 나태웅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건드렸다는 것이다.안열은 안지영 앞에 있는 사진을 슬쩍 보았다. 안에는 장선명도 있는 것 같았다.“뭘 보는 거예요?”그렇게 물으면서 사진을 확인하려던 때, 안지영이 빠르게 사진을 가져가려고 했다.하지만 안열이 그 중 한 장을 손에 넣었다.사진을 본 안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안지영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버렸다.안 그래도 아까 일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태웅이 이
안열은 본능적으로 나태웅의 얼굴을 발로 차버리려고 했다.하지만 발을 드는 순간 갑자기 느껴지는 고통에 안열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그리고 다리를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너 이 새끼...”나태웅에게 욕을 퍼부어주려는데 나태웅은 이미 엘리베이터에 타 있었다.나태웅은 아까 안열의 발을 부숴버리려고 했다.화가 치밀어오른 안열이 나태웅을 잡으려고 했지만 결국 발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발등은 지방이 적어서 아주 취약한 부분이다. 나태웅은 바로 그 부분을 노린 것이다.확인해보니 발등에는 이미 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안열은 표정이 어두워져서 안지영의 사무실로 들어가 얘기했다.“나태웅은 정말 악질이에요. 반드시 고소해서 승소하고 감옥에 처넣으세요!”안열이 씩씩대면서 얘기했지만 안지영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이상함을 눈치챈 안열이 안지영을 쳐다보았다. 안지영은 테이블 위에 놓인 무언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왜 그래요?”안열이 다가가서 물었다.안지영은 정신을 차리고 미간을 찌푸린 채 안열을 바라보았다.그러다가 안열의 발등이 퍼렇게 멍든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이게 무슨 일이에요? 누가 때렸어요?”“나태웅이요! 그 개같은 자식...”안열이 울분에 받쳐서 얘기했다.안지영은 약간 놀랐다.“나태웅이 때렸다고요? 안열 씨, 나태웅이랑 싸우면 못 이겨요?”“못 이겨요.”안지영은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저번에도 비슷한 대답을 들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반드시 나태범을 감옥에 넣어주세요.”안열이 이를 꽉 깨물었다.안지영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이런 모습의 안열을 보니 조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나태웅을 감옥에 넣으라고요?”“네! 살인미수잖아요. 꼭 승소하고 콩밥을 먹게 해야 해요!”안열은 여전히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마치 지금 당장 나태웅을 끌고 교도소에 갈 사람 같았다.“...”나태웅을 감옥에 보낸다니.그것보다 더 좋은 결말은 없을
마주한 시선 속에서 안지영은 나태웅에게서 위험을 느꼈다.숨을 깊게 들이쉰 안지영이 시선을 돌리고 얘기했다.“난 너랑 죽도록 싸우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너도 그렇고, 너희 가문도 그렇고, 정말 선을 넘었어.”그 말에 분위기가 점점 차가워졌다.나태범이 한 짓들은 자꾸만 안지영을 화나게 했다.나태웅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내가 알려줬던 거 같은데. 장선명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장선명이 왜 너랑 결혼하려고 하는 것 같아?”“이유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곧 결혼한다는 사실이야.”안지영은 나태웅 같은 사람 앞에서 더욱 굳건해졌다.안지영은 애매모호한 사람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한쪽에 올인하는 쪽이다.그러니 지금 본인이 누구를 원하고 누구를 좋아하는지 아주 잘 알았다. 장선명을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그리고 성격상으로도 동시에 두 남자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래서 처음부터 장선명과 비즈니스 관계로 시작했고 선을 넘지 않고 거리를 잘 유지했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안지영은 장선명과 정말 한 쌍의 부부가 될 것이다.차가운 안지영의 태도에 나태웅이 차갑게 웃었다.“하, 정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도대체 뭐라는 거야.”안지영은 본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태웅이 너무 싫었다. 분명 중요하지 않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또 물으니 말이다.나태웅은 가방에서 사진을 꺼내 사무실 위에 올려놓더니 안지영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안지영은 눈썹을 찌푸리고 물었다.“이게 뭔데...”“직접 확인해봐.”“...”“잘 확인해. 네가 사랑하는 그 남자가 정말 너만의 것인지.”“...”안지영은 호흡마저 거칠어졌다.“지금 이간질하려는 거야? 하지만 이제 쓸모없어!”“두려워?”나태웅이 눈썹을 까딱이면서 물었다.안지영은 나태웅을 당장이라 씹어먹을 듯한 눈빛으로 나태웅을 노려보았다.나태웅은 미간을 찌푸리고 사진을 향해 눈짓했다. 안지영은 이를 꽉 깨물고 사진을 들어 확인했다.그 사진은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