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멀어져 가는 장면은 무정하기 그지없었다.김영희가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걸 보고 진호영이 앞으로 다가갔다.“할머니, 진정하세요.”김영희는 지금 도저히 진정할 수 없는 상태였기에 자기도 모르게 화를 내고 있었다.하지만 지금 진씨 가문에서 유일하게 진호영이 진유경을 아껴주고 있다는 걸 알기에 김영희는 마음속의 분노를 억눌렀다.상황이 이 지경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김영희는 진호영을 속으로 무시했었지만 이제는 진호영에게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호영아, 유경이를 구해야 해. 꼭 구해야 해.”“네, 알겠어요.”“네가 큰형을 찾아가 봐.”이제 진정훈을 통제할 수 있는 건 진윤밖에 없었다. 진정훈은 완전히 미친 상태였고 지금 진씨 가문이 강성에서 완전히 웃음거리가 되어버렸는데도 진정훈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이 점이 바로 가장 큰 문제였다.진호영이 말했다.“큰형은 이 일에 관여하지 않을 거예요.”진윤이 진씨 가문의 일에 신경 쓸 리가 없었다.진호영은 그동안 진윤이 진씨 가문을 대하는 태도만 보면 알 수 있었기에 고민도 하지 않고 말했다. 김영희는 진윤이 이 일에 관여하지 않을 거라는 말을 듣고 마치 찬물을 뒤집어쓴 듯 온몸을 떨었다.김영희가 뭔가를 더 말하려는 순간 한쪽에서 도우미가 놀라서 외쳤다.“회장님, 회장님, 괜찮으세요?”진성택이 결국 화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이미 혼란스러웠던 진씨 가문은 이제 완전히 난장판이 되었다.진호영과 다른 사람들은 진성택을 병원으로 데려가면서 계속해서 진정훈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러나 진정훈은 진씨 가문을 떠난 뒤 바로 진윤에게로 갔고 전화를 받았을 때는 이미 진윤과 함께 있었다.진정훈은 진성택이 병원에 실려 갔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눈빛에는 아무런 온기도 없었다.“병원에 가면 그만이지. 내가 의사야?”“형은 고은영의 둘째 오빠일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아들이기도 해.”진호영은 아주 보기 드물게 강한 말투로 말했다.항상 방탕하고 제멋대로이던 진호영이 이렇게 진지하게 말하는 건 처음이
지금 전체 진씨 가문은 음산한 기운에 휩싸여 있었다.고은영은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배준우와 함께 아침을 먹은 뒤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고희주도 함께 가고 싶어 했고 지금은 고은지의 상태도 좋았기에 이번에는 고희주도 함께 데려갔다.딸을 본 고은지는 웃으면서도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병원에 세균이 많으니까 자주 오지는 마.”고희주는 어릴 때부터 몸이 워낙 약해서 고은지는 항상 고희주가 병에 걸릴까 봐 걱정이었다.“엄마가 보고 싶어서 왔어.”고희주는 엄마가 정말 많이 그리워 바로 침대로 달려가 고은지의 품에 안기려 했다. 아이들은 늘 그랬다. 부모가 어떤 생활 환경을 주든 아이들이 원하는 건 항상 가장 간단한 것들이었다.비록 낡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지 못하더라도 엄마 곁에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였다.고희주는 그동안 고은영의 곁에 있었고 계속 란완리조트에서 고희주를 잘 돌봐주었지만 여전히 엄마가 그리웠다.“우리 희주 착하지.”고은지는 그런 고희주의 모습에 마음이 너무 아파 고희주의 머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고희주가 엄마를 그리워했듯이 고은지 역시 그동안 고희주가 너무 그리웠다.고은영은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가슴 아파하며 바라보다가 의사 사무실로 향했다.서민혁은 현재 고은지의 상태가 좋지 않다고 말했지만 골수 기증자와는 이미 협의를 끝냈다고 말했다.이제 수술만 가능하다면 기증자가 바로 올 거라고 했다.이 말을 들은 고은영은 매우 기뻤다.“그럼 기증자 어머니의 치료비는요?”고은영은 기증자가 혹시라도 마음을 바꿀까 봐 걱정되어 이 문제를 빨리 처리하고 싶은 마음에 다소 급하게 물었다.서민혁은 고은영의 질문에 기증자 어머니의 이름과 주민등록 번호 그리고 병원 이름까지 알려주었다. 고은영이 물었다.“그럼 제가 직접 가서 치료비를 결제하면 되나요? 아니면.”“다른 건 필요 없어요. 그 사람을 만날 필요도 없고요. 만나면 번거로운 일이 많으니까요.”일반적으로 혹시라도 나쁜 영향을 줄까 봐 병원에서는 의료법상 기증
의심할 여지도 없이 고은영에게는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다행히 고은영은 전에 량천옥에게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 진윤을 오빠라고 부르는 이 상황이 더욱 이상했을 것이다.“무슨 일로 전화하셨어요?”고은영은 조용히 물었다.고은영은 자기에게 호의적인 사람에게는 말투가 확실히 달랐다.진윤이 말했다.“내일 완도로 와서 밥 먹자. 외할머니도 오실 거야.”‘외할머니?’이전에 정가 마을에서 진경희는 고은영을 매우 잘 챙겨줬었다. 그때는 정설호가 고은영에게 진경희를 아주머니라 부르라고 했다.그런데 그 사람이 바로 고은영의 외할머니일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그러나 고은영은 아직 이 관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진윤의 말을 듣고도 잠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진윤이 말했다.“그럼 내가 준우한테 말해 놓을게.”고은영이 계속 말이 없자 진윤은 고은영이 지금 많이 어색해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은영이 대답하기도 전에 진윤은 먼저 전화를 끊었다.솔직히 말해서 고은영은 지금 어떻게 사람들을 마주해야 할지 몰랐고 마음속에는 오직 고은지에 대한 걱정뿐이었다.어제 하루 종일 진씨 가문 사람들이 고은영의 앞에 나타났기 때문에 고은영은 진씨 가문과 관련된 일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한편 완도에서 윤설은 진윤에게 물 한 잔을 건네며 생각에 잠긴 진윤의 얼굴을 보고 말했다.“왜? 일이 잘 안 풀려?”“얼마 전에 은영이가 량천옥을 엄마로 인정할 뻔했잖아. 그래서 마음속에 조금 상처가 남아 있을 거야.”윤설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겠지. 이 일은 너희한테는 아주 명확한 일일 수 있지만 은영이는 아직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모를 거야.”만약 전에 량천옥 사건이 없었다면 고은영도 이렇게까지 혼란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그 사건은 고은영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진윤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나도 은영이를 억지로 몰아붙이고 싶지 않아.”“지금 진씨 가문도 좀 혼란스러우니까 은영이 마음도 더 복
진윤과 윤설이 떨어지기 아쉬워할 때쯤 밖에서 도우미가 갑자기 들어오더니 진호영이 찾아왔다고 말했다.그 말에 진윤의 얼굴이 바로 굳어졌다.진윤은 요즘 동생들이 너무 성가시게 느껴졌다.전에는 진정훈이 그랬는데 이제는 진호영까지 그랬다. 하나같이 진윤에게는 골치 아픈 존재들이었다.윤설은 진윤이 얼굴을 굳히는 걸 보고 조금 불편해하며 말했다.“저기. 나 먼저 위층으로 가 있을까?”“그래. 천천히 가. 뛰지 말고.”진윤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당부하자 윤설은 흥하고 투덜대며 말했다.“나 어린애 아니거든.”윤설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후 진윤은 매우 조심스러워했고 그녀를 안을 때도 손에 힘을 뺐다.혹시라도 힘을 조절하지 못해 윤설을 다치게 할까 봐 매우 신경 썼다.진호영이 들어왔을 때 진윤은 계단 위로 올라가는 윤설을 다정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형?”진호영은 순간 자기가 잘못 본 줄 알고 시험 삼아 진윤을 불렀다.그는 진윤이 이렇게 다정한 표정을 짓는 걸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보통 진윤은 언제나 차갑고 엄격했다.진호영의 목소리를 들은 진윤은 바로 얼굴을 굳히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진윤은 늘 그랬던 것처럼 엄숙하고 차가운 표정이었다.이에 진호영은 순간 할 말을 잊었다.‘역시 내가 잘못 본 거야. 형이 그렇게 온화한 표정을 지을 리가 없어.’진윤이 냉랭한 얼굴을 보고 진호영이 말했다.“형, 윤설하고 진지한 사이야?”“설이는 네 형수님이야.”진윤의 말투는 더 차가워졌다.전례 없이 차가운 분위기가 진호영의 온몸을 휘감는 것 같았다.‘형수면 형수지 굳이 이렇게 큰 소리 낼 필요까지 있나?’진호영은 진윤과 윤설이 이렇게 진지한 사이라는 사실에 진심으로 놀랐다.윤설과 진윤이 오랫동안 함께 했지만 그들이 본 진윤은 항상 냉정하고 무정했기에 모두 그저 진윤과 윤설이 가볍게 즐기는 사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진윤이 이렇게 진지하게 윤설을 대할 줄 누가 알았을까?진윤이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온 거야?”진윤은 동생 진호영이
진호영이 대답하자마자 진윤은 앞에 놓여 있던 재떨이를 집어 던졌다.아까 고은영이 진윤의 전화를 받았을 때 왜 그런 태도를 보였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차가운 태도 속에 거리감이 묻어나는 고은영의 태도는 그녀가 현재 진씨 가문의 혼란을 직면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충분히 보여주었다.“이 멍청한 자식아. 뭐가 옳은지 그른지 판단이 안 돼? 정말 모르는 거야?”“나도 그때는 어쩔 수 없었어. 나도 형이 유경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난...”“그래서 은영이가 네 부탁을 들어줬어?”진윤은 흥하고 코웃음을 쳤다.당시 고은영의 태도를 묻자 진호영은 더욱 짜증이 났다.이 일은 그냥 고은영이 진정훈에게 한마디만 해주면 끝날 일이었고 그녀에게 전혀 해가 될 일도 아니었다.하지만 고은영은 단호히 거절했다.“고은영은 거절했어. 근데 형, 유경이는 정말 착하고 순수한 애야. 유경이는 절대 고은영을 괴롭히지 않을 거야.”진호영은 진윤이 진유경을 구해주지 않을까 봐 다급하게 말했다.그러나 진호영은 지금 여기서 아무리 입을 놀려도 진윤이 절대로 진유경을 구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진윤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가 떴다.“너 가.”“형.”“그리고 앞으로 다시 은영이를 찾아가면 네 다리를 부러뜨릴 테니 조심해.”진윤의 말에 진호영은 온몸을 벌벌 떨었다.진호영은 진윤이 한 번 뱉은 말을 반드시 지킨다는 걸 알고 있었다. 즉, 진호영이 진유경 때문에 또다시 고은영을 찾아간다면 진윤이 반드시 진호영을 죽여버리겠다는 뜻이었다.“하지만 유경이는.”“능력이 있으면 네가 어디 한 번 직접 구해 봐. 정훈이 손에 죽는 게 두렵지 않다면 말이야.”진호영은 진윤의 말에 말문이 막혔고 떨던 몸을 더욱 심하게 떨었다.진정훈이 진유경에게 얼마나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지 이제 진씨 가문 전체가 알고 있었다.이미 시작한 이상 진정훈은 진유경을 쉽게 놓아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여기까지 생각한 진호영은 진유경 때문에 더욱 가슴이 아팠다.“형.”
진호영은 그렇게 자리를 떠났다.진윤은 윤설이 뒤에 다가와도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그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윤설의 차가운 손이 진윤의 관자놀이에 닿았을 때야 그는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진윤은 윤설을 한 번에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조심해.”‘이 남자가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는 거야.’윤설은 진윤이 힘 조절을 하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사실 진윤도 매우 조심스럽게 윤설을 끌어당기면서 다른 손으로 그녀를 보호하고 있었다.윤설은 이어서 말했다.“내가 과일 요구르트 만들었는데 좀 먹을래?”“앞으로 이런 일 하지 마. 주방에도 가지 말고.”“그럼 어떻게 해? 네가 다른 사람이 만든 음식은 잘 안 먹잖아.”윤설은 투덜거리며 말했다.그동안 윤설은 진윤의 곁에서 그의 식사와 생활을 거의 전부 챙겨왔다.“네가 할 필요 없으니까 말 들어.”습관은 정말 무서웠다.윤설의 말 대로 이 몇 년 동안 진윤은 윤설의 보살핌에 익숙해졌고 윤설이 만든 음식에 길들었다.그래서 계약이 끝나갈 무렵 진윤은 윤설이 자기를 떠나려는 걸 눈치채고 다급하게 그녀와 결혼했다.하지만 이제 그 습관을 조금씩 바꿔야 했다.“어찌 됐든 넌 이제 주방에 들어가지 마. 알았지?”“괜찮아. 특별히 큰 변화도 없는걸.”생리가 10일이나 늦어져 오늘 임신 테스트를 해보니 임신이었다.하지만 요즘 자주 졸리거나 입덧 같은 특별한 증상은 없었다.진윤이 말했다.“변화가 곧 있을 거야.”“그래 알겠어. 네 말대로 할게.”진윤이 고집하자 운설은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사실 윤설은 누군가가 자신을 도와주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현재 집에도 청소를 도와주는 아주머니 외에 다른 사람은 없었고 남은 일과 주방일은 대부분 윤설이 해왔다.윤설은 요리하는 걸 아주 좋아했고 그 시간을 아주 즐거워했다.진윤은 윤설이 순순히 따르자, 미소를 지었다.“착하네.”“외할머니와 은영이가 내일 오잖아. 그럼 내가.”“그건 네가 신경 쓸 필요 없어.”이 순간 진윤은 고은영에게 윤설의 요리를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고은지는 도저히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퇴원은 고은지에게 큰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었다.뭔가 더 말하려던 차에 고은영의 핸드폰이 울려 꺼내 보니 혜나에게서 온 전화였다.고은영은 전화를 받기 위해 밖으로 나갔고 그녀가 먼저 말할 틈도 없이 혜나가 다급하게 말했다.“사모님, 큰일 났어요. 희주가 량천옥한테 끌려갔어요.”“뭐라고?”고은영은 순간 놀랐다.“희주가 량천옥에게 끌려갔다고? 어떻게 된 일이야?”고은영은 말하면서 이미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혜나는 전화로 상황을 설명했다.혜나와 고희주는 밀크티를 사러 나왔다가 병원 입구에서 량천옥을 만났지만 조심하지 않아 량천옥과 부딪혔고 량천옥이 손을 들어 고희주의 뺨을 때렸다고 한다.이에 분노한 혜나가 량천옥에게 따지려고 할 때 량천옥이 대동한 경호원 두 명이 혜나를 붙잡았고 그 사이 량천옥이 고희주를 차에 태워 데려가 버렸다고 한다.고은영은 혜나의 말을 듣고 매우 놀랐다.“지금 어디에 있어?”“병원 입구예요. 사모님, 정말 죄송해요. 제가 막지 못했어요.”혜나는 겁에 질려 울먹였고 고은영도 당황한 상태였다.혜나의 설명을 들어보니 혜나를 탓할 수도 없었다. 그녀도 여자였기에 혼자서 량천옥이 데려온 경호원 두 명을 상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병원 앞에 밀크티를 사러 나간 것뿐인데 이렇게 큰일이 일어날 줄 누가 알았을까.혜나의 전화를 끊은 뒤 고은영은 곧바로 량천옥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를 받자마자 고은영이 말하기도 전에 량천옥의 비웃는 듯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어머 배씨 가문의 사모님께서 이제야 급해졌나 보네?”량천옥은 배씨 가문의 사모님이라는 호칭을 특별히 비꼬며 말했다.량천옥도 배씨 가문에 오랫동안 있었지만 배준우의 사람들은 단 한 번도 량천옥을 배씨 가문의 사모님이라 부르지 않았다.배준우는 량천옥을 새엄마로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배준우가 고은영과 결혼한 뒤 그녀가 란완리조트의 여주인이 되자 사람들은 고은영을 사모님이라고 불렀다
고은영은 큰 용기를 내어 바로 량천옥의 별장으로 찾아갔다. 이 순간 고은영은 량천옥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차 량천옥과 끝까지 싸우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고은영은 아무 생각 없이 거의 본능적으로 행동했고 너무 많은 걸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만약 고희주가 량천옥에게 끌려간 사실을 고은지가 알게 되면 그 충격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고은영은 바로 혜나에게 전화를 걸어 고은지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지시했다.혜나도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에 고은지의 앞에서 함부로 말하지 않았다.하지만 량천옥은 아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량일은 고은영이 찾아온 걸 보고 복잡한 심경으로 한숨을 쉬며 말했다.“천의를 돌려주면 모든 일이 끝날 거야.”“그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계시잖아요.”고은영이 망설임 없이 말하자 량일도 거침없이 말했다.“그렇다면 더 이상 할 얘기는 없겠구나.”“그쪽은 딸이 감옥에 가도 상관없어요? 량천옥도 결국 그쪽처럼 탐욕스러운 엄마 밑에서 자랐으니 평생 이런 가치관을 갖고 살 수밖에 없겠네요.”고은영은 량천옥을 잘 알고 있었다.예전에 일어난 모든 일들은 량일 때문이었다.량천옥도 젊었을 때는 열정 많은 소녀였고 미래에 대한 기대로 가득했을 것이다.하지만 량천옥이 힘겹게 쌓아 올린 모든 것 즉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아이를 낳아 기르는 행복한 미래는 전부 권력에 대한 량일의 탐욕으로 인해 무너져 버렸다.량일은 고은영의 말에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그녀를 노려보았다.고은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서 말했다.“량천옥이 내 언니의 아이를 납치했어요. 내가 경찰에 신고하면 어떻게 될 것 같으세요?”량일은 날카롭게 반문했다.“네가 감히 신고할 수 있겠어?”량일의 얼굴에는 더 이상 전에 보였던 따뜻함이 없었고 대신 차가운 기운만이 감돌았다.량일은 많은 풍파를 겪어온 사람으로서 어린 고은영의 몇 마디로 겁먹을 사람이 아니었다.량일은 안경을 벗으며 말했다.“신고할 용기가 있었다면 진작에 했겠지. 이렇게
고은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태현 씨는 량천옥이 언니의 생모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당연히 알고 있지.” 이 일은 병원에서도 크게 떠들썩하게 된 사건이라 나태현 쪽에서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배준우는 고은영을 쳐다보며 이어서 말했다. “네가 말한 대로 나태현과 고은지의 거래가 량천옥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맞아요. 언니가 천락 그룹으로 돌아간다고 말할 때 량천옥이 아직도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었는데 그 말투에 분노가 가득했어요.” 고은영은 고은지의 분노에 대해 말을 꺼내면서 마음속이 더욱더 쥐어짜이는 것 같았다. 나태현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지금 상황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고은영은 머릿속이 완전히 엉켜버렸다. 그녀가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것처럼 배준우도 지금은 완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준우 씨가 나태현 씨에게 언니와 한 거래가 무엇인지 물어봐 줄 수 있어요? 그리고 희주가 본인 딸인 걸 알고 지신혜 씨와 약혼도 할 건데 왜 언니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하려고 하는지도 물어봐 줘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고은영은 공포감을 느꼈다. 그녀는 고은지에게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지금은 량천옥에 대해 강한 증오를 느끼고 있더라도 말이다. “내가 나태현 형에게 물어볼게. 너는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려.” “언니에게 말하고 싶어요.” “지금은 안 돼. 내가 먼저 나태현이랑 얘기하고 나서 말해.”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고은영이 말한 대로 지금은 최소한 나태현이 고은지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만든 계기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그럼 빨리 물어봐요.” “응, 알았어.” 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은영은 여전히 마음이 불안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지금 그녀는 거대한 음모가 고은지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진윤은 밖에서 시간을 확인했고 배준우가 10분 내로 나오지 않으면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담배를 반쯤 피웠을 때 문득 고은영이 대문 쪽에서 들어오는 모습을 봤다. 급하게 뛰어오는 모습에 거리가 꽤 있었음에도 진윤은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을 보고 그녀가 얼마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고은영이 가까워졌고 그녀는 진윤을 발견하고 잠시 멈칫했다. “큰오빠.” ‘큰오빠’라는 단 한 마디에 진윤의 마음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준우 찾으러 온 거야?” 고은영은 너무 오랫동안 뛰어왔는지 호흡이 가빠졌고 깊은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 안에 있어요?” “응, 안에 있어. 지금은 들어가지 마.” “왜요?” 고은영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진윤은 조용히 말했다. “지금 나태웅이랑 얘기 중이야.” “네? 나태웅이요?” 그 이름이 나오자 고은영의 말투도 달라졌다. 그녀는 전에 나태웅과의 영상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그에게 상당히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가 최근 동안 안지영을 괴롭힌 일이 떠올랐다. 고은영과 안지영의 관계를 고려할 때 당연히 말할 필요도 없이 안지영이 화가 나면 고은영도 같이 화를 내주었다. 진윤은 그녀가 나태웅을 언급할 때의 그 표정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나태웅을 싫어해?” “싫어해요!” 고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어?’ 전에 그녀가 배준우와의 일에 그렇게 괴로워했던 건 대부분 나태웅 탓이었다. 정말 그땐 너무 힘들었다. 지금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고은영은 그 당시 어떻게 버텼는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이 배준우는 이미 안에서 나왔다. 고은영을 보고 잠시 멈칫한 뒤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바로 왔어?” “준우 씨 찾으려고요. 급한 일이 있는데 전화도 안 받았잖아요.” 고은영은 불만을 섞어 말했다. 배준우는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윤을 한번 쳐다보았다. 그것을 본
나태웅이 혼자 남았을 때 그의 세계는 조용해졌다. 하지만 지금의 그에게 고요함은 더 큰 괴로움이 되었다. 그는 전화를 꺼내어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전화는 바로 차단되었다. 그는 다시 안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 사무실에서 안열은 겨우 안지영을 달래놓은 상태였다. 전화의 진동에 안열은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그리고 안지영도 전화를 확인하고 또다시 통제불능이 되었다. 안열은 안지영이 또 움직일 것 같아 황급히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너무 흥분하지 마요. 바로 차단할게요.” “받아요. 이 미친놈이 뭐라는지 봐야겠어요.” 안지영은 이를 갈며 말했다. 안열은 입꼬리를 떨구며 말했다. “그냥 받지 말죠?” 안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받아요!” ‘이 사람은 진짜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을지 걱정하지 않는 건가?’ 하지만 안지영의 말에 그녀는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안열은 안지영을 한 번 쳐다보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지영 지금 옆에 있나요?” “없어요!” ‘없어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지영은 나태웅의 차가운 목소리를 듣고 전화를 뺏으려 했다. 그녀는 그를 욕하고 나씨 가문이 망하길 저주했다. 하지만 손을 뻗자마자 안열이 그녀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한 마디만 전해줘요.” “말하세요.” “안지영은 두 가지 선택이 있어요. 첫 번째는 오늘 밤 킹덤 타운을 떠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오늘 밤 하주원에게 사과를 하는 겁니다.” “이틀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안열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마음을 바뀌었어요.” 안열은 더 이상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안지영은 분노에 가득 찼고 자신의 입을 막고 있던 안열의 손을 떼며 전화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나태웅, 너 이 미친놈! 꿈도 꾸지 마!” “그래, 그럼 하늘 그룹이 네 손에서 얼마나 있을지 지켜보자고!” “너 이 자식, 내가 너의 조상을 건드렸나 보다! 그래서 나한테 복수하는 거네!” 안열은 안지영의 욕설을 듣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하주원에게 손을 대지 말았어야 했다고?’ 배준우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니, 너 지금 이 상황이 도대체 뭐냐고?” 항상 사고가 명확하던 배준우가 지금은 나태웅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한 나태웅인데 지금 그를 보니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 안지영이 하주원에게 손을 댄 문제를 신경 써야 하는 걸까? 그와 안지영은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아직 명확히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나태웅은 대답하지 않고 담배를 달라고만 말했다. 배준우는 담배 한 개비를 던져주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태웅은 자신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했다. 그는 아직까지 안지영과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이가 틀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어리석은 여자...!’ 만약 그때, 그녀가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말을 했다면 그는 결코 그녀가 배준우 앞에서 창피를 당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배준우의 사람들에게 의지하려 했었다.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뒤 물었다. “너는 안지영과 장선명이 결혼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하주원 문제에서는 하주원을 도와주고 있잖아?” 그가 잠시 고심한 끝에 결국 핵심을 짚어냈다. “그건 전혀 다른 얘기지!”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기운이 맴돌았다. 배준우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다르다고?’ 원래는 명확하게 사고하는 배준우였지만 나태웅의 말에 혼란스러워졌다. 나태웅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하주원 문제에서 안지영이 반드시 사과해야 해.” 이 말을 듣고 배준우는 머리가 아팠다. 나태웅은 이 상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배준우는 담배를 다 피운 후 천천히 말했다. “너는 이걸 두 가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여자들 세계에서는 이것은 분명히 한 가지 문제야.” “안지영은 도
방금 안열이 장선명더러 처리하라고 했을 때의 그 걱정은 이제 안지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든 말든 지금은 나태웅을 찾아서 해결하지 않으면 진짜 미칠 것 같았다. 한편, 캘리포니아 반도의 한 장소에서는 배준우와 나태웅이 함께 있었고 진윤과 육범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몇 달 만에 다시 모인 이들이 장선명이 아닌 나태웅을 부른 이유는 사실 그들 모두 나태웅이 미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태웅을 불러내 대화를 나누어 보기로 했다. 육범수가 패를 내자 나태웅은 손에 들고 있던 패를 툭 치며 말했다. “난 끝났어.” 배준우는 그의 얼굴을 보고 찡그리며 물었다. “방금 그 전화, 안지영이었지?” 방금 나태웅은 나가서 전화를 했다.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다시 전화가 걸려온 것은 안지영이었다. 배준우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응.” “너 또 안지영 건드린 거야?” 사실 오늘 배준우가 여기 온 이유는 장선명의 부탁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장선명은 나태웅과 장씨 가문과의 관계가 더 나빠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태웅이 이렇게 계속 안지영을 괴롭힌다면 일이 커질 것이다. 장선명은 본래 도리를 따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태웅의 이 일에 대해서는 배준우를 생각해서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게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지금 하주원의 문제도 있고 나태웅의 행동이 점점 더 미쳐 가는 상황이라 걱정이 컸다. 나태웅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육범수에게 말했다. “너 나한테 만 이천 원 줘야 돼.” 배준우는 말문이 막혔다. 육범수도 나태웅이 안지영에 대해선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 진윤은 본래 남의 일을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성격이다. 본인의 가문 일도 충분히 골치 아팠기에 그동안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둘째 형이 얘기하잖아. 말 좀 해봐. 대체 안지영에 대해 어떻게 할 생각이야?” 하지만 육범수는 달랐다. 그는 직설적인 성격이기에
안지영은 화가 나서 전화를 부수고는 바로 사무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안열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다급하게 앞으로 나가서 잡았다. “어디 가시는 거예요?” “나태웅을 죽여야겠어요!” ‘아, 진짜 더는 참을 수 없어.’ 나태웅은 정말 죽어 마땅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손으로 그를 찢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대표님은 아직 근육도 제대로 안 키우셨잖아요. 나태웅을 찢어낼 힘이 있을까요?” 원래도 화가 치밀어 올랐는데 안열의 말에 더 화가 나버렸다.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정말 더는 못 참겠어!’ 안열은 안지영이 방향을 잃고 분노만 가득한 상태를 보고 바로 말했다. “이건 결국 넷째 도련님께 말씀드려야 할 문제예요.” “또 장선명 씨더러 처리하라고요?” 장선명의 수법은 이미 잘 봤다. 그는 가장 잔인한 방법을 써서 그녀조차도 반응할 틈 없이 모든 것을 정리해버린다. 그래서 만약 이 문제를 장선명이 처리하면 또다시 피비린내 나는 일들이 벌어질 게 뻔하다. “그건, 안돼요!” 안지영은 손을 휙휙 내저었다. 장선명은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조건 밀어붙일 것이다. 그건 안 된다. “왜요?” “그거 기억 안 나요? 지난번에 장선명 씨가 그렇게 처리했을 때 그 몇 억을 가지고 나태웅을 미쳐버리게 만들었잖아요. 이제 나태웅은 진짜 미친 사람이에요.” 특히 지금 그의 행동들은 안지영 마음속에 그가 정말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확신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라, 이 이유가 참 적합하네.’ 안열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안지영이 계속해서 말했다. “이번에도 강하게 나가면 그 사람은 진짜 미칠거예요. 그럼 우리 모두 큰일 난다니까요!” “혹시 대표님은 무서운 건가요?” “무섭지 않아요. 그런 문제는 제가 감당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안지영은 화가 나서 말투가 거칠어졌다. 아까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나태웅의 집안까지 욕을 해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이미 화가 나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말해봐, 정말이야?” 다시 입을 열었고 그의 말투에는 위험한 기운이 감돌았다. 전화가 아니라 만약 눈앞에 있었다면 안지영은 나태웅이 자신을 바로 목 졸라 죽일 것 같았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안지영!” “난 장선명 씨와 약혼한 상태야. 네가 무슨 상관이야? 너는 네 사촌 걱정이나 해. 내가 너희 나씨 가문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나 보네. 여자는 불여우처럼 순수한 척, 남자는 정신병자에 하나도 좋은 게 없어. 그 뿌리가 다 썩었어!” 그녀는 작은 입술로 욕을 퍼부었다. 안열은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이 저절로 떨렸다. 아까는 화가 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더니 지금은 완전히 미친 듯이 말하고 있었다. 안지영은 정말로 미친 듯이 화가 난 상태였다. “사과하라고? 대체 누가 누구한테 사과해야 하는 건데! 내 아버지는 아직 병원에 누워 있고 네 사촌은 와서 날 때렸는데 나더러 사과하라고? 너희 나씨 가문 집안 교육이 이 모양이야? 다 멍청이들이야?” 이제는 나태웅의 조상까지 욕을 먹었다. 안지영의 이 폭발적인 성격에 안열은 이제야 제대로 실감했다. 안지영은 욕하는 건 진짜 잘했다. 이제는 나씨 가문이나 하씨 가문, 심지어 그들의 조상까지도 욕을 먹었다. 그녀의 거침없는 욕설을 들으며 나태웅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갔다. 그리고 안지영의 입은 더 이상 멈출 수 없는 폭풍처럼 계속 퍼부어졌다. 한참 동안 욕을 쏟아내고 겨우 숨을 골랐다. “더 욕할 거야?” 그의 말투는 안지영의 폭발적인 분노와는 대조적으로 매우 차갑고 차분했다. “하, 왜? 더 듣고 싶은 거야? 너...” “더 욕할 거 없으면 내일 병원에 같이 가자.” 그의 말투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고 냉랭했다. ‘젠장, 이 사람은 정말 사람 말을 못 알아듣나?’ “나더러 사과하라고? 생각도 하지 마! 꿈도 꾸지 마!” 꿈속에서도 사과할 일 없을 것이다. “그럼, 한 가지 말할 게 있어.” “뭔데
안지영과의 대화를 끝낸 후 고은영은 마침내 자신이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더 이상 불안하게 이리저리 쫓기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안지영은 여전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고은영을 달래고 나서도 심장이 가라앉을 틈도 없이 나태웅의 전화가 집 전화로 걸려왔다. 그녀는 번호를 볼 수 없어서 그냥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이틀 남았어.” 그 한 마디에 안지영의 화가 폭발했다. “뭐라는 거야?” “주원이에게 사과해!” 안지영은 입을 다물었다. ‘이 미친놈! 끝까지 이러는 거야?’ 만약 예전 같았으면 안지영은 그에게 말도 안 되는 반격을 했겠지만 지금은 화가 나서 전화를 바로 끊어버렸다. 안열이 들어왔을 때 안지영은 얼굴이 새카맣게 변해 있었다. “배씨 부인 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안열은 안지영이 이렇게 감정적으로 불안한 이유가 결국 고은영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감정은 조금 달랐다. 안지영은 고은영으로 인해 말문만 막힐 정도였고 다른 사람 때문이라면 분명 엄청 화를 낼 것이다. “아니에요!” 사실 고은영에게 생긴 일도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녀의 세상은 너무나 복잡했고 고은영이 또 울기 시작할지도 몰랐다. 안열은 안지영의 목소리에서 누그러지지 않는 화를 느끼며 궁금해했다. 고은영이 아니라면 또 누가 그녀를 이렇게 만든 것인지 궁금했다. “그럼 도대체 무슨 일이죠?” “나태웅이 나더러 하주원에게 사과하라고 했어요. 이틀밖에 안 남았다면서요.” ‘이 사람이...!’ 나태웅에게 욕을 할 만큼 다 했는데도 그를 물리칠 수 없었다. 지금 안지영은 연달아 욕할 힘조차 없었다. 그의 존재를 설명할 만한 적절한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미친놈? 병신?’ 안열은 놀라며 물었다. “뭐라고요? 사과요?” ‘정말 이 사람 끝까지 그러는 거야?’ 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까요. 제가 왜 사과를 해야 하죠?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얼마 전 나태웅의 집착과 하주원
안지영은 잠시 침묵했다. 이렇게 큰일이면 분석하는 데 얼마나 큰 두뇌 용량이 필요할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고은영이 울려고 할 정도로 급해진 게 이해가 갔다. 자신이라도 정말 울고 싶을 정도였다. ‘이게 도대체 뭐야, 진짜?’ “그럼 나태현은 량천옥이 너희 언니의 친엄마라는 걸 알아?” “그건 나도 몰라.” 상황이 이미 너무 복잡해서 이젠 고은영조차 잘 모르겠다고 하는 게 너무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나태현과 고은지가 거래를 했다는 것만 봐도 그의 동기는 좀 의심스럽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이제 지신혜와 결혼을 약속했고 고은지를 천락 그룹에 다시 데려가려 했다. 그동안 고은지가 천락 그룹에서 일했던 전력도 있으니 나태현의 속셈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게 분명했다. 안지영은 고민하다가 말했다. “음, 난 네가 차라리 네 언니에게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지금 말해?” “그럼, 무조건 말해야지! 량천옥이 아무리 미워도 네 언니의 친엄마잖아.” 진실을 알게 된 후 고은지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그녀의 자유다. 하지만 지금처럼 불확실한 상황에서 계속 숨기면 만약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고은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태현이 구희주의 아빠라는 사실은?” “그건, 생각 좀 해볼게!” ‘이건 말을 해야 할까 아니면 말하지 말아야 할까?’ 안지영은 바로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지금 일은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태현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역시 나씨 가문 사람이야. 어쩜 다들 이렇게 나쁜 자식이지?’ 전에는 나태현이 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와 보니 하나같이 나쁜 자식들이었다. “그래도 얘기하는 게 좋겠어!” 이렇게 큰일을 말 안 하면 나중에 얼마나 큰일로 번질지 알 수 없었다. 안지영은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이었다. 그래서 고은영더러 고은지에게 모든 일들을 잘 설명해 주라고 말했다. 어차피 고은지는 지금 모든 결정을 내린 상황이었고 아무런 일도 모르는 전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