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이 겁 먹긴. 우리 손엔 인질이 있잖아. 겨우 함대 하나로는 어림도 없지.”하이샤는 손에 들고 있던 야자수를 내려놓으며 천천히 일어섰다.너무나도 자신만만해서 그는 처음 보고를 받았을 때도, 망원경으로 대충 훑어보기만 하고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푸훗!”그러나 가까이 다가온 항공모함 전투단을 제대로 확인한 순간, 하이샤는 크게 놀라 입안의 야자수를 그대로 뿜어버렸다. 상황이 너무 심각했다. 이렇게 강한 함대들이 지키고 있으면 전멸할 게 분명했고, 설사 본거지로 도망친다고 해도 소용이 없을 게 너무나도 뻔했다.“멍청한 놈!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 왜 미리 보고하지 않은 거야?”그는 크게 화를 내면서 보고한 이를 걷어찼다.말을 하는 그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저 배에 탑승한다!”이때, 염구준의 파워풀한 목소리가 다시 한 번 울려퍼지더니, 곧 요트를 타고 이동하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이미 충분히 경고를 했지만 상대방이 아무런 반응도 없으니 그는 직접 움직일 생각이었다.쾅쾅!하이샤는 빠르게 다가오는 요트를 보며 무언가 떠올라 다급하게 협박했다.“멈춰! 다가오면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죽여버릴 거니까!”배에 있는 인질들은 그의 최후의 카드였다.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몇몇 해적들이 인질들을 끌고 앞으로 걸어가 피가 묻은 칼을 그들의 목에 가져다댔다.조금이라도 손에 힘을 준다면 인질들은 바로 죽을 게 뻔했다.“살려주세요! 전 죽기 싫어요!”“다음달이면 아빠가 될 예정이에요. 제발 이러지 마세요.”“뭐든 다 드릴게요! 그러니 죽이지만 말아주세요!”선원들은 공포에 질려 눈물, 콧물을 다 흘리면서 애원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닥친 비극에 그들은 모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작전 개시해.”그러나 염구준은 해적들과 협상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명령을 내렸고,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요트 위에 있던 사람들은 동시에 상선을 향해 이동했다.십여 명의 반보천인이 함께 구조에 나선 건 아마 용하국 역사에서도 처음 있는 일일
“멈춰! 네가 알고 싶은 건 뭐든지 말해줄게.”1분도 지나지 않아, 하이샤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갑판에 머리를 박으며 용서를 빌었다.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느껴지는 고통을 그는 차마 더 견딜 수가 없었다.휙.염구준은 손을 저어 기운을 거두고는 차갑게 하이샤를 노려보았다.상대방이 조금이라도 속임수를 쓰려 한다면 다시 한 번 고통을 맛보게 할 생각이었다.어차피 기운은 충분하기 때문에 큰 상관은 없었다. “바... 바로 집게 선장, 블런드야!”“몇 년 동안은 이 해역이 위험하다며 약탈을 하지 말라고, 특히, 용하국의 상선은 절대로 건드리지 말라고 했었어.”“하지만 며칠 전에 갑자기 이 해역에서 무차별적으로 약탈하라고 하더군. 이 바다를 지키는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며 말이야.”하이샤는 감히 더 숨기지 못하고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이 일이 얼마나 복잡한지는 그도 잘 몰랐다. 다만 상사에게 복종할 뿐이었다.“블런드?”염구준은 가볍게 탄성을 내뱉으며, 그 이름을 되새겼다. 그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고, 인상도 무척 깊었다.과거 북빙안에서, 블런드는 세 명의 해적왕 중 한 명으로 군림하며 강대한 군대를 거느리고 있었었다. “하하! 이름만 듣고 겁 먹은 거야?”하이샤는 염구준이 탄성을 내뱉은 걸 겁 먹은 거라고 오해하고 비웃었다. 전설적인 해적왕의 명성은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사람들의 두려움을 사기에 충분하니까 말이다.“쓸데없는 말 하지마.”짝!이때, 금방 배에 올라탄 전신전의 습격대 중 한 명이 이 말을 듣고는 바로 따귀를 후려쳤다. 염구준은 이런 하찮은 놈과는 입씨름할 가치도 없다고 판단하고, 대신 겁에 질린 선원들을 위로했다. “무서워하지 마세요, 여러분. 저희는 용하국의 군인들입니다. 이제 모두 안전해요.”“곧 인원을 배치해 여러분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드리겠습니다.”전신전의 복장이 조금 달랐기 때문에 염구준은 친절하게 말을 덧붙여 해명했다.‘집에 보내준다고?’선원들은 집에 보내준다는
잔혹하게 행동하고 약탈을 일삼는 해적들에게 동정을 베푸는 이는 없었다.“너희...”이 광경을 본 하이샤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이건 그의 예상과 다른 상황이었다.보통 각국 해군이 해적을 잡으면 먼저 감금한 뒤 천천히 재판을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염구준은 그의 혼란스러운 표정을 읽고, 과거에 했던 말을 다시 반복했다.“북빙안의 해적은 내가 보는 족족 죽일 거야. 절대 자비란 없어.”“블런드 만나게 길 안내해.”‘블런드를 만나겠다고?’하이샤는 눈을 크게 떴다. 누구나 피하려는 존재를 만나겠다고 하니까 말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그는 블런드가 졌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딱 한 번밖에 없었다.‘무서운 녀석한테 졌다 했었지.’“왜, 내가 다시 손을 써야겠어?”염구준의 냉혹한 목소리에 생각이 끊긴 하이샤는 재빨리 대답했다. “아니, 당장 출발하자!”그는 조금 전의 고통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그렇게 하이샤의 안내하에 항공모함 전투단은 다시 출항하여 점점 용하국에서 멀어져 갔다.가는 동안 염구준은 할 수 없이 아내에게 연락해 일정이 변동되어 늦게 돌아갈 거라고 전했다.“여기야!”탁 트인 망망대해에 도착하자 하이샤가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보이는 건 푸른 바다와 맑은 하늘 뿐이었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감히 우릴 갖고 놀아?”그를 감시하던 병사는 성격이 급한 사람이라 보자마자 바로 하이샤의 다리를 걷어차 부러뜨렸다.해적들에게 그는 특히 더 강하게 나갔다. 봐주면 기어오르기 쉽상이니까 말이다.“윽...”“거래 장소는 여기가 맞아. 아직 거래 시간까지 30분 정도 남아서 그래.”하이샤는 식은땀을 흘리며 빠르게 해명했다. 그는 지금 꼼수를 부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상대방이 너무 거칠기 때문이었다. 두말하지 않고 살기를 담아 때리는 게 일반 용하국의 군인들과는 다르게 느껴졌다.“주변 해역을 정찰해.”염구준은 광활한 바다를 바라보며 명령을 내렸다.블런드는 잔혹하고 악랄한 자였다. 놔두면 더 큰 위협이
바닷물이 격렬하게 소용돌이치며 물 아래의 검은 그림자가 점점 커지더니 곧이어 거대한 검은 물체가 수면 위로 떠오르며 거대한 파도를 일으켰다.이윽고 한 척의 거대한 잠수함이 항공모함 전투단 한가운데 모습을 드러냈다.선체의 노출된 부분에는 해골 문양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휘익.몇 명이 잠수함에서 뛰어나왔는데, 그중 선두에 선 사람은 한쪽 눈에 검은 안대를 두르고 있었으며, 덥수룩한 황금빛 수염을 가지고 있었고, 오른손의 위치엔 손 대신 쇠갈고리가 달려 있었다.그가 바로 과거 바다를 주름잡던 해적왕 중 한 명인 블런드였다.“하이샤, 뜻밖이지? 내가...”그는 말을 하다가 주위를 둘러본 후 입을 다물었다. ‘이런. 놈들의 포위망에 스스로 걸려든 셈이군.’그의 시선은 곧 항공모함 갑판 위에 서 있는 한 사람에게 고정되었다.그날의 싸움과 상대방에 대한 기억은 여러해가 지났지만 여전히 어제처럼 생생했다.“염구준, 너 죽었다며!”블런드가 포효하듯 외쳤다.분노에 찬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두려움도 섞여 있었다.최근에 염구준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나서야 그는 다시 북빙안에 돌아와 해적질을 할 수 있었다.“오른팔이 잘리고 한 쪽 눈이 파인채로 난류에 던져진 너도 안 죽었는데 내가 죽을 리가 없지.”염구준은 옛 이야기를 꺼내며 눈 앞의 상대가 오래전 삼대 해적왕 중 한 명인 블런드라는 걸 확신했다.몇 년 전, 그는 해적을 소탕하라는 명령을 받고 북빙안에 가서 세 명의 해적왕과 싸움을 벌였었다.한바탕 치열하게 싸운 뒤, 그는 성공적으로 세 명 모두 진압했으나, 폭우가 오는 바람에 두 명의 시체밖에 찾지 못했는데, 중상을 입은 블런드가 그 상황에 도망쳤을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으아아악!”“예전의 치욕을 오늘 반드시 갚아주마! 네가 내 오른팔을 앗아갔으니 난 네 목을 베어야겠어.”블런드는 포효하며 기운을 뿜어내면서 염구준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반보천인인가?’‘몇 년 못 본 사이에, 그 악명 높은 해적 두목도 경지가 높아졌을 줄이야.’
블런드는 우렁차게 포효하며 그 수법을 쓰기로 결심했다.“죽어라!”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두 개의 연막탄을 던지고는 격벽 가장자리로 빠르게 후퇴했다.이길 수 없는 적을 맞이한 상황에서 목숨을 부지하는 건 당연했다.휙휙.그러나 염구준은 그와 거의 동시에 이동하며 몇 번의 검기를 날려 그가 도망칠 수 없도록 길을 완전히 차단했다.평범한 사람이라면 상대방이 공격을 하겠다는 소리를 들으면 본능적으로 방어 태세를 갖추었겠지만, 염구준은 풍부한 전투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말보다 상대방의 움직임을 먼저 파악하곤 했다.“정말 더럽게도 끈질기네.”블런드는 욕을 하며 어쩔 수 없이 뒤로 가려던 걸음을 멈추고 다시 옆으로 돌았다.염구준과 정면승부를 벌이지 않는 이유는 방금 전의 일격에서 죽을 거라는 걸 깨달아 용기가 나지 않아서였다.그러나 염구준은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그대로 돌진해 맹렬한 공격을 개시하며 검기를 뿌려댔다.“윽...”블런드는 위기감을 느끼고 마지못해 몸을 돌려 방어했지만, 곧 여러 군데 베여서 점점 더 힘들어 했다.수년간 미친 듯이 무공을 닦아 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예전처럼 일방적으로 맞기만 했다.쿵!블런드는 온 힘을 다해 막았지만 결국 염구준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바다 위로 튕겨나갔다.그는 계속 피를 토했지만, 그 입꼬리에는 묘한 미소가 번졌다.‘힘을 빌어서 바다에 뛰어들어 몇 년 전의 상황을 재현하려는 건가?’“이번엔 안 되지.”염구준은 상대방의 의도를 꿰뚫어 보고, 재빠르게 몸을 날려 원래 자리에서 사라졌다.잠시 후 다시 모습을 드러낸 그는 이미 격벽 가장자리에 서서 검을 들고 뒤로 날아오는 블런드를 기다리고 있었다.‘망했어!’블런드는 속으로 절망했다. 이제서야 그는 자신이 처음부터 상대방에게 속았다는 걸 깨달았다.촥!염구준은 날아오는 블런드를 보며 주저하지 않고 힘껏 베었다.공중에 있는 상태라 블런드는 힘을 기댈 곳이 없어 하는 수 없이 쇠갈고리로 공격을 막았으나 결국 중상을 입고 말았다.
“안 돼! 그건 내 전부란 말이야!”잠수함으로 상대방을 협박하려고 했던 블런드는 자신의 꼼수가 이렇게도 쉽게 간파당해버렸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그가 부하들에게 공격을 하라고 한 시간까지 아직 한참 남아있었다.콰아앙!곧이어 수면 아래에서 큰 소리가 들려오더니 파도가 일며 부품들이 하나둘씩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뢰 공격하에 포위당한 잠수함을 제외하고는 전부 박살이 나버렸다.악랄하기로 이름을 날린 일부 해적들은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렸다.“이제 포기했지?”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그는 마침내 과거의 숙적을 베어버리며 모든 것을 끝맺었다.과거 블런드가 운 좋게 목숨을 건진 건 어쩌면 하늘이 그에게 다른 인생을 살라고 준 기회였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는 결국 다시 해적의 길을 선택했다.‘나쁜 심성을 고치지 못하는 사람은 죽어도 마땅하지.’“주상! 포위 당한 잠수함이 도주하려고 합니다!”이때 누군가가 갑자기 소리쳤다. 동시에 물결이 일며 잠수함들은 도망가기 위해 전부 수면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이렇게 짧은 거리에선 같은 편을 쏠까 봐 어뢰 공격도 할 수 없었다.“도망칠 수 있을 리가.”염구준은 날렵하게 잠수함 위로 뛰어올라 날카로운 검기를 날렸고, 여러군데 구멍이 뚫린 잠수함은 바닷물이 들어가 결국 깊고 어두운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잠수함의 내부에 있던 해적들도 모두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짧은 시간 내에 하나의 강한 해적 세력이 염구준에 의해 완전히 소탕 당했다.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여기서 신호를 보내 위압감을 주는 것이었다.용하국의 상선을 노리는 해적들을 염구준은 한 대도 남겨둘 생각이 없었다. “항해 해. 용하국의 개항 부두로 돌아간다.”염구준은 옆에 있던 병사에게 명령했다.블런드는 죽었고, 그의 부하들도 전멸했으니 그는 더 이상 이곳에 머물어있을 생각이 없었다. “이 사람은 어떻게 할까요?”병사 한 명이 하이샤를 가리키며 물었다.“고통 없이 보내줘
“좋은데? 준석 형, 이제 형네 협박할 사람도 없으니 굳이 숨어 살 필요 없잖아요.”염구준은 망설임 없이 말했다.손중석은 원래 용하국 사람이기 때문에 용하국에서 정착하고 싶어 하는 건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우리도 좋다고 생각해. 그치만 호적이 좀 복잡해서...”손가을은 말을 흐리며 남편을 살짝 바라보았다. 괜히 남편을 이용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뭘 그런 걸 걱정하고 그래. 최상위급 기술 인재가 호적 하나 못 받겠어?”염구준의 한마디에 모두가 정신이 들었다.손중석이 기록해 둔 신에너지 개발 공식은 어느 나라에서든 탐낼만한 보물이었다.“어쩌면 그걸 깜빡할 수가 있지? 이 일은 내가 처리할게.”남편의 말에 아이디어가 떠오른 그녀는 바로 이 일을 책임졌다.원래는 남편의 인맥과 영향력을 이용해 제이든 일가의 국적을 옮길 생각이었으나, 손중석의 능력이라면 정식 절차를 밟아도 문제가 없었다. 그는 용하국에 특히 필요한 인재니까 말이다.잠시후, 손가을은 무언가 떠오른 듯 다시 입을 열었다.“어제 김대석이 찾아왔어. 우리더러 김영영과 같은 수준으로 싸울 필요 없다면서, 자기가 손녀 대신 사과하고 보상하겠다고 하더라.”“다음에 만나면 김영영이 잘 지내고 있다고 전해줘.”염구준은 길게 설명하지 않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성조국을 떠날 때, 그는 불필요한 분쟁을 피하기 위해서 두 명의 성녀를 모두 돌려보냈었다.그가 데려온 건 오직 재무총괄을 암살한 범죄자뿐이었다.“알겠어.”손가을은 남편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자, 더 캐묻지 않았다.“고마워. 난 앞으로 손씨 그룹에서 신에너지를 연구할게. 마침 큰 프로젝트가 있다면서?”손중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스스로 회사에 들어가길 지원했다.이건 그의 감사표시이기도 했다. 말로만 하는 것보다 실질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기에 그는 이런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그럼 저야 너무 좋죠. 앞으로 이 프로젝트의 수석 연구원 맡아주시면 될 것 같아요.”손가을은 흔쾌히 수락했다.비록 손
노인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다쳤어?”“이 정도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야. 걱정해줘서 고마워. 셋째 형.”흑풍은 겸손하게 자세를 낮춰서 대답했다.그는 항상 이런 태도여서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곤 했었다.노인은 화제를 돌리며 손바닥을 내밀었다.“괜찮다면 다행이야. 내게 약속한 거 잊지 않았지? 내 돈을 갚을 때가 되었어.”노인의 이름은 황계웅, 뼛속까지 장사꾼이었다.그는 오로지 돈에만 관심이 있고 돈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물론 무공 실력도 반보천인 고수라 만만치 않았다.“그게… 셋째 형, 원래 일이 순조롭게 되었는데 중도에 변고가 생겨서 망했어.”흑풍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시 약속했다.“근데 걱정 마. 내가 약속한 물건과 빌린 돈은 일 푼도 떼먹지 않고 다 갚을게.”이런 말은 다른 사람을 속일지 몰라도 황계웅 같은 능구렁이 앞에서는 전혀 소용이 없었다.황계웅이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그럼 여기 남아 일을 하면서 이자라도 갚아.”전에 흑풍이 만능 전당포에서 사람을 고용할 때 모든 월급을 황계웅이 대신 지불했었다.돈을 목숨처럼 여기는 그에게 한 푼도 갚지 않아서 몹시 불쾌했던 것이었다.“그래. 형 말대로 할게.”마침 흑풍은 상처를 치료할 곳이 필요해서 흔쾌히 대답했다.본래 주둔지까지 가려면 거리가 멀기도 하고 지금 가기에 위험했다.“왜, 더 할 말이 있어?”황계웅은 쳐다보지 않고 화분에 물을 주면서 물었다.“형, 그럼 염구준은 어떻게 처리할 거야?”흑풍은 다음 계획을 알고 싶어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미리 알게 된다면 거기서 작은 이익이라도 얻어 꿍꿍이를 세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그런데 황계웅은 대답하지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네가 상관하지 않아도 돼. 장사꾼은 장사꾼들만의 수단이 있는 법이야.”그가 바라는 것도 염구준의 옥패였지 무공은 아니었다.옥패는 생각보다 값이 꽤 나갔기 때문이었다.만약 흑풍이 염구준의 손에서 옥패를 빼앗는다면 자신의 손에 있는 옥패까지 함께 바치
흑풍이 회의실 가운데로 오더니 포권을 취하며 명령에 따르는 척했다.지금 남에게 얹혀살면서 도움을 받아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황계웅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되물었다.“네 상처는 다 나았어?”흑풍은 잠시 황계웅의 질문에 무슨 의도가 있는지 몰라 대답하지 않았다.속이 깊은 사람 앞에서 상대방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항상 조심해야 했다.회의실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황계웅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식물의 잎을 닦으면서 흑풍이 대답하길 기다렸다.“걱정해줘서 고마워. 조금만 더 요양하면 다 나을 거야.”흑풍은 애매모호하게 대답하며 그의 표정을 살폈다.두 사람은 손을 잡은 것 같지만 솔직히 서로를 경계하고 있었다.“그래. 너한테 시킬 일이 있어. 용하에 가서 요양하면서 처리해.”황계웅은 걱정하는 것처럼 하면서 자신의 목적을 말했다.“용하?”그 말에 흑풍은 얼떨떨했다.용하에 그의 숙적인 염구준이 있어서 일단 잡히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게 될 것이다.“왜, 무슨 문제 있어?”그의 표정을 본 황계웅이 불쾌하게 물었다.“셋째 형의 지시인데 당연히 가야지.”흑풍은 더는 의심하지 않고 대답했다.지금 황계웅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에서 가지 않으면 경계적으로 도움을 받아 염구준을 상대할 수 없게 된다.부귀도 위험을 피하지 못한다는 말이 이런 상황을 설명하는 것 같았다.“그럼 수고해. 임무에 대한 정보는 이따가 보내 줄게.”황계웅은 그제야 만족스러운지 손동작을 멈추고 그를 쳐다보았다.초강력 반보천인을 부려먹을 수 있는데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흑풍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질문했다.“근데 궁금한 게 있어.”“말해. 형제 사이에 사양하지 말고 물어봐.”황계웅은 기분이 좋은지 태도가 전보다 좋아졌다.앞의 사람이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한다는데 계속 인상을 찌푸릴 수가 없었다.흑풍이 서슴없이 말했다.“조훈 일당은 일은 성사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계획을 망쳤는데 왜 살려줬어?”“그놈들은 무식하고 두려움이 없어. 게다가 저놈들의
한 시간 뒤, 손씨 그룹의 경호원들이 대형 버스에 조훈 패거리를 태우고 청해밖으로 보냈다.천맹그룹에서 그들에게 어떤 처벌을 내릴지는 손씨 그룹에서 알 바가 아니었다.그 외에도 염구준은 부하들에게 조훈의 행방을 주시하라고 지시했다.오늘 청해에서 발생한 일은 상업계에 큰 타격을 주었다.천맹그룹이 강세로 청해에 지사를 차리려 했지만 발도 붙이지 못하고 손씨 그룹에 의해 쫓겨났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그러든 말든 염구준은 차용증을 챙기고 현장을 떠났다.청해 지사는 무너졌지만 천맹그룹은 아직 살아 있기 때문이었다.“구준 씨, 당신이 조훈을 청해에서 쫓아냈어? 방금 사장님들이 전화가 왔었어.”천맹과 손씨는 이미 적대 관계가 되어서 눈엣가시인 조훈이 사라졌으니 그녀도 마음이 편한 것은 사실이었다.그런데 염구준이 이렇게 빨리 해결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당신이 그놈들 싫어하는 거 같아서 빨리 쫓아냈어.”염구준이 헛웃음을 치며 대답했다.혹시나 아내에게 불똥이 튀지 않을까 걱정되어 혼자 해결하려고 상세한 과정은 설명하지 않았다.손가을이 애교가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역시 당신밖에 없어. 그럼 무슨 상을 줄까나?”그녀의 말속에 살짝 야한 느낌이 들어있었다.“일 끝났으면 일찍 집에 가. 주말에 아버지 보러 가자. 원재료에 관한 일은 내게 맡겨. 5일 내에 해결할게.”염구준은 장난치지 않고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솔직히 신에너지 프로젝트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고 그보다 천맹그룹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 너무 수상하게 느껴졌다.“알았어. 당신 말 들을게.”손가을은 배시시 웃을 뿐, 더는 묻지 않았다.모든 일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통화를 마친 후, 염구준은 집으로 돌아가 아내가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길 기다렸다.한편, 청해를 떠난 조훈은 천맹그룹 본부에 들렀다 몰래 해외로 빠져나갔다.염구준의 지시를 받고 뒤를 미행하던 부하들은 능력에 한계가 있어 멀리서 떠나는 조훈을 지켜보기만 했다.황폐한 산장에 도착한 조훈 패거리는 상처를 돌볼
조훈은 또다시 충격을 먹었다.“이거 거짓말이야.”대표가 지원한 비장의 카드는 세상을 놀라게 하는 실력을 가졌음에도 염구준을 제거하지 못했다.“반보천인이야!”무술인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는 철벽에 부딪친 것을 알고 속으로 임무를 맡긴 사람을 원망했다.임무를 받았을 때 아무도 상대방이 반보천인 고수라는 것을 일깨워주지 않았다.‘도망치자!’그는 싸울 의지를 상실하고 재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쿵!염구준이 강력한 기운을 폭발하더니 상대방의 체내에 에너지를 주입시켜 기절시켰다.그의 앞에서 습격하고 도망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아직 또 뭐가 남았어? 기회를 줄 때 다 써먹어.”염구준은 도발적인 말로 조훈을 조롱했다.“에휴.”조훈은 김빠진 공처럼 한숨을 푹 쉬었다.이제는 더 이상 돌이킬 방법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때 염구준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시작하세요.”그가 미리 연락한 검사와 청해상회 담당자가 앞으로 다가왔다.“조훈 씨는 수백 개 기업에게 빚을 졌으니 모든 산업을 압류합니다.”법원 검사의 지시가 떨어지자 한 무리가 우르르 건물로 들어가 압류 스티커를 붙이고 관련 서류를 몰수했다.그리고 청해상회 담당자로 일행을 거느리고 한마디 했다.“이 산업들은 매각한 후 전부 손씨 그룹에 배상할 겁니다.”하지만 천맹그룹의 청해 지사 산업은 천억 가치가 되지 않았다.그때 염구준이 두 사람에게 새로운 방안을 내세웠다.“저희 돈은 급하지 않습니다. 산업을 매각한 돈으로 다른 채권자들에게 먼저 갚아주세요.”수백 개 기업에 빚을 졌으니 해당 기업과 직원들은 생활고에 시달릴 것이다.염구준의 말에 채권자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돈을 드디어 받았어.”“하늘이 무심하지 않군요. 의인이 나서서 정의를 구현했습니다.”“흑흑, 몇 년 만에 받는 돈이야.”그동안 빚을 독촉하면서 온갖 고초를 겪었으니 오늘 의인에게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다들 일어나세요.”솔직히 염구준은 이렇게 무릎
“무식하긴, 저렇게 깔려 있는데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감당하지 못해.”조훈은 자신의 작전이 신의 한수라 여기면서 이미 이긴 것처럼 당당하게 말했다.이 작전은 원래 용필에게 사용하려 했는데 먼저 염구준에게 사용하고 말았다.그가 스스로 감탄하고 있을 때 갑자기 변고가 일어났다.쿵!폭발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염구준을 짓누르던 경호원들이 사방으로 튕기며 주변 시설에 부딪치고 말았다.솔직히 이 사람들로 염구준을 짓누르기는 어림도 없었다.만약 그가 기운을 사용했다면 경호원들은 진작에 피투성이가 되었을 것이다.“뭐야? 무술인이었어?”조훈의 웃던 얼굴은 흉할 정도로 일그러졌다.그제야 어떤 사람을 상대하고 있고 왜 자신에게 맞서서 싸우지 않고 무시했는지 납득이 갔다.애초부터 염구준에 대해 확실히 조사하지 않은 것과 대표가 한마디 언급하지 않은 것이 몹시 원망스러웠다.“저런 놈은 끝까지 생떼를 부릴 거예요. 당장 잡아요.”염구준은 구경하고 있는 용필에게 주의를 주었다.“알았어.”용필은 정신을 가다듬고 앞으로 다가가 조훈을 덥석 잡았다.촤아악!가까이 다가갔을 때 용필은 또 다정하게 뺨을 갈겼다.“아주 그냥 매를 벌어라. 왜 그렇게 못 됐어?”조훈은 머릿속이 윙윙거리고 전에 다친 상처가 재발하여 너무 괴로웠다.이틀 사이에 뺨을 몇 대나 맞았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근육… 형님, 우리 좋게 말로 해결합시다. 우리 다 문명인이라 폭력은 쓰지 맙시다.”조훈은 꼼짝없이 또 맞게 되니 패배를 인정했다.촤아악!그런데 말을 하자마자 또 용필이 뺨을 날리며 꾸짖었다.“형님은 무슨, 친한 척하지 마. 난 너 같은 동생은 없어!”용필처럼 정직한 사람 앞에서 헛소리를 지껄여도 통하지 않았다.그 장면을 본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천맹그룹의 청해 지사 개업식에서 100명 가까이 되는 경호원들이 두 사람에게 전부 당하고 말았다.왠지 손씨 그룹이라는 존재가 무섭기도 하고 탄복하기도 했다.염구준이 입꼬리를 올리면서 앞으로 다가갔다.“꼴을 보니까 갚을 돈
자고로 하나의 산에 호랑이 두 마리를 용납하지 않는다고 했다.그러니 손씨 그룹이라는 막강한 세력이 있는 한 천맹그룹과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조훈은 아직도 무대 위에 앉아 다른 사람들의 인사도 받을 겨를이 없이 억지로 웃었다.“제가 음식들 다 준비했어요. 이따가 직원들이 안내할 거예요. 난 몸이 불편해서 이만 갈게요.”그는 옆에 있는 직원들을 쳐다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뭐 하고 있어? 빨리 휠체어 밀라고.”염구준이든 채권자들이든 한 시도 같이 있고 싶지 않았다.그러니 빨리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었다.“잠깐만.”그때 염구준의 말에 현장이 조용해지고 모든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았다.‘손씨 그룹에서 텃세를 부리기 시작하네.’다들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지만 절반만 맞췄다.염구준이 정말 텃세를 부린다면 적처럼 대하지 않을 것이다.어차피 조훈은 바지사장이라 손씨 그룹의 상업적 지위에 위협이 되지 못하지만 행동이 자꾸 선을 넘어서 눈에 거슬렸다.“염… 선생님?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습니까?”조훈은 이를 악물며 물었다.“내 돈을 받으러 왔어.”염구준은 차용증의 첫 페이지에 쓰인 금액을 보여줬다.“천억!”눈썰미가 좋은 사장들은 천문학적인 숫자를 보고 경악했다.그리고 경사스러운 날을 골라서 찾아왔다는 것은 전혀 살길을 주지 않겠다는 뜻이란 것도 알고 있었다.“염구준 씨, 그건 당신이 협박해서 어쩔 수 없이 작성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줄 수 없어요.”조훈은 딱 잡아떼며 본성을 드러냈다.억지를 부리는 데는 정말 일가견이 있었다.지금 상황은 염구준이 예상했던 것과 똑같았다.솔직히 애초부터 조훈에게서 돈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그런데 염구준이 따지기 전에 채권자들이 뛰쳐나와 조훈에게 욕설을 퍼부었다.“헛소리하지 마. 돈을 빌리고 갚지도 않으면서 누가 협박했다는 거야?”“우리 피 같은 돈을 돌려줘. 직원들이 월급을 기다리고 있단 말이야!”“억지 부리지 마! 그러다 너 벼락에 맞아 죽을 거야!”그들은 말할수록 점점 더 격분했다.앞에
“가을 씨, 내가 도와줄게요.”에빈이 컴퓨터 앞에 앉으며 말했다.그녀는 경영에 대해 배우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싶었다.그렇게 사무실에서 두 여자가 분주하게 손을 움직였다.염구준은 차용증을 챙기고 용필과 함께 천맹그룹으로 향했다.청해 지사의 빌딩은 7층짜리 건물이면서 개업식 규모가 작지 않았다.천맹이라는 간판 덕분에 꽃바구니와 현수막이 거리에 쫙 걸려 있었다.최근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갑자기 부상한 그룹 때문에 용하의 사업계가 떠들썩했다.그래서 일반 중소기업은 방대한 세력을 갖춘 천맹그룹을 건드리지 못했다.오늘 지사가 개업하는 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선물을 들고 아부하러 온 것이었다.무대 위에 조훈 패거리가 헐렁한 정장으로 붕대를 감추고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이런 몰골로 개업 행사에 참가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미 정해진 날짜를 바꿀 수도 없었다.“빨리 시작하세요. 12시까지 기다릴 필요 없어요.”조훈이 짜증을 부리며 사회자를 독촉했다.사회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가운데로 가더니 개업식을 주최하기 시작했다.“오늘…”그런데 무대 아래에서 조훈의 이름을 언급하며 소란을 피우는 일행이 나타났다.“조훈, 이 나쁜 새끼야. 돈도 갚지 못했으면서 회사를 차렸어?”“퉷! 겉만 반지르르하고 인피가면을 쓴 짐승 같은 새끼. 우리를 속였어?”…빚을 독촉하러 온 일행의 깔끔한 차림새를 보아 다들 사업하는 사람들 같았다.개업식에서 이런 구경거리를 하게 된 주변 사람들은 흥미진진했다.“저 사람을 쫓아내세요!”조훈은 하마터면 참지 못하고 일어나서 주먹을 날릴 뻔했지만 보는 사람들이 많아 꾹 참았다.오늘 아침부터 기분이 별로였는데 이런 일까지 발생해서 뚜껑이 열릴 지경이었다.지시를 받은 경호원은 고무 막대기를 들고 소란을 피운 채권자들을 폭행하기 시작했다.돈이 없어도 주먹만 살아 있다면 무엇도 두렵지 않았다.촤아악!그가 뻔뻔한 면상을 쳐들고 기고만장해 있을 때 갑자기 뺨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염구준이 나타난 것이었다.“조 사장, 너
조훈 패거리는 회의를 끝내고 각자 치료하러 갔다.각종 치료를 받으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다.만약 손중석의 곁에 붙어 있는 에빈이라는 여자가 그의 아내이자 반보천인 고수라는 것을 안다면 지금보다 더 불안해할 것이다.이튿날 점심, 염구준 부부는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가을아, 곧 주말인데 어디 가서 놀지 생각해 봤어?”“원재료도 확정되지 않았는데 놀러갈 기분이 아니야. 걱정돼 죽겠어. 당신이 도와줘서 다행이야.”“잘 해결될 거야. 걱정 마. 내가 있잖아.”…두 사람은 업무와 일상에 관한 자질구레한 얘기들을 하면서 긴장을 풀었다.아내의 긴장을 풀어주는데 염구준의 공이 더 컸다.최근 원재료 때문에 손가을이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아 밤에 잘 때도 잠꼬대를 했었다.그때 두 사람이 급히 사무실로 들어왔다.바로 손중석과 에빈이었다.“방금 공원에서 누가 우리를 습격했어.”손중석이 들어오자마자 방금 겪었던 상황을 말했다.“괜찮아요?”손가을이 벌떡 일어서서 물었다.그녀는 팔자가 사나운 부부를 엄청 걱정하고 있었다.그러고 보니 아직 에빈이 반보천인 고수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괜찮아. 다들 애송이들이라 에빈이 다 쫓아냈어. 그런데 벌건 대낮에 사람을 습격하다니 이거 보통 일이 아니야.”손중석은 용하의 치안을 굳게 믿었는데 이런 일이 발생하여 몹시 화가 났다.“무사하면 됐어요.”손가을은 그제야 진정이 되었다.그러다 문뜩 뭔가 떠올라 에빈을 쳐다보았다.“혹시 에빈 씨도 무술인이에요?”한 여자가 맨주먹으로 패거리를 쫓아냈다는 것은 무술인만 가능했다.“네. 예전에 조금 배웠어요.”에빈이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겸손하게 대답했다.그 모습은 전혀 반보천인 고수 같지 않았다.“그렇군요.”손가을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왠지 앞으로 에빈과 할 얘기가 많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너무 기뻤다.남편 외에 적합한 반보천인 무술인인 친구가 없어서 가끔 주작과 얘기를 나누기도 했었다.그녀의 표정과 대비되게
“알았어. 뭘 또 신비스럽게 그래.”손가을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어차피 때가 되면 남편이 말해줄 거라 믿고 있었다.오늘 손씨 그룹은 간만에 시끌벅적했다.천맹그룹에서 소란을 피운 대가로 거액의 배상금을 준 것 외에 손중석이 원재료를 대체할 물건을 연구했다는 소식이 퍼졌다.그런데 정작 손중석 본인은 어리둥절했다.소문을 퍼트린 장본인이 염구준이라는 것을 알고서야 지금 조정하는 중이라고 해명했다.나중에 염구준이 그를 찾아가 본인이 알아서 처리할 테니 너무 부담을 갖지 말라고 일렀다.그런데 뜻밖에도 그의 거짓말로 인해 손씨 그룹의 직원들이 다시 의욕을 불살랐다.신에너지 프로젝트를 위해서 몇 달 동안 바쁘게 지냈으니 그럴 만도 했다.어느 날 거짓말이 들통나면 어마어마한 위기에 닥치겠지만 염구준은 그런 날이 올 때까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한편, 조훈 패거리는 병원에 도착하고 나서 간단한 처치를 한 후에 회사로 돌아갔다.천맹그룹의 청해 지사도 규모가 꽤 커서 개인 의사가 있었다.조훈을 비롯한 패거리 다섯 명은 천억이라는 빚을 지고 치료할 겨를도 없이 회의를 열었다.각자 머리에 붕대를 감고 팔에 링겔을 꽂은 채로 회의실에 앉아 이 일에 대해 토론했다.“사장님이 너무 충동적으로 처리했어요. 천억은 천문학적인 숫자예요.”한 사람이 조훈을 책망하기 시작했다.“무슨 개소리야? 내가 대답하지 않았다면 우리 다 죽었어.”조훈은 버럭 화를 내며 그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반박했다.평소에 보기 좋게 몰려다니다가 정작 심각한 문제에 닥치면 관계가 틀어지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었다.그때 한 사람이 일어서서 중재했다.“다들 그만하세요. 우리 한 배를 탄 사이인데 천억을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하세요.”그것은 천맹그룹에서 진 빚이라 위에서 책임을 묻는다면 다섯 모두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그제야 회의실이 조용해졌다.거액의 배상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너무나 막막했다.솔직히 천억을 갚는 것은 절대 불가능했다.그들은 으리으리한 회사에 다니는 것 같
탁!용필은 차용증을 테이블 위에 탁 치면서 올려놓았다.깜짝 놀란 조훈은 몸을 부르르 떨면서 그만 바지에 오줌을 지리고 말았다.“알겠습니다.”그 와중에도 혹시나 당하지 않을까 계약서를 들고 자세히 읽어 보았다.촤아악!그런데 조훈은 또 뺨을 맞고 말았다.지금 그의 얼굴은 자주색 멍이 들고 입과 코에서 피가 주르륵 흘렀다.“차용증에 사인하라는데 뭘 꾸물거려?”용필은 못마땅해서 목소리를 높였다.“습관돼서 그래요. 죄송해요.”조훈은 고개를 숙여 사과하고는 펜을 들고 사인했다.그리고 도장을 꺼내 인장을 찍으려고 할 때 염구준이 시큰둥하게 물었다.“잠깐만. 정말 돈은 갚을 수 있어요?”“그… 그럼요. 갚을 수 있어요.”조훈은 무슨 이유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정말 솔직하게 대답했다.“돈이 없다면 당신 인장을 찍을 필요가 없잖아요. 천맹그룹의 도장을 찍어요.”염구준은 대놓고 힌트를 주었다.천맹그룹의 도장이라는 말에 조훈은 큰 충격을 받았다.어느 정도 염구준의 의도를 파악한 거 같아 안색이 좋지 않았다.그렇게 되면 조훈이라는 사람이 아니라 천맹그룹에서 빚을 진 것이 된다.그러면 차용증을 작성하고 끝까지 잡아떼려는 계획이 물거품이 될 것이다.“아니요. 제 도장을 찍을게요.”그런데 용필이 또 손을 드는 바람에 망설이지 않고 천맹그룹 청해 지사의 도장을 꺼내고 말았다.천억이라는 거금을 빚지면 위에서 절대 용서하지 않겠지만 지금으로서 어쩔 수 없었다.탁!용필은 도장을 찍은 차용증을 가져와 염구준에게 건넸다.“됐어요. 병원으로 이송하세요. 다들 돈줄이니 잘 모셔요.”염구준은 계약서를 힐끗 쳐다보고 밖으로 나갔다.고작 천억을 떼먹으려는 것이 아니라 수중의 차용증이 큰 쓸모가 있기 때문이었다.필경 천맹그룹에서 원재료를 구입한 절차가 합법이고 배후 사장도 얼굴을 내밀지 않아서 지금 바로 뿌리를 뽑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했다.그래서 천천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저 인간 완전히 악마야!’조훈은 웅장한 그의 어깨를 보며 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