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때 문밖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찬과 도련님의 경호원들이 돌아왔습니다.""운홍이는?"도명욱은 이 말을 듣고 느낌이 좋지 않아 서둘러 나가 보았다."저희를 벌 해주십시오, 주인님!"호찬과 경호원들은 그를 보자마자 모두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도련님을 잃어버린 건 아주 큰 잘못이니까 말이다.생사가 도명욱의 기분에 달려있는 그들의 삶은 정말 개보다 못했다."이 병신 새끼들. 너희들 도대체 뭔 쓸모가 있어?"도명욱은 크게 소리 지르며 분풀이를 하기 위해 사람들을 미친듯이 때렸다.아무리 강한 호찬이라도 그에게 감히 반항하지 못했다.어릴 때부터 도씨 가문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사상을 주입받았기 때문이었다."하아... 하아..."도명욱은 살아있는 사람이 몇 안 남을 때까지 때리다가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염구준이 나선 거야?"낮에 전해진 소식에 따르면 염구준은 반보천인이라고 했다."네, 아주 강합니다. 도주님들과 비교해도 지지 않을 만큼요."호찬은 어렵게 일어나 무릎을 꿇고 대답했다.짝!이 말을 들은 도명욱은 안색이 크게 변하더니 힘껏 뺨을 때렸다."닥쳐, 외부의 벌레새끼가 어떻게 도주님들과 비교할 수 있겠어?"이 강한 위력에 호찬은 바닥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한바탕 화를 내긴 했으나 일은 그래도 처리해야 하니 도명욱은 옆 사람에게 분부했다. "사람들을 대기시켜. 내가 직접 염구준을 만나봐야겠으니까."비록 조직 내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도 반보천인이기에 약한 편은 아니었다.그러나 그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호찬을 한 눈 보고서 곧 상대방을 제지했다."잠깐만, 방금 전 계획은 취소한다. 염구준이 오도록 편지를 써서 보내."호찬의 말이 조금 거북하기는 했으나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성격이니 도명욱은 경각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만약을 대비해서 염구준을 시험해보는 것도 괜찮겠지.’귀염둥이 아들이 소중하기는 하지만 그의 야망에 비하면 아들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그날 밤, 도운홍을 처리하고
보름 전, 이곳에 세 개의 신상들을 들여온 후 이곳을 삼선 클럽의 청해시 지점으로 선정했고, 그 후 대량의 신도들과 회원들이 이곳에 와서 ‘신의 물' 을 구하기 위해 절을 하고 돈을 냈었다. 가끔 기적이 일어나는 것도 볼 수 있었는데, 이건 초상비가 염구준에게 알려준 거였다."미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돈을 바치러 오다니, 삼선 클럽 장사 잘 되네."염구준은 산꼭대기에서 산기슭까지 줄을 선 행렬을 보면서 참지 못하고 투덜거렸다.‘하긴, 장모님도 그러셨겠지.’그러나 바로 이때, 눈앞에서 벌어진 갑작스러운 장면에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긴 대열에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몇 명의 젊은이들과 대치하고 있는 것이었다."아버지, 저희 이제 돌아가요, 네? 집에 더 이상 돈이 없어요." 젊은이가 노인의 팔을 잡아당기며 설득했다."안 가, 나는 ‘신의 물’을 원해. 난 영생을 원한다고. 내가 돈 좀 쓰는 게 어때서 그래?"이에 노인은 옆에 있는 큰 나무를 껴안고는 죽어도 놓지 않으려고 했다.가족들은 모두 노인이 다칠까 봐 지나치게 힘을 쓰지 못하고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 이거 다 거짓말이에요. 어떻게 불로장생 할 수 있게 만드는 물건이 있을 수 있겠어요?"그들에겐 정말 방법이 없었다. 모두 설득할 수 있는 만큼 했지만 노인의 마음을 끝내 돌리지 못했다."쉿, 허튼소리 하지 마. 삼선님한테 불경하게 굴어서는 안 돼."그들의 말에 노인이 소리를 낮추어 말했다.이곳은 삼선 클럽의 구역인 소봉산이었기에 모두의 일거투속이 전부 감시카메라에 찍혔다."흥, 삼선 같은 소리하네. 이건 그냥 다 돈 벌기 위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요." 그의 말에 노인의 가족들이 끝내 폭발했다.노인이 삼선 클럽에 가입한 이후로 그들 가족은 한시도 평온한 하루를 보낸 적이 없었다. "감히 삼선을 욕해? 건방지기는!"이때, 큰 외침소리와 함께 소봉산의 치안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나와서 그들을 에워쌌다. 여기서 난리를 치면 돈 버는데에 피해를 주니 당연히 가만히
염구준은 주위의 경호원들을 보면서 소봉산에 있는 대부분의 전력이 모두 모였을 거라고 생각했다.‘이러면 삼선 클럽의 보안이 어느 정도인지 대충 알 것 같네.’그는 생각하는 한편 기운을 모으고 있었다. 상대방이 정말로 눈치 없이 공격한다면 이곳을 없앨 생각이었기 때문이다.쌍방이 한참 대치하고 있을 때, 호찬이 갑자기 나타났다.앞에 있던 경호원은 강자가 온 걸 보고는 웃으면서 맞이했다."호찬님, 저 자식이..."쾅!그러나 그가 말을 채 하기도 전에 호찬은 그를 차버리고 싸늘하게 말했다. "주인님께서 초대한 손님도 감히 막다니, 죽고싶은 건가?"사실 호찬은 산꼭대기에서 오랫동안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염구준의 모습을 보지 못한 도명욱이 한 번 보고 오라고 보낸 것이었다. ‘아래에서 부하들이 막고있던 거였을 줄이야.’"에이, 한판 못 붙겠네?"염구준은 호찬을 보고 기운을 거두었다."농담이 심하시네요. 안으로 드시죠."호찬은 무표정한 얼굴로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고 염구준은 그의 인솔하에 산꼭대기를 향해 걸어갔다.도운홍은 현재 복면에 머리가 씌워진 채로 용준영에게 끌려가는 중이었다.아직 일을 처리하지 못했으니 염구준은 그를 풀어줄 생각이 없었다. 위로 올라갈 수록 염구준은 줄을 서 있는 사람들 중 대부분이 노인들임을 발견했다.삼선 클럽의 목표는 매우 명확했다. 바로 최고의 성공률을 위해 타켓을 노인들로 정하고 사기치는 것이었다.사람들은 염구준의 배경을 보고 부러워 하기도, 궁금해 하기도 했다. 줄을 설 필요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삼선 클럽의 사람을 때렸음에도 아무 벌도 받지 않았으니 말이다."염구준이다!"마침내 누군가가 그를 알아보고 소리 질렀지만 이때에 그는 이미 산꼭대기에 이르러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한편, 도명욱은 산꼭대기의 정자에 앉아있었는데, 그의 앞에는 돌상 하나, 차 주전자 한 개, 컵 두 개 그리고 몇 접시의 과일들이 놓여져 있었다.대충 보아도 몸과 마음을 다스리기에 좋아 보였다."여기 앉으시죠."도명
"운홍이는 아직 어린 아이예요!" 도명욱은 분노를 참고 꽉 쥔 주먹을 풀면서 차가운 어투로 말했다.반드시 이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는 이상 싸울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염구준은 그의 말을 듣고 미친 듯이 웃은 후 싸늘하게 말했다. "하하하!""당신도 인간미가 있군요? 전 또 짐승처럼 생각이 없는 줄 알았네요.""지금 줄 선 사람들을 좀 봐요. 저기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앗아가는 ‘신의 물’따위를 위해 한 가정을 망쳤을까요?"이 말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 전부 사실이었다.도명욱은 계속 물러섰지만 염구준은 상대방의 체면을 세워줄 생각없이 계속 몰아세웠다.집에 있는 장모님만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올라서였다.만약 앞으로의 계획에 차질을 줄까 봐 걱정이 되지 않았더라면 그는 당장 이 자리에서 상대방을 죽였을 것이다.염구준의 질책에도 도명욱은 화를 내지 않고 그저 한숨만 쉬었다."후, 저도 이러고 싶지 않지만 윗분들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표정과 말투만 보면 그의 말은 진짜 같았다.‘쉽지 않네.’그러나 염구준은 상대방을 단숨에 꿰뚫어 보았다. ‘다른 사람을 속일 수는 있어도 날 속이려면 아직 멀었어.’"정말 난처하시겠네요."이 말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져 있었지만 대부분은 자신은 그의 말을 믿지 않으니 쓸데없는 짓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상대방의 말 뜻을 바로 알아차린 도명욱은 더 이상 연기하지 않았다. "제 아들의 본성을 믿어주시길 바랍니다. 애가 철부지인 건 당신도 아실 거라 믿습니다. 그러니 저 애의 잘못을 더는 따지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저도 당연히 바보한테 잘못을 따질 생각이 없습니다."염구준은 대답한 뒤 화제를 바꿨다."그럼 저희 장모님 일과 손씨 그룹에 사람을 보낸 일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모처럼 왔으니 그는 전의 일까지 모두 해결할 생각이었다."그건... 전에 조금 바빠서 제가 소홀했습니다. 모두 아랫사람들이 멋대로 한 거예요. 전 전혀 몰랐답니다.""제게 담이 열 개가 있더라도
"배상금을 좀 줄일 수 있을까요?" 도명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당신 아들 몸에 있는 살이 줄 수 있으면 배상금도 줄 수 있어요."염구준은 옆에 있는 도운홍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지만 태도는 매우 단호했다.‘의논할 여지가 없다는 거군.’한참 뒤 도명욱은 이를 악물고 마음 아픈 걸 참으면서 말했다."그래요, 5천억 드리겠습니다. 지금 계좌이체 해드리죠."이렇게 되면 최근에 끌어모은 건 다 허탕을 친 셈이 된 거고, 뿐만 아니라 저축한 돈까지 날린 게 되었다."감사합니다."염구준은 돈을 받고 조롱하는 걸 잊지 않았다. 잔인하게도 말이다.사실 그에게 있어서 이 돈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앞으로 요양원이나 더 지어서 사람들이 ‘신의 물' 따위에 속지 않게 해야지.’"당신..."도명욱은 상대방의 도발에 화가 나서 피를 토할 뻔 했다.일종의 좌절감이 그를 뒤덮었다.‘이게 다 자식 교육 잘못한 내 탓이지.’오늘 그는 마침내 잘못된 교육이 불러온 결과를 알 게 되었다. 그것도 심하게 당하는 방식으로 말이다.옆에 있는 사람들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자신들의 주인이 평소에 생각이 깊고, 일을 원활하게 처리하긴 하지만 줄곧 양보하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이제는 풀어줘도 되겠지요?"도명욱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손해가 너무 심해서 그는 현재 웃을 수가 없었다."이제 가봐, 복덩어리야."이에 염구준은 누르고 있던 기운을 거두어 도운홍을 풀어주었고, 그는 바로 달려가 울며불며 하룻밤 사이에 겪은 비참한 경험을 이야기했다."운홍이가 휴식을 취하도록 데리고 가."도명욱은 두 눈을 감고 분부했다.‘이래도 안 때리네? 정말로 아끼긴 아끼나 보군.’반면에 오늘에 온 목적을 거의 다 이룬 염구준은 기분이 좋아서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어때?"염구준은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물었고, 이에 다른 사람들은 그가 뭘 말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됐어요." 그러나 용준영은 그의 질문에 바로 대답했다.이렇게 비밀 얘기를 나눈 후
“아빠야? 나 너무 배고파. 우리한테 밥도 안 주고... 무서운 개랑 같은 데 가둬두고... 개한테 여러 군데 물리기까지 했어. 나 너무 아프고 무서워. 흑...”극북빙양, 거대한 전장에서 수많은 함선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다.그중 붉은색 드래곤이 코팅된 함선의 지휘실 수화기에서 이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온 것이다.하지만 아이의 애절한 목소리에도 염구준의 표정은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잘못 거셨습니다.”“아니야! 우리 엄마가 날 속였을 리가 없어. 내 이름은 염희주야. 염구준의 딸 염희주라고! 엄마가 그렇게 말해 줬단 말이야.”쿠궁!행여라도 전화를 끊을가 싶어 다급하게 내뱉는 여자아이의 목소리에 염구준의 눈동자가 드디어 흔들리기 시작한다.염희주?“정... 정말 내 딸이라고?”하지만 그의 질문에 대답 대신 들려오는 건 찢어질 듯한 따귀 소리와 여자아이의 처참한 비명소리였다.“이 계집애가, 발칙하게 몰래 전화를 걸어?”“아,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그러니까 때리지만 말아주세요!”여자아이의 애원을 마지막으로 전화는 끊겨버리고 다시 걸어봐도 묵묵부답.딸이 위기에 처했음을 인지한 염구준은 다급한 마음에 붉은 피를 왈칵 쏟아냈다.“주군!”깔끔한 군복차림의 여자가 다급하게 그를 부축했다.하지만 거칠게 그 손을 뿌리친 염구준이 포효했다.“어서 전세기 준비해. 지금 당장 청해로 돌아간다!”“알겠습니다!”잠시 후, 거대한 전세기가 하늘을 뚫고 사라지고... 수많은 병사들이 수십 척의 함선갑판을 가득 메운 채 무릎을 꿇었다.“안녕히 가십시오, 주군!”다음 날, 청해 교외, 손씨 가문 저택.저택 밖에 선 염구준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5년 전, 가문에서 쫓겨나고 킬러들에게 쫓기다 교통사고까지 당했던 순간, 우연히 길을 지나던 소녀 한 명이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헤치고 중상을 입은 그를 구해냈었다.그녀의 정체는 바로 손씨 가문의 딸, 목숨을 구해 준 은혜를 갚기 위해 염구준은 기꺼이 데릴사위가 되는 조건
이에 다시 딸을 꼭 끌어안은 염구준이 아이의 뒤통수를 어루만졌다.“아니야. 엄마가 착각한 거야. 아빠 살아있어. 지금 바로 네 앞에 있잖아.”눈물의 부녀상봉을 마친 염구준이 물었다.“그런데 여기 말이야... 혹시 엄마가 보낸 거야?”염구준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던 염희주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아니야! 엄마가 날 이딴 곳에 보낼 리가 없잖아! 우리 엄마가 얼마나 착한데! 이모, 나쁜 이모가 날 여기 보낸 거야. 이모가 엄마랑 날 집에서 내쫓은 거라고...”‘이모?!’생각지 못한 단어에 염구준의 머릿속은 혼란 그 자체였다.‘손혜린 그 여자를 이모라고 부른다고? 그럼... 이 아이 엄마는 도대체 누구지? 나랑... 손혜린이 낳은 딸... 아니었나?’이 상황이 당황스러웠지만 염구준은 최대한 친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빠가 묻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해야 해. 이모 이름이 뭐야?”“이모 이름은 손혜린. 우리 엄마 사촌언니랬어. 그런데... 나쁜 이모가...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도 말래. 이모가 내 엄마래! 어른들은 다 거짓말쟁이야. 그러니까 아저씨도 우리 아빠 아니지?”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던 염희주는 무언가를 떠올린 듯 눈을 반짝였다.“엄마가 그랬어. 아빠를 구하려다 성대를 다친 거라고. 그래서 말을 못 하는 거라고. 그래도 이건 가르쳐줬다?”염희주은 작은 손가락으로 염구준의 큰 손바닥에 삐뚤삐뚤하게 “염구준” 세 글 자를 적어보였다.“엄마가 가르쳐 준 거야. 아빠 이름은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나 제대로 쓴 거 맞지?”한편, 염희주의 말을 들으면 들을 수록 염구준은 경악스러울 따름이었다.‘날 구하려다 성대를 다쳤다고? 그날 날 구한 게 손혜린 그 여자가 아니었단 말이야? 손혜린 그 여자는 분명 말을 할 줄 알았었지... 그럼 그날 밤, 나랑 첫날밤을 보냈던 그 여잔 도대체 누구야?’“희주야.”전장에서 온갖 못 볼 꼴을 다 보며 살아남은 염구준이었지만 이 순간, 떨리는 목소리만큼은 차마 숨길 수 없었다.“엄마 이름이 뭐야?”그러
혼인신고를 하고 맹세의 키스를 하고 서로의 부모님께 큰절로 인사를 올렸다.5년 동안 전장을 구르면서도 매일 밤 그리워했던 여자가 이 여자였다!하지만 그녀는 그가 그리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손혜린은 그녀의 사촌언니이자 희대의 사기꾼이었다!결혼식마저 모두를 속이기 위한 사기극에 불과했다!그는 이제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전신전 군주 염구준이다!그런 그가 이 하찮은 여자에게 5년을 속았다니!“지금… 뭐 하자는 거야?”잠시 당황한 손혜린은 옆에 있는 서재원의 팔을 꽉 잡고는 의기양양한 말투로 말했다.“네 신분을 망각하지 마. 넌 우리 가문 데릴사위야! 어디 감히 내 앞에서 큰소리를 내?”염구준은 낮게 으르렁거렸다.“말해! 왜 나를 속였어?”“5년 전 나와 결혼한 사람이 너 맞아? 손가을은 누구야? 빨리 해명해!”손혜린은 흠칫 어깨를 떨더니 떨떠름한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설마… 다 알고 왔어?”알고 왔다니?염구준은 뿌드득 소리 나게 이를 갈았다.역시 그런 거였어!희주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예상했던 대로 그 결혼식은 가짜였다.손가을, 손씨 가문… 저들은 도대체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 걸까?“혜린아.”여태 말이 없던 서재원이 냉랭한 미소를 지으며 거만하게 입을 열었다.“두려워할 것 없어. 저 자식이 진실을 알게 된들 뭘 할 수 있는데? 너 이제 곧 나랑 결혼할 거라고 솔직하게 말해! 저놈은 그냥 벌레야. 남한테 놀아난 줄도 모르는 가련한 버러지일 뿐이라고!”손혜린은 깔깔 웃더니 가면을 완전히 벗어 던졌다. 그녀는 서재원의 품에 안기더니 염구준을 향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어차피 너랑은 이혼할 생각이었으니까 거짓말할 필요도 없지! 넌 내가 널 살려준 은인인 줄 알았어? 내가 왜? 난 손가을처럼 멍청하지 않아!”과거, 손씨 가문은 데릴사위를 공개적으로 모집했다!4대째 내려온 가문은 이번 대에서 대가 끊길 위기에 직면했다. 손가을은 이 가문의 유일한 손녀였다. 결국 어르신은 친척인 손혜린을 호적에 입적시켰다. 손혜
"배상금을 좀 줄일 수 있을까요?" 도명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당신 아들 몸에 있는 살이 줄 수 있으면 배상금도 줄 수 있어요."염구준은 옆에 있는 도운홍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지만 태도는 매우 단호했다.‘의논할 여지가 없다는 거군.’한참 뒤 도명욱은 이를 악물고 마음 아픈 걸 참으면서 말했다."그래요, 5천억 드리겠습니다. 지금 계좌이체 해드리죠."이렇게 되면 최근에 끌어모은 건 다 허탕을 친 셈이 된 거고, 뿐만 아니라 저축한 돈까지 날린 게 되었다."감사합니다."염구준은 돈을 받고 조롱하는 걸 잊지 않았다. 잔인하게도 말이다.사실 그에게 있어서 이 돈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앞으로 요양원이나 더 지어서 사람들이 ‘신의 물' 따위에 속지 않게 해야지.’"당신..."도명욱은 상대방의 도발에 화가 나서 피를 토할 뻔 했다.일종의 좌절감이 그를 뒤덮었다.‘이게 다 자식 교육 잘못한 내 탓이지.’오늘 그는 마침내 잘못된 교육이 불러온 결과를 알 게 되었다. 그것도 심하게 당하는 방식으로 말이다.옆에 있는 사람들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자신들의 주인이 평소에 생각이 깊고, 일을 원활하게 처리하긴 하지만 줄곧 양보하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이제는 풀어줘도 되겠지요?"도명욱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손해가 너무 심해서 그는 현재 웃을 수가 없었다."이제 가봐, 복덩어리야."이에 염구준은 누르고 있던 기운을 거두어 도운홍을 풀어주었고, 그는 바로 달려가 울며불며 하룻밤 사이에 겪은 비참한 경험을 이야기했다."운홍이가 휴식을 취하도록 데리고 가."도명욱은 두 눈을 감고 분부했다.‘이래도 안 때리네? 정말로 아끼긴 아끼나 보군.’반면에 오늘에 온 목적을 거의 다 이룬 염구준은 기분이 좋아서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어때?"염구준은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물었고, 이에 다른 사람들은 그가 뭘 말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됐어요." 그러나 용준영은 그의 질문에 바로 대답했다.이렇게 비밀 얘기를 나눈 후
"운홍이는 아직 어린 아이예요!" 도명욱은 분노를 참고 꽉 쥔 주먹을 풀면서 차가운 어투로 말했다.반드시 이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는 이상 싸울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염구준은 그의 말을 듣고 미친 듯이 웃은 후 싸늘하게 말했다. "하하하!""당신도 인간미가 있군요? 전 또 짐승처럼 생각이 없는 줄 알았네요.""지금 줄 선 사람들을 좀 봐요. 저기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앗아가는 ‘신의 물’따위를 위해 한 가정을 망쳤을까요?"이 말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 전부 사실이었다.도명욱은 계속 물러섰지만 염구준은 상대방의 체면을 세워줄 생각없이 계속 몰아세웠다.집에 있는 장모님만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올라서였다.만약 앞으로의 계획에 차질을 줄까 봐 걱정이 되지 않았더라면 그는 당장 이 자리에서 상대방을 죽였을 것이다.염구준의 질책에도 도명욱은 화를 내지 않고 그저 한숨만 쉬었다."후, 저도 이러고 싶지 않지만 윗분들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표정과 말투만 보면 그의 말은 진짜 같았다.‘쉽지 않네.’그러나 염구준은 상대방을 단숨에 꿰뚫어 보았다. ‘다른 사람을 속일 수는 있어도 날 속이려면 아직 멀었어.’"정말 난처하시겠네요."이 말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져 있었지만 대부분은 자신은 그의 말을 믿지 않으니 쓸데없는 짓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상대방의 말 뜻을 바로 알아차린 도명욱은 더 이상 연기하지 않았다. "제 아들의 본성을 믿어주시길 바랍니다. 애가 철부지인 건 당신도 아실 거라 믿습니다. 그러니 저 애의 잘못을 더는 따지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저도 당연히 바보한테 잘못을 따질 생각이 없습니다."염구준은 대답한 뒤 화제를 바꿨다."그럼 저희 장모님 일과 손씨 그룹에 사람을 보낸 일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모처럼 왔으니 그는 전의 일까지 모두 해결할 생각이었다."그건... 전에 조금 바빠서 제가 소홀했습니다. 모두 아랫사람들이 멋대로 한 거예요. 전 전혀 몰랐답니다.""제게 담이 열 개가 있더라도
염구준은 주위의 경호원들을 보면서 소봉산에 있는 대부분의 전력이 모두 모였을 거라고 생각했다.‘이러면 삼선 클럽의 보안이 어느 정도인지 대충 알 것 같네.’그는 생각하는 한편 기운을 모으고 있었다. 상대방이 정말로 눈치 없이 공격한다면 이곳을 없앨 생각이었기 때문이다.쌍방이 한참 대치하고 있을 때, 호찬이 갑자기 나타났다.앞에 있던 경호원은 강자가 온 걸 보고는 웃으면서 맞이했다."호찬님, 저 자식이..."쾅!그러나 그가 말을 채 하기도 전에 호찬은 그를 차버리고 싸늘하게 말했다. "주인님께서 초대한 손님도 감히 막다니, 죽고싶은 건가?"사실 호찬은 산꼭대기에서 오랫동안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염구준의 모습을 보지 못한 도명욱이 한 번 보고 오라고 보낸 것이었다. ‘아래에서 부하들이 막고있던 거였을 줄이야.’"에이, 한판 못 붙겠네?"염구준은 호찬을 보고 기운을 거두었다."농담이 심하시네요. 안으로 드시죠."호찬은 무표정한 얼굴로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고 염구준은 그의 인솔하에 산꼭대기를 향해 걸어갔다.도운홍은 현재 복면에 머리가 씌워진 채로 용준영에게 끌려가는 중이었다.아직 일을 처리하지 못했으니 염구준은 그를 풀어줄 생각이 없었다. 위로 올라갈 수록 염구준은 줄을 서 있는 사람들 중 대부분이 노인들임을 발견했다.삼선 클럽의 목표는 매우 명확했다. 바로 최고의 성공률을 위해 타켓을 노인들로 정하고 사기치는 것이었다.사람들은 염구준의 배경을 보고 부러워 하기도, 궁금해 하기도 했다. 줄을 설 필요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삼선 클럽의 사람을 때렸음에도 아무 벌도 받지 않았으니 말이다."염구준이다!"마침내 누군가가 그를 알아보고 소리 질렀지만 이때에 그는 이미 산꼭대기에 이르러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한편, 도명욱은 산꼭대기의 정자에 앉아있었는데, 그의 앞에는 돌상 하나, 차 주전자 한 개, 컵 두 개 그리고 몇 접시의 과일들이 놓여져 있었다.대충 보아도 몸과 마음을 다스리기에 좋아 보였다."여기 앉으시죠."도명
보름 전, 이곳에 세 개의 신상들을 들여온 후 이곳을 삼선 클럽의 청해시 지점으로 선정했고, 그 후 대량의 신도들과 회원들이 이곳에 와서 ‘신의 물' 을 구하기 위해 절을 하고 돈을 냈었다. 가끔 기적이 일어나는 것도 볼 수 있었는데, 이건 초상비가 염구준에게 알려준 거였다."미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돈을 바치러 오다니, 삼선 클럽 장사 잘 되네."염구준은 산꼭대기에서 산기슭까지 줄을 선 행렬을 보면서 참지 못하고 투덜거렸다.‘하긴, 장모님도 그러셨겠지.’그러나 바로 이때, 눈앞에서 벌어진 갑작스러운 장면에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긴 대열에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몇 명의 젊은이들과 대치하고 있는 것이었다."아버지, 저희 이제 돌아가요, 네? 집에 더 이상 돈이 없어요." 젊은이가 노인의 팔을 잡아당기며 설득했다."안 가, 나는 ‘신의 물’을 원해. 난 영생을 원한다고. 내가 돈 좀 쓰는 게 어때서 그래?"이에 노인은 옆에 있는 큰 나무를 껴안고는 죽어도 놓지 않으려고 했다.가족들은 모두 노인이 다칠까 봐 지나치게 힘을 쓰지 못하고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 이거 다 거짓말이에요. 어떻게 불로장생 할 수 있게 만드는 물건이 있을 수 있겠어요?"그들에겐 정말 방법이 없었다. 모두 설득할 수 있는 만큼 했지만 노인의 마음을 끝내 돌리지 못했다."쉿, 허튼소리 하지 마. 삼선님한테 불경하게 굴어서는 안 돼."그들의 말에 노인이 소리를 낮추어 말했다.이곳은 삼선 클럽의 구역인 소봉산이었기에 모두의 일거투속이 전부 감시카메라에 찍혔다."흥, 삼선 같은 소리하네. 이건 그냥 다 돈 벌기 위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요." 그의 말에 노인의 가족들이 끝내 폭발했다.노인이 삼선 클럽에 가입한 이후로 그들 가족은 한시도 평온한 하루를 보낸 적이 없었다. "감히 삼선을 욕해? 건방지기는!"이때, 큰 외침소리와 함께 소봉산의 치안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나와서 그들을 에워쌌다. 여기서 난리를 치면 돈 버는데에 피해를 주니 당연히 가만히
바로 이때 문밖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찬과 도련님의 경호원들이 돌아왔습니다.""운홍이는?"도명욱은 이 말을 듣고 느낌이 좋지 않아 서둘러 나가 보았다."저희를 벌 해주십시오, 주인님!"호찬과 경호원들은 그를 보자마자 모두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도련님을 잃어버린 건 아주 큰 잘못이니까 말이다.생사가 도명욱의 기분에 달려있는 그들의 삶은 정말 개보다 못했다."이 병신 새끼들. 너희들 도대체 뭔 쓸모가 있어?"도명욱은 크게 소리 지르며 분풀이를 하기 위해 사람들을 미친듯이 때렸다.아무리 강한 호찬이라도 그에게 감히 반항하지 못했다.어릴 때부터 도씨 가문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사상을 주입받았기 때문이었다."하아... 하아..."도명욱은 살아있는 사람이 몇 안 남을 때까지 때리다가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염구준이 나선 거야?"낮에 전해진 소식에 따르면 염구준은 반보천인이라고 했다."네, 아주 강합니다. 도주님들과 비교해도 지지 않을 만큼요."호찬은 어렵게 일어나 무릎을 꿇고 대답했다.짝!이 말을 들은 도명욱은 안색이 크게 변하더니 힘껏 뺨을 때렸다."닥쳐, 외부의 벌레새끼가 어떻게 도주님들과 비교할 수 있겠어?"이 강한 위력에 호찬은 바닥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한바탕 화를 내긴 했으나 일은 그래도 처리해야 하니 도명욱은 옆 사람에게 분부했다. "사람들을 대기시켜. 내가 직접 염구준을 만나봐야겠으니까."비록 조직 내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도 반보천인이기에 약한 편은 아니었다.그러나 그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호찬을 한 눈 보고서 곧 상대방을 제지했다."잠깐만, 방금 전 계획은 취소한다. 염구준이 오도록 편지를 써서 보내."호찬의 말이 조금 거북하기는 했으나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성격이니 도명욱은 경각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만약을 대비해서 염구준을 시험해보는 것도 괜찮겠지.’귀염둥이 아들이 소중하기는 하지만 그의 야망에 비하면 아들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그날 밤, 도운홍을 처리하고
"네 아빠가 삼선 클럽에서 도대체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지?" 상대방의 말을 들은 염구준은 뇌리를 스쳐 지나간 생각을 확인하고 싶어 물었으나 도운홍은 그가 걱정이 되어 이렇게 물어본 거라고 여겼다."내 아빠 이름은 도명욱이야. 삼선 클럽 청해시 지점의 총책임자지. 어때, 무섭지?"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바로 득의양양해졌다.‘그럼 맞네.’염구준은 본래 도운홍의 신분이 별로 좋지 않아 그 뒤에 있는 대어를 못 낚을까 봐 걱정했었지만 이제는 그런 걱정이 사라졌다.삼선 클럽은 매우 은밀해서 전에 임시 거처를 알았음에도 청해시의 책임자를 알 수 없었었다.염구준이 말을 하지 않는 걸 본 도운홍은 상대방이 겁에 질려서 그러는 줄 알고 계속 거만하게 말했다."빨리 날 풀어주고 계약서에 사인해. 그러면 이 일을 따지지 않을 테니까.""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 일 날 줄 알아."이 말을 들은 염구준은 너무 우습게만 느껴졌다.‘세상에 이렇게 멍청한 사람이 흔하지는 않지.’"다 말했어?""어느정도는."도운홍은 오만한 얼굴로 기뻐했다.퍽!이 말을 들은 염구준은 곧바로 상대방의 뒷목을 쳐서 기절시켰고, 그를 누르고 있던 손가을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툴툴거렸다."쓸데없는 말이 정말 많단 말이야. 상황도 파악하지 못하고 전투력도 약한데 자기 분수도 모르고 말이야."그녀는 속으로 이런 사람들을 제일 업신여겼다."가자."염구준은 도운홍을 둘러업고는 아내에게 말했다."이 사람을 데리고 가서 뭐하려고?"이 모습을 본 손가을이 물었다."아, 어린 놈을 잡아가야 큰 놈도 나오지 않겠어?"염구준은 딱히 숨기지 않고 알려줬고, 이에 손가을은 바로 알아차렸다. 그들에게 있어서 오늘의 외출은 그래도 수확이 있는 셈이었다.한편, 청해시의 외부에 있는 소봉산은 이제 곧 난리가 날 게 뻔했다. "운홍아!"건장한 남자가 고급 제비집 스프를 들고 방에 들어간 뒤 얼마 되지 않아 크게 화를 냈다."이게 무슨 소리야? 경호원들은 어디있어?"방에서 나올 때 그의 손에는
"이런 일만 말할 줄 알았더라면 오지 않았을 겁니다." 손가을은 조소하면서 더 이상 머물고 싶지 않아 염구준의 팔짱을 끼었다.‘이번에야말로 삼선 클럽의 우두머리를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바보를 만날 줄이야. 괜히 시간만 낭비했어.’"대단해."염구준은 보기 드물게 강한 태도를 보인 아내를 보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하긴, 손가을에게 정말 어느 정도의 능력이 없었더라면 그 큰 그룹을 혼자 이끌어가지도 못했을 것이다."흥, 그렇다고 무슨 일이든 나한테 떠넘길 생각하지마."이에 손가을이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 내가 있는 한 그룹에 무슨 일이 생기면 다 내가 처리할게."상대방의 웃는 모습에 염구준 역시 따라 웃었다. 남편으로서 아내를 지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대화할 거리가 생기자 두 사람은 주위의 사람들을 무시하고는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밖으로 걸어갔다.염구준은 오늘 기분이 꽤 좋기 때문에 도운홍같은 바보를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오늘 온 목적이 아내가 협상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면 되었다.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멈춰, 내가 가라고 했어?" 도운홍은 마음이 급해져서 더 이상 매너 따위는 챙기지도 않았다."용건 있어?"이에 갑자기 기분이 나빠진 염구준은 걸음을 멈추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계약을 체결해야 갈 수 있어."도운홍은 계속 협박하는 말투로 말했다.오늘 일은 그가 그의 아버지를 속이고 한 거였기 때문에 반드시 해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뒤에서 계속 그를 쓸모없는 놈이라고 부를 게 뻔했다."허, 내가 지금 당장 가야겠다면 어떻게 막을 건데?"그러나 이런 방식은 염구준에게 통하지 않았다."호찬, 저 남자를 잡아서 저 여자가 사인하게 만들어."도운홍은 더 이상 예의를 차리지 않고 무력으로 손가을이 사인하게 만들려고 했다."알겠습니다."그의 명령에 호찬은 말을 달지 않고 공수를 하고는 염구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상
같은 시각, 2층에서 기다리고 있던 도운홍은 마냥 따분하게만 느껴져 손에 든 술잔을 가지고 놀면서 수시로 손목에 찬 롤렉스 시계를 보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옆에 있는 고용인에게 말했다."약속시간이 됐으니까 사람이 왔는지 가서 좀 봐봐."평소에 그를 기다리게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조금 화가 난 상태였다. "왔습니다." 고용인은 고개를 들자마자 멀리서 걸어오는 두 사람의 모습을 발견했다.한 사람이 더 있는 걸 본 도운홍은 매우 불쾌했으나 곧 눈을 감고 마음을 가다듬은 뒤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다시 눈을 떴다."안녕하세요."방금 전까지도 염구준과 웃고 떠들던 손가을은 도운홍을 보자마자 얼굴을 차갑게 굳히고 인사했다.딱 봐도 홍문연이므로 굳이 좋게 대할 필요가 없어서였다. "도운홍이라고 합니다. 삼선 클럽 청해시 지점의 이인자라고 할 수 있죠. 손 대표님은 약속시간을 잘 지키시는 분은 아닌 것 같군요."도운홍 역시 표정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 그는 상대방의 기를 누르기 위해 먼저 자기소개를 했다.‘억지로 침착한 척 하기는.’염구준은 상대방의 생각이 꽤 깊지 않다는 걸 알아차렸다. ‘누군가를 따라하는 것도 같네.’"원래는 시간을 잘 지킵니다만, 입구에 있는 개 몇마리가 길을 막아서요. 개를 산책시키실 거면 목줄을 제대로 채우셨어야죠."염구준은 일부러 상대방의 신경을 긁었다.물론 별로 심한 말은 아니었지만 말이다."이 자식이, 그건 다 내 정예 경호원들이야!"이에 도운홍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얼굴을 구긴 채로 소리쳤다.‘들켰네.’이 모습을 본 고용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련님께서는 역시 아직 어리셔. 생각하는 정도든, 모략을 하는 정도든 주인님과 차이가 너무 크군.’염구준은 이로써 자신이 원하는 걸 얻었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그저 방비할 필요도 없는 바보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한편, 폭주하던 도운홍은 자신의 추태를 알아차리고는 인차 자리에 앉아 일부러 무게를 잡았다."으흠, 미안해요, 요즘
"이 파렴치한..."상대방의 말 뜻을 단번에 알아들은 손가을은 바로 화를 냈다."가을아, 먼저 들어가봐. 난 조금 이따가 따라갈게."염구준은 상대방을 상대할 방법을 생각한 후 입을 열었다."응, 그럼 나 먼저 들어갈게.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마."손가을은 대답을 한 뒤 바로 안으로 들어갔고, 누구도 그녀를 막지 않았다.그녀는 염구준이 뭘 하려는 건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한편, 남아있는 염구준을 보면서 도어맨은 의혹스러웠다. 원래는 상대방이 반보천인이라는 정보를 받고 살짝 겁에 질려 있었는데, 무려 반보천인의 강자가 자신의 아내가 호랑이굴에 들어가는데도 빤히 바라만 보고 있을 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뭐야, 순 겁쟁이었잖아?’"역시 내 말대로 그것들이 임무를 실패해놓고 핑계를 댄 거였어. 하긴, 세상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반보천인이 있겠어?"그들은 지금 모두 자신들이 받은 정보가 가짜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염구준에게서 일반인처럼 아무 기운도 느껴지지 않으니 이 생각에 더 확신이 들 수밖에 없었다. "비켜, 이 호텔은 내 소유니까. 지금 당장 들어가서 장부를 조사해 봐야겠어."염구준은 말을 하며 앞으로 걸어갔다.자신의 소유지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으니까 말이다."흥, 네 거면 뭐? 도련님께서 들어오지 말라하시면 넌 여기서 그냥 기다리고 있어야 해."이에 선두에 선 도어맨이 크게 소리 지르며 기운을 풀었다.기운으로 봐서는 전신 경지의 강자 같았는데, 그 주제에 감히 염구준의 앞을 가로막다니, 정말 용기가 가상했다."그냥 밖에 있지 그래? 들어가서 라이브라도 보면 얼마나 어색해?"이때, 누군가가 비꼬듯이 말했다.쾅!그러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주먹에 입을 맞은 그는 바로 뒤로 날아갔고, 이빨이 다 부러지고 혀까지 잘릴 뻔 했다."왜 갑자기 조용해졌어? 계속 말해봐." 염구준은 말을 하며 상대방을 힐끗 쳐다보았다. 방금 전에 얻어맞은 사람은 항상 말조심해야 한다는 도리를 전혀 몰랐다."꽤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