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누구도 이 일을 알지 못했다.“선생님, 싸움이 끝났습니다. 저희가 지금 현자을 정리하고 있어요.”설구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상황을 보고하러 왔다.이번 싸움에서 청목을 죽이지 못했지만 그의 부하들을 전부 멸망시켰으니 졸지에 조력자를 잃은 사령관 신세가 되었다.남극 빙원의 형세는 완전히 뒤바뀌었다.“잘하셨어요. 고철들은 다 가져가세요.”염구준은 확실하게 입장을 밝혔다.비록 값나가는 물건이지만 용하까지 옮기는 것은 물론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었다.“감사합니다.”활짝 핀 설구의 얼굴에 주름들이 자글자글 일렀다.염구준이 다 가져가겠다고 해도 동맹 사람들은 찍소리도 하지 못할 것이다.그가 없었다면 이번 싸움에서 이길 수 없었다.이로서 염구준의 임무도 절반은 완성한 셈이다.이제 청목의 목을 따는 일만 남았다.청목 조직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여 재건해도 10년, 20년이 지나도 완성할 수 없다.하지만 살려 둔다면 언제든 용하에 위협이 될 것이다.따르릉!그때 염구준의 이어폰에서 소리가 났다.“주… 주상님, 절대 오지 마세요. 청목 영감탱이 엄청 강해요.”백호의 약한 말소리를 들으니 왠지 중상을 입은 것 같았다.“백호, 끝까지 버텨. 지금 바로 찾아갈게.”염구준이 다급하게 말했다.정영팀 모든 사람에게 위치 추적기가 있어 남극이 아무리 커도 사람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이번 임무에 그가 부하들을 이끌고 왔으니 전부 무사하게 데리고 가야 했다.그때 이어폰에서 기괴한 웃음소리가 들렸다.바로 흑풍이었다.“제법인데. 혼자서 내 기지를 망치다니 위세가 대단하다. 30분 줄게. 도망치면 네 부하들 죽이고 개 같은 동맹도 전부 죽여버릴 줄 알아.”그 말은 도전장과 같았다.염구준의 안색이 어두워지며 나지막하게 말했다.“네 목을 깨끗이 닦고 기다려.”그는 거처에 돌아가 검을 들고 스노우모빌을 타고 떠났다.정영팀도 뒤를 따랐다.그 외에 동맹에서 떠들썩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따라 나섰다.한편, 본거지 밖에서 청목은 왕좌에 앉아 모
“용하와 주상님을 지켜주세요!”백호는 치명적인 공격 앞에서 활짝 웃으며 기도했다.염구준이 어떤 결정을 하든 원망하지 않을 것이고, 끝까지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쿵!공격이 다가오자 백호는 눈을 찔끔 감았다.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밤도 아닌데 눈을 감고 뭐 하냐?”귓가에 염구준의 목소리가 들렸다.“주상님!”백호는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염구준이 대신 공격을 막은 모습을 보고 감격했다.“주상님, 제가 무능해서 주상님을 다치게 했습니다.”염구준은 그를 구하면서 피식 웃었다.“임무를 잘 완성했어. 다 큰 사내가 왜 울고 난리야?”그는 백호의 상세를 확인했다.심각한 부상을 입어 지체하면 안 되었다.값비싼 특수 약제가 백호의 체내로 들어가 겨우 상세를 안정시켰다.“이거 이제마 선생님이 주상님께 주신 유일한 약이잖아요.”백호는 감격에 목이 메어 통곡할 뻔했다.“약일 뿐이야. 형제 목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염구준은 백호를 부축해 주작에게 맡겼다.아직 그가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당신이 청목이야?”염구준은 이미 구자검을 잡고 싸울 준비를 했다.두 사람이 만난 이상, 전쟁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그래 내가 청목이다. 너는 누구냐?”청목이 오만한 말투로 물었다.가까운 거리에서 상대방을 본 순간 변장했다는 것을 알아챘다.촤아악!염구준은 대답하는 대신 가짜 얼굴을 벗기고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염구준!’청목이 벽에 붙인 사진을 수없이도 봤으니 그를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진짜 본인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하하하. 잘 됐구나. 굳이 널 찾아가지 않아도 되겠어. 너만 죽이면 용하는 지키는 개가 없으니 걸림돌이 사라지게 되겠구나.”청목은 미친듯이 웃었다.흑풍은 염구준을 무서워하지만 그는 아니었다.심지어 자신만만했다.살수를 가동하기만 기다리면 염구준을 바로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쓸데없는 말이 많네. 빨리 싸우자고.”염구준은 구자검을 들고 바로 돌진했다.펑!
사람도 아니고 로봇도 아닌 상태로 반천인 경지에 도달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쿵!한참 뒤, 개조를 완료한 청목은 대량의 전류를 체내에 주입하여 충전을 시작했다.‘엄청난 기운이야.’염구준은 그가 눈앞에서 강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놀라울 정도로 에너지 파동이 강해져서 의심이 들었다.‘진짜 과학으로 반천인 경지에 도달할 수 있나?’충전이 완료되자 전기 불꽃들이 사라졌다.청목은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고함을 질렀다.“안 돼, 대체 뭐가 부족해서 실패한 거야? 내 에너지 보존 공식은 틀리지 않았어!”“그만 외쳐. 에너지 축적으로 천인 경지에 도달할 수 없어.”염구준은 문제점을 발견했다.청목은 기계에 조예가 깊지만 무공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원소의 힘을 파악하지 못하면 일정한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그렇구나.”그제야 깨달은 청목은 멈추지 않고 오만하게 말했다.“하하하. 아무리 천인 경지에 도달하지 못해도 네놈을 죽이는 건 문제없어.”지금 그의 실력은 너무 막강했다.에너지는 충만하고 몸은 초고밀도의 합금으로 만들어 방어력이 놀라울 정도로 강했다.천인 경지와 가늠할 수 있는 전력이었다.“하. 큰소리 치다 큰 코 다쳐.”염구준은 아예 무시해버렸다.미친놈들을 만날 때마다 그를 죽이겠다고 큰소리쳤지만 결국 모두 그의 검에 잘려 목숨을 잃거나 도망쳤다.“죽어라!”청목은 포효하며 공격을 시작했다.몸에 푸른 빛을 반짝이며 대량의 에너지를 발산했다.에너지가 스치는 곳마다 구경하던 고위 간부들이 전류에 새카맣게 타버렸다.전압이 생각보다 높았다.“제법인데. 싸울 의욕이 생기네.”염구준이 구자검의 검의를 끝까지 끌어올리자 검의가 기승을 부렸다.촤아악!그가 도착하기 전에 검의가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며 청목에게 돌진했다.이것은 그냥 상대방의 실력을 시험하는 공격이었다.청목은 억지로 맞붙지 않고 강력한 공격을 피해버렸다.쿵!검기가 허공을 날아 바닥에 떨어졌을 때 수십 미터 되는 구멍이 뚫렸다.“엄청난 위력이야.’청목은 엄숙한
“억지 부리지 마. 끝까지 웃을지 두고 보자.”청목은 과감하게 전류를 강화했다.하지만 염구준의 검이 더 빨리 공격하며 불꽃을 튕겼다.그러나 청목의 몸뚱이가 워낙 단단해서 근거리 공격에도 데미지가 크지 않았다.두 사람은 다시 강한 위력을 발산했다.멀리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등골이 오싹했다.“방금 전력으로 싸우지 않았던 거야?”“보아하니 당분간은 승부를 가릴 수 없겠네. 먼저 밥이나 먹을까?”“주상님이 반드시 이길 거야.”평생 한번 있을까 말까 하는 큰 싸움은 운이 필요한 법이다.무공 실력이 약한 사람은 구경만 하겠지만 전신이상의 고수들에게 앞으로 반천인 경지를 돌파하는데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전투는 계속 진행되었고 어느덧 밤이 되었다.청목 거주지 곳곳에 전등이 들어오면서 두 사람을 비추었다.쿵!염구준이 갑자기 검을 가로 자르며 상대방을 제압했다.“배터리 꽤 오래 버티네.”“배터리? 하하하 방금 충전한 건 몸이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걸 유지하기 위해서야. 내 에너지 원천은 체내의 소형 원자로거든.”청목은 자신의 몸 구조를 설명하며 위대한 걸작을 자랑했다.원자로가 에너지를 끊임없이 제공하면 염구준의 기운이 소진되어도 계속 싸울 수 있다.“원래 당신 기력을 소진시키고 죽이려 했는데 제대로 싸워야겠어.”염구준은 한숨을 내쉬며 기운을 대폭 상승시켰다.“하하, 나도 그럴 생각이야.”쳥목이 체내 각 부품을 빠르게 작동하자 에너지가 급속히 상승하여 금속 방어구가 벌겋게 달아올랐다.에너지가 갑자기 급속도로 상승하자 원자로가 불안정해졌다.“멍하니 서서 뭐해? 뒤로 물러 서.”염구준은 뒤에 있는 부하들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지금은 싸움을 구경할 때가 아니었다.만약 핵이 폭발하기라도 하면 정영팀의 실력으로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주상님, 아니면…”주작은 걱정스러워 설득하려고 했다.“꺼져!”그는 강적을 앞에 두고 한눈 팔고 싶지 않았다.태도가 험악해도 실은 부하들이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걱정한 것이다.핵폭발은 장난이 아니니까.
“매화검법은 다른 사람 것이라 이것보다 더 강력한 나만의 검술을 만들어야겠네.”염구준은 감탄했다.‘다시 해보자.’그는 잠시 생각하다 상대방이 다음 공격을 준비할 때 만단의 준비를 했다.금속은 강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인성이 강해 고온에서도 변형되지 않았다.“합!”염구준은 쇄산을 사용하는 동시에 칠권합일까지 합쳐서 공격했다.이 검술은 폭발력이 너무 강해 반서는 피할 수 없었다.하지만 강력한 적 앞에서 이런 것을 걱정할 여유가 없었다.쿵!염구준은 방어를 포기하고 청목의 공격을 받으면서 머리를 잘라버렸다.속도가 너무 빠른 탓에 환영이 사라지지 않고 저 멀리까지 나가떨어졌다.머리가 사라진 청목은 체내의 원자로가 극도로 불안정한 것이 언제든지 폭발할 것만 같았다.“도망쳐!”주인이 죽자 고위층들은 당황해 사방으로 뿔뿔이 도망쳤다.강심장인 사람 몇몇만 기지로 돌아가 귀중품을 챙겼다.펑!청목의 원자로가 불안정해지더니 결국 에너지를 통제하지 못하고 폭발했다.버섯 같은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강력한 충격파가 주변에 확산되었다.건물들은 파괴되고 고온으로 바닥의 돌마저 녹아버렸다.명실상부한 인조 핵폭탄이었다.그렇게 강대하던 청목 조직이 파멸되었다.그들은 오만하게 용하를 차지하려고 했지만 남극 빙원에서 전멸할 줄은 죽을 때까지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멀리서 흑풍은 망원경으로 이 모습을 보고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염구준은 완전히 괴물이야. 저 미친 늙은이도 죽이지 못하다니 세상에 저놈을 죽일 사람이 있긴 한 거야?”상대방의 옥패를 빼앗는 계획은 점점 물거품이 되었다.한쪽 팔을 잃은 그는 절대 불가능하니 더 강력한 세력을 찾아야 했다.청목 조직이 전멸하자 흑풍은 더 이상 머무르지 않고 어깨가 축 처져서 관측소를 떠났다.“응?”그때 어느 얼음동굴에서 은밀하게 치료하던 봉유곡이 두 눈을 뜨고 엄숙하게 말했다.“엄청난 파워야. 어디서 이런 고수들이 나타났지?”그리고 계속 눈을 감고 내상을 치료했다.본인도 중상을 입고 숨어 있는 신세
일찍 돌아가면 장모님도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네.”정영팀은 이유를 묻지 않고 각자 준비하러 갔다.염구준이 무사한 것만 알면 충분했다.그가 설씨네 집으로 돌아오자 모두 그를 에워싸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하지만 염구준이 곧 떠난다는 소식을 알고 너무 아쉬워 무조건 축하주라도 마시고 떠나라고 한사코 사정했다.어떤 이유로 동맹을 맺었든 염구준은 그들을 도와 강적을 물리쳤으니 이처럼 큰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고 싶었다.다들 열정적으로 초대했지만 염구준은 전부 거절하고 부두로 향했다.지금은 한시라도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남극 빙원에 청목 조직이 사라지면 악당들도 사라지고 혼란스러운 환경도 바뀔 줄 알았는데 쉽게 변하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이해 충돌이 생길 때면 동맹은 와해되어 여전히 혼란스러웠다.하지만 염구준이 관할할 범위가 아니니 이런 일에 신경 쓰지 않았다.부두에서 망망한 바다를 보고 있으니 돌아가는 것이 큰 문제였다.남극 빙원은 용하와 직행으로 수만 해리 떨어져 있어 전투기로 이동하긴 무리였다.그렇다고 항모를 파견하면 여기까지 왔다 다시 돌아가려면 많은 시간이 소모된다.“주상님, 화물선이 있습니다.”망원경으로 전방을 관찰하던 주작이 보고했다.“가자, 선장과 가격을 흥정하고 청해까지 데려다 달라고 해야지.”염구준은 배를 전세 낼 생각으로 짐과 정영 팀을 데리고 배가 정착하는 곳으로 갔다.뿌우웅!기적 소리가 울리면서 대형 화물선이 바닷가에 멈추자 한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딱 봐도 좋은 사람들 같지 않았다.염구준은 전혀 위축하지 않고 당당하게 질문했다.“선장은 어디 있어? 할 말이 있어.”“네가 뭔데 선장을 찾아? 저리 꺼져.”한 선원이 오만한 투로 말했다.평소 그들은 횡포에 익숙해서 사람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주작, 이놈들한테 제대로 말하는 방법을 가르쳐.”염구준은 뒤로 물러서서 재미있는 무술 공연을 감상할 준비했다.“어이, 아가씨.”선원은 여자를 보자마자 이내 불량배 본성을 드러냈다.촤아악!주작
청목 조직은 이미 전멸되어 도망친 부하들이 있다고 해도 절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꼼짝 말고 기다려!”선장은 속으로 세상 물정을 모르는 놈이 다 있냐며 가장 가까운 기지에 연락했다.그런데 받는 사람이 없어서 다른 기지에 연락했다.그래도 받지 않았다.연속 열 곳 넘게 연락을 했는데 전부 받지 않았다.마음이 초조해 식은 땀을 흘릴 때 드디어 한 곳에서 전화를 받았다.하지만 그가 말하기 전에 상대방이 먼저 다급하게 말했다.“조직이 염구준의 손에 전멸했어. 존주님도 살해당해서 너도 빨리 살 길을 찾아!”상대방은 자기 말만 하고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탁!그 말에 충격을 받은 선장은 휴대폰을 떨어트리고 주인 잃은 표정을 지었다.창창한 미래가 사라진 것이다.지난 달, 청목 조직의 명성이 자자하여 고민도 없이 가입했는데 이렇게 전멸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선장은 너무 속상해 울고 싶었다.“확인했으면 방향을 돌려서 용하국 청해시로 가자. 화물들은 내 몫이야.”염구준은 일어서서 선장에게 다가갔다.청목 조직의 물건을 빼앗는데 전혀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너… 넌 대체 뭐야?”선장이 몸을 벌벌 떨며 말했다.“염구준이다.”청목 조직이 멸망했으니 신분을 숨길 필요가 없었다.“네… 네가…”선장은 말을 잇지 못했다.눈앞에 있는 사람이 청목 조직을 전멸시킨 장본인이라니 믿기지 않았다.하마터면 깜짝 놀라 쓰러질 뻔했다.“이제 출발하지? 내가 시간이 없어서 말이야.”염구준이 덤덤하게 말했다.“그럼요.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강적 앞에서 선장은 감히 지체할 수 없어 바로 부하들에게 지시했다.“연유를 채우고 화물을 싣고 출항한다.”선장은 조금이라도 꾸물거렸다가 염구준이 참지 못하고 죽일까 봐 두려웠다.한 시간 정도 모든 준비를 마치고 화물선이 출발했다.돌아가는 길은 순조롭고 평화로웠다.어느덧 용하 해역에 진입하고 30분 뒤면 청해에 도착한다.하지만 염구준은 집안일이 생각처럼 되지 않아 속을 끙끙 앓았다.“내가 무능해서 부인을 지
뒤에 쫓아오던 보트가 앞에서 달리던 보트를 뒤엎고 계속 화물선을 향해 달리는 것이다.“우리를 향해 오고 있어.”염구준이 나지막하게 말했다.무법천지인 놈 때문에 짜증이 확 밀려왔다.“주상님, 저 사람들 화물선에 무슨 일로 오죠?”주작은 상대방의 의도를 몰라 질문했다.“누가 알아. 내가 저놈들 뱃속에 들어있는 회충도 아닌데.”만약 화물선에 올라와 소란을 피우면 한바탕 때리고 던져버릴 생각이었다.슈우웅!보트가 화물선 옆으로 다가오자 여덟 명 정도 되는 남자가 뛰어올라왔다.그중에 한 사람은 부상을 입은 청년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청년의 상태를 보니 곧 죽을 것 같았다.일행은 화물선에 올라오자마자 기운을 발사하며 위세를 부렸다.전신지상 한 명, 전신 경지 세 명, 나머지는 단진 무성으로 실력이 약하지 않았다.어쩌면 은신 가문에서 온 강호인일 수도 있었다.“방금 누가 방송으로 개소리 지껄였어?”우두머리가 싸늘하게 물었다.“제… 제가 그랬어요.”선장은 기세에 눌려 말을 버벅거렸다.염구준이 옆에 없었더라면 진작에 놀라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흥, 감히 나한테 명령했어? 가만두지 않겠어.”우두머리가 말을 마치자 뒤에 있던 부하가 선장을 향해 공격했다.그들은 선장이 무례한 말을 했다고 복수하러 온 것이다.펑!부하는 공격하려다 순식간에 입가에 피를 흘리며 뒤로 날아갔다.“그런 실력으로 쪽팔리게 나서지 마.”주작이 주먹을 거두며 시큰둥하게 말했다.상대방이 먼저 공격했으니 주작도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전신지상이야.”주작의 기운을 감지한 우두머리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인상을 찌푸렸다.평범한 화물선에 이런 고수가 숨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선장이 먼저 우리한테 무례했어. 먼저 사과하면 바로 갈 거야.”우두머리의 기세가 많이 죽었다.여자의 실력이 강한 것을 눈치챘지만 부하들 앞에서 했던 말을 거둘 수 없었다.“하하하. 비켜 가라는 말이 무례한 거냐? 게다가 반말 아니고 존댓말을 썼어.”주작도 억지 앞에서 어쩔 수 없었다.
"배상금을 좀 줄일 수 있을까요?" 도명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당신 아들 몸에 있는 살이 줄 수 있으면 배상금도 줄 수 있어요."염구준은 옆에 있는 도운홍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지만 태도는 매우 단호했다.‘의논할 여지가 없다는 거군.’한참 뒤 도명욱은 이를 악물고 마음 아픈 걸 참으면서 말했다."그래요, 5천억 드리겠습니다. 지금 계좌이체 해드리죠."이렇게 되면 최근에 끌어모은 건 다 허탕을 친 셈이 된 거고, 뿐만 아니라 저축한 돈까지 날린 게 되었다."감사합니다."염구준은 돈을 받고 조롱하는 걸 잊지 않았다. 잔인하게도 말이다.사실 그에게 있어서 이 돈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앞으로 요양원이나 더 지어서 사람들이 ‘신의 물' 따위에 속지 않게 해야지.’"당신..."도명욱은 상대방의 도발에 화가 나서 피를 토할 뻔 했다.일종의 좌절감이 그를 뒤덮었다.‘이게 다 자식 교육 잘못한 내 탓이지.’오늘 그는 마침내 잘못된 교육이 불러온 결과를 알 게 되었다. 그것도 심하게 당하는 방식으로 말이다.옆에 있는 사람들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자신들의 주인이 평소에 생각이 깊고, 일을 원활하게 처리하긴 하지만 줄곧 양보하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이제는 풀어줘도 되겠지요?"도명욱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손해가 너무 심해서 그는 현재 웃을 수가 없었다."이제 가봐, 복덩어리야."이에 염구준은 누르고 있던 기운을 거두어 도운홍을 풀어주었고, 그는 바로 달려가 울며불며 하룻밤 사이에 겪은 비참한 경험을 이야기했다."운홍이가 휴식을 취하도록 데리고 가."도명욱은 두 눈을 감고 분부했다.‘이래도 안 때리네? 정말로 아끼긴 아끼나 보군.’반면에 오늘에 온 목적을 거의 다 이룬 염구준은 기분이 좋아서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어때?"염구준은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물었고, 이에 다른 사람들은 그가 뭘 말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됐어요." 그러나 용준영은 그의 질문에 바로 대답했다.이렇게 비밀 얘기를 나눈 후
"운홍이는 아직 어린 아이예요!" 도명욱은 분노를 참고 꽉 쥔 주먹을 풀면서 차가운 어투로 말했다.반드시 이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는 이상 싸울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염구준은 그의 말을 듣고 미친 듯이 웃은 후 싸늘하게 말했다. "하하하!""당신도 인간미가 있군요? 전 또 짐승처럼 생각이 없는 줄 알았네요.""지금 줄 선 사람들을 좀 봐요. 저기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앗아가는 ‘신의 물’따위를 위해 한 가정을 망쳤을까요?"이 말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 전부 사실이었다.도명욱은 계속 물러섰지만 염구준은 상대방의 체면을 세워줄 생각없이 계속 몰아세웠다.집에 있는 장모님만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올라서였다.만약 앞으로의 계획에 차질을 줄까 봐 걱정이 되지 않았더라면 그는 당장 이 자리에서 상대방을 죽였을 것이다.염구준의 질책에도 도명욱은 화를 내지 않고 그저 한숨만 쉬었다."후, 저도 이러고 싶지 않지만 윗분들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표정과 말투만 보면 그의 말은 진짜 같았다.‘쉽지 않네.’그러나 염구준은 상대방을 단숨에 꿰뚫어 보았다. ‘다른 사람을 속일 수는 있어도 날 속이려면 아직 멀었어.’"정말 난처하시겠네요."이 말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져 있었지만 대부분은 자신은 그의 말을 믿지 않으니 쓸데없는 짓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상대방의 말 뜻을 바로 알아차린 도명욱은 더 이상 연기하지 않았다. "제 아들의 본성을 믿어주시길 바랍니다. 애가 철부지인 건 당신도 아실 거라 믿습니다. 그러니 저 애의 잘못을 더는 따지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저도 당연히 바보한테 잘못을 따질 생각이 없습니다."염구준은 대답한 뒤 화제를 바꿨다."그럼 저희 장모님 일과 손씨 그룹에 사람을 보낸 일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모처럼 왔으니 그는 전의 일까지 모두 해결할 생각이었다."그건... 전에 조금 바빠서 제가 소홀했습니다. 모두 아랫사람들이 멋대로 한 거예요. 전 전혀 몰랐답니다.""제게 담이 열 개가 있더라도
염구준은 주위의 경호원들을 보면서 소봉산에 있는 대부분의 전력이 모두 모였을 거라고 생각했다.‘이러면 삼선 클럽의 보안이 어느 정도인지 대충 알 것 같네.’그는 생각하는 한편 기운을 모으고 있었다. 상대방이 정말로 눈치 없이 공격한다면 이곳을 없앨 생각이었기 때문이다.쌍방이 한참 대치하고 있을 때, 호찬이 갑자기 나타났다.앞에 있던 경호원은 강자가 온 걸 보고는 웃으면서 맞이했다."호찬님, 저 자식이..."쾅!그러나 그가 말을 채 하기도 전에 호찬은 그를 차버리고 싸늘하게 말했다. "주인님께서 초대한 손님도 감히 막다니, 죽고싶은 건가?"사실 호찬은 산꼭대기에서 오랫동안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염구준의 모습을 보지 못한 도명욱이 한 번 보고 오라고 보낸 것이었다. ‘아래에서 부하들이 막고있던 거였을 줄이야.’"에이, 한판 못 붙겠네?"염구준은 호찬을 보고 기운을 거두었다."농담이 심하시네요. 안으로 드시죠."호찬은 무표정한 얼굴로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고 염구준은 그의 인솔하에 산꼭대기를 향해 걸어갔다.도운홍은 현재 복면에 머리가 씌워진 채로 용준영에게 끌려가는 중이었다.아직 일을 처리하지 못했으니 염구준은 그를 풀어줄 생각이 없었다. 위로 올라갈 수록 염구준은 줄을 서 있는 사람들 중 대부분이 노인들임을 발견했다.삼선 클럽의 목표는 매우 명확했다. 바로 최고의 성공률을 위해 타켓을 노인들로 정하고 사기치는 것이었다.사람들은 염구준의 배경을 보고 부러워 하기도, 궁금해 하기도 했다. 줄을 설 필요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삼선 클럽의 사람을 때렸음에도 아무 벌도 받지 않았으니 말이다."염구준이다!"마침내 누군가가 그를 알아보고 소리 질렀지만 이때에 그는 이미 산꼭대기에 이르러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한편, 도명욱은 산꼭대기의 정자에 앉아있었는데, 그의 앞에는 돌상 하나, 차 주전자 한 개, 컵 두 개 그리고 몇 접시의 과일들이 놓여져 있었다.대충 보아도 몸과 마음을 다스리기에 좋아 보였다."여기 앉으시죠."도명
보름 전, 이곳에 세 개의 신상들을 들여온 후 이곳을 삼선 클럽의 청해시 지점으로 선정했고, 그 후 대량의 신도들과 회원들이 이곳에 와서 ‘신의 물' 을 구하기 위해 절을 하고 돈을 냈었다. 가끔 기적이 일어나는 것도 볼 수 있었는데, 이건 초상비가 염구준에게 알려준 거였다."미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돈을 바치러 오다니, 삼선 클럽 장사 잘 되네."염구준은 산꼭대기에서 산기슭까지 줄을 선 행렬을 보면서 참지 못하고 투덜거렸다.‘하긴, 장모님도 그러셨겠지.’그러나 바로 이때, 눈앞에서 벌어진 갑작스러운 장면에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긴 대열에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몇 명의 젊은이들과 대치하고 있는 것이었다."아버지, 저희 이제 돌아가요, 네? 집에 더 이상 돈이 없어요." 젊은이가 노인의 팔을 잡아당기며 설득했다."안 가, 나는 ‘신의 물’을 원해. 난 영생을 원한다고. 내가 돈 좀 쓰는 게 어때서 그래?"이에 노인은 옆에 있는 큰 나무를 껴안고는 죽어도 놓지 않으려고 했다.가족들은 모두 노인이 다칠까 봐 지나치게 힘을 쓰지 못하고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 이거 다 거짓말이에요. 어떻게 불로장생 할 수 있게 만드는 물건이 있을 수 있겠어요?"그들에겐 정말 방법이 없었다. 모두 설득할 수 있는 만큼 했지만 노인의 마음을 끝내 돌리지 못했다."쉿, 허튼소리 하지 마. 삼선님한테 불경하게 굴어서는 안 돼."그들의 말에 노인이 소리를 낮추어 말했다.이곳은 삼선 클럽의 구역인 소봉산이었기에 모두의 일거투속이 전부 감시카메라에 찍혔다."흥, 삼선 같은 소리하네. 이건 그냥 다 돈 벌기 위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요." 그의 말에 노인의 가족들이 끝내 폭발했다.노인이 삼선 클럽에 가입한 이후로 그들 가족은 한시도 평온한 하루를 보낸 적이 없었다. "감히 삼선을 욕해? 건방지기는!"이때, 큰 외침소리와 함께 소봉산의 치안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나와서 그들을 에워쌌다. 여기서 난리를 치면 돈 버는데에 피해를 주니 당연히 가만히
바로 이때 문밖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찬과 도련님의 경호원들이 돌아왔습니다.""운홍이는?"도명욱은 이 말을 듣고 느낌이 좋지 않아 서둘러 나가 보았다."저희를 벌 해주십시오, 주인님!"호찬과 경호원들은 그를 보자마자 모두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도련님을 잃어버린 건 아주 큰 잘못이니까 말이다.생사가 도명욱의 기분에 달려있는 그들의 삶은 정말 개보다 못했다."이 병신 새끼들. 너희들 도대체 뭔 쓸모가 있어?"도명욱은 크게 소리 지르며 분풀이를 하기 위해 사람들을 미친듯이 때렸다.아무리 강한 호찬이라도 그에게 감히 반항하지 못했다.어릴 때부터 도씨 가문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사상을 주입받았기 때문이었다."하아... 하아..."도명욱은 살아있는 사람이 몇 안 남을 때까지 때리다가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염구준이 나선 거야?"낮에 전해진 소식에 따르면 염구준은 반보천인이라고 했다."네, 아주 강합니다. 도주님들과 비교해도 지지 않을 만큼요."호찬은 어렵게 일어나 무릎을 꿇고 대답했다.짝!이 말을 들은 도명욱은 안색이 크게 변하더니 힘껏 뺨을 때렸다."닥쳐, 외부의 벌레새끼가 어떻게 도주님들과 비교할 수 있겠어?"이 강한 위력에 호찬은 바닥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한바탕 화를 내긴 했으나 일은 그래도 처리해야 하니 도명욱은 옆 사람에게 분부했다. "사람들을 대기시켜. 내가 직접 염구준을 만나봐야겠으니까."비록 조직 내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도 반보천인이기에 약한 편은 아니었다.그러나 그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호찬을 한 눈 보고서 곧 상대방을 제지했다."잠깐만, 방금 전 계획은 취소한다. 염구준이 오도록 편지를 써서 보내."호찬의 말이 조금 거북하기는 했으나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성격이니 도명욱은 경각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만약을 대비해서 염구준을 시험해보는 것도 괜찮겠지.’귀염둥이 아들이 소중하기는 하지만 그의 야망에 비하면 아들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그날 밤, 도운홍을 처리하고
"네 아빠가 삼선 클럽에서 도대체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지?" 상대방의 말을 들은 염구준은 뇌리를 스쳐 지나간 생각을 확인하고 싶어 물었으나 도운홍은 그가 걱정이 되어 이렇게 물어본 거라고 여겼다."내 아빠 이름은 도명욱이야. 삼선 클럽 청해시 지점의 총책임자지. 어때, 무섭지?"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바로 득의양양해졌다.‘그럼 맞네.’염구준은 본래 도운홍의 신분이 별로 좋지 않아 그 뒤에 있는 대어를 못 낚을까 봐 걱정했었지만 이제는 그런 걱정이 사라졌다.삼선 클럽은 매우 은밀해서 전에 임시 거처를 알았음에도 청해시의 책임자를 알 수 없었었다.염구준이 말을 하지 않는 걸 본 도운홍은 상대방이 겁에 질려서 그러는 줄 알고 계속 거만하게 말했다."빨리 날 풀어주고 계약서에 사인해. 그러면 이 일을 따지지 않을 테니까.""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 일 날 줄 알아."이 말을 들은 염구준은 너무 우습게만 느껴졌다.‘세상에 이렇게 멍청한 사람이 흔하지는 않지.’"다 말했어?""어느정도는."도운홍은 오만한 얼굴로 기뻐했다.퍽!이 말을 들은 염구준은 곧바로 상대방의 뒷목을 쳐서 기절시켰고, 그를 누르고 있던 손가을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툴툴거렸다."쓸데없는 말이 정말 많단 말이야. 상황도 파악하지 못하고 전투력도 약한데 자기 분수도 모르고 말이야."그녀는 속으로 이런 사람들을 제일 업신여겼다."가자."염구준은 도운홍을 둘러업고는 아내에게 말했다."이 사람을 데리고 가서 뭐하려고?"이 모습을 본 손가을이 물었다."아, 어린 놈을 잡아가야 큰 놈도 나오지 않겠어?"염구준은 딱히 숨기지 않고 알려줬고, 이에 손가을은 바로 알아차렸다. 그들에게 있어서 오늘의 외출은 그래도 수확이 있는 셈이었다.한편, 청해시의 외부에 있는 소봉산은 이제 곧 난리가 날 게 뻔했다. "운홍아!"건장한 남자가 고급 제비집 스프를 들고 방에 들어간 뒤 얼마 되지 않아 크게 화를 냈다."이게 무슨 소리야? 경호원들은 어디있어?"방에서 나올 때 그의 손에는
"이런 일만 말할 줄 알았더라면 오지 않았을 겁니다." 손가을은 조소하면서 더 이상 머물고 싶지 않아 염구준의 팔짱을 끼었다.‘이번에야말로 삼선 클럽의 우두머리를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바보를 만날 줄이야. 괜히 시간만 낭비했어.’"대단해."염구준은 보기 드물게 강한 태도를 보인 아내를 보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하긴, 손가을에게 정말 어느 정도의 능력이 없었더라면 그 큰 그룹을 혼자 이끌어가지도 못했을 것이다."흥, 그렇다고 무슨 일이든 나한테 떠넘길 생각하지마."이에 손가을이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 내가 있는 한 그룹에 무슨 일이 생기면 다 내가 처리할게."상대방의 웃는 모습에 염구준 역시 따라 웃었다. 남편으로서 아내를 지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대화할 거리가 생기자 두 사람은 주위의 사람들을 무시하고는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밖으로 걸어갔다.염구준은 오늘 기분이 꽤 좋기 때문에 도운홍같은 바보를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오늘 온 목적이 아내가 협상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면 되었다.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멈춰, 내가 가라고 했어?" 도운홍은 마음이 급해져서 더 이상 매너 따위는 챙기지도 않았다."용건 있어?"이에 갑자기 기분이 나빠진 염구준은 걸음을 멈추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계약을 체결해야 갈 수 있어."도운홍은 계속 협박하는 말투로 말했다.오늘 일은 그가 그의 아버지를 속이고 한 거였기 때문에 반드시 해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뒤에서 계속 그를 쓸모없는 놈이라고 부를 게 뻔했다."허, 내가 지금 당장 가야겠다면 어떻게 막을 건데?"그러나 이런 방식은 염구준에게 통하지 않았다."호찬, 저 남자를 잡아서 저 여자가 사인하게 만들어."도운홍은 더 이상 예의를 차리지 않고 무력으로 손가을이 사인하게 만들려고 했다."알겠습니다."그의 명령에 호찬은 말을 달지 않고 공수를 하고는 염구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상
같은 시각, 2층에서 기다리고 있던 도운홍은 마냥 따분하게만 느껴져 손에 든 술잔을 가지고 놀면서 수시로 손목에 찬 롤렉스 시계를 보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옆에 있는 고용인에게 말했다."약속시간이 됐으니까 사람이 왔는지 가서 좀 봐봐."평소에 그를 기다리게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조금 화가 난 상태였다. "왔습니다." 고용인은 고개를 들자마자 멀리서 걸어오는 두 사람의 모습을 발견했다.한 사람이 더 있는 걸 본 도운홍은 매우 불쾌했으나 곧 눈을 감고 마음을 가다듬은 뒤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다시 눈을 떴다."안녕하세요."방금 전까지도 염구준과 웃고 떠들던 손가을은 도운홍을 보자마자 얼굴을 차갑게 굳히고 인사했다.딱 봐도 홍문연이므로 굳이 좋게 대할 필요가 없어서였다. "도운홍이라고 합니다. 삼선 클럽 청해시 지점의 이인자라고 할 수 있죠. 손 대표님은 약속시간을 잘 지키시는 분은 아닌 것 같군요."도운홍 역시 표정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 그는 상대방의 기를 누르기 위해 먼저 자기소개를 했다.‘억지로 침착한 척 하기는.’염구준은 상대방의 생각이 꽤 깊지 않다는 걸 알아차렸다. ‘누군가를 따라하는 것도 같네.’"원래는 시간을 잘 지킵니다만, 입구에 있는 개 몇마리가 길을 막아서요. 개를 산책시키실 거면 목줄을 제대로 채우셨어야죠."염구준은 일부러 상대방의 신경을 긁었다.물론 별로 심한 말은 아니었지만 말이다."이 자식이, 그건 다 내 정예 경호원들이야!"이에 도운홍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얼굴을 구긴 채로 소리쳤다.‘들켰네.’이 모습을 본 고용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련님께서는 역시 아직 어리셔. 생각하는 정도든, 모략을 하는 정도든 주인님과 차이가 너무 크군.’염구준은 이로써 자신이 원하는 걸 얻었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그저 방비할 필요도 없는 바보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한편, 폭주하던 도운홍은 자신의 추태를 알아차리고는 인차 자리에 앉아 일부러 무게를 잡았다."으흠, 미안해요, 요즘
"이 파렴치한..."상대방의 말 뜻을 단번에 알아들은 손가을은 바로 화를 냈다."가을아, 먼저 들어가봐. 난 조금 이따가 따라갈게."염구준은 상대방을 상대할 방법을 생각한 후 입을 열었다."응, 그럼 나 먼저 들어갈게.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마."손가을은 대답을 한 뒤 바로 안으로 들어갔고, 누구도 그녀를 막지 않았다.그녀는 염구준이 뭘 하려는 건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한편, 남아있는 염구준을 보면서 도어맨은 의혹스러웠다. 원래는 상대방이 반보천인이라는 정보를 받고 살짝 겁에 질려 있었는데, 무려 반보천인의 강자가 자신의 아내가 호랑이굴에 들어가는데도 빤히 바라만 보고 있을 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뭐야, 순 겁쟁이었잖아?’"역시 내 말대로 그것들이 임무를 실패해놓고 핑계를 댄 거였어. 하긴, 세상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반보천인이 있겠어?"그들은 지금 모두 자신들이 받은 정보가 가짜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염구준에게서 일반인처럼 아무 기운도 느껴지지 않으니 이 생각에 더 확신이 들 수밖에 없었다. "비켜, 이 호텔은 내 소유니까. 지금 당장 들어가서 장부를 조사해 봐야겠어."염구준은 말을 하며 앞으로 걸어갔다.자신의 소유지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으니까 말이다."흥, 네 거면 뭐? 도련님께서 들어오지 말라하시면 넌 여기서 그냥 기다리고 있어야 해."이에 선두에 선 도어맨이 크게 소리 지르며 기운을 풀었다.기운으로 봐서는 전신 경지의 강자 같았는데, 그 주제에 감히 염구준의 앞을 가로막다니, 정말 용기가 가상했다."그냥 밖에 있지 그래? 들어가서 라이브라도 보면 얼마나 어색해?"이때, 누군가가 비꼬듯이 말했다.쾅!그러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주먹에 입을 맞은 그는 바로 뒤로 날아갔고, 이빨이 다 부러지고 혀까지 잘릴 뻔 했다."왜 갑자기 조용해졌어? 계속 말해봐." 염구준은 말을 하며 상대방을 힐끗 쳐다보았다. 방금 전에 얻어맞은 사람은 항상 말조심해야 한다는 도리를 전혀 몰랐다."꽤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