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 이제 계획을 말하겠네. 이건 주식 양도 계약서네. 내가 회사를 되찾으면 자네들에게 돌려줄 거네. 난 회사를 통해 내 작은아들을 데려와야겠네.”“그리고 자네들도 알다시피 내 큰아들은 나보다 훨씬 더 자인한 사람이라 따라간다고 해도 좋은 결과는 없을 것이네.”그는 아들을 깎아내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계약서에 서명하고 나머지는 나에게 맡기면 되네. 그가 회사를 인수했더라도 내가 주식을 가지고 있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을 걸세.”탁자 위에 놓인 주식 양도 계약서를 바라보던 그들은 한숨을 쉬며 서명했다. 그들은 옛정을 생각해서, 설령 돌려받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고 여겼다.“고맙네.”가주는 입으로는 감사하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이들을 원망하고 있었다. 모두 바람이 부는 대로 돛을 다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만약 그가 회사를 되찾고 큰아들을 내치면, 그다음은 이들 차례였다.집사는 그들을 배웅하면서 한편으론 걱정되었다. 그는 이 일이 잘 될 리 없다는 것을 너무도 명확히 알고 있었다.하지만...“이번에야말로 그 불효자가 어떻게 할지 보겠다. 이 패를 가지고 가서 호위무사들을 소집해놔.”나명관은 집사의 손에 패를 건네주며 말했다. 집사의 눈을 희미하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아버지가 구하러 간다.”그는 장난감을 들고 하늘을 바라보며 아들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이것이야말로 아버지가 보여야 할 모습이었다.같은 시각, 전화를 받은 나정한은 냉소를 지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그래도 머리는 좋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마음껏 해보라고 해.”단 한마디로 가주의 지위를 결정지었다.며칠 뒤, 나명관이 회사에 도착했다. 회사의 모든 사람은 회사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사장의 아버지였기에 모두가 조심스러웠다.“사장을 만나야겠어.”입구의 안내 데스크 직원은 난처해하며 속으로 생각했다.‘별사람 다 보겠네, 진짜!’하지만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차 한 잔을 따라 나명관의
나명관이 여전히 자기 멋대로 하자, 나정한의 비서는 어쩔 수 없이 강경하게 나갔다.“허, 당신은 정말 나흐 가문의 충견이네요. 그러나 당신이 끼어들 자리는 없는 것 같은데요?”나명관은 비서를 쳐다보며 눈썹을 찌푸리고 그의 옆으로 다가가 손을 들어 올렸다.바로 그때 그의 손목이 누군가에게 잡히고 말았다.“여기는 회사예요, 당신이 함부로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죠.”나정한이 분노에 차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이 망할 자식아, 당장 놔라.”나정한의 손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오랫동안 호의호식한 나명관은 전혀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급기야 손목이 부서질 것 같아 나명관은 소리쳤다.“아버지, 이 회사는 이제 당신과 상관없다고 말했잖아요. 그런데도 와서 내 직원들을 괴롭히는 걸 보니 요즘 너무 편안한 모양이네요!”그를 잡았던 손을 손수건으로 닦고 있는 나정한은 얼굴에 혐오로 가득했다.“나정한, 내가 한 번 더 기회를 줄게. 오늘 무릎 꿇고 잘못을 인정하면, 너를 용서할 것이고 여전히 내 아들로 살아. 그렇지 않으면.....”자신의 손목을 쓰다듬던 그는 아들의 행동에 젊었을 때의 자신을 떠올렸다.“정말 역겹군요.”나정한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손수건을 땅에 던지며 얼굴에 혐오감을 드러냈다.“좋아, 호위무사, 이놈을 잡아!”고개를 끄덕이는 나명관은 입꼬리를 올리며 명패를 꺼내 높이 들었다. 곧이어 열 명이 넘는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이 사무실에 나타났다. 다행히 나정한이 회사에 오기 전에 모든 직원들에게 반나절 휴가를 주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모두 놀라서 기절했을 것이다.“이제, 물러날 때가 되었다.”포위된 나정한은 전혀 겁먹지 않았고 오히려 차분했다. 마치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있는 듯 보였다.“그래? 생각이 너무 단순하네.”문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무거운 무기를 든 병사들이 일사불란한 발걸음으로 회사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염구준이었다.“염구준, 네가 감히 여기에 오다니. 기다려라. 이 불효자를 처리하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나정한은 확신이 있는 듯 보였다. 나명관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그저 그 자리에 벙졌다.“그래서 뭐? 나는 회사의 40%의 주식을 가지고 있어. 나는 이미 최대 주주로서 대표가 되어야 마땅해.”나명관은 주주들의 서명이 쓰인 계약서를 내밀며 자신만만하게 나정한을 바라보았다.“어차피 회사는 빈 껍데기일 뿐이니까 당신에게 줄게요.”그는 무심하게 손을 휘저으며 말했고, 동정의 눈빛으로 나명관을 바라보았다.“그게 무슨 뜻이야?”나명관은 이해하지 못했고,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이전에 네가 했던 지하 거래가 모두 중단되었고, 회사는 자금 유동이 끊겨 이미 빈 껍데기가 되었다는 뜻이야.”염구준은 옆에 서서 시가를 피우며 냉정하게 말했다. 그는 불쌍한 나명관을 전혀 동정하지 않았다.“그럴 리가 없어, 어떻게 그렇게 빨리. 그 사람들은 모두 내가 직접 키운 사람들인데.”나명관은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그 계약서에 쓰인 그들의 글씨를 봐.”너무 기뻤던 그는 계약서에 다시 확인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계획이 완벽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나명관은 서둘러 계약서를 펼쳤고,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서명은 모두 엉망이어서 전문 기관에서도 판독할 수 없었다.“너희들이 짜고 나를 속여?”계약서를 찢은 나명관은 얼굴이 시뻘게서 나정한을 손가락질하며 요설을 퍼부었다.“대표님, 이제 그만하세요. 도련님은 그래도 대표님께 최선을 다했습니다.”그때 달려온 집사가 나명관을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네가 왜 여기 있느냐? 집을 지키라고 하지 않았냐! 오히려 잘 됐어, 이 불효자를 당장 죽여라.”나명관은 완전히 미쳐버렸다. 그는 집사의 손을 잡고 바닥에 주저앉아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대표님, 제발 그만하세요!”잠시 멈칫하던 나명관은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너도 저쪽에 붙은 거야?”눈을 부라리는 나명관은 분노와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너는 나를 오랫동
“가주님, 전 예전에 당신이 사랑했던 여자를 조사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술집 아가씨에다가 불륜… 밥 먹듯이 이런 추잡한 짓거리를 저지르고 다니는 여자입니다. 가주님을 찾아온 것도 불륜을 저지르다 임신한 거 들켜서 본처한테 쫓겨온 겁니다.”이 말을 들은 가주 나명관은 큰 충격에 빠졌다. 자신이 사랑하던 여자가 그런 사람일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거짓말하지 마! 그녀는 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야! 날 배신할 리 없어!”그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집사의 멱살을 잡았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제가 왜 이런 것으로 가주님을 속이겠습니까? 저한테 무슨 이득이 있다고요?”하지만 집사는 전혀 물러날 기색이 없이 멱살이 잡힌 상황에서도 꿋꿋이 말했다. “가주님께서 믿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증거까지 준비했지만, 가주님께서 그 여자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고 있었기에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던 것뿐입니다.”그 말을 하면서 집사는 품에서 증거로 보이는 서류 봉투를 꺼냈다. 거기엔 나명관과 그의 작은 아들이 아무런 혈연관계가 아니라는 유전자 검사 결과서가 들어있었다.“이건 제가 직접 두 분의 DNA를 검사 의뢰해 받은 겁니다. 확인해보십시오.”나명관은 그제야 잡고 있던 집사의 멱살을 놔주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내밀어진 서류 봉투를 열었다. 검사지엔 다양한 수치와 글자들이 적혀 있었지만,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한 문구, 혈연관계 아니라는 글뿐이었다.“어떻게 이럴 수가! 이건 말도 안 돼!”나명관이 넋을 잃은 듯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다가, 갑자기 몸을 돌려 밖으로 뛰쳐나갔다.“가주님!”집사는 곧바로 그를 따라가려 했지만, 이내 무언가 떠올랐는지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큰 도련님, 원하시는 대로 진실도 밝혀졌고, 전도 이제 본분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이만하면 가주님한테도 충분히 벌이 되었을 테니, 부디 놓아주길 부탁드립니다.”나정한이 집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제야 그는 안
작은 소동이 있은 후, 사람들은 모두 침울한 분위기가 되어 식사를 멈추었다. 모두들 어색하게 술을 홀짝이던 중,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어찌되었든 일이 해결됐으면 좋은 거지, 뭐 저렇게 과민 반응할 것 까지야….”하지만 그는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집사가 엄숙한 목소리로 말을 잘랐기 때문이다.“말 조심하십시오!”남자는 집사가 끼어들자, 차마 반박하지 못하고 머쓱하니 코를 매만졌다. 하지만 속으로 앨리스에 대한 불만을 키워가고 있었다.“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연회장을 나서자, 뒤따라오는 인기척에 앨리스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거긴 방계 족장 중 가장 가장 나이가 많은 노인이 지팡이를 쥔 채 뒤따라오고 있었다.“이번 일에 대해 의문 되는 부분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또 전주님이 손쓴 거죠?”그 말에 앨리스가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를 숙였다. 다시 한번 자신의 무능력함이 실감이 되었다.“그럴 줄 알았습니다. 나흐 가문을 그 정도로 몰아가려면 그 분 말고는 불가능 일이죠.”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부끄러워할 필요 없습니다. 체면을 잃었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요. 염 선생님은 결코 당신이 아니었다면 도와주지 않았을 겁니다. 당신은 이 가문을 대표하며 이끌어가는 족장이자 가주입니다. 그만큼 능력도 중요하지만, 인맥도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노인이 위로와 격려의 의미를 담아 앨리스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제야 앨리스는 조금 풀린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감사합니다, 어르신.”그의 말 대로 이전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염구준도 나서지 않았을 테니까. 앨리스는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럼 언제 한번 전주님을 초대하십시오. 이번 일에 대한 감사 인사는 전해야지 않겠습니까?”노인이 문득 떠오른 듯 앨리스에게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하지마 와 주실 거란 보장은 못하겠습니다.”앨리스는 염구준이 얼마나 바쁜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초
그가 웃으며 손가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됐거든? 내가 그 사람이랑 만날 일이 뭐 있겠어.”손가을이 입을 삐죽이며 응석을 부렸다. 하지만 속으로 내심 나정한이 궁금하긴 했다.“내가 굳이 왜 이번 일에 나섰을 것 같아? 하도 심심하다고 툴툴대서 내가 당신 일하러 가게 만들려고 그런 거잖아. 나정한한테 당신 사업 도와달라고 다 말해 놨어.”염구준은 나정한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 계획했던 것이었다.“나 때문에?”손가을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그럼 누굴 위해서 그랬겠어? 난 회사 일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 회사 세울 때 어려움이 있으면 물어볼 데가 있으라고 도와준 거야.”염구준이 무심한 듯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그녀의 반응이 기뻤다.“내가 무슨 회사를 세워. 그거 그냥 말한 거였어.”손가을은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속으론 내심 감동하고 있었다. 그 덕에 염구준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도 한층 더 부드러워졌다.“나정한한테서 잘 보고 배워. 나중엔 당신이 날 먹여 살려야지.”염구준은 장난스레 손가을의 코를 튕기며 말했다. 남에겐 가차없던 남자가 집에서 아내한텐 이런 사랑스러운 모습이라니, 다른 사람이 봤으면 경악했을 것이다.“알겠어.”그냥 던진 말이었지만, 염구준이 그것을 마음에 두고 이렇게까지 해줬으니, 손가을도 한번 도전해보기로 마음먹었다.한편, 나흐 가문.나정한은 그 뒤로 거의 온종일 소파에서 생각에 잠긴 채 보냈다. 마음이 여전히 좋지 않았다.“대표님, 이제 어두워졌습니다. 제가 모셔다드릴까요?”밖에서 기다리던 비서가 날이 어두워진 것을 보고 문을 두드리며 들어갔다.“너 먼저 가. 난 혼자 갈게.”나정한이 잠긴 목소리로 답했다. 그는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대표님, 힘드신 거 알아요. 하지만 몸은 챙기셔야죠.”조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다. 지금 나정한이 이 자리에 있기까지, 모든 과정을 지켜본 사람이 바로
오랜만에 보는 매서운 눈빛에 집사는 순간 나명관이 돌아온 줄 착각했지만, 아니었다. 그는 다시 흐리멍덩한 미친 사람으로 돌아갔다.“가주님, 저도 제가 지은 죄가 있다는 걸 압니다. 앞으로 계속 모실 테니, 함께 살아갑시다.”집사가 한숨을 내쉬며 숟가락으로 음식을 떠 나명관의 입가로 가져다 댔다. 한때 모든 이들의 위에서 당당히 군림하던 나흐 가문의 가주의 최후가 이럴 줄이야, 사람이란 모른다고, 정말 아무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전주님, 저 앨리스예요. 가문의 어르신들이 전주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어 하는데, 혹시 시간 되시면 함께 식사 어떠실지 여쭈려 전화드렸어요.”앨리스가 최대한 공손한 말투로 물었다. 염구준은 그런 자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체면을 꺾고 싶지 않았기에 차마 대놓고 거절하지 못했다.“별거 아니었어요. 굳이 저 때문에 자리 안 만드셔도 됩니다.”염구준이 최대한 예의를 차려 돌려 말했다. 그는 정말로 가고 그런 형식적인 자리에 관심이 없었다.“전주님, 저도 전주님께서 이런 자리 꺼려하시는 거 알고 있어요. 정말 감사 인사만 드리려고 마련한 자리예요. 저희 가문에서 대표로 저와 가장 나이 많으신 족장 어르신 한 분만 참석할 거예요.”앨리스가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말하지 염구준은 결국 생각 끝에 동의했다.“알겠어요. 그럼 갈게요.”앨리스는 지금의 자리까지 올린 것은 그였다. 만약 끝까지 이번 식사자리를 거절한다면 가문에서 그녀의 입지가 난감해질 것 같았다. “아, 그리고 앨리스 씨, 조언 하나만 할게요. 앞으로 비슷한 일이 또 생기면,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하길 바라요. 폐 끼치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은 알겠지만, 다음번에도 남들이 당신을 무시하고 공격하는데도 가만이 있다면, 저 정말 실망할 것 같아요.”염구준은 방어적이기만 한 앨리스의 태도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도 직접 나선 것이었다. “앞으로 같은 상황에 처하고 싶지 않았다면, 강해져야 해요. 하지만 당장은 어렵다는 걸
청용은 내키지 않았지만, 티 내지 않고 최대한 덤덤히 염구준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넌 잘 할 거야. 사람은 때때로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해. 너만큼 이 일에 적합한 사람은 없어. 내가 원하는 건 앨리스 씨에게 압박감을 주는 것이 아닌, 그녀가 훌륭한 가문의 수장으로서 성장하는 거야.”염구준의 말을 들은 청용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그의 의도가 이해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아무리 내키지 않는다고 해도 그녀에게 거절한 명분은 없었다.“내일 저녁 식사 자리에 같이 가자. 대신 돌아올 때는 나 혼자 돌아오고, 넌 거기에 남아.”“알겠습니다.”청용의 대답을 들은 염구준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 저녁, 염구준은 청용과 함께 앨리스 집 앞에 도착했다.“이따가 들어가면 최대한 말 아껴.”혹시라도 말 실수할까 걱정되었던 염구준이 청용에게 신신당부했다.그 말에 청용이 눈썹을 찡그리며 살짝 불편한 기색을 내보였다. 도대체 자신은 염구준 눈에 어떤 존재로 비쳐지는 것일까? 그녀는 그의 걱정이 이해되지 않았다.안으로 들어가보니, 약속대로 정말 앨리스과 나이 많은 족장 한 명만이 자리해 있었다.“전주님, 오셨네요. 어서 앉으세요.”염구준이 오자, 앨리스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를 메인 자리로 안내했다.“아니에요. 괜찮아요. 전 오늘 손님으로 온 것뿐이니, 족장님이 거기에 앉으세요.”염구준이 손을 흔들며 오히려 앨리스에게 그 자리를 양보했다. 그런 다음 자신은 대충 아무 자리에나 앉았다.그가 이렇게 나오자, 앨리스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착석했다. 하지만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노인은 다시 한번 염구준의 태도에 만족스러운 눈빛을 띄었다.“전주님, 오늘 이 자리에 당신을 초대한 것은 이번에 엘 가문을 도와주신 것에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함입니다.”그 말과 함께 노인은 술을 염구준 컵에 따랐다. 그는 술을 마시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술잔을 들었다.“별일 아니었어요. 앨리스 씨가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