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소동이 있은 후, 사람들은 모두 침울한 분위기가 되어 식사를 멈추었다. 모두들 어색하게 술을 홀짝이던 중,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어찌되었든 일이 해결됐으면 좋은 거지, 뭐 저렇게 과민 반응할 것 까지야….”하지만 그는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집사가 엄숙한 목소리로 말을 잘랐기 때문이다.“말 조심하십시오!”남자는 집사가 끼어들자, 차마 반박하지 못하고 머쓱하니 코를 매만졌다. 하지만 속으로 앨리스에 대한 불만을 키워가고 있었다.“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연회장을 나서자, 뒤따라오는 인기척에 앨리스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거긴 방계 족장 중 가장 가장 나이가 많은 노인이 지팡이를 쥔 채 뒤따라오고 있었다.“이번 일에 대해 의문 되는 부분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또 전주님이 손쓴 거죠?”그 말에 앨리스가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를 숙였다. 다시 한번 자신의 무능력함이 실감이 되었다.“그럴 줄 알았습니다. 나흐 가문을 그 정도로 몰아가려면 그 분 말고는 불가능 일이죠.”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부끄러워할 필요 없습니다. 체면을 잃었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요. 염 선생님은 결코 당신이 아니었다면 도와주지 않았을 겁니다. 당신은 이 가문을 대표하며 이끌어가는 족장이자 가주입니다. 그만큼 능력도 중요하지만, 인맥도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노인이 위로와 격려의 의미를 담아 앨리스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제야 앨리스는 조금 풀린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감사합니다, 어르신.”그의 말 대로 이전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염구준도 나서지 않았을 테니까. 앨리스는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럼 언제 한번 전주님을 초대하십시오. 이번 일에 대한 감사 인사는 전해야지 않겠습니까?”노인이 문득 떠오른 듯 앨리스에게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하지마 와 주실 거란 보장은 못하겠습니다.”앨리스는 염구준이 얼마나 바쁜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초
그가 웃으며 손가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됐거든? 내가 그 사람이랑 만날 일이 뭐 있겠어.”손가을이 입을 삐죽이며 응석을 부렸다. 하지만 속으로 내심 나정한이 궁금하긴 했다.“내가 굳이 왜 이번 일에 나섰을 것 같아? 하도 심심하다고 툴툴대서 내가 당신 일하러 가게 만들려고 그런 거잖아. 나정한한테 당신 사업 도와달라고 다 말해 놨어.”염구준은 나정한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 계획했던 것이었다.“나 때문에?”손가을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그럼 누굴 위해서 그랬겠어? 난 회사 일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 회사 세울 때 어려움이 있으면 물어볼 데가 있으라고 도와준 거야.”염구준이 무심한 듯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그녀의 반응이 기뻤다.“내가 무슨 회사를 세워. 그거 그냥 말한 거였어.”손가을은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속으론 내심 감동하고 있었다. 그 덕에 염구준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도 한층 더 부드러워졌다.“나정한한테서 잘 보고 배워. 나중엔 당신이 날 먹여 살려야지.”염구준은 장난스레 손가을의 코를 튕기며 말했다. 남에겐 가차없던 남자가 집에서 아내한텐 이런 사랑스러운 모습이라니, 다른 사람이 봤으면 경악했을 것이다.“알겠어.”그냥 던진 말이었지만, 염구준이 그것을 마음에 두고 이렇게까지 해줬으니, 손가을도 한번 도전해보기로 마음먹었다.한편, 나흐 가문.나정한은 그 뒤로 거의 온종일 소파에서 생각에 잠긴 채 보냈다. 마음이 여전히 좋지 않았다.“대표님, 이제 어두워졌습니다. 제가 모셔다드릴까요?”밖에서 기다리던 비서가 날이 어두워진 것을 보고 문을 두드리며 들어갔다.“너 먼저 가. 난 혼자 갈게.”나정한이 잠긴 목소리로 답했다. 그는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대표님, 힘드신 거 알아요. 하지만 몸은 챙기셔야죠.”조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다. 지금 나정한이 이 자리에 있기까지, 모든 과정을 지켜본 사람이 바로
오랜만에 보는 매서운 눈빛에 집사는 순간 나명관이 돌아온 줄 착각했지만, 아니었다. 그는 다시 흐리멍덩한 미친 사람으로 돌아갔다.“가주님, 저도 제가 지은 죄가 있다는 걸 압니다. 앞으로 계속 모실 테니, 함께 살아갑시다.”집사가 한숨을 내쉬며 숟가락으로 음식을 떠 나명관의 입가로 가져다 댔다. 한때 모든 이들의 위에서 당당히 군림하던 나흐 가문의 가주의 최후가 이럴 줄이야, 사람이란 모른다고, 정말 아무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전주님, 저 앨리스예요. 가문의 어르신들이 전주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어 하는데, 혹시 시간 되시면 함께 식사 어떠실지 여쭈려 전화드렸어요.”앨리스가 최대한 공손한 말투로 물었다. 염구준은 그런 자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체면을 꺾고 싶지 않았기에 차마 대놓고 거절하지 못했다.“별거 아니었어요. 굳이 저 때문에 자리 안 만드셔도 됩니다.”염구준이 최대한 예의를 차려 돌려 말했다. 그는 정말로 가고 그런 형식적인 자리에 관심이 없었다.“전주님, 저도 전주님께서 이런 자리 꺼려하시는 거 알고 있어요. 정말 감사 인사만 드리려고 마련한 자리예요. 저희 가문에서 대표로 저와 가장 나이 많으신 족장 어르신 한 분만 참석할 거예요.”앨리스가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말하지 염구준은 결국 생각 끝에 동의했다.“알겠어요. 그럼 갈게요.”앨리스는 지금의 자리까지 올린 것은 그였다. 만약 끝까지 이번 식사자리를 거절한다면 가문에서 그녀의 입지가 난감해질 것 같았다. “아, 그리고 앨리스 씨, 조언 하나만 할게요. 앞으로 비슷한 일이 또 생기면,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하길 바라요. 폐 끼치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은 알겠지만, 다음번에도 남들이 당신을 무시하고 공격하는데도 가만이 있다면, 저 정말 실망할 것 같아요.”염구준은 방어적이기만 한 앨리스의 태도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도 직접 나선 것이었다. “앞으로 같은 상황에 처하고 싶지 않았다면, 강해져야 해요. 하지만 당장은 어렵다는 걸
청용은 내키지 않았지만, 티 내지 않고 최대한 덤덤히 염구준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넌 잘 할 거야. 사람은 때때로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해. 너만큼 이 일에 적합한 사람은 없어. 내가 원하는 건 앨리스 씨에게 압박감을 주는 것이 아닌, 그녀가 훌륭한 가문의 수장으로서 성장하는 거야.”염구준의 말을 들은 청용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그의 의도가 이해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아무리 내키지 않는다고 해도 그녀에게 거절한 명분은 없었다.“내일 저녁 식사 자리에 같이 가자. 대신 돌아올 때는 나 혼자 돌아오고, 넌 거기에 남아.”“알겠습니다.”청용의 대답을 들은 염구준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 저녁, 염구준은 청용과 함께 앨리스 집 앞에 도착했다.“이따가 들어가면 최대한 말 아껴.”혹시라도 말 실수할까 걱정되었던 염구준이 청용에게 신신당부했다.그 말에 청용이 눈썹을 찡그리며 살짝 불편한 기색을 내보였다. 도대체 자신은 염구준 눈에 어떤 존재로 비쳐지는 것일까? 그녀는 그의 걱정이 이해되지 않았다.안으로 들어가보니, 약속대로 정말 앨리스과 나이 많은 족장 한 명만이 자리해 있었다.“전주님, 오셨네요. 어서 앉으세요.”염구준이 오자, 앨리스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를 메인 자리로 안내했다.“아니에요. 괜찮아요. 전 오늘 손님으로 온 것뿐이니, 족장님이 거기에 앉으세요.”염구준이 손을 흔들며 오히려 앨리스에게 그 자리를 양보했다. 그런 다음 자신은 대충 아무 자리에나 앉았다.그가 이렇게 나오자, 앨리스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착석했다. 하지만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노인은 다시 한번 염구준의 태도에 만족스러운 눈빛을 띄었다.“전주님, 오늘 이 자리에 당신을 초대한 것은 이번에 엘 가문을 도와주신 것에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함입니다.”그 말과 함께 노인은 술을 염구준 컵에 따랐다. 그는 술을 마시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술잔을 들었다.“별일 아니었어요. 앨리스 씨가 그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앨리스는 옆에서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이것으로 절 엘 가문과 완전히 묶어버리려는 거군요. 참으로 대단합니다.”이 말과 함께 염구준이 정색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은 마음으로 나온 자리인데, 이런 방식으로 절 엮으러 할 줄은 몰랐네요.”엘 가문의 지분은 그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염구준은 자신의 호의를 이용하려 드는 사람을 가장 혐오했다.“진정하세요. 이건 당신을 이용하려는 것이 아닌,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염구준의 화난 모습에도 노인은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침착하게 말했다.“앞으로 제가 이 가문을 지킬 날이 얼마 남지 않았거든요. 가주님은 좋은 사람이지만, 아직 좋은 가주가 되기엔 부족해요. 마음이 너무 여려 도와줄 사람이 필요합니다.”노인이 웃으며 자신의 건강 검진 보고서를 테이블 위로 내밀었다. “이건 지난달 검사한 결과입니다. 의사가 저에게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확실하게 가주님을 지켜줄 분이 필요합니다.”보고서 위에 간암 말기라는 글자가 빨간 줄로 적혀 있었다.“어르신, 왜 이제야 말씀하시는 겁니까!”보고를 본 앨리스가 눈물을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 가문에서 그녀에게 조언을 해줄 사람은 이 노인밖에 없었다. 노인은 방계 족장의 대표였고, 모두가 따르는 가문의 어른이었다. 그가 없어지면, 다른 족장들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었다. “슬퍼할 거 없어요. 언젠가 올 날이었고, 다행히 미리 알아 이렇게 준비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노인이 웃으며 앨리스를 달랬다. 그런 다음 다시 염구준에게 시선을 주며 말했다. “전주님, 가주님은 원래부터 당신 사람이었잖아요. 앞으로도 당신 사람일 테니, 나쁜 거래는 아닐 겁니다. 부디 끝까지 책임져 주세요.”노인이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생명의 마지막 끝까지 오직 엘 가문만 생각하는 노인의 모습에 염구준의 마음도 움직였다. 그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전주님.”염구준이 동의하자
“도련님 곧 돌아올 거예요. 하지만 식사 안 하시면, 안 돌아오실 거랬어요.”집사가 밥을 나명관 앞에 가져다 놓으며 위협적인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그 눈빛은 걱정으로 가득했다.“알겠어. 지금 먹을게.”나명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희망찬 눈빛으로 밥을 받아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잠시 스쳐지나간 그의 눈빛엔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집사는 숟가락으로 음식을 뜨느라 보지 못했다. 밤이 깊어진 조용한 시간, 발코니에 검은 그림자가 깃들었다.“누구야!”그림자를 눈치챈 나명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낮의 흐리멍덩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역시 미친 척한 게 맞나보군. 그럼 어디 제대로 얘기 나눠볼까?”검은 그림자가 어둠 속에서 크게 웃으며 말했다. 사방에 그의 소리로 가득 차, 어느 방향에 있는지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다.“누구냐! 나랑 얘기하고 싶은 거면 모습을 드러내라!”나명관이 사방을 돌아다니며 소리쳤다. 하지만 어디에도 이 존재의 행방은 보이지 않았다.“내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지금 내가 너를 이 상황에서 구해낼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나흐 가주가 경계하는 모습을 본 그림자가 웃던 것을 멈추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필요한 자원은 다 대줄 테니, 염구준을 상대해줘. 자세한 얘기는 내 주인이 알려 줄 거다.”그 말에 나명관은 깊은 생각에 빠졌는지 돌아다니던 것을 멈추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한때 그 영민했던 나흐 가문 가주는 어디에 갔는가? 설마 이대로 여기서 죽을 때까지 썩을 생각인가?”“아니, 절대로 그럴 수는 없어!”그림자에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마자, 나명관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그렇다면 내 조건을 받아들여라.”어둠 속에 있던 존재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는 이미 승리를 예상한 것 같았다.“알겠다. 받아들이지.”잠시 고민한 뒤, 나명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상대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곳에서 나갈 수만 있다면 충분히 모험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
“그 사람이 미쳤을 리 없지. 처음엔 나도 긴가민가 했지만, 역시나 연기였네. 계속 그대로 있었으면 내버려두려고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됐군.”그처럼 굳건한 의지를 갖은 사람이 겨우 이런 일로 미쳐버렸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말이 안 됐다. 집사도 나정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이상한 부분들이 있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요?”모든 것이 파악되자, 집사는 도리어 마음이 평온해졌다. 나명관은 결국 자신의 의지로 이곳을 도망친 것이니, 다치진 않았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그냥 거기에 있어. 이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나정한이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그의 손엔 어느새 부러진 펜이 들려 있었다. 그렇게 통화가 마무리되고 집사는 쓴 웃음을 지었다. 분명 나명관은 그를 엄청 증오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대표님, 여기 서류에 서명이 필요합니다.”노크소리와 함께 비서가 서류를 든 채 사무실로 들어왔다. 나정한은 고개를 끄덕이다 미간을 찌푸렸다. 손에 들고 있던 펜은 부러져서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펜 하나 줘봐.”그가 힘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이 매우 복잡했다. 나정한의 상태를 눈치챈 비서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대표님, 무슨 일 있으셨어요?”이 질문에 나정한의 얼굴이 잠시 굳었지만, 곧 다시 표정을 풀고 답했다.“어젯밤에 그 사람이 머물고 있는 별장에 누가 다녀갔는지 조사해줘. 누군가의 도움 없이 도망칠 수 없었을 텐데, 없어졌어.”나정한이 서류에 사인을 하며 비서에게 명령했다. 비서는 단번에 그 사람이 누굴 뜻하는지 알아차렸다.“뭐라고요? 그 분이 도망쳤다고요? 도대체 어떻게?”나명관이 도망쳤다니, 비서는 크게 놀랐다.“왜 두려워? 설마 널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그 모습에 나정한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심한 표정을 지었다. “전주님께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하지만 비서는 전혀 개의치 않고 되물었다.“아니, 일단 조사해 보고 다시 얘기하자.”나정한이 고개를 저으며
한 발짝 앞으로 내딛자 나명관은 가슴이 두려움으로 뛰기 시작했다. 부서진 잔해들, 가득 쌓인 먼지, 그리고 은은한 피 냄새.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반쯤 열려 있는 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갔다.“왔군.”텅 빈 공간에 울려 퍼지는 중년 남성의 목소리.“누구야?”속으로는 두려웠지만, 나명관은 애써 자신이 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당당히 소리쳤다. “나? 네 주인이 될 사람. 앞으로 계속 걷다가 오른쪽 방으로 들어가라.”목소리에 가소롭다는 듯 낮은 웃음기가 묻어 있었다. 나명관은 불안했지만 남자의 말 대로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잠시 나타난 인물, 나명관은 그의 정체를 깨닫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어, 어떻게….”이 남자는 그도 익히 아는 인물이었다. 염구준을 조사할 때 나왔던, 그의 최대의 적, 흑풍 존주였다!“내가 누군지 말하지 않아도 아는 눈치군. 그렇다면 내가 너를 찾은 이유도 알겠네?” 나명관의 표정을 본 흑풍 존주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었구나! 내게 염구준을 상대하게 원했던 사람!”나명관이 담담히 말하며 속으로 결심을 내렸다. “너 보고 혼자서 염구준을 상대하라는 것이 아니라, 함께 상대할 것이다. 너도 알다시피 염구준이 무너지지 않으면, 넌 절대로 회사를 장악할 수 없을 테니.”흑풍 존주가 어깨를 으쓱하며 오만하게 나명관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명관은 왠지 모를 불안이 서렸다. “하지만 난 지금 권력도 힘도 없는데, 왜 굳이 나를 선택했지?”나명관은 탐색하듯 물었다. 역시 다년간의 경험이 길러낸 노련함은 어디에 가지 않았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신을 찾아온 흑풍 존주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없기는, 나흐 가문 유럽 쪽에도 큰 기반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분명 거기에 걸맞는 탄탄한 동맹 세력이 있지 않는가? 예를 들면… 혈용사, 크리스라던가?”흑풍 존주는 이 말과 함께 나명관의 안색을 힐끗 살폈다. 용병 왕 크리스는 과거에 나명관에게 목숨을 빚진
펭귄의 몸에 있는 문양이 좀 익숙하긴 했지만 어디서 봤던 건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그럼 계속 가나요?"설씨 가문의 사람들이 물었다.달무 등이 공격당하는 모습을 본 그들은 매우 겁에 질린 상태였다. 그들은 달무 일행처럼 펭귄에게 공격 당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의 질문에 설구는 매우 난감해 했다. 그 역시 자신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쩔 방법이 없어 강자인 주작과 백호를 바라보았지만 그들의 시선은 모두 염구준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상대방이 명령을 내리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이정도면 됐어."염구준은 달무 등이 포악한 펭귄들의 시선을 대부분 잡아둔 것을 보고 낮은 소리로 말한 뒤 주변의 몇 사람들을 바라보았다."내가 길을 열 테니까 백호가 뒤를 끊고 현무는 왼쪽을 책임지고 주작은 오른쪽을 책임져. 너희 셋은 설웅 일행을 지켜.""알겠어?""네!"정예 부대의 대원들은 이구동성으로 큰 소리로 대답했다. "자, 그럼 움직이자!"염구준이 말을 마치자마자 그들은 진형을 바꾸어 설씨 가문의 사람들을 가운데에 에워쌌다.설구는 이제서야 염구준이야말로 이 무리의 핵심이라는 것과 설웅이 그들과 이미 아는 사이라는 것을 눈치챘지만 상대방이 지금 신분을 숨긴 상태이기 때문에 딱히 말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자신들을 도와주기만 하면 상관없었다.전부 진형대로 선 뒤, 그들은 동굴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다들 조심해요. 이 펭귄들은 피를 좋아하기 때문에 죽이지 말고 그냥 쫓아내요."염구준은 주위를 떠도는 펭귄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앞에서 지금 겨우 저 펭귄들의 시선을 끌어주고 있는데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지.'"대장, 저 녀석들이 들어가려고 하는 것 같은데?" 브루언은 바쁜 상황에서도 주변의 상황을 한 눈 보았다.지금 그들은 다른 사람의 앞길을 터준 셈이었다. 달무가 처음에 세웠던 계획과 완전히 반대라는 말이다."화기를 써!"달무는 끝내 더 이상 숨기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가방에서 새 총을 꺼내
달무는 상대방의 태도에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저희 모두 안에 있는 보물을 위해 온 것 같으니 손을 잡는 게 어때요? 보물을 가진 뒤 절반씩 나누는 걸로 하죠."'보물?'설씨 가문 사람들은 상대방의 말에 의문이 어렸다. 분명 얼음에 봉인된 사람을 깨우려고 왔다고 들었는데 상대방이 보물 이야기를 꺼내니까 말이다."보물에는 딱히 관심이 없습니다. 저희는 한 물건만 가지러 온 거라서요."설구는 과감하게 거절했다.'신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는데 손을 잡기는 개뿔.'만약 결정적인 순간에 상대방이 뒷통수를 때리면 어떡하나. 그땐 후회를 해도, 울어도 소용없을 게 뻔한데 말이다."늙은이, 좋게 말할 때 듣지 그래?" 브루언은 좋지 않은 말투로 말하며 상대방을 손 봐주기 위해 앞으로 걸어갔다.이에 달무는 그를 막으면서 웃으며 말했다."그럼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각자의 능력에 맡기는 걸로 하죠."말을 마친 후 그는 사람들을 이끌고 동굴 입구로 걸어갔다.달무가 만만한 사람이라 브루언을 말린 것이 아니라 보물의 그림자도 보지 못한 상황에서 상대방과 싸우는 게 수지에 맞지 않다고 여겨서 그렇게 행동한 것 뿐이었다."우리도 가자!"설구는 늦게 가면 계획에 영향을 미칠까봐 얼른 앞으로 가려고 했다."잠시만요, 우선 저 펭귄들의 반응을 보죠."이에 염구준은 재빨리 제지했다. 이 말을 들은 설구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번에 대오를 이끄는 사람은 그인데, 옆에서 이래라저래라 하니 말이다. 그가 막 말을 하려고 할 때, 설웅이 서둘러 나섰다."저도 이 분의 말에 동의합니다. 이 시간을 아낀다고 해서 크게 변하는 것도 없으니 한 번 기다려보죠."미래 가주이자 족장이 하는 말이니 설구는 말을 억지로 삼키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제자리에 서서 달무 등이 펭귄 무리에게 점점 다가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길 막지 말고 저리 꺼져!" 브루언은 펭귄 한 마리를 발로 차면서 방금 전의 불만을 털어놓았다.솔직히 말해서 그는 방금 전
출발하기 전에 달무 등을 한 눈 더 쳐다본 염구준은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으로 보아 그들이 일반인도, 탐험가도 아니라는 걸 바로 눈치챘다.달무는 기름을 들고 돌아가며 웃으면서 말했다."운이 좋네. 기름 몇 통을 챙겼으니까 말이야."사실은 아직 기름이 부족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한 이유는 누군가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이 기회를 틈타 물재를 가져오기 위해서였다."굳이 이렇게 귀찮게 할 필요 있어? 그냥 다 죽이고 빼앗아 오면 되잖아."브루언은 독한 술을 마시며 대부분이 쓰는 일반적인 수법을 말했다.이에 달무는 고개를 저으며 엄숙하게 대답했다."안 돼, 방금 전 일행은 인원수가 적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겉모습이랑 챙긴 장비만 봐도 만만한 사람이 아닌 것 같으니까 말이야.""게다가 우리가 이번에 여기까지 온 건 임무가 있어서야. 겨우 이딴 일로 큰 일을 그르쳐서는 안 되지."말을 마친 뒤 그는 지도를 꺼내 위치를 보고 노선을 살펴보기 시작했다.자신들의 대장이 이렇게까지 말했으니 나머지도 더 이상 뭐라고 하지 못하고 그저 입을 다물었다. "자, 다들 충분히 쉰 것 같으니까 계속 전진하자."달무의 명령에 20여 명의 일행들이 스노모빌을 타고 끝없이 펼쳐진 눈길로 향했다.그들이 달리는 방향은 바로 설구 등이 떠난 방향이었다.계속해서 앞으로 달리고 있던 설구 등은 곧바로 뒤에서 울리는 엔진 소리를 들었다."장로님, 누군가가 따라옵니다. 방금 전에 만난 달무 일행이에요."설웅은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비록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제일 앞에 있는 사람의 방한복을 보면 달무임이 틀림없었다.'음?'상대방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설구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우선 멈추고 휴식하자. 다들 경계태세에 돌입해. 저들이 뭘 하려는 건지 잘 지켜보고."누군가가 뒤를 따라잡은 이상, 우선 상대방이 무엇을 하려는 건지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일행은 곧바로 멈추었고, 뒤에 있던 달무 등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을 따라
고수들을 데리고 가문의 주둔지로 와 적들을 물리친 그는 지금 현재 암묵적인 가주였기 때문에 설구도 뭐라고 반박할 수가 없어 동의하고는 말을 덧붙였다. "그래요, 그럼 같이 가죠. 하지만 저희는 당신들의 안전을 책임지지 못합니다.""괜찮습니다. 저희의 몸은 저희가 잘 챙길 테니 걱정 마세요."염구준은 웃으며 대답했다.'가는 도중에 날 힘들게 하지만 않으면 다행이지.'이번에 임무를 맡은 정예 부대는 가장 약한 사람도 전신경지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그들은 장비를 점검하고는 스노모빌을 타고 설구의 인솔하에 그 신비한 곳으로 출발했다."다들 무사히 돌아와야 해요!"그들의 뒤에서 설씨 가문의 사람들이 크게 외쳤다.이번 임무에서 흑풍과 청목을 동시에 상대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염구준은 큰 가방 안에 구자검을 넣고 출발했다.어느 정도의 경지에 도달했는지 알 수 없는 반보 천인 앞에서 여유를 부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청목존주의 일은 그리 급하지 않았다. 미끼는 이미 던졌으니 상대방이 물기만을 기다리면 되었다.낚시를 하려면 인내심을 가져야 했다.넓은 눈밭에서 사람들은 거의 모두 최대시속으로 스노모빌을 탔다.제일 앞에서 달리는 설구가 마음이 급해서 빠르게 몰아서였다.그들이 달리던 중 대오에서 눈이 가장 좋은 염구준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앞에 사람이 있어요!"그의 말을 들은 설구는 집중해서 눈을 똑바로 뜨고 앞을 보았고 정말 누군가가 서 있는 걸 보았다. 그는 곧바로 경계심이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정신 차려. 일 벌이지 말고."이 지역은 무인 구역이기 때문에 사람이 나타난다는 것 자체가 매우 비정상적인 일이었다.설구는 먼저 방향을 약간 바꿔서 돌아가려고 했으나 곧바로 가로막혔다."안녕하세요,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그의 길을 막은 사람이 말했다.염구준은 앞에 있는 사람들을 한번 훑어보았는데, 금발에 푸른 눈, 그리고 오똑한 코를 가지고 있는 걸 보아 서양인 같아 보였다.심지어 그들 중 한 명은 전에 천랑성호에서 한
같은 시각에 설씨 가문 주둔지는 모닥불 파티를 연 탓에 매우 떠들썩했다.이 자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은 당연히 설씨 가문의 은인인 주작과 백호였다."이 술을 빌어 은인님들께 정말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청목의 앞잡이들을 물리칠 수 있었어요.""이건 남극 빙원의 특산물인 크릴새우입니다. 한번 드셔보세요.""설웅이 여러분들같은 고수를 만난 건 저희 가문의 복입니다."설씨 가문 사람들도 매우 맛나게 먹었다. 이 음식들은 평소에 감독관들이나 먹는 것들이었다.사람들은 불을 에워싸고 춤을 추며 오랫동안 억눌려왔던 감정을 풀고 한껏 웃었다.설씨 가문 사람들의 열정에 주작과 백호는 적응이 되지 않아 염구준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길을 보냈으나 염구준은 웃으며 술잔을 들었을 뿐, 딱히 다른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그는 지금 속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어떤 일들은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해야한다는 것을 그도 잘 알고있었다. 너무 성급하게 굴었다간 허점이 많아지게 될 테고 그럼 신분이 들키게 될 테니까 말이다.'그쪽에서 놀라서 도망치면 이 모든게 헛수고가 되버리니까 천천히 해야 해.'모두가 기뻐하고 있을 때, 오직 설씨 가문의 장로, 설구만이 염구준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앉아 슬픈 눈빛을 하고서 눈썹을 찌푸리고 있었다."장로님, 나쁜 녀석들이 도망갔는데 왜 안 기뻐하세요?" 그의 이상함을 눈치 챈 설웅이 그의 옆으로 다가가서 물었다."에휴, 다시 돌아올 겁니다.""청목존주를 처리하지 않는 이상 다시 돌아올 거예요. 무엇보다 청목존주는 반보천인의 강자입니다. 누가 이길 수 있겠어요?"설구는 장로답게 다른 사람들보다 안목이 더 좋고 생각이 더 깊었다."가문 전체가 남극 빙원이 아닌 바깥으로 옮기는 건 어떨까요?" 그의 말을 들은 설웅은 공손한 태도로 물었다."바깥으로 갈 수 있었다면 이미 이사를 갔을 겁니다. 하지만 외부에는 강적이 있어요. 만나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죠."상대방의 질문에 설구는 천천히
사람들이 옆에서 관전하고 있기 때문에 주작은 더 빠르게 공격해 몇 분만에 개조 로봇을 부숴버렸다.이런 공격이 몸에 부담이 크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괜찮아?"한편, 설웅은 감정을 더 이상 억제하지 못하고 자신의 가족들에게로 달려갔다."도련님, 저희를 구하러 오신 겁니까?"설씨 가문의 사람들은 설웅을 본 후 감동에 겨워 그를 에워싸고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설웅이 자신들을 도와줄 사람들을 데려온 걸 보니 그들은 최근에 고생한 게 모두 보람차게만 느껴졌다.곧바로 그는 가문의 사람들에게 주작과 백호를 소개해주었고, 설씨 가문의 사람들은 소개를 다 들은 후 진심으로 고마워했다.염구준 등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그저 탐험가라고 하며 이곳에 머물러야 할 것 같다고 한 뒤 설씨 가문의 주둔지에 머물렀다.진실한 신분을 밝히지 않은 이유는 설씨 가문의 사람들 중 혹여나 스톡홀름 증후군 환자가 고자질을 할까봐서였다. 오랫동안 예속되어 왔으니 그런 사람이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한편, 눈밭에서 풀려난 감독관은 다른 광산까지 미친듯이 달려갔다. "너희 우두머리를 만나야겠으니 빨리 소식을 알려!""백어, 뭘 이렇게 급해해? 도망온 사람처럼 말이야."그를 본 이곳의 감독관이 농담하듯 말했다. 두 광산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평소에 서로 왔다갔다하며 잘 알고 지냈다."백씨 가문의 주둔지에 있던 광산이 침략 당해서 보고해야 해. 너희 우두머리는 어디있지?" 백어는 벌벌 떨면서 큰 소리로 물었다.청목 조직은 등급이 삼엄해서 그의 신분으로는 본부와 연락할 수가 없었다."뭐라고?"이 말을 들은 몇몇 감독관들은 입꼬리가 내려가더니 크게 놀라했다.남극 빙원에서 감히 청목 조직과 맞서는 사람은 아주 적었다. 조직의 사람들을 죽이는 건 더더욱 상상치도 못할 일이었다."얼른 따라와!" 이곳의 감독관은 더 이상 질질 끌지 않고 서둘러 길을 안내했다.이렇게 큰 일을 지체해서는 안되었다.그 후 백어는 우두머리에게 보고했고, 우두머리는 본부에 보고했
펑! 펑!전신지상 고수의 공격은 강력했다.주작은 마치 썩어빠진 나무를 자르듯 개조 로봇들을 하나씩 물리쳤다.이 실력이라면 고철덩어리도 자를 것 같았다.상대방의 실력을 보고 담당자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옆에서 대기하고 있는 개조 로봇에게 명령을 내렸다.“꺽다리. 저년을 죽여!”꺽다리는 최고 병기였다.“접수.”개조 로봇은 무뚝뚝하게 대답하고 주작과 주먹다짐을 벌였다.쿵!쌍방의 실력은 비슷해서 한 번 치고 뒤로 물러났다.전신지상의 개조 로봇이었다.개조 로봇은 잠시 부품들을 재정비하더니 다시 공격을 퍼부었다.목표가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기세였다.매서운 공격이 다가올 때마다 주작은 피할 수 없어서 끝까지 맞서는 수밖에 없었다.한동안 쌍방은 치고 박고 해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뭐 하는 거야? 가서 설웅을 죽여.”담당자가 다시 명령을 내렸다.개조 로봇은 맷집이 세고 마모에 강하며 보험도 들어줄 필요가 없어서 좋았지만 딱 한 가지 단점 융통성이 없었다.탁탁!명령이 떨어지자 나머지 개조 로봇들이 설웅을 향해 돌진했다.한 켠에서 주작이 우세를 차지했지만 그를 보호할 여력이 없었다.부릉부릉!위급한 순간, 마침 스노우모빌의 요란한 소리가 울리며 백호가 현장에 나타났다.그는 스노우모빌을 세우기 전에 몸을 날려 개조 로봇을 폐철로 만들었다.또 전신지상의 고수가 나타나자 담당자는 골치가 아팠다.조직에서 전신지상인 로봇을 한 대만 주어서 어떻게 막아내야 할지 속수무책이었다.5분도 안 되어서 개조 로봇들이 모두 부품이 되어 바닥에 흩어졌다.“이봐. 나랑 좀 놀자.”백호가 담당자에게 말을 건넸다.단진 무성의 실력이라면 어느 정도 싸울만했다.“다들 뛰어!”담장자가 말하는 동시에 부하들이 바로 도망쳤다.“컥!”그런데 얼마 뛰지 못하고 가슴에서 통증이 느껴지고 눈앞이 아찔했다.고개를 숙여 보았더니 가슴에 피가 묻은 손바닥이 뚫고 나온 것이다.백호는 손칼 하나로 그를 황천길로 보냈다.휙!그는 손에 묻은 피를 휙휙 털어내고는 다
이번에 가족을 구하지 않으면 여기서 죽어야 할 것이다.“우리 목적지 근처에 도착했어요.”주작이 보고했다.“알았어. 먼저 상황을 살펴보고 있어. 우리도 곧 도착해.”뒤에서 염구준이 지시를 내리고 위치를 파악했다.10 킬로미터도 안 되는 거리를 전속으로 달린다면 금방이면 도착한다.“일단 가서 보자.”주작도 스노우모빌에서 내렸다.두 사람은 눈 위에 엎드려 포복으로 가장 높은 곳으로 기어갔다.그리고 고개를 쏙 내밀어 전방을 살펴봤다.설웅이 말한 주둔지는 사람 사는 곳이 아니라 광산 같았다.그가 집이 맞다고 우기지 않았다면 잘못 왔다고 착각했을 것이다.광활한 광산에서 욕소리가 유난히 똑똑히 들렸다.퍽!“당장 일어나, 아니면 때려죽인다.”“흑흑. 제발 그만하세요. 할아버지가 버티지 못해요.”한 소녀가 노인을 보호하며 애원했다.바닥에 엎드린 노인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방한복이 피에 흠뻑 젖었다.“차라리 잘 됐지. 버티지 못하면 바로 뒷산에 던져.”현장 감독 담당자가 채찍을 흔들며 쏘아붙였다.그들은 사람이 죽어도 신경 쓰지 않았다.“안 돼요. 제발 그러지 마세요.”소녀는 흐느끼면서 애원했다.퍽!“하하하. 꺼져! 일하는 데 방해하지 마.”담당자는 소녀에게 채찍을 휘두르며 미친듯이 웃었다.그래도 소녀는 노인을 꼭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멀리서 그 장면을 보던 설웅이 이를 갈며 눈물을 글썽이더니 벌떡 일어서서 소리질렀다.“때리지 마! 나한테 덤벼!”얻어 맞던 소녀는 바로 설웅의 친여동생이었다.갑작스러운 상황에 주작은 욕을 퍼붓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았다.“우리 들통났어요. 전방에서 몰려오고 있는데 어떡할까요?”주작이 바로 보고했다.“그럼 싸우는 수밖에 없지.”염구준이 지시를 내렸다.“백호 가서 지원해. 나머지는 나한테로 와.”전신지상 고수 두 명이 나서면 충분하니 반천인 고수가 나설 필요가 없었다.염구준은 일찍 정체가 드러나는 게 싫어서 모든 사람에게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설씨 가문 개똥에도 쓸모없는 도련
“…”우두머리는 너무 아파 소리도 못내고 두 손으로 소중이를 감쌌다. 어엿한 무성지상 고수가 이렇게 망가지다니 정말 안타깝지 그지없었다.그것도 여자에게 홀려서 소중이까지 망가져버렸다.“저년을 쳐라!”나머지 부하들은 그제야 반응하고 우르르 쓸어왔다.방심한 탓에 이런 꼴을 당한 것이다.“하. 다 쓸어와도 소용없어.”주작은 가볍게 웃음을 치며 전력으로 맞섰다.“젠장, 저년 실력을 감추고 있었어. 적어도 전신 경지야. 얼른 튀어!”누가 소리를 지르자 일행들은 바로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다.하지만 이미 늦었다.주작은 그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전에 전부 쓰러트렸다.염구준이 한 놈이라도 살려두라고 하지 않았더라면 전부 죽였을 것이다.“말해. 누가 너희들을 보냈어? 본거지는 어디야?”주작은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않고 은밀하게 말을 돌렸다.첫 번째 질문은 가짜이고 두 번째가 진짜 목적이었다.“청…”펑펑!잔뜩 겁을 먹은 부하가 말하려고 할 때 머리에 총을 맞고 즉사했다.총소리가 연달아 울리더니 미행하던 일행이 전부 죽었다.주작은 경계심을 놓치지 않고 설웅 곁으로 다가가 전신 영역으로 총알을 받아냈다.이 정도 공격으로 그녀의 방어를 뚫을 수 없었다.“저격수가 1킬로미터 밖에 있습니다.”설웅을 보호해야 해서 그녀는 움직일 수 없었다.“도착했어.”마침 염구준이 저격수 뒤에 나타났다.첫 총성을 들었을 때 상대방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곳에 간 것이다.“언제 왔어?”저격수는 뒤에서 말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랐다.퍽!염구준은 기운으로 저격수를 밀쳐내고 평가를 내렸다.“방금 도착했지. 사격은 봐줄만했는데 자아 보호 실력은 엉망이네.”“아악!”저격수는 중상을 입고 피를 토하더니 비틀거리면서 비수를 꺼냈다.“넌 뭐야?”염구준이 사악하게 웃으면서 천천히 다가갔다.“협조하지 않으면 바로 네 목숨을 앗아갈 사람이지.”“꿈 깨!”저격수는 비수를 들고 죽을 각오로 공격했다.“죽고 싶어서 환장했네.”염구준은 허공에 주먹을 날려 그 자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