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새벽에 경상 가문을 방문했을 때도 반보천인급으로 보이는 초고수와 마주쳤었다. 게다가 최근 보게 된 경상 남매 실력도 범상치 않았었다. 그런데 경상철석이면 분명 반보천일 것이다. 만약 정면으로 맞붙게 된다면, 백 프로 승리할 거란 보장이 없었다. “걱정할 거 없어.”염구준이 전투 의지를 불태우며 말했다. “경상 가문은 상대하는 건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쉬워.”그 말에 천용전존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이내 뭔가 깨달았는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과거 고려국에서 반보천인 다섯명이 연합했는데도, 염구준은 승리했다. 경상 가문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그 이상의 전력이 있지 않은 이상, 그의 상대가 될 리 만무!그렇게 약 20분쯤 달렸을까, 끼이익!염구준과 천용전존이 탄 벤츠가 석수 해안선에 멈춰 섰다. “누구냐! 멈춰라!”해안 목교 끝자락, 경상 가문 별장 입구, 경비원 두 명이 달려와 엄격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여기는 사유지다. 외부인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하지만 염구준은 그들을 무시하고 천용전존과 함께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멈추라고 했다!”그러자 두 경비원이 얼굴이 딱딱하게 굳히며 허리총에 있는 총을 꺼내 두 사람을 향해 겨누었다.“지금 당장 떠나라. 그렇지 않으면 발포하겠다!”천용전전이 눈을 싸늘하게 굳히며 당장이라도 공격할 태세를 취했다.그러나 이때, 뜻밖의 존재가 나타났다.“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제가 좀 일찍 마중 나올 걸 그랬습니다.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십시오.”노련한 목소리가 별장 일층 쪽에서 서서히 울려 퍼졌다.“물러나거라. 귀한 손님들이다!”그제야 두 경비는 권총을 집어넣고 별장 입구로 돌아갔다.그리고 활짝 열리는 대문!염구준은 큰 걸음으로 청용전존과 함께 일층 거실로 들어섰다. 들어서자, 코를 찌르는 향.경상철석은 청동 향로 뒤에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었다. 그리고 경상지원과 경상양리 또한 그의 양 옆으로 무릎 꿇은 채 있었다. 궁본웅은 허리에 긴 칼날
지난번 김씨 가문과의 마지막 전투 후로 흑풍존주는 자취를 감췄었다. 그런데 여기서 그 소식을 듣게 될 줄이야, 그것도 모자라 송본 가문과 협력하고 있었다니!“그렇다면, 직접 확인해보도록 할게요.”잠시 뒤, 침묵하던 염구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천용전존과 함께 거실을 떠났다. 송본 가문이 진짜 흑풍조직과 연관되어 있다면, 더 이상 봐줄 이유가 없었다!송본 가문, 온천 누각.온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끝자락, 목재로 된 누각 앞 처마, 송본홍봉과 송본경목이 서로 마주앉은 채 뭇을 들고 있었다. 그들 눈엔 살기가 가득했다.“할아버지.”송본경목이 온천이 흐르는 방향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정말 결정하신 겁니까?”송본홍봉이 붓을 내려놓으며 경상 가문이 있는 방향을 향해 음산한 눈빛을 보냈다.“경상과 우린 오랜 대립관계이다. 하지만 서로의 전력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서로 부딪히는 것을 피해왔다. 그런데 그 염구준이라는 작자가 우리를 적대시하니, 우린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선수치지 않으면, 우리가 당할 수도 있다! 이젠 선택지가 없어!”사람을 압도하는 기운이 송본홍봉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만약 염구준과 경상 가문이 손을 잡게 된다면, 송본 가문은 큰 재앙을 맞이하게 될 터!“결론이 나섰으면, 놈들이 눈치채기 전에 당장 움직이는 것이 어떻습니까?”송본경목이 살기가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나지막이 말했다.“저희….”하지만 말을 마치기도 전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송본홍봉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그리고 단호히 멈추라는 듯, 손을 들어올려 보였다. 어느새 그의 시선은 온천너머, 저 멀리 향하고 있었다.“미리 알았다면 마중 나갔을 터인데, 염 선생이 이 누추한 곳엔 어쩐 일이십니까?”그의 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송본홍봉과 송본경목 앞으로 두 인영이 나타났다.바로 염구준과 천용전존이었다!“확인할 것이 있어 왔습니다.”염구준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옆에 있던 송본경목을 무시한 채, 송본홍봉과 마주보았다.“흑풍존주는 어디 출신이며,
송본홍봉의 눈이 빛났다. 그의 몸 주변으로 강한 바람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불이 담긴 염구준의 주벅과 송본홍봉의 소용돌이가 충돌했다. 어느 쪽도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잠시는 어느 쪽이 우위인지 분간이 안 가는 듯했다. 하지만 이때, 염구준의 입가에 차가운 조소가 맺혔다. 그가 가볍게 발을 구르는 순간, 온 몸에서 불길이 솟구쳤다. 염구준은 불 그 자체가 된 듯, 활활 타오르며 순식간에 바람을 집어 삼켰다. 바람은 그렇게 서서히 위력을 잃어가고 있던 순간이었다. 염구준의 주먹이 송본홍봉의 소용돌이 중앙에 내리 꽂혔다. “천생도체, 백맥통달? 이런 체질이 진짜 존재했단 말인가?”송본홍봉의 눈에 빛이 번뜩였다. 정말 부러운 재능, 부러운 체질이었다. 그는 소용돌이가 완전히 부숴지기 직전, 공중에 손가락으로 문 그림을 그리고 순식간에 그 안으로 사라졌다.순간이동 술법!송본홍봉의 모습이 서서히 문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같은 순간, 염구준 뒤쪽으로 약 일 미터 떨어진 곳에, 거센 기운의 파도가 일었다. 없어졌던 송본홍봉이 나타난 것이다. 그는 순식간에 염구준 뒷목을 향해 손을 뻗으며 냉소를 지었다.“네가 졌어!”아무리 염구준이라도, 이 상황에서 반격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송본홍봉의 손가락이 염구준 목에 닿기 직전, 갑자기 염구준이 몸을 돌리는 것이 보였다. “아니, 진 건 너다!”염구준이 송본홍봉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며 말했다.“왼쪽 갈비뼈, 안 느껴져? 만약 대련이 아니었다면, 죽지 않더라도 중상이었어!”송본홍봉이 놀란 표정으로 자신의 왼쪽 허리를 내려다보았다. 무도복 위로 주먹만 한 불꽃이 서서히 수그러드는 것이 보였다. 그의 옷은 마치 뜨거운 불에 닿은 듯, 까맣게 녹아 있었다. “주먹이 꽤 매섭군!”송본홍봉이 무도복에 남은 불꽃을 털며 다시 목탁 옆에 앉은 채 말했다.“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 인정하지. 하지만 그런 생각해 본 적 없나? 내가 아무런 대비도 없이 위험을 감수했을까? 나와 용하국 은둔 가문 사이를 알
온천 물에서 그들이 튀어나온 순간, 염구준은 이미 신념으로 그들을 감지한 상태였다. 그들의 공격은 소리소문 없었지만, 그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염구준은 그들은 신념으로 그들의 위치를 이미 파악한 상태였기 때문에, 눈으로 쫓을 필요도 없었다. 염구준은 그동안 쌓아온 전투 경험을 바탕으로 망설임없이 주먹을 날렸다.용하국의 고무학, 진공장!여섯개의 주먹, 공기를 가르는 폭음! 하지만 그들은 마치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유유히 그의 주먹들을 흘려 보내며 충격을 피했다. 염구준의 공격 대부분이 허공을 가르고 사라졌다. 그들은 흘려버릴 때의 반동을 이용해 방향을 바꾸며 또 다시 허공에서 사라졌다. 그들은 마치 공기와 하나가 된 듯, 진정한 은신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염구준은 이제 신념을 이용해서도 그들의 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주군, 죄송합니다.”염구준 뒤에 있던 청용전이 죄책감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전, 염구준이 그를 보호하는데 신경을 쓰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둘을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놓치게 되었으니, 큰 손실이었다. 청용전존은 지금 염구준의 짐이 되었다. 그들이 또다시 청용전존을 향해 공격을 날린다면, 염구준도 위험에 빠질 수도 있었다. “괜찮아. 네 잘못 아니야.”염구준이 청용전존을 향해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지금부터 전력을 다할 테니, 너도 조심해!”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를 눈치챈 청용전존이 놀란 표정으로 말을 꺼내려던 순간이었다. 우웅! 염구준 손에서 진동이 일어나더니, 붉은 장벽이 조용히 떠올랐다. 그것은 불꽃이 되어 청용전존을 완전히 둘러싸 방어막을 형성해 주었다.“주군…청용전존이 감동에 눈물을 글썽이며 염구준을 불렀다. 염구준은 그를 위해 아낌없이 천인지력을 사용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두 암살자 제외하고도 송본홍봉 그리고 송본경복까지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네 명을 상대하면서 동시에 청용전존까지 보호해야 되니, 어려운 전투가 될 게 분명했다!“이런 상황에서도 천
“정신 충격….”멀리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송본홍봉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믿기지 않았다. 이 젊은 나이에 벌써 이토록 높은 무학을 구현해 내다니, 충격적일 정도로 놀라운 재능이었다.“송본홍봉!”염구준 손에 잡혀 있던 두 암살자가 그를 향해 외쳤다.“지금 당장 움직여. 우리가 죽으면, 너도 내 가문의 화를 받게 될 거다!”송본홍봉은 더 이상 숨지 않고 즉시 전력을 다해 염구준에게 공격을 날렸다.순간이동 술법!그의 몸에서 기운이 미친 듯이 소용돌이치며 두 암살자를 향해 빠르게 뻗어져 나갔다. 두 암살자는 그 기운에 감싸져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다시 나타났을 땐 이미 염구준으로부터 20미터 정도 떨어진, 정신 충격의 범위를 벗어난 상태였다.“송본, 우리와 함께 싸워라!”두 암살자가 간신히 두통을 억누른채 송본홍봉을 향해 외쳤다.“더 이상 구경만 하지 말고, 전력을 다해 염구준을 죽이란 말이다!”“하지만….”송본홍봉은 망설여졌지만, 그의 말 대로 지금은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하지만 속에는 아직 두려움이 남아 있었다. 이미 한번 염구준과 싸워본 경험으로 그의 강함이 어느 정도인지 눈치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면으로 붙은 것도 아니고, 몸을 숨기면서 싸운 두 암살자조차도 염구준에게 일말의 부상도 입히지 못했다.하지만 여기서 저들의 말을 거부하는 건 후환이 두려웠다.“뭘 망설여!”두 암살자가 다시 한번 송본홍봉을 향해 날카롭게 외쳤다.“너도 옥패의 무학을 배웠잖아! 우리의 약속을 잊지 마라!”“시간 낭비하지 말고, 빨리 필살기 사용해!”필살기… 송본홍봉은 결단을 내렸다. 그는 입안 볼 살을 깨물어 상처를 만들었다. 곧이어 입안에 피가 가득 고이자, 송본홍봉은 망설임없이 그것을 뱉어내 손에 들고 있던 붓을 적셨다. 그리고 빠르게 노란색 종이를 채워져 가는 그림, 피로 만들어진 종이 인형이 완성되었다.피의 그림자!이건 신무 옥패에서 유래된 기묘한 술법으로, 종이 인형은 만들어진 순간부터 전신 중기 강자와 맞먹는 실력을 가지게
궁본웅이 허리에 찬 칼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대며 경상철석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저희에게 이득이 되는 일인데, 그냥 지켜보는 건 군자로서 할 도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지원, 양리!”그러자 어디선가 경상지원과 경상양리가 나타나 경상철석 앞에 동시에 몸을 숙였다.“아버지!”“경상 가문, 저희의 오랜 숙적! 염 선생님이 그들과 생사를 다투는 싸움을 하고 있는데, 저희가 안 도우면 누가 돕겠습니까!”경상철석이 서북쪽 저 멀리를 바라보며 전투의지를 불태웠다.“모든 일원에게 전투 준비를 하라고 전해라. 오늘 우리는 반드시 송본 가문 뿌리를 뽑는다!”그의 명령에 경상지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휴대폰을 꺼내 명령을 전달했다. 잠시 뒤, 통화를 마친 경상지원을 보고 경상철석이 눈을 번뜩이며 명령했다.“차 준비해. 가장 빠른 속도로 온천 누각으로 가 염 선생을 도와 송본홍봉을 처치한다!”몇 분 지나지 않아, 모든 사람들이 준비를 마쳤고 빠르게 송본 가문으로 향했다.한쳔, 송본 가문, 온천 누각.“강해도, 너무 강해….”송본홍봉은 몇 번이나 공격했지만, 모두 염구준에게 먹혀 들지 않았다.그는 궁본웅과도 싸워보고, 몇몇 반보천인들과도 전투를 치러봤으나, 이정도로 두려움을 느껴본 건 처음이었다.송본홍봉을 제외하고도 암영시를 익힌 두 암살자도 함께 공격을 넣었으나, 염구준은 밀리지 않고 각종 용하국 고무학을 구현해 모두 막았다. 심지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은신술조차 처음만큼 통하지 않았다. 얼마나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 이제는 종종 티를 내지 않아도 위치가 발각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래도 사대일, 승부는 팽팽했다. “염 선생!”이때, 어디서 낯설지 않는 목소리가 들려왔다.경상철석이였다!경상철석을 선두로, 궁본웅, 경상 남매가 줄줄이 나타났다. 그들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송본홍봉과 송본경목, 그리고 기세등등하게 허공을 향해 공격을 날리는 염구준을 바라보며 의문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지금… 누구와 싸우고 계신 겁니까?”그들
비록 구자검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천인의 힘을 담는다면 다른 검이라도 비슷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이런!”염구준이 검을 잡는 모습을 보자, 송본홍봉과 두 암살자는 큰 공포에 휩싸였다. 하지만 도망치기엔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검이 진동하며 폭음이 울려퍼졌다. 동시에 사방으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염구준은 그 검을 들고 공중으로 뛰어오르더니, 힘껏 아래로 내리쳤다!용하국의 고무학, 피공참!천인의 힘이 가득 담긴 일격이었다. 염구준은 송본홍봉을 비롯해 은신하고 있는 두 암살자들의 위치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웅장한 불꽃을 담은 검이 하늘을 가르며 닿는 곳마다 초토화시키며 붉게 물들었다. 동시에 네 명의 허리에 생긴 깊은 잔상, 염구준은 단 일격에 이 넷을 모두 베었다.어떤 반항도, 술법도 통하지 않는, 강한 신념이 그들을 얽매었다. 갈라진 그들의 허리는 새까맣게 탔고, 동시에 생명의 불꽃도 영원히 꺼졌다.“훌륭한 검술이군!”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본 경상철석이 참지 못하고 감탄했다. 그러다 문득 뭔가 생각났는지, 얼굴색이 급속도로 변했다.“큰일이군!”정말 큰일이었다. 이제 송본홍봉이 죽었으니, 더 이상 신무 옥패 행방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어졌다. 만약 이걸 빌미로 염구준이 그들을 핍박하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었다!“아깝게 됐군.”염구준이 치켜들고 있던 칼을 거두며 땅에 착지했다. 궁본웅의 칼은 그의 힘에 못 이겨 이미 엉망으로 망가진 상태였다. 염구준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궁본웅에게 말했다.“미안합니다. 제가 너무 힘을 주는 바람에 칼이 망가졌습니다.”궁본웅은 그 모습을 보고 식은 땀을 흘렸다.그의 검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는 금속 제련 기술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단 일격만에 이렇게 망가지다니, 궁본웅은 다시 한번 염구준의 실력에 충격받았다.그도 반보천인이긴 했지만, 염구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송본홍봉이 죽은 이상 신무 옥패 모조품에 대한 단서도 물 건너 갔네.”잠시 생각하던 염구준이
얼마 전, 진무석이 손씨 그룹 해외지사 빌딩 앞에서 아들 진서호를 거의 죽일듯이 팼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 뒤로 염구준과 손가을을 만난 것 같은데, 문제는 이후였다. 둘은 마치 증발하듯, 사라졌다.도대체 이 둘은 어디로 갔을까?잠시 고민하던 안홍기가 입을 열었다.“납치사건 이후로 진무석은 곧바로 아들을 데리고 사과하러 갔었죠. 그 뒤러 봉황국을 떠났으니, 연관된 사건이 한둘이 아닌 것 같습니다.”“그러고 보니까, 손씨 그룹, 수상한 점이 한 두개가 아닙니다.”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사건의 중점이 정확히 파악되지 않아, 이들도 내릴 수 있는 결론이 없었다. “며칠만 더 기다려 봅시다. 앨리스 쪽에서도 뭔가 반응이 있을 겁니다.”같은 시각, 엘 가문, 봉황국 고성 별장.앨리스의 손엔 와인잔이 쥐어져 있었다. 빙글빙글 와인잔을 돌리며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는 점점 표정이 안 좋아졌다.진씨 가문이 염구준에게 거슬리는 존재가 된 이상, 무사하지 못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너무 급작스러웠다. 앨리스는 진씨 가문이 무너지는 틈을 타, 뒤통수 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진무석이 모든 자산을 팔고 봉황국에서 자취를 감춘 바람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진씨 가문이 무너진 것은 그녀에게 기쁨이었으나, 예상과 달리 실질적인 이득은 얻지 못한 것이다.“아가씨, 진씨 부자가 떠날 때 제가 멀찍이 공항에서 지켜봤는데, 좀 이상했습니다.”경호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몸을 숙이며 낮은 목소리로 앨리스에게 보고했다.“무슨 이유인지, 패잔병처럼 침울해 있어야 할 진무석이,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장군처럼 비장해 보였습니다.”“그래?”앨리스가 흥미가 돋았는지 다시 되물었다.“잘못 본 건 아니겠지?”“절대로 아닙니다!”경호원이 몸을 숙이며 확신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멀리 떨어져 있었는데도 진무석이 흥분한 모습이 아주 잘 보였습니다. 절대 연기가 아니었습니다!” 앨리스는 생각에 잠겼다
염구준이 수압의 영향을 받지 않고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베르는 당황했다.이제 손에 무기도 없어서 어떻게 막아야 할지 막막했다.“멈춰!”“당장 공격을 멈춰!”“부성주님, 조심하세요!”그 장면을 보던 반보천인 세 명은 막을 겨를도 없이 소리를 질렀다.바로 그때,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염구준은 공격을 멈추고 지하를 내려다보았다.푸!두 사람 사이에 있는 두터운 진흙 속에서 갑자기 무엇인가 모래를 사방에 뿌리면서 올라오는 것이었다.염구준이 재빨리 진흙의 가운데를 잘라버리자 생물체가 죽었는지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마침 검기도 기운을 소진하여 공격을 멈추고 돌아서서 살펴보았다.“젠장, 그냥 지하에 처박혀 있을 것이지, 뭐 하러 죽으러 나왔어?”염구준이 불청객에게 짜증을 부렸다.만약 생물체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이 검에 죽을 사람은 베르였다.진흙과 모래가 가라앉자 다들 생물의 정체를 주시했다.굵기가 2미터나 되고 꼭대기에 날카로운 이빨이 수두룩하게 생긴 심해의 모래벌레였다.이 벌레는 성체가 되면 길이가 30미터에 달하고 풍부한 광물을 함유한 화산암을 먹고 살기에 이 구역에서 텃세가 특히 강했다.그리고 공격성은 형태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방어해! 이것들이 떼로 공격할 거야!”염구준은 통신기에 주의를 주고 잠시 베르를 살해하는 것을 뒤로 미루기로 했다.위험한 상황에 닥쳤으니 자기들끼리 싸운다면 사기를 떨어트리기 때문이었다.푸푸!말이 채 끝나기 전에 수많은 모래벌레들이 땅속에서 나와 무차별한 공격을 퍼부었다.일반 무술인이 한 입에 먹힌다면 바로 두 동강이 났다.반보천인 무술인들은 잠수 장비가 망가지면 심해의 수압을 견뎌야 하기에 역시 방심할 수 없었다.그러니 아무도 죽음을 무릅쓰고 공격하지 않았다.심해 모래벌레들이 신출귀몰하며 공격하자, 다들 혼란에 빠져 허둥지둥했다.그들에 비해 염구준은 다가오는 놈들을 가볍게 잘라냈다.이 벌레들은 사납지 않은데 갑자기 땅속에서 튀어나올 때 당황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염구준은 감지
싸움은 잠시 한 단락 끝났다.베르가 씩씩거리며 통신기에 대고 고막이 터질 듯 소리를 질렀다. “염구준, 왜 우릴 도와주지 않아?!”“당신들도 날 도와주지 않았잖아요.”염구준은 어처구니없는 가스라이팅을 무시하고 반문했다.베르는 이런 말로서 염구준을 각 세력의 반대편에 세워 고립시키려는 수작이었다.이제 막 대군을 지휘할 수 있는 임시 사령관을 담당하게 되었으니 위세를 떨칠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웃기지 마. 우리는 반보천인 무술인이라 다른 무술인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어. 그런데 넌 한심하게 지켜만 보고 있었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아?”베르는 정의로운 척 그의 영혼까지 고문하며 계속 나무랐다.눈치가 없는 무술인들은 정말 베르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하하하. 방금 수십 명이 넘게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렀는데도 당신은 구하러 가지 않고 도망가느라 바쁘던데요? 그 말을 하고도 양심에 찔리지 않습니까?”염구준은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이기적인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지,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또 염구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이렇게 분석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리기 십상이었다.“흥, 따박따박 말대꾸는. 누가 너 같은 놈을 낳았는지 그 어미가 궁금하다.”베르는 솔선수범하지 않으면서 말로도 밀리게 되자 인신공격을 하기 시작했다.“죽고 싶어?”그러자 염구준이 버럭 화를 내며 베르에게 검을 겨주었다.상대방이 시비를 건다면 원하는 대로 한바탕 싸워줄 기세였다.“내가 무서워할 줄 알아?”베르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커다란 방패를 들고 맞섰다.이번 행차에 스텔라성에서 실력이 있는 반보천인 네 명을 파견했기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다.쿵!염구준의 검이 방패에 닿은 순간 둔탁한 소리가 나며 베르가 뒤로 몇 발치 물러갔다.“물에서 방패를 쓰다니, 죽으려고 작정했군.”물속에서 방패의 부력이 커서 오히려 싸움에 방해가 되었다.그는 계속 검으로 공격하며 가볍게 제압했고, 뒤로
그 생물의 정체는 대왕 오징어였다.이 생물은 빛을 두려워해서 항상 심연에 숨어 있기에 과학자들은 파도에 밀려온 시체들만 주워서 연구했었다.대왕 오징어는 가장 긴 것은 40미터 이상에 달했다.염구준은 지금 상황을 보고 속으로 탄성이 흘러나왔다.“젠장, 오징어 소굴을 건드렸나?”심지어 그중에서 덩치가 큰 오징어는 전신 경지에 도달했다.마침 수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와서 다행이지, 염구준이 혼자 싸운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염 선생님, 이제 어떡해요?”통신기에서 초조한 노신기의 목소리가 들렸다.그 말 뜻은 그가 나서서 천기문의 부하들을 지켜달라는 의미였다.솔직히 그들 실력으로 이렇게 많은 대왕 오징어를 상대하기 버거웠다.“살아남아서 바다 밑 끝까지 오세요.”염구준은 한마디만 남기고 검을 휘두르며 계속 아래로 내려갔다.지금은 사방이 어두워서 대체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는 것조차 어려웠고, 모두 자원해서 온 거라 그들을 책임질 의무가 없었다.“다들 최선을 다해 바다 밑으로 내려가자!”노신기는 목숨을 걸 각오로 모두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다.순식간에 각 세력은 대왕 오징어와 무차별적인 싸움을 벌였다.하지만 캄캄한 물속은 대왕 오징어들에게 유리한 곳이라 인간들은 1대1 싸움에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참담한 희생을 치러야 했다.위기가 닥치자 베르가 긴급 공공 통신 채널을 열고 이런 제안을 했다.“이러다 다 죽습니다. 우리 모두 협력하여 살길을 열어야 합니다. 바다 밑에 도착하면 지금처럼 힘들지 않을 겁니다.”솔직히 베르도 염구준처럼 대놓고 아래로 내려가고 싶었지만 그런 실력이 되지 못했다.“찬성합니다.”“협공합시다!”각자 싸우다가 자칫하면 전멸할 수 있으니 다른 세력들도 이 제안에 동의했다.“반보천인이 앞장서고 전신 경지, 전신지상 무술인이 그 다음, 나머지는 뒤를 따라갑니다!”베르는 정예병을 살리고 나머지는 죽든 살든 상관하지 않을 생각으로 배치하기 시작했다.“공격합시다!”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다른 사람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모두가 슬픔과 공포에 빠져 있을 때 염구준이 두터운 잠수복을 입고 바닷속으로 들어갔다.간밤에 가볍게 생물을 절단하면서 그의 단전은 이미 기운으로 꽉 찼다.“염 선생이 바다에 들어갔어요.”모든 사람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으니 작은 동작이라도 이내 알아챘다.그가 갑작스럽게 뛰어드는 바람에 노신기 일행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대체 왜 저러는 거야?”“내가 앞장 설게요. 촉각이 있는 생물일 뿐, 두렵지 않습니다.”일부 반보천인은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서둘러 잠수복을 입고 바다에 뛰어들었다.염구준의 손에 완벽한 해도가 있으니 그가 정보를 어느 정도 장악하고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그래서 먼저 보물을 찾아낼까 봐 조바심이 났던 것이다.어떤 사람들은 말로는 보물을 찾으러 왔다고 하지만 솔직히 고대 옥패를 노리고 왔다.일단 옥패에 있는 무공을 연마하면 자신의 실력을 제고할 수 있으니 나중에 재물을 손에 넣어도 늦지 않거니와 그때는 더 쉬울 거라 생각했다.염구준은 바다 밑에 있는 균열을 향해 가다가 가끔씩 방향을 조절했다.아직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가장 힘이 덜 드는 방법을 사용했다.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물고기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점점 어두워져 앞이 보이지 않았다.염구준은 길이가 석 자가 되는 청봉을 잡고는 언제든 적을 무찌를 준비를 했다.방금 잘린 촉각의 길이를 볼 때, 본체에 비해 너무 짧아서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만약 덩치가 어마어마한 팔조괴물이라면 아직도 어두운 곳에 숨어 있는 게 틀림없다.촤아아! 촤아아!그때 물살이 바뀌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더니 수백 개의 검은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각 세력의 정예병이 움직인 것이다.어떤 무술인은 일정한 거리에 도착한 후 빠르지도 늦지도 않는 속도로 염구준의 뒤를 따랐다.그가 앞장서서 길을 터달라는 뜻이었다.염구준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아래 균열이 빨아들이는 대로 끌려갔다.‘얼마든지 따라와 봐.’지금 상황으로 말하자면 누가 누구의 총받이가 될지
선박 위의 사람들이 절박하게 울부짖었지만 아무도 응답하지 않자 각 세력들이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분위기를 보아 곧 위험이 닥칠 것 같았다.촤아아악!“엄청난 것이 몰려오고 있어! 빨리 위로 올라가!”나중에 물에 들어간 무술인들이 제일 먼저 해수면으로 올라와 보고했다.이어서 대다수 무술인들은 통신기에 비명소리만 남기고 사라졌다.각 세력이 어쩔 바를 몰라 혼란에 빠졌을 때, 노신기는 염구준의 옆얼굴을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그의 말이 옳았다.“다들 맞서서 싸웁시다!”염구준은 어마어마한 기운이 몰려오는 것을 감지하고 우렁차게 소리쳤다.그게 무엇이든 이미 상대방을 건드린 이상 맞서서 싸워야 했다.정신을 차린 각 세력들은 갑자기 조상들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떠올라,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무기를 집어 들었다.촤아아!다시 몇몇 사람이 수면위로 올라오더니 놀라운 속도로 선박을 행해 헤엄쳤다.“저게 다 뭐야?”누군가 겁에 질려 비명소리를 질렀다.“나도 몰… 악!”같이 헤엄치던 일행이 말하다 바다 밑에 있는 물건에 잡혀 끌려가고 말았다.그리고 밧줄처럼 생긴 것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 선박에 있는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악!”“살려줘!”순식간에 비명소리와 경악 소리가 섞여서 현장이 아수라장이 되었다.정체를 알 수 없는 생물체에 다들 지레 겁을 먹었다.윙!그때 누군가 열 줄기 검기를 발사해 밧줄처럼 생긴 생물을 잘라버렸다.“저건 또 뭐야? 엄청 단단하네.”제일 처음으로 공격한 사람은 역시 염구준이었다.“끼익!”바다 밑에서 공격을 당한 생물은 날카로운 이명소리를 내며 위로 올라왔다.생각보다 쉽게 잘리자 각 세력들은 용기를 내서 공격을 퍼부었다.“별거 아니네. 단번에 잘려지잖아.”자신감이 생긴 그들은 필사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본래 각 세력의 실력으로 쉽게 생물을 잘라낼 수 있는데, 이 생물이 모두가 혼란에 빠진 틈을 이용해 습격할까 봐 진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물론 염구준도 모든 사람을 책임질 의무가 없으니 주변에
“가서 건져 와. 살아있으면 좋고, 죽었으면 하는 수 없지.”그 한마디를 남기고 메노스는 계속 시끄럽게 구는 꽃무늬 셔츠남을 뒤로한 채 조용히 선실 안으로 들어갔다.메노스가 이 후계자를 아끼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자기 목숨까지 걸 정도는 아니었다.한편, 잠수함을 타고 온 대어당, 안설홍, 레온 가문의 세 세력은 자연스레 한데 모여 서로를 의지하며 다른 세력에 대항할 방비를 했다.그에 비해 염구준의 일행은, 아까 그의 압도적인 전투력을 목격한 덕분에 분위기가 다시 끓어올랐다.“염 선생님은 진짜 강하시네요! 한두 번 만에 반보천인 한 명을 처리하시다니!”“염 선생님만 계시면 스텔라성도 별 것 아니에요!”“전 마음 정했어요. 이번 일만 끝나면 무조건 염 선생님을 제 스승님으로 삼을 거예요.”세 척의 어선 위의 사람들은 불과 며칠 만에 염구준의 팬이 되어버렸다.하지만 정작 염구준 본인은 사람들의 찬사 따위에 눈도 깜빡하지 않고, 아타와 노신기를 향해 입을 열었다.“계획대로 시작하죠.”“네!”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수색 인원들을 바다에 투입했다.다른 세력들도 질세라 각자 인원을 내보냈지만, 서로 자기 일을 하느라 별로 큰 충돌은 없었다.이 바다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피를 흘릴 이유는 없기 때문이었다.염구준은 주변을 둘러보고 모든 세력이 각자 행동 중인 걸 확인하곤, 조용히 자리에 앉아 기운 회복에 집중했다.방금 전의 싸움에서 그는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속전속결로 싸움을 끝내기 위해 일부러 몸에 무리를 주는 권법을 강제로 사용했었다.하지만 실제로는, 그 한 방의 주먹과 한 번의 검격으로 무려 30%의 기운이 빠져나간 상태였다.완전히 회복하려면, 최소 열 시간이 필요했다.그의 모든 행동은 타 세력들에게 낱낱이 관찰되고 있었지만, 감히 함부로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그리고 날은 조용히 어두워졌다.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엔 무수한 별빛이 바다에 반사되어, 마치 두 개의 은하수가 펼쳐진 듯한
“하하하! 겉멋만 든 자식이, 결국은 허세였구나!”로브는 이 약한 일격에 박장대소하며 자신감이 들었다.‘어쩌면 정말로 다른 사람들이 말한 것처럼 아직 몸을 채 회복하지 못한 것일 수 있겠어.’그 모습을 지켜보던 베르 일행은 눈에 띄지 않게 기운을 운용하며 적당한 타이밍에 염구준을 제거할 기회를 노렸다.하지만 뭔가 이상했다.사람들은 곧 염구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다. 기운의 강도로 보아 그들을 속이는 것 같지 않아 보였다. 특히, 왼주먹에 모인 에너지는 숨이 멎을 만큼 강렬했다.“이런 허세에 난 안 속아!”로브는 상대방이 그저 겁을 주려는 연기일 뿐이라고 생각하고는 기세등등하게 구자검을 뿌리치고, 단검을 휘두르며 염구준을 향해 돌진했다. 그는 원래 지는 척하려고 했었지만 지금 상황으로 보아선 그럴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칠상권종극오의, 칠권합일!”이에 염구준은 입꼬리를 올리며 두 자루의 단검을 향해 왼팔을 휘둘렀다.쾅!주먹이 단검에 닿는 순간, 두 자루의 단검은 그대로 부서져 바닥에 나뒹굴었다.이 공포스러운 주먹을 그가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안 돼!”로브는 이번 주먹이 진짜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공포에 사로잡혀 피하려 했지만, 이미 공격 태세로 몸이 나간 상태라 도망칠 수가 없었다.쾅!염구준의 일격은 그대로 로브의 가슴을 강타했고, 로브는 힘없이 밀려났다.그러나 염구준은 멈추지 않고 곧바로 검으로 로브의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복부까지 갈라 길고도 흉측한 상처를 남겼다.풍덩!로브는 이 어마어마한 충격에 바다로 떨어졌고,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그러나 염구준은 그를 돌아볼 생각이 없었다.애초에, 이건 남들에게 자신이 초입 반보천인을 상대할 여유가 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이 싸움은 승부가 명확했지만, 너무 빨리 끝난 탓에, 진짜 실력을 가늠하기 어려웠다.게다가 로브는 제대로 싸운 것도 아니고, 허점투성이였기에 평가 기준도 되지 못했다.관중들은 모두 멍한 표정이었지만,
불쌍하게도 그는 꿍꿍이가 많은 여우같은 사람들에게 이용당했다.그러나 금발에 금색 수염, 푸른 눈동자를 가지고 구부정한 몸매에 하얀 로브를 입은 메노스는 순진한 그와는 달리, 더욱 노련했다.“이번 일은 중요하고 사방에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 함부로 나서지 않는 게 좋아.”겨우 이정도 이간질로는 그를 속일 수 없었지만, 그에게는 민폐 팀원이 있었다.꽃무늬 셔츠남은 거대한 아기처럼 징징대며, 눈물까지 찔끔 흘렸다.“메노스 할아버지, 전 할아버지가 키워주신 아이잖아요! 설마 저한테 무관심 해지신 거예요?”“그만. 복수해줄게, 그러니 그만해.”메노스는 꽃무늬 셔츠남이 우는 걸 보자, 마음이 사르르 녹아서 옆사람을 향해 물었다.“로브, 저 녀석의 실력이 어떻지?”“강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직접 싸우는 건 본 적 없습니다. 저쪽 진영엔 반보천인이 둘이 있는데, 제 실력과 맞먹습니다.”로브는 아는 걸 전부 털어놓았지만, 계속 불안한 예감이 들어서 표정이 좋지 않았다.역시나 메노스는 그의 예감처럼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내렸다.“그래, 네가 가서 한번 떠봐. 내가 뒤에서 봐줄테니.”“네.”로브는 원망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이를 악물고 대답한 뒤, 요트에 올라타 염구준이 있는 어선을 향해 달려갔다.메노스는 정말 그의 목숨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고 명령을 내린 거였다. 두 배 사이의 거리가 짧은 것도 아니라 위험한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바로 도와줄 수도 없었다.슉!로브는 어선에 뛰어올라 기세 넘치게 소리쳤다. “염구준, 한 번 붙어보길 원한다!”다소 똑똑한 선택이었다.혹시라도 집단구타를 당할까 걱정이 돼서 먼저 큰소리부터 친 것이다.하지만 염구준을 향해 시비를 거는 로브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레이가 나서서 입을 열었다.“너 따위가 감히?”부두에서 2:1로 이기긴 했지만, 그래도 로브는 패배자였다.게다가 이제 막 반보천인의 문턱에 선 수준이 감히 염구준을 상대로 나서기엔 한참 부족했다.“받아들일 건가?”로브는 그레이와 말싸움을
그는 입을 열자마자 자신은 염구준의 적이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천기문이든 아타든 그는 애초에 경쟁상대로 생각해두고 있지 않았다. “흥, 비겁한 놈!”노신기는 화를 내며 말했지만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염구준이 어떻게 나올지 기다렸다.어선이 잠수함을 상대한다는 건 아예 말도 안 되었다.“예부터 보물은 능력 있는 사람이 가져가는 법이지.”염구준은 꼬리를 밟혔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혹여 다툼이 생긴다 해도, 실력으로 누르면 될 일이었다.게다가, 보물을 탐색하는 세력이 많을 수록 고대 옥패를 찾아낼 확률도 커지기 때문에 어쩌면 더 이득이었다.게다가, 정확한 위치 없이 찾아야 한다는 건 사막에서 바늘 찾기와 다를 게 없었다. “고마워. 만약 보물을 찾게 된다면 염 선생도 나눠줄게.”“만약 고대 옥패를 발견한다면, 바로 주고.”대어당의 당주는 크게 기뻐하며 약속했다. 염구준에게 복종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며 말이다.적과 동료는 늘 변하는 법이다. 변하지 않는 건 오직 이익뿐이었다.염구준은 그를 슬쩍 바라보곤,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이런 식의 허울뿐인 약속 따위는 진즉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마지막까지 믿을 수 있는 건, 오직 자신의 검 뿐이었다.“후욱, 후욱.”노신기는 분이 풀리지 않았지만, 염구준이 나서지 않는 이상 홀로 대어당과 맞붙을 자신이 없었다.철썩철썩!이윽고 바닷물이 또 한 번 요동치더니 이번엔 세 척의 잠수함이 물 위로 떠올랐다.적어도 세 개의 강대한 세력이 더 온 것 같았다.그리고 멀지 않은 곳의 두 방향에서 모두 배가 다가오고 있었는데, 또 다른 두 세력이 오는 것 같았다.보물을 나눠가지려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진 것이다.“염 선생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폐 끼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염 선생님께서도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건 조상 대대로 전해진 보물이니 저희도 어느정도는 가져가 가문에 보태야죠.”“염구준, 날 기억해?”새로 온 이들 중 대부분이 염구준과 한번쯤 얽혔던 사람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