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궁의 가장 안쪽은 사적인 공간이었기에 인해민 같은 급이 아니면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인해민은 안으로 들어온 뒤 세 할매 중 한 명인 홍할매를 보았다. 그녀는 굳게 닫힌 방문 밖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아주머니, 궁주님은요?”인해민은 가까이 다가간 뒤 홍할매에게 물었다.“궁주님은 안에서 제사를 지내고 계셔!”제사를 지낸다는 말에 인해민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서남에는 오래된 규칙이 하나 있었다.미망인은 매일 7, 8시쯤 죽은 남편, 죽은 아내의 제사를 지낸다.이런 풍습은 죽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것이었다.인해민은 그 말을 듣고 한숨을 쉬더니 굳게 닫힌 방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아주머니, 저희 궁주께서는 아직도 구주왕을 잊지 못한 걸까요?”“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홍할매는 한숨을 쉬었다.“아주머니, 전 항상 궁금했어요. 그 구주왕이란 사람 대체 어떤 인물이었어요? 죽은 지 반년도 넘었는데 왜 우리 궁주께서는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매일 제사를 지내는 걸까요?”인해민이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그녀가 보기에 궁주처럼 엄청난 미녀는 세상 그 어떤 남자라도 쉽게 얻을 수 있었다.그런데 그녀는 왜 오직 윤구주만을 사랑하고 또 그 때문에 이렇게 아파하는 걸까?“넌 평생 모를 거야. 구주왕처럼 전설적인 인물은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존재야.”홍할매가 말했다.“네? 그게 정말이에요? 그렇게 강하다고요?”인해민은 깜짝 놀랐다.“그가 얼마나 강한지는 언어로 설명할 수 없어. 그를 형용할 수 있는 건 아마 전설뿐일 거야! 그렇지 않으면 구주왕이 어떻게 화진의 천하방, 천방과 지방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겠어? 그리고 화진에서 유일하게 인정하는 왕이 바로 구주왕이야. 그는 10개국 간의 전쟁에서 홀로 군대를 이끌고 10국을 도살했어. 10국은 그의 이름만 들어도 겁을 먹고 물러났었다고.”그 말에 인해민은 넋이 나갔다.그녀는 비록 전설 속 구주왕을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다들 구주왕의
“음? 윤씨 성을 가졌다고요? 홍할매, 혹시 구주왕의 성이 윤씨인가요?”인해민은 뒤늦게 반응하더니 눈을 빛내며 말했다.“윤씨가 왜?”홍할매가 물었다.“홍할매, 저희가 오늘 밤 초대한, 설씨 일가를 멸족시킨 그 잘생긴 오빠도 성이 윤씨예요!”인해민은 갑자기 떠올랐다.홍할매는 차갑게 웃었다.“너도 참, 바보 같구나. 화진에는 다양한 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또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도 많아. 윤씨 성을 가진 사람도 많겠지. 너 설마 네가 알게 된 그 무명의 남자가 과거 화진의 왕이었던 구주왕이라고 할 생각은 아니지?”홍할매의 말을 듣자 인해민은 서둘러 부정했다.“아뇨, 그 사람을 어떻게 과거 화진의 왕이었던 구주왕과 비교해요?”“그러면 됐어.”홍할매가 중얼거렸다.인해민은 입을 다물었다.그녀는 그저 우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한때 화진의 왕이었던 전설 속 인물은 이미 반년 전 죽었기 때문이다.그런 생각이 들자 인해민은 서둘러 고개를 저으며 터무니없는 생각을 떨치려 했다.시간은 일분일초 흘렀고 인해민과 홍할매는 굳게 닫힌 방문 앞에서 기다렸다.안에서는 그들의 궁주가 사랑했던 사람의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그동안은 아무도 방해할 수 없었다.8시가 다 돼서야 굳게 닫혔던 방문이 끼익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문이 열리자 홍할매가 입을 열었다.“궁주님께서 제사를 다 지내셨나 보네! 해민아, 이젠 들어가도 돼!”인해민은 시선을 들어 열린 방문을 바라보더니 짧게 말했다.“네!”그리고 그녀는 안으로 들어갔다.커다란 방 안은 썰렁했다.인해민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앞에서 전해지는 향냄새를 맡았다.가까이 다가가 보니 백화궁의 궁주 연규비가 보였다.흰옷을 입은 그녀는 마치 선녀 같았다.그녀는 맨발인 채로 책상다리를 하고 위패 앞에 앉아있었다.그 위패는 화진의 왕 구주왕의 위패였다.그러나 그 위에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적혀 있었다.“궁주님!”인해민은 안으로 들어온 뒤 그녀를 불렀다.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연규비는 그녀의 말
백경재가 소리를 지르자, 윤구주도 백화궁 앞에 줄지어 선 긴 다리의 미녀들을 보았다.확실히 눈 정화가 되었고 아주 아름다웠다.두 사람이 차에서 내리자 백화궁 앞에 서 있던 미녀들도 윤구주와 백경재를 보았다.“어머, 얘들아. 저기 봐. 저 노인 뒤에 서 있는 남자 정말 너무 멋진데?”긴 머리의 여자가 윤구주의 잘생긴 얼굴을 보고 흥분해서 말했다.“어머, 확실히 잘생겼어. 게다가 분위기도 좋아!”“설마 저 사람이 오늘 우리가 기다리던 잘생긴 오빠인 걸까?”미녀들이 재잘대며 말하고 있을 때 윤구주는 백경재를 데리고 백화궁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안녕하세요, 여러분.”백경재가 음흉한 얼굴로 눈앞의 200명쯤 되는 미녀들을 바라보며 인사를 건넸다.안타깝게도 그들은 백경재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전부 윤구주만 쳐다보고 있었다. 백경재는 풀이 죽었다.“두 분은 어쩐 일로 오셨어요?”제일 앞에 서 있던 단발머리 미녀가 물었다.“궁주님을 만나러 오겠다고 약속했거든요.”윤구주가 덤덤히 말했다.윤구주의 말을 들은 단발머리 미녀는 흥분해서 펄쩍 뛰었다..“설마 해민 언니가 말한 그 남자가 바로 당신인가요?”윤구주는 싱긋 웃었다.“세상에, 정말 당신이었군요! 정말 잘생기셨어요! 해민 언니가 한눈에 반한 이유가 있었네요!”단발머리 미녀는 윤구주를 힐끔 보았다. 마치 아주 귀한 보물을 보듯 말이다.뒤에 있던 미녀들도 전부 윤구주만 바라보고 있었다.“잘생겼어!”“진짜 잘생겼어!”“게다가 분위기도 있어. 정말 최곤데!”백화궁 여자들이 잘생긴 윤구주의 얼굴에 넋을 놓고 있을 때 갑자기 목소리 하나가 백화궁 안쪽에서 들려왔다.“이 계집애들, 다 뭐 하는 거야?”들려오는 목소리에 여자들은 서둘러 고개를 돌렸고 안에서 걸어 나오는 잔혹한 나찰 인해민을 보았다.“해민 언니, 우리 잘생긴 오빠 환영하고 있었어요!”고개를 든 인해민은 윤구주가 문 앞에 서 있자 기쁜 얼굴로 달려갔다.“어머, 오빠. 벌써 도착했어요? 전 오빠가 절 속이고 오늘 오지
인해민에게 내쫓긴 뒤 200명쯤 되는 긴 다리의 여자들은 미련 가득한 얼굴로 나갔다.여자들이 전부 떠난 걸 확인하고 나서야 인해민은 고개를 돌려 윤구주에게 말했다.“오빠, 미안해요. 못 볼 꼴을 보였네요.”윤구주는 손을 저었다.“괜찮아. 궁주는?”윤구주는 안으로 들어온 뒤 물었다.“궁주님은 지금 내전에 계세요.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요. 제가 지금 당장 궁주님께 얘기하러 갈게요!”인해민은 말을 마친 뒤 서둘러 안쪽으로 백화궁 궁주를 부르러 갔다.커다란 대전 안에는 윤구주와 백경재 두 사람만 남았다.“저하, 백화궁 으리으리한데요! 이것 좀 봐요! 궁전이 얼마나 커요! 밖에 있는 여자들도 다 연예인이나 모델 같아요!”백경재는 눈을 껌뻑이면서 주위를 둘러보며 감탄했다.윤구주는 그의 말에 대꾸해 주기 귀찮았다.그는 주위를 둘러본 뒤 중얼거렸다.“그녀를 만날 때도 되었지.”말을 마친 뒤 윤구주는 곧장 인해민이 향했던 내전 방향으로 걸어갔다.“어? 저하, 어디 가십니까?”백경재는 윤구주가 갑자기 내전으로 들어가자 답답한 마음에 그를 불렀다.“난 상관하지 마. 백 선생은 여기 남아있어.”윤구주는 한마디 한 뒤 고개도 돌리지 않고 내전 쪽으로 걸어갔다.백화궁 내전은 금지 구역이었다.일반적인 상황에서는 홍할매, 노할매, 남할매와 잔혹한 나찰 인해민을 제외하면 아무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백화궁 여자들도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그런데 윤구주가 정정당당하게 안쪽으로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내전.안으로 들어간 윤구주는 옅은 향기를 맡았다.너무도 익숙한 향기였다.윤구주가 내전 쪽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 갑자기 차가운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누가 감히 백화궁 금지 구역에 멋대로 쳐들어온 것이지?”호통 소리와 함께 붉은 도포를 입은 홍할매가 광풍처럼 윤구주를 향해 달려들었다.연규비의 곁에는 그녀를 지키는 세 명의 할매가 있었다. 홍할매의 실력은 대가 5픔 이상이었다.그녀는 두 손을 움직이면서 윤구주를 할퀴려 했다.그녀의 손이
인해민이 그렇게 말하자 홍할매는 윤구주를 화가 난 눈빛으로 보았다.인해민은 홍할매에게 그렇게 말한 뒤 곧바로 고개를 돌려 윤구주에게 말했다.“제가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잖아요. 왜 안으로 들어온 거예요? 저희 궁주님 아직 안에 계신다고요!”“난 연규비를 만나는 걸 기다릴 필요가 없어.”윤구주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그 말에 인해민은 어이가 없었다.그녀는 아무리 잘생기고 실력이 좋아도 이렇게 건방져서는 안 된다고 속으로 생각했다.인해민이 말을 이어가려고 준비하는데 갑자기 굳게 닫힌 방문 안쪽에서 천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오라고 해.”그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백화궁의 궁주 연규비였다.그 목소리에 인해민은 그제야 윤구주를 바라보고 말했다.“가요. 궁주님이 들어오라고 하네요.”윤구주는 별말 없이 인해민의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방 안에서는 은은한 향기가 맴돌았다.윤구주는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방 중앙에 위패가 있는 걸 발견했다.그 위패는 그의 것이었다.그 위에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 구주왕을 기린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그걸 본 순간 윤구주는 탄식했다.위패 앞에는 흰옷을 입은 여자가 조용히 앉아 있었다.그녀는 윤구주를 등지고 앉아 있었다.그래서 그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그녀가 바로 백화궁의 궁주 연규비였다.“궁주님, 데려왔습니다.”인해민은 윤구주를 안으로 데려온 뒤 연규비에게 보고했다.“멋진 오빠, 얼른 궁주님께 인사해야죠!”인해민이 고개를 돌려 윤구주에게 말했다.윤구주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연규비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갑자기 그녀를 불렀다.“규비야.”그 목소리에 위패 앞에 앉아 있던 백화궁의 궁주는 흠칫했다.잔혹한 나찰 인해민도 당황했다.“오빠... 미쳤어요? 어떻게 감히 우리 궁주님 이름을 부를 수가 있어요?”인해민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릴 때 윤구주가 다시 한번 말했다.“규비야, 오랜만이다.”그의 말에 연규비는 다시 한번 흠칫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윤구주를
연규비가 윤구주를 끌어안고 울먹이면서 물었다.윤구주는 그녀를 살짝 안고 말했다.“난 계속 살아있었어. 세상 사람들은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겠지만 말이야.”“왜? 넌 죽지 않았는데 왜 화진 사람들은 다 네가 죽었다고 한 거야? 게다가 다들 네가 10개국 간의 전쟁 중에 죽었다고 했어.”연규비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들며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이 일은 내가 다음에 얘기해줄게. 어쨌든 지금 나는 살아서 네 앞에 서 있어.”윤구주는 미소 지었다.연규비는 아직도 믿기 어려웠다.그녀는 떨리는 손을 들어 윤구주의 잘생긴 얼굴을 만졌다.그녀는 눈앞의 윤구주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보고 싶었다.윤구주의 얼굴에서 열기가 느껴지고, 또 그의 잘생긴 얼굴을 보고 나니 그제야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니라 진짜라는 걸 확신했다.“궁주님... 잘생긴 오빠... 설마 두 분 아는 사이세요?”이때 옆에서 넋을 놓고 있던 인해민이 갑자기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내 평생 가장 사랑하던 사람이었어. 그런데 아는 사람이냐고 묻는 거야?”연규비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뭐라고?’그 말에 인해민은 굳어버렸다.“됐어. 넌 일단 나가 봐. 난 구주와 할 얘기가 많아.”연규비가 인해민에게 말했다.인해민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윤구주를 바라보다가 멍한 얼굴로 말했다.“네.”그리고 밖으로 나갔다.인해민은 밖으로 나간 뒤에도 몸이 굳은 상태였다.그녀는 큰 충격을 받고 지금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방 안.연규비는 윤구주와 만난 뒤 무척 기뻤다.그녀는 윤구주 덕분에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있었고, 평생 윤구주만 사랑했다.세상 사람들이 그녀를 마녀라고 욕해도, 윤구주의 불륜녀라고 욕해도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그녀가 신경 쓰는 건 윤구주 한 명뿐이었다.그래서 윤구주가 죽었다는 소식이 화진 곳곳에 퍼졌을 때야 그녀는 마음을 접고 폐관을 마음먹었다.그런데 지금 눈앞에 그녀가 가장 사랑하던 남자가 서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구주야... 이거 꿈 아니지? 정
“문아름이 왜 널 해친 거야? 어떻게 감히?”연규비는 큰 충격을 받았다.윤구주는 10개국 간의 전쟁에서 있었던 일을 간단히 얘기해줬다.문아름이 전쟁 전에 윤구주에게 기린화독을 썼다는 걸 얘기하자 연규비는 멍해졌다.“그 망할 여자... 어떻게 그렇게 지독할 수 있어? 감히 구주 너에게 독을 쓰다니. 그 여자는 네 약혼녀였잖아...”연규비는 믿기 어려웠다.윤구주가 말했다.“나도 지금까지 이해가 안 가. 하지만 언젠가는 전부 알게 되겠지.”“빌어먹을 문아름! 빌어먹을 문씨 일가! 그 사람들이 널 해치려 했다니!”연규비는 주체할 수 없이 화가 났다.“규비야, 그 일은 일단 그만 얘기하자. 난 언제가 그들에게 복수해서 그들이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 일단은 내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마.”윤구주가 말했다.“응, 알겠어. 그런데 네 예전의 부하들은? 네 병력은?”연규비가 물었다.“내가 가장 믿는 몇몇 형제들을 제외하고는 다들 내가 살아있다는 걸 아직 몰라.”윤구주가 덤덤히 말했다.“그렇구나! 그래서 지금까지 아무도 네가 살아있다는 걸 내게 알린 사람이 없었던 거였어.”연규비는 말한 뒤 눈물을 글썽이면서 윤구주의 위패를 바라봤다.윤구주는 웃었다.그는 연규비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는 연규비를 그저 여동생으로 여길 뿐이었다.“참, 그런데 이번에는 어쩐 일로 갑자기 서남에 온 거야?”연규비가 궁금한 듯 물었다.윤구주가 대답했다.“죽여야 할 사람들이 있거든.”“죽여야 할 사람들?”연규비는 흠칫했다.“맞아.”거기까지 말한 뒤 윤구주는 온몸에서 차가운 살기를 내뿜었다.“넌 그동안 계속 서남에 있었잖아. 군형 삼마에 대해 들어봤겠지?”윤구주가 말했다.“당연하지! 사람 죽일 때 눈 한번 깜빡이지 않는 놈들이야.”연규비가 말했다.“그래. 내가 이번에 서남에 온 건 그 세 자식을 죽이기 위해서야. 그리고 군형 5대 가족도 죽일 거야.”윤구주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윤구주는 웃었다....윤구주와 연규비가 회포를 풀고 있을 때 잔혹한 나찰 인해민을 제외하고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입구에는 여자들이 한군데 몰려서 윤구주가 나오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렸다.어쩔 수가 없었다.윤구주가 아주 잘생겨서 다들 그와 아는 사이가 되고 싶었다.이때 쓸쓸해 보이는 여자가 안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그녀는 마치 혼이 나간 사람처럼 멍한 눈빛으로 비틀대며 걷고 있었다.“어머!”“해민 언니 나왔어!”입구에 있던 여자들은 인해민이 나오는 걸 보자 그녀에게 달려갔다.오늘 밤 아주 기뻤던 인해민은 지금 얼떨떨한 상태였다.특히 머릿속이 복잡했다.“세상에, 대체 무슨 상황이야? 그 오빠가 우리 궁주님이랑 아는 사이라고? 게다가 우리 궁주님과 서로 끌어안고 있었어.”조금 전 장면을 떠올린 인해민은 아직도 어안이 벙벙했다.“설마 둘이 연인일까? 그럴 리가 없는데! 궁주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화진의 왕 구주왕이잖아. 게다가 사랑하는 구주왕을 기리기 위해 궁주님은 반년간 폐관했는데 말이야! 그런데 왜 그 오빠를 보자마자 마치 연인을 본 사람처럼 구는 거지?”인해민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상함을 느꼈다.이때 충격적인 생각이 들었다.“설마... 설마... 그 잘생긴 오빠가 궁주님이 사랑하는 과거 화진의 왕 구주왕인 건가?”쿵!그 생각에 인해민은 벼락을 맞은 듯 얼어붙었다.동시에 그녀는 홍할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윤씨 성을 가진 남자에게 빠지면 평생 헤어 나오지 못한다는 말 말이다.성이 같았다.조금 전 인해민은 방 안에서 연규비가 그를 윤구주라고 부르는 걸 똑똑히 들었다.“세상에, 이제 알겠어! 그 오빠가 바로 화진의 왕 구주왕이었던 거야!”그제야 인해민은 모든 걸 깨달았다.인해민이 여전히 충격에 빠져 있을 때 밖에 있던 여자들이 재잘대면서 그녀에게 달려왔다.“해민 언니, 왜 혼자 나왔어요? 그 잘생긴 오빠는요? 왜 같이 나오지 않은 거예요?”여자들은 곧바로 그녀에게 물었다.“헤헤, 축하해요, 언니! 잘
‘헐, 대박.’진동왕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윤구주를 신처럼 떠받들었다.‘이게 진짜 신이지. 곤륜에 있는 그 자식들은 모두 가짜 신들이었어. 허위적이기 그지없지.’오늘 밤 그는 여러 강자의 싸움을 직접 목격하고 강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문경우도 아주 강했지만 윤구주가 나타나자 문경우는 도망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고 영혼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윤구주의 술법에 의해 영혼도 남기지 못하고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승리는 결국 화진에게 돌아갔다. 화진을 무너뜨리려는 역적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윤구주는 자신의 힘으로 화진의 막강한 실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문경우를 처단한 윤구주는 즉시 임정설의 치료에 돌입했다.“짐은 별일 없으니 먼저 왕숙과 네 친구를 치료해줘라.”임정설이 임성진과 청해를 가리키며 말했다.청해는 이미 정신을 차렸다. 비록 상처가 심해 반쯤 죽은 상태였지만 화진 국주에게 인정받은 첫 순간이었다. 묘한 영예감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며 날아갈 듯 기뻤다.“이 두 사람 모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주님이 더 위험하십니다. 경지를 무리하게 넘어서셨고 섭혼번 아래서 정기를 너무 많이 잃으셨습니다. 지금 국주님의 기운이 안정하지 않으니 제 도움이 없다면 폭주 할수도 있어요. 그때가 되면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윤구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임정설은 결국 윤구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다. 윤구주의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황자급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예전보다 죽음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있었다. 윤구주는 임정설에게 풀지 못한 원한이 있음을 눈치채고 치료를 해주며 화진으로 압박했다.“국주님께서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화진에게는 국주님이 필요합니다. 국주님은 30년 동안 화진을 지켜오셨잖아요. 지금 승부가 달린 이 중요한 시점에서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시면 안 됩니다.”임정설
서울 삼천만 명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고 섭혼번이 작동되면 화진의 국운은 영원히 봉인될 것이다.“우리 문씨 가문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쇠퇴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화진의 주인이다. 감히 누가 복종하지 않겠느냐?”문경우는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웃어댔다.이때 하늘에서 천둥이 울리며 공간이 갈라지더니 한 남자가 시체 한 구를 밟고 서울에 강림했다.“웃기고 있네. 문씨 가문이 화진의 주인이 되겠다고? 문씨 가문 따위가 어디 감히 그런 꿈을 꾸는 것이냐? 나 윤구주가 용납하지 않겠다.”우르릉.우렁찬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지자 문경우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윤구주의 기운이 섭혼번 아래에 나타나며 음의 기운을 찢어버렸다.거대한 섭혼번이 관통당하자 전법이 무너지고 문경우는 피를 토해냈다.고개를 돌리니 윤구주가 허공에 우뚝 서 있었고 그의 발아래에는 아사 신전의 신주 오딘의 시체가 보라색 번개에 휩싸여 있었다.“이게 무슨? 네가 신왕 오딘을 죽였다고?”문경우는 오딘의 시체를 바라보며 벌벌 떨었다.“이 개 같은 자들이 여러 번 화진을 범했으니 죽이는 게 당연하지. 나는 오딘뿐만 아니라 아사 신족 전체를 멸했다. 이제 곤륜에 아사 신족은 존재하지 않는다.”윤구주가 공중에 우뚝 서서 음양의 기를 손아귀에 감아쥐었다. 그의 머리 위 갈라진 공간 너머로 아사 신전의 폐허가 보였다. 수만 신령이 죽어 아사 신족이 멸족한다는 종말이 예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문경우의 눈에 비친 윤구주는 무적의 화신이었다. 그는 윤구주와 싸울 용기도 내지 못하고 뒤돌아 도망치려 했다.“너희들이 내가 없을 틈을 타 화진의 기운을 봉인하려 했다고? 문씨 가문은 정말 개수작만 부리는군. 예전에는 나를 죽이려 온갖 더러운 수작을 다 부렸잖아. 내가 없는 틈만 노리는 걸 보니 이젠 내가 무서웠나 보지?”“팔기지, 술자결.”윤구주가 손짓하자 삼천만 생령이 국운 속으로 모여들었다. 백성들은 새 국운에 각자의 고마운 마음을 담아 보냈고 모두의 영혼이 육체로 돌아가며 위기가 해소되었다.“팔기지, 어
태양으로 변한 그 부적은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독한 태양 빛이 대지를 지지며 수많은 건물을 녹여버렸고 그 안에 있던 평민들도 산 채로 타죽고 말았다.“그만해. 화진의 백성들을 건드리지 마라!”임정설이 분노에 차 외쳤다.“너와 나는 모두 화진의 절정 수련자인데 어찌 무고한 자들을 끌어들이느냐?”“하하! 무고하다니? 임정설, 현실을 직시하지. 이 하등한 것들은 개미나 다름없어. 한 무리를 죽여도 금방 다시 번식할 테니. 게다가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삼천만 백성의 목숨으로 화진의 새 국운을 봉인하는 거라네. 우리 문씨 가문이 얻지 못하는 것은 부숴버려도 남에게 주지 않을 거야.”문경우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는 윤구주가 문씨 가문의 뜻을 거역하는 것에 화가 났다.만약 윤구주가 그들에게 순종했다면 지금쯤 화진의 주인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천추만대가 지나도 윤구주는 여전히 화진 최고의 명군으로 남았을 것이다.“저 빌어먹을 윤구주. 역사는 승자가 쓴다는 걸 모르나? 역사를 조작한 왕조가 그렇게나 많은데 유독 그놈만 고집을 부리잖아. 화진의 재난은 모두 윤구주 때문이야. 명군이 되길 거부한다면 영원한 역적으로 만들 거야. 윤구주는 역사의 수치주에 못 박혀 천년만년을 욕먹을 것이다.”“닥치거라! 구주는 우리 화진의 영웅이다. 너 같은 쓰레기가 어찌 감히 구주를 함부로 논하는 것이냐?”그의 말에 단단히 열 받은 임정설은 양혼을 불살라 목숨을 걸려 했다. 그러나 문경우가 이미 임정설의 기를 봉쇄하고 제삼의 전법으로 그의 영혼까지 잠가버렸다.“임정설, 내 앞에서 자살조차 못 하는 주제에 어디서 목숨을 걸겠다고 떠드는 건가?”문경우는 기고만장했다. 임정설이 황자가 되면 뭐하나? 어차피 문씨 가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는데.“오늘이 바로 화진 황제의 멸망일이라네. 섭섭해하지 말게. 윤구주도 곧 자네 뒤를 따를 거니까. 하하!”그가 양손을 내리자 백 미터 크기의 사악한 검은 기발이 구름을 뚫고 서울 상공에 나타났다.“이, 이것은 섭혼번이군!”그 거대
말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쓸모없는 대화는 필요 없었다.임정설은 황제의 의지를 칼로 삼았다. 황자의 기세가 모여 금빛 칼날을 형성하더니 국운을 상징하는 그 칼로 문경우를 향해 내리쳤다.우르르.음과 양이 맞부딪치며 터져 나온 충격파가 반경 수 킬로미터를 휩쓸었다. 사령부 빌딩과 인근 건물들의 유리가 모조리 산산조각이 났다.두 사람은 빌딩 꼭대기에서 결투를 시작했다. 칼 빛이 번뜩이며 천지의 영기를 뒤흔들었고 광풍과 폭우가 몰아쳤다. 산해가 울부짖으며 서울은 보라색 번개와 금빛 불길에 휩싸였다.그들은 각각 화진 최강의 무도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정의와 사악의 대결이 아니라 임씨 가문과 문씨 가문의 결전이었다.서울 상공에서는 용의 형상이 구름 사이를 휘저으며 흉수와 피 묻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이게 바로 황자의 힘인가. 정말 굉장하군.”진동왕마저 넋을 잃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다른 도시의 지원병들이 서울에 도착해 진동왕과 연락을 취했고 이 소식을 해외에 있는 현모와 주작에게 즉시 전했다.“국주께서 문경우와 결전을 벌이고 계신다고?”“국주께서 황자급 경지에 오르셨다니.”이는 분명히 좋은 소식이었다. 비록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었지만 윤구주와 임정설의 관계는 남달랐다. 임정설은 윤구주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너무 기뻐하지 마라. 저 문경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곤륜에서 오랫동안 잠적하며 수많은 신전의 공법을 익혔어. 저놈이 서울로 온 목적은 바로 임정설을 죽이기 위함일 것이야.”옆에 있던 황보웅이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주작과 현모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화진이 무사하고 임정설이 문경우를 물리치길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한창 싸우고 있던 두 강자는 공중에서 다시 한번 맞붙었다. 두 사람의 손짓 하나에 산이 뒤집히고 천지가 진동했으며 그들의 기세는 수백 리 밖까지 영향을 미쳤다.임정설은 기세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임정설은 문경우가 극 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전법이 발동되면 서울 수천만 사람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야. 비록 이길 자신은 없지만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화진의 백성을 위해 싸우겠다. 구주군과 금위군의 여러 장수들은 듣거라. 짐이 전사하면 너희들이 나라를 지킬 책임을 지고 계속해서 적들을 섬멸하라.”임정설은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나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홀로 서울 사령부로 날아갔다.서울 사령부는 진동왕과 수비영이 도착하기 훨씬 전에 함락된 상태였다. 주둔지는 죽음의 적막에 휩싸여 있었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라붙은 백골들이 널브러진 참혹한 장면뿐이었다.당시 강적의 침입을 받은 주둔지의 병사들은 한 명도 물러서지 않고 전원이 전사할 때까지 적들과 맞서 싸웠을 것이다.이 생각에 임정설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우리 화진의 자랑이다. 저 요망한 것들이 화진을 어지럽힌 지 얼마나 되었느냐? 이 빚을 짐이 갚아 내지 못하더라도 화진 자손들이 반드시 값나낼 것이다.”그는 절대 화진의 혼란에 맞선 마지막 황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선인이 걸어온 길을 밟으며 그의 발걸음은 더욱 확고해졌다.이 순간 황운이 임정설의 몸에 서리더니 새로운 국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순간부터 그는 특정된 누군가의 왕이 아닌 천하 만민이 우러러보는 황제가 되어 있었다.황도가 더해지자 임정설의 기세는 한층 더 강해졌다. 그는 사령부 빌딩 최상층에서 서울을 어지럽힌 장본인을 마주했다.검은 도포를 걸친 그 자는 사악한 부적으로 몸을 감싼 채 요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바로 그가 전법으로 서울을 뒤덮고 있었다.“참으로 예상치 못했어. 화진에 또 한 명의 황자가 나타나다니. 윤구주는 정말 신기하다니까. 자신의 기운으로 국운을 바꾸고 자네의 운명까지 바꿔놓았군. 하지만 내가 충고 하나 해주지. 임정설 자네가 황자가 된 이상 사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야. 넌 사흘 안에 목숨을 거둘 것이란 말이지.”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은 임정설이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을 알아
국주 임정설은 해청현의 음기를 제거한 후, 그를 보호하던 기운까지 걷어내 양기로 해청현을 완전히 눌러 버렸다.이게 바로 미친 스님이 말했던 진정한 자제력이었다.“해청현은 수법만 닦고 수도는 하지 않았으며 몸만 수련할 뿐, 마음은 단련하지 않았지. 그러다 보니 결국 다 헛것이 되어버린 거야.”미친 스님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그는 해청현에게 타고난 수도의 체질을 주었지만 그에 걸맞은 의지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해청현은 더는 감당하지 못하고 되려 휘말려버린 것이었다.임정설의 머리 위엔 성스러운 빛이 맴돌았고 온몸엔 천지를 뒤덮을 만큼의 정기가 흘러넘쳤다. 해청현은 결국 싸움에서 져버렸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도 임정설처럼 황자급 경지였다면 이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작 두 사람의 경지가 같았다 해도 여전히 자신이 완전히 압도당했을 거라는 걸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임정설은 손바닥을 휙 내리치더니 끝까지 미련을 품던 해청현을 그 자리에서 즉사시켰다. 그는 영혼조차 남지 않은 채 완전히 소멸당했다. 이것이 바로 겉보기엔 수련했을지 몰라도 한 번도 진정한 수도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다는 증거였다.“국주님이 이렇게까지 강했다고?”공수이는 멍하니 중얼거렸다.“그러게 말이야.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해졌지?”진동왕은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복잡한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예전에는 그가 임정설보다 더 강했었고 임정설은 국운 덕에 간신히 그를 이길 정도였으니 말이다.하지만 이젠 내공 차이가 너무 벌어져서 더 이상 비교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그제야 깨어난 백호는 조금 전 자신이 국주를 진왕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백호, 널 속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넌 내가 올 때까지 버티지 못했을 테니까...”임정설은 양기를 끌어내어 백호의 몸속에 주입했고 그의 정기를 빠르게 회복시켰다. 이렇게 되면 백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회복할 것이었다.그 모습을 본 공수이와 진동왕은 또다시 멍해
“뭐? 저게 누구지? 지금 화진에 저런 강자가 또 있었다고? 설마... 저자가 바로 구주왕이란 말인가?”청현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당황스레 외쳤다.누가 알았겠는가, 이 결정적인 순간에 고수가 나타나다니!“젠장... 네가 누구든 상관없다!”“나는 반드시 백호를 죽인다!”청현은 더는 여유가 없었다.상대의 기세는 너무나도 강력했고, 이미 백호와 싸우면서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그와 맞붙는 건 목숨만 붙어 있을 뿐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청현은 그저 백호부터 처리하려 했다.“이런 건방진 것! 우리 화진의 전쟁 신이 너 같은 흉수에게 쓰러질 수는 없다!”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활기찬 천 음 소리!금빛 실루엣이 구름을 뚫고 내려오더니 손바닥으로 청현을 튕겨냈다!눈앞의 인물을 본 청현은 잠시 얼어붙었다. 모르는 인물이다.하지만 이 압도적인 기운은 분명 고위자일 것이다.화진에서 구주왕 말고는 누가 이런 존재감을 뿜어낼 수 있겠는가?기절해 있던 진북왕은 익숙한 기운에 눈을 번쩍 떴다.그리고 그 실루엣을 본 순간 기절할 뻔했다.“이런! 임정설! 너 황자가 된 거야!”“흠? 왕숙께서 실망하셨나 보네요??”금빛 그림자가 사라지며 실체가 드러났고, 그 모습은 바로 용맥에 들어가 수련하던 화진의 현직 왕 임정설이었다.“폐하 만세!”구주군 장병들은 격동된 마음으로 일제히 무릎 꿇고 경례하며 외쳤다.자신들의 왕이 서울로 화진의 백성을 구하러 온 것이다!“임정설?! 그게 어떻게 가능해! 아무리 강해도 극한신경 정도일 텐데!”청현의 얼굴이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졌다.극한신경과 황자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황자 한 명이면 수십 명의 극한신경을 상대할 수 있다!서울에 황자가 주둔해 있다면, 곤륜영역조차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설령 청현이 아무리 천재고 강하더라도 황자와의 싸움은 불가능했다.자칭 수요산 제일검이라던 청현은 위축됐다.그 모습을 본 임정설은 냉소하며 말했다.“이게 바로 검객이란 말인가? 검객의 마음은
진황은 외공만으로 도에 이른 황자였다.어떠한 술법도 수련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백호가 중얼거리며 ‘진황신공!’을 외치고 있으니 이건 누가 봐도 미친 소리였다.“미쳐야 도를 이루는 법이다. 백호는 앞날이 창창하구먼.” 미친 스님이 아미타불을 외치며 말했다.“미쳤어, 미쳤어! 전부 다 미쳐버렸다고!” 진북왕이 고함을 지르다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기절해버렸다.그 사이 백호의 기세는 끝없이 치솟고 있었다!정신은 나갔지만, 힘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청현은 문득 깨달았다. 백호가 저토록 광폭한 이유—바로 그놈의 몸속에 흐르는 성수의 피였다.“이 썩을 놈... 성수 피가 아니었으면 네가 뭔데 날 상대로 이러는 거냐!”청현은 음기를 뿜으며 맹렬하게 연속으로 공격을 퍼부었다.그 음산한 기세에도 불구하고 백호는 오히려 직선 돌진했다.공격은 완전 예측 불가였다.수요산 검종은 온갖 검술과 전법에 능했지만, 다음 공격이 뭔지도 모르는 미친놈을 상대로는 청현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결국, 또 한바탕 두들겨 맞고 땅바닥을 굴러다니던 중 놀랍게도 백호가 자신의 음신사체를 흡수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내 음기를 집어삼키다니?! 이 괴물 같은 놈!”“음기여 무한하라! 흑검이여, 사악을 베어라!!!”시커먼 흑검이 다시 응집되자, 수백 개의 검날이 연속으로 쏟아졌다.백호의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검은 피를 흘렸지만——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대로 돌진했다!“개자식... 음기야! 나에게 힘을 줘!!”청현은 검을 땅속 깊숙이 꽂았다.지맥에서 미친 듯이 영기를 빨아들이자, 머리 위에 떠 오른 음기 마기의 형상은 산만큼 거대해졌다!그 압도적인 힘으로 청현은 백호를 단숨에 쓰러뜨렸다.이건 이미 백호가 감당할 수 없는 한계치를 훨씬 초과한 위력이었다.쿵!!백호는 그대로 땅에 쓰러졌지만, 그런데도 그는 의식을 잃지 않았다.다만 입에서 나오는 건 누가 들어도 미친 소리였다.“황이 온다... 황... 황이 온다....
“우리 스승 말이야, 진짜 고집쟁이에다 구닥다리야. 정의와 사악은 절대 함께할 수 없다고 믿고 목숨 걸고 몇백 년 동안 싸우고 피 흘렸지만 무슨 소용이 있어? 인마 좀 없앤 거 빼고는...?”“스승께서 날 산에서 내려가 속세의 삶을 보라고 하신 건, 결국 수련을 위한 경험이었겠지. 하지만 세상을 직접 겪고 나서야 똑똑히 알게 됐어. 이 세상은 결국, 강한 자가 무적이고 이긴 자가 왕이 되는 법이야...”“세상에는 애초에 정의와 악, 흑과 백 따윈 존재하지 않아. 선악의 기준이란 결국 입만 살은 자들이 지껄이는 헛소리일 뿐이지. 역사가 진실이라고 믿어? 예로부터 어느 왕조의 흥망이 피바다와 시체더미 없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나?”“무릇 장수가 공을 세운다는 건, 수만의 백골 위에 선다는 뜻이지. 그 윤구주가 '구주왕'이라 불리는 것도, 결국은 피로 쟁취한 자리 아니겠어?”“주먹이 곧 진리다. 내가 황위에 오르는 날, 선악이든 흑백이든 모두 내 기준으로 정의된다!”“백호, 이제 죽어라.”청현이 공격하려던 찰나 하늘 위의 백호가 먼저 움직였다. 다시 성수인을 발동하더니, 성수의 허상이 실체로 변해 거대한 기운을 모은 주먹을 뻗었다.그 주먹은 하늘을 가르고 청현을 향해 날아갔다.그러나 청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차가운 음기와 사기 담은 손으로 그 주먹을 받아내고 동시에 백 자 길이의 흑검을 형성해 단칼에 성수의 허상을 두 토막 내버렸다.그 검이 날아간 자리에는 구름이 쪼개졌고, 서울 상공을 덮고 있던 먹구름은 그 검기의 파도에 휩쓸려 모두 흩어졌다.먹구름이 사라졌지만, 서울 상공에는 여전히 짙은 요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태양조차 삼키려는 어둠의 장막처럼.“진법까지 있었어?! 대체 어느 놈이, 언제 이따위 대형 진법을 몰래 깔아놓은 거야?!”진북왕은 혈압이 오르다 못해 피까지 토할 지경이었다.이건 곧 청현이 최종 보스가 아니라는 뜻이다!백호가 청현을 이긴다 해도 그보다 더 강한 놈이 있다는 얘기다.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백호가 청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