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을 들은 정태웅이 눈이 벌게져서 소리쳤다."저는 그딴거 신경 쓰지 않습니다. 화진이 혼란에 빠지든 말든 저는 형수님이 복수를 해야겠습니다. 형수님을 그렇게 만든 자식들을 제가 찢어 죽여야겠다고요."정태웅이 이성을 잃고 소리치자 곁에 있던 박창용이 그를 혼냈다."그만하시오! 전하의 지시에 따르시오.""박창용, 왜 이렇게 겁쟁이가 됐어? 형수님이 저렇게 됐는데 설마 하나도 화가 나지 않는다고? 예전에 천하를 호령하며 만명의 병사를 이끌고 전쟁에 나가던 그 패기는 다 어디로 간 거야?"정태웅이 박창용을 도발하자 그가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서며 정태웅의 멱살을 잡았다. "너 이자식 지금 나한테 겁쟁이라고 했어? 너 나한테 죽고 싶어?""왜, 한 번 해 볼래? 내가 널 무서워 할 것 같아?"정태웅과 박창용이 금방이라도 싸우려고 들자 윤구주가 크게 소리쳤다."다들 그만해!"그 말이 마치 어떤 주문이라도 되는 듯 금방이라도 검을 뽑을 것 같았던 두 사람이 순간 자리에 멈췄다.윤구주가 두 사람을 매섭게 노려보더니 입을 열었다."나를 생각해서 그런다는 거 알아. 하지만 기억해. 내가 살아있는 이상 나는 이 화진의 왕이야.그러니까 나는 왕으로서 화진의 백성들을 돌 보지 않을 수 없어.""그리고 이 복수는 나 혼자서도 충분해.""군형은 말할 것도 없고 나라를 쓸어 버린다고 해도 나 혼자서 충분해."그 패기 어린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침묵했다.그래.윤구주가 어떤 사람인가? 열개의 나라를 상대로도 혼자서 싸울 수 있는 사람인데 겨우 군형 하나가 뭐 대수라고."그러니까 지금 당장 진정해.""특히 정태웅, 민규현 그리고 천현수. 너의 세 사람.""너희는 암부에 있는 사람들이니까 우리랑은 신분이 달라. 너희가 암부의 정예병들을 움직이면 국방부에서 난리가 나게 될 거야. 그래서 서로 전쟁이 일어나는 걸 정말 보고 싶은 건 아니겠지?"윤구주의 호통에 세 사람이 고개를 떨구었다."다들 똑똑히 기억해. 나 윤구주, 왕으로 태어
조용한 방 안.안색이 창백한 소채은은 여전히 혼수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었고 그 옆으로 다가가 윤구주가 그녀의 차가운 손을 꼭 쥐었다. 그가 눈시울을 붉혔다. 그녀는 반나절 전까지만 해도 기뻐하며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다는 천시고중에 당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윤구주는 지금 이 상황이 견딜 수 없었다. 게다가 두 사람은 곧 결혼 하기로 약속까지 했었다. "채은아."윤구주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를 부르며 그녀의 차가운 손을 꼭 잡았다.그러자 누워 있던 소채은이 그의 마음을 전해 듣기라도 한 듯 기다란 속눈썹을 움찔 떨더니 눈물 한방울을 흘렸다.그녀의 눈물을 본 윤구주의 가슴이 찢어질 듯 했다."채은아.""걱정하지 마. 내가 널 꼭 살려 줄게.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살려 줄테니까..."말을 마친 윤구주가 자신의 팔을 내밀고는 그 위에 손가락으로 한 줄 그었다. 그러자 그의 팔에 혈흔이 비치는가 싶더니 피가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 자신의 피로 소채은을 살리려 하고 있었다.알고 보니 윤구주가 말했던 유일한 치료 방법은 바로 자신의 체내에 있는 기운을 소채은에게 보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급의 기운을 담고 있는 혈액이 그녀의 몸 속에 있는 천시고충을 죽일 수 있었으니까. 윤구주는 현재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신급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그리고 그가 수련한 '구양진용결'에는 몸을 보호하는 효과도 있었기에 그의 피는 소채은의 체내에 흘러 간 뒤 '구양진용결'의 공법에 따라 고독을 죽일 수 있었다.하지만 그런 방법이 있다고 했을 뿐 그걸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그의 사부인 귀의조차 시도해 본 적이 없는 방법이었다. 윤구주도 이 방법을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현재로서는 유일한 방법이었다.윤구주의 팔뚝에서 흘러 내린 피가 소채은 의 입으로 흘러들어 갔고 그에 따라 신급의 힘을 담은 기운이 소채은에게로 흘러 들어갔다.그와 동시에 윤구주가 오른쪽 손바닥을 펼쳐서 소생술을 시
왜냐하면 더 이상 치료를 진행하면 그는 기린 화독에 의해 오장육부가 타들어갈 것이었다.윤구주는 죽는 게 두렵지 않았다. 단지 그가 죽은 뒤 사랑하는 소채운을 살릴 사람이 더는 없다는 사실이 걱정 되었을 뿐이다.그러니 지금 당장 그는 살아야 했다.윤구주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운기를 하자 금빛 내력이 그의 몸에서 떠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윤구주는 체내의 기린화독을 점점 억눌러 갔고 가슴쪽에 있던 독은 잠시 자취를 감췄다.온몸이 땀에 푹 젖은 그의 입가에는 여전히 검은색이 피가 묻어 있었다.하지만 그는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그의 머리 속에는 현재 소채은을 살리기 위해서는 일단 자신의 몸 상태를 최상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그러려면 일단 자신이 중독된 기린화독을 해독해야 했다. 이 독이 체내에 있는 이상 그는 소 채은을 치료할 수 없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하는 윤구주가 주먹을 꽉 쥐었다....윤구주가 소채은을 치료하고 있을 때 한 검은색 BMW가 용인 빌리지를 향해 다가 오고 있었다."여보, 나 놀래키지마. 채은이 대체 무슨 일인데? 그리고 어젯밤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데? "소청하가 말했다.알고 보니 소채은에게 일이 생긴 후 천희수는 바로 소청하에게 달려가 그 사실을 알렸다.소청하는 자신의 딸이 공격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기절한 채 윤구주가 데려 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멍해졌다.그러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천희수와 함께 용인 빌리지로 떠났다.천희수가 울음을 더뜨리며 말했다."나도 몰라. 고모 할머니를 모시고 돌아 오려던 길에 당해서...""그럼 우리 딸은 지금 어떤데?"소청하가 엑셀을 더 세게 밟으면 다급하게 물었다."우리 딸은 기절했고 윤구주가 데려갔어."그 말을 들은 소청하가 약간 마음을 놓았다."그래, 윤구주가 데려 갔다니 그나마 마음이 좀 놓이네."소청하는 여전히 엑셀을 밟으며 빠른 속도로 용인 빌리지로 차를 몰았다.별장 아래, 검은 옷을 입은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
순식간에 많은 총이 자신을 겨누자 깜짝 놀란 천희수가 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녀는 지금 상황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소청하는 이 사람들이 전부 윤구주의 부하라는 걸 눈치 챘다."저는 제 사위 윤구주를 보러 왔습니다. 저는 소채은의 아버지이고, 이 사람은 소채은이 엄마입니다."소청하가 얼른 자기 소개를 했지만 암부원들은 소청하 부부를 몰랐기에 그저 큰 소리로 다시 말했다."누가 됐든 오늘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명령이 있었다. 무단침입하는 자는 바로 죽인다."소청하 부부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백경재가 사람들 틈에서 나오자, 소청하가 윤구주의 부하인 백경재를 알아 보고는 다급하게 앞으로 다가 갔다."백 대사님, 저는 소채은의 아버지입니다. 딸을 보러 왔는데 어떻게 좀 들여보낼 주실 수 없을까요? 그리고 사위도 만나 보고 싶어요."소청하를 알고 있던 백경재가 고개를 끄덕였다."전하는 지금 별장 안에 있습니다. 들어오시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허락을 받은 소청하 부부가 재빠르게 용인 빌리지 안으로 들어갔다.뒤따라가는 천희수는 무슨 상황인지 전혀 모르고 소청하의 옷깃을 잡은 채 검은 무리의 사람들을 둘러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여보, 저 사람들 다 뭐예요? 왜 총도 가지고 있어요?"소청하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다 우리 사위 부하들이지.""뭐라고요? 윤구주한테 부하가 있어요?"천희수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그럼 당연하지. 이 여편네야. 내가 말하는데 앞으로 구주 앞에서 말 좀 조심해. 우리 사위 보통 사람 아니니까."그 말을 들은 천희수는 순간 멍해졌다. 그녀는 자신이 미워했던 윤구주가 그렇게까지 대단한 인물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부부가 별장으로 들어선 후 소청하가 빠르게 앞으로 다가갔다."우리 딸! 우리 딸은?"윤구주의 방문 앞을 지키고 있던 민규현과 정태웅 등은 그 소리를 듣고 살기를 풍기며 앞으로 나섰다."어느 미친 새끼가 이렇게 시끄럽게 굴어? 죽고 싶
시간이 흐른 후 방에서 갑자기 윤구주의 소리가 들려왔다."어머님 아버님더러 들어 오시라고 해."그 말을 들은 민규현이 고개를 돌려서 소청하 부부에게 말했다."전하께서 들어가시랍니다.""네네, 감사합니다."말을 마친 소청하가 아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윤구주가 소채은의 옆에 앉아 있었고 침대 위에 누워있는 소채은은 윤구주의 피와 '구양진용결'의 진기를 받은 후 창백했던 혈색이 약간은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깨어나지는 못한 채였다.방에 들어온 소청하 부부는 침대에 쓰러져 있는 소채은을 발견하고는 소리쳤다."채은아, 우리 딸! 이게 어떻게 된거야?"소청하가 달려오면 소리쳤고 천희수도 그 뒤를 따랐다.하지만 천시고독에 당한 소채은이 아무런 반응도 없자 소청하는 거기에 더 놀라며 목소리를 떨었다. "구주야, 빨리 말해 봐. 채은이... 채은이 대체 어떻게 된거야?""채은이는 천시고독에 당해서 잠시 동안은 깨어날 수 없어요."윤구주가 솔직하게 말했다."뭐 중독?"그 말을 들은 소청하가 깜짝 놀라며 딸꾹질을 했다."왜 우리 딸이 아무런 연고도 없이 갑자기 독에 당해?""대체 어떤 새끼가 우리 딸을 공격한 거야."곁에 있던 천희수가 눈물을 흘리며 소채은을 안고 소리쳤다."채은아 일어나, 일어나봐. 엄마야, 엄마가 너 보러 왔어."두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걸 본 윤구주가 그들을 위로했다. "어머님 아버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꼭 채은이를 살릴 거라고 약속 하겠습니다.""살려? 기억을 잃은 자식이 우리 딸을 어떻게 살려? "천희수가 화를 냈다."여보, 우리 당장 딸을 병원에 보내요. 여기서 더 지체했다가 진짜로 위험해 질 수도 있다고."천희수가 눈물을 흘리며 소청하를 다그쳤다."이 여편네가 진짜! 닥쳐 그냥, 구주 말 들어.""말을 들으라고? 당신 미쳤어? 기억을 잃은 놈 말을 들으라고? 당신 내 말 똑바로 들어. 만약 우리 딸이 위험해지기라도 하면 난 당신 평생 용서 안 할 거야."천희수가 노발대발 화를 냈고 두
서울 국방부.이황전.이곳은 문아름의 침궁이었다.금빛의 망포를 입은 그녀는 눈을 감은 채로 대전에 앉아 있었다.그녀의 뒤에는 목석같은 검을 안은 남자 독고명이 서 있었다.이때 누군가 빠르게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저하! 군형 삼마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안으로 달려 들어온 자는 다름 아닌 후방지원부대의 임진형이었다.군형 삼마에게서 연락이 왔다는 말에 문아름의 악랄한 두 눈동자가 천천히 떠졌다.“말해요.”임진형은 곧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저하, 군형 삼마는 계획대로 임무를 완수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소채은이라는 여자의 몸에 군형에서 가장 지독한 천시 고충을 심어뒀다고 합니다. 소문에 따르면 천시 고충은 군형에서 독성이 가장 독한 독충으로 이것을 치료할 방법은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이 고충에 당한 사람은 당장 죽는 것이 아니라 몸이 서서히 썩어 들어가면서 죽음보다도 더한 고통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하하하하!”임진형의 말에 문아름은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질 정도로 크게 웃었다.“잘했군요!”그렇게 말하더니 문아름은 악랄함이 번뜩이는 눈빛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윤구주, 이제 너도 괴로워지겠지? 네가 아무리 천하무적이라고 해도, 네가 화진의 왕이었다고 해도 그게 뭐가 중요해? 그래봤자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여자도 지키지 못하는 무능력한 인간인데 말이야. 하하하하! 딱 기다려, 난 네 여자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괴로움을 느끼게 해줄 거고, 네가 평생을 후회 속에서 몸부림치게 할 거야!”...시간은 물처럼 빠르게 흘러 곧 이틀이 지났고 마침내 10월 8일이 되었다.이날은 윤구주와 소채은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었다.그리고 온 도시가 윤구주와 소채은의 결혼을 축하하는 날이어야 했다.그러나 지금, 소씨 저택 앞은 더없이 썰렁했다.초대를 받은 친지들이 전부 떠난 뒤 소씨 저택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용인 빌리지는 경비가 아주 삼엄했다.산 아래에는 천하회와 암부 사람들뿐이었다.용인 빌리지
윤구주는 그들을 쓱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나랑 같이 로비로 가지. 할 얘기가 있어.”“네!”곧이어 다들 윤구주를 따라 로비로 향했다.커다란 로비 안, 윤구주는 제일 위쪽에 자리를 잡았고 박창용, 민규현, 원성일, 정태웅 등 사람들은 차례대로 아래쪽에 앉았다.모두 자리에 앉은 뒤에야 윤구주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오늘 자네들을 부른 건 아주 중요한 일을 통보하기 위해서야.”“말씀하십시오, 저하!”사람들이 말했다.윤구주는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을 쭉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지금부터 다들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도록 해.”‘뭐라고?’그의 말에 사람들은 당황했다.“저하, 저희에게 가라고 하신 겁니까?”정태웅이 가장 처음 말했다.다른 사람들도 답답한 심정으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 다들 돌아가. 용인 빌리지를, 강성을 떠나.”“저하, 왜입니까? 저희는 소채은 씨의 복수도 하지 못했고 저하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저희가 어떻게 돌아갈 수 있단 말입니까?”민규현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윤구주가 대답했다.“지금 당장 결혼식을 진행하기는 어려워. 그리고 자네들을 돌려보내려는 이유는, 자네들이 더는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야.”“저하!”“저희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소채은 씨 복수도 하지 못했지만, 그건 차치하더라도 저하의 곁은 꼭 지켜야겠습니다!”박창용마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윤구주가 말했다.“틀렸어! 난 지금 평범한 사람이니 자네들이 곁을 지켜줄 필요는 없어. 다들 자기 자신이 화진에서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를 알아야지. 박창용 자네도 그래. 자네는 백만 대군을 호령하는 창용부대의 총사령관이야. 그리고 다른 세 명은 화진 암부의 3대 지휘사지. 자네들이 있다면 화진은 당분간 안전할 거야. 그러나 자네들이 없다면 화진은 혼란에 빠지게 될 거야. 그건 자네들도 잘 알겠지. 자네들을 지켜보는 건 국방부의 문아름뿐만이 아니야... 10국에서도 호시탐탐 자네들을 노리고
윤구주가 모두를 돌려보내자 다들 쓸쓸한 얼굴을 해 보였다.특히 정태웅은 눈시울이 빨개져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저하, 그러면 저하를 언제쯤 다시 만날 수 있는 겁니까?”윤구주는 웃으며 말했다.“곧 만나게 될 거야.”윤구주의 위로에 정태웅은 엉엉 울었다.옆에 있던 민규현 역시 눈이 빨개졌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윤구주의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그가 무릎을 꿇자 천현수, 원성일, 주세호 등 화진의 거물들도 잇달아 윤구주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오직 박창용만이 윤구주의 곁으로 걸어가서 감개하며 말했다.“저하! 그렇게 결정하셨으면 저희 모두 저하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저희 80만 창용군은 언제나 저하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저하께서 서울로 돌아와 문씨 가문에 복수할 때까지 말입니다.”윤구주는 박창용을 바라보며 무겁게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그렇게 윤구주는 모두를 돌려보냈다.이별은 언제나 슬픈 법이다.특히 윤구주의 형제들이 그랬다.그들에게 있어 윤구주는 신일 뿐만 아니라 친형과 다름없는 존재였다.그러나 그들은 윤구주가 그들보다 더욱 슬퍼하는 걸 몰랐다.그들은 윤구주에게 있어 형제일 뿐만 아니라 가족이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윤구주는 반드시 멀리 내다봐야 했다.그는 본인의 사리사욕 때문에 화진의 평화를 홀시하고 그들을 이곳에 남겨둘 수 없었다.화진은 그의 나라이자 집이었기 때문이다.형제들과 작별한 뒤 용인 빌리지는 조용해졌다.용인 빌리지에는 백경재, 주세호, 소청하 부부만 남았다.“저하, 민 지휘사님과 박 사령관님, 원성일 씨 모두 떠났습니다...”주세호가 말했다.강성 최고 부자인 주세호는 당연히 강성에 남아있을 생각이었다.“그래요.”윤구주는 형제들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다가 덤덤히 말했다.“저하, 제가 저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주세호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는 소채은의 중독으로 인해 윤구주가 틀림없이 괴로울 거라는 생각이 들어 물었다.“채은이를 위해 장거리 이동에 적합한 휠체어를 주문해 주세요.
‘헐, 대박.’진동왕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윤구주를 신처럼 떠받들었다.‘이게 진짜 신이지. 곤륜에 있는 그 자식들은 모두 가짜 신들이었어. 허위적이기 그지없지.’오늘 밤 그는 여러 강자의 싸움을 직접 목격하고 강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문경우도 아주 강했지만 윤구주가 나타나자 문경우는 도망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고 영혼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윤구주의 술법에 의해 영혼도 남기지 못하고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승리는 결국 화진에게 돌아갔다. 화진을 무너뜨리려는 역적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윤구주는 자신의 힘으로 화진의 막강한 실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문경우를 처단한 윤구주는 즉시 임정설의 치료에 돌입했다.“짐은 별일 없으니 먼저 왕숙과 네 친구를 치료해줘라.”임정설이 임성진과 청해를 가리키며 말했다.청해는 이미 정신을 차렸다. 비록 상처가 심해 반쯤 죽은 상태였지만 화진 국주에게 인정받은 첫 순간이었다. 묘한 영예감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며 날아갈 듯 기뻤다.“이 두 사람 모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주님이 더 위험하십니다. 경지를 무리하게 넘어서셨고 섭혼번 아래서 정기를 너무 많이 잃으셨습니다. 지금 국주님의 기운이 안정하지 않으니 제 도움이 없다면 폭주 할수도 있어요. 그때가 되면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윤구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임정설은 결국 윤구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다. 윤구주의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황자급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예전보다 죽음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있었다. 윤구주는 임정설에게 풀지 못한 원한이 있음을 눈치채고 치료를 해주며 화진으로 압박했다.“국주님께서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화진에게는 국주님이 필요합니다. 국주님은 30년 동안 화진을 지켜오셨잖아요. 지금 승부가 달린 이 중요한 시점에서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시면 안 됩니다.”임정설
서울 삼천만 명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고 섭혼번이 작동되면 화진의 국운은 영원히 봉인될 것이다.“우리 문씨 가문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쇠퇴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화진의 주인이다. 감히 누가 복종하지 않겠느냐?”문경우는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웃어댔다.이때 하늘에서 천둥이 울리며 공간이 갈라지더니 한 남자가 시체 한 구를 밟고 서울에 강림했다.“웃기고 있네. 문씨 가문이 화진의 주인이 되겠다고? 문씨 가문 따위가 어디 감히 그런 꿈을 꾸는 것이냐? 나 윤구주가 용납하지 않겠다.”우르릉.우렁찬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지자 문경우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윤구주의 기운이 섭혼번 아래에 나타나며 음의 기운을 찢어버렸다.거대한 섭혼번이 관통당하자 전법이 무너지고 문경우는 피를 토해냈다.고개를 돌리니 윤구주가 허공에 우뚝 서 있었고 그의 발아래에는 아사 신전의 신주 오딘의 시체가 보라색 번개에 휩싸여 있었다.“이게 무슨? 네가 신왕 오딘을 죽였다고?”문경우는 오딘의 시체를 바라보며 벌벌 떨었다.“이 개 같은 자들이 여러 번 화진을 범했으니 죽이는 게 당연하지. 나는 오딘뿐만 아니라 아사 신족 전체를 멸했다. 이제 곤륜에 아사 신족은 존재하지 않는다.”윤구주가 공중에 우뚝 서서 음양의 기를 손아귀에 감아쥐었다. 그의 머리 위 갈라진 공간 너머로 아사 신전의 폐허가 보였다. 수만 신령이 죽어 아사 신족이 멸족한다는 종말이 예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문경우의 눈에 비친 윤구주는 무적의 화신이었다. 그는 윤구주와 싸울 용기도 내지 못하고 뒤돌아 도망치려 했다.“너희들이 내가 없을 틈을 타 화진의 기운을 봉인하려 했다고? 문씨 가문은 정말 개수작만 부리는군. 예전에는 나를 죽이려 온갖 더러운 수작을 다 부렸잖아. 내가 없는 틈만 노리는 걸 보니 이젠 내가 무서웠나 보지?”“팔기지, 술자결.”윤구주가 손짓하자 삼천만 생령이 국운 속으로 모여들었다. 백성들은 새 국운에 각자의 고마운 마음을 담아 보냈고 모두의 영혼이 육체로 돌아가며 위기가 해소되었다.“팔기지, 어
태양으로 변한 그 부적은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독한 태양 빛이 대지를 지지며 수많은 건물을 녹여버렸고 그 안에 있던 평민들도 산 채로 타죽고 말았다.“그만해. 화진의 백성들을 건드리지 마라!”임정설이 분노에 차 외쳤다.“너와 나는 모두 화진의 절정 수련자인데 어찌 무고한 자들을 끌어들이느냐?”“하하! 무고하다니? 임정설, 현실을 직시하지. 이 하등한 것들은 개미나 다름없어. 한 무리를 죽여도 금방 다시 번식할 테니. 게다가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삼천만 백성의 목숨으로 화진의 새 국운을 봉인하는 거라네. 우리 문씨 가문이 얻지 못하는 것은 부숴버려도 남에게 주지 않을 거야.”문경우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는 윤구주가 문씨 가문의 뜻을 거역하는 것에 화가 났다.만약 윤구주가 그들에게 순종했다면 지금쯤 화진의 주인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천추만대가 지나도 윤구주는 여전히 화진 최고의 명군으로 남았을 것이다.“저 빌어먹을 윤구주. 역사는 승자가 쓴다는 걸 모르나? 역사를 조작한 왕조가 그렇게나 많은데 유독 그놈만 고집을 부리잖아. 화진의 재난은 모두 윤구주 때문이야. 명군이 되길 거부한다면 영원한 역적으로 만들 거야. 윤구주는 역사의 수치주에 못 박혀 천년만년을 욕먹을 것이다.”“닥치거라! 구주는 우리 화진의 영웅이다. 너 같은 쓰레기가 어찌 감히 구주를 함부로 논하는 것이냐?”그의 말에 단단히 열 받은 임정설은 양혼을 불살라 목숨을 걸려 했다. 그러나 문경우가 이미 임정설의 기를 봉쇄하고 제삼의 전법으로 그의 영혼까지 잠가버렸다.“임정설, 내 앞에서 자살조차 못 하는 주제에 어디서 목숨을 걸겠다고 떠드는 건가?”문경우는 기고만장했다. 임정설이 황자가 되면 뭐하나? 어차피 문씨 가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는데.“오늘이 바로 화진 황제의 멸망일이라네. 섭섭해하지 말게. 윤구주도 곧 자네 뒤를 따를 거니까. 하하!”그가 양손을 내리자 백 미터 크기의 사악한 검은 기발이 구름을 뚫고 서울 상공에 나타났다.“이, 이것은 섭혼번이군!”그 거대
말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쓸모없는 대화는 필요 없었다.임정설은 황제의 의지를 칼로 삼았다. 황자의 기세가 모여 금빛 칼날을 형성하더니 국운을 상징하는 그 칼로 문경우를 향해 내리쳤다.우르르.음과 양이 맞부딪치며 터져 나온 충격파가 반경 수 킬로미터를 휩쓸었다. 사령부 빌딩과 인근 건물들의 유리가 모조리 산산조각이 났다.두 사람은 빌딩 꼭대기에서 결투를 시작했다. 칼 빛이 번뜩이며 천지의 영기를 뒤흔들었고 광풍과 폭우가 몰아쳤다. 산해가 울부짖으며 서울은 보라색 번개와 금빛 불길에 휩싸였다.그들은 각각 화진 최강의 무도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정의와 사악의 대결이 아니라 임씨 가문과 문씨 가문의 결전이었다.서울 상공에서는 용의 형상이 구름 사이를 휘저으며 흉수와 피 묻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이게 바로 황자의 힘인가. 정말 굉장하군.”진동왕마저 넋을 잃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다른 도시의 지원병들이 서울에 도착해 진동왕과 연락을 취했고 이 소식을 해외에 있는 현모와 주작에게 즉시 전했다.“국주께서 문경우와 결전을 벌이고 계신다고?”“국주께서 황자급 경지에 오르셨다니.”이는 분명히 좋은 소식이었다. 비록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었지만 윤구주와 임정설의 관계는 남달랐다. 임정설은 윤구주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너무 기뻐하지 마라. 저 문경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곤륜에서 오랫동안 잠적하며 수많은 신전의 공법을 익혔어. 저놈이 서울로 온 목적은 바로 임정설을 죽이기 위함일 것이야.”옆에 있던 황보웅이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주작과 현모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화진이 무사하고 임정설이 문경우를 물리치길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한창 싸우고 있던 두 강자는 공중에서 다시 한번 맞붙었다. 두 사람의 손짓 하나에 산이 뒤집히고 천지가 진동했으며 그들의 기세는 수백 리 밖까지 영향을 미쳤다.임정설은 기세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임정설은 문경우가 극 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전법이 발동되면 서울 수천만 사람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야. 비록 이길 자신은 없지만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화진의 백성을 위해 싸우겠다. 구주군과 금위군의 여러 장수들은 듣거라. 짐이 전사하면 너희들이 나라를 지킬 책임을 지고 계속해서 적들을 섬멸하라.”임정설은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나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홀로 서울 사령부로 날아갔다.서울 사령부는 진동왕과 수비영이 도착하기 훨씬 전에 함락된 상태였다. 주둔지는 죽음의 적막에 휩싸여 있었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라붙은 백골들이 널브러진 참혹한 장면뿐이었다.당시 강적의 침입을 받은 주둔지의 병사들은 한 명도 물러서지 않고 전원이 전사할 때까지 적들과 맞서 싸웠을 것이다.이 생각에 임정설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우리 화진의 자랑이다. 저 요망한 것들이 화진을 어지럽힌 지 얼마나 되었느냐? 이 빚을 짐이 갚아 내지 못하더라도 화진 자손들이 반드시 값나낼 것이다.”그는 절대 화진의 혼란에 맞선 마지막 황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선인이 걸어온 길을 밟으며 그의 발걸음은 더욱 확고해졌다.이 순간 황운이 임정설의 몸에 서리더니 새로운 국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순간부터 그는 특정된 누군가의 왕이 아닌 천하 만민이 우러러보는 황제가 되어 있었다.황도가 더해지자 임정설의 기세는 한층 더 강해졌다. 그는 사령부 빌딩 최상층에서 서울을 어지럽힌 장본인을 마주했다.검은 도포를 걸친 그 자는 사악한 부적으로 몸을 감싼 채 요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바로 그가 전법으로 서울을 뒤덮고 있었다.“참으로 예상치 못했어. 화진에 또 한 명의 황자가 나타나다니. 윤구주는 정말 신기하다니까. 자신의 기운으로 국운을 바꾸고 자네의 운명까지 바꿔놓았군. 하지만 내가 충고 하나 해주지. 임정설 자네가 황자가 된 이상 사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야. 넌 사흘 안에 목숨을 거둘 것이란 말이지.”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은 임정설이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을 알아
국주 임정설은 해청현의 음기를 제거한 후, 그를 보호하던 기운까지 걷어내 양기로 해청현을 완전히 눌러 버렸다.이게 바로 미친 스님이 말했던 진정한 자제력이었다.“해청현은 수법만 닦고 수도는 하지 않았으며 몸만 수련할 뿐, 마음은 단련하지 않았지. 그러다 보니 결국 다 헛것이 되어버린 거야.”미친 스님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그는 해청현에게 타고난 수도의 체질을 주었지만 그에 걸맞은 의지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해청현은 더는 감당하지 못하고 되려 휘말려버린 것이었다.임정설의 머리 위엔 성스러운 빛이 맴돌았고 온몸엔 천지를 뒤덮을 만큼의 정기가 흘러넘쳤다. 해청현은 결국 싸움에서 져버렸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도 임정설처럼 황자급 경지였다면 이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작 두 사람의 경지가 같았다 해도 여전히 자신이 완전히 압도당했을 거라는 걸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임정설은 손바닥을 휙 내리치더니 끝까지 미련을 품던 해청현을 그 자리에서 즉사시켰다. 그는 영혼조차 남지 않은 채 완전히 소멸당했다. 이것이 바로 겉보기엔 수련했을지 몰라도 한 번도 진정한 수도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다는 증거였다.“국주님이 이렇게까지 강했다고?”공수이는 멍하니 중얼거렸다.“그러게 말이야.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해졌지?”진동왕은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복잡한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예전에는 그가 임정설보다 더 강했었고 임정설은 국운 덕에 간신히 그를 이길 정도였으니 말이다.하지만 이젠 내공 차이가 너무 벌어져서 더 이상 비교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그제야 깨어난 백호는 조금 전 자신이 국주를 진왕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백호, 널 속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넌 내가 올 때까지 버티지 못했을 테니까...”임정설은 양기를 끌어내어 백호의 몸속에 주입했고 그의 정기를 빠르게 회복시켰다. 이렇게 되면 백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회복할 것이었다.그 모습을 본 공수이와 진동왕은 또다시 멍해
“뭐? 저게 누구지? 지금 화진에 저런 강자가 또 있었다고? 설마... 저자가 바로 구주왕이란 말인가?”청현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당황스레 외쳤다.누가 알았겠는가, 이 결정적인 순간에 고수가 나타나다니!“젠장... 네가 누구든 상관없다!”“나는 반드시 백호를 죽인다!”청현은 더는 여유가 없었다.상대의 기세는 너무나도 강력했고, 이미 백호와 싸우면서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그와 맞붙는 건 목숨만 붙어 있을 뿐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청현은 그저 백호부터 처리하려 했다.“이런 건방진 것! 우리 화진의 전쟁 신이 너 같은 흉수에게 쓰러질 수는 없다!”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활기찬 천 음 소리!금빛 실루엣이 구름을 뚫고 내려오더니 손바닥으로 청현을 튕겨냈다!눈앞의 인물을 본 청현은 잠시 얼어붙었다. 모르는 인물이다.하지만 이 압도적인 기운은 분명 고위자일 것이다.화진에서 구주왕 말고는 누가 이런 존재감을 뿜어낼 수 있겠는가?기절해 있던 진북왕은 익숙한 기운에 눈을 번쩍 떴다.그리고 그 실루엣을 본 순간 기절할 뻔했다.“이런! 임정설! 너 황자가 된 거야!”“흠? 왕숙께서 실망하셨나 보네요??”금빛 그림자가 사라지며 실체가 드러났고, 그 모습은 바로 용맥에 들어가 수련하던 화진의 현직 왕 임정설이었다.“폐하 만세!”구주군 장병들은 격동된 마음으로 일제히 무릎 꿇고 경례하며 외쳤다.자신들의 왕이 서울로 화진의 백성을 구하러 온 것이다!“임정설?! 그게 어떻게 가능해! 아무리 강해도 극한신경 정도일 텐데!”청현의 얼굴이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졌다.극한신경과 황자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황자 한 명이면 수십 명의 극한신경을 상대할 수 있다!서울에 황자가 주둔해 있다면, 곤륜영역조차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설령 청현이 아무리 천재고 강하더라도 황자와의 싸움은 불가능했다.자칭 수요산 제일검이라던 청현은 위축됐다.그 모습을 본 임정설은 냉소하며 말했다.“이게 바로 검객이란 말인가? 검객의 마음은
진황은 외공만으로 도에 이른 황자였다.어떠한 술법도 수련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백호가 중얼거리며 ‘진황신공!’을 외치고 있으니 이건 누가 봐도 미친 소리였다.“미쳐야 도를 이루는 법이다. 백호는 앞날이 창창하구먼.” 미친 스님이 아미타불을 외치며 말했다.“미쳤어, 미쳤어! 전부 다 미쳐버렸다고!” 진북왕이 고함을 지르다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기절해버렸다.그 사이 백호의 기세는 끝없이 치솟고 있었다!정신은 나갔지만, 힘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청현은 문득 깨달았다. 백호가 저토록 광폭한 이유—바로 그놈의 몸속에 흐르는 성수의 피였다.“이 썩을 놈... 성수 피가 아니었으면 네가 뭔데 날 상대로 이러는 거냐!”청현은 음기를 뿜으며 맹렬하게 연속으로 공격을 퍼부었다.그 음산한 기세에도 불구하고 백호는 오히려 직선 돌진했다.공격은 완전 예측 불가였다.수요산 검종은 온갖 검술과 전법에 능했지만, 다음 공격이 뭔지도 모르는 미친놈을 상대로는 청현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결국, 또 한바탕 두들겨 맞고 땅바닥을 굴러다니던 중 놀랍게도 백호가 자신의 음신사체를 흡수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내 음기를 집어삼키다니?! 이 괴물 같은 놈!”“음기여 무한하라! 흑검이여, 사악을 베어라!!!”시커먼 흑검이 다시 응집되자, 수백 개의 검날이 연속으로 쏟아졌다.백호의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검은 피를 흘렸지만——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대로 돌진했다!“개자식... 음기야! 나에게 힘을 줘!!”청현은 검을 땅속 깊숙이 꽂았다.지맥에서 미친 듯이 영기를 빨아들이자, 머리 위에 떠 오른 음기 마기의 형상은 산만큼 거대해졌다!그 압도적인 힘으로 청현은 백호를 단숨에 쓰러뜨렸다.이건 이미 백호가 감당할 수 없는 한계치를 훨씬 초과한 위력이었다.쿵!!백호는 그대로 땅에 쓰러졌지만, 그런데도 그는 의식을 잃지 않았다.다만 입에서 나오는 건 누가 들어도 미친 소리였다.“황이 온다... 황... 황이 온다....
“우리 스승 말이야, 진짜 고집쟁이에다 구닥다리야. 정의와 사악은 절대 함께할 수 없다고 믿고 목숨 걸고 몇백 년 동안 싸우고 피 흘렸지만 무슨 소용이 있어? 인마 좀 없앤 거 빼고는...?”“스승께서 날 산에서 내려가 속세의 삶을 보라고 하신 건, 결국 수련을 위한 경험이었겠지. 하지만 세상을 직접 겪고 나서야 똑똑히 알게 됐어. 이 세상은 결국, 강한 자가 무적이고 이긴 자가 왕이 되는 법이야...”“세상에는 애초에 정의와 악, 흑과 백 따윈 존재하지 않아. 선악의 기준이란 결국 입만 살은 자들이 지껄이는 헛소리일 뿐이지. 역사가 진실이라고 믿어? 예로부터 어느 왕조의 흥망이 피바다와 시체더미 없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나?”“무릇 장수가 공을 세운다는 건, 수만의 백골 위에 선다는 뜻이지. 그 윤구주가 '구주왕'이라 불리는 것도, 결국은 피로 쟁취한 자리 아니겠어?”“주먹이 곧 진리다. 내가 황위에 오르는 날, 선악이든 흑백이든 모두 내 기준으로 정의된다!”“백호, 이제 죽어라.”청현이 공격하려던 찰나 하늘 위의 백호가 먼저 움직였다. 다시 성수인을 발동하더니, 성수의 허상이 실체로 변해 거대한 기운을 모은 주먹을 뻗었다.그 주먹은 하늘을 가르고 청현을 향해 날아갔다.그러나 청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차가운 음기와 사기 담은 손으로 그 주먹을 받아내고 동시에 백 자 길이의 흑검을 형성해 단칼에 성수의 허상을 두 토막 내버렸다.그 검이 날아간 자리에는 구름이 쪼개졌고, 서울 상공을 덮고 있던 먹구름은 그 검기의 파도에 휩쓸려 모두 흩어졌다.먹구름이 사라졌지만, 서울 상공에는 여전히 짙은 요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태양조차 삼키려는 어둠의 장막처럼.“진법까지 있었어?! 대체 어느 놈이, 언제 이따위 대형 진법을 몰래 깔아놓은 거야?!”진북왕은 혈압이 오르다 못해 피까지 토할 지경이었다.이건 곧 청현이 최종 보스가 아니라는 뜻이다!백호가 청현을 이긴다 해도 그보다 더 강한 놈이 있다는 얘기다.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백호가 청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