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멍하니 뭐 하는 거냐? 황자 빙황, 설마 네가 할 수 있는 게 고작 이 정도냐?" 빙황이 더 이상 공격하지 않자, 윤구주는 오히려 그를 재촉했다. "정말 너무하군! 윤구주, 받아라!" 쿵쿵! 한 마리의 빙룡이 다시 응집되었다. 목신의 장난감 같은 수준의 그것에 비해 이 빙룡은 생생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규모든 기세든 윤구주의 금룡과 견줄 만했다. "가짜 신은 역시 가짜 신일 뿐이다. 아직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신을 흉내 내는 것만은 있어 보이게 하는군." 윤구주는 냉소하며 몸을 솟구쳐서 날아오르며 부적술을 펼쳐 빙룡을 제압했다.불기운이 응집되며 지하의 영맥을 끌어올렸다. 윤구주의 조종 아래 치솟은 거대한 불기둥은 화염의 사슬로 변해 빙룡을 단단히 속박했다. "빙황! 네가 가진 수단이 더 없나? 내 앞에서 화형술 같은 건 소용없다고." 빙룡을 제압한 채로 윤구주는 다시금 빙황을 재촉했다. 빙황의 얼굴은 똥이라도 씹은 듯 일그러졌다. 윤구주는 분명히 손쉽게 그의 술법을 깰 수 있었다. 하지만 굳이 힘을 낭비하며 그의 빙룡을 구속했다.이건 명백한 모욕이었다! "윤구주! 이 건방진 것아! 네가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인간계에는 황자가 없다. 설령 왕자라 해도 우리 곤륜 구역이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너 역시 마찬가지다." "너는 신일 수는 있어. 하지만 우리 곤륜 구역은 결코 너를 왕으로 인정한 적 없다!" 빙황은 으르렁대며 외쳤다. "웃기는군. 애당초 내가 왕으로 책봉된 곳이 바로 곤륜 구역이었다. 그것도 너희 3도와 6신전이 함께 내린 칭호였는데. 이제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잊어버렸단 말인가?" 윤구주는 눈을 가늘게 뜨고 비웃으며 말했다. 빙황의 동공이 급격히 수축했다. 그는 한 가지 끔찍한 사실을 떠올렸다! 과거 윤구주가 왕으로 책봉됐을 때, 확실히 곤륜 구역에서 먼저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의 왕호조차 곤륜 구역이 내려준 것이었다! 그
이게 무슨 조건인가? 빙황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윤구주! 나는 신들의 황제다. 감히 네가 신령을 모독하다니. 하늘조차 너를 용서치 않을 것이다!"수차례의 자극에 빙황은 마침내 전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정원을 속박된 빙룡에게 주입하자 기세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좋다! 나와 결전을 벌이겠다는 거냐? 죽고 싶다면 소원을 들어주마!"윤구주가 구양진룡결을 운용하자 아홉 마리의 신룡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아홉 마리의 용이 산을 압도했다. 빙황의 빙룡은 힘을 발휘하기도 전에 용의 기운에 소멸되었다. 빙황의 얼음 영역은 녹아내렸고, 비할 데 없는 용의 기운에 빙황의 몸은 속절없이 짓눌렸다."아아아! 윤구주, 네가 나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으냐!""빌어먹을 놈! 죽어라!"빙황은 필사적인 일격을 가했다. 자신의 음혼을 대가로 삼아 죽을 각오로 싸움에 뛰어들었다.그의 저항은 필연적으로 헛된 몸부림이었다. 아홉 마리의 용의 순수한 양기는 그의 음혼을 억눌렀다. 혼백을 바쳐서 사용한 금지된 술법은 용의 기운조차 뚫지 못했다."팔기지: 이화금안."동력이 발동하자, 금빛 불꽃이 나타났다. 이 불꽃은 만물을 태우고 멸한다. 음령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빙황의 음혼은 금빛 불꽃에 불태워졌다. 그 모습은 마치 불붙은 백지 같았다. 그가 저항할수록 타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그렇게 목신의 눈앞에서 빙황은 산 채로 조금씩 타들어 가며 죽었다.마지막 남은 잔념마저 불타 사라질 때까지.빙황은 추락했다. 신계에서 황제로 책봉될 정도로 강력했던 황자가 결국에는 털끝 하나 남지 않고 불태워졌다.목신은 이제야 윤구주가 얼마나 끔찍한 존재인지 깨달았다!그에게 맞섰다가는 이런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니! 윤구주는 다시 목신 곁으로 돌아왔다.그저 눈빛을 마주친 것만으로도 목신은 똥오줌을 지릴 정도로 지레 겁을 먹었다.지난번에는 앙심을 품고 거짓으로 용서를 빌어 훗날 복수를 노렸다면, 이번에는 목신이 진심으로 겁에 질렸다.이
“내가 남해에서 그 일로 고생하는 동안에 너는 동북 쪽으로 냅다 튀어서는 감히 날 구하러 왔다고 입을 놀려?” 윤구주가 곁으로 다가가자 무모한 백호는 씩 웃더니 고개를 돌려 냅다 도망쳤다.“어딜 도망가!”“으악!”태백산이 진동했다. 백호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휙!빙황의 위압감이 사라지자 주작은 재빨리 태백산 내부로 들어섰다. 원래는 왕을 지원하고 백호가 살아있는지나 볼 겸 왔다. 그런데 백호가 앞에서 도망가고 윤구주가 구름을 타고 뒤쫓으며 때때로 금빛 번개를 불러내어 공격하는 모습이 보였다.“이... 쯧! 백호 녀석, 내공이 이렇게 높았나? 이미 최고급 경지에 이르렀잖아!” 주작이 놀라며 말했다. 주작은 백호의 내공에 놀랐지만, 윤구주에게 호되게 얻어맞는 것에는 놀라지 않았다. 분명 윤구주가 그를 혼내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닌 듯했다.“백호, 정말 ‘어리석은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군. 게다가 저 녀석은 목숨까지 아끼지 않으니, 두 가지를 모두 갖췄어. 정말 명줄이 긴 녀석이야.” 현무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역시 백호니까 저러고도 사는 것이라 생각했다. 현무나 주작이었다면 벌써 팔백 번은 죽고도 남았을 것이다.윤구주는 백호를 실컷 두들겨 패고 완전히 굴복시킨 후에야 세 사람을 데리고 태백산을 떠났다. 아까 거의 죽을 뻔했던 백호는 윤구주가 부르자 언제 그랬냐는 듯 벌떡 일어나더니, 덤으로 아직 기절해 있는 남궁서준을 등에 업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은 분계선의 최전선에 도착했다. 삼만 명의 흥주군이 이곳에 집결하여 대기하고 있었다. 윤구주가 도착하자 그동안의 긴장된 분위기는 순식간에 폭발적으로 타올랐다. 삼만 명의 병사들은 한껏 흥분해서 불타오르는 열정으로 구주왕의 이름을 우렁차게 외쳤다.설령 눈앞이 지옥이라 할지라도 윤구주가 명령만 내리면 이 삼만 명은 목숨을 걸고 맹렬히 돌진할 것이었다. 구주왕이 강림함과 동시에 세 명의 대군신이 함께하니, 이 싸움을 어떻게 질 수 있겠는가.분계선 문
북주국은 원래 남주국보다 부유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번에 윤구주에게 철저히 짓눌리며 국주의 위신마저 땅에 떨어졌다. 이대로라면 귀국 후 왕위마저 위태로울 것이 분명했다.이에 그는 더욱 비굴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노예처럼 몸을 낮춰 윤구주의 환심을 사려 한 것이다. 하지만 북주국의 국운이 짓눌린 후 곧바로 그 화살은 남주국으로 향했다.현재 남주국의 병력 십만이 목신의 힘으로 얼어붙어 전멸했다. 십만의 정예군을 단번에 잃은 것은 남주국에겐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설령 이 병력이 온전했다고 해도 화진의 흥주에서 반란을 일으키는 것 정도가 고작이었을 것이다. 감히 화진의 주중에 하나와 승부를 겨뤄볼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정말 화진의 화를 돋우면 북역의 병력만으로 남주국은 한순간에 멸망할 수 있었다.남주국 국주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윤구주를 알현하러 왔다. 가까이 다가서기도 신하들의 부축을 받아 겨우 서 있을 정도였다. 윤구주의 차가운 눈빛이 한 번 스치자, 남주국의 모든 신하들은 즉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국주는 아예 땅에 엎드려 두려움에 몸을 떨다가 실금까지 하고 말았다.이 모습을 본 윤구주는 눈을 가늘게 떴다. 남주국은 상당히 부유한 나라였다. 오랜 세월 국운이 번창하여 한때는 화진을 능가하기도 했다. 지금도 남주국의 인당 재산은 화진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좋은 시절이 아깝지도 않은지 남주국은 문제를 일으키려 했다. 수십 년 동안 화진의 문화를 표절하고 역사를 마음대로 조작하며, 화진의 절반이 넘는 영토를 과거 남주국의 것이라 주장했다. 심지어 공자마저도 남주국 출신이라 우겼다.이처럼 방자한 행위는 반드시 단죄해야 했다. 윤구주는 말없이 흥주의 두 대사를 훑어보았다. 주승진은 반응이 둔해 윤구주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의 성격대로라면 현장에서 남주국의 모든 신하들을 참수했을 것이다. 하지만 흥주성 감독은 달랐다. 그는 지금 굳이 피를 흘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해했다. 이미 북주국을 짓밟아 위세를 떨쳤으니,
그들은 공주마마가 아니라 형수님이라고 불렀다. “어머나, 우리 공주마마께서 도착하셨네.” 방 밖에서는 백호가 정태웅과 공수이와 함께 화투를 치고 있었다. 주작은 흥미가 없는지 벽에 기대어 창밖을 바라보며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려 훑어보았다. 그 눈빛은 엄청 괴상했다. “어라? 형수님 오셨네!” 화투를 치던 공수이는 임홍연을 보자마자 패를 던져두고 아첨하러 달려갔다. 질 위기에 처한 백호는 교활하게 웃더니 정태웅 앞에서 공수이의 패를 몰래 훔쳐봤다. 그리고 안 좋은 패를 바꿔치기한 뒤 좋은 패만 남겨두었다. “아니, 백호 형님! 이러면 안 되죠!” 정태웅은 불만을 토로했다. “닥쳐! 웃어른 말씀에 따를 줄 알아야지. 내가 네 아비다! 게다가 공씨 가문 저놈은 외부인이야. 우린 같은 편이잖아. 팔은 안으로 굽어야지.” 백호가 호통쳤다. 정태웅은 어이가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냥 화투 치는 중인데 아무리 형님이라도 이렇게 함부로 해서는 안 되잖아요!” 정태웅이 말을 듣지 않자 백호는 주먹으로 정태웅을 한 대 쳤다. “항복할 거야?” “흑, 이건 그냥 괴롭히는 거잖아요. 저 안 해요.” “뭐? 지금 감히 안 하겠다고?” 퍽! 주먹은 또 한 번 날아갔다. 정태웅은 정말 어이없었다. 하지만 백호 같은 무법자를 만나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때 아첨을 다 한 공수이가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손에 남은 세 장의 패, 두 눈이 퍼렇게 멍든 정태웅과 패를 들고 히죽거리는 백호를 보고 모든 것을 깨달았다. “너 이 자식, 이거 반칙이야!” 공수이는 곧바로 패를 내던지며 욕을 퍼부었다. “어쭈, 공씨 가문 놈이 감히 나한테 덤비는 거야?” 백호는 주먹을 휘둘러 공수이를 마구 두들겨 팼다. 결국 두 사람은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백호와 함께 화투를 쳤다. ‘이런...’ 임홍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것이 바로 강한 자 위에 더 강한 자가 있다는 거지.’ 정태웅과 공수이
방 안에서 윤구주는 공법을 거두고 남궁서준이 깨어나는 것을 확인했다. “구주 형님...” “응, 남궁 가문 사람들은 이미 북주로 보내 잘 배치해 뒀어. 그리고 한 가지 부탁할 일이 있어.” 윤구주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남궁서준은 바로 일어났다. “구주 형님, 뭐든 말씀하세요.” 이 생기발랄한 소년을 보며 윤구주는 문득 자신의 젊은 시절이 떠올랐다. 남궁서준은 정말 윤구주와 여러 면에서 닮았다. 의리 있고 정의로우며 언제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만 남궁서준은 윤구주보다 운이 좋을 뿐이었다. “북주는 아직 안정되지 않았어. 남궁 가문을 북역으로 옮겨 북역 제일의 가문으로서 대대로 북주를 지키게 하고 싶어. 네 생각은 어때?” 윤구주가 물었다. “네? 구주 형님, 이건 중대한 일이라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아버지께 물어봐야 해요.” 남궁서준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대체 무슨 일 때문에 이렇게 심각한 분위기를 잡나 했더니...’ 윤구주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그가 결정권이 없었다면 물어볼 이유가 없었다. “서준아, 내가 너에게 묻는 것은 이미 남궁 가문과 상의한 후라는 걸 알아둬.” 윤구주가 말했다. 남궁서준은 멍해졌다. ‘무슨 뜻이지? 아버지가 나에게 결정하라고 한 거란 말인가?’ 남궁서준의 반응을 본 윤구주는 창가로 가서 창문을 열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넌 이제 공식적으로 세상에 나섰어. 태백산에서의 수련은 너에게 하나의 시험이지. 그 시험을 통과함으로써 남궁 가문에게 인정을 받았어. 이제부터 너는 남궁 가문의 후계자이자 미래 남궁 가문의 리더야.” 이전까지 남궁서준은 남궁인에게 어린애 취급을 받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남궁인은 남궁서준이 이미 홀로서기 할 수 있으며 심지어 자신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었다. “오늘부터 아무도 너를 통제하지 않을 거야. 앞으로의 길은 네가 스스로 개척해야 해.” 윤구주가 말했다. 이
“하지만 네가 나서지 않았다면 남궁 가문의 실력으로는 백호의 화형 성수조차 깨뜨릴 수 없었을 거야. 네 아버지는 너보다 더 어려운 입장이었지. 한편으로는 화진을 지켜야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친아들을 보호해야 했으니까.” 윤구주의 이 설명을 듣고서야 남궁서준은 아버지의 진심을 이해할 수 있었다. 눈물이 비 오듯 쏟아지며 흘러내렸다. “다행히 모든 게 지나갔어. 넌 공식적으로 세상에 나섰고 홀로서기 할 수 있게 되었어. 그래서 네 아버지가 가문의 이주 결정권을 너에게 맡긴 거야. 난 네 의견을 완전히 존중해.” 윤구주는 웃으며 말했다. 남궁서준의 정신이 다른 데로 가 있는 걸 눈치챈 윤구주는 더 묻지 않기로 했다. 그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기로 한 것이다. 윤구주가 돌아서려는 순간, 남궁서준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궁 가문은 북주로 이주하겠습니다. 우리 남궁 가문이 대대로 북주를 지킬 수 있게 해주시니, 이는 남궁 가문의 영광입니다!” 윤구주는 이 말을 듣고 돌아보았다. 남궁서준의 눈빛은 확고했다. 이 순간 윤구주는 드디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다 컸네.’ “좋아, 나를 따라와.” 윤구주가 앞장서 걸어가자 남궁서준은 한 발짝도 뒤처지지 않고 따랐다. 윤구주는 문을 활짝 열었다. 밖에서 싸우던 일행은 모두 얼어붙었다. 방금까지 주작에게 시비를 걸던 임홍연은 교활한 표정을 지으며 윤구주에게 고자질했다. “윤구주, 네 부하 주작이 날 괴롭혔어! 봐! 저기서 아직도 이를 드러내며 날 협박하고 있잖아!” 윤구주는 주작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강한 질투심이 가득했고 억울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임홍연은 반응이 더 빨랐다. 그녀는 주작보다 먼저 울음을 터뜨렸다. 백호는 아주 재미있다는 듯 구경했다. “하하, 왕. 그냥 주작도 공주로 봉하시죠. 주작은 항상 왕을 아버지처럼 모시잖아요. 주작의 소원대로 임홍연와 다투게 하시죠. 생각만 해도 재미있겠네!” 주작은 이 말을 듣고 얼굴이 붉어졌다. 임홍연은 깜짝 놀랐다. ‘뭐
모두 총독부로 자리를 옮겼다. 윤구주는 북역의 크고 작은 문무 관료들을 소집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는 걸 보고 남궁서준은 의아해했다. ‘남궁 가문 이주 문제인데 이렇게 공식적으로 할 일인가?’ 윤구주가 영주 문서를 꺼내자 남궁서준은 비로소 깨달았다. “남궁서준, 앞으로 나오게. 넌 태백산 전투에서 공을 세워 화진에 이바지했으므로 특별히 너를 북주 후작으로 봉하며 관청을 개설하고 관직을 설치해 남궁 세가를 이끌고 영원히 북주를 지키게 하노라!” 남궁서준은 당황했다. ‘무슨 뜻이지? 어떻게 갑자기 후작으로 봉해지는 거지?’ “네가 당황하는 건 알겠어. 사실 국주께서는 일찍이 후작으로 봉할 뜻을 가지고 계셨지만 네가 공을 세우지 않아서 결정하기 어려웠지. 이제 공을 세웠으니 국주의 뜻을 따르게 된 거야. 오늘부터 남궁서준은 화진의 제일가는 소년 후작이다! 명을 받들게. 혹시 거역할 생각은 아니겠지?” 이에 남궁서준은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문서를 받았다. 남궁서준의 머리로는 윤구주가 이렇게 한 목적을 알 수 없었다. 후작으로 봉한 것은 다른 문제였다. 북주에는 이미 진동왕이 버티고 있어 남궁 가문을 하나 더 두는 건 다소 불필요했다. 진동왕을 경계하는 의미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건 화진의 세가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윤구주는 단지 그들을 괴롭히기만 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잘못이 있으면 반드시 바로잡고 공이 있으면 반드시 상을 주었다. 남궁 가문이 후작으로 봉해질 수 있듯 다른 세가들도 공을 세우면 후작 지위에 오를 수 있다. 세가 문벌은 다 죽일 수 없는 법이다. 이 가문을 멸하면 저 가문이 나타날 뿐, 중요한 건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고 바른 군주의 도리를 지키는 것이다. 그날 밤, 윤구주는 형제들과 한자리에 모여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즐겁게 보냈다. 윤구주가 방으로 돌아오자 임홍연이 슬그머니 문 옆을 돌아 밖에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화진의 공주라면 당당하게 문으로 들어와야지. 거기서 몰래 뭐 하는 거야?” 윤
‘헐, 대박.’진동왕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윤구주를 신처럼 떠받들었다.‘이게 진짜 신이지. 곤륜에 있는 그 자식들은 모두 가짜 신들이었어. 허위적이기 그지없지.’오늘 밤 그는 여러 강자의 싸움을 직접 목격하고 강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문경우도 아주 강했지만 윤구주가 나타나자 문경우는 도망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고 영혼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윤구주의 술법에 의해 영혼도 남기지 못하고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승리는 결국 화진에게 돌아갔다. 화진을 무너뜨리려는 역적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윤구주는 자신의 힘으로 화진의 막강한 실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문경우를 처단한 윤구주는 즉시 임정설의 치료에 돌입했다.“짐은 별일 없으니 먼저 왕숙과 네 친구를 치료해줘라.”임정설이 임성진과 청해를 가리키며 말했다.청해는 이미 정신을 차렸다. 비록 상처가 심해 반쯤 죽은 상태였지만 화진 국주에게 인정받은 첫 순간이었다. 묘한 영예감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며 날아갈 듯 기뻤다.“이 두 사람 모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주님이 더 위험하십니다. 경지를 무리하게 넘어서셨고 섭혼번 아래서 정기를 너무 많이 잃으셨습니다. 지금 국주님의 기운이 안정하지 않으니 제 도움이 없다면 폭주 할수도 있어요. 그때가 되면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윤구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임정설은 결국 윤구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다. 윤구주의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황자급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예전보다 죽음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있었다. 윤구주는 임정설에게 풀지 못한 원한이 있음을 눈치채고 치료를 해주며 화진으로 압박했다.“국주님께서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화진에게는 국주님이 필요합니다. 국주님은 30년 동안 화진을 지켜오셨잖아요. 지금 승부가 달린 이 중요한 시점에서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시면 안 됩니다.”임정설
서울 삼천만 명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고 섭혼번이 작동되면 화진의 국운은 영원히 봉인될 것이다.“우리 문씨 가문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쇠퇴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화진의 주인이다. 감히 누가 복종하지 않겠느냐?”문경우는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웃어댔다.이때 하늘에서 천둥이 울리며 공간이 갈라지더니 한 남자가 시체 한 구를 밟고 서울에 강림했다.“웃기고 있네. 문씨 가문이 화진의 주인이 되겠다고? 문씨 가문 따위가 어디 감히 그런 꿈을 꾸는 것이냐? 나 윤구주가 용납하지 않겠다.”우르릉.우렁찬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지자 문경우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윤구주의 기운이 섭혼번 아래에 나타나며 음의 기운을 찢어버렸다.거대한 섭혼번이 관통당하자 전법이 무너지고 문경우는 피를 토해냈다.고개를 돌리니 윤구주가 허공에 우뚝 서 있었고 그의 발아래에는 아사 신전의 신주 오딘의 시체가 보라색 번개에 휩싸여 있었다.“이게 무슨? 네가 신왕 오딘을 죽였다고?”문경우는 오딘의 시체를 바라보며 벌벌 떨었다.“이 개 같은 자들이 여러 번 화진을 범했으니 죽이는 게 당연하지. 나는 오딘뿐만 아니라 아사 신족 전체를 멸했다. 이제 곤륜에 아사 신족은 존재하지 않는다.”윤구주가 공중에 우뚝 서서 음양의 기를 손아귀에 감아쥐었다. 그의 머리 위 갈라진 공간 너머로 아사 신전의 폐허가 보였다. 수만 신령이 죽어 아사 신족이 멸족한다는 종말이 예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문경우의 눈에 비친 윤구주는 무적의 화신이었다. 그는 윤구주와 싸울 용기도 내지 못하고 뒤돌아 도망치려 했다.“너희들이 내가 없을 틈을 타 화진의 기운을 봉인하려 했다고? 문씨 가문은 정말 개수작만 부리는군. 예전에는 나를 죽이려 온갖 더러운 수작을 다 부렸잖아. 내가 없는 틈만 노리는 걸 보니 이젠 내가 무서웠나 보지?”“팔기지, 술자결.”윤구주가 손짓하자 삼천만 생령이 국운 속으로 모여들었다. 백성들은 새 국운에 각자의 고마운 마음을 담아 보냈고 모두의 영혼이 육체로 돌아가며 위기가 해소되었다.“팔기지, 어
태양으로 변한 그 부적은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독한 태양 빛이 대지를 지지며 수많은 건물을 녹여버렸고 그 안에 있던 평민들도 산 채로 타죽고 말았다.“그만해. 화진의 백성들을 건드리지 마라!”임정설이 분노에 차 외쳤다.“너와 나는 모두 화진의 절정 수련자인데 어찌 무고한 자들을 끌어들이느냐?”“하하! 무고하다니? 임정설, 현실을 직시하지. 이 하등한 것들은 개미나 다름없어. 한 무리를 죽여도 금방 다시 번식할 테니. 게다가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삼천만 백성의 목숨으로 화진의 새 국운을 봉인하는 거라네. 우리 문씨 가문이 얻지 못하는 것은 부숴버려도 남에게 주지 않을 거야.”문경우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는 윤구주가 문씨 가문의 뜻을 거역하는 것에 화가 났다.만약 윤구주가 그들에게 순종했다면 지금쯤 화진의 주인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천추만대가 지나도 윤구주는 여전히 화진 최고의 명군으로 남았을 것이다.“저 빌어먹을 윤구주. 역사는 승자가 쓴다는 걸 모르나? 역사를 조작한 왕조가 그렇게나 많은데 유독 그놈만 고집을 부리잖아. 화진의 재난은 모두 윤구주 때문이야. 명군이 되길 거부한다면 영원한 역적으로 만들 거야. 윤구주는 역사의 수치주에 못 박혀 천년만년을 욕먹을 것이다.”“닥치거라! 구주는 우리 화진의 영웅이다. 너 같은 쓰레기가 어찌 감히 구주를 함부로 논하는 것이냐?”그의 말에 단단히 열 받은 임정설은 양혼을 불살라 목숨을 걸려 했다. 그러나 문경우가 이미 임정설의 기를 봉쇄하고 제삼의 전법으로 그의 영혼까지 잠가버렸다.“임정설, 내 앞에서 자살조차 못 하는 주제에 어디서 목숨을 걸겠다고 떠드는 건가?”문경우는 기고만장했다. 임정설이 황자가 되면 뭐하나? 어차피 문씨 가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는데.“오늘이 바로 화진 황제의 멸망일이라네. 섭섭해하지 말게. 윤구주도 곧 자네 뒤를 따를 거니까. 하하!”그가 양손을 내리자 백 미터 크기의 사악한 검은 기발이 구름을 뚫고 서울 상공에 나타났다.“이, 이것은 섭혼번이군!”그 거대
말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쓸모없는 대화는 필요 없었다.임정설은 황제의 의지를 칼로 삼았다. 황자의 기세가 모여 금빛 칼날을 형성하더니 국운을 상징하는 그 칼로 문경우를 향해 내리쳤다.우르르.음과 양이 맞부딪치며 터져 나온 충격파가 반경 수 킬로미터를 휩쓸었다. 사령부 빌딩과 인근 건물들의 유리가 모조리 산산조각이 났다.두 사람은 빌딩 꼭대기에서 결투를 시작했다. 칼 빛이 번뜩이며 천지의 영기를 뒤흔들었고 광풍과 폭우가 몰아쳤다. 산해가 울부짖으며 서울은 보라색 번개와 금빛 불길에 휩싸였다.그들은 각각 화진 최강의 무도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정의와 사악의 대결이 아니라 임씨 가문과 문씨 가문의 결전이었다.서울 상공에서는 용의 형상이 구름 사이를 휘저으며 흉수와 피 묻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이게 바로 황자의 힘인가. 정말 굉장하군.”진동왕마저 넋을 잃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다른 도시의 지원병들이 서울에 도착해 진동왕과 연락을 취했고 이 소식을 해외에 있는 현모와 주작에게 즉시 전했다.“국주께서 문경우와 결전을 벌이고 계신다고?”“국주께서 황자급 경지에 오르셨다니.”이는 분명히 좋은 소식이었다. 비록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었지만 윤구주와 임정설의 관계는 남달랐다. 임정설은 윤구주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너무 기뻐하지 마라. 저 문경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곤륜에서 오랫동안 잠적하며 수많은 신전의 공법을 익혔어. 저놈이 서울로 온 목적은 바로 임정설을 죽이기 위함일 것이야.”옆에 있던 황보웅이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주작과 현모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화진이 무사하고 임정설이 문경우를 물리치길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한창 싸우고 있던 두 강자는 공중에서 다시 한번 맞붙었다. 두 사람의 손짓 하나에 산이 뒤집히고 천지가 진동했으며 그들의 기세는 수백 리 밖까지 영향을 미쳤다.임정설은 기세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임정설은 문경우가 극 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전법이 발동되면 서울 수천만 사람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야. 비록 이길 자신은 없지만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화진의 백성을 위해 싸우겠다. 구주군과 금위군의 여러 장수들은 듣거라. 짐이 전사하면 너희들이 나라를 지킬 책임을 지고 계속해서 적들을 섬멸하라.”임정설은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나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홀로 서울 사령부로 날아갔다.서울 사령부는 진동왕과 수비영이 도착하기 훨씬 전에 함락된 상태였다. 주둔지는 죽음의 적막에 휩싸여 있었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라붙은 백골들이 널브러진 참혹한 장면뿐이었다.당시 강적의 침입을 받은 주둔지의 병사들은 한 명도 물러서지 않고 전원이 전사할 때까지 적들과 맞서 싸웠을 것이다.이 생각에 임정설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우리 화진의 자랑이다. 저 요망한 것들이 화진을 어지럽힌 지 얼마나 되었느냐? 이 빚을 짐이 갚아 내지 못하더라도 화진 자손들이 반드시 값나낼 것이다.”그는 절대 화진의 혼란에 맞선 마지막 황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선인이 걸어온 길을 밟으며 그의 발걸음은 더욱 확고해졌다.이 순간 황운이 임정설의 몸에 서리더니 새로운 국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순간부터 그는 특정된 누군가의 왕이 아닌 천하 만민이 우러러보는 황제가 되어 있었다.황도가 더해지자 임정설의 기세는 한층 더 강해졌다. 그는 사령부 빌딩 최상층에서 서울을 어지럽힌 장본인을 마주했다.검은 도포를 걸친 그 자는 사악한 부적으로 몸을 감싼 채 요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바로 그가 전법으로 서울을 뒤덮고 있었다.“참으로 예상치 못했어. 화진에 또 한 명의 황자가 나타나다니. 윤구주는 정말 신기하다니까. 자신의 기운으로 국운을 바꾸고 자네의 운명까지 바꿔놓았군. 하지만 내가 충고 하나 해주지. 임정설 자네가 황자가 된 이상 사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야. 넌 사흘 안에 목숨을 거둘 것이란 말이지.”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은 임정설이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을 알아
국주 임정설은 해청현의 음기를 제거한 후, 그를 보호하던 기운까지 걷어내 양기로 해청현을 완전히 눌러 버렸다.이게 바로 미친 스님이 말했던 진정한 자제력이었다.“해청현은 수법만 닦고 수도는 하지 않았으며 몸만 수련할 뿐, 마음은 단련하지 않았지. 그러다 보니 결국 다 헛것이 되어버린 거야.”미친 스님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그는 해청현에게 타고난 수도의 체질을 주었지만 그에 걸맞은 의지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해청현은 더는 감당하지 못하고 되려 휘말려버린 것이었다.임정설의 머리 위엔 성스러운 빛이 맴돌았고 온몸엔 천지를 뒤덮을 만큼의 정기가 흘러넘쳤다. 해청현은 결국 싸움에서 져버렸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도 임정설처럼 황자급 경지였다면 이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작 두 사람의 경지가 같았다 해도 여전히 자신이 완전히 압도당했을 거라는 걸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임정설은 손바닥을 휙 내리치더니 끝까지 미련을 품던 해청현을 그 자리에서 즉사시켰다. 그는 영혼조차 남지 않은 채 완전히 소멸당했다. 이것이 바로 겉보기엔 수련했을지 몰라도 한 번도 진정한 수도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다는 증거였다.“국주님이 이렇게까지 강했다고?”공수이는 멍하니 중얼거렸다.“그러게 말이야.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해졌지?”진동왕은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복잡한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예전에는 그가 임정설보다 더 강했었고 임정설은 국운 덕에 간신히 그를 이길 정도였으니 말이다.하지만 이젠 내공 차이가 너무 벌어져서 더 이상 비교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그제야 깨어난 백호는 조금 전 자신이 국주를 진왕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백호, 널 속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넌 내가 올 때까지 버티지 못했을 테니까...”임정설은 양기를 끌어내어 백호의 몸속에 주입했고 그의 정기를 빠르게 회복시켰다. 이렇게 되면 백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회복할 것이었다.그 모습을 본 공수이와 진동왕은 또다시 멍해
“뭐? 저게 누구지? 지금 화진에 저런 강자가 또 있었다고? 설마... 저자가 바로 구주왕이란 말인가?”청현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당황스레 외쳤다.누가 알았겠는가, 이 결정적인 순간에 고수가 나타나다니!“젠장... 네가 누구든 상관없다!”“나는 반드시 백호를 죽인다!”청현은 더는 여유가 없었다.상대의 기세는 너무나도 강력했고, 이미 백호와 싸우면서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그와 맞붙는 건 목숨만 붙어 있을 뿐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청현은 그저 백호부터 처리하려 했다.“이런 건방진 것! 우리 화진의 전쟁 신이 너 같은 흉수에게 쓰러질 수는 없다!”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활기찬 천 음 소리!금빛 실루엣이 구름을 뚫고 내려오더니 손바닥으로 청현을 튕겨냈다!눈앞의 인물을 본 청현은 잠시 얼어붙었다. 모르는 인물이다.하지만 이 압도적인 기운은 분명 고위자일 것이다.화진에서 구주왕 말고는 누가 이런 존재감을 뿜어낼 수 있겠는가?기절해 있던 진북왕은 익숙한 기운에 눈을 번쩍 떴다.그리고 그 실루엣을 본 순간 기절할 뻔했다.“이런! 임정설! 너 황자가 된 거야!”“흠? 왕숙께서 실망하셨나 보네요??”금빛 그림자가 사라지며 실체가 드러났고, 그 모습은 바로 용맥에 들어가 수련하던 화진의 현직 왕 임정설이었다.“폐하 만세!”구주군 장병들은 격동된 마음으로 일제히 무릎 꿇고 경례하며 외쳤다.자신들의 왕이 서울로 화진의 백성을 구하러 온 것이다!“임정설?! 그게 어떻게 가능해! 아무리 강해도 극한신경 정도일 텐데!”청현의 얼굴이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졌다.극한신경과 황자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황자 한 명이면 수십 명의 극한신경을 상대할 수 있다!서울에 황자가 주둔해 있다면, 곤륜영역조차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설령 청현이 아무리 천재고 강하더라도 황자와의 싸움은 불가능했다.자칭 수요산 제일검이라던 청현은 위축됐다.그 모습을 본 임정설은 냉소하며 말했다.“이게 바로 검객이란 말인가? 검객의 마음은
진황은 외공만으로 도에 이른 황자였다.어떠한 술법도 수련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백호가 중얼거리며 ‘진황신공!’을 외치고 있으니 이건 누가 봐도 미친 소리였다.“미쳐야 도를 이루는 법이다. 백호는 앞날이 창창하구먼.” 미친 스님이 아미타불을 외치며 말했다.“미쳤어, 미쳤어! 전부 다 미쳐버렸다고!” 진북왕이 고함을 지르다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기절해버렸다.그 사이 백호의 기세는 끝없이 치솟고 있었다!정신은 나갔지만, 힘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청현은 문득 깨달았다. 백호가 저토록 광폭한 이유—바로 그놈의 몸속에 흐르는 성수의 피였다.“이 썩을 놈... 성수 피가 아니었으면 네가 뭔데 날 상대로 이러는 거냐!”청현은 음기를 뿜으며 맹렬하게 연속으로 공격을 퍼부었다.그 음산한 기세에도 불구하고 백호는 오히려 직선 돌진했다.공격은 완전 예측 불가였다.수요산 검종은 온갖 검술과 전법에 능했지만, 다음 공격이 뭔지도 모르는 미친놈을 상대로는 청현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결국, 또 한바탕 두들겨 맞고 땅바닥을 굴러다니던 중 놀랍게도 백호가 자신의 음신사체를 흡수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내 음기를 집어삼키다니?! 이 괴물 같은 놈!”“음기여 무한하라! 흑검이여, 사악을 베어라!!!”시커먼 흑검이 다시 응집되자, 수백 개의 검날이 연속으로 쏟아졌다.백호의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검은 피를 흘렸지만——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대로 돌진했다!“개자식... 음기야! 나에게 힘을 줘!!”청현은 검을 땅속 깊숙이 꽂았다.지맥에서 미친 듯이 영기를 빨아들이자, 머리 위에 떠 오른 음기 마기의 형상은 산만큼 거대해졌다!그 압도적인 힘으로 청현은 백호를 단숨에 쓰러뜨렸다.이건 이미 백호가 감당할 수 없는 한계치를 훨씬 초과한 위력이었다.쿵!!백호는 그대로 땅에 쓰러졌지만, 그런데도 그는 의식을 잃지 않았다.다만 입에서 나오는 건 누가 들어도 미친 소리였다.“황이 온다... 황... 황이 온다....
“우리 스승 말이야, 진짜 고집쟁이에다 구닥다리야. 정의와 사악은 절대 함께할 수 없다고 믿고 목숨 걸고 몇백 년 동안 싸우고 피 흘렸지만 무슨 소용이 있어? 인마 좀 없앤 거 빼고는...?”“스승께서 날 산에서 내려가 속세의 삶을 보라고 하신 건, 결국 수련을 위한 경험이었겠지. 하지만 세상을 직접 겪고 나서야 똑똑히 알게 됐어. 이 세상은 결국, 강한 자가 무적이고 이긴 자가 왕이 되는 법이야...”“세상에는 애초에 정의와 악, 흑과 백 따윈 존재하지 않아. 선악의 기준이란 결국 입만 살은 자들이 지껄이는 헛소리일 뿐이지. 역사가 진실이라고 믿어? 예로부터 어느 왕조의 흥망이 피바다와 시체더미 없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나?”“무릇 장수가 공을 세운다는 건, 수만의 백골 위에 선다는 뜻이지. 그 윤구주가 '구주왕'이라 불리는 것도, 결국은 피로 쟁취한 자리 아니겠어?”“주먹이 곧 진리다. 내가 황위에 오르는 날, 선악이든 흑백이든 모두 내 기준으로 정의된다!”“백호, 이제 죽어라.”청현이 공격하려던 찰나 하늘 위의 백호가 먼저 움직였다. 다시 성수인을 발동하더니, 성수의 허상이 실체로 변해 거대한 기운을 모은 주먹을 뻗었다.그 주먹은 하늘을 가르고 청현을 향해 날아갔다.그러나 청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차가운 음기와 사기 담은 손으로 그 주먹을 받아내고 동시에 백 자 길이의 흑검을 형성해 단칼에 성수의 허상을 두 토막 내버렸다.그 검이 날아간 자리에는 구름이 쪼개졌고, 서울 상공을 덮고 있던 먹구름은 그 검기의 파도에 휩쓸려 모두 흩어졌다.먹구름이 사라졌지만, 서울 상공에는 여전히 짙은 요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태양조차 삼키려는 어둠의 장막처럼.“진법까지 있었어?! 대체 어느 놈이, 언제 이따위 대형 진법을 몰래 깔아놓은 거야?!”진북왕은 혈압이 오르다 못해 피까지 토할 지경이었다.이건 곧 청현이 최종 보스가 아니라는 뜻이다!백호가 청현을 이긴다 해도 그보다 더 강한 놈이 있다는 얘기다.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백호가 청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