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옥.하늘이 찢기고 땅이 꺼지는 것이 마치 세계의 종말이 다가온 것 같았다.윤구주는 두 눈을 감은 채 폭주하는 영기 속에서 끝없는 증오를 느꼈다.이 계략은 문아름이 세운 것이었고 윤구주는 그녀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넌 나를 미워하고 있는 거니? 미워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었어? 어쩌면 네게 무슨 사정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게 변명이 될 수는 없어. 만약 상황이 뒤바뀌었다면 당시 내가 너에 대한 감정으로는 절대 너를 죽이려 하지 않았을 거야.”“팔기지, 팔기귀일.”윤구주의 몸 안에서 강한 기운이 솟구치며 팔기지가 하나로 융합되어 천인의 기세를 드러냈다. 윤구주의 기운이 밖으로 퍼져나가 거인이 되어 그의 몸으로 천지를 떠받들었다.무너져 내리던 천옥은 윤구주의 힘으로 잠시 안정되었지만 이는 단지 시간을 벌 수단이었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윤구주는 천옥 전법을 다시 만들어낼 생각이었다.진기가 다시 나타나고 윤구주가 이전 전법의 단계를 따라 천옥 전법을 만들어갈 때 낯선 기운이 튀어나와 그를 방해했다.이것은 천옥 전법을 세운 곤륜 수련자의 한 조각 신념이었다.“오? 구주왕? 대단하군. 혼자서 천옥의 천지를 떠받치다니. 천옥 전법을 재구성하려는 건가? 하지만 소용없어. 이 전법은 후세에 창조된 것으로 주로 천옥의 영기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해. 하지만 지금은 천옥 외부의 기반이 무너졌기에 네가 전법을 재구성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지.”형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윤구주의 행동이 실로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용기를 존중해줬다.“그쪽은 누구죠? 보아하니 음신도 아니고 분신도 아닌데.”윤구주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처음으로 한눈에 꿰뚫어 볼 수 없는 적을 만났기에 자연스럽게 경계심이 생겼다.“하하! 내가 누구냐고? 지금의 너는 아직 알 자격이 없어. 하지만 힌트를 주겠다. 만약 네가 종문 동맹의 맹주를 쓰러뜨릴 수 있다면 내가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그 전제는 네가 여기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거지. 그만 포기해. 지금 이곳
외부의 위협은 잠시나마 억제되었지만 천옥 내부에서 폭주하던 영기가 다시 폭발했다. 고대의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폭발하면서 이제는 윤구주가 막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구기등선의 힘으로도 부족했다.“구양진용결!”“구음만상결!”아홉 마리의 용이 나타나 천지를 떠받쳤고 아홉 마리의 상이 대지를 지켰다.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더는 억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에너지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미친 듯이 외부로 빠져나갔다.“더는 방법이 없나봐? 너는 정말 강하지만 인간은 인간이야. 아무리 강해도 신이 될 수는 없어. 참 아쉽구나. 이제는 떠나려 해도 늦었어. 나도 너 구주왕의 마지막 길을 보내주고 싶지만 이 신념이 더는 버틸 수가 없구나. 너도 죽을 각오를 하고 남은 거겠지.”거세게 밀려오는 영기가 이 신비한 강자의 신념을 산산조각냈다. 이제 천옥에는 윤구주만 남았다.그 신비한 강자가 말했듯이 후회하기엔 이미 늦었다.“용상 합일.” 윤구주는 강한 압력을 견디며 구룡과 구상을 강제로 자신의 몸에 융합시켰다.음양이 합쳐지며 윤구주의 몸에서 하얀빛이 강하게 발산되었고 그의 두 눈동자는 먹물처럼 까맣게 변했다.하지만 이렇게 해도 윤구주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시간을 끄는 것 뿐이었다.폭주하는 영기를 억제할 방법이 없었다. 그들은 미친 듯이 윤구주의 천술을 들이받았고 점점 더 강해졌다.윤구주는 구오 지존의 내공으로 극 신급 절정이나 사용할 수 있는 천술을 쓰기 시작했다. 경계를 넘어 강제로 사용하는 것 자체가 윤구주에게 엄청난 압력을 주었다.매번 반격이 들어올 때마다 윤구주는 조금씩 상처를 입었고 엄청난 압력 속에서 더는 버틸 수 없었다.“또 다른 방법이 없을까? 이젠 한계야.”윤구주는 입을 벌려 새하얀 피를 토해냈다.폭주하는 에너지가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순간 윤구주는 이를 악물고 결심했다.“안 되겠다. 더 높은 단계의 술법을 사용해야겠어. 천술을 초월한 기술, 성술. 경지는 충분하지만 내공이 부족했기에 일단 사용하면 내 정원
그 후 반년 동안이나 휴식을 취해야 했고 그 이후로 스승들은 절체절명의 상황이 아니면 이 기술을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했다.일단 사용하면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죽더라도 이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지난번보다는 훨씬 순조로웠어. 아마도 내 내공이 많이 강해졌고 음양이 융합되었기 때문일 거야. 더는 시간을 낭비할 수 없어. 이 상태를 오래 유지할 수 없으니 당장 영기를 해결해야 해.”윤구주는 천지의 영기를 모으기 시작했고 동시에 전법을 재구성했다.성체의 가호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곤륜의 남은 전법 조각을 기반으로 할 필요가 없었다.곤륜이 세운 전법은 단지 천술 수준이었지만 지금의 윤구주는 이미 성술을 쓸 수 있었다.순수한 금빛 전법이 운구주의 손에서 빠르게 형성되었다. 전법이 절반쯤 완성되었을 때 그의 정원이 고갈되었고 이어서 수명 소모가 시작되었다.윤구주의 몸은 맨눈으로 보일 정도로 빠르게 노화되더니 성체의 가호로 다시 젊어졌다. 이렇게 노화와 회복을 반복하며 윤구주의 머리카락이 미친 듯이 자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허리까지 닿는 긴 머리가 되었다.다행히 이때 전법은 이미 기본적으로 완성되었고 마지막 부분만 남았다. 부적을 완성하고 성기를 주입하면 전법을 활성화할 수 있었다.바로 이 결정적인 순간 윤구주는 몸을 심하게 떨더니 또다시 하얀 피를 토해냈다. 몸이 다시 빠르게 노화되었고 긴 머리카락도 하얗게 변했다. 이전과 달리 이번에는 젊음을 되찾지 못했다.“수명 소모가 너무 많아서 몸이 망가지고 있어.”윤구주는 더는 자신의 기운을 통제할 수 없었기에 엄청난 양의 성기가 그의 몸에서 새어 나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성기가 어두워졌고 온몸에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탈수한 것처럼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이 지경에 이르자 윤구주는 맨눈으로 보일 정도로 쇠약해졌다.“안 돼, 이것은 천인오쇠의 징조다. 곧 내 의식에 영향을 미칠 거야.”윤구주는 애써 정신을 차리려 했으나 의식이 점점 더 흐려져만 갔다. 눈꺼풀에
국운이 무너지자 사기가 완전히 떨어졌다. 진동왕의 얼굴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이 가득했다. 임씨 일가의 기운은 이미 끊어졌다. 이제 윤구주로 인해 새롭게 탄생한 국운마저 문제가 생겼다. “우리 화진은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건가?” 진동왕은 하늘을 바라보며 한탄했다. 그의 마음속에 끝없는 서글픔이 밀려왔다. 현모는 이미 죽음을 각오한 상태였다. 만약 윤구주가 죽는다면 그는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었다. 십만 대군의 기세가 완전히 흐트러졌다. 의심, 공포, 당혹, 분노 등 수많은 부정적인 감정이 대군 속으로 퍼져 나갔다. 문아름은 화진 국경과 설산의 정상에서 최근 전해진 천옥의 정보를 받았다. “아름아, 역시 너야. 너도 알다시피 저 녀석은 이미 성술을 깨달았어. 영기가 새어 나가는 것을 막으려면 성기로 전법을 재구성해야 해. 하지만 윤구주의 실력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일단 사용하면 반드시 속전속결로 끝내야 해. 하지만 영기를 억누르고 전법을 만드는 것이 순식간에 끝날 일이겠니? 지금은 외부나 천옥 내부 모두 영기가 다시 거세게 일고 있어. 아마 구주왕이 천인오쇠에 들어선 것 같아. 이번에는 윤구주를 죽일 수도 있을 거야.” 문창정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윤구주가 죽으면 문씨 가문을 막을 자는 없을 거야!’ 하지만 문아름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그녀가 세운 계획과 달랐다. “윤구주는 천인의 위엄을 지닌 자예요. 게다가 이렇게 큰 일이 벌어졌는데 곤륜 구역의 몇몇 파벌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죠. 더구나 윤구주에게는 여러 스승이 있어요. 그들 중 누구 하나 최강자가 아닌 사람이 있을까요? 윤구주는 천하의 백성을 지키기 위해, 또한 곤륜 구역을 안정시키기 위해 싸우고 있어요. 그들이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어요.” 공적이든 사적이든 그들은 절대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화공두목만 잠깐 모습을 보였을 뿐이다. 이건 너무나 비정상적이었다. 너무 비정상적이라 이상했다. “걱정하지 마, 아름아
천옥의 전법에 남아 있던 약간의 에너지를 활용하려고 했기 때문에 이 술법을 활성화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윤구주가 방금 천인오쇠로 인해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을 때 그가 펼친 성술이 효력을 잃었다. 천옥을 억누르던 힘이 사라지면서 붕괴가 계속되었고 영기가 흘러나와 원래의 전법을 완전히 파괴했다. 바로 그 순간, 그의 스승이 남긴 술법이 활성화되었다. 붉은 연꽃들이 온 세상을 가득 채웠다. 윤구주는 이 붉은 연꽃이 천옥의 난폭한 영기를 분리해 내고 순수한 천지 영기를 흡수하는 것을 보았다. 남은 영기는 더욱 난폭해졌지만 그 양은 크게 줄어들었다. “스승님, 이게 무슨 뜻이죠? 천옥의 전법이 붕괴할 때 누군가가 목숨을 걸고 영기를 안정시키려 할 것이라고 처음부터 예상하셨던 건가요?” 윤구주가 의아해할 때 붉은 연꽃들이 그를 향해 모여들었다. 그 순간, 화공두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든지 천옥이 붕괴할 때 목숨을 걸고 천하를 위해 희생하려 한다면 그것은 인간 세상의 큰 축복이자 백성들에게는 더없는 행운이지. 이 술법은 천지 영기를 분리할 수 있어. 이 영기를 연화하여 수련에 큰 도움이 되도록 해보거라. 이것은 봉신전쟁 이후로 저장되어 온 만 년의 천지 영기야. 많은 이들이 갈망하던 거지. 이제 모두 너에게 모였으니 이 기회를 통해 대진을 재건하고 이 난폭한 영기를 천옥에 봉인하길 바라.” 순수한 천지 영기가 윤구주의 몸으로 스며들며 그의 기운이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예전에는 허약해 말조차 제대로 하기 힘들었던 윤구주였지만 지금은 기운이 넘치고 힘이 넘쳤다. 그는 평생 이렇게 상쾌했던 적이 없었다. 그러나 윤구주가 흥분에 빠져 있을 때 억제되지 않은 천옥의 난폭한 영기가 다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윤구주는 아직 천지의 순수한 영기를 완전히 연화하지 못한 상태였다. 지금 움직이면 이 좋은 기회를 낭비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화진의 수많은 생명이 걸린 문제였기에 윤구주는 탐욕을 부리지 않았다. 그가 조치를 취하려는 순간 금빛 기운이 그의 몸
“천지에 정기가 있어. 내가 온갖 계략을 써도 그의 마음속에 깃든 호연지기를 무너뜨릴 수 없구나.” 상황이 급변한 것을 감지한 문아름은 속이 뒤집어졌다. 그와 동시에 문창정도 화진 북주에서 전해진 소식을 들었다. “진동왕과 현모가 십만 대군을 이끌고 전장으로 향하고 있어요. 그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하며 군대가 아직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승리를 확신하는 살기가 전선까지 몰아치고 있어요.” 이 소식에 그 강인했던 문창정조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모든 치밀한 계획을 세웠건만 결국 윤구주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다니.’ 천옥에서 윤구주는 기세가 압도적이었으며 한 사람의 기운이 천지 사이에 우뚝 서 있었다. 그가 발산하는 정기는 구름을 뚫고 창공을 향해 솟아올랐다. 그 기운은 모든 혼란과 환상을 깨부수고 있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성인의 경지에 이르렀어.” 윤구주는 다시 한번 성술을 펼쳤다. 하지만 이번엔 자신의 정기를 혹사하지 않고 새로운 경지의 힘으로 완전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한 줄기 성기가 전법에 들어가며 전법의 핵심을 밝혀 새로운 진법이 활성화되었다. 금빛 결계가 사방으로 퍼지며 완벽한 천옥을 형성했다. 난폭한 영기는 완전히 봉쇄되었다. 대국은 이미 결정되었고 위협은 해소되었다. 하늘을 두른 정기는 본분을 다한 후 그들의 주인과 함께 고요히 사라졌다. 그 순간, 윤구주는 또다시 깨달음을 얻었다. ‘우리는 문명을 창조하고 문명을 전승해야 해. 끝없이 순환하며 영원히 이어가는 거야.’ “이것이 화진이 오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이유야. 그리고 나 또한 그 전승자 중 하나지. 화진의 부흥은 아무도 막을 수 없어!” 순식간에 북쪽 하늘로 날아오른 윤구주는 천옥의 현관에서 화진로 통하는 전송 진입구를 찾았다. 곤륜 구역에는 수많은 출입구가 있었다. 이는 예전에 봉신방의 강자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윤구주가 전송 전법을 제어하려는 순간, 곤륜 구역의 의지가 그의 행동을 저지했다. “빙신전 대제사장? 네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냈
그는 윤구주가 어떤 술법을 사용했는지도 모른 채 중상을 입었다. ‘이제 어떻게 싸우지?’ 두 사람은 애초에 같은 수준이 아니었다. 목숨을 걸어봤자 죽음을 더 비참하게 만드는 것뿐이었다. “윤구주! 날 살려줘. 우리 빙신전은 더 이상 너와 적대하지 않겠어!” 윤구주는 대제사장장이 신혼을 불태우며 마지막 발악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겁을 먹고 항복한 것이었다. “넌 오백 년을 수련한 늙은 요괴로 세상의 온갖 풍파를 다 겪어 왔고 곤륜 구역에서는 대신의 자리에까지 올랐어. 그런데 어찌 신이라는 존재가 내가 전에 만난 종문의 늙은 마왕보다도 기개가 없단 말이야?” 이전에 윤구주가 자운각의 여섯 명과 맞섰을 때 그들은 생사가 달린 순간에도 윤구주에게 절대 타협하지 않았다. 대제사장은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구주왕님! 오래 살수록 죽음이 두려운 법이죠. 당신도 곤륜 구역의 신명이고 존귀한 사신이 아닌가요? 당신의 스승들도 모두 곤륜 구역의 최강자들이니 우리끼리 서로 얼굴을 마주치며 살아가는데 너무 심하게 하지 말고 제 체면을 봐주세요.” 이 말을 들은 윤구주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 그럼 빙신전의 전주를 불러내서 직접 답하라고 해.” 이 말을 들은 빙신전 대제사장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가 변명하려는 순간, 윤구주는 바로 말을 끊었다. “흥, 너 따위가 빙신전을 대표할 자격이 있어? 겨우 극한 일전 신경의 하찮은 자가 나와 조건을 타협하려 드는 거야? 다들 알다시피 내 스승은 곤륜 구역의 최강자다. 내가 오늘 너를 죽여도 누가 감히 한마디 하겠어? 게다가 곤륜 구역에서 윤구주는 반드시 원수를 갚고 십악불사의 대마귀라고 전해지지 않았어?” 윤구주는 입가를 살짝 올리며 비웃었다. 빙신전 대제사장은 완전히 멘탈이 붕괴되었다. 윤구주가 자신을 살려주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윤구주가 손바닥을 움켜쥐자 사방에서 모인 영기
청관 뒤로는 화진 북주의 수도가 있었다. 광활한 관문을 삼만 명의 병사로 북라국의 백만 대군을 막아내는 것은 외부의 지원이 없다면 무조건 패배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청관을 지키는 것은 나이가 거의 팔십에 가까운 베테랑 장군이었다. 그는 화진에서 파견된 수장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20년 전에 은퇴한 상태였다. 위급한 상황에서 임시로 청관을 지키라는 명을 받고 나선 것이었다. 청관 대영에서 베테랑 장군 엄연은 서울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것은 국주가 아닌 우상 육도진이었다. “엄 장군, 국주께서 이전에 심한 부상을 입으셨고 아직 상처가 다 낫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지하 궁전에서 또 문제가 발생했어요. 지하 궁전은 바로 서울 아래에 있으니 만약 지하 궁전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서울 자체가 바로 위협받게 돼요! 국주는 다친 몸을 이끌고 지하 궁전으로 향했어요. 각지의 대군들은 종문 세력을 소탕하기 위해 사방으로 파견되었어요. 지금 서울에는 고작 몇만 명의 금위군만 남아있죠. 제가 지금 금위군을 지원하라고 명령을 내려도 시간상으로는 이미 늦었어요.” 전화 속 육도진의 말을 들으며 엄연은 상황을 이해했다. 분명히 지원군은 없을 것이었다. “엄 장군, 한 가지 비밀스러운 일을 당신에게 알려야겠어요. 주변에 다른 사람은 없죠?” 육도진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우상님 말씀하셔도 돼요. 여기에는 외부인이 없어요.” 엄연은 대영 안의 장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들은 모두 그와 같이 나이 든 베테랑 장군이거나 이제 막 발탁된 젊은 장교들이었다. 청관이 위급한 상황에서도 누구나 관문이 지켜지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남아있는 이들의 충성심은 대단했다. “그렇다면 말씀드릴게요. 만약 청관이 함락된다면 우리는 대규모 살상 무기를 발사하여 침략한 적을 소멸시킬 계획이에요.” 이 말을 듣고 엄연은 이해했다. 서울은 청관이 지켜지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미리 침략한 적과 함께 죽을 계획을 세운 것이었다. “삼만 명으로 적국의 백만
“흥! 내 주인님께서 너 같은 개자식을 쓰실 줄이야.”옆에 서 있던 청해가 경멸 어린 눈길로 말했다.“하하! 빙신전 부전주라고 잘난 척하더니 결국 구주왕의 개가 됐네.”“나는 지금 구주왕의 수하일 뿐만 아니라 구주왕과는 사적으로도 친분이 있고 게다가 현 왕의 숙부다. 앞으로 구주왕이 왕실에 인사드리러 올 때도 나한테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할 거야.”진동왕이 으스대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너 진짜 답 없네. 일이나 제대로 해. 현모와 주작도 말했잖아. 문씨 가문이 분명히 뭔가를 꾸민다고.”청해가 신경질적으로 말을 내뱉었다.문씨 가문이 언급되자 진동왕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지만 곧바로 감정을 추스르고 차갑게 비웃었다.“문씨 가문이 뭐라고 감히 내 앞에서 함부로 굴겠다는 거야? 안 오면 모르겠지만 온다면 제대로 된 본때를 보여주겠다. 내 손에는 지금 삼만의 구주군이 있어. 서울에 발을 들이기만 하면 다시는 살아 돌아가지 못할 거야.”진동왕은 자신만만하게 큰소리를 쳤다.청해는 할 말을 잃었다. ‘이 늙은이 정말 끝도 없이 잘난 척하네.’삼만의 구주군이 서울로 돌아와 기존의 금위군과 주변 수비군까지 합치면 무려 이십만의 정예 병력이 서울을 지키고 있었다.진동왕에게 이 정도 병력은 철벽같은 방어였다.한편, 빙신전 전주와 주작 현모는 이미 10국 영토에 도착했다.그들은 이제 백만 대군의 지휘 천막에 들어섰다.장군들이 모인 가운데 그들을 맞이하려 했지만 빙신전 전주를 향한 장군들의 태도는 노골적인 적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내가 말했잖아. 서울에 있었어야 한다고. 이놈들은 날 인정하지 않는다니까.”빙신전 전주가 짜증스럽게 말했다.“조용히 해. 너를 서울에 두고 싶어도 못 믿어서 여기 데려온 거야. 네가 또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아? 그 망할 계략에 다시 빠지면 어쩌려고?”주작은 빙신전 전주를 째려보며 쏘아붙였다.주작은 원래 그런 성격이라 빙신전 전주도 그와 다투는 것이 귀찮았다.현모는 장군들에게 빙신전 전주가 화진에 투항했다는 사
창가에서 담배를 피우던 주작이 입을 열었다. “이전까지 청룡의 실력은 팔부의 정점이었지만 문씨 가문에 섭혼 당한 후 실력이 구오 경지까지 돌파했어요. 하지만 제가 본 사진으로 보면 지금 청룡은 구오 경지를 넘어선 것 같아요.”‘구오 경지 이상이라고?’임홍연은 수련자의 경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인신 경지부터는 생명의 단계를 넘어서는 것이고 화진의 전통에 따르면 구오 경지에 올라서야 왕으로 추대될 수 있었다. 구오 경지에서 무적이 된 자는 진정한 왕자로 인정받는다.500년에 황자가 한번 나오고 100년에 왕자가 한번 탄생하지만 구오 경지는 십여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희귀한 경지였다.“이해가 안 돼. 너희 셋은 모두 윤구주의 도움으로 지금의 수련을 이뤘잖아. 그런데 청룡은 문씨 가문의 지원만으로 이렇게 빠르게 실력이 향상됐다는 거야?”문씨 가문이 그렇게 대단하다면 암살이나 배신 같은 비열한 수작은 쓰지 않았을 것이다.“문씨 가문이 그렇게 강할 리 없어요. 모든 건 청룡 때문이에요.청룡은 우리 사대 군신 중 맏형으로서 천부적 재능과 권모술수 모두 최고였어요. 특히 타고난 능력이 뛰어났죠. 예전부터 청룡은 강력한 존재였어요. 우리 셋이 덤벼도 감히 당해낼 수 없었거든요. 지금은 그를 누를 수 있는 유일한 왕마저 신계에 갔어요.”현모가 낮고 침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임홍연은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했다. 현모와 주작은 모두 철수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지금 국운이 절정인데 철수하면 민심을 잃지 않을까? 몰래 철군한다 해도 10국이 이런 좋은 선전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야. 청룡의 배후에 문씨 가문이 있는 한 10국을 움직여 계속 우리를 곤란하게 할 게 뻔해.”임홍연 역시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양측의 의견을 들어보니 모두 일리가 있었다.“그래서 더 골치 아픈 거예요. 청룡은 우리 맏형이자 왕의 가장 가까운 형제나 다름없잖아요. 왕의 진영에 가장 먼저 합류한 군신이고 왕과도 오랫동안 함께해왔고 나이까지 왕보다 많아요. 우리 셋 다 청룡
설윤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고개를 숙이고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그녀의 반응에 현모가 당황했다.“참 어려운 문제군요. 이제는 여왕님이 스스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저도 더는 정보를 흘려드릴 수 없습니다. 다행인 것은 저하께서 여왕님에게 호감을 느끼고 계신다는 겁니다. 하하.”“현모, 그만하고 입 다물어. 넌 정말 쓸데없는 소리만 하고 있어.”주작은 현모의 입을 막고 설윤과 작별인사를 한 뒤 서둘러 자리를 떴다.현모와 주작은 암부 대원들을 이끌고 서둘러 화진으로 돌아갔다. 헨드리 사건으로 화진의 국운이 최정점에 달했고 국민의 열광이 절정에 이르렀다.하지만 전 국민이 환호하는 분위기 속에서 보이지 않는 위험이 슬그머니 닥쳐오고 있었다.북주 총독부.현모와 주작은 화진에 도착하자마자 임홍연을 만나러 총독부로 달려왔다.“공주님, 정확히 어떤 상황입니까? 말씀해 주십시오.”임홍연을 만난 현모가 단호하게 물었다.임홍연의 눈 아래 깊은 다크서클이 있었고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윤구주가 떠난 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진동왕이 요즘 제대로 일을 안 하셔. 북역 삼주 세가와 귀족들과만 어울리며 재물을 쓸어모으고 10개국 간의 전쟁 같은 건 아예 신경도 안 써.”임홍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10개국 간의 전쟁이라는 단어에 현모와 주작의 얼굴이 굳어졌다. 바로 이 문제를 처리하러 급히 귀국한 참이었다.윤구주가 헨드리로 떠날 당시 문씨 가문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대군을 국경으로 이동시켜 화진을 도발하던 열개 나라를 공격했었다.전에 윤구주와 협정을 맺었던 나라들이 다시 도발을 시작했기 때문에 화진이 군대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윤구주가 헨드리에 머물 때 국경에 집결한 백만 대군이 열개 나라를 향해 진격했다. 열개 나라의 무도 고수들은 윤구주에게 전부 소멸당한 상태였고 장군들 역시 임정설과 윤구주의 합동 공격으로 세력이 약화되어 사기가 바닥을 치고 있었다. 게다가 재정 위기까지 겹쳐 제대로 된 저항도 못 할 형편이었다
육도진은 밤새 설윤과 협상을 진행했다.“첫 번째, 저희는 과거 우리나라를 침략한 역사에 대해 책임 있는 답변을 요구합니다. 두 번째, 우리나라에서 약탈한 문화재를 전부 반환하고 배상금 지급을 요구합니다. 세 번째, 우리 화진과 전면적인 무역 협정을 체결하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 화진의 요구사항입니다. 대가로 헨드리의 내정을 간섭하지 않는 것을 보장하며 인도적인 지원 완료 후 함대와 육군을 즉시 철수하겠습니다. 추가로 화진은 이자벨라 설윤을 헨드리의 새 군주로 공식 인정할 것입니다.”육도진의 마지막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있었다. 화진이 설윤을 헨드리의 새로운 여왕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처럼 언제든 취소할 수도 있다는 경고였다.설윤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화진 없인 헨드리가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새벽 12시에 기자회견 개최로 두 나라는 합의를 보았다.화진이 유라비아의 전투에 개입해서 세계대전을 막았다는 소식에 전 세계가 술렁였다.이는 동방의 잠들었던 용의 진정한 부활을 알리는 순간이었다.화진이 일떠선다면 그 누구도 화진의 부흥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헨드리 사태가 마무리되자 인도적인 구조를 마친 명필무는 화진 함대와 함께 헨드리를 떠났다.현모와 주작, 그리고 암부는 아직 헨드리에 남아있었다.화진 무도계와 유라비아 수련자들의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된 것이다.설윤은 윤구주의 영기 개조를 받은 덕분에 수련자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했다.회의에 참여한 황혼 기사단은 어느새 화진 무도계의 편에 묶여 있었다. 기사 대부분이 윤구주 덕분에 능력이 강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그럼 제가 먼저 몇 마디 하죠. 유라비아 수련자들이 화진 무도계와 동맹을 맺는다면 그 주도권은 저희 화진에게 있습니다. 이 조건을 받아들일 수 있나요?”주작의 발언은 교섭이 아닌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웠다.기사들은 뭐라 반박할 수 없었다. 그들의 최강자인 성기사조차 현모와 비슷한 수준이었으니 주작이나 백호를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실력 차이가 이렇게 큰데 뭘 더 이
“주작, 현모, 화진의 군신이라. 하하. 네놈들이 말해봐라. 내가 지금 구주왕을 배신한다 해도 너희들이 나를 막을 수 있겠나? 이전엔 너희 셋이 힘을 합쳐도 백여 합 버티는 게 고작이었지. 지금은 내가 황자급 경지에 올랐고 백호는 얼어붙어 잠든 상태라 너희 둘밖에 없는데 뭘 할수 있겠니? 난 세 방이면 충분히 너희들의 목을 벨 수 있어.”빙신전 전주가 비웃듯 말했다.그 말을 들은 주작은 두 눈을 부릅뜨고 빙신전 전주를 바라보았다. 설령 그렇다 해도 두려울 것 없다. 당장 빙신전과 결전을 벌이려는 순간 현모가 침착하게 그의 팔을 잡았다.“주작, 진정해. 저놈이 배신할 마음이 있다 해도 최소한 저하의 죽음을 눈으로 확인해야만 그런 생각을 할수 있을 거야. 문아름처럼 똑똑한 여자도 실패하지 않았나? 저놈에겐 그럴 배짱이 없을 거다.”막 황자급 경지에 올라 기분이 좋았던 빙신전 전주는 현모의 말에 불쾌해졌다.윤구주를 배신하려면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그는 이미 윤구주에게 정신적 충격을 너무 많이 받은 상태라 생각이 바뀐 지 오래 되였다. 윤구주가 이번 원정에서 실패한다 해도 최소한 생존은 보장될 것이고 윤구주를 따라 황자급 경지에 오를 수도 있었는데 윤구주의 그늘 아래에서 편안히 권력을 누리는 게 얼마나 좋은가? 그리고 그의 현재 실력으로는 결코 4대 군신에게 뒤지지 않을 것이다.“됐어. 장난은 이쯤에서 끝내지. 4대 군신은 정상이 하나도 없구만. 구주왕님이 떠나기 전 내게 전음을 남기셨다. 아사신족의 잔당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이 전법을 파괴하라고 말이야. 너희 저하를 지나치게 걱정하지 말라. 그분은 곤륜에서도 학살을 벌인 자야. 신계의 결계쯤이야 가뿐히 넘어설 거다.”이 말을 들은 주작은 어느 정도 흥분을 가라앉혔지만 여전히 빙신전 전주를 경계하는 눈빛이었다.“현모, 구주왕님이 너에게 지휘를 맡기셨다. 내가 최선을 다해 협력할 테니 요구사항이 있으면 말해라. 단 헨드리 문제는 우리 빙신전이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 재권 따위 이젠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
윤구주가 황인으로 만든 전법이 붕괴 직전에 이르렀다.전법이 사라지면 세 인황과 백 명의 왕, 수만 영령들이 사라질 것이다.마지막 순간, 헨드리에 사는 화진 사람들이 현재 화진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편집해 헨드리의 제일 큰 광장 스크린에 올렸다.화려하게 발전한 화진의 모습을 본 영령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세 인황과 왕들은 모두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고 통일된 왕조를 세운 경험이 있는 자들이었기에 왕조를 세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왕조가 번성에서 쇠퇴로 기울면 그 순간 화진에 재앙이 밀려온다는 진리를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편집된 영상 속 화진의 아름다운 강산을 바라보며 조용히 마지막을 맞이했다.“선배님들, 화진은 이미 수많은 고비를 딛고 넘어섰습니다. 가장 어려운 시기는 지났으니 안심하십시오. 화진에 저 윤구주가 있으니 마음 놓고 돌아가세요. 저 윤구주는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화진에 재앙을 가져오는 놈들의 뿌리를 뽑아 영원한 태평성대를 만들겠습니다.”전법이 사라지며 영령들은 천지로 흩어졌다. 고인들은 돌아올 수 없지만 그들의 영령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천지 영기는 영원히 끊이지 않을 것이다.영령들이 흡수했던 영기는 신들이 소멸할 때 천지에 되돌려졌다. 후손들이 능력만 있다면 화진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이분들을 다시 소환할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화진이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근본이었다.수백 년, 심지어 천 년이 지난 후 윤구주도 세 인황처럼 선대 인황이 되어 후손들에게 소환될지 모를 일이었다.이 생각에 윤구주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구주군 장수들과 암부 대원들도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오랫동안 격앙된 마음을 달랠 수 없었다.“문아름, 너의 비뚤어진 마음은 결코 좋은 결말을 맞이하지 못할 것이야. 넌 나를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화진의 선조들을 대적하는 것이다. 죽어도 갚지 못할 빚을 진 채 선조들조차 너를 가만 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화진에 부끄럽지 않아. 설령 언젠가 죽어 흔적도 없이
“도망칠 생각 말라. 사악한 신이여 목숨을 내놓아라.”세 인황이 돌진하자 백 명의 강자들이 그들을 뒤따르며 도망치려는 타이탄 거신의 영혼을 공중에서 가로막아 산산조각냈다.“우와 대박! 과연 화진의 옛 황제님이시여.”고층 건물 꼭대기에 있던 백호가 세 인황을 향해 외쳤다.진왕이 미간을 찌푸리며 다른 두 인황과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타이탄 신의 잔여 영혼 정수를 모아 강제로 백호에게 주입했다.에너지가 체내로 들어오자 백호는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며 악취를 풍기기 시작했고 정신이 혼미해져 폭주 상태에 빠졌다.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윤구주가 천주 금술을 발동해 백호의 의식을 봉인했다.휙!세 인황의 의도를 알아챈 빙신전 전주도 술법을 써서 백호를 얼음 속에 가뒀다.“구주왕님의 이 부하는 보통사람이 아닌 듯하군요. 영혼을 삼켜 경지를 올릴 수 있으니 정말 신기한데요. 다른 사람이라면 마인이 되었을 텐데 이 자는 원래부터 미친놈이라 오히려 영향을 받지 않아서 다행이군요.”빙신전 전주가 중얼거렸다.“그건 개소리야. 저놈이 음혼을 삼킬 수 있어서 그런 거다. 양도의 혼이라면 순식간에 타버릴걸.”윤구주가 투덜대자 그 말을 들은 빙신전 전주는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지하의 음기로 수련을 했기 때문에 음혼이 될 수밖에 없었다.정확히 윤구주만이 이 폭주하는 백호를 길들일 수 있었다. 다른 이라면 이미 백호의 손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 분명했다.헨드리 왕도의 위기가 드디어 해결되었다.화려한 도시의 십 분의 일이 폐허가 되었고 수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유라비아 전체를 구한 대가치고는 합당했다.세 인황과 수백 명의 왕, 그리고 수만 영령이 전법 주변에 모였다. 전법아래에는 화진에서 온 장군들과 암부 대원들이 선조들을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미래의 화진을 못 보았으니 참 아쉽구나.”당국의 인황이 한숨을 내쉬었다.세 인황 중 제일 인자했던 그는 백성을 가장 아끼던 존재였다.“그만하세. 우리가 할 일은 다 했다네. 이젠 우리
“세 번째 방법은 바로 천지의 영기와 음양오행을 빌려 황자가 되는 거야. 이 방법으로 황자급 경지에 오른 자는 모든 천지 속성을 흡수해 약점이 없으니 무적이라 불리지.”윤구주의 말에 빙신전 전주가 흥분하며 물었다.“구주왕님, 그럼 제가 가장 강한 황자인가요?”윤구주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내 말은 네놈이 길을 잘못 들었다는 거다. 너는 천령을 내버려 두고 지하 음기를 빨아들였잖아. 전에 내가 박살 낸 빙황보다는 강하지만 그자의 경지가 너보다 높았으니 너희 둘이 싸우면 넌 여전히 졌을 거야.”“네?”빙신전 전주의 얼굴이 축 처졌다. 황자가 되면 윤구주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빙신전 전주의 경지 돌파에 이어 다른 빙신전 수련자들도 많이 강해졌고 현모, 주작, 백호 세 사람의 경지도 급상승했다. 주작은 구오 대원만 경지, 현모는 구오 후기, 백호는 극 신급 절정 중급에 도달했다.반면 기사들의 성장은 미미했다. 이들은 수련한 적이 없었고 영기를 정화하는 방법만 익혔기 때문에 근육이 더 발달하고 힘만 세졌을 뿐이었다.“참 훌륭하군. 내가 알기로 화진 역사에서 자네와 같은 경지에 오른 자는 먼 고대의 황제뿐이었어.”무제가 부드러운 눈빛으로 윤구주를 바라보며 감탄했다. 다른 두 인황도 흡족한 표정이었다. 화진이 윤구주의 손에서 다시 한번 빛을 발할 것이 확실해 보였다.세 인황은 용기의 가호를 받으며 타이탄 최강의 거신을 협공했고 다른 왕들은 일반 타이탄 신들을 상대했다.그들의 공격에 타이탄 신들이 차례로 쓰러지자 주작과 청해가 법기로 그들의 시신을 수거했다. 이 경지에 오른 수련자의 몸은 귀중한 보물이니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게 놓아둘 수 없다.타이탄 거신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고 마침내 최후의 타이탄 시조신만 남았다.세 인황이 힘을 합쳐도 시조신을 잠시 억제할 수 밖에 없었다. 술법을 쓰지 않는 상대임에도 쓰러뜨리기 어려웠다.“이봐, 네 전법이 거의 끝나가니 계속 구경만 하지 말고 어서 나서라.”진왕이 윤구주를 향해 소리쳤
황인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윤구주의 모습에 빙신전 전주는 강자에 대한 인식을 또 한 번 갈아엎어야 했다.‘인황은 신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구나. 고대 화진의 인황이 구주 오방을 통일한 게 당연했어.’화진의 옛 황제들과 왕들이 힘을 발휘하자 공중에 화진의 기운이 모여들었다. 그 기세가 하늘을 뚫고 천지를 뒤흔들었다.힘이 약한 사악한 괴물들은 이미 소멸되었고 강력한 파라오는 무제의 창에 찔려 다시 흙 속으로 돌아갔다. 당국의 왕은 다른 고대 문명의 신을 단칼에 베어 죽였다.사악한 기운마저 이 황제들과 왕들에 의해 정화되고 있었다.이제 헨드리에 남은 적은 타이탄 신뿐이었다.사악한 기운에 빙의된 고대 신들과 달리 타이탄 신은 실체를 가진 수련자들이었다.술법을 쓰지 못하지만 몸을 절정의 경지에 이르게 단련한 그들은 무적에 가까웠다. 황제들과 왕들이 이끄는 영령 군대는 타이탄 신족과의 결전에서 별다른 우세를 점하지 못했다.이 영령들은 문물과 흩어진 영기에 의존해 잠시 소환된 존재들이었기에 발휘할 수 있는 실력이 전성기의 십 분의 일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실체가 있는 수련자들을 상대하기 힘들 수밖에 없었다.“불길을 더 크게 지펴야겠군.”“구양진용결!”“구음만상결!”“백호, 주작, 현모의 성수여 제자리로 돌아가거라.”아홉 마리 진용이 구름을 뚫고 내려와 왕도 상공에 떠 있었다.황제들과 왕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생전 진용 천자라 불렸던 그들은 용의 기운을 제어할 수 있었기에 그 기운을 마음껏 흡수했다.나머지 영령 전사들은 만상의 힘을 흡수해 한 단계 진화했다.백호, 주작, 현모의 정혈이 윤구주에 의해 움직이기 시작하자 세 성수가 삼각형을 이루며 세 가지 방향에 자리를 잡았다.“청룡이 부족하구나. 청룡의 정혈이 없으니 환영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어. 어쩔 수 없지.”윤구주가 청룡 성수의 환영을 소환해 나머지 한쪽을 지키게 했다. 네 성수가 모이자 천지의 영기가 배로 증가하였다.무궁무진한 영기들이 영령들의 몸속으로 스며들었고 동시에 구주군 장군들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