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종문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의 문벌, 세가까지 전부 서울로 모여들었다.“잘 왔네! 감히 우리 구주를 해치려고 한다면 전부 죽여버릴 거야!”윤창현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그래도 어찌 됐든 이번에 서울에 무인들이 굉장히 많이 모였습니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일이 크게 번질까 봐 걱정됩니다!”윤정석이 이때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뭘 두려워해? 그 빌어먹을 놈들이 우리 구주를 노리는데 죽이지 못할 이유라도 있어?”윤창현이 사나운 목소리로 말했다.“전 창현 어르신 말씀에 동의합니다. 젠장, 우리 저하에게 불경을 저지르다니, 다들 죽어 마땅해요!”정태웅이 이때 맞장구를 치면서 말했다.“맞아요. 전부 죽이자고요!”공수이가 이때 끼어들었다.다들 한마디씩 주고받았고 마지막엔 윤신우가 천천히 말했다.“화진의 무인들이 전부 서울에 모인 이유는 그들이 경외하는 종문에서 나섰기 때문이야. 그들의 기를 죽이려면 우선 종문부터 상대해야 해.”윤신우가 말했다.이번에 3대 서열은 전국 각지에서 서울로 모여들었는데 그 이유는 종문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무인들 사이에서 종문의 지위가 가장 높았다.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종문부터 제압해야 했다.“가주님 말씀이 맞습니다. 하지만 종문을 상대하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민규현이 이때 입을 열었다.종문은 아주 강했고 거의 모든 종문에 엄청난 지위를 가진 조상들이 있었다.게다가 그 늙은 괴물들은 마치 살아있는 화석 같았다. 그들은 실력도 엄청났지만 소문에 따르면 무도 성지인 곤륜과도 아주 밀접한 관계라고 한다.그런 생각이 들자 다들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종문을 상대하는 일은 다들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한테 맡겨. 비록 종문의 실력이 대단한 건 사실이지만 우리 윤씨 일가도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거든.”이때 윤신우가 패기 넘치게 입을 열었다.“가주님, 대단하십니다!”“가주님, 위엄이 넘치십니다!”정태웅이 옆에서 떠들어댔다.옆에 있
공수이는 상당히 당황스러웠다.그는 서둘러 고개를 돌려 정태웅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했다.“태웅 형님...”정태웅은 마치 공수이가 역병이라도 되는 듯이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나한테 묻지 마.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까.”‘뭐?’공수이는 점점 더 이상함을 느꼈다.그는 서둘러 민규현, 천현수 등 사람들을 바라보았다.안타깝게도 그들 역시 공수이가 역병이라도 되는 것처럼 고개를 돌리며 공수이를 무시했다.공수이와 선을 그으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공수이, 얼른 얘기해. 구주의 아내가 대체 누구야? 얘기하지 않는다면 가만두지 않을 줄 알아!”’이홍연은 미친 사람처럼 공수이를 위협했다.어쩔 수 없었다.황실 공주인 이홍연은 진심으로 윤구주를 좋아했고, 흑여산맥에서 자신의 모든 처음을 그에게 주었다.그런데 공수이의 말을 들어 보니 윤구주는 강성에 자기 아내를 찾으러 갔다고 한다.진짜로 아내를 찾으러 간 거라면 그녀는 뭐란 말인가?이홍연의 협박에 공수이는 겁에 질렸다.그는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말했다.“아름다운 공주님, 조금 전에는 제가 말실수를 한 거예요. 다시 말하면 안 될까요?”“거짓말하지 마! 오늘 나한테 진실을 얘기하지 않는다면 가만두지 않을 줄 알아!”이홍연은 사람을 잡아먹을 듯이 아름다운 눈을 부릅떴다.이홍연이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자 정태웅이 말했다.“저, 저는 배가 좀 아파서 화장실에 가야 할 것 같아요.”말을 마친 뒤 정태웅은 곧바로 도망쳤다.민규현, 천현수 등 사람들도 이홍연이 화를 내면 그 결과가 무시무시하다는 걸 알았기에 서둘러 말했다.“저희도... 볼일이 있어서 먼저 나가보겠습니다.”그렇게 다들 도망쳤다.심지어 마지막엔 윤신우, 윤창현, 윤정석까지 이홍연이 불같이 화를 내는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조금 전까지 사람으로 가득 찼던 거실에는 이제 분노 때문에 눈까지 벌게진 이홍연과 협박을 받는 공수이만 남았다.“공수이, 얘기할 거야? 말 거야? 얘기하지 않는다면 이 칼로 찔러서 죽여버릴
“당연하지. 그러게 왜 쓸데없이 입을 놀려?”정태웅이 원망하듯 말했다.“태웅이 형님, 이건 제 잘못이 아니죠! 태웅이 형님이 그러셨잖아요. 강성에 구주 형님의 예쁜 아내가 있다고요.”공수이는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난 너한테 얘기한 거잖아. 그런데 그걸 왜 공주님께 얘기한 거야?”“왜요? 말하면 안 돼요?”“당연하지! 생각해 봐. 우리 저하와 공주님은 어렸을 때부터 죽마고우로 자랐고 공주님은 저하를 굉장히 좋아했어. 그런데 너는 공주님께 저하께서 아내를 찾으러 갔다고 했잖아. 누구라도 그런 말을 들었다면 널 죽이고 싶었을 거야.”정태웅이 말했다.공수이는 그 말을 듣고 머리를 긁적였다.“일리가 있는 것 같네요. 태웅이 형님, 이제 어떡해요?”공수이는 두려운 얼굴로 정태웅에게 물었다.정태웅은 잠깐 고민한 뒤 말했다.“뭐든 근본을 해결해야 해. 이건 저하의 사적인 문제니까 저하께서 해결하시는 게 가장 좋아. 저하께서는 알고 지내는 여자들이 굉장히 많아. 그리고 저하께서는 그들을 전부 성공적으로 설득했어.”공수이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맞아요. 그러면 구주 형님께서 맡겨야겠어요. 구주 형님께서 자초한 일이니까요. 형님께서는 수많은 미녀 누나들의 마음을 훔쳤잖아요. 저한테는 한 명도 남겨주지 않고요!”공수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불만을 토로했다.이홍연은 온종일 화가 난 상태였다.공수이도 찾을 수 없었고, 강성에 윤구주의 아내가 있다는 것이 사실인지 아무도 그녀에게 진실을 얘기해주려고 하지 않았다. 매번 윤구주의 지인들을 찾아갈 때마다 그들은 모른다고 하거나 바로 도망쳤다.이러한 상황을 겪고 나니 이홍연은 윤구주에게 다른 여자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빌어먹을 놈! 바람둥이! 돌아오면 가만두지 않겠어!”단단히 화가 난 이홍연은 어쩔 수 없이 하미연을 찾으러 갔다.뒷마당에 도착한 이홍연은 곧바로 하미연 앞에서 울면서 호소하기 시작했다.“할머니, 할머니께서는 제 편을 들어주셔야 해요!”이홍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억울한 얼굴로 울
“홍연아, 진정해. 할머니가 이제 구주한테 물어본 뒤에 자세히 얘기해줄게.”하미연은 이홍연을 설득할 수 없는 것 같자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끌기로 했다.그러나 이홍연에게 그런 방법은 먹히지 않았다.이홍연은 울면서 말했다.“상관없어요! 전 구주가 직접 제게 설명해 주길 바라요. 대체 어떤 불여우가 구주의 마음을 빼앗은 건지 볼 거예요! 할머니, 솔직히 얘기할게요. 구주는 이미 제 몸을 가졌어요. 저는 이번 생에 오직 구주뿐이에요. 아무도 제게서 구주를 빼앗아 갈 수 없어요!”이홍연은 상황을 전부 얘기했다.하미연은 그 말을 듣고 기가 막혀서 눈을 끔벅이며 이홍연에게 물었다.“그게 정말이니?”이홍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당연하죠!”하미연은 그 말을 듣고 기뻐했다.“그래, 그래! 홍연아, 지금부터 마음 놓거라. 그놈이 네 몸을 가졌다면 평생 널 책임져야 해. 만약 걔가 책임지지 않겠다고 한다면 내가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다!”하미연이 그렇게 얘기하자 이홍연은 그제야 눈물을 닦으면서 말했다.“할머니, 꼭 제 편을 들어주셔야 해요!”“그럼, 그럼. 지금부터 넌 우리 윤씨 일가의 며느리야. 할머니는 당연히 네 편이 되어줄 거란다.”하미연이 가슴을 툭툭 치면서 장담했고, 이홍연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서울 상공, 호화로운 전용기가 서울 안으로 들어왔다.호화로운 전용기 안에는 흰옷을 입은 윤구주가 가만히 앉아 있었고 그의 곁에는 백화궁의 연규비, 백경재, 그리고 그가 가장 사랑하는 소채은 세 사람이 있었다.윤구주는 폐황령이 내려졌다는 걸 알게 된 뒤로 서울에 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짐작했다.그래서 그는 반드시 당장 서울로 돌아가야 했다.다만 이번에 윤구주는 사람들을 많이 데려가지 않았다.그는 오직 세 명만 데려왔다.주세호와 박창용 등 사람들은 데려오지 않았다.“저하, 저희 서울에 도착한 것 같습니다. 와, 여기 강성보다 몇 배는 더 화려한 것 같은데요?”백경재는 유리를 통해서 아래의 화려한 도시의 밤경치를 바라보며 감탄했
개인 비행장에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는데 민규현, 정태웅, 천현수, 공수이 등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윤구주가 서울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접한 뒤 그들은 매우 들떴고, 두 시간 전부터 그곳에서 윤구주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만 윤신우는 그곳에 없었고 대신 윤창현과 윤정석 두 사람이 있었다.“태웅이 형님, 구주 형님께서 돌아오시면 우리 둘을 혼내지 않을까요?”공수이는 눈을 깜빡이면서 비행장 상공을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정태웅에게 물었다.“걱정하지 마. 내가 형님들께 미리 얘기했어. 형님들께서는 우리가 몰래 서울을 벗어났다는 얘기를 저하에게 알리지 않을 거야.”정태웅은 웃으면서 말했다.“정말요?”공수이는 그 말을 듣고 매우 기뻐했다.“당연하지. 이 형님은 아주 믿음직스러운 사람이라고!”“하하, 역시 형님은 대단하시네요! 정말 듬직해요!”공수이는 더는 걱정하지 않았다.사람들은 계속 비행장에 서서 윤구주를 기다렸다.얼마 뒤, 호화로운 전용기가 상공에 나타났다.“왔어!”“저하께서 돌아오셨어!”다들 흥분했다.윤창현과 윤정석도 기뻤다.“우리 조카가 드디어 돌아왔어. 하지만 신우 형님은 우리 조카가 돌아오는 모습을 보지 못하네.”윤창현이 탄식하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전 구주가 언젠가는 형님과 화해할 거라고 믿어요.”“휴, 그랬으면 좋겠어.”윤창현이 탄식하며 말했다.하늘에서 호화로운 전용기가 서서히 착륙하자 윤구주의 형제들은 서둘러 맞이했다.전용기 문이 열리면서 흰옷을 입은 멋진 윤구주가 도착했다.윤구주의 뒤에는 아름다운 연규비와 소채은이 있었고 백경재도 있었다.“저하, 드디어 돌아오셨군요!”“구주 형님, 정말 너무 보고 싶었어요!”“구주야, 돌아왔구나!”다들 윤구주에게 인사를 건넸다.윤구주는 형제들 외에 윤창현과 윤정석도 있을 줄은 몰랐다.그는 웃으면서 그들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그의 뒤에 있던 소채은은 낯선 얼굴들을 보자 저도 모르게 긴장하면서 몸을 살짝 뒤로 물리며 뒤에 섰다.“연규비 씨도 오셨군요!”
“채은아, 소개할게. 이 스님은 내 동생 수이야.”윤구주가 말을 마치자마자 공수이는 곧바로 앞으로 쑥 나서면서 자기소개를 했다.“안녕하세요, 형수님! 저는 공수이라고 해요. 법명은 나최고예요!”공수이의 법명을 들은 소채은은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세상에 이런 이상한 이름이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형수님, 정말 너무 예쁘세요! 그래서 구주 형님께서 매일 형수님을 그리워하다가 바로 강성으로 형수님을 찾으러 간 거였군요! 형수님, 형수님 주위에 형수님처럼 아름다운 여성분이 또 있을까요? 비록 전 스님이긴 하지만 술도 마실 수 있고, 여자도 만날 수 있고, 사람도 죽일 수 있고, 방화도 할 수 있어요! 심지어 잘해요!”공수이는 가슴팍을 치면서 장담했다.공수이가 말을 마치자마자 윤구주가 공수이의 동그란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넌 입 좀 다물어!”꿀밤을 맞은 공수이는 머리를 부여잡고 억울한 표정으로 투덜댔다.“전 사실만을 얘기한걸요.”“채은아, 이 자식은 그냥 무시해. 그냥 장난친 거야.”소채은에게 말한 뒤 윤구주는 그녀를 데리고 윤창현과 윤정석에게로 향했다.“채은아, 이쪽은 내 둘째 삼촌과 셋째 삼촌이야.”삼촌이라는 호칭에 소채은은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둘째 삼촌, 셋째 삼촌. 안녕하세요!”윤창현과 윤정석은 소채은을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그렇게 예의 차릴 필요는 없단다. 우리 구주의 여자 친구라면 우리 가족이니까. 그런데 구주가 미리 우리에게 얘기해주지 않아서 선물은 준비하지 못했어. 미안해.”윤창현은 웃으면서 말했다.“형님, 급할 이유는 없죠. 구주가 결혼할 때 큰 선물을 안겨주자고요!”윤정석이 말했다.“하하, 네 말이 맞아.”윤구주는 그렇게 모든 이들에게 소채은을 소개했고 그들은 그 뒤에야 비행장을 떠났다.“구주야, 우리와 같이 저택으로 돌아가자. 네가 떠난 뒤로 서울에 많은 일이 일어났어. 그리고 형님께서도 널 기다리고 있단다.”갈 때가 되자 윤창현이 나서서 윤구주에게 말했다.윤신우
차 몇 대가 어둠을 뚫고 도시 외곽으로 질주하고 있었다.차 안에는 서울로 돌아온 윤구주와 그의 형제들이 있었다.윤구주와 소채은은 단둘이 한 차에 앉아 있었고 다른 형제들은 모두 다른 차에 앉았다.비행장을 떠난 뒤 윤구주는 줄곧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소채은이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그녀는 창밖을 바라보는 윤구주를 향해 말했다.“구주야, 고민이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줄 수 있어?”윤구주는 소채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리더니 웃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윤구주가 입을 열려고 하지 않자 소채은은 그의 큰 손을 잡으면서 더는 묻지 않았다.차는 계속 달렸다.몇 분 뒤, 윤구주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채은아, 사실 네게 숨긴 게 있어. 혹시 날 탓할 거야?”“무슨 거짓말인데?”소채은이 물었다.“우리 가족에 관한 거야.”윤구주는 성실하게 대답했다.소채은을 알게 되고부터 지금까지 윤구주는 단 한 번도 그녀에게 가족에 관한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그리고 자신이 천하제일 윤씨 일가 사람이라는 것도 얘기하지 않았다.소채은은 윤구주의 말을 듣고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네가 얘기하지 않았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겠지. 그래서 난 널 탓하지 않을 거야.”윤구주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따뜻했다.“사실 우리 집안일을 얘기해줄 수도 있어.”그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면서 창밖의 밤경치를 바라보았다.“우리 집안은 서울의 윤씨 일가야.”윤구주는 드디어 가족 얘기를 꺼냈다.소채은은 윤구주가 천하제일 가문인 윤씨 일가의 자제라는 것을 알게 되자 살짝 놀랐다. 그러나 그녀는 계속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난 어릴 때부터 아주 풍족하게 자랐어. 부귀영화를 누렸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9살이 되던 해, 나는 내가 누리던 모든 걸 잃었어.”윤구주는 그 얘기를 꺼내자 목소리가 갑자기 차가워졌다.곧이어 그는 자신과 어머니가 윤씨 일가에서 내쫓긴 사실을 얘기했다.그리고 그런 짓을 벌인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 윤신우라는 것도 얘기했다
“육도진 우상, 이곳엔 왜 온 겁니까?”이때 정태웅이 갑자기 차가운 얼굴로 다가왔다.민규현과 천현수도 전부 달갑지 않은 얼굴로 걸어서 나왔다.육도진은 서둘러 말했다.“저하께서 돌아오셨다는 말을 듣고 인사를 전하러 온 겁니다. 저하께서는 설국을 굴복시켜 백 년 동안 우리 화진의 속국으로 지내게 만드셨으니 얼마나 경사입니까?”“흠, 소식이 빠르군요. 아니면 뭐 달리 음모라도 있습니까?”정태웅은 품 안에서 비수를 꺼내 들더니 차가운 얼굴로 육도진을 향해 말했다.육도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정태웅 씨, 저는 저하께 인사를 드리러 온 것뿐입니다. 그런데 지금 절 죽이기라도 하실 생각입니까?”정태웅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육도진 우상이 무슨 속셈을 숨기고 있을지 누가 압니까?”“이...”육도진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정말로 어처구니가 없군요! 말이 통하질 않네요!”말을 마친 뒤 육도진은 황급히 고개를 돌려 윤구주에게 말했다.“저하, 이자들을 보세요!”윤구주는 육도진에게 나쁜 의도는 없다는 걸 알았기에 손을 저었다.“정태웅, 너희는 일단 물러나. 난 육도진 우상과 단둘이 얘기를 좀 나눌 거야.”육도진이 명령을 내리자 정태웅 등 사람들은 그제야 물러났다.다들 물러난 뒤 윤구주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육도진을 바라보았다.“육도진 우상, 이렇게 늦은 시간에 찾아오신 걸 보니 중요한 일이 있는 건가?”육도진은 웃으면서 빠르게 윤구주의 곁으로 다가갔다.“저는 정말로 단순히 저하께 인사를 드리러 온 겁니다.”“인사?”“황성에서 폐황령을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육도진 우상은 한가한가 보군.”육도진은 그의 말에 말문이 턱 막혔다.그는 헛기침을 하면서 멋쩍게 말했다.“역시 저하를 속일 수는 없군요! 휴, 솔직히 얘기하겠습니다. 제가 오늘 밤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는 저하께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입니다.”육도진은 그제야 본심을 드러냈다.“무슨 일인데?”윤구주가 물었다.“저하께서는 종문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일을 알고 계시겠죠
‘헐, 대박.’진동왕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윤구주를 신처럼 떠받들었다.‘이게 진짜 신이지. 곤륜에 있는 그 자식들은 모두 가짜 신들이었어. 허위적이기 그지없지.’오늘 밤 그는 여러 강자의 싸움을 직접 목격하고 강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문경우도 아주 강했지만 윤구주가 나타나자 문경우는 도망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고 영혼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윤구주의 술법에 의해 영혼도 남기지 못하고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승리는 결국 화진에게 돌아갔다. 화진을 무너뜨리려는 역적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윤구주는 자신의 힘으로 화진의 막강한 실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문경우를 처단한 윤구주는 즉시 임정설의 치료에 돌입했다.“짐은 별일 없으니 먼저 왕숙과 네 친구를 치료해줘라.”임정설이 임성진과 청해를 가리키며 말했다.청해는 이미 정신을 차렸다. 비록 상처가 심해 반쯤 죽은 상태였지만 화진 국주에게 인정받은 첫 순간이었다. 묘한 영예감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며 날아갈 듯 기뻤다.“이 두 사람 모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주님이 더 위험하십니다. 경지를 무리하게 넘어서셨고 섭혼번 아래서 정기를 너무 많이 잃으셨습니다. 지금 국주님의 기운이 안정하지 않으니 제 도움이 없다면 폭주 할수도 있어요. 그때가 되면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윤구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임정설은 결국 윤구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다. 윤구주의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황자급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예전보다 죽음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있었다. 윤구주는 임정설에게 풀지 못한 원한이 있음을 눈치채고 치료를 해주며 화진으로 압박했다.“국주님께서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화진에게는 국주님이 필요합니다. 국주님은 30년 동안 화진을 지켜오셨잖아요. 지금 승부가 달린 이 중요한 시점에서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시면 안 됩니다.”임정설
서울 삼천만 명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고 섭혼번이 작동되면 화진의 국운은 영원히 봉인될 것이다.“우리 문씨 가문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쇠퇴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화진의 주인이다. 감히 누가 복종하지 않겠느냐?”문경우는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웃어댔다.이때 하늘에서 천둥이 울리며 공간이 갈라지더니 한 남자가 시체 한 구를 밟고 서울에 강림했다.“웃기고 있네. 문씨 가문이 화진의 주인이 되겠다고? 문씨 가문 따위가 어디 감히 그런 꿈을 꾸는 것이냐? 나 윤구주가 용납하지 않겠다.”우르릉.우렁찬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지자 문경우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윤구주의 기운이 섭혼번 아래에 나타나며 음의 기운을 찢어버렸다.거대한 섭혼번이 관통당하자 전법이 무너지고 문경우는 피를 토해냈다.고개를 돌리니 윤구주가 허공에 우뚝 서 있었고 그의 발아래에는 아사 신전의 신주 오딘의 시체가 보라색 번개에 휩싸여 있었다.“이게 무슨? 네가 신왕 오딘을 죽였다고?”문경우는 오딘의 시체를 바라보며 벌벌 떨었다.“이 개 같은 자들이 여러 번 화진을 범했으니 죽이는 게 당연하지. 나는 오딘뿐만 아니라 아사 신족 전체를 멸했다. 이제 곤륜에 아사 신족은 존재하지 않는다.”윤구주가 공중에 우뚝 서서 음양의 기를 손아귀에 감아쥐었다. 그의 머리 위 갈라진 공간 너머로 아사 신전의 폐허가 보였다. 수만 신령이 죽어 아사 신족이 멸족한다는 종말이 예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문경우의 눈에 비친 윤구주는 무적의 화신이었다. 그는 윤구주와 싸울 용기도 내지 못하고 뒤돌아 도망치려 했다.“너희들이 내가 없을 틈을 타 화진의 기운을 봉인하려 했다고? 문씨 가문은 정말 개수작만 부리는군. 예전에는 나를 죽이려 온갖 더러운 수작을 다 부렸잖아. 내가 없는 틈만 노리는 걸 보니 이젠 내가 무서웠나 보지?”“팔기지, 술자결.”윤구주가 손짓하자 삼천만 생령이 국운 속으로 모여들었다. 백성들은 새 국운에 각자의 고마운 마음을 담아 보냈고 모두의 영혼이 육체로 돌아가며 위기가 해소되었다.“팔기지, 어
태양으로 변한 그 부적은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독한 태양 빛이 대지를 지지며 수많은 건물을 녹여버렸고 그 안에 있던 평민들도 산 채로 타죽고 말았다.“그만해. 화진의 백성들을 건드리지 마라!”임정설이 분노에 차 외쳤다.“너와 나는 모두 화진의 절정 수련자인데 어찌 무고한 자들을 끌어들이느냐?”“하하! 무고하다니? 임정설, 현실을 직시하지. 이 하등한 것들은 개미나 다름없어. 한 무리를 죽여도 금방 다시 번식할 테니. 게다가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삼천만 백성의 목숨으로 화진의 새 국운을 봉인하는 거라네. 우리 문씨 가문이 얻지 못하는 것은 부숴버려도 남에게 주지 않을 거야.”문경우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는 윤구주가 문씨 가문의 뜻을 거역하는 것에 화가 났다.만약 윤구주가 그들에게 순종했다면 지금쯤 화진의 주인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천추만대가 지나도 윤구주는 여전히 화진 최고의 명군으로 남았을 것이다.“저 빌어먹을 윤구주. 역사는 승자가 쓴다는 걸 모르나? 역사를 조작한 왕조가 그렇게나 많은데 유독 그놈만 고집을 부리잖아. 화진의 재난은 모두 윤구주 때문이야. 명군이 되길 거부한다면 영원한 역적으로 만들 거야. 윤구주는 역사의 수치주에 못 박혀 천년만년을 욕먹을 것이다.”“닥치거라! 구주는 우리 화진의 영웅이다. 너 같은 쓰레기가 어찌 감히 구주를 함부로 논하는 것이냐?”그의 말에 단단히 열 받은 임정설은 양혼을 불살라 목숨을 걸려 했다. 그러나 문경우가 이미 임정설의 기를 봉쇄하고 제삼의 전법으로 그의 영혼까지 잠가버렸다.“임정설, 내 앞에서 자살조차 못 하는 주제에 어디서 목숨을 걸겠다고 떠드는 건가?”문경우는 기고만장했다. 임정설이 황자가 되면 뭐하나? 어차피 문씨 가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는데.“오늘이 바로 화진 황제의 멸망일이라네. 섭섭해하지 말게. 윤구주도 곧 자네 뒤를 따를 거니까. 하하!”그가 양손을 내리자 백 미터 크기의 사악한 검은 기발이 구름을 뚫고 서울 상공에 나타났다.“이, 이것은 섭혼번이군!”그 거대
말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쓸모없는 대화는 필요 없었다.임정설은 황제의 의지를 칼로 삼았다. 황자의 기세가 모여 금빛 칼날을 형성하더니 국운을 상징하는 그 칼로 문경우를 향해 내리쳤다.우르르.음과 양이 맞부딪치며 터져 나온 충격파가 반경 수 킬로미터를 휩쓸었다. 사령부 빌딩과 인근 건물들의 유리가 모조리 산산조각이 났다.두 사람은 빌딩 꼭대기에서 결투를 시작했다. 칼 빛이 번뜩이며 천지의 영기를 뒤흔들었고 광풍과 폭우가 몰아쳤다. 산해가 울부짖으며 서울은 보라색 번개와 금빛 불길에 휩싸였다.그들은 각각 화진 최강의 무도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정의와 사악의 대결이 아니라 임씨 가문과 문씨 가문의 결전이었다.서울 상공에서는 용의 형상이 구름 사이를 휘저으며 흉수와 피 묻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이게 바로 황자의 힘인가. 정말 굉장하군.”진동왕마저 넋을 잃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다른 도시의 지원병들이 서울에 도착해 진동왕과 연락을 취했고 이 소식을 해외에 있는 현모와 주작에게 즉시 전했다.“국주께서 문경우와 결전을 벌이고 계신다고?”“국주께서 황자급 경지에 오르셨다니.”이는 분명히 좋은 소식이었다. 비록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었지만 윤구주와 임정설의 관계는 남달랐다. 임정설은 윤구주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너무 기뻐하지 마라. 저 문경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곤륜에서 오랫동안 잠적하며 수많은 신전의 공법을 익혔어. 저놈이 서울로 온 목적은 바로 임정설을 죽이기 위함일 것이야.”옆에 있던 황보웅이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주작과 현모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화진이 무사하고 임정설이 문경우를 물리치길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한창 싸우고 있던 두 강자는 공중에서 다시 한번 맞붙었다. 두 사람의 손짓 하나에 산이 뒤집히고 천지가 진동했으며 그들의 기세는 수백 리 밖까지 영향을 미쳤다.임정설은 기세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임정설은 문경우가 극 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전법이 발동되면 서울 수천만 사람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야. 비록 이길 자신은 없지만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화진의 백성을 위해 싸우겠다. 구주군과 금위군의 여러 장수들은 듣거라. 짐이 전사하면 너희들이 나라를 지킬 책임을 지고 계속해서 적들을 섬멸하라.”임정설은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나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홀로 서울 사령부로 날아갔다.서울 사령부는 진동왕과 수비영이 도착하기 훨씬 전에 함락된 상태였다. 주둔지는 죽음의 적막에 휩싸여 있었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라붙은 백골들이 널브러진 참혹한 장면뿐이었다.당시 강적의 침입을 받은 주둔지의 병사들은 한 명도 물러서지 않고 전원이 전사할 때까지 적들과 맞서 싸웠을 것이다.이 생각에 임정설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우리 화진의 자랑이다. 저 요망한 것들이 화진을 어지럽힌 지 얼마나 되었느냐? 이 빚을 짐이 갚아 내지 못하더라도 화진 자손들이 반드시 값나낼 것이다.”그는 절대 화진의 혼란에 맞선 마지막 황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선인이 걸어온 길을 밟으며 그의 발걸음은 더욱 확고해졌다.이 순간 황운이 임정설의 몸에 서리더니 새로운 국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순간부터 그는 특정된 누군가의 왕이 아닌 천하 만민이 우러러보는 황제가 되어 있었다.황도가 더해지자 임정설의 기세는 한층 더 강해졌다. 그는 사령부 빌딩 최상층에서 서울을 어지럽힌 장본인을 마주했다.검은 도포를 걸친 그 자는 사악한 부적으로 몸을 감싼 채 요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바로 그가 전법으로 서울을 뒤덮고 있었다.“참으로 예상치 못했어. 화진에 또 한 명의 황자가 나타나다니. 윤구주는 정말 신기하다니까. 자신의 기운으로 국운을 바꾸고 자네의 운명까지 바꿔놓았군. 하지만 내가 충고 하나 해주지. 임정설 자네가 황자가 된 이상 사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야. 넌 사흘 안에 목숨을 거둘 것이란 말이지.”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은 임정설이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을 알아
국주 임정설은 해청현의 음기를 제거한 후, 그를 보호하던 기운까지 걷어내 양기로 해청현을 완전히 눌러 버렸다.이게 바로 미친 스님이 말했던 진정한 자제력이었다.“해청현은 수법만 닦고 수도는 하지 않았으며 몸만 수련할 뿐, 마음은 단련하지 않았지. 그러다 보니 결국 다 헛것이 되어버린 거야.”미친 스님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그는 해청현에게 타고난 수도의 체질을 주었지만 그에 걸맞은 의지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해청현은 더는 감당하지 못하고 되려 휘말려버린 것이었다.임정설의 머리 위엔 성스러운 빛이 맴돌았고 온몸엔 천지를 뒤덮을 만큼의 정기가 흘러넘쳤다. 해청현은 결국 싸움에서 져버렸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도 임정설처럼 황자급 경지였다면 이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작 두 사람의 경지가 같았다 해도 여전히 자신이 완전히 압도당했을 거라는 걸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임정설은 손바닥을 휙 내리치더니 끝까지 미련을 품던 해청현을 그 자리에서 즉사시켰다. 그는 영혼조차 남지 않은 채 완전히 소멸당했다. 이것이 바로 겉보기엔 수련했을지 몰라도 한 번도 진정한 수도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다는 증거였다.“국주님이 이렇게까지 강했다고?”공수이는 멍하니 중얼거렸다.“그러게 말이야.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해졌지?”진동왕은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복잡한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예전에는 그가 임정설보다 더 강했었고 임정설은 국운 덕에 간신히 그를 이길 정도였으니 말이다.하지만 이젠 내공 차이가 너무 벌어져서 더 이상 비교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그제야 깨어난 백호는 조금 전 자신이 국주를 진왕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백호, 널 속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넌 내가 올 때까지 버티지 못했을 테니까...”임정설은 양기를 끌어내어 백호의 몸속에 주입했고 그의 정기를 빠르게 회복시켰다. 이렇게 되면 백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회복할 것이었다.그 모습을 본 공수이와 진동왕은 또다시 멍해
“뭐? 저게 누구지? 지금 화진에 저런 강자가 또 있었다고? 설마... 저자가 바로 구주왕이란 말인가?”청현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당황스레 외쳤다.누가 알았겠는가, 이 결정적인 순간에 고수가 나타나다니!“젠장... 네가 누구든 상관없다!”“나는 반드시 백호를 죽인다!”청현은 더는 여유가 없었다.상대의 기세는 너무나도 강력했고, 이미 백호와 싸우면서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그와 맞붙는 건 목숨만 붙어 있을 뿐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청현은 그저 백호부터 처리하려 했다.“이런 건방진 것! 우리 화진의 전쟁 신이 너 같은 흉수에게 쓰러질 수는 없다!”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활기찬 천 음 소리!금빛 실루엣이 구름을 뚫고 내려오더니 손바닥으로 청현을 튕겨냈다!눈앞의 인물을 본 청현은 잠시 얼어붙었다. 모르는 인물이다.하지만 이 압도적인 기운은 분명 고위자일 것이다.화진에서 구주왕 말고는 누가 이런 존재감을 뿜어낼 수 있겠는가?기절해 있던 진북왕은 익숙한 기운에 눈을 번쩍 떴다.그리고 그 실루엣을 본 순간 기절할 뻔했다.“이런! 임정설! 너 황자가 된 거야!”“흠? 왕숙께서 실망하셨나 보네요??”금빛 그림자가 사라지며 실체가 드러났고, 그 모습은 바로 용맥에 들어가 수련하던 화진의 현직 왕 임정설이었다.“폐하 만세!”구주군 장병들은 격동된 마음으로 일제히 무릎 꿇고 경례하며 외쳤다.자신들의 왕이 서울로 화진의 백성을 구하러 온 것이다!“임정설?! 그게 어떻게 가능해! 아무리 강해도 극한신경 정도일 텐데!”청현의 얼굴이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졌다.극한신경과 황자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황자 한 명이면 수십 명의 극한신경을 상대할 수 있다!서울에 황자가 주둔해 있다면, 곤륜영역조차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설령 청현이 아무리 천재고 강하더라도 황자와의 싸움은 불가능했다.자칭 수요산 제일검이라던 청현은 위축됐다.그 모습을 본 임정설은 냉소하며 말했다.“이게 바로 검객이란 말인가? 검객의 마음은
진황은 외공만으로 도에 이른 황자였다.어떠한 술법도 수련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백호가 중얼거리며 ‘진황신공!’을 외치고 있으니 이건 누가 봐도 미친 소리였다.“미쳐야 도를 이루는 법이다. 백호는 앞날이 창창하구먼.” 미친 스님이 아미타불을 외치며 말했다.“미쳤어, 미쳤어! 전부 다 미쳐버렸다고!” 진북왕이 고함을 지르다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기절해버렸다.그 사이 백호의 기세는 끝없이 치솟고 있었다!정신은 나갔지만, 힘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청현은 문득 깨달았다. 백호가 저토록 광폭한 이유—바로 그놈의 몸속에 흐르는 성수의 피였다.“이 썩을 놈... 성수 피가 아니었으면 네가 뭔데 날 상대로 이러는 거냐!”청현은 음기를 뿜으며 맹렬하게 연속으로 공격을 퍼부었다.그 음산한 기세에도 불구하고 백호는 오히려 직선 돌진했다.공격은 완전 예측 불가였다.수요산 검종은 온갖 검술과 전법에 능했지만, 다음 공격이 뭔지도 모르는 미친놈을 상대로는 청현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결국, 또 한바탕 두들겨 맞고 땅바닥을 굴러다니던 중 놀랍게도 백호가 자신의 음신사체를 흡수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내 음기를 집어삼키다니?! 이 괴물 같은 놈!”“음기여 무한하라! 흑검이여, 사악을 베어라!!!”시커먼 흑검이 다시 응집되자, 수백 개의 검날이 연속으로 쏟아졌다.백호의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검은 피를 흘렸지만——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대로 돌진했다!“개자식... 음기야! 나에게 힘을 줘!!”청현은 검을 땅속 깊숙이 꽂았다.지맥에서 미친 듯이 영기를 빨아들이자, 머리 위에 떠 오른 음기 마기의 형상은 산만큼 거대해졌다!그 압도적인 힘으로 청현은 백호를 단숨에 쓰러뜨렸다.이건 이미 백호가 감당할 수 없는 한계치를 훨씬 초과한 위력이었다.쿵!!백호는 그대로 땅에 쓰러졌지만, 그런데도 그는 의식을 잃지 않았다.다만 입에서 나오는 건 누가 들어도 미친 소리였다.“황이 온다... 황... 황이 온다....
“우리 스승 말이야, 진짜 고집쟁이에다 구닥다리야. 정의와 사악은 절대 함께할 수 없다고 믿고 목숨 걸고 몇백 년 동안 싸우고 피 흘렸지만 무슨 소용이 있어? 인마 좀 없앤 거 빼고는...?”“스승께서 날 산에서 내려가 속세의 삶을 보라고 하신 건, 결국 수련을 위한 경험이었겠지. 하지만 세상을 직접 겪고 나서야 똑똑히 알게 됐어. 이 세상은 결국, 강한 자가 무적이고 이긴 자가 왕이 되는 법이야...”“세상에는 애초에 정의와 악, 흑과 백 따윈 존재하지 않아. 선악의 기준이란 결국 입만 살은 자들이 지껄이는 헛소리일 뿐이지. 역사가 진실이라고 믿어? 예로부터 어느 왕조의 흥망이 피바다와 시체더미 없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나?”“무릇 장수가 공을 세운다는 건, 수만의 백골 위에 선다는 뜻이지. 그 윤구주가 '구주왕'이라 불리는 것도, 결국은 피로 쟁취한 자리 아니겠어?”“주먹이 곧 진리다. 내가 황위에 오르는 날, 선악이든 흑백이든 모두 내 기준으로 정의된다!”“백호, 이제 죽어라.”청현이 공격하려던 찰나 하늘 위의 백호가 먼저 움직였다. 다시 성수인을 발동하더니, 성수의 허상이 실체로 변해 거대한 기운을 모은 주먹을 뻗었다.그 주먹은 하늘을 가르고 청현을 향해 날아갔다.그러나 청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차가운 음기와 사기 담은 손으로 그 주먹을 받아내고 동시에 백 자 길이의 흑검을 형성해 단칼에 성수의 허상을 두 토막 내버렸다.그 검이 날아간 자리에는 구름이 쪼개졌고, 서울 상공을 덮고 있던 먹구름은 그 검기의 파도에 휩쓸려 모두 흩어졌다.먹구름이 사라졌지만, 서울 상공에는 여전히 짙은 요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태양조차 삼키려는 어둠의 장막처럼.“진법까지 있었어?! 대체 어느 놈이, 언제 이따위 대형 진법을 몰래 깔아놓은 거야?!”진북왕은 혈압이 오르다 못해 피까지 토할 지경이었다.이건 곧 청현이 최종 보스가 아니라는 뜻이다!백호가 청현을 이긴다 해도 그보다 더 강한 놈이 있다는 얘기다.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백호가 청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