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이때, 소채은의 가방 안쪽에서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그녀가 휴대폰을 꺼내 수신 버튼을 누르자, 휴대폰 너머에서는 천희수의 불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채은아, 너 어디야?”“밖에 있는데 무슨 일이세요?”소채은이 물었다.“네 아빠가 조금 전 쓰러져서 빨리 집으로 와야겠다.”“뭐라고요? 아빠가 쓰러지셨다고? 알았어요. 지금 당장 갈게요.”전화를 끊은 후, 소채은은 까망이와 함께 서둘러 자리를 떴다.“까망아, 어서 집에 가자.”…용인 빌리지, 회사에서 돌아온 소채은이 잰걸음으로 정원에 있던 천희수에게 다가가 물었다.“아빠가 쓰러졌다면서요? 지금 어디 있나요?”소청하가 쓰러졌다고 말했던 것은 소채은을 집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이들 부부가 꾸민 자작극이었다.딸의 물음에 천희수가 답했다.“점심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글쎄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졌어.”“심각한가요? 아빠는 지금 어디 있는데요?”소채은은 다급히 물었다.“지금 침대에 누워있으니까 얼른 가보자꾸나.”그녀들이 소청하를 보러 안방에 갔더니 소청하는 꾀병을 부리며 침대에 누워있었다.“아빠! 괜찮으세요?”누워 있는 소청하를 본 소채은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채은이 왔구나. 난 괜찮으니 걱정 안 해도 돼.”소청하가 말했다.“쓰러졌는데 괜찮다니요. 제가 부축할 테니 지금 당장 병원 가요.”소채은은 소청하를 병원에 데려가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나 정말로 괜찮아.”아프지 않으니 당연히 병원 갈 이유가 없었다.“하지만 쓰러지셨다면서요?”소채은이 말했다.“얘도 참, 내가 쓰러진 이유는 구주와 네 일 때문이야.”소청하는 한숨을 내쉬었다.“저랑 구주요?”소채은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래. 이 바보야. 생각 좀 해 봐. 구주가 서울에 간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네 아비인 내가 어찌 걱정 안 할 수가 있냐?”소청하의 말에 소채은은 그제야 그가 꾀병 부린 이유를 알 것 같았다.“채은아, 네 생각을 아빠한테 말해줄 수 있어?”소청하가 소채은
“얘야, 이 어미도 네 아빠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그가 너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서울이 우리 화진의 수도란 사실을 너도 잘 알잖아. 그런 대도시에는 아름다운 여성들이 길가에 즐비했어. 다른 여자들이 구주를 채가지 않게 신경 좀 써야 할 거야.”천희수도 입을 열었다.이들의 재촉에도 소채은은 차분함을 잃지 않았다.“아빠, 엄마, 너무 멀리 갔어요. 저와 인연이라면 어떻게 해보겠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너무 연연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구주와 저 사이의 문제를 두 분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부모로서 어떻게 자식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있겠니? 그를 바다에서 구해준 사람은 너야. 어찌 이리도 배은망덕할 수 있단 말이냐.”소청하가 말했다.“네 아빠 말이 맞아. 무슨 일이 있어도 널 버리면 안 되지.”부모의 말에 소채은은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회사 갈 거니까 저와 구주의 문제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마세요.”소채은은 말을 마치고 자리를 떴다.“채은아!”“채은아!”소청하와 천희수가 큰 소리로 외쳤지만, 소채은은 뒤돌아보지 않았다.방에서 빠져나온 후에도 머리는 여전히 윙윙거렸다.사실 그녀도 윤구주를 원했지만, 명성이 자자한 윤구주가 강성과 같은 소도시에 자리를 잡을 리 만무하다고 소채은은 생각했다.“내가 그의 배필로 자격이 없을지도 몰라.”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소채은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이때, 갑자기 그녀의 뒤에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채은 씨, 오늘에 일찍 퇴근하셨네요.”그녀가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우아한 각선미와 옥 같은 얼굴을 한 연규비가 보였다.길고 몸에 착 감긴 듯한 치마는 그녀의 S라인 몸매를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했다.연규비의 목소리에 소채은은 재빨리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고 고개를 돌렸다.“일이 바쁘지 않아 일찍 돌아왔어요.”“아. 정말요?”연규비는 소채은의 눈이 퉁퉁 부은 것을 발견했다.소채은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채은 씨, 또 구주를 생각한 거예요?”연규비는 소채은에게 다가가
박창용이 용인 빌리지에 온다는 소식이 퍼지자, 그가 윤구주의 소식을 가지고 왔을 것으로 생각한 백경재, 주세호, 그리고 소청하 부부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모두가 앉아 있는 대청마루에 연규비가 들어왔다.“규비 여신님, 박 사령관이 무슨 소식을 가지고 온대요? 저하에 관한 소식인가요?”백경재가 흥분에 가득 찬 목소리로 연규비에게 묻자, 연규비가 답했다.“자세한 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박 사령관의 말투로 보아 그런 것 같아요.”“하하! 이런 경사가 또 어디 있을까. 우리 저하의 소식이라니요.”감격에 겨운 듯 백경재의 눈가는 촉촉이 젖었다.물론 다른 사람들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서울로 떠난 반년이란 시간 동안에 윤구주는 문벌과 세가와 싸우느라 강성에 있는 식구들을 신경 쓰지 못했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이들을 버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저하가 저희를 버리지 않았다고 제가 말했잖아요.”주세호가 득의양양하게 말했다.모두가 대청마루에서 창용 부대의 총사령관인 박창용을 기다리고 있었다.한 시간이 흐른 뒤, 용인 빌리지의 아래에 3대의 지프 군용차가 나타났다.차 문이 열리자, 가장 먼저 차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군복을 입고 실탄 장착한 총을 지니고 있던 경비병들이었다.그러고 나서 우람한 체구를 갖춘 박창용이 차에서 내렸다.“사령관님, 도착했습니다.”경비병의 말에 박창용이 고개 들어 용인 빌리지를 올려다보았다.“저하가 떠난 이후로 한 번도 오지 않았으니 꽤 오랜만이네. 다들 저하를 그리워하고 있겠지?”말을 마친 후, 박창용은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이제 올라가 보자꾸나.”그는 경비병 몇 명과 함께 용인 빌리지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박창용과 경비병들이 용인 빌리지의 입구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 입구에서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백경재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박 사령관님, 이제야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말하면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백경재를 바라보던 박창용은 하하거리며 웃었다.“백 대사님, 오랜만입니다.”“제가 얼마나 눈이 빠지게
이에 대해 알 리 없는 사람들은 박창용의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설국의 선대 국주가 갑자기 붕어한 탓에 다른 새 국주를 임명했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새 국주가 여성이라던데.”주세호가 말했다.“주 회장의 말이 맞아. 그렇다면 설국의 젊은 국주가 왜 갑자기 붕어했는지는 알고 있나?”박창용이 또 묻자, 주세호가 이번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주세호는 사업가인지라 국정에 대해 알 리 없었다.“참수당했어!”박창용은 큰 소리로 말했다.“네? 설국의 선대 국주가 참수당했다고요?”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네. 10국의 성원이었던 설국의 야심은 하늘을 찔렀어요. 특히 요 몇 년 동안에 우리 화진의 국경을 밥 먹듯이 침범한 탓에 그 대가를 치른 셈이죠. 이뿐만이 아니에요. 설국은 군신, 광명 신전 등 거물급 인사들까지 잃었어요. 당연히 이 모든 것은 한 화진 사람의 소행이고요.”이 말을 내뱉는 박창용의 목소리는 격앙된 상태였다.“그것이 정녕 사실이란 말인가요? 그렇다면 대체 누구의 소행이에요?”소청하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화진 사람 한 명이 설국을 상대로 싸워 설국의 국주를 참수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소청하의 질문에 박창용은 오히려 껄껄 웃으며 사람들에게 되물었다.“하하! 누가 이렇게 대단한 능력을 갖췄는지 여러분은 짐작이 가시나요?”“박 사령관님, 혹시 구주를 말씀하시는 건가요?”총명한 연규비가 물었다.“네? 저하라고요?”백경재가 외치자, 소채은은 물론 그 자리에 있던 주세호와 다른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박창용을 바라보았다.“저하를 잘 아는 사람은 역시 규비 여신님밖에 없네요. 맞아요. 설국의 국주를 참수하고 설국을 백 년 동안 우리 화진에게 굴복시키게 한 인물이 바로 저하에요.”박창용이 진실을 말하자,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은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홀로 한 나라와 맞선 데다 설국 국주의 목까지 베었다니!”“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설국을 백 년 동안 우리 화진의
박창용이 말했다.“저도 잘 몰라요. 북방군과 황성 금위군이 흑여산맥에서 철수했다는 사실 외에 저하에 대해서 저도 아는 것이 없어요. 지금까지 감가 무소식이에요.”대청마루에 있던 모든 사람의 얼굴에 실망이 가득했다.모두 윤구주를 만나고 싶었지만, 박창용처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조차도 윤구주의 행방을 모르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어휴. 언제면 저하를 만날 수 있을는지.”백경재가 탄식했다.다른 사람들도 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허탈한 표정만큼은 감추지 못했다.…이때, 강성의 숨겨진 공항에 군용 헬기가 천천히 착륙하더니 군인들이 공항 외곽을 철저히 봉쇄하기 시작했다.그리고 공항 활주로에는 수십 명의 중무장한 군인들로 채워졌다.헬기의 문이 열리자, 3명의 영웅인 박천후, 염수천, 그리고 윤구주가 안에서 걸어 나왔다.“박 총사령관님! 염 통령님!”소령으로 보이는 한 장교가 박천후와 염수천이 걸어 내려오는 것을 보더니 즉시 차려 자세를 취했다.하지만, 이 장교는 윤구주를 알아보지 못했다.박천후가 이 장교를 힐끗 쳐다보며 손을 흔들었다.“너희들은 이만 가봐.”“네!”그러자 두 줄의 군인들이 물러났다.“저하, 강성에 도착했어요.”윤구주를 향해 고개를 돌린 박천후가 공손하게 말했다.윤구주는 자리에 멈춰선 후, 강성의 하늘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한 번 했다.“드디어 그녀를 만나게 되는가? 용인 빌리지로 갈 테니 차 준비해.”“네!”차를 준비하라고 박천후가 서둘러 부하들에게 명령했다.박천후와 염수천을 데리고 용인 빌리지로 향하는 도중에 윤구주는 소채은과의 기이한 만남에 대한 에피소드와 강성에서 보냈던 날들을 두 사람에게 말했다.그러자 박천후가 감격에 찬 어조로 말했다.“저하의 얘기를 들어보니 채은 씨는 엄청 착하신 분이네. 그녀를 만난다면 감사 인사를 제대로 드려야겠어.”“그래.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염수천도 찬성했다.윤구주는 창밖의 익숙한 풍경을 바라보며 소채은을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함과 함께 살기 가득한 눈빛을 한 백경재는 즉시 공격 태세를 갖췄다.“백 선생, 날 죽이려고?”익숙한 목소리가 백경재의 귓가에 들려옴과 동시에 윤구주의 모습이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이 늙은이가 꿈꾸고 있는 건가? 저하?”갑자기 나타난 예구주를 보더니 백경재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윤구주가 미소를 지으며 백경재에게 다가갔다.“뭐야? 고작 반년 못 봤는데 날 잊은 거야?”“제가 어찌 저하를 잊을 수 있겠습니까!”백경재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저하가 정말로 강성으로 돌아왔다고요?”백경재는 여전히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당연하지. 나 윤구주 맞아.”윤구주가 싱긋 웃자, 백경재는 자기 얼굴을 꼬집었다.통증이 느껴지고서야 그는 비로소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맙소사! 저하가 돌아오다니! 저하가 정말로 돌아왔네요!”용인 빌리지의 내부를 향해 백경재는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주 회장님, 채은 씨, 규비 여신님, 어서 나와들 보세요. 저하가 돌아왔어요!”백경재의 말에 서둘러 뛰쳐나온 주세호, 연규비, 소청하 부부, 그리고 박창용은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했다.“저하!”“내 사위가 정말로 돌아왔다고?”“저하가 돌아왔어!”익숙한 사람들을 바라보던 윤구주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그래. 나야. 이 윤구주가 왔어.”윤구주가 이렇게 갑자기 올 줄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우리 사위가 드디어 돌아왔네. 보고 싶어 미치는 줄 알았어.”윤구주를 보자마자 소청하는 감격의 눈물을 쏟아냈다.“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천희수도 눈시울이 붉어졌다.물론 다른 사람들도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잠깐, 천후 맞지? 수천도 있네. 너희들이 왜 저하 옆에 있어?”윤구주 뒤에 박천후와 염수천이 있는 것을 박창용은 발견했다.“하하하! 당연히 저하와 함께 창용 씨를 뵈러 왔죠. 그나저나 너무 한 거 아니에요? 저하의 소식을 가장 먼저 알았으면서도 왜 우리에게 알리지 않았어요?”박
말을 마친 천희수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소채은에게 전화했지만, 소채은의 휴대폰은 꺼져있었다.“얘가 왜 휴대폰은 끈 거야?”몇 번 전화를 더 해봐도 휴대폰은 여전히 꺼져있었다.천희수가 답답해하자, 그녀 옆에 있던 소청하가 상황 수습에 나섰다.“구주야, 걱정하지 마. 채은이 네가 너무 그리워서 산책하러 나갔나 보다. 아마 곧 돌아올 거야.”소채은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본 윤구주는 조금 서운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강성의 스카이가든, 이곳은 소채은이 소씨 가문에서 쫓겨 난 후 소채은과 윤구주가 함께 살았던 곳이었다.소채은과 그녀의 곁에 고분고분하게 누워있는 까망이가 지금 이곳에 있었다.윤구주가 혼자서 설국을 상대로 싸워 설국 전체를 화진의 속국으로 만들었다는 소식을 박창용한테서 들은 후부터 그녀는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약간 쓸쓸하기도 했다.기뻤던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가 이 세상의 위대한 영웅이라는 사실이었고, 쓸쓸했던 것은 자신이 윤구주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우두커니 소파에 앉아 있던 그녀는 하얀 다리를 껴안은 채 옆에 있던 까망이에게 물었다.“까망아, 그가 이제는 돌아오지 않겠지? 하긴 나같이 평범한 사람이 천하를 뒤흔든 구주왕의 배필로 전혀 어울리지 않긴 해. 사실, 나도 그가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그러면 평생 그와 함께 할 수 있을 텐데…”말하다 말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소채은은 다른 여자들과 달리 부귀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다.순수한 마음을 가진 그녀의 바람은 단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오손도손 함께 살아가는 것이었다.그러나 윤구주가 평범한 사람이 아닌지라 당연히 그녀의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그녀가 혼자서 흐느끼며 울고 있을 때 갑자기 ‘똑똑’하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소채은은 어리둥절했다.그녀의 옆에 있던 까망이도 극도로 흥분하여 문을 향해 멍멍 짖었다.“누구세요?”소채은은 조심스럽게 물었다.이 스카이가든은 그녀만의 사적인 공간이어서 부모를 제외하고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그런
“채은아, 널 보러 왔어.”현관 입구에 있던 윤구주가 웃음 띤 얼굴로 눈물범벅이 된 소채은을 바라보자, 소채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두 손으로 윤구주를 껴안았다.손을 놓으면 그가 사라질 것만 같아서 꽉 잡고 있었다.“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윤구주도 자기 앞에 있는 소채은을 껴안으며 말했다.그가 기억하고 있던 소채은은 순수하고 착해서 나쁜 마음을 가진 적이 없었다.비록 연규비, 이홍연, 그리고 연예인인 은설아와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었지만, 윤구주는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자신이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이 소채은이란 사실이 추호도 변함이 없었다.그들 옆에 있던 까망이가 이 모습을 보더니 마치 윤구주의 귀환을 환영이라도 하듯 ‘멍멍’하며 짖어댔다.“드디어 돌아왔네! 난 또… 네가 다시는 안 올 줄 알았는데.”소채은이 흐느끼며 말했다.그녀도 사랑과 증오, 그리고 걱정과 두려움을 가진 평범한 여자인지라 윤구주의 정체를 알았을 때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다.윤구주가 너무 훌륭하고 완벽해서 그녀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처지를 원망했었다.“이 등신아. 내가 왜 안 올 거로 생각한 거야? 서울에 일이 너무 많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이제야 오게 된 거야.”윤구주는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며 다정하게 말했다.그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소채은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그나저나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야?”흐르는 눈물을 닦은 소채은이 윤구주를 바라보며 묻자, 윤구주는 미소를 지었다.“여기가 우리 둘이 함께 살았던 곳이잖아.”그 말을 들은 소채은은 방긋 웃었다.‘구주의 마음속에 여전히 내가 있나 보다.’“서울에서 무슨 일을 겪은 거야? 왜 이렇게 몰라보게 변했어?”소채은은 눈을 깜빡이며 눈앞의 윤구주를 바라보았다.“내가 변했다고? 어떻게 변했는데?”윤구주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전보다 더 멋있어진 것 같아.”소채은은 솔직하게 답했다.그녀의 말대로 전성기를 되찾은 윤구주
바로 그때, 검은 그림자가 움직였다. “이제야 반응했나? 늦었어. 완전히 죽진 않더라도 반쯤은 죽을 거야.” 호천신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쿵!’ 검은 그림자는 별다른 고급 기술을 사용하지 않았다. 한 걸음 내디디며 얼음을 깨뜨리고 주먹으로 얼음을 강타했다. 전성기의 진동왕도 죽일 수 있는 술법이 그의 주먹 한 방에 산산조각이 났다. ‘뭐?’ 호천신의 눈알은 툭 튀어나올 뻔했다. ‘단순히 체질과 괴력으로 내 신술을 깨뜨렸다고? 이 자식의 몸이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거야.’ 검은 그림자는 얼음을 깨뜨린 후 세 걸음으로 산을 넘어 십만 대군의 눈앞에서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눈 깜짝할 사이에 공간을 가로질러 호천신 앞에 나타났다. 후자의 등장이 너무 갑작스러워 호천신조차도 압도당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뒤로 날아가며 거리를 벌렸다. ‘휙!’ 검은 그림자는 바로 뒤따라갔고 이번에는 거의 호천신과 얼굴을 맞대고 마주 보았다. “네가 가짜 신이라고 한 건 바로 그 때문이야! 하류의 잡것이 감히 우리 왕에게 실례를 범하다니.’ 검은 그림자는 한 발의 정통 발차기로 호천신의 복부를 강하게 찼다. 이 한 방에 호천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뒤로 날아가 땅에 처박히며 먼지를 일으켰다. 이때 십만 대군이 그 검은 그림자를 알아보았다. 그는 바로 화진 남부를 지키는 총사령관이자 구주왕 통솔하에 있는 4대 군신 중 한 명인 현모였다. “현모 장군!” 십만 전사들은 극도로 흥분했다. 그들은 현모가 있는 방향을 향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현모 장군을 뵙습니다!” ‘쿵!’ 십만 대군의 진기가 더욱 짙어졌다. 새로 탄생한 국운도 순식간에 한 단계 올라갔다. 그에게 무릎을 꿇은 십만 전사들을 향해 현모는 냉담하게 반응했다. 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 모두 귀가 먹었나? 진동왕이 방금 너희에게 군령을 내렸다. 귀신족 하나라도 놓치면 군법으로 처벌한다.” 이 광경을 다른 사람이 보면 이놈의 현모는 너무 냉정하고 무정하다고 할 것이다
“이 전투는 위태롭구나!” “곤륜 구역의 수련자들은 원래 구주 오방의 무인들보다 한 수 위인데 지금 이 자식의 수련이 나보다 훨씬 높으니 내가 열 번의 공격을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 아직 싸우지도 않았는데 진동왕 임성진은 벌써 기가 죽어 있었다. 기세에서 완전히 패배한 상태였다. “음? 임성진, 보아하니 너는 전혀 각오가 되어 있지 않구나. 하지만 상관없지. 각오가 있든 없든 너는 내 상대가 되지 못해. 세 번, 세 번의 공격 안에 너를 죽이지 못하면 난 신이라 부를 자격이 없다!” 호천신은 두 손가락을 세우고 금빛 번개와 붉은 불꽃 두 가지 술법을 하나로 합쳐 아래의 진동왕을 향해 날렸다. “왔다!” 진동왕은 크게 외치며 임씨 가문의 기술을 펼치는 동시에 몸에 지닌 모든 법기를 꺼냈다. 진동왕이 방어를 마친 순간, 호천신의 술법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무서운 위력이 사방을 압도했다. 진동왕은 그 기세에 거의 무너질 뻔했다. “막아내!” 진동왕은 필사적으로 외치며 온 힘을 다해 막아냈다. ‘쿵!’ 눈 부신 빛이 천옥의 모든 색을 압도하며 하늘의 절반을 환하게 비추었다. 번개가 미친 듯이 내리치고 붉은 불꽃은 거센 파도처럼 휘몰아쳤다. 산이 흔들리고 땅이 진동하며 폭발음이 사방을 울렸다. 이 천지를 뒤흔드는 소리는 마치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듯했다. 평정을 되찾은 후, 진동왕이 원래 있던 자리는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발 아래 수백 미터의 땅이 유리처럼 녹아 있었다. 몸이 찢어지고 심한 화상을 입은 진동왕은 비틀거리며 거의 쓰러질 뻔했다. 단 한 방에 진동왕은 중상을 입었고 법기는 모두 부서졌다. 법기가 없었다면 그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음, 법기를 이용해 내 일격을 막아냈구나. 너의 실력은 인간계의 다른 구오 지존들보다는 한 수 위지만 그뿐이야. 다음 공격으로 너의 목숨을 거두겠다.” 호천신은 허공을 움켜잡았고 천지의 영기가 그의 손바닥으로 모여들었다. 영기가 실체화되어 얼음으로 변했다. 아래의 진동왕은
“소자, 그 말은 잘못되었네. 너희 신들도 결국 사람이잖아? 단지 수련 기술이 좀 더 높을 뿐이지. 게다가 내가 곤륜 구역의 힘으로 구오 지존에 올랐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야. 구주왕이 나를 도와 정상에 오르게 한 거야. 곤륜 구역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그리고 곤륜 구역을 공격했다고? 나에게 함부로 죄를 뒤집어씌우지 마! 세상 사람들 모두 알고 있듯이 천옥은 이미 곤륜 구역에서 제명되었어. 우리가 여기에 온 목적은 너희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문제야. 너희는 우리 선대 국주와 약속을 했었지. 귀신족은 너희가 직접 처리해야 해. 지금 너희가 움직이지 않으니 우리가 대신 그 약속을 이행하려는 거야.” 진동왕의 말은 모두 일리가 있었지만 천신의 귀에는 단지 웃음거리로 들릴 뿐이었다. “말주변이 좋군. 말은 잘하지만 소용없다. 신도는 죄가 없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야.” 호천신은 냉랭하게 말했다. 진동왕은 욕하고 싶었다. 신도는 죄가 없다. 그것은 봉신방 이후에 정해진 첫 번째 신규였다. 쉽게 말해 모든 해석권은 신계에 있다는 것이다. 신계가 무슨 일을 하든 다른 사람은 간섭할 권리가 없다. 한 마디로 신을 거역하는 자는 용서 없이 죽인다. “임성진, 널 난처하게 하지 않을게. 너희는 귀신족을 죽일 수 없어. 약속에 관해서는 임세현을 불러와. 그의 체면을 봐서라도 나는 그에게 이유를 만들어줄 수 있어. 하지만 너는 그럴 자격이 없어. 너는 육체를 버리고 나를 따라 신계로 돌아가. 표현이 좋다면 전주께서 너의 목숨을 살려줄지도 모르지. 그리고 이 십만 명은 말이지, 하늘은 생명을 소중히 여겨. 벌레의 목숨도 목숨이니까. 하지만 신규가 있으니 신이 규칙을 어기면 벌을 받아야 하고 인간은 더욱 천지 신도를 지켜야 해! 십만 명은 너희 스스로 처리해. 마지막으로 죽는 만 명은 천옥을 떠날 수 있어. 물론 너희는 거절할 권리가 있어. 거절의 결과는 내가 더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 호천신은 조용히 아래의 십만 명을 바라보았다. 십만 명이 놀라움에서
‘쿵!’ 현모는 천옥을 뚫고 나와 산을 들이받으며 전장으로 향했다. 천옥 전법 안에서 수옥인이 분노했다. “구주왕! 저 자식이 감히 나를 협박한 거야?” 윤구주는 놀랐다. ‘이 겁쟁이에게도 성격이 있네?’ “오! 진흙으로 만든 사람도 화를 낸다더니, 하물며 당신 같은 ‘신'은 말할 것도 없겠지!” 윤구주는 놀리듯 말했다. “뭐? 무슨 소리야.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당신 부하인 그 전신이 한 손가락만 까딱해도 나를 죽일 수 있다는 거야. 그런데 그가 나보고 당신을 보호하라고 하다니? 당신이 문제 생기면 나를 죽이겠다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이건 사람 잡는 짓이야! 당신이 나 대신 결정을 내려야 해!” 수옥인은 화를 내며 말했다. ‘젠장!’ 윤구주는 어이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수옥인은 더욱 기세를 올렸다. “조상님! 당신 부하 머리에 구멍이 뚫린 거 아니야? 그들이 진짜 당신을 죽일 수 있다면 내가 무사할 수 있을까? 말하기 전에 머리 좀 쓰지!” 수옥인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저리 가! 나한테 말 걸지 마!” 윤구주는 이 쓰레기 같은 놈을 상대하기 싫었다. 귀산에는 검은 안개가 자욱하고 검은 연기가 대지를 뒤덮었다.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리는 가운데 하나의 신의 형상이 나타났다. 그 형상은 번개 빛에 의해 무한히 길게 늘어져 땅에 비친 그림자가 산보다 더 높았다. 십만 전사들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요괴나 귀신이 오든 간에 그저 죽이면 그만이었다. 진동왕의 표정이 변했다. 그의 얼굴은 심각해졌다. 무지한 자는 두려움이 없다. 전사들을 무지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듣기 좋지 않지만 현재 상황에서 전사들이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이번에 온 ‘신'이 얼마나 강한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 기운은 이미 절정에 달했어. 안 되겠어. 이번에 온 건 구오 지존 대원만의 신경이야!” “이 한 걸음을 넘어서면 그는 극전 신경이 될 거야!” 진동왕은 얼마 전에야 구오 지존 신경에 진급했다. 그것도 윤
희미한 노인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윤구주, 시간이 없으니 간단히 말하겠다! 내가 누군지 묻지 마. 너는 단지 곤륜 구역의 한 대신전에서 구오 지존 대원만 경지의 천신을 보내 너를 막으려 한다는 것만 알면 돼. 그의 목적은 너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상황을 어지럽히려는 것이야. 어떻게 결정할지는 네가 정해. 우리 쪽에서는 이미 너를 위해 많은 것을 얻어냈다. 그렇지 않으면 온 것이 구오 경지가 아니었을 거야.” 투영은 급하게 왔다가 수옥인이 인사할 틈도 없이 빠르게 사라졌다. “신전이 너의 계획을 방해하려 해. 이것은 이미 누군가가 너를 위해 얻어낸 결과야. 원래 그들은 너를 죽이려 했었어. 아마 오려는 자는 극전 신경, 황자였을 거야.” 수옥인은 또다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윤구주의 반응은 평범했다. 그는 수옥인의 겁에 질린 모습을 보며 경멸하는 듯 말했다. “고작 신전 하나에 겁먹었어? 너도 여섯 신전 중 하나에서 나왔다는 걸 잊지 마! 또한, 극전 신경은 하나의 경계고 황자는 또 다른 경계야. 모든 극전 신경이 황자라 불릴 수 있는 것은 아니야.” 이 둘의 관계는 진동왕이 왕이지만 왕이라 불릴 만한 자격이 충분하지 않은 것과 같다. 화전에서 현재 인정받는 왕은 윤구주 단 한 명뿐이다. 국주 임정설은 무계에서의 영향력이 부족해 겨우 절반 정도로 간주된다. “비록 그렇다고 해도 상대는 기세가 등등하니 가볍게 볼 수 없어. 내가 그 사람이었으면 너를 찾지 않고 네 부하 전사들을 노렸을 거야.” 수옥인은 분석했다. 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옥인이 비록 겁이 많지만 머리는 좋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내가 지금 너를 도와 전법을 안정시키고 있다는 것까지 계산했어. 그 천술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고 곤륜 구역의 그 자식이 여길 계속 주시하고 있어. 내가 나가면 그 사람은 전법을 조작할 거야. 그들이 현모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계산했는지는 모르겠네.” 윤구주는 눈을 가늘게 뜨고 서 있는 현모를 바라보았다. 말이 이 정도까지 나왔는데도
전쟁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윤구주는 의심이 들었다. ‘곤륜 구역이 정말 내 뜻대로 움직인다고? 귀신족을 노예로 여기고 귀신족의 음기를 받드는 ‘신’들이 귀신족이 자신에 의해 멸망하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 “왜 그래, 조상님? 문제라도 있어? 왜 그렇게 표정이 심각하신 거야?”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낀 수옥인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무 일도 아니야. 너는 저쪽 전장을 잘 지켜보고 어떤 움직임이라도 있으면 즉시 나에게 알려.” 윤구주는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집중해 다시 전법을 수리하기 시작했다. 천옥, 끝없는 산악 지대 깊은 곳에 음침하고 죽음의 기운이 감도는 어두운 산이 있었다. 하늘에서 보면 그 산은 마치 해골처럼 무섭게 보였다. 이 ‘해골' 모양의 산은 바로 귀신족의 대영이었고 이 종족의 마지막 거주지인 귀산이었다. “죽여라!” 산 위에서는 함성이 귀를 찢을 듯했다. 십만 대군이 각기 전장을 이끌며 산을 공격해 귀신족을 상대로 마지막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는 귀신족 수련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인간 전사들이 감히 신계로 들어왔다는 것, 특히 단독 군대가 이렇게나 강한 기세를 보인다는 것이었다. 수옥인의 투영이 바로 이 귀산에 있었다. 그는 수백 미터 상공에 떠서 전장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특히 이 인간 대군이 지닌 군대의 살벌한 기운은 그를 놀라게 했다. “천옥은 비록 곤륜 구역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신계로 간주한다. 이곳은 인간계가 아니다. 신조차도 인간계에 가면 적응하기 어려울 텐데 이들은 어떻게 천지의 영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걸까?” 수옥인은 이곳의 격렬한 천지의 영기가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극도로 불안정한 영기는 쉽게 사람의 정신을 붕괴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떤 훈련을 통해 이 군대가 이렇게 무적의 의지를 갖게 된 것일까?’ 수옥인은 이 순간 앞에 진정한 무서운 아수라 지옥이 있다고 해도 이 인간 전사들은 두려움 없이
“할아버지, 이건 제가 자초한 거예요. 설령 오빠가 제가 오빠를 배신한 걸 신경 쓰지 않는다 해도 제가 오빠의 부하 장군과 병사들을 억울하게 해쳤다는 것만으로도 오빠는 저를 용서할 수 없을 거예요. 이런 말은 소용없어요. 지난 일은 지나간 일이에요. 가끔 추억하는 것도 좋지만 그 추억에만 매달려서는 안 돼요. 오빠는 이미 천옥에 들어갔을 거예요. 이제쯤이면 선우진웅을 처단했겠죠. 잘됐네요. 선우진웅이 임세현을 죽였고 윤구주가 선우진웅을 죽였으니 임세현의 원수를 갚은 셈이에요. 이 화진을 어지럽힌 대적을 처단했으니 임세현도 죽어서 눈을 감을 수 있을 거예요.” 문아름의 눈에는 음흉한 눈빛이 번뜩였다. 모든 것이 그녀의 완벽한 계획 속에 있었다. 문창정은 할 말을 잃었다. ‘또 윤구주가 영웅이 되게 했구나.’ “얘야, 지금 귀신족은 진동왕 하나도 막기 힘들어하고 있어. 그 십만 대군은 귀신족을 개죽이듯 죽이고 있지. 설령 곤륜 구역에서 강자를 보낸다 해도 곤륜 구역의 성격상 칼이 목에 닿기 전에는 절대 상황이 얼마나 급박한지 깨닫지 못해. 보낸 사람은 윤구주에게 밥이 될 뿐일 거야.” 문창정이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문아름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제가 다른 계획을 준비했어요. 이미 한 명의 사사를 보냈어요. 이번에는 윤구주를 죽이지 못하더라도 천옥에 가둘 거예요. 일 년만 가두면 오빠가 나왔을 때는 이미 모든 게 늦은 뒤일 거예요.” “오? 만약 가두지 못한다면? 만약 윤구주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온다면?” 문창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 더 좋아요. 나오려면 윤구주는 정원을 희생해야 할 거예요. 한 사람의 힘으로 천재를 이겨내야 하죠. 나와도 거의 폐인이 될 거예요. 그때 제가 다시 계획을 세워 오빠를 천인 오쇠로 만들고 종문 동맹이 나서 오빠를 몰락시키면 되죠! 저는 오빠가 몰락하는 장면을 기록해 모든 화진 사람에게 영웅이 되는 것의 결말이 어떤 건지 보여주겠어요!” 이 말을 들은 문창정은 손녀의 계획을 짐작했다. 윤
화진의 국경에는 광활한 산맥 끝없이 펼쳐져 있다. 추운 겨울이 찾아왔고 눈이 산을 뒤덮었다. 문아름은 산꼭대기에 앉아 고대의 거문고를 어루만졌다. 그녀의 마음은 어느새 옛날로 돌아갔다. 화진 제일의 교활한 여자라 불리며 음흉하고 독한 성격으로 유명한 그녀였지만 지금 그녀의 눈에는 따스함이 가득했다. 문창정이 눈길을 밟으며 다가와 문아름에게 순백의 겉옷을 걸쳐주었다. “날이 추워졌으니 몸을 따뜻하게 해.” 문창정은 걱정스럽게 말했다. 문아름이 반응이 없자 그녀의 정신이 이곳에 있지 않음을 알았다. 그는 거문고를 한 번 보고는 모든 것을 깨달았다. “또 그 사람을 생각하는구나. 아직도 그 사람을 잊지 못했어.” 문창정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문아름은 정신을 차렸다. “이 거문고는 그 사람이 저에게 준 거예요. 그때 저는 국방부 참모로 남부 왜구의 난을 담당했고 국주를 위해 계책을 내놓곤 했죠. 그 사람도 그때 막 중령으로 진급했을 때였어요. 고작 한 명의 단장에 불과했죠. 할아버지가 직접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문씨 가문의 딸을 얻으려면 최소한 장군은 되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도 기억나요. 그 후, 그 사람은 혼자 왜적의 대영으로 쳐들어가 화진 남부를 어지럽히던 왜적의 수뇌부를 전멸시켰어요. 그 공로로 소장으로 진급했고 화진에서 가장 젊은 장군이 되었죠. 하지만 할아버지, 그거 알아요? 그 사람이 장군이 된 후에도 국주가 준비한 경축 연회에 참석하지 않고 밤새도록 서울로 날아가 재상부에 잠입해 육도진의 가보인 이 거문고를 훔쳐 와 저를 만났어요.” 이 말을 하며 문아름은 입을 가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육도진은 화가 단단히 났어요. 그 늙은이도 고집이 세서 구주 오빠를 처벌하려고 했어요. 구주 오빠는 어떤 사람인데요. 저를 위해 훔치고 빼앗아도 이치에 맞지 않음을 알면서도 육 우상을 쳐다보지 않았어. 이 일이 너무 커져 결국 국주가 직접 나서서 중재했죠.” 이 말을 듣고 문창정은 고개를 저었다. “국주가 나선 건 겉보
“그래, 내 부하인 네 명의 군신 중에서 현모가 왕실과 가장 가까운 관계야. 임세현 선배가 현모를 구한 것도 예상했던 일이지. 만약 사해에서의 전투에서 내가 정말로 죽었다면 왕실은 다른 세 명의 군신을 움직일 수 없어서 현모를 대장으로 삼아 국주를 보필했을 거야.” 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말하자면 네 부하인 현모는 정말 운이 좋은 놈이야. 행운은 불행을 따라오는 법이지. 임세현이 현모를 가르쳐 구오 지존 경지에 이르게 했고 이 천옥에서 평생의 철학을 전수했어. 그 노인은 자신의 경험과 깨달음까지 전해주어서 현모가 구오 지존 경지에 이를 수 있었던 거야!” 수옥인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말을 나누는 사이에 천옥의 전법 중심에 도착했다. 전법은 수백 개의 법기로 구성되어 있다. 수만 개의 부적이 연결되어 대진을 이루고 있었다. 수옥인은 중심에 앉아 전법을 안정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윤구주는 도착하자마자 진기의 흐름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사악한 기운이 침투한 것이 분명했다. 잠시 관찰한 후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했다. “결국 문씨 가문이 무력으로 전법을 깨뜨려서 전법이 손상된 거로군. 곤륜 구역의 이 자식들, 이렇게 큰 전법을 만들어 놓고는 전법의 비밀을 철저히 감추고 있어. 같은 곤륜 구역 출신인데도 이렇게 경계하는 걸 보니 대체 무슨 비밀이 있는 거지?” 윤구주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조상님, 그런 건 나도 잘 모르겠어. 내 위치에서는 그런 걸 알 자격도 없어. 어쨌든 곤륜 구역은 예전부터 그랬지. 아무도 진정으로 곤륜 구역을 통일할 수 없었어. 잠시 딴소리를 하자면 예전에 일이 너무 커졌었어. 천술을 남용하고 천지의 기운이 혼란에 빠져 모두가 고통받는 것을 막기 위해 봉신방을 만들어 인간계와 신계를 나눈 거야.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이 세상이 얼마나 혼란스러웠을지 상상이 안 가.” 수옥인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윤구주는 이 말을 듣고 더욱 불쾌해졌다. 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수옥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