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연은 진정할 수가 없었다.그녀의 머릿속엔 온통 영감탱이 주도가 했던 말만 맴돌았다.‘무슨 방법이든 일단 엎질러진 물이 돼버리면 윤구주의 여자가 될 수 있습니다.’스르륵!이홍연의 원피스 지퍼가 열리면서 그녀의 새하얀 어깨가 확 드러났다.황실 육공주의 미모나 몸매는 더 말할 것 없이 너무나 화려했고 탄력이 넘쳤으며 새하얀 피부는 양지옥같이 매끄럽고 윤기가 흘러내렸다.이홍연은 윤구주를 꼭 끌어안은 채 자신의 옷을 벗으며 키스하고 있었다.윤구주는 순간 멍해졌고 이홍연은 어느새 옷을 다 벗어버렸다.그녀의 완벽한 몸라인, 새하얀 다리, 그리고 볼륨 있는 가슴까지 한꺼번에 윤구주의 시선에 들어왔다.“이홍연, 너…”윤구주가 이홍연을 막으려 했지만, 그녀는 이미 완전히 흥분되어 있었다.이홍연은 윤구주의 말에 신경도 쓰지 않고 그의 품속으로 덮쳐 들어 거침없이 입맞춤하였다.윤구주도 사람이고 건강한 남자인지라 처음엔 진정할 수 있었지만, 그녀의 거침없는 행동에 그도 더는 참을 수 없었다.필경 윤구주도 이홍연을 사랑하고 있었고 그 마음은 매우 혼란스러웠다.윤구주는 이홍연을 껴안았고 그렇게 서로 사랑을 확인한 두 사람은 드디어 한 몸이 되어버렸다.방안에는 봄빛이 잔잔하게 흘러 들어왔고 그렇게 둘은 황홀한 밤을 보냈다.이튿날 아침이 밝아오자, 이홍연은 그제서야 눈을 뜨고 행복이 가득 넘친 눈망울로 옆에 알몸으로 누워있는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완벽한 그의 근육 라인은 강한 남자다움을 드러냈고 등 뒤에 커다란 용머리 문신은 강렬한 시각적 충격을 주었다.“일어났어?”이홍연이 깨어 있는 것을 본 윤구주는 부드럽게 말했다.이홍연은 작은 고양이처럼 냉큼 윤구주의 품속으로 기어들어 가면서 대답했다.“응.”“홍연아, 어젯밤 내가…”윤구주가 어젯밤 일에 대해 사과하려 했지만, 이홍연은 그에게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그의 입술에 입맞춤하였다그리고는 쑥스러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어젯밤 있었던 일은 지금 말하고 싶지 않아.”윤구주가 어떤 사람인지 이홍연
“홍연아, 너 괜찮아?”윤구주가 걱정되어 물었지만, 이홍연은 고개를 저으며 서둘러 대답했다.“괜찮아, 괜찮아.”윤구주는 그런 이홍연이 걱정되어 다시 물어보려 했지만, 그 순간 침대 시트에 있는 검붉은 핏자국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윤구주는 그제서야 이홍연이 배가 아팠던 이유를 알고 죄스러운 어조로 말했다.“이홍연, 내가 진짜 미안해.”이홍연은 시트에 있는 핏자국을 재빨리 이불로 덮어 감추고 부끄러워하며 말했다.“미안할 게 뭐가 있어. 난 처음부터 니 여자였어.”이홍연의 말을 들은 윤구주는 마음이 흔들렸다.“됐어. 그딴 걱정 그만하고 얼른 일어나. 설국에 그 망나니들을 죽이러 가야 되잖아.이홍연은 윤구주의 마음이 더 혼란스러워질까 봐 얼른 옷을 입고 일어났다.윤구주도 뒤따라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두 사람은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더 이상말하지 않았다.아침 식사 후,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자, 이홍연은 걱정하면서 말했다.“윤바보, 너 설국에 가서도 몸 잘 챙겨야 해.”“설국에 개미 같은 것들하고는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설국은 십국지일 이잖아.”윤구주는 웃으면서 대답했다.“응, 걱정하지 마.”“그럼 나 이제 서울에 올라갈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꼭 젤 처음 나한테 말해야 해. 아바마마께 일러 화진철기를 거느리고 설국을 밟아버리라 할 거야.”이홍연이 마지막으로 말했다.“그래, 알았어.”이렇게 둘은 헤어지게 되었다.이홍연은 아쉬운 마음에 몇 걸음 걷다가 돌아보고 또 몇 걸음 걷다가 돌아보고, 그렇게 윤구주가 거의 안 보일 때 갑자기 소리 높게 외쳤다.“윤 바보, 내가 사랑하고 있다는 걸 있지 마!”그러고 나서 이홍연은 기분 좋게 웃으며 사람들 속에서 사라졌다.이홍연이 떠나가는 모습을 윤구주는 그저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있었다.윤구주는 어제의 모든 일들이 후회스러웠다.왜냐하면 강성에서 힘들게 그를 기다리고 있을 소채은한테 미안한 짓을 했으니.‘채은이가 알면 맘이 많이 상할 텐데, 휴!’윤구주는 한숨을 내쉬며
3일 뒤, 절세의 한 그림자가 참매처럼 몇 개의 사막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끝없이 넓은 흑여산맥의 중심에 나타났다.자세히 보니 이 잘생기고 비길 데 없는 그림자가 바로 윤구주였다.흑여산맥은 기산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지만 윤구주 같은 신인에게는 아무 일도 아니었다.퉁!윤구주의 발이 바닥에 닿는 즉시 지면이 급격히 격렬하게 흔들렸다.“흑여산맥, 드디어 도착했구나!”윤구주는 칼날 같은 시선으로 끝없이 넓은 산맥을 바라보며 말했다.이미 예전에 윤구주는 설국과 싸워 백만 병사를 죽이고 모든 시체를 이 흑여산맥에 눕혔었다.그때의 윤구주가 다시 돌아왔다!흑여산맥은 끝없이 이어졌고 윤구주가 지금 갈 곳은 흑여산맥의 변경 지대였다.그곳에는 우리 화진 주군들도 있고 또 설국의 십만 병사들이 있기 때문이다.몸을 솟구치자, 윤구주의 그림자는 포탄처럼 흑여산맥을 향해 날아갔다.이 산맥에는 많은 소수민족 마을이 있고 그들은 대부분 아직도 가장 오래된 원시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윤구주의 눈에는 저 멀리 하나둘씩 파오를 사용하는 마을 종족들이 보였다.이 마을의 이름은 어룬부락이다.어룬부락은 청초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리 크지 않고 천여 명의 인구밖에 없다.이때 마을에 두꺼운 솜옷을 입은 어린아이가 광야에서 초조한 얼굴로 소리를 지르며 뛰어오고 있었다.“할아버지, 할아버지!”먼 곳에서 얼굴이 거무스름하고 피부가 거칠고 중절모를 쓴 노인이 풍상이 가득한 얼굴을 드러냈다.“막둥이, 여긴 웬일이냐?”아이는 총총걸음으로 달려와 말했다.“할아버지, 큰일 났어요! 설국에 그 나쁜 삼촌들이 또 우리 마을에 들어왔어요.”“뭐라고?”이 말을 듣자, 노인은 갑자기 얼굴색이 어두워졌다.“이런 개자식들이, 감히 또 우리 마을을 건드리다니! 가자, 어서 할아버지랑 같이 가보자!”노인은 얼른 아이의 손을 잡고 마을 안으로 뛰어갔다.분지 한 복판에는 한 개의 마을밖에 보이지 않았고 전부 파오 같은 구조로 되어 있었다.이때 마을의 중앙에는 군용 지프 두 대가 정거
설국 병사들이 마을 주민들의 흑염소들을 쫓아낼 때 40대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갑자기 그들의 앞에 서서 그들을 막았다.“내 양들을 빼앗지 마. 빼앗으면 안 돼!”그런데 여성이 그들의 앞으로 달려가자마자 설국 병사 한 명이 그녀를 차서 쓰러뜨렸다.“빌어먹을 여자, 감히 날 막으려고 해?”여성은 비록 바닥에 쓰러졌지만 포기하지 않고 설국 병사의 발목을 잡았다.“내 양들을 놔줘! 짐승만도 못한 놈들! 놔주라고!”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자는 설국 병사들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양무리를 몰던 설국 병사는 여자가 발목을 잡아당기자 들고 있던 총으로 여자의 머리를 내리쳤다.퍽 소리가 나더니 여자의 머리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엄마!”여자의 자식은 여자가 피를 흘리자 겁을 먹고 울기 시작했다.“빌어먹을 화진 놈들. 우리가 너희 것을 가져가는 건 너희의 영광이야. 그런데 감히 별 같잖은 게 날 막으려고 해?”설국 병사들은 약자인 마을 주민들을 바라보면서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안타깝게도 마을 주민들은 그들을 막을 수가 없었다.“이 흑염소들은 전부 데려가.”무리를 이끌던 설국 병사가 갑자기 입을 열어 말했다.그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근처에 있던 설국 병사들은 흑염소들을 몰아서 군용 지프에 태웠다.그런데 바로 이때 목소리 하나가 뒤에서 들려왔다.“빌어먹을 설국 놈들, 거기 멈춰!”그 목소리와 함께 까무잡잡한 피부의 노인이 다가왔다.노인의 이름은 다무였다.다무는 이 부족의 족장이자 마을의 유일한 수호자였다.“다무 아저씨가 돌아왔어요!”“다무 할아버지!”노인들과 아이들, 여성들은 다무를 보자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이 흥분했다.60대인 다무의 손에는 큰 검이 들려 있었고 검은 붉은색의 천으로 싸여 있었다.다무는 비록 나이가 지긋했지만 큰 검을 든 그는 기세가 넘쳤다.설국 병사들은 갑자기 큰 검을 든 노인이 나타나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이 노인네가 지금 우리랑 말한 건가?”한 설국 병사가 차갑게 코웃음을 치면서 입을 열었다.“설국
설국 병사가 자신과 대결하겠다고 하자 큰 칼을 들고 있던 다무가 곧바로 대답했다.“좋아!”“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다리가 아직 다 낫지 않으셨잖아요!”이때 옆에 있던 소년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노인을 바라보았다.다무는 웃는 얼굴로 손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걱정하지 마. 비록 내 다리는 다 낫지 않았지만 설국 놈들을 상대하기에는 충분하니까!”말을 마친 뒤 다무는 앞으로 나섰다.설국 병사들은 60대로 보이는 다무가 정말로 그들의 요구에 응하자 다들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 화진의 노인네와 놀아보고 싶은 사람 있어?”설국 병사들을 이끌던 남자가 이때 입을 열었다.그가 말하자마자 아주 건장한 체구를 가진 설국 병사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제가 나서겠습니다.”건장한 남자는 그렇게 말하더니 들고 있던 소총을 동료에게 건넨 뒤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그의 허리춤에는 장검이 있었는데 그 검은 설국 병사들이 항상 지니고 다니는 검이었다.설국 병사는 앞으로 나서더니 차가운 장검을 쓱 빼 들고 냉소 어린 표정으로 다무를 향해 말했다.“화진의 노인네, 잠시 뒤 당신의 피로 내 검을 적셔주겠어!”“이 짐승만도 못한 놈,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고 오늘 누가 죽고 누가 살지 지켜보자고!”다무는 호된 목소리로 외쳤다.건장한 설국 병사는 쓸데없는 말은 생략하고 장검을 뽑아 든 뒤 다무의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다무의 목숨을 빼앗을 생각인 듯했다.다무는 검으로 그의 공격을 막았다.쾅!두 개의 장검이 부딪히는 순간 불꽃이 튀었다.“응? 노인네가 내 검을 막아?”건장한 설국 남자는 조금 뜻밖이라고 생각했다.그는 60대로 보이는 다무를 단칼에 죽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그런데 놀랍게도 다무는 꽤 노련했고 그의 검을 막아냈을 뿐만 아니라 몸이 흔들리지도 않았다.“노인네, 어디 한번 막아보시지!”설국 병사는 또 한 번 장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조금 전보다 힘을 더 많이 썼다.장검은 살벌한 빛과 함께 피비린내를 풍기면서 다시 한번 다무를 향해 휘
“게리엘, 구주군이었던 저 노인네를 죽여서 우리 설국의 죽어간 병사들을 위해 복수해 줘!”병사들을 이끌던 설국 남자가 명령을 내렸다.게리엘이라고 불린 건장한 남자는 그 말을 듣자 흉악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그의 검 또한 살벌한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게리엘은 다무를 연달아 공격하기 시작했다.다무는 비록 60대였지만 검을 자유자재로 휘둘렀다. 게리엘의 사력을 다한 공격 앞에서도 그는 확실하게 모든 공격을 정확히 막을 수 있었다.다무를 연달아 십여 차례 공격해도 그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자 게리엘은 당황했고, 그 기회를 틈타 다무는 장검을 휘둘렀다. 그는 마치 빗줄기 같은 빽빽한 공격으로 반격하기 시작했다.그리고 잠시 뒤, 게리엘의 허리 쪽에 허점이 드러났다.허점이 드러난 순간, 다무는 아주 재빠르게 움직여서 게리엘의 허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게리엘은 막고 싶었으나 그만 늦어버렸다.촤악!검이 게리엘의 허리를 베는 순간 게리엘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곧이어 다무는 검을 휘둘러 게리엘을 반으로 갈라버렸다.시체는 바닥에 쓰러졌고 새빨간 피가 땅을 빨갛게 물들였다.“대단하세요, 다무 아저씨!”주민들은 다무가 설국 병사 한 명을 죽이자 너무 흥분한 나머지 환호를 내질렀다.다무는 장검을 꽉 쥐고 서 있었고 그의 검 위로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그 순간, 60대인 다무는 당시 구주군 대도팀 팀원으로서의 영웅 기개를 다시 회복한 것만 같았다.“젠장, 감히 우리 설국 병사를 죽여?”부하가 다무에게 살해당하자 설국 병사들을 이끌던 장수는 허리춤에서 총을 빼 들어 다무를 겨눴다.다른 설국 병사들도 모두 총을 들어 주민들을 겨눴다.다무는 검을 꽉 쥔 채로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멍청한 설국 놈들아, 날 죽이면 뭐가 달라져?”죽음 따위 두렵지 않다는 듯이 구는 다무의 모습에 잔인한 설국 장수는 매서운 말투로 말했다.“감히 우리 설국 병사를 죽였으니 오늘 당신들 모두 이곳에서 죽는 거야! 여봐라, 이 빌어먹을 화진 놈들을 전부 즉시
윤구주가 드디어 온 것이다.허공을 걸으며 다가오는 윤구주를 본 설국 병사들은 그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누구지?”병사들을 이끌던 설국 장수가 그 말을 하자마자 엄청난 기운이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그의 몸을 짓눌렀다.퍽!운이 좋지 않았던 설국 장수는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단번에 고깃덩어리가 돼버렸다.그 광경에 설국 병사들뿐만 아니라 다무와 마을 주민들까지 전부 겁을 먹고 얼이 빠졌다.윤구주가 움직이지도 않고 설국 장수를 죽일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세상에, 우리 장군님을 죽인 거야?”한 설국 병사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총을 쏴서 죽여버려!”다른 병사들은 그제야 뒤늦게 반응했다. 모든 총구가 윤구주를 겨눴고, 총알들은 마치 빗줄기처럼 윤구주를 향해 날아들었다.윤구주는 총알들을 피하지도 않고 허공에 우뚝 서서 무자비한 눈빛으로 설국 병사들을 힐긋 바라보았다.“설국의 벌레만도 못한 놈들이 감히 내 앞에서 스스로 무덤을 파는구나.”차가운 코웃음 소리와 함께 윤구주는 손을 움직였고, 그를 향해 날아들던 총알들은 파멸적인 힘의 충격을 받고 전부 설국 병사들에게로 되돌아갔다.“끄아아악!”비명이 끊이질 않았고, 되돌아간 총알들로 인해 십여 명의 설국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다.눈 깜짝할 사이에 설국 병사들이 전부 목숨을 잃었다.윤구주가 나타나서부터 손을 쓰기까지 겨우 몇십 초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말이다.조금 전까지 두려움에 떨고 있던 마을 주민들은 바닥에 즐비한 설국 병사들의 시체들을 보고 전부 넋이 나갔다.다무 또한 마찬가지였다.그는 두려운 얼굴로 허공에 떠 있는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윤구주는 설국 병사들을 단번에 해치운 뒤 곧바로 빠르게 하늘에서 내려왔다.그가 착지했을 때 다무와 그의 뒤에 있던 마을 주민들은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뒤로 물러났다.그들에게 윤구주는 신 같은 존재였다.“다들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요. 전 여러분들을 도와주러 온 겁니다.”윤구주는 착지한 뒤 그곳 주민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시선을 들어 싸늘한 얼굴로 설국 병사들의 시체를 쓱 훑어본 윤구주가 갑자기 질문을 했다.“어르신, 얘기해주세요. 이 설국의 벌레만도 못한 놈들이 어떻게 우리 화진 땅을 밟은 거죠?”윤구주가 물었다.사실 이곳은 설국과의 국경 지역이었고, 이 땅은 화진의 땅이었다.설국 병사들이 이곳에 모습을 드러내자 윤구주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질문을 받은 다무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잘 모르시겠지만 설국의 세나스 장군이 흑여산맥에 병력을 증강한 후부터 이 빌어먹을 설국 놈들은 몇 번이나 국경을 넘어 우리 화진 땅을 밟았습니다. 게다가 이놈들은 온갖 악행을 다 저질렀어요. 우리 같은 부족들의 재물을 종종 강탈하고 무고한 마을 주민들을 죽이기도 했습니다.”그 말에 윤구주의 눈빛이 점점 더 서늘해졌다.나라를 지키는 군신으로서 화진의 국민들이 설국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러면 우리 쪽의 수비군들은요? 그들은 왜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은 거죠?”윤구주가 사나운 목소리로 물었다.국경 지역이었기 때문에 흑여산맥에 화진 군대도 당연히 주둔하고 있었다.윤구주가 물은 국경수비대는 화진의 군대였다.“우리 쪽 수비대는 겨우 2,000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세나스의 10만 정예군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적죠. 그리고 제가 들은 바에 의하면 수비대를 이끄는 분이 얼마 전 서울에서 온 외교 대사에 의해 감금되었다고 합니다.”다무의 말을 들은 윤구주는 표정이 점점 더 싸늘해졌다.비록 윤구주는 흑여산맥을 이끄는 사람이 누군지는 알지 못했지만 이쪽 수비대에 문게가 있다는 건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윤구주는 싸늘한 눈빛으로 설국 쪽을 바라보았고, 곧 그의 눈동자에서 파멸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당시 10국과의 전쟁에서 윤구주는 홀로 설국 수도로 쳐들어갔었다.그런데 그로부터 겨우 몇 해가 지났다고 설국의 벌레만도 못한 놈들이 또 한 번 화진을 노리는 걸까?게다가 무고한 사람들의 재물을 강탈하고 목숨을 빼앗다니.“빌어먹을
‘헐, 대박.’진동왕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윤구주를 신처럼 떠받들었다.‘이게 진짜 신이지. 곤륜에 있는 그 자식들은 모두 가짜 신들이었어. 허위적이기 그지없지.’오늘 밤 그는 여러 강자의 싸움을 직접 목격하고 강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문경우도 아주 강했지만 윤구주가 나타나자 문경우는 도망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고 영혼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윤구주의 술법에 의해 영혼도 남기지 못하고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승리는 결국 화진에게 돌아갔다. 화진을 무너뜨리려는 역적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윤구주는 자신의 힘으로 화진의 막강한 실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문경우를 처단한 윤구주는 즉시 임정설의 치료에 돌입했다.“짐은 별일 없으니 먼저 왕숙과 네 친구를 치료해줘라.”임정설이 임성진과 청해를 가리키며 말했다.청해는 이미 정신을 차렸다. 비록 상처가 심해 반쯤 죽은 상태였지만 화진 국주에게 인정받은 첫 순간이었다. 묘한 영예감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며 날아갈 듯 기뻤다.“이 두 사람 모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주님이 더 위험하십니다. 경지를 무리하게 넘어서셨고 섭혼번 아래서 정기를 너무 많이 잃으셨습니다. 지금 국주님의 기운이 안정하지 않으니 제 도움이 없다면 폭주 할수도 있어요. 그때가 되면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윤구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임정설은 결국 윤구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다. 윤구주의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황자급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예전보다 죽음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있었다. 윤구주는 임정설에게 풀지 못한 원한이 있음을 눈치채고 치료를 해주며 화진으로 압박했다.“국주님께서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화진에게는 국주님이 필요합니다. 국주님은 30년 동안 화진을 지켜오셨잖아요. 지금 승부가 달린 이 중요한 시점에서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시면 안 됩니다.”임정설
서울 삼천만 명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고 섭혼번이 작동되면 화진의 국운은 영원히 봉인될 것이다.“우리 문씨 가문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쇠퇴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화진의 주인이다. 감히 누가 복종하지 않겠느냐?”문경우는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웃어댔다.이때 하늘에서 천둥이 울리며 공간이 갈라지더니 한 남자가 시체 한 구를 밟고 서울에 강림했다.“웃기고 있네. 문씨 가문이 화진의 주인이 되겠다고? 문씨 가문 따위가 어디 감히 그런 꿈을 꾸는 것이냐? 나 윤구주가 용납하지 않겠다.”우르릉.우렁찬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지자 문경우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윤구주의 기운이 섭혼번 아래에 나타나며 음의 기운을 찢어버렸다.거대한 섭혼번이 관통당하자 전법이 무너지고 문경우는 피를 토해냈다.고개를 돌리니 윤구주가 허공에 우뚝 서 있었고 그의 발아래에는 아사 신전의 신주 오딘의 시체가 보라색 번개에 휩싸여 있었다.“이게 무슨? 네가 신왕 오딘을 죽였다고?”문경우는 오딘의 시체를 바라보며 벌벌 떨었다.“이 개 같은 자들이 여러 번 화진을 범했으니 죽이는 게 당연하지. 나는 오딘뿐만 아니라 아사 신족 전체를 멸했다. 이제 곤륜에 아사 신족은 존재하지 않는다.”윤구주가 공중에 우뚝 서서 음양의 기를 손아귀에 감아쥐었다. 그의 머리 위 갈라진 공간 너머로 아사 신전의 폐허가 보였다. 수만 신령이 죽어 아사 신족이 멸족한다는 종말이 예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문경우의 눈에 비친 윤구주는 무적의 화신이었다. 그는 윤구주와 싸울 용기도 내지 못하고 뒤돌아 도망치려 했다.“너희들이 내가 없을 틈을 타 화진의 기운을 봉인하려 했다고? 문씨 가문은 정말 개수작만 부리는군. 예전에는 나를 죽이려 온갖 더러운 수작을 다 부렸잖아. 내가 없는 틈만 노리는 걸 보니 이젠 내가 무서웠나 보지?”“팔기지, 술자결.”윤구주가 손짓하자 삼천만 생령이 국운 속으로 모여들었다. 백성들은 새 국운에 각자의 고마운 마음을 담아 보냈고 모두의 영혼이 육체로 돌아가며 위기가 해소되었다.“팔기지, 어
태양으로 변한 그 부적은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독한 태양 빛이 대지를 지지며 수많은 건물을 녹여버렸고 그 안에 있던 평민들도 산 채로 타죽고 말았다.“그만해. 화진의 백성들을 건드리지 마라!”임정설이 분노에 차 외쳤다.“너와 나는 모두 화진의 절정 수련자인데 어찌 무고한 자들을 끌어들이느냐?”“하하! 무고하다니? 임정설, 현실을 직시하지. 이 하등한 것들은 개미나 다름없어. 한 무리를 죽여도 금방 다시 번식할 테니. 게다가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삼천만 백성의 목숨으로 화진의 새 국운을 봉인하는 거라네. 우리 문씨 가문이 얻지 못하는 것은 부숴버려도 남에게 주지 않을 거야.”문경우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는 윤구주가 문씨 가문의 뜻을 거역하는 것에 화가 났다.만약 윤구주가 그들에게 순종했다면 지금쯤 화진의 주인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천추만대가 지나도 윤구주는 여전히 화진 최고의 명군으로 남았을 것이다.“저 빌어먹을 윤구주. 역사는 승자가 쓴다는 걸 모르나? 역사를 조작한 왕조가 그렇게나 많은데 유독 그놈만 고집을 부리잖아. 화진의 재난은 모두 윤구주 때문이야. 명군이 되길 거부한다면 영원한 역적으로 만들 거야. 윤구주는 역사의 수치주에 못 박혀 천년만년을 욕먹을 것이다.”“닥치거라! 구주는 우리 화진의 영웅이다. 너 같은 쓰레기가 어찌 감히 구주를 함부로 논하는 것이냐?”그의 말에 단단히 열 받은 임정설은 양혼을 불살라 목숨을 걸려 했다. 그러나 문경우가 이미 임정설의 기를 봉쇄하고 제삼의 전법으로 그의 영혼까지 잠가버렸다.“임정설, 내 앞에서 자살조차 못 하는 주제에 어디서 목숨을 걸겠다고 떠드는 건가?”문경우는 기고만장했다. 임정설이 황자가 되면 뭐하나? 어차피 문씨 가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는데.“오늘이 바로 화진 황제의 멸망일이라네. 섭섭해하지 말게. 윤구주도 곧 자네 뒤를 따를 거니까. 하하!”그가 양손을 내리자 백 미터 크기의 사악한 검은 기발이 구름을 뚫고 서울 상공에 나타났다.“이, 이것은 섭혼번이군!”그 거대
말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쓸모없는 대화는 필요 없었다.임정설은 황제의 의지를 칼로 삼았다. 황자의 기세가 모여 금빛 칼날을 형성하더니 국운을 상징하는 그 칼로 문경우를 향해 내리쳤다.우르르.음과 양이 맞부딪치며 터져 나온 충격파가 반경 수 킬로미터를 휩쓸었다. 사령부 빌딩과 인근 건물들의 유리가 모조리 산산조각이 났다.두 사람은 빌딩 꼭대기에서 결투를 시작했다. 칼 빛이 번뜩이며 천지의 영기를 뒤흔들었고 광풍과 폭우가 몰아쳤다. 산해가 울부짖으며 서울은 보라색 번개와 금빛 불길에 휩싸였다.그들은 각각 화진 최강의 무도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정의와 사악의 대결이 아니라 임씨 가문과 문씨 가문의 결전이었다.서울 상공에서는 용의 형상이 구름 사이를 휘저으며 흉수와 피 묻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이게 바로 황자의 힘인가. 정말 굉장하군.”진동왕마저 넋을 잃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다른 도시의 지원병들이 서울에 도착해 진동왕과 연락을 취했고 이 소식을 해외에 있는 현모와 주작에게 즉시 전했다.“국주께서 문경우와 결전을 벌이고 계신다고?”“국주께서 황자급 경지에 오르셨다니.”이는 분명히 좋은 소식이었다. 비록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었지만 윤구주와 임정설의 관계는 남달랐다. 임정설은 윤구주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너무 기뻐하지 마라. 저 문경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곤륜에서 오랫동안 잠적하며 수많은 신전의 공법을 익혔어. 저놈이 서울로 온 목적은 바로 임정설을 죽이기 위함일 것이야.”옆에 있던 황보웅이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주작과 현모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화진이 무사하고 임정설이 문경우를 물리치길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한창 싸우고 있던 두 강자는 공중에서 다시 한번 맞붙었다. 두 사람의 손짓 하나에 산이 뒤집히고 천지가 진동했으며 그들의 기세는 수백 리 밖까지 영향을 미쳤다.임정설은 기세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임정설은 문경우가 극 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전법이 발동되면 서울 수천만 사람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야. 비록 이길 자신은 없지만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화진의 백성을 위해 싸우겠다. 구주군과 금위군의 여러 장수들은 듣거라. 짐이 전사하면 너희들이 나라를 지킬 책임을 지고 계속해서 적들을 섬멸하라.”임정설은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나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홀로 서울 사령부로 날아갔다.서울 사령부는 진동왕과 수비영이 도착하기 훨씬 전에 함락된 상태였다. 주둔지는 죽음의 적막에 휩싸여 있었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라붙은 백골들이 널브러진 참혹한 장면뿐이었다.당시 강적의 침입을 받은 주둔지의 병사들은 한 명도 물러서지 않고 전원이 전사할 때까지 적들과 맞서 싸웠을 것이다.이 생각에 임정설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우리 화진의 자랑이다. 저 요망한 것들이 화진을 어지럽힌 지 얼마나 되었느냐? 이 빚을 짐이 갚아 내지 못하더라도 화진 자손들이 반드시 값나낼 것이다.”그는 절대 화진의 혼란에 맞선 마지막 황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선인이 걸어온 길을 밟으며 그의 발걸음은 더욱 확고해졌다.이 순간 황운이 임정설의 몸에 서리더니 새로운 국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순간부터 그는 특정된 누군가의 왕이 아닌 천하 만민이 우러러보는 황제가 되어 있었다.황도가 더해지자 임정설의 기세는 한층 더 강해졌다. 그는 사령부 빌딩 최상층에서 서울을 어지럽힌 장본인을 마주했다.검은 도포를 걸친 그 자는 사악한 부적으로 몸을 감싼 채 요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바로 그가 전법으로 서울을 뒤덮고 있었다.“참으로 예상치 못했어. 화진에 또 한 명의 황자가 나타나다니. 윤구주는 정말 신기하다니까. 자신의 기운으로 국운을 바꾸고 자네의 운명까지 바꿔놓았군. 하지만 내가 충고 하나 해주지. 임정설 자네가 황자가 된 이상 사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야. 넌 사흘 안에 목숨을 거둘 것이란 말이지.”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은 임정설이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을 알아
국주 임정설은 해청현의 음기를 제거한 후, 그를 보호하던 기운까지 걷어내 양기로 해청현을 완전히 눌러 버렸다.이게 바로 미친 스님이 말했던 진정한 자제력이었다.“해청현은 수법만 닦고 수도는 하지 않았으며 몸만 수련할 뿐, 마음은 단련하지 않았지. 그러다 보니 결국 다 헛것이 되어버린 거야.”미친 스님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그는 해청현에게 타고난 수도의 체질을 주었지만 그에 걸맞은 의지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해청현은 더는 감당하지 못하고 되려 휘말려버린 것이었다.임정설의 머리 위엔 성스러운 빛이 맴돌았고 온몸엔 천지를 뒤덮을 만큼의 정기가 흘러넘쳤다. 해청현은 결국 싸움에서 져버렸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도 임정설처럼 황자급 경지였다면 이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작 두 사람의 경지가 같았다 해도 여전히 자신이 완전히 압도당했을 거라는 걸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임정설은 손바닥을 휙 내리치더니 끝까지 미련을 품던 해청현을 그 자리에서 즉사시켰다. 그는 영혼조차 남지 않은 채 완전히 소멸당했다. 이것이 바로 겉보기엔 수련했을지 몰라도 한 번도 진정한 수도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다는 증거였다.“국주님이 이렇게까지 강했다고?”공수이는 멍하니 중얼거렸다.“그러게 말이야.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해졌지?”진동왕은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복잡한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예전에는 그가 임정설보다 더 강했었고 임정설은 국운 덕에 간신히 그를 이길 정도였으니 말이다.하지만 이젠 내공 차이가 너무 벌어져서 더 이상 비교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그제야 깨어난 백호는 조금 전 자신이 국주를 진왕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백호, 널 속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넌 내가 올 때까지 버티지 못했을 테니까...”임정설은 양기를 끌어내어 백호의 몸속에 주입했고 그의 정기를 빠르게 회복시켰다. 이렇게 되면 백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회복할 것이었다.그 모습을 본 공수이와 진동왕은 또다시 멍해
“뭐? 저게 누구지? 지금 화진에 저런 강자가 또 있었다고? 설마... 저자가 바로 구주왕이란 말인가?”청현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당황스레 외쳤다.누가 알았겠는가, 이 결정적인 순간에 고수가 나타나다니!“젠장... 네가 누구든 상관없다!”“나는 반드시 백호를 죽인다!”청현은 더는 여유가 없었다.상대의 기세는 너무나도 강력했고, 이미 백호와 싸우면서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그와 맞붙는 건 목숨만 붙어 있을 뿐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청현은 그저 백호부터 처리하려 했다.“이런 건방진 것! 우리 화진의 전쟁 신이 너 같은 흉수에게 쓰러질 수는 없다!”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활기찬 천 음 소리!금빛 실루엣이 구름을 뚫고 내려오더니 손바닥으로 청현을 튕겨냈다!눈앞의 인물을 본 청현은 잠시 얼어붙었다. 모르는 인물이다.하지만 이 압도적인 기운은 분명 고위자일 것이다.화진에서 구주왕 말고는 누가 이런 존재감을 뿜어낼 수 있겠는가?기절해 있던 진북왕은 익숙한 기운에 눈을 번쩍 떴다.그리고 그 실루엣을 본 순간 기절할 뻔했다.“이런! 임정설! 너 황자가 된 거야!”“흠? 왕숙께서 실망하셨나 보네요??”금빛 그림자가 사라지며 실체가 드러났고, 그 모습은 바로 용맥에 들어가 수련하던 화진의 현직 왕 임정설이었다.“폐하 만세!”구주군 장병들은 격동된 마음으로 일제히 무릎 꿇고 경례하며 외쳤다.자신들의 왕이 서울로 화진의 백성을 구하러 온 것이다!“임정설?! 그게 어떻게 가능해! 아무리 강해도 극한신경 정도일 텐데!”청현의 얼굴이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졌다.극한신경과 황자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황자 한 명이면 수십 명의 극한신경을 상대할 수 있다!서울에 황자가 주둔해 있다면, 곤륜영역조차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설령 청현이 아무리 천재고 강하더라도 황자와의 싸움은 불가능했다.자칭 수요산 제일검이라던 청현은 위축됐다.그 모습을 본 임정설은 냉소하며 말했다.“이게 바로 검객이란 말인가? 검객의 마음은
진황은 외공만으로 도에 이른 황자였다.어떠한 술법도 수련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백호가 중얼거리며 ‘진황신공!’을 외치고 있으니 이건 누가 봐도 미친 소리였다.“미쳐야 도를 이루는 법이다. 백호는 앞날이 창창하구먼.” 미친 스님이 아미타불을 외치며 말했다.“미쳤어, 미쳤어! 전부 다 미쳐버렸다고!” 진북왕이 고함을 지르다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기절해버렸다.그 사이 백호의 기세는 끝없이 치솟고 있었다!정신은 나갔지만, 힘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청현은 문득 깨달았다. 백호가 저토록 광폭한 이유—바로 그놈의 몸속에 흐르는 성수의 피였다.“이 썩을 놈... 성수 피가 아니었으면 네가 뭔데 날 상대로 이러는 거냐!”청현은 음기를 뿜으며 맹렬하게 연속으로 공격을 퍼부었다.그 음산한 기세에도 불구하고 백호는 오히려 직선 돌진했다.공격은 완전 예측 불가였다.수요산 검종은 온갖 검술과 전법에 능했지만, 다음 공격이 뭔지도 모르는 미친놈을 상대로는 청현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결국, 또 한바탕 두들겨 맞고 땅바닥을 굴러다니던 중 놀랍게도 백호가 자신의 음신사체를 흡수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내 음기를 집어삼키다니?! 이 괴물 같은 놈!”“음기여 무한하라! 흑검이여, 사악을 베어라!!!”시커먼 흑검이 다시 응집되자, 수백 개의 검날이 연속으로 쏟아졌다.백호의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검은 피를 흘렸지만——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대로 돌진했다!“개자식... 음기야! 나에게 힘을 줘!!”청현은 검을 땅속 깊숙이 꽂았다.지맥에서 미친 듯이 영기를 빨아들이자, 머리 위에 떠 오른 음기 마기의 형상은 산만큼 거대해졌다!그 압도적인 힘으로 청현은 백호를 단숨에 쓰러뜨렸다.이건 이미 백호가 감당할 수 없는 한계치를 훨씬 초과한 위력이었다.쿵!!백호는 그대로 땅에 쓰러졌지만, 그런데도 그는 의식을 잃지 않았다.다만 입에서 나오는 건 누가 들어도 미친 소리였다.“황이 온다... 황... 황이 온다....
“우리 스승 말이야, 진짜 고집쟁이에다 구닥다리야. 정의와 사악은 절대 함께할 수 없다고 믿고 목숨 걸고 몇백 년 동안 싸우고 피 흘렸지만 무슨 소용이 있어? 인마 좀 없앤 거 빼고는...?”“스승께서 날 산에서 내려가 속세의 삶을 보라고 하신 건, 결국 수련을 위한 경험이었겠지. 하지만 세상을 직접 겪고 나서야 똑똑히 알게 됐어. 이 세상은 결국, 강한 자가 무적이고 이긴 자가 왕이 되는 법이야...”“세상에는 애초에 정의와 악, 흑과 백 따윈 존재하지 않아. 선악의 기준이란 결국 입만 살은 자들이 지껄이는 헛소리일 뿐이지. 역사가 진실이라고 믿어? 예로부터 어느 왕조의 흥망이 피바다와 시체더미 없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나?”“무릇 장수가 공을 세운다는 건, 수만의 백골 위에 선다는 뜻이지. 그 윤구주가 '구주왕'이라 불리는 것도, 결국은 피로 쟁취한 자리 아니겠어?”“주먹이 곧 진리다. 내가 황위에 오르는 날, 선악이든 흑백이든 모두 내 기준으로 정의된다!”“백호, 이제 죽어라.”청현이 공격하려던 찰나 하늘 위의 백호가 먼저 움직였다. 다시 성수인을 발동하더니, 성수의 허상이 실체로 변해 거대한 기운을 모은 주먹을 뻗었다.그 주먹은 하늘을 가르고 청현을 향해 날아갔다.그러나 청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차가운 음기와 사기 담은 손으로 그 주먹을 받아내고 동시에 백 자 길이의 흑검을 형성해 단칼에 성수의 허상을 두 토막 내버렸다.그 검이 날아간 자리에는 구름이 쪼개졌고, 서울 상공을 덮고 있던 먹구름은 그 검기의 파도에 휩쓸려 모두 흩어졌다.먹구름이 사라졌지만, 서울 상공에는 여전히 짙은 요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태양조차 삼키려는 어둠의 장막처럼.“진법까지 있었어?! 대체 어느 놈이, 언제 이따위 대형 진법을 몰래 깔아놓은 거야?!”진북왕은 혈압이 오르다 못해 피까지 토할 지경이었다.이건 곧 청현이 최종 보스가 아니라는 뜻이다!백호가 청현을 이긴다 해도 그보다 더 강한 놈이 있다는 얘기다.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백호가 청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