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엘, 구주군이었던 저 노인네를 죽여서 우리 설국의 죽어간 병사들을 위해 복수해 줘!”병사들을 이끌던 설국 남자가 명령을 내렸다.게리엘이라고 불린 건장한 남자는 그 말을 듣자 흉악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그의 검 또한 살벌한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게리엘은 다무를 연달아 공격하기 시작했다.다무는 비록 60대였지만 검을 자유자재로 휘둘렀다. 게리엘의 사력을 다한 공격 앞에서도 그는 확실하게 모든 공격을 정확히 막을 수 있었다.다무를 연달아 십여 차례 공격해도 그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자 게리엘은 당황했고, 그 기회를 틈타 다무는 장검을 휘둘렀다. 그는 마치 빗줄기 같은 빽빽한 공격으로 반격하기 시작했다.그리고 잠시 뒤, 게리엘의 허리 쪽에 허점이 드러났다.허점이 드러난 순간, 다무는 아주 재빠르게 움직여서 게리엘의 허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게리엘은 막고 싶었으나 그만 늦어버렸다.촤악!검이 게리엘의 허리를 베는 순간 게리엘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곧이어 다무는 검을 휘둘러 게리엘을 반으로 갈라버렸다.시체는 바닥에 쓰러졌고 새빨간 피가 땅을 빨갛게 물들였다.“대단하세요, 다무 아저씨!”주민들은 다무가 설국 병사 한 명을 죽이자 너무 흥분한 나머지 환호를 내질렀다.다무는 장검을 꽉 쥐고 서 있었고 그의 검 위로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그 순간, 60대인 다무는 당시 구주군 대도팀 팀원으로서의 영웅 기개를 다시 회복한 것만 같았다.“젠장, 감히 우리 설국 병사를 죽여?”부하가 다무에게 살해당하자 설국 병사들을 이끌던 장수는 허리춤에서 총을 빼 들어 다무를 겨눴다.다른 설국 병사들도 모두 총을 들어 주민들을 겨눴다.다무는 검을 꽉 쥔 채로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멍청한 설국 놈들아, 날 죽이면 뭐가 달라져?”죽음 따위 두렵지 않다는 듯이 구는 다무의 모습에 잔인한 설국 장수는 매서운 말투로 말했다.“감히 우리 설국 병사를 죽였으니 오늘 당신들 모두 이곳에서 죽는 거야! 여봐라, 이 빌어먹을 화진 놈들을 전부 즉시
윤구주가 드디어 온 것이다.허공을 걸으며 다가오는 윤구주를 본 설국 병사들은 그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누구지?”병사들을 이끌던 설국 장수가 그 말을 하자마자 엄청난 기운이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그의 몸을 짓눌렀다.퍽!운이 좋지 않았던 설국 장수는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단번에 고깃덩어리가 돼버렸다.그 광경에 설국 병사들뿐만 아니라 다무와 마을 주민들까지 전부 겁을 먹고 얼이 빠졌다.윤구주가 움직이지도 않고 설국 장수를 죽일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세상에, 우리 장군님을 죽인 거야?”한 설국 병사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총을 쏴서 죽여버려!”다른 병사들은 그제야 뒤늦게 반응했다. 모든 총구가 윤구주를 겨눴고, 총알들은 마치 빗줄기처럼 윤구주를 향해 날아들었다.윤구주는 총알들을 피하지도 않고 허공에 우뚝 서서 무자비한 눈빛으로 설국 병사들을 힐긋 바라보았다.“설국의 벌레만도 못한 놈들이 감히 내 앞에서 스스로 무덤을 파는구나.”차가운 코웃음 소리와 함께 윤구주는 손을 움직였고, 그를 향해 날아들던 총알들은 파멸적인 힘의 충격을 받고 전부 설국 병사들에게로 되돌아갔다.“끄아아악!”비명이 끊이질 않았고, 되돌아간 총알들로 인해 십여 명의 설국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다.눈 깜짝할 사이에 설국 병사들이 전부 목숨을 잃었다.윤구주가 나타나서부터 손을 쓰기까지 겨우 몇십 초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말이다.조금 전까지 두려움에 떨고 있던 마을 주민들은 바닥에 즐비한 설국 병사들의 시체들을 보고 전부 넋이 나갔다.다무 또한 마찬가지였다.그는 두려운 얼굴로 허공에 떠 있는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윤구주는 설국 병사들을 단번에 해치운 뒤 곧바로 빠르게 하늘에서 내려왔다.그가 착지했을 때 다무와 그의 뒤에 있던 마을 주민들은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뒤로 물러났다.그들에게 윤구주는 신 같은 존재였다.“다들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요. 전 여러분들을 도와주러 온 겁니다.”윤구주는 착지한 뒤 그곳 주민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시선을 들어 싸늘한 얼굴로 설국 병사들의 시체를 쓱 훑어본 윤구주가 갑자기 질문을 했다.“어르신, 얘기해주세요. 이 설국의 벌레만도 못한 놈들이 어떻게 우리 화진 땅을 밟은 거죠?”윤구주가 물었다.사실 이곳은 설국과의 국경 지역이었고, 이 땅은 화진의 땅이었다.설국 병사들이 이곳에 모습을 드러내자 윤구주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질문을 받은 다무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잘 모르시겠지만 설국의 세나스 장군이 흑여산맥에 병력을 증강한 후부터 이 빌어먹을 설국 놈들은 몇 번이나 국경을 넘어 우리 화진 땅을 밟았습니다. 게다가 이놈들은 온갖 악행을 다 저질렀어요. 우리 같은 부족들의 재물을 종종 강탈하고 무고한 마을 주민들을 죽이기도 했습니다.”그 말에 윤구주의 눈빛이 점점 더 서늘해졌다.나라를 지키는 군신으로서 화진의 국민들이 설국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러면 우리 쪽의 수비군들은요? 그들은 왜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은 거죠?”윤구주가 사나운 목소리로 물었다.국경 지역이었기 때문에 흑여산맥에 화진 군대도 당연히 주둔하고 있었다.윤구주가 물은 국경수비대는 화진의 군대였다.“우리 쪽 수비대는 겨우 2,000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세나스의 10만 정예군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적죠. 그리고 제가 들은 바에 의하면 수비대를 이끄는 분이 얼마 전 서울에서 온 외교 대사에 의해 감금되었다고 합니다.”다무의 말을 들은 윤구주는 표정이 점점 더 싸늘해졌다.비록 윤구주는 흑여산맥을 이끄는 사람이 누군지는 알지 못했지만 이쪽 수비대에 문게가 있다는 건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윤구주는 싸늘한 눈빛으로 설국 쪽을 바라보았고, 곧 그의 눈동자에서 파멸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당시 10국과의 전쟁에서 윤구주는 홀로 설국 수도로 쳐들어갔었다.그런데 그로부터 겨우 몇 해가 지났다고 설국의 벌레만도 못한 놈들이 또 한 번 화진을 노리는 걸까?게다가 무고한 사람들의 재물을 강탈하고 목숨을 빼앗다니.“빌어먹을
“은인님도 군인이신가요?”’다무는 호기심 어린 얼굴로 윤구주에게 물었다.조금 전 윤구주는 오로지 검을 보고 단번에 다무의 신분을 추측했다. 그래서 다무는 꽤 놀란 상태였고 저도 모르게 윤구주에게 물었다.윤구주는 싱긋 웃기만 할 뿐, 자신이 구주군의 창시자이며 한때 세상을 호령했던 최강자라는 것은 얘기하지 않았다.윤구주는 그저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고 할 수 있죠.”윤구주도 한때 군인이었다는 말을 듣게 되자 다무는 매우 흥분했다.“실력이 그렇게 대단하신 이유가 있었네요. 정말로 우리 화진의 군인이셨군요!”다무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은인님은 아마 예전에 장군이셨겠죠? 당시 우리 구주군은 정말 유명했어요. 특히 우리 왕은 천하무적의 최강자였죠!”용맹스러웠던 과거를 떠올린 다무의 얼굴에 자랑스러움이 여실히 드러났다.“어르신, 혹시 왕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윤구주가 궁금한 듯 묻자 다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쉽게도 본 적은 없어요. 솔직히 얘기해서 전 74군단의 취사병이었을 뿐입니다. 대도팀 팀원은 아니었죠. 그래서 저 같은 사람들은 신화와도 같은 그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다무가 머쓱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네? 조금 전에는 대도팀 팀원이라고 하셨잖아요.”윤구주는 궁금한 듯 말했고 다무는 멋쩍게 웃었다.“하하, 아까는 설국의 그놈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렇게 얘기한 겁니다. 사실 저 같은 노인이 무슨 수로 제74군단의 팀원이 되겠습니까? 전 그저 주방에서 일하는 평범한 취사병이었을 뿐이에요.”다무는 드디어 솔직히 얘기했다.사실 다무는 조금 전 설국 사람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 일부러 자신이 제74군단 대도팀 팀원이라고 했다.74군단은 설국을 이긴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다무를 물끄러미 보았다. 다무는 나이가 꽤 많은 편이라서 74군단 대도팀의 팀원일 수가 없었다.윤구주는 평범한 취사병이 설국의 건장한 병사를 죽일 수 있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어르신, 전 어르신이 존경스럽습니
다무는 그의 질문에 곧바로 대답했다.“알고 있죠. 은인님은 국경 쪽에 가보고 싶은 건가요?”“네!”“그러면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저도 국경에 안 가본 지 오래됐거든요!”노인은 갑자기 흥분하며 말했다.“그러면 부탁드리겠습니다!”윤구주가 말했다.“별말씀을요. 은인님은 저희 마을 사람들을 구해준 은인이신데 그곳까지 안내해 드리는 건 아무것도 아니죠. 괜찮으시다면 잠깐 상황 정리를 한 뒤 안내해 드려도 괜찮을까요?”다무가 말했다.“좋아요.”다무는 부족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다무가 노약자들을 돌보고 있을 때 7, 8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은 윤구주의 앞에 섰다.“형! 우리 할아버지랑 같이 국경 쪽에 가는 건 설국의 나쁜 놈들을 물리치기 위해서인가요?”소년은 윤구주가 하늘에서 내려와 마을 사람들을 구해준 순간부터 윤구주를 신이라고 여겼다.아이는 반짝이는 눈망울로 윤구주를 바라보며 궁금한 듯 물었다.윤구주는 웃으면서 쭈그려 앉아 대답했다.“그래.”“와! 형, 그러면 저도 데려가면 안 돼요? 저도 군인이 되고 싶어요!”소년이 갑자기 군인이 되고 싶다고 하자 윤구주는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왜 군인이 되고 싶은 거야?”“군인이 되면 형처럼, 할아버지처럼 나쁜 사람들을 무찌를 수 있잖아요! 형은 모르겠지만 할아버지는 퇴역한 뒤로 매일 밤 제게 구주군이 얼마나 용맹한지를 얘기해 주셨어요. 그리고 할아버지가 평생 가장 후회되는 것이 전설 속의 구주왕을 만난 적이 없는 거라고 하셨어요. 만약 제가 군인이 되어서 할아버지를 대신해 그 소망을 이루어준다면 할아버지는 분명 기뻐하실 거예요!”소년의 말을 들은 윤구주는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다.“걱정하지 마. 너희 할아버지는 분명 소망을 이룰 수 있을 거야!”‘응?’“형, 그 말이 사실인가요?”아이의 질문에 윤구주는 대답하지 않았다.그가 바로 그 전설 같은 존재, 천하무적의 구주왕이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그들의 앞에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윤구주의 정체를 몰랐다.“아이야, 앞으로 인연이
윤구주는 그 말을 듣더니 곧바로 대답했다.“네.”다무는 낙타를 이끌고 소년의 앞에 섰다.“할아버지는 이틀간 집에 없을 거야. 그러니까 네가 집을 잘 지켜야 해. 돌아오게 되면 할아버지가 맛있는 간식을 사줄게!”7, 8살쯤 되는 소년은 웃으면서 가슴팍을 툭툭 쳤다.“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 집은 저한테 맡기세요!”다무는 손자의 말을 듣더니 미소 띤 얼굴로 아이의 얼굴에 뽀뽀했다.“그러면 할아버지는 가볼게.”말을 마친 뒤 다무는 손자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작별 인사를 나눈 뒤 다무와 윤구주는 각자 낙타를 탄 뒤 인적이 드문 흑여산맥의 깊은 곳으로 향했다.다무의 말대로라면 이곳에서부터 국경 지역까지 가려면 적어도 이틀이 걸렸다.사실 윤구주는 날아서 가면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그러나 그는 자신이 진짜 능력을 선보이면 다무가 겁을 먹을까 봐 걱정되어 그와 함께 낙타를 타고 이동하기로 마음먹었다.흑여산맥은 아주 황폐할 뿐만 아니라 날씨도 아주 추워서 이곳에서 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가는 길에 하늘에서 매 몇 마리가 나는 것이 이따금 보이는 것을 제외하면 살아있는 생물은 거의 볼 수가 없었다.다무는 입담이 좋아서 가는 길 내내 윤구주에게 지난 2년간 국경 지역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었다.윤구주가 죽었다고 알려진 뒤 세상에 널리 이름을 떨쳤던 구주군은 문아름에 의해 해산되었다. 그리고 2,000명쯤 되는 군인들로 이루어진 국경수비대가 현재 국경 지역에 주둔하고 있었다.그러나 작년부터 설국은 끊임없이 흑여산맥에 병사들을 보냈고, 심지어 설국의 세나스 장군도 흑여산맥의 국경 쪽에 온 적이 있었다.현재 흑여산맥에 주둔하고 있는 설국 군인들은 대략 10만 명 정도 되었고, 반대로 화진은 겨우 2,000명뿐이었다.그것이 설국 병사들이 대놓고 화진의 영토에 침입한 이유 중 하나였다.“은인님은 모르시겠지만 설국 놈들은 비록 수가 많긴 하지만 솔직히 얘기해서 만약 천하무적인 구주왕이 계셨더라면, 우리 구주군의 한 군단이 이곳에
다무는 비록 아주 두꺼운 밍크를 입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흑여산맥의 찬바람을 이길 수는 없었다.거침없이 휘몰아치는 찬바람이 뺨에 닿으면 얼굴이 칼에 베이는 것만 같았다.“헉, 헉.”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다무는 고개를 들어 먼 곳의 어두워진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큰일이에요. 하늘을 보니 눈보라가 칠 것 같아요. 은인님, 저희 하룻밤 쉬었다가 다시 출발할까요?”윤구주는 어둑어둑한 하늘을 바라보면서 대답했다.“괜찮아요.”“하지만 이 흑여산맥의 눈보라는 정말 무시무시한걸요. 만약 저녁에 정말로 눈보라가 친다면 얼어 죽을지도 몰라요.”다무가 말을 마치자마자 윤구주는 갑자기 허공에 대고 부적을 그리기 시작했다.부적이 나타나자 윤구주는 손을 들어 그것을 톡 쳤고 곧 빛이 다무를 감쌌다.“제가 있으니 마음 놓고 길을 재촉해도 돼요.”윤구주가 말을 마쳤다.조금 전까지 찬바람 때문에 추위에 덜덜 떨던 다무는 윤구주의 빛이 몸을 감싸는 순간 한기가 가시는 걸 느꼈다. 그리고 따뜻한 온기가 빛에서부터 전해졌다. 다무는 마치 엄동설한이었다가 화창한 봄날을 맞이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빛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다무는 당황스러움을 느꼈다.“세상에, 정말 놀랍네요! 이 빛의 막에서 온기가 느껴져요! 은인님은 정말 대단하시군요!”다무는 이렇게 신기한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참지 못하고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보잘것없는 재주인걸요. 자, 우리는 계속 가요.”말을 마친 뒤 두 사람은 계속해 길을 재촉했다.곧 하늘은 점점 더 어두워졌고 곧 눈보라가 칠 것만 같았다.차가운 바람이 미친 듯이 휘몰아치며 흑여산맥에서 기승을 부렸다.싸늘한 돌풍이 불어옴과 동시에 눈보라가 휘날리기 시작했다.그러나 윤구주의 보호막을 두르게 된 다무는 한기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걸으면 걸을수록 땀이 날 정도였다.다무는 윤구주를 점점 더 존경하기 시작했고 저도 모르게 속으로 물었다.‘은인님은 대체 정체가 뭐지? 어떻게 이렇게 놀라운 실력을 갖추고 계신 거지?’늦은 밤이
“은인님, 도착했습니다. 어서 보세요. 저기가 바로 우리 화진 국경수비대가 있는 막사입니다.”이때 다무가 흥분한 얼굴로 먼 곳에 있는, 타오르는 모닥불이 보이는 막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윤구주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이곳에서 수십 리 떨어진 곳에 있을 때부터 윤구주는 이미 화진 국경수비대의 기운을 느꼈다. 그저 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뿐이다.“은인님, 저랑 같이 가시죠.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다무는 낙타를 타고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바람은 아주 차가웠고 폭설도 내렸지만, 두 사람의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그들은 곧 화진 국경수비대의 막사에 도착했다.다무의 말대로라면 그곳에는 한 개의 소대만 있을 뿐이었기에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겨우 수십 명 정도밖에 없었다.윤구주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당시 설국 병사들을 상대할 때 그는 많은 임시 주둔지를 만들었었다.그렇기에 주둔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도 정상적인 일이었다.막사에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안에서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제기랄, 날씨가 왜 이 모양이야? 왜 또 폭설이 내리는 건데?”“야, 왜 아직도 넋을 놓고 있어? 얼른 가서 술 좀 데워 와. 우리 오늘 진탕 마실 거니까!”“좋아, 좋아!”막사 안에서 들려오는 거친 목소리에 윤구주의 안색이 폭설보다도 더욱 차갑게 변했다.“은인님, 갑시다. 제가 사람들을 소개해 드릴게요!”다무는 그렇게 말하더니 낙타 위에서 훌쩍 뛰어내린 뒤 윤구주를 데리고 막사 안쪽으로 걸어갔다.군영은 꽤 컸는데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십여 명의 두꺼운 겉옷을 입고 군영 안에 모여서 큰 그릇에 술을 담아 마시고 고기를 먹는 병사들이 보였다.그들은 비록 군복을 입고 있었지만 다들 몸에서 술 냄새가 진동했다.다무는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곧바로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세요!”술을 마시고 있던 병사들은 눈보라 속에서 갑자기 목소리가 들리자 깜짝 놀라서 말했다.“누구야?”그중 손에 술이 담긴 큰 그릇을 들고 있던 까무잡잡한 피부의 건
인간이 나쁜 짓을 거듭해 양심을 잃으면 부끄러움도 사라진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윤구주를 따라 명예심이 생기면서 죄책감도 느끼게 된 청해에게 이 원한의 전법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물론 곤륜역 한 신전의 부전주로서 정신이 붕괴할 정도는 아니었다.네 사람은 이 원한의 전법도 가볍게 넘어섰다.이때 전법에 관심을 가졌던 임정설이 무언가를 눈치챘다.“구주야, 서요산의 전법은 우연히 들어온 자를 쫓아내는 동시에 수련자의 의지를 시험하는 것이었어. 서요산은 의지력이 확고한 자들만 끌어들인다는 것을 미리 들어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서요산이 제자를 선발하는 방식인가 보구나.”“그렇습니다. 매년 화진 무도계 사람들이 서요산에 찾아오지만 성공한 자는 극히 드뭅니다. 실패자들 중 십중팔구는 산기슭에서 죽음을 맞이하죠. 어떤 문턱은 넘지 않는 것이 복이 될 때가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죠. 현실을 알고도 바꾸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운 법이니까요. 이 관문을 넘는다고 해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입니다.”윤구주의 말이 끝나자 세 번째 전법이 나타났다.첫 번째와 두 번째 전법은 이곳에 들어온 이들을 돌려보내려고 만든 것이지만 세 번째 전법은 달랐다. 이 전법은 살기로 가득 찬 죽음의 전법이었다.평범한 사람들은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이곳까지 온 자들도 앞길의 위험을 보고 함부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죽음의 길을 보고도 들어가는 자는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자라서 그런 자들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덕을 쌓는 일이었다.하지만 무도로 도를 깨우치려는 수련자라면 이 관문을 넘기 위해 반드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버텨내야만 수도의 길에 들 수 있고 실패하면 그 후과를 받아들여야 한다.전법 안은 살기로 가득했다. 생기와 영기가 세상을 이롭게 하지 못할지라도 살기와 죽음의 기운은 목숨을 앗아갈 것이 분명했다.진법 내부에는 수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무도계에 이름을 날렸던 강자들의 유해
네 사람은 비석을 지나자마자 환각의 전법에 부딪혔다. 이 전법은 우연히 들어오거나 경고를 무시한 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결국 서요산 밖으로 나가게 만드는 것이었다.의지력으로 환각의 전법을 통과하면 다음 전법이 기다리고 있었다.당연히 네 사람에게 환각의 전법은 통하지 않았다. 윤구주와 임정설은 물론, 백호와 청해도 곤륜에서 강자로 존경받는 존재들이었다.다음은 섭혼 전법이었다.전법에 들어가기 전부터 하늘을 찌를듯한 원한의 기운이 밀려왔다.그 기운을 느낀 임정설이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수년간 왕궁에서 비술을 연구해서 알아본 건데. 이곳은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진 거야. 반경 수천 리 이내의 원한의 기운이 모두 이곳에 모여있어. 내 치하에서도 억울하게 죽은 자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그걸 내가 몰랐다니.”그는 깊은 자책에 빠졌다.“국주님, 인간이 있는 곳에는 분쟁은 끝나지 않습니다. 근대에 들어 큰 전쟁은 사라졌지만 소규모 충돌은 끊이지 않았죠.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게다가 이곳에 모여진 원한의 기운은 억울한 죽음뿐만 아니라 극형을 받은 흉악범들의 원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은 죽어도 사라지지 않죠. 사랑 때문에 미워하고, 미움 때문에 미쳐버리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윤구주의 말을 듣고 임정설이 한마디 물었다.“구주야, 너는 문아름을 미워하지 않느냐?”문아름의 이름을 들은 윤구주의 눈에서 짙은 살기가 번뜩였다.“당연히 미워하죠. 저 윤구주는 순수하게 사랑하고 미워하는 인간입니다. 사랑은 사랑, 증오는 증오에요. 그녀를 위해 변명 같은 건 하지 않겠습니다. 문아름이 저를 배신했으니 저에게 당연히 미워할 권리가 있죠. 하지만 문아름을 사랑한 걸 후회하지는 않아요. 문아름이 제게 사랑이 무엇인지, 인심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으니깐요. 가려는 길이 다르면 미래를 함께할 수 없죠. 저희는 처음부터 다른 길을 걸었어요. 저희의 만남 자체가 잘못이었지만 문아름이 저를 구주왕으로 만든 것도 사실이죠. 그리고 제가 문아름을
“저하와 생사를 함께할 수 있다니. 그건 제 영광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만약 전하와 제가 정말로 서요산에서 죽게 되면 청룡이 돌아온다 해도 성수가 한자리 비게 되는 건데 그분을 어떻게 소환하시렵니까?”백호가 의혹이 담긴 표정으로 물었다.윤구주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그걸 설명하려면 너를 실험체로 삶고 실험을 진행할 때부터 얘기해야 해. 정확히 말하면 청룡, 현모, 주작의 몸속에는 네 피가 흐르고 있어. 네가 성수의 피를 융합한 첫 번째 수련자야. 예로부터 지금까지 오직 너만이 진정한 융합에 성공했지. 네 피를 빌려 그들에게 성수의 정수를 주입했던 거야.”“백호, 내가 너를 이렇게 만든 거다. 네가 이런 괴물 같은 모습이 된 건 전부 내 탓이야. 그러니 나를 원망해도 좋아.”백호는 웃으며 대답했다.“제가 어떻게 저하를 원망하겠습니까? 게다가 당시 저하께서는 제 목숨을 구하려고 그러신 거였잖아요. 제가 고마워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첫 번째로 융합에 성공한 수련자는 제가 아닐건데요? 저하께서도 성수의 피를 다루시지 않았습니까?”그 말을 들은 윤구주가 고개를 저었다.“아니. 달라. 그건 그냥 성수의 피를 통제하는 것 뿐이야. 진짜 융합했으면 나도 네 꼴이 됐을 거야.”백호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됐다. 옛날얘기는 그만하고 얼른 서요산으로 떠날 준비나 해.”며칠 후, 윤구주는 임정설 국주, 청해, 백호와 함께 서요산으로 향했다.비 오는 밤, 연기를 뿜는 수송기가 짙은 구름을 뚫고 산을 향해 돌진했다.비행기가 산에 충돌하기 직전, 수많은 바람의 부적이 나타나 비행기를 강제로 선회시켜 간신히 산기슭에 착륙했다.비행기가 막 착륙하자 비행기 문이 누군가의 주먹 한 방에 박살 났다. 멀미로 비틀거리던 청해가 나오더니 몸을 움츠린 채 구토를 멈추지 못했다. 뒤이어 내린 임정설도 배를 움켜쥐며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억지로 참는 모습이었다.그들과 달리 윤구주는 멀쩡한 상태로 내려와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백호의 질문에 윤구주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네가 진짜라 믿는다면 그것은 진짜야. 초심을 잃지 않아야 길이 열리는 법이지.”이 말은 백호에게만이 아닌 자신에게도 하는 것이었다.서울의 위기는 해결되었지만 윤구주는 이 모든 것이 문씨 가문의 그 여자의 계획 중 하나임을 알고 있었다.“국주님, 이제 서요산으로 갈 때입니다.”그가 임정설을 바라보며 말했다.“서요산을 지키려는 거니? 마인이 나타날 거란 말이야?”임정설이 눈살을 찌푸렸다. 진요탑 아래에는 천년 동안 갇힌 수많은 마인들이 있었다.“맞아요. 서요산의 지맥 영기가 거의 고갈되었습니다. 만약 진요탑이 무너지면 큰 재앙이 찾아올 것입니다.”윤구주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요탑이 붕괴하여 마인들이 쏟아져 나오면 윤구주라도 그들을 처리하기 힘들 것이다.“좋아. 내가 같이 가주마. 이 늦은 재앙은 언젠가 닥칠 운명이니 우리가 짊어져야 해. 지금의 희생은 후손들을 위한 것이야.”임정설의 눈빛이 강철처럼 단단해졌다. 화진을 위해, 백성들을 위해 그는 언제든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었다.윤구주는 현모에게 연락을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뭐라고요? 저하께서 서요산으로 가신다고요? 그렇다면 저희도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요?”현모와 주작의 목소리에서 초조함이 느껴졌다. 특히 주작은 서요산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천년 동안 축적된 재앙을 겨우 수십 년 수련한 윤구주 혼자서 떠맡기엔 버거웠다.“괜찮아. 너희에게는 따로 시킬 일이 있어. 내가 서요산에 있는 동안 너희는 국경을 지켜줘. 청룡의 행방은 잠시 접어두고 내가 시킨 일에 몰두해. 난 문아름을 그 여자를 잘 알고 있어. 문아름은 일이 내 뜻대로 되게 놔두지 않을 거야.”“추가로 부탁이 있는데 만약 내가 전사한다면 그때쯤 청룡이 모습을 드러낼 거야. 청룡을 불러내는 게 복인지 화인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그 상황이 오면 너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거야. 문아름이 결정을 내리겠지. 그러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둬.”유언을 남기는 듯한
‘헐, 대박.’진동왕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윤구주를 신처럼 떠받들었다.‘이게 진짜 신이지. 곤륜에 있는 그 자식들은 모두 가짜 신들이었어. 허위적이기 그지없지.’오늘 밤 그는 여러 강자의 싸움을 직접 목격하고 강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문경우도 아주 강했지만 윤구주가 나타나자 문경우는 도망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고 영혼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윤구주의 술법에 의해 영혼도 남기지 못하고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승리는 결국 화진에게 돌아갔다. 화진을 무너뜨리려는 역적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윤구주는 자신의 힘으로 화진의 막강한 실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문경우를 처단한 윤구주는 즉시 임정설의 치료에 돌입했다.“짐은 별일 없으니 먼저 왕숙과 네 친구를 치료해줘라.”임정설이 임성진과 청해를 가리키며 말했다.청해는 이미 정신을 차렸다. 비록 상처가 심해 반쯤 죽은 상태였지만 화진 국주에게 인정받은 첫 순간이었다. 묘한 영예감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며 날아갈 듯 기뻤다.“이 두 사람 모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주님이 더 위험하십니다. 경지를 무리하게 넘어서셨고 섭혼번 아래서 정기를 너무 많이 잃으셨습니다. 지금 국주님의 기운이 안정하지 않으니 제 도움이 없다면 폭주 할수도 있어요. 그때가 되면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윤구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임정설은 결국 윤구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다. 윤구주의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황자급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예전보다 죽음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있었다. 윤구주는 임정설에게 풀지 못한 원한이 있음을 눈치채고 치료를 해주며 화진으로 압박했다.“국주님께서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화진에게는 국주님이 필요합니다. 국주님은 30년 동안 화진을 지켜오셨잖아요. 지금 승부가 달린 이 중요한 시점에서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시면 안 됩니다.”임정설
서울 삼천만 명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고 섭혼번이 작동되면 화진의 국운은 영원히 봉인될 것이다.“우리 문씨 가문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쇠퇴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화진의 주인이다. 감히 누가 복종하지 않겠느냐?”문경우는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웃어댔다.이때 하늘에서 천둥이 울리며 공간이 갈라지더니 한 남자가 시체 한 구를 밟고 서울에 강림했다.“웃기고 있네. 문씨 가문이 화진의 주인이 되겠다고? 문씨 가문 따위가 어디 감히 그런 꿈을 꾸는 것이냐? 나 윤구주가 용납하지 않겠다.”우르릉.우렁찬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지자 문경우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윤구주의 기운이 섭혼번 아래에 나타나며 음의 기운을 찢어버렸다.거대한 섭혼번이 관통당하자 전법이 무너지고 문경우는 피를 토해냈다.고개를 돌리니 윤구주가 허공에 우뚝 서 있었고 그의 발아래에는 아사 신전의 신주 오딘의 시체가 보라색 번개에 휩싸여 있었다.“이게 무슨? 네가 신왕 오딘을 죽였다고?”문경우는 오딘의 시체를 바라보며 벌벌 떨었다.“이 개 같은 자들이 여러 번 화진을 범했으니 죽이는 게 당연하지. 나는 오딘뿐만 아니라 아사 신족 전체를 멸했다. 이제 곤륜에 아사 신족은 존재하지 않는다.”윤구주가 공중에 우뚝 서서 음양의 기를 손아귀에 감아쥐었다. 그의 머리 위 갈라진 공간 너머로 아사 신전의 폐허가 보였다. 수만 신령이 죽어 아사 신족이 멸족한다는 종말이 예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문경우의 눈에 비친 윤구주는 무적의 화신이었다. 그는 윤구주와 싸울 용기도 내지 못하고 뒤돌아 도망치려 했다.“너희들이 내가 없을 틈을 타 화진의 기운을 봉인하려 했다고? 문씨 가문은 정말 개수작만 부리는군. 예전에는 나를 죽이려 온갖 더러운 수작을 다 부렸잖아. 내가 없는 틈만 노리는 걸 보니 이젠 내가 무서웠나 보지?”“팔기지, 술자결.”윤구주가 손짓하자 삼천만 생령이 국운 속으로 모여들었다. 백성들은 새 국운에 각자의 고마운 마음을 담아 보냈고 모두의 영혼이 육체로 돌아가며 위기가 해소되었다.“팔기지, 어
태양으로 변한 그 부적은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독한 태양 빛이 대지를 지지며 수많은 건물을 녹여버렸고 그 안에 있던 평민들도 산 채로 타죽고 말았다.“그만해. 화진의 백성들을 건드리지 마라!”임정설이 분노에 차 외쳤다.“너와 나는 모두 화진의 절정 수련자인데 어찌 무고한 자들을 끌어들이느냐?”“하하! 무고하다니? 임정설, 현실을 직시하지. 이 하등한 것들은 개미나 다름없어. 한 무리를 죽여도 금방 다시 번식할 테니. 게다가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삼천만 백성의 목숨으로 화진의 새 국운을 봉인하는 거라네. 우리 문씨 가문이 얻지 못하는 것은 부숴버려도 남에게 주지 않을 거야.”문경우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는 윤구주가 문씨 가문의 뜻을 거역하는 것에 화가 났다.만약 윤구주가 그들에게 순종했다면 지금쯤 화진의 주인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천추만대가 지나도 윤구주는 여전히 화진 최고의 명군으로 남았을 것이다.“저 빌어먹을 윤구주. 역사는 승자가 쓴다는 걸 모르나? 역사를 조작한 왕조가 그렇게나 많은데 유독 그놈만 고집을 부리잖아. 화진의 재난은 모두 윤구주 때문이야. 명군이 되길 거부한다면 영원한 역적으로 만들 거야. 윤구주는 역사의 수치주에 못 박혀 천년만년을 욕먹을 것이다.”“닥치거라! 구주는 우리 화진의 영웅이다. 너 같은 쓰레기가 어찌 감히 구주를 함부로 논하는 것이냐?”그의 말에 단단히 열 받은 임정설은 양혼을 불살라 목숨을 걸려 했다. 그러나 문경우가 이미 임정설의 기를 봉쇄하고 제삼의 전법으로 그의 영혼까지 잠가버렸다.“임정설, 내 앞에서 자살조차 못 하는 주제에 어디서 목숨을 걸겠다고 떠드는 건가?”문경우는 기고만장했다. 임정설이 황자가 되면 뭐하나? 어차피 문씨 가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는데.“오늘이 바로 화진 황제의 멸망일이라네. 섭섭해하지 말게. 윤구주도 곧 자네 뒤를 따를 거니까. 하하!”그가 양손을 내리자 백 미터 크기의 사악한 검은 기발이 구름을 뚫고 서울 상공에 나타났다.“이, 이것은 섭혼번이군!”그 거대
말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쓸모없는 대화는 필요 없었다.임정설은 황제의 의지를 칼로 삼았다. 황자의 기세가 모여 금빛 칼날을 형성하더니 국운을 상징하는 그 칼로 문경우를 향해 내리쳤다.우르르.음과 양이 맞부딪치며 터져 나온 충격파가 반경 수 킬로미터를 휩쓸었다. 사령부 빌딩과 인근 건물들의 유리가 모조리 산산조각이 났다.두 사람은 빌딩 꼭대기에서 결투를 시작했다. 칼 빛이 번뜩이며 천지의 영기를 뒤흔들었고 광풍과 폭우가 몰아쳤다. 산해가 울부짖으며 서울은 보라색 번개와 금빛 불길에 휩싸였다.그들은 각각 화진 최강의 무도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정의와 사악의 대결이 아니라 임씨 가문과 문씨 가문의 결전이었다.서울 상공에서는 용의 형상이 구름 사이를 휘저으며 흉수와 피 묻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이게 바로 황자의 힘인가. 정말 굉장하군.”진동왕마저 넋을 잃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다른 도시의 지원병들이 서울에 도착해 진동왕과 연락을 취했고 이 소식을 해외에 있는 현모와 주작에게 즉시 전했다.“국주께서 문경우와 결전을 벌이고 계신다고?”“국주께서 황자급 경지에 오르셨다니.”이는 분명히 좋은 소식이었다. 비록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었지만 윤구주와 임정설의 관계는 남달랐다. 임정설은 윤구주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너무 기뻐하지 마라. 저 문경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곤륜에서 오랫동안 잠적하며 수많은 신전의 공법을 익혔어. 저놈이 서울로 온 목적은 바로 임정설을 죽이기 위함일 것이야.”옆에 있던 황보웅이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주작과 현모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화진이 무사하고 임정설이 문경우를 물리치길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한창 싸우고 있던 두 강자는 공중에서 다시 한번 맞붙었다. 두 사람의 손짓 하나에 산이 뒤집히고 천지가 진동했으며 그들의 기세는 수백 리 밖까지 영향을 미쳤다.임정설은 기세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임정설은 문경우가 극 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전법이 발동되면 서울 수천만 사람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야. 비록 이길 자신은 없지만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화진의 백성을 위해 싸우겠다. 구주군과 금위군의 여러 장수들은 듣거라. 짐이 전사하면 너희들이 나라를 지킬 책임을 지고 계속해서 적들을 섬멸하라.”임정설은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나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홀로 서울 사령부로 날아갔다.서울 사령부는 진동왕과 수비영이 도착하기 훨씬 전에 함락된 상태였다. 주둔지는 죽음의 적막에 휩싸여 있었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라붙은 백골들이 널브러진 참혹한 장면뿐이었다.당시 강적의 침입을 받은 주둔지의 병사들은 한 명도 물러서지 않고 전원이 전사할 때까지 적들과 맞서 싸웠을 것이다.이 생각에 임정설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우리 화진의 자랑이다. 저 요망한 것들이 화진을 어지럽힌 지 얼마나 되었느냐? 이 빚을 짐이 갚아 내지 못하더라도 화진 자손들이 반드시 값나낼 것이다.”그는 절대 화진의 혼란에 맞선 마지막 황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선인이 걸어온 길을 밟으며 그의 발걸음은 더욱 확고해졌다.이 순간 황운이 임정설의 몸에 서리더니 새로운 국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순간부터 그는 특정된 누군가의 왕이 아닌 천하 만민이 우러러보는 황제가 되어 있었다.황도가 더해지자 임정설의 기세는 한층 더 강해졌다. 그는 사령부 빌딩 최상층에서 서울을 어지럽힌 장본인을 마주했다.검은 도포를 걸친 그 자는 사악한 부적으로 몸을 감싼 채 요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바로 그가 전법으로 서울을 뒤덮고 있었다.“참으로 예상치 못했어. 화진에 또 한 명의 황자가 나타나다니. 윤구주는 정말 신기하다니까. 자신의 기운으로 국운을 바꾸고 자네의 운명까지 바꿔놓았군. 하지만 내가 충고 하나 해주지. 임정설 자네가 황자가 된 이상 사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야. 넌 사흘 안에 목숨을 거둘 것이란 말이지.”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은 임정설이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