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시연은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연정훈에게 다가가 입술을 맞추었다. 두 손으로 연정훈의 얼굴을 감싸며 눈을 감은 채 안시연은 본능에 따라 움직였다.입술이 닿는 순간, 연정훈은 자연스럽게 안시연의 뒷머리에 손을 얹고 안시연을 감싸 안으며 주도권을 잡았다.안시연의 심장은 빠르게 뛰었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온 세상이 연정훈 하나로 가득 차 있었다. 하늘에 떠 있던 달조차 보이지 않았다.연정훈은 조심스럽게 외투를 안시연의 머리 뒤에 놓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깊은 입맞춤을 했다.“음...”안시연은 조용히 연정훈의 부드러움을 받아들이며 숨결을 맞췄다. 주변을 둘러싼 차나무들이 없었다면 그들의 열정은 마치 풀밭 위로 끝없이 번져 나갔을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뜨겁게 키스했다.입술이 스치고 코끝이 닿으며 두 사람의 숨결이 하나로 어우러졌다. 안시연은 몸속 깊은 곳에서 서서히 차오르는 열기를 느끼며 연정훈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안시연은 자연스럽게 몸을 밀착시키며 연정훈의 다리를 따라 움직임이 전해졌다.연정훈의 손길이 점점 더 대담해지며 안시연의 옷 아래로 부드럽게 스며들어 자유롭게 탐색했다.안시연은 부드럽게 속삭이는 듯한 숨소리를 내었고 고양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간지럽혔다.연정훈은 안시연이 흥분한 것을 알아차렸다.연정훈은 장난스럽게 멈추며 손에 힘을 주고 겁을 주듯 말했다.“누군가 와서 보면 어떡해요?”안시연은 눈을 겨우 뜨고 그 말에 놀란 듯 연정훈의 품에 파고들었다. 연정훈의 목을 감싼 손이 더욱 강하게 조여졌고 안시연은 다시 키스하려는 듯 고개를 들었다.연정훈은 안시연의 도발에 이끌리며 더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로 결심했다.연정훈은 안시연을 조심스럽게 안아 올리고 외투로 그녀를 감싼 채 일어섰다. 안시연은 연정훈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살짝 멍한 목소리로 물었다.“신발은 찾을 수 있을까요?”연정훈은 어이없었다.“...”안시연은 그가 맨발로 돌아갈까 봐 걱정하며 입술을 적시고 신발을 찾아주겠다고 말하려 했다
“세상에, 두 분께서 얼마나 격렬하셨길래 계단을 올라갈 시간도 없으셨던 건가요?”아침 식당에서 부승희가 혀를 차며 말했다.안시연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고 수프를 마셨다.연정훈은 멀리서 몇몇 대표들과 차를 마시며 대화 중이었다.아침에 연정훈은 안시연과 함께 샤워했고 그들이 원래 묵던 방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안시연은 얼굴이 뜨거워졌다.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샤워를 마친 후, 집사가 그들의 휴대폰을 가져다주었다.“정원사가 찻집에서 찾았습니다.”그 말을 듣자마자 안시연은 카메라로 모든 장면을 확인했으리라는 것을 즉시 알았다.그 순간 안시연은 멍한 상태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연정훈은 태연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리며 안시연을 바라보더니 힌트처럼 말했다.“나무가 꽤 높았잖아.”안시연은 아무 말 없이 침묵했다.“...”그 상황은 정말 자업자득처럼 느껴졌다.정원사가 풀밭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봤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연정훈이 안시연을 안고 일어나는 모습을 봤을 가능성은 높았다. 그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게다가 안시연은 옷을 입을 때 몸에 남아 있는 자국을 발견했고 연정훈의 허리 쪽에 남은 긁힌 자국을 떠올리며 어젯밤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정말 미쳤던 것 같다.침대 위의 일은 그렇다 치고 더 골치 아픈 것은 침대 밖의 일이었다.안시연은 연정훈과의 관계가 분명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서로 눈을 마주칠 때마다 묘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몇 번이나 안시연이 고개를 들면 연정훈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고 안시연은 급히 고개를 숙였다.부승희는 혀를 차며 다시 말했다.“두 분 정말 애틋하시네요...”안시연은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접시에 있는 음식을 쿡쿡 찔러가며 다른 주제로 화제를 돌렸다.“반우희 씨는 어디 갔어요?”“택배 부치러 갔어요.”“네?”부승희는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아까 반우희 씨를 봤는데 몸집은 작지만 힘은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큰 가방 몇 개를 짊어지고 물건을 챙기듯이 가장
부승희가 말하자 안시연은 얼굴이 붉어졌다.아침에 일어난 이후로 안시연은 연정훈과의 어색한 관계에만 신경을 쓰느라 양 두 마리는 완전히 잊고 있었다.안시연은 연정훈에게 양을 데리러 가달라고 할 생각도 없었다. 연정훈은 바쁘고, 테니스를 치는 것도 중요한 일이기에 양을 데리러 가게 하는 것은 자원을 낭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저 혼자 가면 돼요.”연정훈이 말했다.“나는 너를 위해서 가는 게 아니야.”안시연은 의아해했다.“나비에게 이제 마음의 빚을 지게 해야지. 내가 얼마나 자비로운지 깨닫게 하고 앞으로는 나에게 덜 침 뱉게 하려는 거야.”안시연은 그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영훈 씨가 굳이 직접 갈 필요는 없어요. 어젯밤 나비를 병원에 데려갔다는 건 제가 자세히 설명할 수 있거든요.”“듣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게 낫지. 게다가, 누가 네가 이 기회를 독차지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겠어?”안시연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이 정도로 말했으니, 이제는 말릴 수 없었다.양아버지가 자신의 평판을 개선하려는 이상, 아무도 연정훈을 막을 수 없었다.밖에는 화창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연정훈이 차를 가지러 간 사이, 안시연은 정문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멀지 않은 곳에서 부승원과 반우희는 마주 보고 대화하는 모습이 보였다.부승원이 무슨 말을 했는지 반우희는 급히 부승원을 막으며 간절한 표정으로 두 손을 모아 빌었다.부승원은 안시연을 힐끗 보더니 불편한 듯 표정을 굳히며 차 문을 열어 반우희를 태웠다.안시연은 그 상황이 흥미롭다고 생각했다.마침 연정훈이 차를 몰고 안시연 앞에 도착했다.안시연은 차 문을 열고 탑승한 뒤,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바람을 쐬었다.연정훈이 말했다.“머리를 밖으로 내밀지 마.”안시연이 대답했다.“밖으로 내밀지도 않았어요.”“거의 절반이 밖으로 나와 있어.”안시연이 반박했다.“영훈 씨도 어젯밤에 밖으로 내밀었잖아요.”연정훈은 어이없었다.“...”연정훈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테니스는 연정훈이 즐기는 운동 중 하나라, 그를 이길 상대가 거의 없었다.안시연이 함께하자 허 대표는 여러 파트너를 바꿔가며 맞섰지만, 결국 패배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죠. 당신들 부부 팀을 상대하는 건 너무 버겁네요.”허 대표의 말에 안시연은 운동 후의 열기로 더욱 들떴다.연정훈은 물을 마시며 자연스럽게 반응했고 아무 일도 없는 듯했다.파라솔 아래에는 부승희와 다른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잠깐 앉아 있어.”연정훈이 안시연에게 말했다.안시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안시연은 혼자서 보충식이 마련된 곳으로 가, 연정훈을 위해 몇 가지 음식을 골랐다.뒤돌아보니, 연정훈이 휴대폰을 꺼내며 전화를 받으려 하고 있었다. “연정훈 신경 쓰지 말고 먼저 음료부터 마셔요.”부승희가 농담하듯 말했다.그제야 안시연은 시선을 돌리며 신경 쓰지 않는 척했다.멀리서 연정훈은 몇 번이나 걸려 온 낯선 번호를 보고 누군지 직감했다.연정훈은 질질 끄는 걸 싫어하는 연정훈은 전화를 받았다.이곳은 맑은 햇살과 차 향기로 가득했지만, 전화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거칠고 냉랭해 마치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듯했다. “연정훈...”듣기 거북한 목소리였지만, 연정훈은 금방 누구인지 알아챘다.소현주였다.연정훈은 감정이 복잡했다. 불쾌함은 있었지만,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 “무슨 일이야?”전화 너머에서는 아무 말 없이 흐느끼는 소리만 들렸다. “나는 용인시에 있어. 날 데리러 올 수 있어?”“...”“연정훈...”“안 돼.”소현주는 연정훈이 자신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고 믿는 듯했다.연정훈의 차가운 반응을 예상이라도 한 듯, 소현주는 울음을 터뜨리며 말이 흐려졌다.연정훈은 이미 소현주의 상황을 알고 있었고 소현주가 왜 갑자기 전화했는지 짐작했다.다름 아닌 결혼 생활의 어려움 때문에 연정훈을 다시 떠올린 것이다.연정훈은 겉으로는 냉담하고 속마음도 차가웠던 연정훈은 가차 없이 말을 내뱉었다. “다시는 전화하지 마. 잘 살고 싶다면 최고의 변호
양혁수가 전화를 걸지 않았다면, 안시연은 양혁수를 거의 잊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딸은 어디 있어? 카메라 좀 돌려봐.”안시연은 침대에 누워 있다가 양혁수의 목소리를 듣고 잠시 멍해졌다.딸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어, 이불을 걷어내고 천천히 일어섰다.연정훈은 방에 없었지만, 아침 식사로 양주의 특산 요리를 가득 차려놓고 간 듯했다. “나비는 자고 있어요. 조금 있다가 영상으로 보여줄게요.”안시연이 대답했다. “연정훈이 내 애기들 학대하지 않았겠지?”연정훈의 이름을 듣자, 안시연의 마음이 다시 답답해졌다.“연정훈 얘기는 그만 해요. 누가 나비를 학대하겠어요? 기분 나쁘면 침부터 뱉는데.”안시연이 말했다.양혁수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좋아! 역시 내 딸이야.”안시연은 양혁수가 나비의 성격을 이미 잘 알고 있을 거라 짐작했다.양혁수는 답답했던 모양인지 다시 곧 놀러 올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미리 알렸다. “양혁수 씨, 그냥 쉬세요.”안시연이 다급히 말했다. “너희는 잘 놀면서 나보고 쉬라고?” “양주에는 딱히 재미있는 것도 없어요.”“재미없는데 왜 너희는 계속 양주에 있는 거야?”안시연이 대답했다. “저도 곧 돌아가려고요.” “너 경인시로 돌아간다고? 그럼 난 안 갈래.”안시연은 어이없었다.이 도련님은 정말 철부지 같다.양혁수가 다시 말했다.“양주에 특산품 좀 사다 줘.”안시연은 살짝 어이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양주랑 경인시가 겨우 두 시간 거리인데 무슨 특산품이 있겠어요?” “디저트.”“경인시에서도 충분히 먹을 수 있잖아요...” “특산품 안 사 오면 나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증거로 알 거다.”안시연은 솔직히 양혁수를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었다.하지만 다른 일들로 마음이 복잡했던 안시연은 양혁수와 말다툼할 기분이 아니었고 나비와 연정훈을 생각하며 일단 부탁을 받아들였다.전화를 끊고 나서 안시연은 서둘러 침대에서 일어났다.아침 식사를 주문해 포장한 후, 특급 배송으로 양혁수에게
부승희는 이승우에 관해 이야기했지만, 안시연의 마음속에는 자연스럽게 이승우가 연정훈과 겹치며 한층 더 깊은 쓸쓸함이 밀려왔다. “승희 씨는 좋은 사람이니까, 분명 승우 씨보다 더 나은 사람을 만나게 될 거예요.”안시연은 부승희를 위로했다.그러나 부승희는 고개를 저었다.눈을 감고 과감한 디자인의 소파에 몸을 기대며 나지막이 말했다. “다 똑같아요.”안시연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모든 남자를 한꺼번에 그렇게 치부하지 마세요.” “세상 모든 까마귀가 검은색인 건 사실이죠. 하얀 까마귀를 찾으러 다닐 만큼 여유도 없고요.”부승희는 차분하게 창밖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냥 이렇게 살아가는 거죠. 어차피 손해 볼 것도 없고 얼마 안 있으면 유럽으로 떠날 거예요.” “유럽으로요?”“네, 석사 공부하러 가요.” “그러면 국내 사업은 어떻게 할 건데요?” 부승희는 웃으며 말했다.“이승우한테 맡겨둘 거예요. 내가 돌아올 때까지 꼼꼼하게 챙겨놓겠죠. 제가 남자친구를 데리고 오더라도 오빠와의 관계를 생각해서 한 푼도 빠지지 않게 돌려줄 거예요.”안시연은 할 말을 잃었다.부승희가 말을 이었다.“이승우가 정말로 나를 좋아한다면 저도 진심으로 대할 수 있어요. 하지만 만약 이승우가 저를 속이고 놀아난다면 굳이 엮일 필요 없죠. 세상에 이승우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승희 씨가 충분히 생각했으면 됐어요…”안시연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슬프게 들렸는지 부승희는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연정훈은 이승우랑 달라요.” “뭐가 다르죠?”부승희는 잠시 멈칫했다.부승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연정훈 역시 안시연을 진정한 아내로 맞이할 생각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말했잖아요. 적당한 시점에서 멈추고 너무 깊이 빠지지 말라고요.”안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대답했다.“승희 씨 말대로 할게요. 정훈 씨 돈을 쓰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모든 호의를 즐기다가, 때가 되면 부자가 되어 떠날
부승희와 안시연이 이승우를 만났을 때, 옆에는 부승원만 있었다.“연정훈은 어디 있어?”부승희가 물었다.이승우는 평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경인시로 돌아갔어.”“뭐라고요?”안시연은 잘못 들은 줄 알았다.부승원이 이승우를 한 번 바라보더니, 먼저 입을 열었다. “연정훈의 아버지에께서 전화가 왔어. 연정훈은 돌아갈 수밖에 없었어.”부승희는 그 말을 듣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께서 전화하셨다면 분명 큰일이겠지. 연정훈도 안 갈 수는 없었을 거야.”부승희는 안시연을 위로했다.“아마도 너무 급해서 시연 씨에게 인사할 시간조차 없었을 거예요. 일이 끝나면 분명히 전화할걸요.”안시연은 차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왠지 안시연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안시연은 연정훈에게 두 번 메시지를 보냈지만,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도대체 얼마나 중요한 일이길래 메시지를 확인할 시간조차 없는지 안시연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긴장이 가시지 않은 안시연은 방으로 돌아가 두 마리 알파카를 데리고 경인시로 돌아갈 차를 부르기로 했다.그때 갑자기 방문이 두드려졌다.안시연이 문을 열어보니, 뜻밖에도 부승원이 서 있었다.“부 변호사님, 안녕하세요.”부승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시연의 옷차림을 보며 말했다. “경인시로 돌아가려는 거예요?”“네...”“짐은 싸지 마세요. 하루만 더 기다렸다가 저희와 같이 가죠.”“괜찮아요.”안시연은 예의 바르게 거절했다.부승원은 말했다.“굳이 사양하실 필요는 없어요. 연정훈이 떠나기 전에 저희에게 시연 씨를 잘 부탁해 달라고 하셨어요.”‘정말 그런 걸까?’그렇다면 왜 연정훈은 메시지 하나 남기지 않았는지 궁금해졌다.안시연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안시연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부승원은 이미 두 마리 알파카를 보며 말했다. “시연 씨, 혼자서 두 마리 양을 데리고 가는 건 차를 빌린다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에요.”부승원의 말이 사실임을 안시연은 인정했다.안시연은 침묵했다.
안시연은 찻집을 떠나면서 부승희에게만 메시지를 보냈다.부승희는 안시연을 붙잡으려 따라나섰지만, 안시연은 거절했다.이승우는 대나무집 위에서 망원경으로 상황을 살펴보며 혀를 차며 말했다.“아가씨, 정말 고집이 세네. 양 두 마리 데리고 길을 나서는 것이 마치 아이들 데리고 가출하는 것 같잖아.”부승원은 속으로 생각했다.‘아마 멀지 않아 아이를 안고 뛰게 될 것 같은데 지금 연정훈이 하는 짓을 보면 아무리 마음을 다 준 여자라도 떠나게 되었어.’안시연이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점심시간이 지나고 있었다.안시연은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양 두 마리도 힘들 것 같았다. 영준이는 아직 한 달밖에 되지 않았고, 나비는 술이 깬 지 얼마 되지 않았다.연정훈이 없어도 괜찮지만, 이 사랑스러운 양 두 마리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안시연은 돌아갈 시간을 조금 미루기로 했다.하지만 침실로 들어가 핸드백 안에서 USB를 찾지 못했다.‘이게 무슨 일이야?’안시연은 방을 몇 번이나 뒤졌지만, 허탕이었다. 결국 연회를 주최한 호텔 프런트에 전화를 걸었다.“혹시 착오가 있었던 건가요? 말씀하신 USB를 찾지 못했어요.”프런트 직원은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말했다.“아마 저희 쪽에서 실수한 것 같아요...”안시연은 어이없었다.전화를 끊고 안시연은 짐을 싸면서 연정훈의 물건을 모두 정리했다. 이렇게 해야 마음이 조금 가벼워질 것 같았다.안시연은 오후에 잠깐 눈을 붙였다.일어나 보니 어느새 저녁이 되어 있었다.“우리 이제 집에 가자.”안시연은 나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나비는 머리로 안시연의 배를 살짝 밀었다.“착한 아기.”안시연의 마음이 따뜻해졌다.안시연은 룸서비스를 부르려던 참이었는데 갑자기 양혁수의 전화가 걸려 왔다.“여보세요?”“어디야?”안시연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왜요?”“나 양주에 도착했어. 너 보러 갈게.”안시연은 황당하면서도 무심하게 말했다.“저 이제 경인시로 가려고 차를 탈 준비 중이에요.”“
반우희는 의아해 되물었다.“네?”‘접시 가지고 오라고?’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부승원의 말에 고분고분 접시를 가지고 다시 나타났다.“여기요.”접시를 건네자 부승원은 반우희 손에 쥔 포크를 낚아채 자신이 건드리지 않은 부분의 스파게티를 덜어 그 접시에 올려줬다.“먹어.”반우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아니 그게 아니라...”“조용히 해...”“네...”반우희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슬쩍 돌렸다.‘뭐야. 누가 언제 스파게티 먹고 싶다고 했어?’‘그래도 나눠줬는데 한 입도 안 먹는 건 아니지.’그래서 반우희는 얌전히 자리에 앉아 스파게티를 먹기 시작했다.‘뭐지? 탄 거야?’반우희는 한 입 먹고 부승원을 향해 눈을 깜빡거렸다.부승원은 여전히 묵묵히 스파게티를 비웠다.그러자 반우희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방금까지 요리 잘한다고 그렇게 자랑했는데 소스를 태운 것도 모르다니.지금 보니 부승원도 가끔은 참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아니. 대표님은 좋은 사람 맞아. 전에 승주 사건 모든 변호사가 거절했는데 대표님만 받으셨잖아. 돈도 되지 않은 사건인데 정의를 위해 받으신 거지. 정의를 위해!’그 생각을 하니 부승원이 마치 부처님처럼 느껴졌다.‘그리고... 대표님은 정말 너무 잘생겼어!’반우희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는 없었으나 혹시 배가 부르지 않아 그런 건가 싶어 부승원은 또 냉장고에서 과일을 한가득 꺼내왔다.다시 자리로 돌아오니 반우희가 남겨준 스파게티는 별로 입도 대지 않고 어디 불편한 듯 자리만 고쳐 앉고 있었다.그래서 부승원은 아예 핸드폰을 꺼내 들고 문서를 보냈다.반우희는 새로운 업무가 생긴 줄 알고 눈을 반짝였다.“제가 뭘 해드리면 될까요?”“서재에서 프린트해 와. 펜도 챙겨오고.”“네!”반우희는 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신이 난 채로 서재로 향했다.그리고 종이와 펜을 챙겨 다시 나타났다.부승원은 건네받지 않고 턱으로 반우희를 자리에 앉게 했다.반우희는 얌전히 자리에
부승원이 고개를 돌려 반우희를 바라봤고 반우희는 바보같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러자 부승원은 바로 시선을 냉장고로 돌리고 식재료를 찾았다.반우희는 그제야 알아차리고 물었다.“혹시 저녁 안 드셨어요?”“그래.”‘어머. 정상인처럼 대답할 줄 아는 사람이었잖아!’반우희는 조금 놀란 기색이었다.그리고 방금 부승원의 간식을 먹은 보답으로 반우희는 대신 요리를 해주겠다고 나섰다.“제가 해드릴게요. 저 요리 잘해요.”“그래 보여.”‘요리 잘하니까 볼살이 통통하게 올랐지.’부승원이 이번에도 고분고분 대답하자 반우희는 점점 흥분되었고 용기를 내어 부승원의 옆으로 걸어갔다.“스파게티 하려고요?”“응.”“무슨 소스인데요?”부승원은 무뚝뚝하게 토마토소스를 옆에 두었다.“아, 토마토스파게티?”반우희는 부승원을 바라보며 다시 질문했다.“그런데 정말 요리할 줄 알아요? 제가 도와드릴게요.”“냉장고에 식재료 다 있어.”반우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냉장고에서 소스를 챙겨오고 토마토를 썰었다.부승원은 거절하지 않았고 묵묵히 면을 삶으며 작은 냄비를 반우희에게 건네 소스를 만들게 했다.반우희는 기쁜 마음이 얼굴에 드러났다.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할 때 부승원은 늘 반우희를 꾸짖기만 했었다. 그러나 정인 그룹에 들어가고 두 사람은 직급 차이로 꾸중할 기회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부승원이 반우희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고 같이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니... 반우희는 인정받는 기분이 들었다.물이 끓고 부승원은 면을 냄비에 넣었고 핸드폰을 꺼내 타이머를 눌렀다.반우희는 계속 부승원을 힐끔거렸고 부승원이 이렇게 추운 날 외투 안에 얇은 흰 셔츠만 입고 있는 게 보였다.‘음... 뭔가 잘생겨 보이는데?’반우희는 자신의 안목에 자신이 있었다. 레전드는 영원한 레전드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부승원은 진작 반우희의 시선은 눈치챘으나 그럴 여유가 없어 무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반우희가 자신을 바라보다가 눈을 데굴데굴 굴리는 모습이 딱 봐도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 같았다.
“지원아, 네가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양석진은 양지원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우리 둘 사이는 네가 한 걸음만 다가와 주면 돼.”나머지는 양석진이 알아서 하면 되었다.양지원은 목이 메어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그리고 양석진의 품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흘렸다.양석진은 죄책감을 느끼는 양지원을 알고 있었기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하지만 이렇게 좋은 날 과거에 잠겨 시간을 허비하는 건 아쉬운 일이었다.그래서 낮은 목소리로 양지원의 관심사를 돌렸고 고개를 숙여 양지원의 입술에 키스했다.이젠 양지원도 분위기에 몸을 맡겼다.양지원은 양석진의 목에 손을 걸고 키스에 응했다.방의 온도는 점점 뜨거워지고 양석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양지원을 안아 들고 침대로 향했다.“음...”다른 한편 반우희는 창가에서 아래층 커플이 키스하는 걸 열심히 지켜보고 있었다.그리고 손에 쥔 걸레를 내려 두고 아래층에 쓰레기를 버리러 내려갔다.그런데 고개를 들어보니 먹을 쏟은 것 같은 밤하늘에 달빛이 참 아름다웠다.모든 사람이 마음껏 사랑을 하고 있는데 오직 본인만이 일하고 있는 것 같았다.반우희는 한숨을 내쉬었으나 오늘 받은 일급으로 동생들에게 야식을 시켜줄 생각을 하니 다시 힘이 나는 것 같았다.그렇게 생각을 마치고 반우희는 부승원의 오피스텔로 돌아갔다.사실 오피스텔로 치기에는 평수가 커 별장 같은 느낌이 들었다.청소를 마치고 반우희는 기사한테 전화를 걸었고 기사는 아직 식사 중이라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그래서 반우희는 얌전히 기다리기로 했다.그러다가 우연히 부승원 집에 남아 있는 고가의 간식이 눈에 들어왔고 이 많은 걸 버리는 건 아쉬운 일이니 차라리 본인이 먹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차라리 나한테 버리면 완전 고맙지.’그때 승주가 반우희에게 전화를 걸어왔다.“샤부샤부 준비 다 끝났으니까 빨리 와요.”“알겠어!”반우희는 흥분이 되기 시작했다.뜨거운 샤부샤부와 동생 세 명과 함께 맞는 새해라니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양지원과 양석진은 조용히 떡을 만들고 있었다. 위층에서 양시연과 연정훈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것과는 달리, 아래층은 평화롭고 차분한 분위기였다. 두 사람은 아무도 부르지 않고 서로 손발을 맞추며 작업을 이어갔다.양지원은 잠시 휴식을 취하러 위층으로 올라갔다. 샤워하고 나서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말리는데 가슴이 조금씩 떨려왔다.이제 어린 소녀도 아니었지만 결혼 상대가 양석진이라는 것만 생각하면 다시 소녀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자신의 마음을 모른 척하지 않았고 양석진을 놓치지도 않았다.드디어 양석진과 결혼을 했다.잠시 뒤 양지원은 드라이기를 내려놓고 화장실을 나섰다. 고개를 드니 양석진이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고 샤워를 마치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평소와 다름이 없었지만 양지원은 왠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시선을 거두고 스킨 케어를 시작했다.그렇게 순서대로 바르고 있는데 양석진이 어느샌가 양지원의 뒤로 걸어왔다.양지원은 거울 속으로 양석진과 시선을 마주했고 심장이 쿵쿵 뛰었다.그런데 갑자기 오성호랑 이혼하고 세운으로 가서 양석진을 만났던 기억이 떠올랐다.양석진은 내색하지 않고 관저에서 저녁을 함께하자고 했으나 양지원이 모두 거절했었다.하지만 결국 등쌀에 못 이겨 양석진과 저녁을 함께 했다.저녁 식사 자리는 아주 조용했고 양석진은 다정하게 반찬도 집어주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치고 양지원을 위층으로 불렀다.그날 어떻게 방으로 들어가고 방에 들어가서 어떻게 침대 위로 눕혀졌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양석진이 강하게 몰아붙이던 키스와 단단한 품만이 선명히 떠올랐다.관계가 끝나고 양지원은 허겁지겁 옷을 챙겨입었는데 그러다가 거울 속 양석진의 깊은 시선과 마주하게 되었다.마치 지금의 양석진과 같은 시선이었다.양지원은 몰래 심호흡하며 작은 앰플을 들었다.그러자 뒤에서 양석진이 말했다.“아까 그거 바르는 거 봤어.”“...”양지원은 당황하지도 않고 대답했다.“두 번 발라야 해요.”“그래.”양석진이 고개를 끄덕
식사 자리에서 양시연은 큰소리로 양석진과 양지원의 결혼을 축하했다. 양홍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못해 함께 축하의 말을 했다.“그래도 밖에서는 좀 조심해.”양홍두가 말을 덧붙였다.“조심해 봤자예요. 오빠는 이미 유명 인사이고 난 돈이 많으니까 어떻게든 주목받을 운명이에요. 걱정은 감사해요.”양홍두는 대답이 없었고 양시연과 연정훈은 얌전히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양석진은 분위기를 풀기 위해 웃으며 말했다.“최대한 조용히 지내겠습니다.”양홍두는 듣고 나서 몇 번 헛기침했다.“최대한이라니, 듣기만 해도 엉터리 같군.”다행히 양시연의 임신 소식 덕분에 분위기는 조금 누그러졌다. 양홍두는 잠시 생각에 잠겼고 이 가문에 곧 아기가 태어날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연정훈은 잠깐 자리를 떠나 폭죽을 챙겨왔다.그 덕에 새해의 분위기가 한층 더 진하게 느껴졌다.양홍두는 술기운이 좀 돌자 갑자기 양지원이 좋아하는 떡을 만들겠다고 했다. 많이 취한 건지 이 야밤에 직접 떡을 만들겠다고 아우성쳤다.갑작스러운 양홍두의 말에 양지원은 어이가 없었지만 그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알겠어요, 아버지. 그냥 소파에 앉아서 쉬고 계세요. 다른 사람을 시켜서 만들게요.”임신 중인 양시연이 행여나 피곤할까 연정훈은 양시연이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게 했다.사실 떡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한 사람은 큰 돌절구에 앉아서 떡을 만들고, 또 한 사람은 큰 나무망치로 그 떡을 쳐야 했다.힘을 쓰는 건 연정훈의 몫이었다.양석진은 시계를 빼고, 팔꿈치를 걷어붙이며 떡 만들기에 몰두했다.예상외로 두 사람은 손발이 척척 맞았다.모녀는 양홍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어느새 양지원은 양석진 옆에 다가가 양석진의 소매를 조심스럽게 올려줬다. 그 모습이 마치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낸 부부처럼 자연스러웠다.연정훈은 잠시 멈춰서 그런 모습들을 살펴보다가 슬쩍 시선을 돌렸다.양시연은 소파에 기대어 앉아 양홍두와 웃고 있었는데 연정훈에게 시선 한번 주지
양시연과 연정훈은 함께 정문으로 들어섰다. 넓은 홀 중앙에 긴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양홍두는 그 테이블 한쪽 끝에 서 있었으며, 양지원과 양석진은 반대편에 자리하고 있었다.양지원은 긴 머리를 묶어 비녀로 고정했고, 연보라색의 전통 한복을 입고 흰색 여우 털을 어깨에 둘렀다. 외관은 평범한 차림이었지만, 양지원이 착용한 붉은 보석 세트는 은근히 세련된 느낌을 더하며, 단아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양석진은 진지한 얼굴로 붓을 쥐고 있었고 그 옆에서 양홍두는 먹을 갈고 있었으며 함께 새해맞이 서예를 쓰고 있었다.양시연은 연정훈의 팔을 가볍게 놓았다. 그리고 양지원과 양석진 쪽으로 한 걸음 내디디며 몰래 눈빛을 교환했다.연정훈은 양홍두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연정훈을 발견한 양홍두가 붓을 멈추고 물었다.“내 서예가 어떠냐?”주변 사람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았다.연정훈은 한참 서예를 살펴본 후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할아버님, 제 아버지도 서예를 많이 하셨지만, 할아버님의 서예를 보면 정말 감탄을 금치 못할 거예요.”“정말?”“당연하죠.”연정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 세부적인 부분을 하나하나 짚어갔다. 연정훈의 말투는 마치 양홍두를 서예의 대가로 모시는 것 같았다.이에 조금 놀란 양시연이 몰래 양지원에게 물었다.“할아버지 서예가 그렇게 대단해요?”그러자 양지원과 양석진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고 양지원이 대답했다.“넌 아직도 정훈이 입담을 몰라?”“...”‘아, 역시 그런 거군.’그때, 양홍두가 마른기침하더니 다시 연정훈에게 질문했다.“실은 나도 내 서예가 평범하다는 걸 알고 있네. 그런데 자네 장인어른과는 비교할 수 있겠는가?”“...”양시연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모든 사람의 시선이 연정훈에게 쏠렸다.그러나 연정훈은 아무렇지 않게 양석진을 향해 말했다.“아버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양시연은 속으로 웃음을 참았다. 역시 연정훈은 말을 넘기는 솜씨가 일품이었다.그러자 양석진은 붓을 놓으며 미
양시연은 사탕을 하나 입에 넣으며 궁금한 듯 물었다.“부 대표님이 그렇게 까다로운 분인가요?”비서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그렇게 까다로운 건 아니에요. 그런데 완벽주의자라 작은 결점도 못 참고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세요.”그때, 사무실 밖에서 경쾌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반우희가 천진난만하게 사무실로 들어왔고 그 모습에 사무실 분위기가 한층 밝아진 것 같았다.양시연은 그 모습을 보고 살짝 미소 지었고 비서는 양시연의 눈빛을 읽고 재빨리 문을 열어 반우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우희 씨, 케이크 먹으러 와요.”반우희는 잠시 당황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서가 오늘따라 양 탈을 쓴 늑대처럼 느껴졌다.“빨리 와요.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비서가 웃으면서 손짓했다.반우희는 별 의심 없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양시연은 이미 케이크를 나누고 있었고, 반우희에게 오늘 하루 어땠는지 다정하게 물었다.반우희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저, 벌써 일주일 동안 실수 한 번도 안 했어요! 팀장님이 이제 거의 완벽하다고 하셨어요!”“정말요? 대단해요!”양시연은 웃으며 반우희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반우희는 기쁜 표정으로 케이크를 한 입 크게 먹으며, 양시연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양시연이 비서에게 말했다.“부 대표님네 가사 도우미 빨리 구해야겠네요.”비서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좋은 가사 도우미 찾기는 정말 어렵죠. 일급 25만 원도 구하기 힘들어요.”반우희는 갑자기 자세를 고쳐 앉으며 물었다.“일급이 얼마라고요?”“25만 원이요.”비서의 말에 반우희는 바로 질문을 이어갔다.“매일 가야 하나요?”“아니요, 주 2회만 가면 돼요.”‘이렇게 좋은 일자리가 있다니!’비서가 별다른 말을 꺼내기도 전에 반우희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저 청소 진짜 잘해요! 저한테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우희 씨가요?”“네네. 저 청소 잘하는데 저 한 번만 시켜주실래요?”양시연은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이번 새해에 부승원
연정훈은 귀찮아서 전화를 받지 않으려 했지만, 양시연이 재촉했다.“그래도 할 일은 해야죠.”연정훈은 어쩔 수 없이 양시연의 이마에 키스하고 양시연을 품에 안고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저예요, 임성원.”연정훈은 잠시 멈칫했고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양시연이 옆에 있었기에 연정훈은 무표정으로 양시연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팔을 천천히 빼고 일어났다.연정훈은 양시연을 옆에 두고 질문했다.“무슨 일이야?”임성원이 말했다.“정신병원 쪽에서 소현주 상태가 좋아졌다고 하네요. 퇴원 조건을 충족했다고 합니다.”그러자 연정훈의 얼굴에 차가운 기색이 스쳤다.“그쪽에서는 어떻게 처리했어?”임성원이 대답했다.“대표님의 지시가 없었기에 원장님이 퇴원 신청을 승인하지 않았습니다.”연정훈은 잠시 침묵했다. 그때 양시연이 침대에서 일어나자 연정훈이 말을 이었다.“좀 생각해 보고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알겠습니다.”연정훈이 급하게 전화를 끊자 양시연은 연정훈이 평소와 다름없지만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무슨 일이에요?”양시연은 궁금해하자 연정훈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그냥 협력 얘기였어.”“아...”양시연은 더 이상 의심하지 않고 연정훈을 끌어안으며 말했다.“아까 별로 못 먹었잖아요. 아래 내려가서 뭐 좀 먹을래요?”“좋아, 같이 가자.”연정훈은 휴대폰을 두고, 별다른 내색 없이 양시연의 손을 잡고 내려갔다.양시연은 하루 종일 행복했고, 잠들기 전까지 기분 좋게 지냈다.그건 연정훈도 마찬가지였고 소현주에 대한 걱정을 잊고 양시연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그런데 밤이 깊어지고 연정훈은 무서운 악몽을 꾸었다.꿈속에서 양시연은 배를 움켜잡고 차 옆에서 쓰러져 있었고, 소현주는 차 안에서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연정훈은 놀라서 잠에서 깨어났고, 식은땀을 흘리며 양시연이 여전히 품에 안겨 자는 모습을 확인했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밤은 고요했고, 연정훈은 오랫동안 양시연을 바라보며 생각을 점차 정리했다.소현주는
“모연준 씨는 경인에 가족이 있나요?”양시연이 물었다.모연준의 운전기사가 그 사람을 챙겨준다는 건 두 사람이 평범한 친구 사이가 아니라는 걸 의미했다.연정훈은 양시연의 의문을 바로 알아차렸다.그들에게 있어 운전기사와 조수는 아주 중요한 사람들이며 쉽게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지’ 않았다.더군다나, 모연준은 차갑고 다른 사람을 돕는 성격도 아닌 것 같았다.연정훈이 대답했다.“잘 모르겠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고구마 더 먹을래?”연정훈이 대화 주제를 돌리자 양시연은 조금 이상하게 느꼈지만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집에 돌아가서 먹고 싶으면 내가 구워줄게. 재료도 있고, 오븐도 있으니까.”연정훈이 말했다.“좋아요.”그렇게 대화는 중단되었다.양시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부승원은 이 사건을 직접 목격했고 이번 일이 부승희와 관련이 있다면 부승원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차량은 어느새 강남 시티 앞에 도착했다. 여 아주머니는 두 사람이 이렇게 일찍 돌아온 것을 보고 놀라며 집에 들어서자마자 상황을 물었다.양시연은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것 같아 바로 말했다.“임신했다고요?”여 아주머니는 놀라서 외쳤고 양시연은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평소랑 똑같이 하시면 돼요.”‘어떻게 평소랑 똑같을 수 있어요!’여 아주머니는 자리를 맴돌며 한참 고민하다가 행동으로 옮겼다.축하 편지 작성, 레시피 체크, 임산부 돌보는 방법도 하나도 빠짐없이 찾아보았다.양지원과 양홍두도 이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연정훈의 부모님에게 숨길 수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비밀로 하자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양시연은 방 침대에 누워서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다행히도 여기저기에서 걸려 온 연락은 모두 연정훈이 받았다.양시연은 핸드폰을 들고 검사 결과를 보면서 여러 가지 정보를 검색했다.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오후 네 시가 되었다.연정훈은 그제야 양시연의 곁에 누웠다. 연정훈은 한 손을 머리 뒤에 대고 천장과 양시연을 번갈아 쳐다보았고 아직 실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