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안 받을 거야?” 안시연이 고개를 저었다. 연정훈은 더 말하지 않고 그녀를 안고 일어섰다. “그래, 그게 좋겠어. 나도 순간적인 충동이었으니까.” “사실 이 카드는 그 누구에게도 준 적 없어.” 그가 그렇게 말하며 카드를 주머니에 넣으려 했다. 앞의 두 마디는 그냥 넘길 수 있었지만, 마지막 말은 정말로 큰 유혹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준 적이 없다는 것... 이건 유일무이한 거잖아. 안시연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카드를 막으려 했지만, 그는 이미 그것을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후회스러운 마음에 그를 바라보자, 연정훈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 그거 받을래요.” 연정훈은 못 들은 척하며 그녀를 안고, 한 손으로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안시연은 조바심이 났다. 급히 그의 얼굴에 입을 맞췄다. 그는 여전히 무시했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한번 입을 맞췄다. 두 번이나 키스를 하자, 그는 마침내 동작을 멈추고 얼굴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살짝 내렸다. 안시연은 그의 눈을 바라보며, 손을 그의 바지 주머니에 넣어 블랙 카드를 꺼냈다. 연정훈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그녀의 얼굴을 살짝 꼬집었다. 안시연은 수줍게 웃으며 그를 안고, 그의 품에 기대 카드를 바라보았다. “난 함부로 쓰지 않을 거예요.” 연정훈은 말했다. “그럴 거면 왜 줬겠어? 마음껏 써. 최대한 잘 활용해서 너 자신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안시연은 그의 의도를 이해했지만, 지금의 능력으로는 이 카드를 들고 할 수 있는 일이 쇼핑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어젯밤 연정훈이 양민아와 진지하게 대화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캠퍼스 카드를 보며, 남대 도서관의 모든 책을 머릿속에 넣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마음속엔 여러 가지 생각이 얽혀 있었지만, 동시에 기쁨도 가득했다.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 안시연은 연정훈의 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연정훈도 그녀를 혼자 회사에
안시연은 정각에 사무실에 도착했고, 오전 내내 기분이 좋았다. 점심시간에 연정훈은 그녀를 찾지 않았고, 그녀는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점심 휴식 시간에 갑자기 구혜은에게서 전화가 왔다. 근처 카페에서 만나자고 했다.안시연은 거절하며 용건이 뭔지 직접 물었다.구혜은도 둘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 솔직히 말했다.“장 교수님의 순회 전시회에 함께 참여해 줬으면 해.”안시연은 놀랐다.장 교수의 순회 전시는 대형 프로젝트였고, 현재 경인시 업계에서 모두 주목하고 있었다. 구혜은이 주요 책임자 중 한 명이 될 수 있다면 꼭 붙잡아야 할 기회인데, 오히려 그녀에게 와서 나눠 달라고 하다니.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선배,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그냥 말씀해 주세요.”구혜은은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순회 전시의 주요 장소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안시연은 이해했다.“제가 장소 찾는 걸 도와드리길 바라시는 거군요.”구혜은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연 대표님의 능력이라면 장소 하나 찾는 게 어렵지 않겠지?”안시연은 천문학에 관심이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주목받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더군다나 연정훈의 자원을 빌려 이런 쓸데없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죄송해요, 저는 순회 전시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선배님을 도와드리기 어려울 것 같아요.”구혜은이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안시연이 먼저 말을 잘랐다. “점심시간이라 이만 끊을게요.”그리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이대로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잠시 후 구혜은에게서 메시지가 왔다.“주요 전시의 주제는 연정훈이 남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해에 처음 열었던 연구 주제야.”“그는 당시에도 순회 전시를 하고 싶어 했지만, 시간이 없어서 못 했지.”“난 그의 모든 원고를 가지고 있어.”안시연은 메시지를 보며 마음이 흔들렸다.구혜은은 정말 그녀의 약점을 정확히 찔렀다. 이어서 말했다. “그가 하고 싶었지만 못한 일을, 네가 대신 완성해 주고 싶지 않나?”안시연은 침묵했다.그녀는 연
안시연은 15분 정도 앉아 있었고, 곧 모두가 흩어졌다.연정훈이 그녀 뒤에서 다가와 의자 팔걸이에 손을 올리고 테이블 위 음식을 살펴보았다.“한 입도 안 먹었어?”안시연이 고개를 돌려 그를 보며 소금물에 담긴 대하를 가리켰다. “다 벗겨 놨어요.”연정훈이 웃음을 터뜨렸다.“왜 이렇게 착해?” 그가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보았다.안시연이 눈을 굴리며 말했다. “선생님들은 다 착한 학생을 좋아하시잖아요?”연정훈이 입꼬리를 올리며 그녀의 입술에 살짝 키스했다.“음, 착한 학생에겐 상이 있지.”안시연이 얼굴을 붉히며 그의 소매를 당겼다. 그에게 앉으라는 신호였다.연정훈은 그녀 맞은편에 앉았다.그들은 한 명은 밥을, 한 명은 국을 떠주며 조화롭게 움직였다.“오늘 뭘 했어?” 연정훈이 물었다.안시연은 착한 아이처럼 일과를 자세히 설명했지만, 점심시간에 대해서는 숨기는 게 있었다.연정훈이 그녀의 그릇에 고기를 하나 올려주며 말했다. “그래, 그럼 점심에는 무슨 나쁜 짓을 했길래 말 못 하는 거야?”안시연은 말문이 막혔다.그녀는 약간 당황스러웠다.“교수님.” 연정훈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안시연이 턱을 괴며 물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부전공하셨어요?”연정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점으로 끝냈지.”안시연은 그저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진실이었다니.그가 항상 그녜를 한눈에 꿰뚫어 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그녀는 한숨을 쉬며 구혜은이 찾아온 일을 말했다.“내가 했던 연구 주제로 전시를 하고 싶대?” 연정훈이 정곡을 찔렀다.안시연은 조금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이고 밥을 뒤적거렸다. “제가 아는 게 별로 없어서 잘 못할 것 같아요.”“네가 혼자 하기에는 확실히 무리지.”안시연의 어깨가 축 처졌다.“하지만,” 연정훈이 말을 돌렸다. “연구 주제의 원작자가 바로 네 앞에 앉아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안시연이 잠시 멍해졌다.그의 말뜻을 깨닫고 기쁘게 고개를 들었다.“저와 함께 하시겠다고요?”“너와
“오늘 밤에는 일이 좀 있어서 강남 시티로 돌아가야 해.”연정훈이 말했다.안시연도 순순히 알겠다고 했다.그들은 회사에서 9시가 넘도록 머물다가 강남 시티로 내려갔다.엘리베이터에서 나와 잠깐 걷는 동안 연정훈은 안시연의 손을 잡았고 그것 때문에 안시연은 몰래 기뻐했다.강남 시티로 돌아와서 연정훈이 위층으로 올라가 일을 보고 있을 때, 그녀는 옆에 앉아서 그의 원고를 빤히 쳐다보았다.안시연은 원래 그날 밤 구혜은에게 연락을 하려 했다.“서두르지 마. 지금 급한 건 네가 아니라 그쪽일 거야.”이렇게 말하는 연정훈의 말을 듣고 그녀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사람의 마음을 알아보는 것에 있어서 안시연은 배운 적이 있었다.추석 무렵이라 정원에는 추석을 맞이하는 장식품들이 가득 걸려 있었다.안시연은 좀 심심했는지 창가에 엎드려 밖을 내다보았다.연정훈이 일을 끝냈을 때, 그녀가 눈을 크게 뜨고 정원의 디자인을 훑어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연성훈은 문득 그녀와 엮이기 시작하고 나서 침대에서만 제대로 된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안시연을 데리고 나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게 어렴풋이 떠 올랐다.“야식 먹고 밖으로 나가볼까?”연정훈이 먼저 이렇게 제안했다.안시연은 의외이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쉬지 않아도 돼요?”“어제도 이렇게 일찍 쉬진 않았잖아.”안시연의 얼굴이 빨개졌다.어제 이맘때쯤이면 그들이 몸을 섞고 있을 때였다.그녀는 입술을 오므리더니 입을 열었다.“그럼 전 내려가서 아주머니더러 만두를 삶아달라고 할게요.”말을 마친 안시연은 토끼처럼 활기차게 뛰어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그런 그녀를 보는 연정훈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그들이 함께 야식을 먹고 아파트에서 나왔다. 바람이 살살 부는 게 산책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길을 걷다 보면 신기한 식물들이 많을 뿐, 놀거리는 딱히 없었다. 강남 시티 외곽에서 멀지 않은 곳까지 걸어간 그들은 복권 자판기를 발견했다.“한 장 살까요?”안시연이 묻는다.연정훈이 휴대전
먼저 뽀뽀를 한 안시연은 조용해졌다.그는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물었다.“나왔어요?”연정훈은 복권을 긁던 동작을 계속하지 않고 그녀를 한 번 쳐다보았다.“돈을 원하면 돈만 바라야지. 중간에 갑자기 생각 바꾸기 있어? 나를 먼저 갖고 싶었나 봐.”안시연은 두 손을 뒤로 한 채 입술을 깨물었다.“마지막 숫자 하나만 남았으니 당첨된다고 해도 그렇게 큰돈은 아닐 거야.”그녀는 속삭이듯 말하며 그를 다시 쳐다보았다. “돈을 바랐지만 이미 실패했으니 다른 곳에서 만회해 보려고요.”연정훈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맞는 말이네.”안시연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리스크를 미리 알아내고 예방하는 거죠.”연정훈이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맞아.”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칭찬했다.“총명하네.”그는 마침내 마지막 숫자를 긁어냈다.안시연이 고개를 내밀어 보았다.“정말 있어요!”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와 시선을 마주쳤다. 눈동자는 기쁨으로 가득 찼다.연정훈은 아직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밝은 곳에 가서 보니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만 원에 샀는데 천 원 당첨해 놓고 뭐가 그렇게 기쁜 건지.’하지만 안시연은 너무 기뻐했다.“지금 바로 환전할까요?”안시연은 처음에 환전하려고 했지만 그러면 복권을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연정훈은 이상하게 여겼다.“천 원이 너무 적어서 그래?”안시연은 활짝 웃어 보이더니 복권을 가져오면서 말했다.“제가 잘 소장할 거예요.”그 복권은 처음으로 밤 산책을 나왔을 때 연정훈이 사준 것이기 때문이었다.연정훈은 그녀의 생각을 알 수 없었다.‘복권 한 장일 뿐인데 무슨 소장할 가치가 있다고...’하지만 안이연이 원한다고 했으니 상관없었다.“그럼 그렇게 해.”“네!”안시연은 복권을 보물처럼 잘 챙겼다.돌아가는 길에, 연정훈은 그녀보다 한 발짝 늦게 걸었다.그녀의 경쾌한 발걸음 그리고 이따금 표정에서 드러나는 사소한 감정들을 보며 그녀가 왜 기뻐하는지 어렴
“민아야, 정훈이 만났어?”양민아는 도시락통을 쓰다듬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일이 있어서 강남 시티에 없는 것 같아요.”“없다고?”김세연은 뭔가 의심이 들었다. 그녀는 미리 강남 시티에 있는 아주머니한테 전화를 걸어 연정훈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양민아를 보낸 것이기 때문이었다.그녀는 갑자기 아주머니가 전화를 받을 때 우물쭈물하던 것이 생각났다.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이었다.“아이고, 미안해서 어떡해? 내 실수로 헛걸음을 시켰네.”“괜찮아요. 저도 마침 지나가는 길이었고요. 게다가 어머님께서 직접 만든 음식을 먹었는데 이 정도는 해야죠.”김세연은 웃으면서 속으로 더욱 그녀가 만족스럽다고 생각했다.비록 양지원의 친딸은 아니었지만 양민아는 유일한 아가씨였다. 이렇게 귀한 신분을 가졌음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친절하게 다하다니, 임유정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좋은 사람이었다.“시간도 늦었으니 밖에서 머물지 말고 일찍 쉬어.”“네, 그럼 어머님 안녕히 계세요.”김세연이 전화를 끊었다.차 안에서, 미소가 사라진 양민아는 연정훈과 안시연이 떠나는 방향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타일렀다.저런 여자와 같게 굴지 말라고, 그럴 가치도 없다고 말이다.그녀는 양씨 가문의 유일한 아가씨였다. 양씨 가문이 존재하는 한, 연정훈의 아내로 될 사람은 그녀뿐이었다.이렇게 생각한 그녀는 조용히 차를 몰고 떠났다.연씨 가문 본가.김세연은 전화를 끊고 남편에게 불평했다.“당신 아들이 점점 더 한심해지고 있어. 연씨 가문의 자식이 아니랄까봐... 겉으로 보면 멀쩡해 보여도 사실 누구보다 심하게 놀지.”연재혁은 한참 동안 말문이 막혔다.‘아들을 욕하면 아들을 욕할 것이지, 왜 나까지 욕 해.’그는 소파에 기대어 서류를 보면서 머리도 들지 않았다.“아직 젊으니 좀 노는 것도 괜찮지, 뭐. 그렇다고 품위에 영향이 가진 않을 거야.”김세연이 베개로 그를 때렸다.“언젠가 밖에서 데려온 년을 집에 들이면 얼마나 심한 문제인지 알게
안시연은 구혜은의 초청을 받아 초연 전시회 기획에 참가하기로 했다.그녀는 전문적인 면에서는 구혜은보다 훨씬 못했지만 주요 목적은 기획과 마케팅을 배우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일 틈만 나면 전시관으로 달려갔고 문제가 생기면 연정훈을 찾아 조언을 구했다.책 향기가 가득한 서재에서 그녀는 계속해서 질문을 했고 연정훈은 빈틈없이 대답해 주었다. 그 책상에 그녀의 글씨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뿐만 아니라 수많은 밤을 보내면서 남겼던 그녀와 연정훈의 흔적도 새겨져 있었다.“침대 위에서든 밖에서든 연 교수님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걸 잘하시나 봐요.”정이슬이 그녀를 조롱했다.전시관의 텅 빈 곳에서 휴대전화로 정이슬과 문자를 주고받던 안시연은 정이슬의 말에 얼굴을 붉혔다.“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정이슬은 계속해서 그녀를 놀리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그녀는 또 오전에 있었던 일을 끄집어냈다.“초연 예술관은 아직 개관도 안 했는데 너랑 연정훈 씨 이야기는 이미 인터넷에 퍼졌어.”이게 바로 안시연으로 하여금 가장 골치 아프게 하는 것이었다.한 달 동안 그녀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따라 전시회를 기획해 왔다. 아무 일도 없는 평범한 일상이었다.그런데 엊그제부터 어디선가 들리는 바에 의하면 연정훈이 30억에 가까운 돈을 들인 초연 예술관은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 만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던 것이다.특히 그 ‘N’자 로고는 그 여자의 이름에 들어가는 알파벳이라고 할 정도로 다들 수많은 해석을 하고 있었다.“네 이름에 마지막 알파벳이잖아. 예술관 이름에 연 자가 들어간 것도 그렇고.”정이슬이 계속해서 말했다.“초연에 들어가는 알파벳이겠지.”“어쨌든 달달해서 좋아. 나는 네 이름에 있는 알파벳이라고 생각할 거야. 초연에 있는 알파벳이고 뭐고 난 몰라!”안시연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사실 그녀도 좀 기대를 했다.엊그제 연정훈 사무실에 가서 밥을 먹었을 때도 비서님께서 은근히 그녀를 놀렸던 것이었다. 이 알파벳이 그녀의 이름과 꼭 맞다고 말이다.연정훈이 의도한
여자들에게는 정말 타고난 촉이 있는 것 같았다.양민아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안시연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연정훈을 좋아한다는 것을 말이다.비서의 말을 들은 그녀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기다릴게요.”“네.”비서가 막 가려고 하는데 안시연이 갑자기 그녀를 불러세웠다.“무슨 일 이시죠?”“초연 예술원 아세요?”안시연이 물었다.“좀 알긴 합니다만...”“그럼 동쪽 A 전시관에 누가 전시를 할 예정인지는 아시나요?”비서는 알고 있었다.“대표님께서 양 아가씨에게 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양 아가씨는 그곳에서 마지막 천문 전시회를 열 거라고 들었고요.”안시연은 잠자코 있다가 곧 빙긋 웃었다.“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비서는 물러갔다.창가에 앉아 있는 안시연은 마음이 복잡했다.구혜은은 고의로 그녀에게 이런 시련을 안겨준 것이 분명했다. 전시관을 위해서 그녀를 찾은 것뿐이 아니라 양민아의 천문 전시회와 비슷한 간에 개막을 하기로 결정했다. 두 집안의 대결인 셈이었다. 장 교수님이 업계에서 영향력이 좀 있다고 해도 양씨 가문의 세력과는 비교가 안 될 것이었다.그러면 손님 수는 양민아보다 눈에 띄게 적을 것이었고 그렇게 되면 장 교수님을 뵐 면목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차라리 안시연을 끌어들여 연정훈을 이용해 양민아와 겨뤄 보려는 작전이었다.이런 속임수를 그녀는 처음에 알아채지 못했다.하지만 연정훈은?그도 눈치채지 못한 걸까?그런 스캔들이 있는데 개의치 않는 건가?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참에 사무실 문이 열렸다.그녀는 사무실에서 나오는 연정훈과 시선을 마주쳤다.“끝났어요?”그녀가 일어서며 물었다.연정훈은 겉옷을 벗으며 말했다.“아직. 저녁 약속이 있어서 말이야.”안시연은 그의 겉옷을 건네받으며 말했다.“제가 골라줘요, 겉옷?”“응.”연정훈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옆으로 지나갔다.“좀 점잖은 색으로 골라줘.”안시연은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안방으로 들어갔다.며칠 동안 그의 이런 일들은 항상 그녀가 하고
저녁 식사를 마치고 승주와 아이들은 숙제하러 방으로 돌아갔다.반우희는 부승원과 함께 제 방으로 돌아갔고 부승원에게 자리를 찾아준 뒤 열심히 문제지를 풀었다.부승원은 그제야 반우희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았다.자신이 반우희에게 잘해주는 날이면 반우희는 보답을 하기 위해 문제지를 푸는 것이었다.‘정말 바보 같긴.’“2년 안으로 사법고시 넘을 자신 있어?”반우희는 씩씩하게 대답했다.“자신 있습니다!”“사법고시 넘으면 뭘 할 건데?”“음... 사건 받아야죠?”“...”“꿈도 야무져. 그렇게 쉽게 사건 의뢰가 들어올 것 같아?”반우희는 또 바보같이 웃었다.그때, 부승원은 부모님이 했던 말이 떠올라 반우희를 빤히 바라보았다.“계속 공부하고 싶은 생각 있어?”“지금 하고 있잖아요?”“그거 말고. 좋은 대학 다니고 싶은 그런 거 말이야.”“에이. 학력도 안 좋은데 누가 절 받아주겠어요?”“그게 뭐가 중요해. 너만 좋다면 내가 다 해줄 수 있어.”“어느 대학인데요?”“세계 어디든.”반우희는 멈칫하더니 펜을 내려두고 부승원을 바라봤다. 왠지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날... 해외로 보내려는 거예요?”반우희는 아무것도 모르는 게 아니었다. 연애를 실컷 하고 해외로 보내, 반 헤어짐 상태로 끝나는 사람들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반우희를 보며 부승원은 설명하려고 했으나 말 대신 볼을 쭉 잡아당겼다.“해외 연수가 그렇게 쉬운 줄 알아? 지금 성적으로는 돈 가득 쏟아부어도 안 돼.”반우희는 잠시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미소를 되찾았다.“그쵸? 아무리 나한테 반했다고 해도 그렇게 뭐든지 해주면 안 되는 거죠.”부승원은 입꼬리를 올렸다.“해외 연수 가고 싶어?”부승원은 다시 떠보듯 물었고 반우희는 당황하지 않고 솔직하게 대답했다.“아니요.”“왜?”반우희는 대답 대신 노래를 불렀다.“동해 물과 백두산이...”“...”부승원은 두 눈을 질끈 감았고 또 반우희의 볼을 쭉 잡아당기며 말했다.
“내 얘기 하는 것 같은데 뭐라고 했어요?”반우희가 다가오자 희주는 빠르게 시선을 피했다.“비밀이에요.”반우희는 몰래 혀를 찼다.다른 한편, 배가 부른 승주는 애어른처럼 요즘 가정 상황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우리가 이렇게 배부르고 등 따신 나날을 보낼 수 있게 된 건 모두 한 사람 덕분이죠.”그러자 반우희가 바로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바로 누나... 의 남자 친구 덕분이에요!”“...”“야!”반우희는 승주는 슬쩍 노려봤으나 승주는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했다.그리고 몰래 맥주 맛을 보더니 쓴맛에 혀를 두르며 말했다.“매형, 솔직히 우리 셋이 발목 잡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그 말에 집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꼬맹이들은 모두 부승원에게 시선을 고정했다.털털한 반우희와는 달리 세 아이는 아닌 척해도 걱정이 많아 보였다.그래서 자신의 돈을 쓰는 게 불편하고 누나의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부승원은 가재를 입에 넣더니 승주와 짠을 하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내 실력으론 너희 셋이 아니라 백 명이라도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으니까.”“...”승주는 몰래 숨을 돌리며 부승원과 하이 파이브를 했다.식사 막바지에 다다르니 가재는 줄지 않고 오로지 대화만 오갔다.반우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동준에게 줄 아이스크림을 찾았다.희주도 손을 씻으러 자리를 비웠다.부승원은 승주가 아직도 저에게 할 얘기가 남아 있는 걸 발견했다.“누나한테 들어보니 매형 어머니가 오늘 누나 만났다면서요?”부승원은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켜며 말했다.“그래. 조금 긴장한 건지 딸꾹질했는데 그것도 너한테 말한 거야?”“별건 아니고, 너무 창피했다면서 누나가 용기를 달라고 했어요.”“어머니가 우희 괴롭힌 거 아니야. 우희가 지레 겁을 먹은 거지.”“누나는 언젠간 삼촌 어머니가 드라마처럼 수표 던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그 말에 부승원이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마주했다.“정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너희 누나는 어떻게 할 대책이었는데?”“대책이라
부승원은 승주의 초대를 받고 반우희의 집으로 향했다.집 안은 벌써 떠들썩했는데 승주와 반우희가 티격태격 다투고 있었다. 그 원인은 두 사람이 좋아하는 입맛이 달랐기 때문이었다.“마늘 향이 제일 맛있어!”“에이 마라가 찐이죠!”승주가 반우희를 타이르듯 말했다.“마늘 향 먹으면 양치해도 마늘 향이 남는데 남자 친구랑 뽀뽀할 수 있겠어요?”“...”반우희는 순식간에 목소리가 낮아졌다.그 틈을 타 승주가 마지막 승부사를 날렸다.“그러니까 내 말이 맞아요. 우리 마라 맛으로 해요!”“마늘 맛 조금만.”반우희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마늘 맛도 조금 해줘. 너희 누나 정말 먹는 거에 진심이라니까.”부승원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그 목소리에 승주와 반우희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반우희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왔어요?”승주는 그사이에 삶은 가재를 한입 먹으며 부승원을 불렀다.“삼촌, 여기로 와서 앉아요. 동준아, 우리 매형한테 술 따라드려!”“네.”반우희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승주의 귀를 쭉 잡아당겼다.“삼촌이었다가 매형이었다가 호칭 좀 통일하면 안 돼?”“나한테는 삼촌이지만 누나의 남자 친구일 때는 매형이니까 틀린 거 없잖아요!”승주는 아주 당당하게 대답했다.“어휴. 좀 조용히 해!”그러나 승주는 이런 일로 풀이 죽을 아이가 아니었고 바로 가재를 입안 가득 넣었다.부승원은 자연스레 주방으로 향했고 소매를 걷어붙였다.“남은 거 뭐 있어? 내가 할게.”그러자 반우희가 말했다.“오이무침할 줄 알아요?”“응.”“그럼 부탁할게요.”주방에는 거실의 에어컨 바람이 잘 들어오지 않아 온도가 아주 뜨거웠다.부승원은 언젠간 이 집의 가전제품을 다 새것으로 갈아주겠다고 몰래 다짐했다.손놀림이 빠른 부승원은 빠르게 오이무침을 완성했다.반우희는 가재를 입맛별로 나눠 상에 올렸고 작은 상이 부러질 듯한 한 상 차림이 완성되었다.부승원은 그전에도 여러 번 집을 오갔던 터라 이젠 익숙하게 밥상 앞에 앉았다.희주는 부승
날이 어두워지고 부승원은 본가로 향했다.부승희는 집에 없었고 부모님은 거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부승원을 발견한 채애정은 활짝 웃으며 손 씻고 함께 밥을 먹자고 했다.“아니에요. 일이 있어서 바로 나가봐야 해요.”“약속인 것이냐?”아버지 부형석의 질문에 부승원은 표정 변화 한번 없이 대답했다.“네.”중요한 약속이 있다고 하니 부모님은 부승원을 잡아 둘 수가 없었다. 대신 꿀물로 속을 채우게 했다.“네 어머니가 오늘 그 아이를 만나고 왔다고 들었어. 복스럽게 생겼다던데.”“네. 얼굴도 동글동글하고 예쁘던데 나이가 좀 어려요.”채애정의 말에도 부승원은 묵묵히 꿀물을 마시며 대꾸하지 않았다.한참 뒤 부혁석이 물었다.“그 아이랑은 어떻게 할 생각인 것이냐?”부승원은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무슨 말씀인지?”부형석은 고개를 돌려 제 아내를 바라봤고 채애정은 몰래 고개를 저었다.‘그런 말 마요. 우리 아들이 어떤 성격인지 몰라서 그래요?’부형석은 잠시 고민하다가 그래도 질문을 이어가기로 했다.“나와 네 어머니의 생각은 그 아이가 나이가 어리니 네 옆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는 해외 연수를 다녀와 몇 년 뒤에 결혼하는 게 좋을 것 같구나.”그러자 채애정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본인 생각이면서 왜 나까지 함께 묶고 그래요?’부형석은 말없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무게를 잡았다.부승원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고 침착하게 잔을 내려놓았다.이런 부승원의 모습에 채애정과 부형석은 절로 긴장이 되었다.도우미 아주머니는 내려놓은 잔만 챙겨서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도련님 부승원에게 쉽게 밉보여서는 안 되었다.부승원은 입가를 닦으며 고개를 들었다.그 시선에 두 사람은 절로 허리를 꼿꼿이 세워졌다.“몇 년간 해외 연수를 다녀왔다가 결혼하면 그래도 짝으로 걸맞으니 창피하지 않으실 거고, 내가 그동안 견디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을 소개해 주실 거잖아요. 그 아이는 돈과 명예를 가졌으니 더 이상 미안해할 필요도 없고요.”“그렇죠?
부승원의 사무실에서.소파에 앉은 반우희는 소파 등받이에 고개를 처박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부승원은 이런 반우희가 너무 웃겨 사무실 책상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평소에 그렇게 당당하더니 우리 어머니 만나고 왜 그렇게 겁을 먹었어?”반우희는 영혼이 빠진 얼굴로 말했다.“나도 모르겠어요...”부승원이 반우희를 불렀다.“그렇게 넋이 빠진 모습으로 있지 말고 여기로 와.”반우희는 한숨을 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부승원의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그리고 턱받침을 하고 눈을 깜빡거렸다.“어머님이 나 별로 마음에 안 들어 하셨으면 어떡해요?”부승원이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마음에 안 들면 뭐 어때?”반우희가 입을 삐죽이더니 평소대로 언성을 높여 말했다.“이게 다 변호사님을 위해서 그러는 거잖아요!”부승원은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정말? 네가 내 생각을 했다고?”반우희는 작게 콧방귀를 뀌더니 당당하게 말을 이었다.“어머님이 날 좋아하지 않으면 변호사님이 날 만나지 못할 테니까요.”“...”반우희는 부승원의 옆으로 조금 더 당겨 앉으며 말했다.“변호사님은 나이도 들고 나한테 이렇게 돈도 많이 쏟았는데 결혼까지 가지 못하면 변호사님만 억울하잖아요.”그리고 반우희는 팔을 살랑살랑 흔들어 보였다.“꽤 양심 발언이네? 내가 억울할 가봐 걱정도 하고?”반우희는 다시 턱을 괴고 한숨을 내쉬었다.“난 늘 그랬어요. 다른 사람한테 빚지고는 못 살아요.”“내가 제안 하나 할까?”부승원은 펜을 내리고 옆 방을 가리키며 말했다.“어머니 아마도 옆방에 계실 거야. 그러니까 마음 가라앉히고 다시 가서 인사드리는 게 어때?”그 말에 반우희는 바로 풀이 죽은 얼굴이 되었다.이에 부승원은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결국 너도 말뿐이네.”반우희는 한숨만 풀풀 내쉬었고 더 고민에 휩싸였다.‘정신 차려 반우희! 너 왜 이렇게 나약해졌어?’그리고 머리를 싸매며 말했다.“저녁에 집에 돌아가면 승주한테 조언을 받아야겠어요.”‘승주한테 조언을 받는
딸꾹!딸꾹!반우희는 부승원의 등 뒤로 몸을 숨기고도 딸꾹질을 멈추지 못했다.부승원은 몸을 돌려 반우희를 살폈다.“왜 그래?”‘그게 아니라.’반우희는 서둘러 부승원을 당겨 채애정의 시선을 가렸다.지금 딸꾹질 때문에 얼굴이 시뻘게졌을 게 뻔했고 못생기게 보일 수는 없었다.부승원은 자기 셔츠 끝자락을 잡은 반우희를 보며 빠르게 자리에 앉히고 물을 따라줬다. 그리고 채애정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어머니, 먼저 돌아가세요. 우린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그게...”채애정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래.’부승원이 반우희를 챙기느라 손이 부족하자 채애정은 대신 물을 따라 건넸다.“우희 씨, 괜찮아요?”“딸꾹... 네! 딸꾹... 괜... 찮습니다!”“...”부승원은 물을 건네받고 직접 반우희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정말 괜찮은 거 맞아? 병원 갈까?”반우희는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어머님만 가면 괜찮아질 거예요.’부승원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부승원이 옆에 있었기에 반우희는 서서히 진정되었고 드디어 딸꾹질을 멈출 수 있었다. 이에 채애정이 다가가 또 말을 걸었다.그런데!반우희는 더 긴장되어, 또 딸꾹, 하고 딸꾹질하고 말았다.“...”딸꾹!딸꾹!결국 다시 시작이 되었다.부승원은 반우희가 긴장이 되어 딸꾹질하는 것임을 알아차렸다.그래서 거의 자신의 품에 가두다시피 하며 채애정을 향해 손을 저었다.채애정은 더 이상 대화는 무리라는 생각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그럼 먼저 가볼게. 내가 뭐 겁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놀란 거야?”“오신다고 미리 말해주지도 않았으니 얼마나 놀랐겠어요.”“...”‘정말 연애 좀 한다고 이 엄마는 뒷전인 거니?’‘어휴. 그래도 드디어 연애한다니 다행이긴 해.’채애정은 가방을 챙겨 밖으로 걸었다.그때, 반우희가 빠르게 부승원의 셔츠를 잡아당겼다.부승원은 고개를 돌려 반우희가 핸드폰에 적은 문자를 확인하고 채애정을 다시 불렀다.채애정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부
“이름은 뭐예요?”“반우희입니다. 넉넉할 우와 기쁠 희입니다.”“그래요?”“그럼, 나이는?”“스물두 살입니다...”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반우희는 도시락을 손에 쥐었지만 한 입도 입에 넣을 수가 없었다. 마치 학창 시절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처럼 물어보는 질문에만 꼬박꼬박 대답했다.“괜찮아요. 편하게 먹어요.”채애정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반우희는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로 크게 한 입 떠먹었다.채애정은 다정한 말투로 또 질문을 이었다.“승원이가 없어도 혼자 사무실에 있었던 거예요?”반우희는 채애정이 아직 본인과 부승원의 사이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조금 머리를 굴려 이렇게 대답했다.“저는 평소에 사내 식당을 이용하고 자주 사무실에 오는 않는 편은 아닙니다.”채애정은 알면서도 모른 척해주며 반우희에게 반찬을 집어줬다.반우희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감사합니다.”“아니에요.”채애정은 동그란 얼굴의 반우희가 꽤 마음에 들었다. 평소에 부승희가 반우희에 대한 좋은 말을 많이 했기에 좋은 인상도 남아 있었다.그러나 반우희의 나이를 들은 채애정은 기분이 조금 착잡했다.제 아들이 이성에 눈을 뜨지 못해 걱정이었는데 부승희의 말 대로 그동안 할 건 다 하고 산 모양이었다.게다가 그 깔끔하던 아들이 사무실을 이렇게 어지럽히는 것도 용납하고 있다니, 꽤 놀라운 사실이었다.‘그래 스물둘이면 미성년자도 아니고 괜찮지, 뭐.’반우희는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구별이 되지 않았으나 채애정이 계속 반찬을 집어주는 덕에 멈출 수가 없었다. 게다가 채애정이 자신을 향해 미소를 짓는 모습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뭐지?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 거지? 수표 한 장 던져주면서 아들이랑 헤어지라는 전개는 아닌 것 같은데.’‘설마 내가 마음에 드는 건가?’‘음... 머리를 굴리자. 머리를!’그러나 그렇다 할 결론을 내리기 전에 위가 감당을 하지 못할 것 같았다.반우희는 끝내 참지 못하고 딸꾹질을 했다.
“내가 가서 밥 먹여줄까?”“좋죠.”“그래. 15분 뒤에 도착할 것 같아.”연정훈이 농담을 진심으로 받아치자 양시연은 다급하게 말렸다.“그러지 마요! 혼자 먹을 수 있어요.”“그럼 밥 먹을 때 영상 통화할까? 같이 먹고 싶어.”양시연이 입꼬리를 올렸다.“그건 좋아요.”한참 알콩달콩 얘기를 나누다가 회사에 거의 도착할 무렵, 양시연은 방금 주지혁과 만났던 사실을 입에 올렸다.“지혁 씨는 똑똑한 사람이니까 조이현을 말리지 못한다고 해도 간섭은 할 거예요. 앞으로도 조씨 가문의 도움이 필요할 테니 조이현이 가문을 망치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예요.”연정훈은 애초에 조씨 가문을 크게 염려하지는 않았다. 다만 양시연이 주지혁을 만나게 한 건 신중한 고민 끝에 결정한 것이었다.주지혁이 정말 똑똑한 사람이라면 바로 조이현을 처리할 것이다.하지만 주지혁이 그럴 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오늘 양시연이 주지혁을 만나는 건 되려 위험한 일일 수 있었다. 연재혁이 가장 중요한 시점에 있는데 더 이상 조씨 가문이 논란을 만들게 하지 막아야만 했다.만약 주지혁이 계속 다른 사람과 만남을 이어가고 굳이 논란을 피운다면 그건 결국 본인의 무덤을 파는 일이었다.연정훈은 양시연에게 이러한 얘기를 했었고 양시연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사람 시켜 주 대표 조사하라고 해. 똑같은 방법으로 되갚아 주는 건 좋은 데 우리가 위험해져서는 안 되잖아.”“나도 알아요.”대화가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 양시연도 회사에 도착했다.이어 점심을 주문하고 영상 통화를 시작했다.반우희는 요즘 들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점심시간이었다. 요즘엔 사내 식당도 아닌 양시연의 사무실로 직행했는데 양시연은 음식을 많이 주문하고 혼자 먹기엔 버거워 반우희와 함께 나눴었다.그런데 멀리서 보니 오늘엔 연정훈과 영상 통화를 하고 있었고 반우희는 도시락을 들고 양시연의 사무실로 향하려다가 부승원의 사무실로 발걸음을 돌렸다.오늘 부승원은 점심 약속이 있어 사무실을 비웠다.그래서 부승원의 큰
점심시간이 되자 양시연은 배가 고팠다. 하지만 주지혁 앞에서 게걸스레 먹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간단히 배만 채우며 바로 조이현이 신고한 일을 입에 올렸다.주지혁은 인상을 찌푸리며 바로 반박했다.“이 일은 정말 나도 몰랐어.”양시연은 지금 와서 잘잘못을 따질 생각은 없었다.“이현 씨가 이러는 건 정말 난동이고 민폐예요. 난 이현 씨에게 잘못한 거 하나 없고 잘못이라면 오히려 두 사람이 내게 저지른 거죠.”주지혁은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시연아, 내가 미안해.”“지난 일은 다시 꺼내고 싶지 않아요. 오늘 이렇게 찾아온 건 제발 본인 아내 간수를 잘하라고 말하러 왔어요. 다른 사람한테 민폐 끼치지 말아줘요.”양시연은 과거와 많이 달라진 것 같았다.주지혁은 고개를 숙여 양시연의 손끝을 바라봤다. 과거의 양시연은 일하는 데 불편하고 집안일하는데 거슬린다며 관리를 전혀 하지 않았었다.그리고 차라리 네일 하는 돈으로 간식이나 사는 게 이득이라 했다.돈을 차곡차곡 모아 집을 사고 차를 사는 게 더 현실적이라며, 힘들게 돈을 버는 주지혁을 마음 아파하며 선물한 팔찌도 마다했었다.돈 모아서 결혼하자고 말했던 과거 양시연을 떠올리며 주지혁은 고개를 숙여 쓴 차를 들이켰다.“돌아가서 잘 얘기해 볼게. 다시 이런 일 없을 거야.”“그러길 바랄게요.”양시연은 덤덤하게 말했다.“우린 이제 책임질 가족도, 사업도 있는 사람이에요. 조씨 가문은 경인에서 좋은 입지를 가졌고 지혁 씨도 승승장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각자 자신의 길을 찾아 행복하게 살자고요.”‘행복이라... 내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어?’‘미친 조이현은 평생 내게 들러붙으러 작정을 한 것 같은데.’주지혁은 더 올라가려면 피를 깎는 고통을 겪어야 했고 죽을힘을 다해야 조이현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이런 생각에 주지혁은 점점 마음이 무거워졌다.양시연이 본인을 찾아온 이유는 아마도 연정훈의 부담을 덜어주려 온 것 같았고, 진심으로 연정훈을 아끼는 모습을 보며 예전에는 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