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고 편애하고 편을 드는 표현이었다.연정훈이 늦은 모습을 본 안시연은 그가 밖에서 먹고 왔을 거로 추측했다.사랑하는 남자의 몇 마디만으로도 그녀는 곧 화가 풀렸다.연정훈은 손수 양초에 불을 붙였고 그 촛불은 곧 눈부시게 빛을 냈다. 안시연은 숨을 들이마셨고 저녁 내내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불빛에 의해 녹아내렸다.“소원을 빌어봐.”연정훈이 말했다.안시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두 손을 맞잡고 경건하게 눈을 감았다.외할머니께서 건강하시기를 바랐다.그리고 매일매일 맞은 편의 남자를 만났으면 했다.안시연은 마음속으로 묵상하고 난 뒤 눈을 떴고 이때 맞은편에 앉아있던 사람이 이미 자신의 뒤로 다가간 것을 발견했다.안시연은 무의식적으로 몸을 돌리려고 했지만 연정훈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눌렀다.뒤이어 그녀의 눈앞에는 빨갛고 고풍스러운 나무 상자가 나타났다.“생일 축하해.”연정훈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그녀의 머리 위로 들려왔다.두근거리는 심장을 억누르면서 안시연은 입을 오므리며 연정훈을 올려다보았다.“이건 뭐에요?”“열어봐.”안시연은 알았다고 대답하며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어보았다.머리핀이었다.부드러운 옥으로 만들어진 머리핀은 물결처럼 맑고 아름다웠다.안시연은 옥에 대해 잘 모르지만 옥이 매우 귀중한 물건인 것만은 알고 있었다.안시연은 머리핀을 들어 자세히 보았고 그 물건에‘시’자가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진심으로 그 선물을 좋아하고 있었던 안시연은 그 머리핀을 손에 들고 몸을 돌려 뒤에 있는 남자를 쳐다보았다.두 사람은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를 오랫동안 쳐다보았다.그녀의 붉어진 눈동자에서는 눈앞의 남자에 대한 깊은 사랑을 억누르려고 애쓰고 있었다.연정훈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안시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마음에 들어?”안시연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밤, 일이 너무 많았어.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그는 손을 뻗어 천천히 그녀의 머리를 올리려고 했다.연정훈이 자신의 머리를 묶으려 하는
“교수님께서 말한 어르신이 민아 씨 부모님을 말씀하신 건가요?”“그분 어머니이셔.”연정훈도 안시연이 묻는 물음마다 꼬박꼬박 대답하며 자신의 성의를 보였다.안시연은 머리를 쳐들어 연정훈의 뽀뽀를 미친 듯이 받아 머리가 어지러웠다. 남은 건 단 밤새 기다린 억울함뿐이었다.안시연이 여전히 입을 열려고 하지 않자 연정훈은 그녀의 입술을 가볍게 깨물었다.“읍!”안시연의 미세한 움직임을 느낀 연정훈은 그녀의 입가에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질투하는 거야?”안시연은 눈을 뜨더니 맑은 눈동자로 물었다.“여자가 질투하면 매력 없죠?”연정훈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연정훈은 그녀를 자신의 다리 위로 올려놓았고 허리를 껴안으며 마음껏 키스했다.“어떤 여자가 질투하면 더 귀여운걸.”연정훈은 안시연의 손을 자신의 허리 뒤로 옮겨놓고 자신의 큰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힘껏 끌어안아 그녀가 가슴을 펴도록 했다.안시연은 입술을 깨물며 연정훈의 입술이 점점 아래로 흘러내려 가는 것을 느꼈고 마침내 뜨거운 기운이 그녀의 쇄골 사이로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결국 머리를 쳐들었다.“교수님...”그녀의 고혹적인 목소리는 아름다운 음악처럼 들려왔다.가게 안은 환하게 불빛들로 반짝였고 때때로 웨이터들이 오가기도 했다.다정하게 키스한 뒤 연정훈의 손바닥은 안시연 허리춤에 닿으며 내려갔고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했다.안시연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느낌이 와닿았다.연정훈이 당황하지 않고 동작을 멈추자 안시연은 용기를 내어 손을 뻗었고 그의 안경을 벗겨주었다.안경을 벗은 연정훈의 차가운 눈동자에는 여전히 안시연을 먹어버릴 듯한 욕망이 담겨 있었다.그녀는 아랫입술을 핥더니 연정훈의 이마 위에 맞댔다.“교수님을 많이 기다렸어요.”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는 안시연의 목소리에는 서러움이 가득 차 있었다.남자는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어떻게 보상해 줄까?”안시연이 그윽한 눈빛으로 연정훈을 바라보았다.“어떤 요구든 다 들어줄 건가요?”연정훈은 그녀의 마음을 꿰뚫어라도
“불 좀 끌까요?”안시연은 갑자기 몸을 배배 꼬았다.연정훈도 충분한 인내심으로 동작을 멈추고는 그녀를 달래주었다.“왜 그래?”안시연은 입술을 깨물며 침대 옆 베드 라이트를 바라보았다.“가장 밝은 조명은 끄고 작은 조명 하나만 켤까요?”연정훈은 안시연이 부끄러운 줄로만 알고 고개를 숙여 뽀뽀해주었다.“알았어.”가장 큰 조명은 꺼지고 침대 옆 헤드라이트만 미세하게 빛났다.하얀 치마가 바닥에 떨어졌고 안시연의 얼굴은 화끈거리며 팔로 자신을 꼭 껴안았다. 연정훈은 그녀가 입은 속옷을 드디어 보게 되었고 그의 머리 위로 안시연이 거칠게 숨을 쉬고 있었다.안시연은 얼굴이 붉어지다 못해 피가 뿜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그녀는 담요를 끌어당겨 자기 몸을 감싸려다가 연정훈에 의해 제지당했다.안시연의 몸은 연정훈의 품으로 끌려 들어갔고 그녀는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그를 쳐다보지도 못했다.“날 위해 일부러 입은 거야?”연정훈이 물었다.“네...”안시연의 말이 떨어지자 연정훈은 더 흥분했다.분위기는 바로 뜨거워졌다.안시연은 손등으로 눈 위를 가렸지만 연정훈은 그녀의 손을 바로 잡아당겼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고 안시연의 촉촉한 눈동자에는 연정훈의 얼굴로 가득하였다.안시연은 부끄러워서 얼굴을 돌려버렸다.안시연의 생일에 선물을 받은 사람은 오히려 연정훈인듯했다.룸 천장은 별 그림들로 꾸며졌고 연정훈은 그 별들을 쳐다보고 있는 안시연의 귓가에 속삭였다.“생일 축하해.”안시연은 이미 흐리멍덩해져 연정훈의 물음에 아무렇게나 대답했다.“생일은 이미 지났거든요.”남자는 가볍게 웃었다.“이제 시작인걸.”짜릿하고 아름다운 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안시연은 시간이 얼마나 흐르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다만 몸이 흔들리는 느낌만 받았을 뿐, 그날 밤 차 안에서 잊혀진 줄로만 알았던 그 기억이 더 과분한 방식으로 재현되고 말았다.연정훈은 침대에서 그녀와 두 번이나 잠자리를 가졌다.안시연이 부끄러웠지만 연정훈의 달콤한 말에 결국 넘어가고 말았다.연정
연정훈 입안의 사탕 절반은 안시연이 먹어치웠다.지금은 이미 한밤중이라 연정훈을 더 이상 건드리면 또 뽀뽀 세례를 당할까 봐 안시연은 그의 목을 감싸 안으며 화제를 찾아 이야기를 나누었다.“이 펜션이 정말 크더군요. 제가 들어올 때 길을 잃을 뻔했다니깐요.”“나중에 한가할 때 구경시켜 줄게.”안시연은 고개를 끄덕였고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여기 정말 넓은걸요. 별구경 하기 딱이네요.”연정훈은 안시연을 내려다보며 물었다.“별이 그렇게 좋아?”안시연은 부끄러운 듯 웃음만 지었다.안시연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사실 너무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누군가에 의해 별나라에 빠져들게 되었어요.”빠져들게 되었다는 말이 연정훈은 꽤 재미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다.연정훈은 흥미를 느끼며 물었다.“누구지?”안시연은 몸을 약간 일으켜 세우며 대답했다.“인터넷으로 만난 친구요.”연정훈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지금 인터넷으로 연애하는 거야?”안시연은 멈칫했다. 그녀도 그 상황이 연애인지는 잘 모르지만 상대방이 남자인 것만은 확신했다. 그동안 안시연은 월요일과 수요일마다 인터넷으로 상대방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었다.“아니요. 상대방은 저와 천문학에 관한 얘기만 나누고 싶어 하는걸요.”안시연이 대답했다.연정훈이 빙그레 웃었다.“원망하는 말투로 들리는데.”안시연은 그를 한 번 힐끗 보았다.연정훈의 얼굴에는 재미있어하는 표정만 있을 뿐 질투의 기색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안시연은 입을 오므리며 마음속 한구석에서 섭섭한 느낌을 받았다.과거의 일일 뿐인데 연정훈은 한마디 더 물어봤다.“그 뒤로 어떻게 됐어?”안시연은 연정훈의 가슴에 얼굴을 붙이며 흥미 잃은 표정으로 대답했다.“그 뒤로 갑자기 사라졌어요. 저를 무시한 채 저를 삭제했으니까요.”“무례를 범한 건 아니고?”안시연은 고개를 쳐들며 해명했다.“아니에요! 그분은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어요. 매번 대화가 끝나면 저에게 문제를 남겨주셨어요. 인터넷
“정훈 씨, 그만...”안시연은 무언가를 위해 사정할 때 연정훈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남자는 안시연의 어깨를 누르며 거역할 수 없게 만들었고 그녀의 귓가로 다가가 속삭였다.안시연은 어쩔 수 없었다.그녀의 몸은 연정훈의 손아귀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려웠다.연정훈은 천천히 생각하다가 문제들을 묻기 시작했다.“태양계에서 가장 온도가 높은 행성은 어디지?”“은하계에서 어느 행성이 가장 클까?”“태양의 부피는 지구의 몇 배나 된다고 생각해?”마지막 물음은 안시연은 기억나지도 않았다.연정훈이 그녀의 마지막 방어선을 돌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안시연은 답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가볍게 발버둥 치다가 결국 그에게 허리를 눌렸다.그리고...“정훈 씨...”어찌할 바가 없었다.연정훈의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귓가로 들려왔다. 그녀는 저항할 힘도 없었다. 다만 연정훈이 너무 심하게 운동하지 않았으면 했다. 아니면 내일 아침에 정말 일어나지 못할지도 몰랐다.연정훈은 안시연의 얼굴을 돌려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답을 모른다고?”말하는 동안에도 그는 동작을 멈추지 않았다.안시연은 울듯 말듯 한 소리로 대답했다.“잊어버렸어요.”“130만 배거든.”“알겠어요. 음...”“선생님이 가르쳐 주었으니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안시연은 입을 꽉 깨물었다.그녀를 괴롭히는 것도 모자라 고마워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안시연은 단지 2초만 망설였을 뿐이지만 연정훈은 동작에 더 힘을 주었다.안시연은 참다못해 이내 투항했다.“고마워요. 교수님, 고마워요.”연정훈은 가볍게 웃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고혹적이고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안시연의 온몸이 뜨거워 났다.앞서 두 번의 운동에서 그녀는 자신이 녹아버릴 것 같았는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녹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그녀는 가볍게 흐느꼈다.장본인은 뒤에서 그녀에게 키스하려고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깨무는 입술을 누르며 달랬다.“착하지? 물지 말고 편하게 있어.”안시연은 머리마저 간간이 저려났고
김세연은 실언을 자각하고 있었는지 바로 웃으며 양지원을 가볍게 밀어냈다.“뭘 긴장하고 그래요. 친오빠도 아닌데.”양지원은 그제야 자신의 과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을 의식하며 눈살을 찌푸렸다.김세연은 양지원을 힐끗 쳐다보더니 또 말을 이었다.“이번에도 또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거 맞죠?”양석진에 관한 말이 나오자 양지원은 조심스럽게 말했다.“저도 잘 몰라요.”김세연이 입을 삐쭉거렸다.양석진이 십여 년 동안 경주를 장악해 왔는바 그가 이번에 이 바닥에 진입하여 위로 더 올라간다면 분명 수천억에 가까운 재산을 가진 재벌가로 될 것이다.이것이 바로 김세연이 양민아를 맘에 들어 했던 이유였다. 양석진은 반평생이 지나도록 홀로 살았기에 아들딸이 없었다.분위기가 싸늘해지자 김세연은 화제를 돌렸다.“참, 생김새로 말하자면 소현정 그 여우도 당시 지원 씨 닮은 얼굴로 성호 씨와 어울렸던 것 아니에요? 그 여우는 아직도 성호 씨 곁에서 맴도는 건가요?”남편과 남편 내연녀 얘기가 나오자 양지원은 헛웃음을 지었다.“사이가 엄청 좋은걸요. 꿀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요!”김세연이 쯧쯧 하며 말을 이었다.“지원 씨도 성격이 너무 좋군요. 몇 년 동안이나 참다니!”“혁수와 재산 때문이 아니라면 진작 제 손으로 처리했을 겁니다!”“듣는 바에 의하면 소현정과 죽은 남편 사이에 아이가 한 명 있다고 하더군요.”김세연이 말했다.양지원이 담담하게 대답했다.“딸이에요. 양혁수 또래인데 태어나자마자 다른 집안으로 보내졌대요.”김세연이 경각성을 높였다.“정말로 그 여우 남편의 유복자 맞아요? 만에 하나...”양지원이 콧방귀를 뀌었다.“요 몇 년 동안 성호 씨가 저와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켰어요. 아이가 만약 성호 씨 혈육이라면 그 여우를 분명 보내지 못할 테니까요.”김세연도 그 생각에 동의했다.김세연은 몇 마디 더 하고 싶었지만 양지원은 피곤한 표정으로 이불을 끌어당겨 누워버렸다.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누워서 몇 마디 더 얘기했다.“글쎄요. 우리
여덟 시.안시연이 머리를 말리고 나올 때 연정훈은 이미 옷을 다 차려입고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콧등에 금테 안경을 건 모습이 조금 전 침대 위 모습과는 달리 매우 고급스럽고 우아해 보였다.연정훈은 냉정하고 침착한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아침은 어디서 먹고 싶어?”안시연이 의아해하면서 물었다.“장소를 옮길 수 있어요?”연정훈의 눈빛은 부드러워졌다.“홀에 가서 먹어도 돼. 그곳은 지대가 높아 경지도 좋거든.”안시연이 잠시 생각하더니 그를 바라보았다.“다른 사람이 우리를 봐도 괜찮을까요?”연정훈은 패드를 들고 그 위로 몇 번 손가락을 휘둘렀다.“내가 다른 집안 사모님을 데려온 것도 아니고 시연이를 데리고 다니는 건데 뭐가 안 괜찮다는 거지?”안시연이는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그냥 물어본 거예요.”그녀는 돌아서서 방 안으로 들어가 허리를 굽혀 이불을 개었다.“웨이터가 치울 거야.”연정훈이 말했다.“알고 있어요.”안시연은 대답하면서 여전히 침대 시트를 바꿨다. 그리고 어제 깔았던 그 시트를 안고 밖으로 나가서 버렸다.돌아온 안시연이 연정훈 곁을 지났고 연정훈은 진지하게 차를 마시다가 문득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안시연이 입술을 오므리다가 멈칫 놀라더니 바로 연정훈에 의해 그의 다리 위로 끌려갔다.안시연은 부끄러워 했고 연정훈은 일부러 그런 그녀를 조롱하고 있었다.“어디 가서 먹을래?”“교수님 생각대로요...”“내 생각대로?”연정훈은 눈살을 치켜들었다.“내 생각대로 하면 또 이것도 맘에 안 드네, 저것도 맘에 안 드네 할거면서.”안시연은 멈칫 놀랐다.그리고 그제야 반응했다.어젯밤, 연정훈이 그녀에게 그런 것들을 하려고 했지만 안시연은 여전히 몸을 비비 꼬며 싫다고 했었다.연시아는 얼굴이 빨개져서 재빨리 손을 뻗어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연정훈은 바로 연시아의 손을 잡아당기며 그 손가락들을 감상했다.어젯밤 침대에서는 불이 꺼져서 그나마 괜찮았지만 지금은 아침 햇살이 비쳐 그와 이렇게 친밀한
조이현은 지난번 연정훈이 주지혁을 크게 혼내준 일을 알고 있었고 그 일로 인해 그녀와 주지혁의 혼담이 깨질 뻔했었는데, 다행히 그녀가 임신 중이어서 그녀의 아버지가 더 이상 뭐라고 하지 않으셨다.조이현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건넨 것은 주지혁에 대한 연정훈의 태도를 시험해 보려는 것이었다.그래서 연정훈이 먼저 묻자, 그녀는 속으로 은근히 기뻤다.“그래요, 저의 아버지께서 일부러 시련을 시킨 것이죠.”연정훈은 의자에 기대어 고개를 약간 끄덕이며 말했다.“주 대표님은 안목이 독특하셔서 앞날이 기대되네요.”그가 무슨 의도로 일부러 주지혁의 안목을 칭찬했는지 주지혁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는 지금 남보다 한 수 아래여서, 좋아하는 사람이 연정훈의 손아귀에 있는 것을 거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그는 우울하고 답답한 마음을 억누르고 이후에 꼭 이겨서 빼앗아 오겠다고 맹세했다.“대표님이 기대하는 앞날은 보장 못 하겠으나 그래도 대표님께서 한 번 기회를 주시기를 바랍니다.”“주 대표님은 너무 겸손하시네요.”연정훈은 짧게 한마디 내뱉고 머리를 돌려 안시연의 뺨 옆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그녀가 두 모금밖에 마시지 않은 대추차를 보며 부드럽게 타일렀다.“조금 더 마셔.”안시연은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주위의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둘만의 세상에 푹 빠진 그들의 모습을 보며 조이현은 더 이상 머물 생각이 없었고, 약혼 신랑도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여 그녀는 몇 마디 하고는 즉시 사람을 끌고 나갔다.그들이 가자마자 안시연은 연정훈을 한 눈 쳐다보았다.연정훈은 그 눈길을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마주 보고 있었다.“교수님, 일부러 그러셨어요?”“뭘?”연정훈은 그녀의 말뜻을 순순히 이어주지 않았다.그러자 안시연은 고개를 숙여 그릇에 담긴 대추 몇 알을 숟가락으로 모두 골라내어 재빨리 남자의 입술에 갖다 댔다.연정훈이 잠시 멍때릴 시간 안시연은 이미 빠르게 숟가락을 밀어 넣었고, 눈 깜빡할 사이에 또 숟가락을 그의
까드득.반우희는 쿠키를 입안 가득 넣으며 창가에서 아래층을 살피고 있었다.그런데 오가는 차 한 대 없자 반우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오늘에는 운 좋은 줄 알아. 부승원!’그리고 발을 쿵쿵 구르며 테이블에 모아둔 간식 쓰레기를 정리했다.그런데 그때, 도어락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뭐야!’반우희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방금까지 기세등등한 모습은 사라진 채로 황급히 간식 쓰레기를 감췄다.그리고 문이 벌컥 열렸다.반우희는 입안 가득 쿠키를 문 채로 빠르게 문 앞으로 달려가 온몸으로 간식을 가렸다.부승원은 집 안에 반우희가 있을 거라고 먼저 예상하고 있었기에 첫 만남에 어떤 말을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그런데 입안 가득 우물거리는 반우희를 보며 걱정하던 마음이 눈 녹듯 녹아내렸다.‘다행이야. 간식을 먹고 있는 거면 그렇게 화가 난 게 아닐지도 몰라.’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고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이어 등 뒤로 또 다른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선배님.”반우희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그 목소리의 주인을 살폈고 부승원은 할 말을 잃었다.그리고 두 눈을 감은 채로 등 돌려 루나에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아래층에서 기다리라고!”루나는 머리를 정리하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아래층은 춥잖아요.”“차 안에 히터 틀어져 있어.”“말도 마요. 시트 냄새 때문에 멀미 나요.”그리고 루나는 제 멋대로 집 안으로 들어오더니 반우희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 듯 말했다.“어머 어린 친구가 집에 있었네요?”루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반우희가 누구인지 떠올리는 시늉을 했다.“아, 맞다.”“우리 회사 우희 씨 맞죠?”반우희는 서서히 표정을 굳히고 루나를 바라봤다.‘그래서 뭐! 나 반우희인데 어쩔래!’부승원을 향해 고개를 돌린 루나가 또 이런 말을 했다.“회사에서 도우미도 찾아준 거예요?”부승원은 인상을 팍 찌푸렸다.“알바일 뿐이야.”“아, 도우미 알바?”“...”부승원은 반우희 머리 위로 검은색 구름이 떠 있는 게 보
‘나쁜 놈!’‘공공장소에서 스킨십이라니!’‘며칠 전엔 나랑 키스하고 오늘엔 다른 여자랑 스킨십을 해?’엘리베이터에 오른 반우희는 커피를 쥐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고 얼굴이 시뻘게지고 있었다.“난 두 사람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선남선녀인데 두 사람 능력도 좋잖아요.”‘어울리긴 개뿔!’반우희는 억울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싶었다.‘그게 뭐가 중요해? 부승원이 나한테 키스를 했지 저 사람한테 한 것도 아니잖아.’‘부승원 개자식. 날 유혹하고 키스할 때는 언제고, 다른 사람이랑 엮기다니.’‘에라이 퉤.’“우희 씨?”같이 있던 직원이 점점 굳어가는 반우희를 보며 깜짝 놀라 물었다.“왜 그래요?”“아무것도 아니에요.”반우희는 입을 삐죽이며 서러움을 감추려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괜찮아. 괜찮아.’‘어차피 내 것 아니었고 줘도 안 가져.’띵.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반우희는 불만을 담아 쿵쿵거리며 밖을 걸었다.다른 한편 아래층.부승원은 세게 힘을 주어 루나를 내쳤고 루나는 쓰레기통 옆으로 내팽개쳐졌다. 하지만 부승원은 마음이 다른 곳으로 팔려 루나는 안중에도 없었다.비서는 좌수석에 앉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고 마른기침하며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하려 했다.그때.핸드폰이 진동했고 비서는 반우희가 보내온 메시지를 받았다.[비서 언니, 저 그 알바 그만두지 않을래요! 오늘도 청소하러 갈게요!]비서는 눈을 반짝였다.[정말요?]반우희는 미소를 짓고 있는 이모티콘을 보내며 물었다.[그동안 알바비는 언제 주시는 거예요?]그 내용에 비서는 웃음이 나갔다.이런 상황에서도 돈만 걱정하는 모습이 딱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오늘 업무 끝나는 대로 보내 드릴게요!][좋아요!!!]연속 세 개의 느낌표는 반우희의 벅찬 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비서는 문자를 보내고 서둘러 고개를 돌려 부승원을 바라봤다. 그런데 부승원은 잔뜩 얼굴을 굳히고 있었고 루나는 덤덤하게 메이크업 수정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슬쩍 부승원을 떠보았다.“부 대표님,
‘쳇. 대시하면 하는 거지 뭐.’‘정말 연애하면 여자만 고생하는 거야. 흥.’‘하루 종일 잔소리만 하고 문제 틀렸다고 얼굴에 엑스나 그을 사람이라고!’‘다투면 무시하고 냉전이나 할거고 키스하고도 아닌 척 모르는 체할 거야.’반우희는 꾸역꾸역 파이를 입에 넣고 방금 들은 정보를 소화했다.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계속 기분이 더러웠다.그래서 아마도 간식을 너무 많이 먹어 속이 부대끼는 거라 여겼다.‘그래. 틀림없이 그런 거야.’반우희가 자기 암시를 하고 있을 때 사무실 안의 부승원은 루나를 향해 경고를 날리고 있었다.그리고 풍성한 꽃다발을 척 가리키며 말했다.“루나 씨, 이번 일은 교수님 얼굴을 봐서 한번 넘어가 주는 거야. 그런데 또 한 번 이렇게 멍청한 일을 한다면...”“절대 없을 겁니다!”루나는 맹세했다.“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그러자 부승원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이만 나가봐.”“넵!”루나는 배시시 웃으며 고분고분 방을 나섰다.그리고 루나가 밖으로 나서자 모든 사람들이 시선을 집중했다.루나는 더 활짝 웃으며 핸드폰을 꺼내 들고 연기를 시작했다.“네. 저녁 10시 창가 자리로 예약해 주세요.”그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벌써 두 사람이 데이트한다는 소문이 무성하게 퍼졌다.그리고 두 시간도 되지 않아 회사 내에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사실 예전의 부승원이었다면 절대 부연의 설명을 붙이지 않고 시간이 지나 잠잠해질 때까지 내버려뒀을 것이다.하지만 오늘따라 짜증이 치솟고 자꾸 반우희가 마음에 걸렸다.반우희는 늘 가십거리에 예민했고 이런 일을 가장 먼저 전해 들었다.반우희와 키스를 한 사건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는데 회사 직원과 스캔들이 터진다면 반우희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눈에 뻔했다.‘아니지. 내가 왜 반우희 걱정을 해?’부승원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요즘 들어 반우희에게 너무 많은 관심을 쏟고 있었다.똑똑똑.노크 소리
다시 사무실.양시연은 고개를 저으며 떼를 썼다.“아 더는 못 먹겠어요.”사실 양시연은 몇 입 삼키지도 않고 못 먹겠다고 했고 연정훈은 인내심을 가지고 입가에 숟가락을 가져다 대고 있었다.“말 들어. 몇 입만 더 먹자.”‘그래...’양시연은 어쩔 수 없이 입을 벌려 음식을 삼켰다.그런데 연정훈이 또 계란찜을 떠서 건네자 양시연은 연정훈의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이제 정말 못 먹어요. 턱 끝까지 음식으로 찬 것 같아요.”연정훈은 더 이상 양시연을 재촉하지 않고 수저를 내려놓았다.그때 마침 지인이 찾아와 연정훈에게 인사를 걸었다.그 사람은 바로 루나, 부승원이 뽑아온 젊은 여성 직원이자 연정훈과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었다.“어머 선배님이 이렇게 다정하신 분이셨어요? 직접 사모님 식사 챙기러 오신 거예요?”연정훈은 하나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간단하게 인사를 주고받았다.루나는 연정훈에게 짧은 인사를 하려고 찾아왔으나 연정훈이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계속 승원이랑 연락하고 지냈던 거야?”“네. 전공 선배이잖아요.”연정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양시연을 바라보았다.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는 연정훈을 보며 양시연은 연정훈이 또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음을 눈치챘다.그리고 연정훈은 양시연의 손을 놓더니 사무실을 나서며 루나에게 말했다.“마침, 부탁할 일이 있는데 지금 좀 들어줄 수 있을까?”“선배님, 말씀만 하세요. 뭐든지 들어드릴게요.”연정훈은 내색하지 않고 커피를 들고 창가 자리로 걸어갔다.그리고 루나는 연정훈을 따라나섰다.양시연의 사무실은 과거 연정훈이 지냈던 공간이었고 너무 큰 공간 탓에 연정훈과 루나가 어떤 대화를 하고 있는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하지만 양시연은 굳이 두 사람을 따라가지 않았고 침착하게 기다렸다.그때, 연정훈의 말을 들은 루나는 갑자기 흥분에 겨워 눈을 반짝이더니 곧 마른기침하더니 금색 머릿결을 뒤로 넘기며 말했다.“이건 좀 너무하지 않을까요?”연정훈이 말했다.“네가 수고 좀 해줘. 정말 성사되면
“내가 돈만 많았어도 회사 때려 치고 더 좋은 사장 아래에서 일했을 거예요.”반우희가 양시연에게 했던 말을, 양시연은 바로 냉큼 부승원에게 고자질을 했다.부승원은 그 옆자리에 앉아 무언가를 끄적이다가 하던 일을 멈췄다.양시연은 예민하게 그 변화를 캐치했다.“부 대표님, 소감이 어떠신가요?”그리고 농담 섞인 목소리로 부승원을 취재하듯 물었다.부승원은 슬쩍 양시연을 바라보며 말했다.“본인이 할 일이나 완성하시죠.”양시연은 말문이 막혔다.‘대체 누가 진짜 회사 대표인 거야!’사실 부승원이야말로 정말 답답한 노릇이었다.이튿날 잠에서 깬 부승원은 완전히 정신을 차리고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다.반우희에게 키스했던 기억이 아주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리고 그날 아침, 부승원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출근하고 싶지 않은 기분에 휩싸였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써도 연차를 쓸 핑계가 떠오르지 않아 일단 해야 할 일이나 하자는 마음으로 회사를 나갔다.그러나 회사에서 반우희를 마주치는 순간 부승원은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반우희는 아예 부승원을 모르는 사람 취급하더니 시선 한번 돌리지 않고 몰래 빠져나갔다.예전에는 대표 전용 엘리베이터를 애용하던 반우희였지만 부승원이 안에 탄 걸 확인하고 얌전히 사람으로 꽉 찬 직원 전용 엘리베이터를 비집고 올랐다.이렇게 선을 긋는 반우희를 보며 무언가 변명이라도 하려던 결심은 눈 녹듯 사라져 갔다.결심이라고 말하는 것도 참 웃긴 상황이었다.어쩌다가 반우희와 대화하는 일에 결심까지 해야 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그리고 냉전이 시작된 것도 참 이상했다. 첫 만남에 대화를 망설이자 그 뒤의 만남은 더 어색해졌고 입을 열기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반우희가 자신을 피한 첫날엔 그냥 체면을 구겼다고만 생각했다.그러나 두 번, 세 번... 반우희가 자신을 피하는 차수가 많아질수록 점점 스트레스로 다가오고 부담이 생겼다. 부승원은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이 본인에게 있고 자신이 저지른 행동
부승원이 이상하다.이건 며칠 동안 모든 회사 직원이 내린 결론이었다.“그제부터 자꾸 사소한 실수를 하셨어.”“맞아. 자꾸 정신이 다른 곳에 팔린 것 같기도 하고.”“아까는 내가 눈앞에 서 있는데 날 다미 씨라고 부른 거 있지? 난 강아영인데.”양시연은 따뜻한 우유 한잔을 들고 회의실을 지나치다가 그 대화를 듣고 생각에 잠겼다.양시연도 요즘 들어 부승원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상한 사람은 또 한 명 있었는데...그게 바로 반우희였다!반우희는 늘 간식 시간이 되면 시간 맞춰 양시연의 주변을 맴돌며 간식을 먹는 낙으로 살았었다.그런데 이 며칠 동안 한 번도 나타나지 않더니 먼저 말을 걸어도 속이 불편해 간식을 끊었다며 거절했었다.‘참 이상하단 말이지!’반우희는 부승원 쪽에서 무슨 일인지 알아내 보려 했으나 결국 실패했다.그래서 부승원의 비서부터 손을 쓰기로 했다비서는 이상한 점을 가장 먼저 눈치챈 사람이었으나 털어놓은 사람이 없어 답답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양시연에게 낮은 소리로 속닥였다.“백 퍼센트 두 사람이 싸운 거예요. 그것도 엄청 크게 다툰 거죠.”“정말요?”양시연이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두 사람이 어떻게 다퉈요?”사실상 부승원이 늘 우세를 가지고 반우희에게 폭풍 잔소리를 하는 게 일상이었다.비서는 살짝 웃음을 터뜨리더니 양시연을 향해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러니까 흥미로운 거죠. 우리 변호사님 일상에 변화를 일으킨 일이면 아주 큰 일 아니겠어요?”그리고 비서는 주변을 살피며 한마디를 더 보탰다.“어쩌면 아주 민망한 일인지도 몰라요. 변호사님이 실수한 거라 그렇게 당당하지 못한 것 같기도 하고요.”그 말에 양시연은 점점 호기심이 깊어져 갔다.오후 시간, 사람이 드물 때를 틈타 양시연은 길 가던 반우희를 잡아 사무실로 끌었다.“어어! 이러시면 안 돼요!”반우희는 한시도 쉬지 않고 쫑알거리며 기회를 보아 도망가려 했으나 양시연이 임신한 걸 생각해 결국 얌전히 끌려갔다.“시연 언니 왜 그래요?”양시
부승원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지만 어떻게 입을 열지 난감했다.그래서 말없이 조용해진 반우희를 자꾸 힐끔거렸다.‘오늘 밤 일에 대해 반우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그러다가 자신의 이미지가 완전히 붕괴되었다고 생각되었고 인상을 찌푸린 채로 크게 심호흡했다.다른 한편 쪼그리고 앉아 있는 반우희는 사실... 부승원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감히 부승원을 바라볼 자신이 없는 거였다.‘젠장! 어떡해! 무슨 말이라도 좀 해봐. 너무 어색해 죽을 것 같아.’반우희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목도리를 다시 두르며 부승원을 애써 외면했다.저도 모르게 입술을 오므릴 때면 방금 부승원과 키스했던 게 떠올라 부승원이 오해라도 할까 빠르게 표정을 풀었다.‘엉엉... 어떡해.’반우희는 순결을 빼앗긴 것 같아 입술을 버리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예전부터 흔들리고 있었던 마음이 부승원의 한방에 아예 무너지고 있었다.회사 다니는 건 그렇다고 쳐도 집 청소 알바는 이제 그만둬야 할 것 같았다. 다시 마주치면 그냥 혀 깨물고 죽는 게 나을 것이다.‘내가 부자 되는 꼴을 못 봐요.’부승원은 반우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오로지 붕괴된 이미지를 되찾으려는 계획만 세우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 자신이 얼마나 반우희를 신경 쓰고 있는지를 미처 자각하지 못했다.하지만 부승원은 자신이 반우희의 눈에 변태로 보이는 건 피하고 싶었다.두 사람이 동상이몽을 하는 동안 밖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유리문을 통해 보니 부승원의 차가 도착한 게 보였다.그래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황급히 온몸으로 문을 밀며 밖으로 나가려 했다.문은 무거운 편이라 반우희는 힘에 부쳤지만, 부승원이 바로 그 뒤에 서서 손으로 힘을 실어주었고 문이 손쉽게 열렸다.반우희는 눈을 깜빡이다가 빠르게 틈을 타 밖으로 나섰다.그리고 부승원도 그 뒤를 따르려는데 반우희가 휙 몸을 돌리며 말했다.“변호사님은 나오지 마세요!”반우희는 뒷걸음질하며 말했다.“빨리 위층으로 올라가세요. 안
반우희는 어려운 고민 끝에 위층으로 올라가 핸드폰을 가져오기로 했다.‘가방만 챙기고 튀는 거야.’‘부승원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야!’‘어쨌든 부승원이 먼저 시작한 거니까 나한테 책임은 없어.’‘그래. 그게 맞아!’반우희는 주먹을 꽉 쥐고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그런데 엘리베이터는 바로 1층에 멈춰 섰다.‘응?’‘이런 우연이?’띵.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먼저 타 있던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반우희는 그 사람이 부승원 일 거라는 예상은 전혀 하지 못했고 귀신이라도 마주친 것처럼 바로 몸을 돌려 도망가려 했다.이번엔 부승원이 한발 빠르게 반우희 패딩 모자를 확 잡아 엘리베이터 안으로 끌었다.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문이 닫히고 반우희는 또다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두 사람은 다른 버튼을 누르지 않았고 엘리베이터는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부승원은 무의식적으로 반우희를 잡았으나 또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했다.반우희는 부승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아등바등했다.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없자 얌전히 그 자리를 지켰다.그때, 머리 위로 중저음 목소리가 들려오고 그 목소리에서 알코올 향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핸드폰도 없이 어떻게 집으로 가려고?”반우희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그걸 아는 사람이 물어?’“일단 이거부터 놓고 말해요...”반우희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부승원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모자에서 손을 놓았다. 자신이 모자를 움켜쥔 흔적이 남자 대신 정리도 해주었다.반우희는 모자가 불편하게 느껴져 손을 뻗어 정리하려 했다.그러다가 부승원의 손과 닿게 되었다.그 순간 전기가 통하듯 찌르르했고 황급히 손을 내렸다.“...”엘리베이터 안의 분위기는 너무 이상했고 부승원은 다시 술기운이 올라오는 것 같아 머리가 어지러웠다.그래서 모자를 정리해 주고 엘리베이터 문을 열었다.문이 열리자마자 반우희는 밖으로 쏙 나가버렸다.그 뒤의 남자도 따라 밖으로 나왔다.반
부승원은 술을 마셨지만 정신은 멀쩡했고 현재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충분히 자각하고 있었다. 다만 알코올의 힘을 빌려 내일은 잠시 잊기로 했다.부승원은 키스 한 번으로 부족했고 머릿속엔 오래전 그날 밤이 떠올랐다.그날엔 키스뿐만 아니라 더 많은 일을 했었다.반우희와의 키스는 달콤했고 점점 더 욕심이 났다. 그래서 반우희의 손목을 잡고 품 안으로 더 넣었다.그러다가 반우희의 숨소리가 가빠지자 부승원은 다정하게 잠시 숨을 고를 시간을 주었다. 그리고 또 참지 못하고 얼굴을 맞대다가 반우희의 귓불에 키스했다.반우희는 크게 숨을 들이쉬며 먼 곳의 크리스탈 조명을 바라보다가 점점 이성이 돌아오는 걸 느꼈다.그래서 부승원이 방심한 사이 손을 뻗어 단숨에 부승원을 밀어냈다.아무런 예상도 하지 못했던 부승원은 자칫하다가 소파에서 떨어질 뻔했다.그러나 부승원은 다행히 자세를 바로잡아 떨어지는 불상사를 피했고 반우희의 얼굴을 마주하기도 전에 다시 소파 등받이로 밀려났다.등 뒤로 푹신한 소파 쿠션이 느껴졌고 안 그래도 어지럽던 머릿속이 확 밀려 뒤죽박죽이 되어갔다.반우희는 냉큼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잠시 시선을 마주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그러나 고민하다가 빠르게 몸을 돌려 도망을 갔다.부승원은 소파에 멍하니 앉은 채로 머리를 재부팅했다.그때, 반우희는 빠르게 집 밖으로 나갔고 한시도 지체하지 않은 채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이어 1층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 안의 자신을 확인하며 이마의 온도를 체크했다. 사실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지금 자신의 얼굴이 얼마나 빨갛게 되었을지는 예상이 되었다.반우희는 자기 입술을 매만지며 아직 남은 온기를 느꼈다.그러자 얼굴이 점점 더 뜨거워지고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띵.아래층에 도착하고 반우희는 멍하니 밖을 걸었다. 그리고 오피스텔 밖으로 나서는 찰나 찬 바람이 불어오자 지하철을 타려면 핸드폰이 필요하다는 게 떠올랐다!‘핸드폰을 어디에 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