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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서유가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임태진은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그가 그녀의 잠옷을 단숨에 벗겨버리고 더럽고 차가운 손으로 그녀의 등을 어루만질 때, 서유는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임태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마구 주무르던 임태진의 손이 멈칫했다.

죽여도 시원치 않을 듯한 눈빛으로 서유가 그를 노려봤다.

“임태진, 오늘 함부로 날 대하면 내일 법원에 가서 널 고소할 거야.”

마치 세상 재밌는 농담을 듣기라도 한 듯, 피식 웃으며 임태진이 답했다.

“경찰도 무섭지 않은 내가 법원에 고소한다고 두려워할 것 같아?”

서유는 주먹을 꽉 쥐고 힘주어 말했다.

“당신 집안에 권력이 높다는 거 나도 알아. 하지만 그럼 뭐?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어. 권력으로 더러운 짓을 덮으려 하면 내가 언론에 실명으로 널 고소할 거야.”

임태진은 아무렇지 않은 듯 눈썹을 살짝 추켜세웠다.

“뭐, 그래. 언론에 나 폭로해봐. 실검에 안 오른 지 너무 오래됐나.”

그의 말에서 가소롭다는 뜻이 뚜렷하게 전해지자 서유는 절망과 무력감에 휩싸였다. 왜 하필 일반인이 아닌, 재벌가 권력이 높은 집안의 변태 아들에게 찍힌 걸까?

그는 손쉽게 뉴스를 잠재울 수 있었고 그녀가 강하게 나온다 한들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서유는 점차 이성을 되찾으려 애썼다. 임태진 같은 사람을 마주할 때 강하게 나오는 건 소용이 없다. 그를 힘으로 이길 수도, 백으로 이길 수도 없었다. 자신을 구하려면 가식적으로 그에게 순종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녀는 결심한 듯, 눈을 꾹 감았다. 그리고 이내 다시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임 대표님, 일부러 고소하려고 하는 것도, 언론 얘기로 위협하려는 것도 아니에요. 도저히 서로 사랑하지 않는 사이에서 잠자리를 가질 수 없었을 뿐이에요.”

그녀의 말에 임태진의 표정이 약간 누그러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앞의 먹잇감을 놓아줄 리는 없었다.

그는 머리를 숙여 그녀의 목덜미를 깊이 빨아들이더니 말했다.

“그렇지만 난 꼭 너랑 자고 싶은 걸 어떡해?”

너무 역겨웠지만 서유는 꾹 참고 말했다.

“그럼 시간을 좀 주세요. 내가 당신을 사랑하게 만들면 모든 건 자연스럽게 되겠죠. 하지만 지금처럼 강압적으로 나오면 당신이 싫어지기만 할 뿐이에요.”

임태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상관없어. 나만 괜찮으면 돼.”

그의 뻔뻔함에 애써 침착하려 하던 서유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뺨을 후려갈기고 싶은 충동을 애써 억누르며 그의 말에 답했다.

“그거 알아요?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자면 억지로 하는 것보다 느낌이 훨씬 좋대요. 느껴보고 싶지 않아요?”

이 상황을 벗어나려고 이런 말을 하고 있다는 걸 임태진은 알고 있었다. 그가 멍청하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는 줄곧 서유가 가슴만 큰 멍청한 여자라 생각했는데 지금 받는 느낌은 꽤 똑똑한 것 같아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협이 소용없어지니 바로 방식을 바꾸는 것은 꽤 흥미로웠다.

그는 머리를 살짝 기울이고 그녀를 훑어봤으나 바로 사실을 꿰뚫어 얘기하진 않았다.

“어차피 다 자는 건데 비슷하지 않을까.”

이런 말은 대놓고 하기엔 도저히 적합하지 않았다. 뻔뻔함에도 도가 있지, 서유에게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성질을 끝까지 죽이고 부드럽게 그를 유도했다.

“아주 달라요.”

임태진이 그녀에게 바싹 다가갔다.

“네가 느껴봤어?”

서유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머릿속에 이승하가 그녀를 안고 있던 장면이 스쳐 지나가자 심장이 쿵 내려앉으며 아팠다.

만약 그녀가 이런 변태 같은 놈에게 괴롭혀지고 있다는 걸 알면 이승하는 어떤 반응일까?

혹시 화를 내지 않을까? 질투하진 않을까? 혹시…

수천 가지의 감정을 상상했지만 그녀의 마음이 알려주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

그녀가 말이 없자 임태진이 차갑게 웃었다.

“나를 사랑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너랑 자라고? 정말 신박한 아이디어네.”

그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냥을 하는 것이지 여자와 함께 사랑놀이할 생각은 없었다. 그건 심심하고 귀찮은 일이니까.

절망감이 느껴졌지만 서유는 임태진의 눈에서 약간은 사그라든 욕정의 빛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여전히 용기를 내 조곤조곤 그를 말렸다.

“석 달만 시간만 줘요. 당신을 사랑하게 되면 내가 알아서 잘게요. 네?”

“안 돼.”

임태진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거절했다.

“석 달은 너무 길어. 못 기다려.”

거절하는 말을 했지만 말 속엔 아직 더 논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음이 느껴져 서유는 얼른 한발 물러섰다.

“그럼 두 달은요?”

흐릿하던 눈빛이 대뜸 밝게 빛나는 모습을 보고 임태진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사흘은 기다려 줄 수 있어.”

지금 바로 그녀와 자고 싶었지만 그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억지로 했을 때 느낌이 별로이긴 했었다.

차라리 그녀에게 적응할 시간을 주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어차피 사흘뿐이었고 그동안 더 많은 도구를 준비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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