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부.”지현우의 모습에 깜짝 놀란 서유는 소리를 질렀다. 바로 그때, 키가 크고 늘씬한 남자가 그녀보다 한발 빠르게 반응했다. 그가 빠른 속도로 달려가 단번에 지현우의 손에 있던 총을 빼앗았다.남자의 손에 떨어진 총이 그 위에서 한 바퀴 돌더니 총구가 다시 지현우에게로 향했다. “내 여자를 괴롭히고 이리 쉽게 죽음으로 사죄하다니. 이건 경우가 아니지.”싸늘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이승하가 차갑게 한마디 내뱉고는 총구를 아래로 내려 지현우의 허벅지 쪽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불구가 되든지 감옥에 가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해요.”총을 빼앗긴 지현우는 한 손으로 바를 집고 서서는 무심하게 이승하를 쳐다보았다.“내가 죽기를 원하지 않는 겁니까?”이승하의 단호한 성격이라면 그의 여자를 괴롭히고 다치게 한 이상 분명 그를 죽이려 했을 것이다.근데 생을 마감하려 했던 그의 손에서 이승하가 총을 빼앗았다는 건 그가 죽기를 원치 않다는 뜻이다. “왜죠?”무뚝뚝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는 이승하는 전혀 그를 동정하지 않았다.“난 당신이 죽기보다 더 고통스럽게 살기를 바랍니다.”차가운 그의 눈빛을 쳐다보며 지현우는 피식 웃었다. 지현우는 다시 술병을 들어 잔에 술을 따른 뒤 한 모금 살짝 마시고는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지난 몇 년 동안 난 죽기보다 더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낮은 그의 목소리는 이승하에게 말하는 것 같기도 했고 혼자 중얼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럼 남은 생은 속죄하면서 살아요.”이승하는 그의 허벅지에 총을 겨누고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기는 찰나, 애교 섞인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 “우리 삼촌 괴롭히지 말아요.”연이는 조지의 몸에서 허우적거리며 내려오더니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지현우의 앞으로 달려와서는 짧은 팔을 활짝 펴고 그의 앞을 막아섰다. “잘생긴 아저씨, 왜 우리 삼촌한테 총을 대고 있어요?”연이는 통통하고 작은 얼굴을 들고는 포도알같이 까만 눈을 깜박이
서유는 놀라서 제대로 울지도 못하는 연이를 안아 올려 조심스럽게 조지에게 맡긴 뒤, 다시 두 사람의 앞으로 다가갔다.그녀는 총을 내려놓지 않은 이승하를 잠시 바라보다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승하 씨, 지현우 씨랑 잠깐 얘기 좀 하고 싶어요.”그녀의 말에 흠칫하던 그는 서유가 지현우와 말을 섞는 것이 내키지 않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뜻대로 천천히 총을 내려놓았다.그녀가 지현우에게 다가가려던 찰나, 이승하가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여기서 얘기해.”서유는 이승하를 한번 쳐다보고는 바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술을 마시고 있는 지현우를 쳐다보았다.“형부, 아까 형부가 본 게 전부 사실이라고 했었죠? 근데 그 생각 안 해봤어요? 언니는 당신을 10년 동안 사랑했어요. 그런 언니가 쉽게 당신을 배신할 리가 없잖아요. 분명 뭔가 오해가 있었을 거예요. 한 번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리고...” 그녀는 조지의 품에 안긴 채 작은 목소리로 흐느끼고 있는 연이를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난 연이가 당신과 언니의 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지현우는 술잔을 꽉 쥐며 차갑게 웃었다.“유전자 검사 결과 친자관계가 아니었어요.”그 역시 의심해 보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러나 그 검사는 조지가 직접 한 검사였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사가 틀릴 리가 없지 않겠는가? 유전자 검사를 이미 했다는 말을 듣고 서유는 멍한 표정을 지었고 여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연이가 당신과 언니를 닮은 것 같지 않아요?”그 말에 몸이 굳어진 지현우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연이를 쳐다보았다.닮았다고?닮았다면 난 왜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걸까?전혀 믿지 않는 지현우는 술잔을 비우고는 서유를 향해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언니의 명성을 회복시키려는 마음은 알겠지만 날 그 희생양으로는 생각하지 말아요.”말을 마친 그는 술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팔을 벌리고는 이승하를 바라보며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웃었다.“이 대표님,
지현우는 아무렇지 않은 듯한 얼굴로 이승하를 비웃었다. “도대체 이 여자를 얼마나 사랑하는 겁니까? 이 여자 때문에 지금 원수인 날 놓아주려 하는 건가요?”차가운 이승하의 얼굴에는 표정 하나 없었고 그가 복잡한 마음을 감춘 채 싸늘하게 지현우를 쳐다보았다. “내가 서유를 사랑하든 말든 그건 당신과 상관없는 일입니다.”“물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죠. 다만 한 여자 때문에 이렇게 마음을 너그럽게 먹는다면 결국 나중에는 그 여자 때문에 당신이 죽게 될지도 모릅니다.”이승하의 마음을 꿰뚫어 본 듯, 지현우는 무심하게 한마디 툭 내뱉었다. 한발 또 한발 물러섰던 이승하는 그가 서유를 헐뜯는 소리를 듣고는 갑자기 눈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렇게 죽고 싶다면 원하는 대로 해주지.”싸늘한 목소리가 땅에 떨어지는 순간 그가 내려놓았던 총을 번쩍 들어 지현우의 허벅지를 겨누고 빠른 속도로 방아쇠를 당겼다.바로 그때, 멀리 있던 연이가 위험을 감지하기라도 한 듯 갑자기 큰 소리로 울었다. “엄마도 없는데 현우 삼촌까지 없으면 안 돼요. 우리 삼촌 죽이지 말아요.”아이의 나른한 목소리에 지현우는 갑자기 정신이 들었고 뜻밖에도 이승하가 방아쇠를 당기자 그가 무의식적으로 총을 피했다.총구에서 뿜어져 나온 총알은 지현우의 다리 옆을 스쳐 지나가더니 곧장 그의 뒤편에 있는 유리창을 뚫고 지나갔고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가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났다.엄청난 소리에 놀란 연이는 크게 울음을 터뜨렸고 울부짖는 아이의 소리에 지현우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포동포동하고 작은 얼굴에 수정같이 맑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아이가 조지의 품에서 내려오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얼어붙었던 지현우의 마음에 따뜻한 기운이 퍼지기 시작했다. 꼬맹이가 참 이상했다. 아무리 못되게 굴고 욕하고 때려도 여전히 그의 곁으로 다가왔고 그의 옆에 찰싹 붙어있었다. 오늘은 위험에 처한 그를 보호하려고 했고 그 때문에 목 놓아 울고 있다. 두 사람은 전혀 아무 사이가 아
한참을 쳐다보던 그는 쓸쓸한 시선을 거두고는 조지에게서 내려와 자신의 허벅지를 감싸 안는 어린 소녀를 바라보았다. 어린 소녀의 코 밑에는 긴 콧물 거품이 줄줄 매달려 있었는데 훌쩍거리는 사이에 콧물이 점점 더 길어졌다. 지현우가 얼굴을 찡그리며 휴지로 닦아주려는 찰나 아이가 그의 바지를 잡아당기며 바지에 코를 닦았다. 그 모습에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발을 들어 그녀를 뿌리치려고 했다. 아이는 그의 신발 위에 털썩 주저앉아 그의 허벅지를 꼭 껴안고 그한테 매달려서는 한사코 내려오려 하지 않았다. “삼촌, 우리 그네 타요.”그는 눈을 흘기며 다정한 눈빛으로 연이를 쳐다보고 있는 조지를 쳐다보았다.“얘 빨리 데리고 가요.” 그러나 조지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사람들 불러서 방 정리해야 해요. 연이는 당신한테 맡길게요.”말을 마친 조지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별장을 나와 차에 오르는 서유를 급히 불렀다.“서유 씨.” 고개를 돌린 그녀는 조지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것을 보고 자신을 위해 차 문을 열어주는 이승하를 향해 입을 열었다.“조금만 기다려줄래요?”오늘 밤, 김씨의 일 처리는 가장 비효율적이고 가장 속도가 느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불평 없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트렁크로 돌아가는 그를 보며 그녀는 그가 차에 타려고 하는 줄 알았다. 근데 그가 우산을 들고 다시 그녀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녀에게 커다란 검은 우산을 씌워주고는 눈보라를 막아주었다. 그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진 서유는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얇은 양복을 입은 남자는 마치 하느님이 조각해 놓은 조각상처럼 그녀 곁에 서 있었다. 눈처럼 차가운 기운이 온몸에 배어있으면서도 한 여인을 위해 우산을 들고 서 있다. 그 모습에 조지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이내 예의 바르게 입을 열었다. “서유 씨, 이 대표님과 다시 재결합한 걸 축하드려요. 행복하길 바랄게요.”그의 축복에 서유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감사합니다. 선생님.”조지가 더 이상 입을 열
주먹을 불끈 쥐고 있던 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그럼 언니가 정말 현우 씨를 배신했다는 말인가요?”그 점에 대해서는 조지도 잘 알지 못하였고 그는 그저 솔직하게 대답했다.“몇 년 동안 제가 Y국에 없어서 초희와 현우 씨가 왜 사이가 틀어졌는지는 저도 잘 몰라요. 구체적인 일은 아마 당사자인 현우 씨가 제일 잘 알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는 누구한테도 털어놓지 않더라고요.”그때 그 일은 지현우의 마음에서 가장 아픈 일이었다. 자존심이 강한 그는 결코 피를 흘리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없을 것이다. 서유는 알겠다는 듯이 조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마음속에 묻어둔 비밀을 서유에게 모두 털어놓고 나니 조지는 한결 마음이 후련해졌다. “서유 씨, 그가 찾아낸 진실이 예전과 똑같고 그로 인해 그가 자극을 받는다면 언니를 봐서라도 서유 씨가 그를 좀 도와줘요.”“제가 뭘 어떻게...”조지의 뜻을 알 수 없었던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한편, 시선이 그녀의 옆에 서 있는 남자에게 닿자 조지는 벌어진 입술을 꾹 닫아버렸다. 그는 착잡한 표정을 거두고 서유를 향해 옅은 미소를 지었다.“아니에요. 그때 가서 다시 얘기하죠.”말을 마친 그는 이승하를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소복이 쌓은 눈을 밟으며 별장으로 들어갔다. 짙은 속눈썹을 올리고 조지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이승하의 눈동자에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조지가 한 말 그리고 지현우가 자살하기 전 다하지 못했던 말이 그를 생각에 잠기게 했다. 지현우는 자신이 김초희와 서유를 구분하는지 못하는지에 대해 답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어쩌면 그는 이미 답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남들은 모르고 있을 뿐. 검은 우산을 들고 있던 이승하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팔짱을 낀 채 여전히 언니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서유를 쳐다았고 차가웠던 그의 눈빛에 갑자기 강한 소유욕이 가득 차올랐다. 지현우의 답이 뭔지는 상관없다. 서유는
사실 침대에 엎드려있던 서유는 잠에 들지 않았고 희미하게 욕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빙그레 웃었다. 급히 그녀와 결혼을 하겠다는 남자의 말에 그녀는 가슴이 설렜다.너무 좋았다. 전화를 끊으면 나올 줄 알았는데 그가 또 어디론가로 전화를 걸었다.그녀는 통화 내용을 제대로 듣지 못하였다. 그저 그가 택이에게 김초희와 지현우의 일에 대해 조사하라고 명하는 것만 어렴풋이 들렸다. 그녀가 도움을 청하지 않더라도 그는 뒤에서 묵묵히 그녀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있었다. 그녀의 남자는 항상 그녀를 안심시켰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그는 침대에 누워 달콤한 잠을 자고 있는 여자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물기를 깨끗이 닦고 수건을 내려놓고는 침대로 다가가 이불을 들추고 그녀의 가는 허리를 뒤에서 껴안았다.그녀를 품에 꼭 안은 뒤,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머리카락에 키스를 하고 나서야 그녀를 안고 편히 잠을 청했다. 아직 잠들지 않았던 서유는 샤워를 마치고 나온 남자의 은은한 향을 맡으며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 예전에는 꿈도 못 꾸었던 것들이 오늘 이 순간 다 이루어진 것 같아서 그녀는 행복하기만 했다. 그녀는 이승하가 잠이 들기를 기다렸다가 몸을 돌려 그를 껴안고는 몰래 그의 턱에 입을 맞추었다.고마워요, 승하 씨...남자의 굳게 감긴 눈매가 반달처럼 살짝 기울어져 가는 곡선을 그렸다. 그는 눈을 뜨지 않은 채 모르는 척했다. 때로는 그녀가 주는 사랑을 느끼고 싶었고 그게 그를 참 행복하게 만들었다.다음날 정가혜의 별장, 분홍빛 코트를 입은 그녀가 별장 문을 열자마자 눈밭에 서 있는 이연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검은색 코트를 걸친 채 문 옆에 기대어 서서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갸웃거리며 별장에서 나오는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형과 약속했거든요. 오늘 당신 데리고 형수님 만나러 가겠다고.”말을 마친 그가 차 문을 열고는 정가혜에게 차에 타라고 눈짓했다. 그녀는 리미티드 에디션의 롤스로이스 팬텀을 보고 이
정가혜는 발걸음을 옮기며 다정하게 서유의 이름을 불렀다.“서유야.”오랜만에 들은 정가혜의 목소리에 서유는 고개를 들었고 마침 별장 밖에서 안으로 걸어들어오는 정가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낯익은 그림자가 눈에 닿자 그녀의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녀는 얼른 책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가혜야.”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서유는 설레는 표정을 지은 채 두 팔을 벌려 정가혜를 안았다.“그동안 잘 지냈어?”친한 친구 사이에는 포옹 하나면 충분했다. 정가혜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나야 뭐 늘 그렇지. 클럽 운영도 하고 돈 버느라고 바빴어. 뭐 별 탈 없이 잘 지냈어.”말을 마친 그녀는 서유의 어깨를 잡고 위아래로 서유의 몸을 훑어보았다. 예전보다 더 여윈 서유를 보고 그녀는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많이 여위었네. 반년 동안 고생 많았지?”서유는 정가혜가 걱정할까 봐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고생은 했지만 그래도 잘 견뎌왔잖아.”지현우 그 미치광이가 서유를 어떻게 대할지 정가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안타까운 마음에 서유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미안해. 내가 진작에 널 찾았다면 네가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소 비서님조차 날 찾지 못하였는데 네가 어떻게 날 찾을 수 있겠어? 그리고 이 일은 원래 너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그러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 네가 날 찾기 위해 혼자 Y국까지 온 걸 생각하면 난 그저 고마울 따름이야.” 오늘 아침 이승하한테 정가혜의 근황에 대해 물었었다. 그는 정가혜가 Y국으로 그녀를 찾아갔던 일을 서유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영어도 못 하는 그녀가 홀로 낯선 땅을 찾아갔다는 생각을 하니 서유는 고맙기도 했고 걱정이 됐다. 서유는 정가혜의 팔을 잡으며 그녀에게 당부했다.“가혜야, 앞으로 이런 일 생기면 절대 혼자 나 찾으러 오지 마. 너무 위험해.”정가혜는 손가락을 뻗어 서유의 머리를 살짝 밀었다.“이번에 너 때문에
흠칫하던 그는 가슴이 답답하고 괴로웠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그녀한테 따져 물었다. “소개팅이요? 누구랑요?”그 질문에 정가혜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이승하를 쳐다보며 예의 바르게 입을 열었다.“이 대표님, 서유가 이곳에 있는 게 더 안전할 것 같아요. 서유는 그냥 이곳에 두고 갈게요.” 목적을 이룬 이승하는 정가혜를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서유를 쳐다보았다. “두 사람 얘기 나눠.”말을 마치고 나서 그는 컴퓨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하인에게 당부했다.“사모님 친구분 잘 대접해요.”사모님이라는 말에 서유는 뭔가 안정감이 들었고 정가혜는 그 말을 듣고 이승하에 대해 더욱 호감이 생겼다. 결혼도 하기 전에 서유를 자신의 와이프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 정가혜는 서유가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하인들이 그녀를 깔보는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세심하게 배려하는 이승하는 흠잡을 데가 없는 남자였다. 게다가 지난 3개월 동안 서유 때문에 몇 번이나 피를 토하며 죽을 뻔했던 그의 모습을 정가혜는 똑똑히 봐왔다. 세상 남부러울 것 없는 잘난 남자가 목숨처럼 서유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한편, 정가혜한테 소개팅 상대가 누구인지를 따져 물어보려는 이연석을 향해 이승하는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그만 가보라는 둘째 형의 눈빛에 이연석은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가혜 씨, 나중에 봅시다.”정가혜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는 소파에 앉았고 이때 하인이 커피와 디저트를 가져왔다. 그녀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는 커피를 마셨고 고개를 들어 럭셔리한 거실을 둘러보았다. 한편, 서유는 조각 케익을 그녀에게 건네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정말 소개팅하러 갈 거야?”그녀의 물음에 정가혜는 고개를 돌리고 그녀가 건넨 케이크를 받아쥐었다.“하 매니저님 기억나지? 조건이 괜찮은 이혼남이 있다고 해서 한번 만나볼까 생각 중이야. 서로 눈이 맞으면 좋고 서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손님 하나 더 알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