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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hor: 장로만만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11-22 14:32:21
민박집을 찾아오는 손님은 거의 없었고 온다고 한들 한 두명이 전부였다.

한가한 근무환경에 비해 사장님은 월급을 과분할 정도로 부셨었다.

월세를 빼고 나서도 80만원이나 카드에 들어올 정도로 말이다.

처음으로 월급을 받았던 날에 난 핸드폰을 다시 샀고 전화 번호까지 다시 장만했었다.

물론 나의 주민 등록증이 아니라 사장님의 명의로.

“사장님, 제가 무섭지도 않으세요? 신분을 숨기려고 하는 것이 수상하지도 않으세요? 나쁜 사람일 수도 있고 살인범일 수도 있잖아요. 이곳으로 도망 왔을 수도 있는데 왜 아무것도 물어보시지 않으세요?”

사장님은 고개를 들고서 나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난 사장님의 두 눈에는 조롱 같지 않은 조롱의 빛을 받게 되었다.

“나 원 참! 약하디약한 팔다리로 사람을 죽였다고요? 겉모습으로 판단한다면 그쪽보다는 내가 더 살인범 같지 않아요?”

말을 뱉고 난 뒤 사장님은 바로 험상궂은 표정을 지었지만 난 전혀 두렵지가 않았다.

사장님의 성함은 전재혁이며 거친 입과 달리 마음이 유난히 따뜻한 사람이다.

그렇게 난 감흥 마을에서 평범하기 그지없는 날들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난 바닥 청소를 하고 있었고 재혁은 볼륨 소리를 한껏 높여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청소하던 중에 난 남준과 창민의 이름을 듣게 되었다.

순간 등골이 으스스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물통까지 엎어버렸다.

우당탕거리는 소리에 재혁은 나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아는 사람이에요?”

내가 이곳으로 오고 난 뒤로 재혁은 나한테 그 어떠한 질문도 던진 적이 없었다.

물론 나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었다.

재혁은 나란 사람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고 궁금한 것이 없는 듯한 모습만 보였었다.

그러나 덤덤한 모습으로 나와 남준 그들 사이의 관계를 묻고 있었다.

난 엎어진 물통을 챙기면서 침착하게 고개를 저었다.

“평생 말 한번 섞기 힘든 사람들인데, 제가 무슨 수로 저런 사람들을 알겠어요. 사장님도 참...”

재혁은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고 가볍게 웃기만 했다.

난 계속 바닥 청소를 이어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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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준과 창민은 우리 민박집 바로 옆에 있는 민박집에 들어갔다.나의 의사와 달리 난 민박집 근처에서 자주 두 사람을 볼 수 있었다.그러던 어느 날 난 민박집 물품을 챙기고자 마을을 나섰다.누군가가 뒤에서 쫓아오고 있는 것 같아 난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떼어내려고 했었다.뒤따라오는 사람이 당연히 남준과 창민이라고 확신하면서.하지만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난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바로 기절해버렸다.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난 벼랑 끝에 놓여 있었고 바로 옆에 연희가 있었다.연희는 초췌하기 그지없었고 도도하고 기고만장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모습이었다.연희는 칼끝을 나의 목에 겨누고서 한이 가득한 소리로 날 윽박질렀다.“한수아, 너 대체 나보다 낫은 게 뭐야? 왜 다들 너만 좋아하고 너만 선택하냐고!”“너도 참 대단하다. 이 상황에서도 그렇게 덤덤한 척하고 싶어?”“이따가 걔들 오고서도 이런 모습 보였으면 좋겠어.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지 말고.”입속을 가득 채운 천 때문에 난 토씨 하나 뱉을 수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은 멀지 않은 곳에서 두 사람이 달려왔다.남준과 창민은 다급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보였지만, 감히 앞으로 다가오지 못했다.연희는 피식 웃고서 칼끝을 나의 얼굴에 대기 시작했다.“너희들도 무서운 게 있긴 있구나.”“덤덤한 줄 알았는데, 의외네?”더는 참을 수 없었던 창민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이연희, 너 잘 생각해. 너 지금 그거 범죄야.”“내가 그런 걸 생각할 여유가 있을 것 같아? 심창민, 너 잊은 거야? 그때 날 위해서 한수아를 바다로 던졌었잖아. 나 역시 너희들을 위해서 얘 납치해 온 거야. 감동되지 않아? 3년 내내 찾아다닌 한수아를 내가 납치해 왔는데?”‘미친... 나는 좀 빼주지...’남준이가 앞으로 두어 걸음 다가오자 연희는 바로 호통을 쳤다.“다가오지 마! 오기만 해봐 확 밀어버릴 거야!”벼랑 아래는 급한 물살이 휘몰아치고 있고 자갈도 널리 널려있다.운이 좋으면 죽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죽음에 가까

  • 내 인생의 또 다른 빛은 나였다   제7화

    그 영상을 기억하고 있었던 재혁이다.남준과 창민 일행은 재혁의 민박집에서 묶기로 했다.감흥 마을은 근래 관광업을 크게 추진하고 있으므로 많은 기업을 이끌고 있다.그러나 감흥 마을은 여운시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있다.이런 외진 곳에 남준과 창민이 직접 왔다는 것에 아직도 어안이 벙벙했다.갑자기 들이닥친 상황을 뒤로하고서 난 프런트 앞에 서서 폰을 만지작거렸다.그러던 그때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한수아, 우리 얘기 좀 해.”연희는 여전히 도도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하지만 3년 전에 비해 빽이 줄어들었는지 애써 침착하고 덤덤한 척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민박집 정원 안에서.연희는 가방에서 은행 카드 한 장을 꺼내 들었다.“여기 안에 2억 있어. 한수아, 너 해외로 나가.”난 당황하기 그지없었다.“내가 왜 그래야죠?”연희는 이를 악물고 당장이라도 노발대발할 것처럼 보였다.“너도 알다시피 남준이랑 창민이가 3년 내내 너만 찾아다녔었어. 한수아, 너 설마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니지?”난 고개를 저었고 연희는 피식 웃었다.“그럼, 이 카드 가지고 떠나. A 국이든 Y 국이든 M 국이든 네가 가고 싶은 데로 가. 그 돈으로 부족하면 내가 얼마든지 더 줄 수 있어. 여하튼 멀리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좋을 것 같아.”난 고개를 숙이고 웃음을 지었다.‘3년 전에 도망간 것으로 충분해.’‘지금의 난 더는 도망가지 않을 거야.’그렇다, 남준이든 창민이든 나를 어찌할 도리가 없을 것이고 난 이 세상에 그 어떠한 미련도 없다.내가 카드를 받지 않자 연희는 미친 듯이 카드를 나한테로 밀어 넣었다.“한수아, 가라고! 남준이랑 창민이한테서 멀어져! 네 발로 가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널 보내버릴 거야.”“내가 마음먹고 나서면 넌 편하게 갈 수 없을 거야.”“수아를 어디로 보내려고 하는 거야?”바로 그때 뒤에서 낮고 무거운 소리가 들려왔다.연희는 바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졌다.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남준

  • 내 인생의 또 다른 빛은 나였다   제6화

    이를 악물고 내뱉은 말이라는 것을 난 단번에 알 수 있었다.하지만 더 이상 창민을 상대하지 않고 난 그대로 뒤돌아서서 위층으로 올라갔다.독으로 가득 찬 창민의 눈빛에 겨우 덤덤해진 내 마음은 다시 혼란스러워졌다.그렇다, 창민은 독한 놈일 뿐만 아니라 미친놈이다.남준은 과거를 잊은 것으로 보였지만 창민은 엄청나게 신경 쓰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평범한 나의 일상에 갑자기 들이닥친 두 사람 때문에 난 멍해지고 말았다.침대 위에 홀로 멍하니 앉아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문을 열자마자 누군가가 문틈을 비집고 들어왔다.창민이었다. 그는 나의 팔목을 꼭 잡고 있었고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남준이도 뒤따라 들어왔다.남준은 시종일관 덤덤한 모습으로 여유롭게 걸어 들어왔다.펑-소리와 함께 방문이 가볍고도 굳게 닫혀버렸다.창민은 나의 턱을 움켜쥐고서 화를 억누른 채 입을 열었다.“한수아, 감히 날 모른 척해?”“못할 이유 있어?”냉담한 나의 모습에 창민은 눈동자가 미친 듯이 요동쳤다.그러나 곧바로 피식 웃으면서 주도권을 되찾아갔다.“3년 동안 성질도 많이 자랐나 봐?”“한수아! 벌써 3년이야! 내가 X발 널 3년 동안이나 찾았다고! 근데 겨우 이런 더러운 곳에 숨어 있었던 거야?”창민은 내 방을 훑어보면서 야유에 가까운 소리를 냈다.“여운시에 있는 네 집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서 그래? 그런 곳에서 지내다가 이런 곳에서 살 수 있어?”지금 내가 사는 이곳은 고풍스러운 인테리어를 했을 뿐이다.창민처럼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도련님은 당연히 알 리가 없는 그런 인테리어이다.난 창민의 손에서 벗어나 그와 안전거리를 유지했다.“대체 왜 이러는 거야! 심창민, 유남준, 우린 더 이상 아무런 사이도 아니야!”두 사람의 이름 석 자를 그대로 부르자 방안은 쥐 죽은 듯이 고요해지고 말았다.시종일관 덤덤했던 남준의 눈동자도 일렁일 정도로 말이다.정적을 깨면서 남준이가 말했다.“아무런 사이도 아니라고?”“수아야, 인사도 없이 떠난 이유가 바로

  • 내 인생의 또 다른 빛은 나였다   제5화

    민박집을 찾아오는 손님은 거의 없었고 온다고 한들 한 두명이 전부였다.한가한 근무환경에 비해 사장님은 월급을 과분할 정도로 부셨었다.월세를 빼고 나서도 80만원이나 카드에 들어올 정도로 말이다.처음으로 월급을 받았던 날에 난 핸드폰을 다시 샀고 전화 번호까지 다시 장만했었다.물론 나의 주민 등록증이 아니라 사장님의 명의로.“사장님, 제가 무섭지도 않으세요? 신분을 숨기려고 하는 것이 수상하지도 않으세요? 나쁜 사람일 수도 있고 살인범일 수도 있잖아요. 이곳으로 도망 왔을 수도 있는데 왜 아무것도 물어보시지 않으세요?”사장님은 고개를 들고서 나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난 사장님의 두 눈에는 조롱 같지 않은 조롱의 빛을 받게 되었다.“나 원 참! 약하디약한 팔다리로 사람을 죽였다고요? 겉모습으로 판단한다면 그쪽보다는 내가 더 살인범 같지 않아요?”말을 뱉고 난 뒤 사장님은 바로 험상궂은 표정을 지었지만 난 전혀 두렵지가 않았다.사장님의 성함은 전재혁이며 거친 입과 달리 마음이 유난히 따뜻한 사람이다.그렇게 난 감흥 마을에서 평범하기 그지없는 날들을 보냈다.그러던 어느 날, 난 바닥 청소를 하고 있었고 재혁은 볼륨 소리를 한껏 높여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청소하던 중에 난 남준과 창민의 이름을 듣게 되었다.순간 등골이 으스스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물통까지 엎어버렸다.우당탕거리는 소리에 재혁은 나를 바라보면서 물었다.“아는 사람이에요?”내가 이곳으로 오고 난 뒤로 재혁은 나한테 그 어떠한 질문도 던진 적이 없었다.물론 나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었다.재혁은 나란 사람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고 궁금한 것이 없는 듯한 모습만 보였었다.그러나 덤덤한 모습으로 나와 남준 그들 사이의 관계를 묻고 있었다.난 엎어진 물통을 챙기면서 침착하게 고개를 저었다.“평생 말 한번 섞기 힘든 사람들인데, 제가 무슨 수로 저런 사람들을 알겠어요. 사장님도 참...”재혁은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고 가볍게 웃기만 했다.난 계속 바닥 청소를 이어갔지만,

  • 내 인생의 또 다른 빛은 나였다   제4화

    쿵-그 말을 듣게 된 순간 머리가 터지는 것만 같았다.난 믿어지지 않아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연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연희가 눈썹을 들썩이며 우쭐거리는 모습을 보였다.“정말로 몰랐던 거야?”“하하하, 한수아, 너 순진한 거야 아니면 멍청한 거야? 남준이한테 물어본 적 없어? 왜 너를 집으로 데리고 왔는지?”“어쩜 이렇게 덤덤할 수 있지? 궁금하지도 않았어?”아니, 난 진작에 궁금했었고 이미 물어보기까지 했었다.남준의 성인 파티에서 난 술의 힘을 빌려 그에게 물었었다.그때 남준은 훤히 보일 정도로 머뭇거렸지만, 나의 눈꼬리를 어루만지면서 대답을 주었었다.“널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 눈꼬리에 끌렸었어. 한창 꽃을 피워야 할 네가 힘없이 메말라 죽고 있길래 데리고 왔어. 네가 활짝 피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보고 싶어서. 그리고 지금의 넌 그때 네가 들고 있던 장미처럼 활짝 피어 있어. 눈부실 정도로 예뻐.”“수아야, 내가 널 데리고 온 이유는 단지 그것뿐이야.”과연 그것뿐일까?난 그제야 연희의 얼굴을 자세히 훑어보기 시작했다.찬찬히 보니 꽤 닮은 우리였고 특히 눈꼬리가 유난히 닮은 우리였다.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오직 연희를 닮았기 때문이라는 확인사살을 받게 된 순간이었다.내가 그동안 받은 모든 사랑이 내가 아니라 연희를 향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남준도 창민도 나를 연희의 대체품으로 여기고서 사랑해주었던 것이었다.그 이유를 알게 되고 나서 난 비로소 마지막 퍼즐 조각을 찾은 것만 같았다.두 사람이 무엇 때문에 서서히 내 곁에서 멀어졌는지.연희가 돌아왔으니 대체품인 나 따위는 자연스레 필요 없었던 것이었다.모든 걸 알고 난 뒤 나는 석연한 웃음을 짓게 되었다.‘오히려 잘 됐어. 부담 없이 떠나도 될 것 같아.’필경 그동안 두 사람과 나 사이는 거래에 불과했으니 말이다.두 사람은 나한테서 연희를 잃은 위안을 찾고 난 두 사람의 손에서 다시 한번 살아났었다.이대로 대신한 셈 치고 모든 과거를 뒤로하기로 마음을 먹

  • 내 인생의 또 다른 빛은 나였다   제3화

    나를 바라보는 창민의 눈빛은 보이지 않는 비수와 같았다.그 비수는 나뿐만 아니라 나한테 평생 옆에서 지켜주겠다고 했었던 그 자신도 소리 없이 찌르고 있었다.창민을 처음으로 만나게 된 건 남준의 성인을 축하하는 생일파티였다.그날, 남준은 나를 유씨 가문 고택으로 데리고 가서 가족들에게 소개해주었었다.그때 남준은 세상 따뜻한 말을 했었다.“앞으로 수아는 유씨 가문의 일원으로 우리와 함께 지낼 거예요.”“수아는 제가 옆에서 끝까지 책임지고 지켜줄 사람이에요.”게임을 하고 있던 창민은 그 말을 듣자마자 게임에서 눈을 떼고 나한테로 고개를 돌렸었다.위아래로 나를 한참이나 훑어보기까지 했다.불편한 시선을 느끼고 있던 그때 창민은 입꼬리를 올리면서 입을 열었었다.“남준이 입에서 나온 말이니 나 역시 수아 너를 내 사람으로 여기면서 지낼 거야.”“수아야, 나도 너 지켜줄게.”창민의 말을 끝으로 모든 좋고 나쁜 시선들이 나에게로 쏟아졌었다.조금 전 창민과 같은 시선, 질투심이 가득한 시선, 부러워하는 시선...난 순간 어찌할 바를 몰라 애꿎은 손만 잡아당겼었다.그러나 창민은 핸드폰을 버리고서 바로 커다란 손으로 나의 손을 감싸면서 말했었다.“수아야, 오빠랑 정도 쌓을 겸 나가서 놀자.”이윽고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창민은 나를 차로 밀어 넣고서 도시 안을 누볐었다.만약 남준의 재촉 전화만 아니었다면 창민은 나를 바다로 데리고 가려고 했었다.차에서 내릴 때 창민은 나의 얼굴을 꼬집으면서 진지한 모습으로 말했었다.“수아야, 남준이 말고 나랑도 좀 놀아줘. 나도 좀 바라봐줘. 나도 네 오빠야.”그 뒤로 난 남준과 한집에 살았고 창민은 거의 매일 집으로 찾아왔었다.나를 데리고 자주 놀러 갔었던 창민이었다.국내에서 더 이상 놀 곳이 없자, 창민은 나를 데리고 해외까지 갔었다.대학 졸업식이 열리던 그 날에 창민과 남준은 나의 졸업을 축하해주고자 직접 학교로 찾아오기도 했었다.난 그렇게 모든 사람의 부러움을 받으면서 ‘공주님’처럼 지냈었다.그리

  • 내 인생의 또 다른 빛은 나였다   제2화

    지금에 와서 다시 떠올려도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무섭고 한스러운 일이었다.다시 병실로 돌아와서...병실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었다.남준과 창민이 잇달아 들어왔고 두 사람 뒤에는 연희도 함께 했었다.연희는 병상 끝자락에 자리 잡고서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수아 씨, 미안해요. 이게 다 제 탓이에요. 괜히 내기를 하자고 해서 이런 사달이 난 거잖아요.”“참 분수도 없이 제가 너무 한 것 같아요. 수아 씨 병원비는 제가 다 책임질 테니 부디 저 좀 용서해 줬으면 좋겠어요. 이번 일로 저한테 억한 감정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부드러운 모습으로 마음을 다해 사과하고 있는 듯한 연희였다.유람선에서 말도 안 되는 내기를 제기했었던 악마와는 달리 말이다.난 머리가 윙윙거렸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바늘이 동시에 머리를 찌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천천히 눈을 감고 이를 악물어야만 그 고통을 잠시나마 무마할 수 있을 정도로.하지만 고통을 이기고자 했었던 나의 본능적인 행동은 남준과 창민의 눈에 달리 보였었다.연희를 증오하고 절대 용서하지 않는 것으로.남준은 나의 병상 곁에 서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차가운 모습으로 나를 내려다보았었다.그가 보는 앞에서 죽을 뻔했었지만, 아무런 파장도 일으키지 못한 나였다.예전의 남준이는 분명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말이다.고작 10살밖에 되지 않았던 난 유흥가로 버려졌었다.그때 아빠는 나한테 붉은색 장미를 주면서 나지막이 당부했었다.“수아야, 아빠 말 잘 들어.”“여기서 가만히 기다렸다가 네가 들고 있는 이 꽃을 가져가는 사람이랑 가면 돼. 알았어?”난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이유를 묻지 않았었다.부드러운 모습으로 상냥하게 말하는 아빠의 모습이 처음이라 당황함이 먼저였기 때문이다.아빠는 내가 고개도 끄덕이지 않고 대답도 하지 않자 조급해지셨고 그 어리고 여린 나를 미친 듯이 흔들었었다.밀려오는 통증에 난 정신을 차렸었고 익숙한 아빠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되었었다.‘그럼, 그렇지

  • 내 인생의 또 다른 빛은 나였다   제1화

    풍덩-난폭하기 그지없는 그의 손에 난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로 빠져버렸다.떨어지는 그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유람선 갑판에서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바닷속에서 아등바등하고 있는 나의 생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채로.난 본능적으로 허우적거렸고 젖 먹던 힘으로 살려달라고 외쳤다.하지만 돌아오는 건 짜고 씁쓸한 바닷물뿐이었다.“살려주세요.”“제발 좀... 나 좀... 살려줘...”내가 구조요청을 할 때마다 사람들은 더욱더 흥미진진한 빛을 드러냈다.심지어 어떤 사람은 바닷속으로 빵을 던지거나 와인을 붓기도 했다.뭐가 그렇게도 재밌는지 하나같이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바닷속에 있는 내가 존엄이 있는 인간이 아니라 재미를 제공하는 노리개인 듯 말이다.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난 서서히 사지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종아리에 쥐까지 나면서 온몸이 저 깊은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갔다.난 그때 갑판에 서 있는 두 남자가 어렴풋이 보였다.한 줄기 빛처럼 다가와 나한테 새 삶을 선물해 준 남자.그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허우적거리고 있는 나를 덤덤하게 바라보고 있었다.그리고 평생 나한테 잘해주겠다고 약속했었던 남자.그는 세상 다정한 모습으로 다른 여자를 품에 안고 있었다.주위 사람과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면서.잔인하게도 그 얼굴에는 희롱과 비웃음이 가득했다.너무 힘들었다. 마음도 힘들었고 몸도 그에 만만치 않게 힘들었다.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있고 싶었다.잔잔하게 파도치고 있는 바다는 마치 엄마의 품과 같아 긴장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자장가를 불러주면서 조심스레 몸을 흔들거리던 엄마의 품 말이다.난 ‘엄마의 품’에서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그러다 보니 어느새 입꼬리도 슬그머니 올라가 있었다.‘엄마의 품’에 안겨 있는 난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었다.그 사람들이 나한테 진심인지 아닌지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난 그냥 ‘엄마의 품’에 기대어 편안하게 자기만 하면 되었다.그러나 잔인하게도 그 편안함은 잠시뿐이었다.나지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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