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지유는 여전히 우리 사이를 회복하려 애쓰고 있었다. 마치 이사할 때마다 새롭게 심었던 해바라기처럼 말이다.“예은아, 다 괜찮아질 거야. 네가 회복되면 집에 데려가서 네가 좋아하는 해바라기도 심고, 같이 그림도 그리자.”나는 움직이지 않는 손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가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배지유는 내 의심 어린 눈빛을 읽고 다급히 말했다.“꼭 나아질 거야. 널 치료하고, 복수도 해줄게. 널 다치게 한 사람들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하지만 지금 나는 복수보다도 할머니가 더 걱정되었다. 할머니는 아마도 퇴원하셨을 텐데, 내가 할머니를 집에 모셔야 하는 시간을 놓쳐버렸다.지금 이 꼴로는 할머니를 뵐 수도 없었기에 배지유에게 제발 할머니께 아무것도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다 회복되면 그때 뵙겠다고.그런데 그날 나는 낯선 번호로 온 한 통의 영상을 받았다.영상 속에는 하얗게 센 머리카락을 한 할머니를 둘러싸고 사람들이 썩은 채소와 상한 달걀을 던지며 욕을 퍼붓고 있었다.입에 담기도 끔찍한 말들이 쏟아졌다.“네 손녀가 뻔뻔하게 남의 남편을 꼬시고도 사과할 줄 모르니 널 찾아왔지. 당장 걔를 내놔!”“부모도 없는 주제에 이런 애를 키워서 뭐 하겠어? 천박하고 역겨운 짓만 하고 다니잖아!”“네 손녀 인터넷에서 유명해졌다던데? 보라고, 본처한테 맞고 뻗은 꼴. 이런 애는 맞아도 싸다니까!”할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그 사람들과 따졌다.“우리 예은이는 그런 아이가 아니야. 너희들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지 마! 그런 짓 할 애가 아니라고!”그 순간, 내 심장이 멈추는 것만 같았다. 그건 내 할머니였다.강윤서는 내가 맞던 영상을 일부러 온라인에 퍼뜨렸다. 지금 그 영상은 이미 실검 1위에 올랐다.사람들은 나를 철저히 조롱하고, 내 신상을 샅샅이 뒤져 폭로했다.부모도 없는 고아가 몰래 성형해서 재벌가 저택에 숨어들어 남자를 꼬시려 했다는 이야기로 난리였다.유일한 내 가족인 할머니마저 그들의 공격과 조롱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는 퇴원 후 회복에 최선을 다했다.그리고 배지유는 내가 퇴원하자마자 서둘러 나를 자택으로 데려갔다.강윤서와 그녀의 세 명의 꼬붕들이 끌려 나왔다.“예은아, 그들이 너한테 했던 짓, 반드시 두 배로 갚게 할 거야. 그러니까 제발 나한테 화내지 마, 응?”내 시선은 강윤서에게로 고정되었다. 분노가 치밀어 올라 심장이 터질 듯했다.그들은 지하실에서 반달 가까이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한 채 개처럼 묶여 있었다. 지금은 온몸에서 악취를 풍기며 흙투성이였다.강윤서는 나와 배지유를 보자마자 무릎을 꿇고 덜덜 떨며 빌기 시작했다.“대표님, 사모님, 제가 잘못했어요. 화 좀 푸시고 저를 살려만 주세요!”세 명의 꼬붕들은 서둘러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우린 속아서 그런 거예요! 다 강윤서가 시켜서 한 일이에요!”“맞아요, 억울하면 주범에게 갚으세요. 제발 우리만은 용서해주세요...”이들은 이미 더 이상 얻을 이득이 없게 되자 서로를 탓하며 머리채를 잡고 싸우기 시작했다. 오로지 자신만을 지키려는 본능뿐이었다.나는 비웃듯 웃으며 말했다.“너희들은 정말 아무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니? 그날 너희들도 다 손을 썼잖아? 피의 빚은 피로 갚아야 해. 내가 왜 너희를 용서해야 하지?”그들 모두가 나를 폭행하고 그 장면을 녹화해서 올렸고, 결국 그것이 내 할머니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그 누구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강윤서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소리쳤다.“넌 지금 멀쩡하잖아! 날 죽인다고 네가 얻는 게 뭐가 있겠어? 내가 이렇게 오래 갇혀 있었으면 됐잖아!”‘됐다고? 아니, 아직 많이 모자라. 네 목숨이 다른 사람의 목숨보다 귀하지는 않아.’ 나는 차갑게 쏘아붙였다.“내 할머니는 너 때문에 죽었어. 넌 죽어야 마땅해. 피의 빚은 피로 갚는다 했잖아.”강윤서는 내게 통하지 않자 배지유에게로 달려가 그의 다리를 붙잡았다.그러나 경호원들이 쇠사슬을 잡아당겨 그녀를 다시 끌고 갔다. 꼭 개처럼 질질 끌려가는 모습이었다.“지유 오빠! 예
하지만 받은 건 더 많은 고통과 절망뿐이었다.강윤서는 자신이 내연녀임을 인정하는 고백 영상을 촬영했고, 그 영상은 인터넷에 퍼졌다.여론은 급속히 바뀌었고, 나를 욕하던 사람들은 태도를 바꿔 강윤서를 비난하기 시작했다.그러나 나는 이런 상황이 전혀 흥미롭지 않았다.그들은 이렇게 하면 노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실을 감출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그건 착각이었다.배지유 역시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잘못을 씻어낼 수 있다고 믿었지만 잘못은 잘못일 뿐 모든 잘못이 사과로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설령 복수를 한다고 해도 그로 인해 마음속의 증오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상대방이 나의 고통을 완벽히 이해할 수도 없다.나는 이 모든 것을 무심하게 지켜보았다. 내 마음속 증오는 여전히 깊고 짙었다. 그들 중 누구도 죄가 없지 않았다.배지유는 나를 바라보며 간청하듯 말했다.“예은아, 네 손을 더럽힐 필요 없어. 내가 다 알아서 처리할게.”그는 내가 잔인한 장면을 보지 않도록 나를 차에 태워 보냈다.그 후에야 나는 알게 되었다.그는 그들을 별장에 가둔 채 서로를 죽고 죽이는 지경에 이르게 했고, 굶어 죽을 때까지 방치했다.나중에 시신이 발견되었을 때 그 모습은 끔찍하고 형언할 수 없었다.몸은 온통 상처투성이였고, 사체는 훼손되어 있었다.배지유는 외부에는 이렇게 해명했다.그 별장은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었고, 강윤서와 헤어진 후 그녀가 몰래 그곳에 들어갔다고.마치 그녀가 나를 모함하며 내가 몰래 별장에 침입해 배지유를 유혹하려 했다고 주장했던 것처럼 말이다.인터넷에서는 강윤서가 내연녀로 성공하지 못하고 정신이 나갔다며 비웃는 글들이 퍼졌다.스스로를 별장의 여주인으로 착각하며 몰래 들어가 살았고, 식량도 없이 굶어 죽을 정도로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는 소문까지 돌았다.강윤서의 이름은 죽어서도 악명만 남았다.그녀가 성형을 했다는 사실과 과거의 불명예스러운 행동들까지 모두 폭로되었다.나는 태블릿을 들고 그 소식을 보았다. 배지유는 내 다리에
부모님은 목숨을 걸고 나와 배지유를 지켜주셨다. 그해 나는 해바라기를 심어 주셨던 아빠와 나를 사랑해 주셨던 엄마를 잃었다. 물론 배지유의 엄마도 죽었지만 그는 조금도 슬퍼하지 않았고, 내 슬픔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사건 이후, 나는 다시는 배지유의 초상화를 그리지 않았다. 처음엔 그를 원망했다. 배지유 때문에 내 가족을 잃고, 내 삶을 폐쇄적인 세계로 가둔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가 나를 할머니 곁에서 데려와 자기 집에 가둬 놓았던 것, 심지어 할머니를 볼모로 나와 결혼까지 강요했던 것들이 너무도 미웠다. 그 시절 배지유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나는 그를 용서하려 애썼고, 스스로에게 잘 살아보자고 다짐했다. 어린 시절의 그는 그저 무고한 아이였다고 믿으려고 했다. 살아갈 힘이 없어질 때면 나는 마당의 해바라기를 보러 나갔다. 그리고 벽에 시들지 않는 꽃을 그렸다. 하지만 결국 강윤서의 등장은 아니, 정확히는 배지유가 내 모든 노력을 부숴버렸다. 그는 스스로를 키워 준 태양을 자신의 손으로 망가뜨렸다.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그날 배지유의 아버지가 찾아왔다. 그는 원래부터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다만 그동안 배지유가 너무 철저히 날 지켜서 손댈 기회가 없었던 것뿐이다. “내 아들은 지유뿐이야. 지유가 그동안 무엇을 하든 다 눈감아 왔어. 근데 이번에는 너 때문에 걔가 자신을 망가뜨릴 뻔했어.” “이제 너희의 이 유치한 드라마도 끝내. 그동안 너에게 진 빚도 어느 정도 갚았으니 남은 삶은 내가 사람을 붙여 잘 보살피도록 할게.” 처음부터 이 모든 비극은 배지유의 아버지가 내연녀와 시간을 보내느라 지유를 데리러 오는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몇 마디로 모든 걸 덮고 마치 나에게 큰 은혜라도 베푼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들은 나를 고아로 만들고도 자신의 아들 곁에 나를 두는 것이 나에게 베푼 은혜라고 여겼다. 나는 떠났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으로
부모님이 배씨 집안의 원수에게 살해당한 뒤, 옆집 남자아이는 배씨 집안의 도련님이 되었고 나를 집으로 데리고 갔다.그는 병적인 사랑으로 나를 10년 동안 억압하며, 할머니의 치료비를 빌미로 나에게 결혼을 강요했다.두 달 전, 그는 내 차가운 태도에 질렸는지 나와 닮은 여자를 찾아와 사랑을 과시했다.그는 둘의 다정한 사진들을 내 휴대폰에 계속 보내며 내 질투심을 자극하려 했다.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감이 묻은 붓으로 벽 가득 해바라기만 그렸다.오늘은 별장의 벽을 해바라기로 다 채울 것 같다. ‘할머니도 곧 퇴원하시겠지.’배지유는 할머니가 퇴원하면 만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나는 기분이 좋아져 콧노래를 부르며 벽을 칠하던 중 밖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매일 밤 여기에 오는 건 기본이잖아? 오늘은 확실히 잡아야겠어!”다른 사람들이 말했다.“윤서 언니, 사모님이 되고 우리 잊으면 안 돼요!”나는 급히 나가 그들에게 여기를 떠나라고 알려주고 싶었다. 이곳은 배지유가 누구도 들어오는 것을 금지한 곳이다.한 번은 내가 도망치려고 행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그는 그 사람을 식물인간으로 만들고 나를 이 별장에 가뒀다.이곳은 너무 외진 곳이라 도망칠 수가 없었다. 충성스러운 아주머니 한 명만 내 생활을 챙겨주고 있었다.문을 열자마자 내 얼굴과 너무나도 닮은 여자가 서 있었다.순간 공기가 얼어붙는 듯했다.머리부터 얼굴, 순백의 드레스까지 나 자신도 놀랄 정도로 닮아 있었다.그 여자는 바로 배지유가 찾은 어린 여자친구 강윤서였다.‘이렇게 닮은 얼굴을 찾는 것도 정말 쉽지 않았을 텐데.’강윤서는 몇 초간 멍하더니 얼굴 가득했던 미소가 분노로 변했다.그리고 내 뺨을 세게 때렸다.“너 뭐야? 네가 내 남자의 별장에서 뭐 하는 거야? 몰래 들어온 거 아니야? 아주 배짱 좋네!”내가 설명하려는 순간, 그녀는 내 머리채를 거칠게 잡아채더니 해바라기로 가득한 마당으로 나를 끌고 갔다.“이년, 내 얼굴로 성형해 내 남자 별장에 숨어? 좀
강윤서는 내 앞에서 자신 있게 그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곧 연결되었고, 차가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의 중이야, 나중에 얘기해.” 전화는 2초 만에 끊어졌고, 목소리는 냉담했다. 나는 도움을 청할 틈도 없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분명 배지유의 목소리였다. 강윤서는 내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내 얼굴을 핸드폰으로 때리며 말했다. “들었어? 이 번호가 내 자기 번호야, 너 공부 제대로 안 했구나!” 내가 아파서 그녀를 밀쳤다. “번호가 두 개인 것이 뭐가 이상해? 그냥 걸어봐, 그럼 알 수 있잖아?”강윤서의 세 꼬붕들이 내가 반항하자마자 달려들어 주먹과 발로 나를 마구 때렸다.“내연녀 주제에 윤서 언니한테 손을 대? 언니는 미래의 사모님이야. 맞고 싶어?”“아무 번호나 찍어서 배 대표님 번호라고 우겨? 거짓말을 하려면 머리를 좀 써야지.”“네 주제에 내연녀라고? 대표님이 네 거짓말을 밝혀내면 너 더 끔찍하게 죽을 거야!” 강윤서는 위에서 내려다보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럼 그 번호로 한번 걸어봐, 내 자기한테 번호 몇 개가 있는지 확인해보자!” 내가 가지고 있는 번호는 배지유가 나를 위해 만든 개인적인 번호였다. 그는 내가 전화를 놓칠까 봐 회의 중에도 무음 모드로 바꾸지 않았다. ‘여보’라는 타이틀도 그가 강제로 추가한 것이었다. 그걸 하지 않으면 내 할머니의 약을 끊을 거라고 협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배지유가 전화를 받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내가 당당한 표정을 지으니 강윤서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그녀는 즉시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나는 그 전화가 가기만 하면 우리의 관계를 증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높인 소리에서는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말이 들렸다. 그 순간 나는 멍하니 있었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충격을 받았다. 강윤서가 한숨을 내쉬며 나를 완전히 사기꾼으로 단정 짓더니 온 힘을 다해 내 뺨을 세게 갈겼다.길고 날카로운 손톱이 내 얼굴에 몇 줄의
강윤서는 전화 한 통을 받더니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길에 잠깐 세운 게 어쨌다고? 못 지나가는 건 네 문제지. 늙은 할망구가 운전은 왜 해!”전화를 끊는 강윤서의 목소리에서 상대방이 화가 잔뜩 난 아주머니임을 나는 알아챘다.강윤서 그들의 차는 길을 가로막고 있어 아주머니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아주머니는 서둘러 식사 준비를 해야 하기에 재료를 들고 걸어서 온다고 해도 시간이 꽤 걸릴 게 분명했다. ‘망했어...’기분이 잔뜩 상한 강윤서는 내 앞에 쪼그려 앉아 눈에 악의를 가득 담고 나를 내려다봤다.“너, 우리 자기 집을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어? 내가 우리 자기를 대신해서 널 어떻게 벌줄까?”함께 온 여자 중 한 명이 색깔이 다양한 페인트 통을 들고 내 머리 위에 쏟아부었다.“그림 그리는 거 좋아한다면서? 그래, 제대로 예쁘게 만들어 줘야지! 네 주제에 우리 윤서 언니 흉내를 내? 뻔뻔하기는!”다른 두 명도 덩달아 떠들기 시작했다.“남자가 그렇게 필요한 거야? 남자들 몇 명 불러서 재밌게 놀아주면 되겠네. 남의 남자친구 넘보지 말고!”“그건 너무 좋게 해주는 거잖아! 오늘 이 집 망가뜨린 거 다 물어내려면 너 완전 거덜 날걸? 그래도 남자 잘 꼬신다니까 고객 몇 명 소개해 줘서 돈 벌게 하면 되겠네!”강윤서는 내 얼굴을 한참 바라보더니 점점 더 화가 치미는지 갑자기 일어나 나를 세게 걷어찼다.“감히 내 얼굴을 따라 했어? 그럼 이 얼굴 다시 뺏어가는 건 당연한 거지!”코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끔찍한 고통에 정신이 아득해졌다.내 귀에는 그녀들의 비웃음 소리만 가득했다.“역시 가짜네! 진짜 코였으면 이렇게 쉽게 부러졌겠어? 진짜 웃긴다!”“그리고 머리도 윤서 언니랑 똑같이 했네? 머리도 잘라 줘야겠어!”“맞아, 윤서 언니처럼 흰 드레스도 입고 왔잖아? 그거도 벗겨 줘야지!”나는 어떻게든 저항하려 했지만 그녀들이 손발을 제압하며 때리는 주먹에 정신이 혼미해져 반항할 힘조차 없었다.
강윤서는 나비처럼 날아 배지유의 품에 안겼다. 조금 전 나를 학대하던 독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자기야, 이제야 왔어? 내가 안 왔으면 어떤 여자가 여기 숨어 들어와서 자길 유혹하려 한 줄도 몰랐을 거야.”강윤서는 한껏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저년이 자길 유혹하려고 몰래 집에 들어왔잖아! 여기 봐, 집을 완전 엉망으로 만들어 놨다니까? 그래서 내가 대신 혼내줬어!”그러면서 강윤서는 내 머리를 붙잡아 배지유의 발밑으로 나를 끌고 갔다. 가는 중에 또 한 번 발로 나를 찼다.“봐, 이제 잘못했다고 빌잖아. 그냥 돈 물게 하고 끝내면 어때?”강윤서는 순진한 척 웃으며, 천진난만한 얼굴로 말했다.배지유는 피투성이에다 흉측해진 내 모습을 보고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그가 기억하던 순수하고 청초한 나는 지금의 모습과 너무도 달랐다. 배지유는 나를 그저 침입자라고 생각하며 눈빛에 분노를 가득 담았다.“이 여자 처리해. 죽는 게 아까울 정도로 고통스럽게.”경호원들이 다가와 나를 질질 끌고 갔다. 마치 죽은 개를 끌고 가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보려 했지만 부러진 손가락으로는 할 수 없었다. 목에서는 단지 ‘허허’ 하는 쇳소리만 나올 뿐이었다.강윤서와 주변 사람들은 잠깐 놀랐지만 곧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그 미소는 말하고 있었다.“봤지? 내가 배지유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야. 조금 전 내가 너무 약했네. 더 세게 했어도 됐잖아.”그때 아주머니가 식재료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며 경악했다.“아니, 사람을 어떻게 이렇게 만들어 놔? 그러다가 예은 아가씨가 놀라면 어쩌려고!”아주머니는 평소처럼 내게 저녁으로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물으려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방 안은 온통 어지럽혀져 있었고, 내가 보이지 않았다.아주머니는 놀라며 소리쳤다.“대표님! 예은 아가씨가 사라졌어요!”배지유의 얼굴에는 혼란과 당황이 뒤섞였다. 그는 강윤서를 밀쳐내고 얼굴이 새파래지도록 온 집을 뒤졌다. 눈은 점점
부모님은 목숨을 걸고 나와 배지유를 지켜주셨다. 그해 나는 해바라기를 심어 주셨던 아빠와 나를 사랑해 주셨던 엄마를 잃었다. 물론 배지유의 엄마도 죽었지만 그는 조금도 슬퍼하지 않았고, 내 슬픔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사건 이후, 나는 다시는 배지유의 초상화를 그리지 않았다. 처음엔 그를 원망했다. 배지유 때문에 내 가족을 잃고, 내 삶을 폐쇄적인 세계로 가둔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가 나를 할머니 곁에서 데려와 자기 집에 가둬 놓았던 것, 심지어 할머니를 볼모로 나와 결혼까지 강요했던 것들이 너무도 미웠다. 그 시절 배지유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나는 그를 용서하려 애썼고, 스스로에게 잘 살아보자고 다짐했다. 어린 시절의 그는 그저 무고한 아이였다고 믿으려고 했다. 살아갈 힘이 없어질 때면 나는 마당의 해바라기를 보러 나갔다. 그리고 벽에 시들지 않는 꽃을 그렸다. 하지만 결국 강윤서의 등장은 아니, 정확히는 배지유가 내 모든 노력을 부숴버렸다. 그는 스스로를 키워 준 태양을 자신의 손으로 망가뜨렸다.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그날 배지유의 아버지가 찾아왔다. 그는 원래부터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다만 그동안 배지유가 너무 철저히 날 지켜서 손댈 기회가 없었던 것뿐이다. “내 아들은 지유뿐이야. 지유가 그동안 무엇을 하든 다 눈감아 왔어. 근데 이번에는 너 때문에 걔가 자신을 망가뜨릴 뻔했어.” “이제 너희의 이 유치한 드라마도 끝내. 그동안 너에게 진 빚도 어느 정도 갚았으니 남은 삶은 내가 사람을 붙여 잘 보살피도록 할게.” 처음부터 이 모든 비극은 배지유의 아버지가 내연녀와 시간을 보내느라 지유를 데리러 오는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몇 마디로 모든 걸 덮고 마치 나에게 큰 은혜라도 베푼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들은 나를 고아로 만들고도 자신의 아들 곁에 나를 두는 것이 나에게 베푼 은혜라고 여겼다. 나는 떠났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으로
하지만 받은 건 더 많은 고통과 절망뿐이었다.강윤서는 자신이 내연녀임을 인정하는 고백 영상을 촬영했고, 그 영상은 인터넷에 퍼졌다.여론은 급속히 바뀌었고, 나를 욕하던 사람들은 태도를 바꿔 강윤서를 비난하기 시작했다.그러나 나는 이런 상황이 전혀 흥미롭지 않았다.그들은 이렇게 하면 노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실을 감출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그건 착각이었다.배지유 역시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잘못을 씻어낼 수 있다고 믿었지만 잘못은 잘못일 뿐 모든 잘못이 사과로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설령 복수를 한다고 해도 그로 인해 마음속의 증오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상대방이 나의 고통을 완벽히 이해할 수도 없다.나는 이 모든 것을 무심하게 지켜보았다. 내 마음속 증오는 여전히 깊고 짙었다. 그들 중 누구도 죄가 없지 않았다.배지유는 나를 바라보며 간청하듯 말했다.“예은아, 네 손을 더럽힐 필요 없어. 내가 다 알아서 처리할게.”그는 내가 잔인한 장면을 보지 않도록 나를 차에 태워 보냈다.그 후에야 나는 알게 되었다.그는 그들을 별장에 가둔 채 서로를 죽고 죽이는 지경에 이르게 했고, 굶어 죽을 때까지 방치했다.나중에 시신이 발견되었을 때 그 모습은 끔찍하고 형언할 수 없었다.몸은 온통 상처투성이였고, 사체는 훼손되어 있었다.배지유는 외부에는 이렇게 해명했다.그 별장은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었고, 강윤서와 헤어진 후 그녀가 몰래 그곳에 들어갔다고.마치 그녀가 나를 모함하며 내가 몰래 별장에 침입해 배지유를 유혹하려 했다고 주장했던 것처럼 말이다.인터넷에서는 강윤서가 내연녀로 성공하지 못하고 정신이 나갔다며 비웃는 글들이 퍼졌다.스스로를 별장의 여주인으로 착각하며 몰래 들어가 살았고, 식량도 없이 굶어 죽을 정도로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는 소문까지 돌았다.강윤서의 이름은 죽어서도 악명만 남았다.그녀가 성형을 했다는 사실과 과거의 불명예스러운 행동들까지 모두 폭로되었다.나는 태블릿을 들고 그 소식을 보았다. 배지유는 내 다리에
나는 퇴원 후 회복에 최선을 다했다.그리고 배지유는 내가 퇴원하자마자 서둘러 나를 자택으로 데려갔다.강윤서와 그녀의 세 명의 꼬붕들이 끌려 나왔다.“예은아, 그들이 너한테 했던 짓, 반드시 두 배로 갚게 할 거야. 그러니까 제발 나한테 화내지 마, 응?”내 시선은 강윤서에게로 고정되었다. 분노가 치밀어 올라 심장이 터질 듯했다.그들은 지하실에서 반달 가까이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한 채 개처럼 묶여 있었다. 지금은 온몸에서 악취를 풍기며 흙투성이였다.강윤서는 나와 배지유를 보자마자 무릎을 꿇고 덜덜 떨며 빌기 시작했다.“대표님, 사모님, 제가 잘못했어요. 화 좀 푸시고 저를 살려만 주세요!”세 명의 꼬붕들은 서둘러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우린 속아서 그런 거예요! 다 강윤서가 시켜서 한 일이에요!”“맞아요, 억울하면 주범에게 갚으세요. 제발 우리만은 용서해주세요...”이들은 이미 더 이상 얻을 이득이 없게 되자 서로를 탓하며 머리채를 잡고 싸우기 시작했다. 오로지 자신만을 지키려는 본능뿐이었다.나는 비웃듯 웃으며 말했다.“너희들은 정말 아무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니? 그날 너희들도 다 손을 썼잖아? 피의 빚은 피로 갚아야 해. 내가 왜 너희를 용서해야 하지?”그들 모두가 나를 폭행하고 그 장면을 녹화해서 올렸고, 결국 그것이 내 할머니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그 누구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강윤서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소리쳤다.“넌 지금 멀쩡하잖아! 날 죽인다고 네가 얻는 게 뭐가 있겠어? 내가 이렇게 오래 갇혀 있었으면 됐잖아!”‘됐다고? 아니, 아직 많이 모자라. 네 목숨이 다른 사람의 목숨보다 귀하지는 않아.’ 나는 차갑게 쏘아붙였다.“내 할머니는 너 때문에 죽었어. 넌 죽어야 마땅해. 피의 빚은 피로 갚는다 했잖아.”강윤서는 내게 통하지 않자 배지유에게로 달려가 그의 다리를 붙잡았다.그러나 경호원들이 쇠사슬을 잡아당겨 그녀를 다시 끌고 갔다. 꼭 개처럼 질질 끌려가는 모습이었다.“지유 오빠! 예
배지유는 여전히 우리 사이를 회복하려 애쓰고 있었다. 마치 이사할 때마다 새롭게 심었던 해바라기처럼 말이다.“예은아, 다 괜찮아질 거야. 네가 회복되면 집에 데려가서 네가 좋아하는 해바라기도 심고, 같이 그림도 그리자.”나는 움직이지 않는 손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가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배지유는 내 의심 어린 눈빛을 읽고 다급히 말했다.“꼭 나아질 거야. 널 치료하고, 복수도 해줄게. 널 다치게 한 사람들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하지만 지금 나는 복수보다도 할머니가 더 걱정되었다. 할머니는 아마도 퇴원하셨을 텐데, 내가 할머니를 집에 모셔야 하는 시간을 놓쳐버렸다.지금 이 꼴로는 할머니를 뵐 수도 없었기에 배지유에게 제발 할머니께 아무것도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다 회복되면 그때 뵙겠다고.그런데 그날 나는 낯선 번호로 온 한 통의 영상을 받았다.영상 속에는 하얗게 센 머리카락을 한 할머니를 둘러싸고 사람들이 썩은 채소와 상한 달걀을 던지며 욕을 퍼붓고 있었다.입에 담기도 끔찍한 말들이 쏟아졌다.“네 손녀가 뻔뻔하게 남의 남편을 꼬시고도 사과할 줄 모르니 널 찾아왔지. 당장 걔를 내놔!”“부모도 없는 주제에 이런 애를 키워서 뭐 하겠어? 천박하고 역겨운 짓만 하고 다니잖아!”“네 손녀 인터넷에서 유명해졌다던데? 보라고, 본처한테 맞고 뻗은 꼴. 이런 애는 맞아도 싸다니까!”할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그 사람들과 따졌다.“우리 예은이는 그런 아이가 아니야. 너희들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지 마! 그런 짓 할 애가 아니라고!”그 순간, 내 심장이 멈추는 것만 같았다. 그건 내 할머니였다.강윤서는 내가 맞던 영상을 일부러 온라인에 퍼뜨렸다. 지금 그 영상은 이미 실검 1위에 올랐다.사람들은 나를 철저히 조롱하고, 내 신상을 샅샅이 뒤져 폭로했다.부모도 없는 고아가 몰래 성형해서 재벌가 저택에 숨어들어 남자를 꼬시려 했다는 이야기로 난리였다.유일한 내 가족인 할머니마저 그들의 공격과 조롱에 시달리고 있었다
배지유는 경호원의 만류를 무시하고 강물로 뛰어들어 나를 건져 올렸다. 정신없이 심폐소생술을 반복하고 인공호흡을 하면서 중얼거렸다.“예은아...내가 잘못했어. 뭐든지 네 뜻대로 할게, 제발 눈 좀 떠봐...”예전에는 죽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할머니를 위해 살기로 마음먹었다.배지유의 팔을 붙잡고 살려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부러진 손가락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그는 내가 뒤틀리고 변형된 손가락을 보자 눈빛이 광기로 물들었다.“네 손... 누가 한 거야?!”내가 그림 그리는 걸 얼마나 사랑했는지 배지유는 잘 알고 있었다. 내 손이 망가진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도.한때 그는 어린 시절처럼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부탁하며 우리의 관계가 회복되길 간절히 바랐다.하지만 지금, 그의 그 모든 바람은 산산조각이 났다.강윤서는 사람들을 데리고 뒤따라왔고, 배지유가 나를 구한 걸 보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강윤서는 도발적인 태도로 말했다.“내가 한 일이야! 누가 나 따라 그림을 그리라고 했어? 내 얼굴을 보고 성형수술까지 해서 널 유혹하려 하잖아. 나는 단지 걔한테 어울리지 않는 걸 없앤 것뿐이야!”배지유는 붉어진 눈으로 내 가슴을 압박하며 계속 심폐소생술을 했고, 드디어 내가 입을 벌려 물을 몇 번 뱉어냈다.강윤서는 배지유가 나를 그렇게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나 발을 동동 굴렀다.강윤서는 내가 그녀의 얼굴을 빌려 동정을 얻으려는 여자라고 여겼다.하지만 그녀는 배지유를 완전히 화나게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강윤서는 억울한 표정으로 대범한 척하며 말했다.“지유 오빠는 나를 제일로 사랑하지 않아? 설마 걔 때문에 날 탓하는 건 아니지? 난 네가 공개적으로 인정한 유일한 여자친구야. 다들 우리 둘이 결혼할 거라고 했어.”“나도 상처받고 질투도 난다고! 이렇게 잘난 나를 놔두고 왜 내 복제품을 찾은 거야? 넌 나만 사랑해야지, 다른 여자는 절대 안 돼!”강윤서는 자신의 소유욕이 가득한 애교로 배지유가 당장 사과하고
강윤서는 나비처럼 날아 배지유의 품에 안겼다. 조금 전 나를 학대하던 독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자기야, 이제야 왔어? 내가 안 왔으면 어떤 여자가 여기 숨어 들어와서 자길 유혹하려 한 줄도 몰랐을 거야.”강윤서는 한껏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저년이 자길 유혹하려고 몰래 집에 들어왔잖아! 여기 봐, 집을 완전 엉망으로 만들어 놨다니까? 그래서 내가 대신 혼내줬어!”그러면서 강윤서는 내 머리를 붙잡아 배지유의 발밑으로 나를 끌고 갔다. 가는 중에 또 한 번 발로 나를 찼다.“봐, 이제 잘못했다고 빌잖아. 그냥 돈 물게 하고 끝내면 어때?”강윤서는 순진한 척 웃으며, 천진난만한 얼굴로 말했다.배지유는 피투성이에다 흉측해진 내 모습을 보고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그가 기억하던 순수하고 청초한 나는 지금의 모습과 너무도 달랐다. 배지유는 나를 그저 침입자라고 생각하며 눈빛에 분노를 가득 담았다.“이 여자 처리해. 죽는 게 아까울 정도로 고통스럽게.”경호원들이 다가와 나를 질질 끌고 갔다. 마치 죽은 개를 끌고 가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보려 했지만 부러진 손가락으로는 할 수 없었다. 목에서는 단지 ‘허허’ 하는 쇳소리만 나올 뿐이었다.강윤서와 주변 사람들은 잠깐 놀랐지만 곧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그 미소는 말하고 있었다.“봤지? 내가 배지유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야. 조금 전 내가 너무 약했네. 더 세게 했어도 됐잖아.”그때 아주머니가 식재료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며 경악했다.“아니, 사람을 어떻게 이렇게 만들어 놔? 그러다가 예은 아가씨가 놀라면 어쩌려고!”아주머니는 평소처럼 내게 저녁으로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물으려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방 안은 온통 어지럽혀져 있었고, 내가 보이지 않았다.아주머니는 놀라며 소리쳤다.“대표님! 예은 아가씨가 사라졌어요!”배지유의 얼굴에는 혼란과 당황이 뒤섞였다. 그는 강윤서를 밀쳐내고 얼굴이 새파래지도록 온 집을 뒤졌다. 눈은 점점
강윤서는 전화 한 통을 받더니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길에 잠깐 세운 게 어쨌다고? 못 지나가는 건 네 문제지. 늙은 할망구가 운전은 왜 해!”전화를 끊는 강윤서의 목소리에서 상대방이 화가 잔뜩 난 아주머니임을 나는 알아챘다.강윤서 그들의 차는 길을 가로막고 있어 아주머니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아주머니는 서둘러 식사 준비를 해야 하기에 재료를 들고 걸어서 온다고 해도 시간이 꽤 걸릴 게 분명했다. ‘망했어...’기분이 잔뜩 상한 강윤서는 내 앞에 쪼그려 앉아 눈에 악의를 가득 담고 나를 내려다봤다.“너, 우리 자기 집을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어? 내가 우리 자기를 대신해서 널 어떻게 벌줄까?”함께 온 여자 중 한 명이 색깔이 다양한 페인트 통을 들고 내 머리 위에 쏟아부었다.“그림 그리는 거 좋아한다면서? 그래, 제대로 예쁘게 만들어 줘야지! 네 주제에 우리 윤서 언니 흉내를 내? 뻔뻔하기는!”다른 두 명도 덩달아 떠들기 시작했다.“남자가 그렇게 필요한 거야? 남자들 몇 명 불러서 재밌게 놀아주면 되겠네. 남의 남자친구 넘보지 말고!”“그건 너무 좋게 해주는 거잖아! 오늘 이 집 망가뜨린 거 다 물어내려면 너 완전 거덜 날걸? 그래도 남자 잘 꼬신다니까 고객 몇 명 소개해 줘서 돈 벌게 하면 되겠네!”강윤서는 내 얼굴을 한참 바라보더니 점점 더 화가 치미는지 갑자기 일어나 나를 세게 걷어찼다.“감히 내 얼굴을 따라 했어? 그럼 이 얼굴 다시 뺏어가는 건 당연한 거지!”코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끔찍한 고통에 정신이 아득해졌다.내 귀에는 그녀들의 비웃음 소리만 가득했다.“역시 가짜네! 진짜 코였으면 이렇게 쉽게 부러졌겠어? 진짜 웃긴다!”“그리고 머리도 윤서 언니랑 똑같이 했네? 머리도 잘라 줘야겠어!”“맞아, 윤서 언니처럼 흰 드레스도 입고 왔잖아? 그거도 벗겨 줘야지!”나는 어떻게든 저항하려 했지만 그녀들이 손발을 제압하며 때리는 주먹에 정신이 혼미해져 반항할 힘조차 없었다.
강윤서는 내 앞에서 자신 있게 그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곧 연결되었고, 차가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의 중이야, 나중에 얘기해.” 전화는 2초 만에 끊어졌고, 목소리는 냉담했다. 나는 도움을 청할 틈도 없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분명 배지유의 목소리였다. 강윤서는 내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내 얼굴을 핸드폰으로 때리며 말했다. “들었어? 이 번호가 내 자기 번호야, 너 공부 제대로 안 했구나!” 내가 아파서 그녀를 밀쳤다. “번호가 두 개인 것이 뭐가 이상해? 그냥 걸어봐, 그럼 알 수 있잖아?”강윤서의 세 꼬붕들이 내가 반항하자마자 달려들어 주먹과 발로 나를 마구 때렸다.“내연녀 주제에 윤서 언니한테 손을 대? 언니는 미래의 사모님이야. 맞고 싶어?”“아무 번호나 찍어서 배 대표님 번호라고 우겨? 거짓말을 하려면 머리를 좀 써야지.”“네 주제에 내연녀라고? 대표님이 네 거짓말을 밝혀내면 너 더 끔찍하게 죽을 거야!” 강윤서는 위에서 내려다보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럼 그 번호로 한번 걸어봐, 내 자기한테 번호 몇 개가 있는지 확인해보자!” 내가 가지고 있는 번호는 배지유가 나를 위해 만든 개인적인 번호였다. 그는 내가 전화를 놓칠까 봐 회의 중에도 무음 모드로 바꾸지 않았다. ‘여보’라는 타이틀도 그가 강제로 추가한 것이었다. 그걸 하지 않으면 내 할머니의 약을 끊을 거라고 협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배지유가 전화를 받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내가 당당한 표정을 지으니 강윤서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그녀는 즉시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나는 그 전화가 가기만 하면 우리의 관계를 증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높인 소리에서는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말이 들렸다. 그 순간 나는 멍하니 있었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충격을 받았다. 강윤서가 한숨을 내쉬며 나를 완전히 사기꾼으로 단정 짓더니 온 힘을 다해 내 뺨을 세게 갈겼다.길고 날카로운 손톱이 내 얼굴에 몇 줄의
부모님이 배씨 집안의 원수에게 살해당한 뒤, 옆집 남자아이는 배씨 집안의 도련님이 되었고 나를 집으로 데리고 갔다.그는 병적인 사랑으로 나를 10년 동안 억압하며, 할머니의 치료비를 빌미로 나에게 결혼을 강요했다.두 달 전, 그는 내 차가운 태도에 질렸는지 나와 닮은 여자를 찾아와 사랑을 과시했다.그는 둘의 다정한 사진들을 내 휴대폰에 계속 보내며 내 질투심을 자극하려 했다.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감이 묻은 붓으로 벽 가득 해바라기만 그렸다.오늘은 별장의 벽을 해바라기로 다 채울 것 같다. ‘할머니도 곧 퇴원하시겠지.’배지유는 할머니가 퇴원하면 만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나는 기분이 좋아져 콧노래를 부르며 벽을 칠하던 중 밖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매일 밤 여기에 오는 건 기본이잖아? 오늘은 확실히 잡아야겠어!”다른 사람들이 말했다.“윤서 언니, 사모님이 되고 우리 잊으면 안 돼요!”나는 급히 나가 그들에게 여기를 떠나라고 알려주고 싶었다. 이곳은 배지유가 누구도 들어오는 것을 금지한 곳이다.한 번은 내가 도망치려고 행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그는 그 사람을 식물인간으로 만들고 나를 이 별장에 가뒀다.이곳은 너무 외진 곳이라 도망칠 수가 없었다. 충성스러운 아주머니 한 명만 내 생활을 챙겨주고 있었다.문을 열자마자 내 얼굴과 너무나도 닮은 여자가 서 있었다.순간 공기가 얼어붙는 듯했다.머리부터 얼굴, 순백의 드레스까지 나 자신도 놀랄 정도로 닮아 있었다.그 여자는 바로 배지유가 찾은 어린 여자친구 강윤서였다.‘이렇게 닮은 얼굴을 찾는 것도 정말 쉽지 않았을 텐데.’강윤서는 몇 초간 멍하더니 얼굴 가득했던 미소가 분노로 변했다.그리고 내 뺨을 세게 때렸다.“너 뭐야? 네가 내 남자의 별장에서 뭐 하는 거야? 몰래 들어온 거 아니야? 아주 배짱 좋네!”내가 설명하려는 순간, 그녀는 내 머리채를 거칠게 잡아채더니 해바라기로 가득한 마당으로 나를 끌고 갔다.“이년, 내 얼굴로 성형해 내 남자 별장에 숨어?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