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예쁜이, 라운지로 가서 옷 갈아입자. 이렇게 젖은 채로 있으면 불편하잖아.”

도경호가 김리아를 바닥에서 일으켜 세웠다.

“그냥 계약일 뿐이잖아. 나 기분 좋게 해주면 내가 사인해 줄게.”

김리아는 숨이 턱 막혔다. 남자가 여자를 데리고 라운지로 가서 옷을 갈아입는다? 이런 곳에서 라운지가 뭐 하는 곳인지 그녀가 모를까. 남자가 발동이 걸리면 언제든 즐기도록 만들어진 곳이었다.

그녀는 민우빈을 차갑게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이 이 바람둥이에게 끌려가는 걸 그냥 보고만 있으려는 걸까?

그런데 민우빈이 덤덤하게 말했다.

“도 대표가 사인하면 나도 하지.”

그 말에 김리아는 차가운 숨을 들이켰다.

민우빈은 자기 손으로 그녀를 다른 남자의 품에 밀어 넣고 있었다.

정인수는 잔뜩 기뻐하며 김리아에게 눈치를 주었다. 큰 거래를 위해서 조금의 희생은 괜찮지 않나. 그는 서둘러 문을 열어주었다.

김리아는 무섭도록 가만히 있었다. 조금 전 분노로 그녀의 등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는데 이때 문밖에서 강력한 에어컨 바람이 불어오자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굴하지 않고 그를 노려봤지만 민우빈의 시선은 그녀에게 향하지 않았다.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번쩍 들었고 한참 후 고개를 들며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민 대표님.”

도경호가 김리아를 데리고 라운지로 갔다.

그때 업장 매니저가 노출이 더 심한 검은색 원피스를 갈아입을 옷으로 가져왔다. 이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당연히 알고 있던 그는 서둘러 문을 닫고 나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도경호는 김리아를 밀쳤고 중심을 잃은 그녀는 비틀거리며 라운지 소파에 쓰러졌다.

“착하지, 일단 한번 놀고 이따 호텔로 가서 실컷 즐기자고.”

김리아는 남자가 덮쳐오며 그녀의 옷을 힘껏 당겨 억지로 입 맞추려는 걸 감지하고는 고개를 돌려 피했다. 남자의 턱에 어깨가 세게 부딪히자 고통에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아무 소리를 내지 못했다. 멍이 들겠지.

남자의 얼굴에는 흥분된 표정이 가득했다.

“피하지 마, 예쁜이. 정말 예쁘네. 온몸에 살이 별로 없는데 전부 있어야 할 곳에 모였네? 허리면 허리, 가슴이면 가슴, 곧게 뻗은 다리까지. 쯧, 처음도 아닌 것 같은데 왜 고상한 척이야? 힘 풀어, 내가 기분 좋게 해줄게...”

김리아는 도경호를 격렬하게 밀쳐내고 긴 다리를 뻗어 그를 소파 아래로 물러나게 했다.

바닥으로 내팽개쳐진 도경호는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눈매를 치켜올렸다.

“날 발로 찼어? 계약하기 싫어? 정 대표가 널 왜 데려왔겠어, 내 취향을 아니까. 오기 전에 이미 예상했잖아?”

김리아는 속으로 저주를 퍼부었다.

‘알았으면 내가 왔겠니?’

“도 대표님은 저 감당 못 하세요.”

그녀가 덤덤하게 웃자 도경호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사악하게 웃었다.

“내가 감당하지 못할 여자도 있어? 장난해?”

김리아가 물었다.

“결혼하셨어요?”

도경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충분히 즐기지 못했는데 그렇게 일찍 결혼하고 싶지 않았다.

김리아는 긴 머리카락을 손으로 배배 꼬았다.

“처음 만나서 저에 대해 잘 모르시는 것 같네요. 저는 집착이 좀 심해서 목적을 이룰 때까지 그만두지 않거든요. 도 대표님이 저랑 자면 저랑 결혼할 때까지 매달릴 거예요. 부릴 수작은 가득하죠. 말해볼까요? 당신 애인이랑 헤어지게 하고 맞선도 방해하면서 영상으로 이미지 만들어서 인터넷에 뿌려도 돼요. 아, 콘돔에 손을 쓰거나 약도 바꿔서 몰래 애도 낳겠죠. 어때요? 잘 생각하세요. 그래도 하고 싶어요? 제가 못할 거라 생각 마세요.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해낼 수 있으니까.”

“...”

마치 그녀와 엮이면 성가신 문제가 더미로 생길 것 같았다.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다. 어른들의 장난으로 잠깐의 육체적 쾌락은 좋지만 한평생 성가신 꼬리가 따라다니는 건 별로였다. 말투를 들어보니 농담 같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