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둘러 앞으로 걸어가, 내 이름을 힘껏 눌러 적었다.곧 직원이 내게 입장권과 방 열쇠를 건네며 말했다.“김 선생님, 당신의 입장권과 객실 카드입니다.”물론 서정아는 당연히 입장할 수 없었다. 그녀는 풀이 죽은 얼굴로 말했다.“영준아, 내 잘못이야. 여기서 기다릴 테니까 얼른 들어가 봐.”나는 더 이상 그들과 말을 섞기 싫어 등을 돌려 걸어갔다.그때 뒤에서 맑고 씩씩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김 선생님, 잠시만요!”고개를 돌리니, 하얀 가운을 입은 키 큰 남자가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누구세요?” 내가 의아한 듯 물었다.“이번 세미나 주요 담당자 중 한 명입니다. 전 신운호라고 합니다.”신운호. 왠지 익숙한 이름이다. 신운호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정신과 전문가로, 꽤 잘 알려져 있다. 다만, 실물은 사진보다 훨씬 위엄 있어 보였다.신운호는 미소를 지으며 나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고영준과 김은하를 흘낏 보고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김 선생님께서 쓴 논문을 모두 읽어봤습니다. 정신과 분야에서 보기 드문 인재시더군요. 이번 기회를 잘 활용하시길 바랍니다. 쓸데없는 사람들과 일 때문에 방해받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지만 곧 그의 말뜻을 알아차렸다.‘나와 고영준의 소문이 이미 널리 퍼졌나 보네.’나는 싱긋 웃은 뒤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신 교수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무엇이 중요한지 잘 압니다. 제 앞길을 농담 삼아 망칠 생각은 없으니까요.”이번 세미나는, 어쩌면 고영준과 완전히 결별하고 새 인생을 시작할 전환점이 될 수도 있었다.그때 전국 정신과 분야의 최고 권위자인 신운호가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본 고영준이 김은하를 남겨둔 채 허둥지둥 달려왔다.고영준이 손을 내밀며 아부하는 말투로 말했다.“신 교수님, 안녕하세요. 저는 제일 병원의 정신과 과장, 고영준입니다.”신운호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을 뿐, 그의 손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대신
최신 업데이트 : 2025-01-07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