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다녀올 테니까 먼저 마셔요.”화장실로 들어간 나는 바로 문을 잠그고 아까 마셨던 술을 모조리 토해냈다.그렇게 속을 비워낸 다음 문을 열려고 문고리를 잡았을 때 나는 문득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약 탄 거 효과는 언제 생기는 거야? 확실한 거지?”정지훈이 나지막하게 묻자 한유라가 웃으며 대답했다.“당연하지, 내가 산 건데 절대 문제없어.”“반 시간이면 약효가 생기고 그럼 바로 기절한대, 자세히 물어보고 추천까지 받아서 산 거니까 걱정 마.”“그런데 임신을 할지 말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한유라의 말을 들은 정지훈이 감탄하고 있을 때 한유현의 목소리도 흘러나왔다.“걱정하지 마, 꼭 건강한 아들 낳아줄 거야.”“그리고 한 번으로 안 되면 여러 번 시도하면 되는 거지.”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남편에 나는 입을 틀어막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어쩐지 전생에 정지훈과 함께 나를 때리더라니, 애초에 한유현도 이 기획에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이야기를 들을수록 남편에 대한 원망이 짙어져 간 나는 지금 손에 칼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그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싶었다.분노에 가슴이 떨려오는데도 그들의 망발은 끊이지 않고 있었다.“형수님 그렇게 예쁘신데 형님은 진짜 대단하세요, 저한테 다 주신다고 하시고.”정지훈의 역겨운 말 뒤로 남편의 더한 말이 들려왔다.“세상에 예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걔 아니라도 난 괜찮아.”“매부가 좋아하면 다행이지, 마음껏 가지고 놀아.”“잘됐다 여보, 오늘 드디어 당신 소원 이루겠어.”잔을 부딪치는 소리와 그들의 신난 웃음소리가 함께 들려왔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정지훈의 목소리도 들려왔다.“나 벌써부터 너무 기대돼.”“아기 태어나면 내가 잘 키워줄게.”시어머니도 웃으며 그들의 말에 동조했고 술자리의 분위기는 점차 무르익어갔다.하지만 화장실에서 이 모든 것을 듣고 있던 나는 코웃음을 쳤다.고작 그 정도 수법으로 나는 속이려 하다니, 사실 그들은 이미 내가 놓은 덫에 걸려들어 있었다
최신 업데이트 : 2024-12-23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