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미친년이...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내 말을 들은 시어머니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 나를 욕했고 남편은 나에게로 다가오며 내 뺨을 때렸다.“짜악!”“너 미쳤어? 우리 엄마가 어떻게 애를 낳아!”나는 부어오른 볼을 감싸 쥔 채 남편을 노려보며 대꾸했다.“여자는 애 낳는 사람일 뿐이라며, 왜 어머니는 안되는 거야?”“나는 되고 어머니만 안돼?”내 말에 제대로 열 받은 남편은 내 목을 조르며 두 눈을 시뻘겋게 뜨고 말했다.“너 진짜 미쳤구나.”“감히 누구 앞이라고 그딴 말을 지껄여.”“애 안 낳겠다고 계속 버티면 내가 너 죽여버릴 거야.”남편의 손아귀에 힘이 잔뜩 실려있어 나는 점점 숨이 막혀왔고 저 얼굴을 계속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 치가 떨리게 싫었다.남편은 내가 울든 말든 계속 손을 휘두르고 있었고 내가 소리를 지르면 소리가 듣기 싫다고 그렇게 해서 정지훈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나 있겠냐고 타박했다.정지훈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제 여자도 갖다 바치는 저런 사람을 남편으로 선택한 나 자신도 점점 원망스러워졌다.“좀 예쁘게 울 순 없어?”“전에는 소리 잘만 쳤잖아, 왜 지금은 못 하는 척이야.”시누이는 옆에서 제 남편인 정지훈에게 매달린 채 고생한다고 아양을 떨어댔다.그녀는 내가 복이 있어 정지훈의 아이도 낳을 수 있게 된 거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그들 눈에 나는 그저 정지훈이라는 이 집안의 기둥을 기쁘게 하는 도구에 불과했다.하지만 다시 태어난 이상 나는 절대 그들에게 당해줄 생각이 없었다.지난 생에 나를 짓밟았던 사람들이 마땅한 대가를 치르게 해줄 생각이었다.그때 한유라가 갑자기 다가오더니 한유현을 밀치며 말했다.“오빠, 언니가 싫다는데 그만해. 와이프한테 이게 뭐 하는 짓이야.”말을 하면서도 눈을 연신 깜빡이는 한유라에 그녀의 저의를 알아챈 한유현은 휘두르던 손을 멈추었다.전생의 나는 한유라가 없던 양심이 갑자기 생겨 나를 도와준 줄 알았는데 사실 그들은 애초에 나에게 약을 먹일 생각으로 물러
식사 준비를 마치자 그들은 나를 상석에 앉혔다.여기 앉으니 정말 세상의 모든 것과 멀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전생의 나는 이 자리에서 그들에게 속아 넘어가 약을 마셔버렸지만 이번에는 내가 그들을 속일 차례였다.나는 곧 있을 재미난 구경거리를 기대하며 무표정을 유지한 채 가만히 앉아있었는데 내 예상대로 남편이 말을 걸어왔다.“생각은 해봤어? 아이 낳는 게 뭐 힘들다고 그렇게 밍기적거려?”“다시 한번 말하는데 거절하기만 해.거절하는 즉시 내 뺨을 때릴 심산인지 남편은 이글이글한 눈동자로 나를 주시하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정지훈이 웃으며 말했다.“형수님, 너무 걱정 마시고 마음 편하게 먹으세요.”“형수님이 아이만 낳아주시면 애한테는 제가 모든 조건을 다 최고로 맞춰줄 겁니다.”내가 시누이보다 예뻐서 전부터 나를 보는 정지훈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는데 이제는 제 아이를 낳아주게 생겨서 더 거리낌이 없어진 건지 그의 눈에는 탐욕이 가득했다.그는 제 발로 굴러들어온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고 나를 탐해보려는 것 같았다.그때 시어머니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또 나를 비꼬기 시작했다.“넌 대체 뭘 고민하는 거니? 어차피 애 낳아야 하는데 누구 애를 낳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이렇게 좋은 조건에 고민이 왜 필요하니? 나 같았으면...”시누이는 이번에도 시어머니의 말을 막으며 말했다.“엄마, 언니가 싫다는 거 억지로 안 시키기로 했잖아요.”나는 코웃음을 치며 한유라의 출중한 연기를 지켜보았다.어차피 나중에 나에게 약을 먹일 생각으로 연기를 하는 거겠지만 그들이 간과한 게 있는데 이번에 먼저 약을 탄 쪽은 바로 나라는 것이다.“언니, 오늘은 내가 잘못한 거니까 내가 한 잔 줄게요. 같이 마셔줘요.”술잔을 든 나는 다들 보는 앞에서 원샷을 했고 시누이도 술을 마신 뒤 한유현을 보며 말했다.“오빠도 언니한테 잘못한 게 있는데 한잔해야지?”“알았어, 마시면 될 거 아니야.”남편이 못마땅해하며 술잔을 비우자 한유라는 또 시어머니 쪽을 바라봤다.“애
“화장실 다녀올 테니까 먼저 마셔요.”화장실로 들어간 나는 바로 문을 잠그고 아까 마셨던 술을 모조리 토해냈다.그렇게 속을 비워낸 다음 문을 열려고 문고리를 잡았을 때 나는 문득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약 탄 거 효과는 언제 생기는 거야? 확실한 거지?”정지훈이 나지막하게 묻자 한유라가 웃으며 대답했다.“당연하지, 내가 산 건데 절대 문제없어.”“반 시간이면 약효가 생기고 그럼 바로 기절한대, 자세히 물어보고 추천까지 받아서 산 거니까 걱정 마.”“그런데 임신을 할지 말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한유라의 말을 들은 정지훈이 감탄하고 있을 때 한유현의 목소리도 흘러나왔다.“걱정하지 마, 꼭 건강한 아들 낳아줄 거야.”“그리고 한 번으로 안 되면 여러 번 시도하면 되는 거지.”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남편에 나는 입을 틀어막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어쩐지 전생에 정지훈과 함께 나를 때리더라니, 애초에 한유현도 이 기획에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이야기를 들을수록 남편에 대한 원망이 짙어져 간 나는 지금 손에 칼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그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싶었다.분노에 가슴이 떨려오는데도 그들의 망발은 끊이지 않고 있었다.“형수님 그렇게 예쁘신데 형님은 진짜 대단하세요, 저한테 다 주신다고 하시고.”정지훈의 역겨운 말 뒤로 남편의 더한 말이 들려왔다.“세상에 예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걔 아니라도 난 괜찮아.”“매부가 좋아하면 다행이지, 마음껏 가지고 놀아.”“잘됐다 여보, 오늘 드디어 당신 소원 이루겠어.”잔을 부딪치는 소리와 그들의 신난 웃음소리가 함께 들려왔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정지훈의 목소리도 들려왔다.“나 벌써부터 너무 기대돼.”“아기 태어나면 내가 잘 키워줄게.”시어머니도 웃으며 그들의 말에 동조했고 술자리의 분위기는 점차 무르익어갔다.하지만 화장실에서 이 모든 것을 듣고 있던 나는 코웃음을 쳤다.고작 그 정도 수법으로 나는 속이려 하다니, 사실 그들은 이미 내가 놓은 덫에 걸려들어 있었다
문밖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점차 작아지자 나는 그제야 화장실을 나섰다.나가보니 다들 테이블에 엎어져서 헛소리를 내뱉고 있었다.시계를 보니 이제 반 시간만 더 지나면 다들 제대로 미쳐버릴 것 같았다.시누이는 엎드린 채로 언니가 아이를 대신 낳아줘서 좋다고 했고 남편은 아이만 낳으면 돈줄을 꽉 묶어둘 수 있다고 더 좋아했으며 시어머니는 잠에 빠진 채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나는 그들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고 바로 방으로 들어가 짐을 챙긴 뒤 그들이 나를 찾지 못하도록 택시를 잡고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오랜만에 푹 자던 나는 이튿날 아침, 시끄럽게 울려대는 핸드폰에 미간을 찌푸린 채 눈을 뜨고 전화를 받았다.“임지연, 너 지금 어디야!”따져 묻는 남편의 목소리 뒤로 한유라와 정지훈이 싸우는 소리, 시어머니가 말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내가 어딨든 그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인데?”내가 감정 없는 사람처럼 차갑게 대꾸하자 남편은 열 받았는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너 어제 우리한테 뭐 먹인 거야?”그 말에 나는 일부러 놀란 듯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다.“어제저녁 아가씨가 준비한 거 아니었어?”“여보, 그건 아가씨한테 직접 물어야지 나한테 이러면 어떡해.”한유라가 술에 약을 탔다고 자백할 수는 없었던 남편은 말문이 막혔는지 가만히 있다가 화를 풀 데가 없어 다시 나한테 호통을 쳤다.“삼십 분 줄 테니까 당장 집으로 튀어와!”“그 집으로 다시 돌아갈 일은 없으니까 꿈 깨.”“네가 죽고 싶어서 환장했지? 당장 와,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내가 코웃음을 치자 남편은 또 흉악한 본색을 드러내며 나를 협박했다.“내가 거길 뭐하러 다시 가겠어? 당신들한테 또 당할 걸 알면서 제 발로 찾아갈 정도로 바보 아니야 나.”남자가 돼서 제 아내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게 얼마나 역겨운 일인지 한유현 본인은 자각을 하지 못한 것 같아서 나는 더 화가 났다.“진짜 안 와? 안 오면 너 나랑 이혼해야 될 텐데.”잠깐의 침묵 뒤에 들려온 저 이혼이라는 말에 나는
“뭐라고요?”“유라가 병이 없는데도 날 속였다고요?”“네, 아가씨가 애 낳기 싫다고 거짓말한 거예요.”믿을 수 없다는 듯 묻는 정지훈에 나는 자연스레 한유라를 모함하며 그녀를 궁지로 몰았다.내 말을 같이 들은 한유라는 당황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제 남편에게 해명을 하려 했다.“여보, 언니 말 듣지 마. 저거 그냥 다 지어내는 얘기야. 내가 어떻게 당신 아이를 낳기 싫을 수 있겠어?”“짜악!”“그럼 어디 한번 해명해봐,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강한 파열음 소리와 함께 분노에 찬 정지훈의 외침이 들려왔다.“어릴 때부터 아픈 걸 너무 무서워했어서 아이 낳는 게 아플까 봐... 그래서 거짓말한 거야.”“하지만 당신한테는 늘 진심이었어, 나 믿어줘 여보...”한유라가 딸꾹질까지 해가며 해명을 했지만 정지훈은 여전히 화가 난 듯했다.“그렇게 아플까 봐 무서우면 그냥 이혼하자, 꼴도 보기 싫으니까 꺼져.”“아니야... 나 이혼 못 해.”“그래, 어젯밤에 우리 했었잖아! 진짜 아이가 생겼을 수도 있는데...”“그리고 당신은 그냥 아이가 갖고 싶은 거잖아, 우리 엄마도...”“짜악!”정지훈은 또 한 번 한유라의 뺨을 내려쳤다.“그게 내 애라는 걸 어떻게 믿어?”“어젯밤이 얼마나 개판이었는데 네 그 멍청한 오빠 애일 수도 있지.”또 한 번의 파열음과 함께 정지훈의 호통이 들려오자 한유라는 울어 젖히며 말했다.“당연히 당신 애지, 어떻게 다른 사람 애일 수가 있겠어.”욕하고 때리고 우는 소리가 다 섞인 수화기 너머의 음성이 너무 시끄러웠던 나는 그만 전화를 끊어버렸다.그 집 사람들이랑은 더 엮이기도 싫었고 본인들끼리 물고 뜯고 하는 것을 관전하는 취미도 없었던 나는 바로 이혼 변호사를 찾기 시작했다.양심이라고는 개나 줘버린 남편과 파렴치한 그 집안 식구들에게 치가 떨려 하는 나를 보고 사건의 자초지종을 묻던 친구는 내 얘기가 끝나자마자 가슴 아픈 표정으로 내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처음부터 네 남편 제대로 된 인간은 아니구나 싶었어.”
내가 택시를 타고 수연이의 회사로 가자 수연이는 바로 달려오며 나를 맞아주었다.“왜 이렇게 늦게 와, 네가 구경거리 놓칠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데.”“뭔데 그래?”“저기 봐봐!”내가 의아해서 묻자 수연이는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그녀의 손이 가리키는 곳에는 내 시누이였던 한유라가 있었는데 그녀는 마침 정지훈의 말에 매달리며 눈물 자국으로 범벅된 얼굴을 한 채 애원하고 있었다.“여보, 이거 봐봐. 나 임신했다니까.”하지만 한유라가 힘겹게 내민 검사보고서는 정지훈에 의해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당신 왜 그래? 내가 당신 아이 임신했다니까!”남편의 믿을 수 없는 행동에 한유라는 숨넘어갈 듯 울고 있었고 정지훈은 그녀를 보며 차갑게 대꾸했다.“임신하면 뭐? 그게 내 애라는 증거 있어?”정지훈의 눈에는 한유라를 향한 혐오가 가득 차 있었다.그 눈을 보며 냉소를 흘리던 나는 자연스레 내가 탔던 약을 떠올렸다.그날 밤 다들 그 약을 마신 탓에 정말 개판이 따로 없었을 텐데 그러니 정지훈이 아이의 출처를 의심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는 했다.그 혼란스러운 틈에 다들 이성을 잃었으니 다른 남자와 잠을 잤다고 해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생긴 아이를 제 아이라고 인정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당신... 어떻게 자기 애도 모른 척할 수 있어?”한유라는 서러운 얼굴로 남편을 쳐다보면서도 그의 팔만은 꼭 잡고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하지만 그도 잠시, 그녀는 정지훈에 의해 아까 나부끼던 종이처럼 똑같이 바닥으로 나가떨어졌다.“이거 놔, 너도 역겹고 너희 집안 식구들도 다 구역질 나게 싫으니까.”험악하게 인상을 쓰고 욕하는 정지훈 때문에 주위에는 사람들이 점점 몰려들었지만 한유라는 그런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정지훈의 다리에 매달리며 말했다.“당신이 뭐라고 해도 난 어디 안 가, 내가 임신한 건 당신 아이란 말이야!”“꺼져!”정지훈은 그런 한유라를 발로 뻥 차버리며 소리쳤다.“세상에 널린
나와 남편이 이혼소송을 할 때 남편과 시어머니는 하루가 멀다 하게 나를 귀찮게 했다.나를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그들은 매일 방법을 바꿔가며 사과를 했다.“지연아, 내가 이렇게 사과하마, 무릎이라도 꿇을까? 제발 이혼만은 안된다.”“여보, 그때는 내가 잠시 미쳤었나 봐. 내가 정말 잘못했어.”“제정신이 아니어서 그런 거니까 한 번만 용서해주면 안 될까?”“여보, 우리 이제 당신 없으면 안 되는 거 알잖아.”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가식적인 사과에 나는 코웃음을 쳤다.“이미 늦었어, 어차피 당신네 가족은 나를 애 낳는 도구로밖에 안 보잖아.”“그냥 알아서 낳으면 도구도 필요 없을 텐데. 어머니는 임신 안 됐어?”조롱 섞인 내 말에 이혼하려는 결심이 굳건하다는 걸 보아냈는지 한유현은 더는 애원하지 않고 나를 협박하기 시작했다.“너 딱 기다려. 내가 너 찾아내면 바로 다리부터 분질러버릴 거니까.”“어쩜 그렇게 매정해 너는? 이 집안이, 가족이 너한테는 버리면 바로 버려지는 거야?”“너 안 오면 엄마 약 먹고 자살하겠대. 그럼 넌 이제 살인자가 되는 거야.”낯선 전화번호로 걸려온 연락이 고작 남편과 시어머니의 욕설과 협박이라는 사실이 웃겼던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저런 집안과는 한시라도 빨리 연락을 끊는 게 좋을 것 같아 집을 나오자마자 차단했던 건데 이렇게 전화번호까지 바꿔서 전화해대는 걸 보니 그 노력이 가상하긴 한 것 같았다.그날 밤, 이수연은 나에게 아주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다.흥신소직원이 남편의 외도증거는 물론 정지훈의 비리 증거까지 모조리 찾아냈다는 두 소식이 한꺼번에 들려오자 나는 정지훈의 증거부터 경찰에 넘겼다.하지만 제보하는 이의 이름은 시누이의 이름으로 대신했다.얼마 전 남편한테 그렇게 얻어맞았으니 원망이 대단할 텐데 내가 그녀를 대신해서 화풀이를 해준 것이니 한유라는 정말 나한테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내 제보는 빠르게 수용됐고 정지훈은 3일 만에 회사에서 해고된 채 횡령한 자금은 두 배로 채워 넣어야 한다는 통보를 받게
나와 남편이 이혼소송을 할 때 남편과 시어머니는 하루가 멀다 하게 나를 귀찮게 했다.나를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그들은 매일 방법을 바꿔가며 사과를 했다.“지연아, 내가 이렇게 사과하마, 무릎이라도 꿇을까? 제발 이혼만은 안된다.”“여보, 그때는 내가 잠시 미쳤었나 봐. 내가 정말 잘못했어.”“제정신이 아니어서 그런 거니까 한 번만 용서해주면 안 될까?”“여보, 우리 이제 당신 없으면 안 되는 거 알잖아.”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가식적인 사과에 나는 코웃음을 쳤다.“이미 늦었어, 어차피 당신네 가족은 나를 애 낳는 도구로밖에 안 보잖아.”“그냥 알아서 낳으면 도구도 필요 없을 텐데. 어머니는 임신 안 됐어?”조롱 섞인 내 말에 이혼하려는 결심이 굳건하다는 걸 보아냈는지 한유현은 더는 애원하지 않고 나를 협박하기 시작했다.“너 딱 기다려. 내가 너 찾아내면 바로 다리부터 분질러버릴 거니까.”“어쩜 그렇게 매정해 너는? 이 집안이, 가족이 너한테는 버리면 바로 버려지는 거야?”“너 안 오면 엄마 약 먹고 자살하겠대. 그럼 넌 이제 살인자가 되는 거야.”낯선 전화번호로 걸려온 연락이 고작 남편과 시어머니의 욕설과 협박이라는 사실이 웃겼던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저런 집안과는 한시라도 빨리 연락을 끊는 게 좋을 것 같아 집을 나오자마자 차단했던 건데 이렇게 전화번호까지 바꿔서 전화해대는 걸 보니 그 노력이 가상하긴 한 것 같았다.그날 밤, 이수연은 나에게 아주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다.흥신소직원이 남편의 외도증거는 물론 정지훈의 비리 증거까지 모조리 찾아냈다는 두 소식이 한꺼번에 들려오자 나는 정지훈의 증거부터 경찰에 넘겼다.하지만 제보하는 이의 이름은 시누이의 이름으로 대신했다.얼마 전 남편한테 그렇게 얻어맞았으니 원망이 대단할 텐데 내가 그녀를 대신해서 화풀이를 해준 것이니 한유라는 정말 나한테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내 제보는 빠르게 수용됐고 정지훈은 3일 만에 회사에서 해고된 채 횡령한 자금은 두 배로 채워 넣어야 한다는 통보를 받게
내가 택시를 타고 수연이의 회사로 가자 수연이는 바로 달려오며 나를 맞아주었다.“왜 이렇게 늦게 와, 네가 구경거리 놓칠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데.”“뭔데 그래?”“저기 봐봐!”내가 의아해서 묻자 수연이는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그녀의 손이 가리키는 곳에는 내 시누이였던 한유라가 있었는데 그녀는 마침 정지훈의 말에 매달리며 눈물 자국으로 범벅된 얼굴을 한 채 애원하고 있었다.“여보, 이거 봐봐. 나 임신했다니까.”하지만 한유라가 힘겹게 내민 검사보고서는 정지훈에 의해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당신 왜 그래? 내가 당신 아이 임신했다니까!”남편의 믿을 수 없는 행동에 한유라는 숨넘어갈 듯 울고 있었고 정지훈은 그녀를 보며 차갑게 대꾸했다.“임신하면 뭐? 그게 내 애라는 증거 있어?”정지훈의 눈에는 한유라를 향한 혐오가 가득 차 있었다.그 눈을 보며 냉소를 흘리던 나는 자연스레 내가 탔던 약을 떠올렸다.그날 밤 다들 그 약을 마신 탓에 정말 개판이 따로 없었을 텐데 그러니 정지훈이 아이의 출처를 의심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는 했다.그 혼란스러운 틈에 다들 이성을 잃었으니 다른 남자와 잠을 잤다고 해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생긴 아이를 제 아이라고 인정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당신... 어떻게 자기 애도 모른 척할 수 있어?”한유라는 서러운 얼굴로 남편을 쳐다보면서도 그의 팔만은 꼭 잡고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하지만 그도 잠시, 그녀는 정지훈에 의해 아까 나부끼던 종이처럼 똑같이 바닥으로 나가떨어졌다.“이거 놔, 너도 역겹고 너희 집안 식구들도 다 구역질 나게 싫으니까.”험악하게 인상을 쓰고 욕하는 정지훈 때문에 주위에는 사람들이 점점 몰려들었지만 한유라는 그런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정지훈의 다리에 매달리며 말했다.“당신이 뭐라고 해도 난 어디 안 가, 내가 임신한 건 당신 아이란 말이야!”“꺼져!”정지훈은 그런 한유라를 발로 뻥 차버리며 소리쳤다.“세상에 널린
“뭐라고요?”“유라가 병이 없는데도 날 속였다고요?”“네, 아가씨가 애 낳기 싫다고 거짓말한 거예요.”믿을 수 없다는 듯 묻는 정지훈에 나는 자연스레 한유라를 모함하며 그녀를 궁지로 몰았다.내 말을 같이 들은 한유라는 당황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제 남편에게 해명을 하려 했다.“여보, 언니 말 듣지 마. 저거 그냥 다 지어내는 얘기야. 내가 어떻게 당신 아이를 낳기 싫을 수 있겠어?”“짜악!”“그럼 어디 한번 해명해봐,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강한 파열음 소리와 함께 분노에 찬 정지훈의 외침이 들려왔다.“어릴 때부터 아픈 걸 너무 무서워했어서 아이 낳는 게 아플까 봐... 그래서 거짓말한 거야.”“하지만 당신한테는 늘 진심이었어, 나 믿어줘 여보...”한유라가 딸꾹질까지 해가며 해명을 했지만 정지훈은 여전히 화가 난 듯했다.“그렇게 아플까 봐 무서우면 그냥 이혼하자, 꼴도 보기 싫으니까 꺼져.”“아니야... 나 이혼 못 해.”“그래, 어젯밤에 우리 했었잖아! 진짜 아이가 생겼을 수도 있는데...”“그리고 당신은 그냥 아이가 갖고 싶은 거잖아, 우리 엄마도...”“짜악!”정지훈은 또 한 번 한유라의 뺨을 내려쳤다.“그게 내 애라는 걸 어떻게 믿어?”“어젯밤이 얼마나 개판이었는데 네 그 멍청한 오빠 애일 수도 있지.”또 한 번의 파열음과 함께 정지훈의 호통이 들려오자 한유라는 울어 젖히며 말했다.“당연히 당신 애지, 어떻게 다른 사람 애일 수가 있겠어.”욕하고 때리고 우는 소리가 다 섞인 수화기 너머의 음성이 너무 시끄러웠던 나는 그만 전화를 끊어버렸다.그 집 사람들이랑은 더 엮이기도 싫었고 본인들끼리 물고 뜯고 하는 것을 관전하는 취미도 없었던 나는 바로 이혼 변호사를 찾기 시작했다.양심이라고는 개나 줘버린 남편과 파렴치한 그 집안 식구들에게 치가 떨려 하는 나를 보고 사건의 자초지종을 묻던 친구는 내 얘기가 끝나자마자 가슴 아픈 표정으로 내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처음부터 네 남편 제대로 된 인간은 아니구나 싶었어.”
문밖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점차 작아지자 나는 그제야 화장실을 나섰다.나가보니 다들 테이블에 엎어져서 헛소리를 내뱉고 있었다.시계를 보니 이제 반 시간만 더 지나면 다들 제대로 미쳐버릴 것 같았다.시누이는 엎드린 채로 언니가 아이를 대신 낳아줘서 좋다고 했고 남편은 아이만 낳으면 돈줄을 꽉 묶어둘 수 있다고 더 좋아했으며 시어머니는 잠에 빠진 채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나는 그들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고 바로 방으로 들어가 짐을 챙긴 뒤 그들이 나를 찾지 못하도록 택시를 잡고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오랜만에 푹 자던 나는 이튿날 아침, 시끄럽게 울려대는 핸드폰에 미간을 찌푸린 채 눈을 뜨고 전화를 받았다.“임지연, 너 지금 어디야!”따져 묻는 남편의 목소리 뒤로 한유라와 정지훈이 싸우는 소리, 시어머니가 말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내가 어딨든 그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인데?”내가 감정 없는 사람처럼 차갑게 대꾸하자 남편은 열 받았는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너 어제 우리한테 뭐 먹인 거야?”그 말에 나는 일부러 놀란 듯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다.“어제저녁 아가씨가 준비한 거 아니었어?”“여보, 그건 아가씨한테 직접 물어야지 나한테 이러면 어떡해.”한유라가 술에 약을 탔다고 자백할 수는 없었던 남편은 말문이 막혔는지 가만히 있다가 화를 풀 데가 없어 다시 나한테 호통을 쳤다.“삼십 분 줄 테니까 당장 집으로 튀어와!”“그 집으로 다시 돌아갈 일은 없으니까 꿈 깨.”“네가 죽고 싶어서 환장했지? 당장 와,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내가 코웃음을 치자 남편은 또 흉악한 본색을 드러내며 나를 협박했다.“내가 거길 뭐하러 다시 가겠어? 당신들한테 또 당할 걸 알면서 제 발로 찾아갈 정도로 바보 아니야 나.”남자가 돼서 제 아내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게 얼마나 역겨운 일인지 한유현 본인은 자각을 하지 못한 것 같아서 나는 더 화가 났다.“진짜 안 와? 안 오면 너 나랑 이혼해야 될 텐데.”잠깐의 침묵 뒤에 들려온 저 이혼이라는 말에 나는
“화장실 다녀올 테니까 먼저 마셔요.”화장실로 들어간 나는 바로 문을 잠그고 아까 마셨던 술을 모조리 토해냈다.그렇게 속을 비워낸 다음 문을 열려고 문고리를 잡았을 때 나는 문득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약 탄 거 효과는 언제 생기는 거야? 확실한 거지?”정지훈이 나지막하게 묻자 한유라가 웃으며 대답했다.“당연하지, 내가 산 건데 절대 문제없어.”“반 시간이면 약효가 생기고 그럼 바로 기절한대, 자세히 물어보고 추천까지 받아서 산 거니까 걱정 마.”“그런데 임신을 할지 말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한유라의 말을 들은 정지훈이 감탄하고 있을 때 한유현의 목소리도 흘러나왔다.“걱정하지 마, 꼭 건강한 아들 낳아줄 거야.”“그리고 한 번으로 안 되면 여러 번 시도하면 되는 거지.”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남편에 나는 입을 틀어막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어쩐지 전생에 정지훈과 함께 나를 때리더라니, 애초에 한유현도 이 기획에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이야기를 들을수록 남편에 대한 원망이 짙어져 간 나는 지금 손에 칼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그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싶었다.분노에 가슴이 떨려오는데도 그들의 망발은 끊이지 않고 있었다.“형수님 그렇게 예쁘신데 형님은 진짜 대단하세요, 저한테 다 주신다고 하시고.”정지훈의 역겨운 말 뒤로 남편의 더한 말이 들려왔다.“세상에 예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걔 아니라도 난 괜찮아.”“매부가 좋아하면 다행이지, 마음껏 가지고 놀아.”“잘됐다 여보, 오늘 드디어 당신 소원 이루겠어.”잔을 부딪치는 소리와 그들의 신난 웃음소리가 함께 들려왔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정지훈의 목소리도 들려왔다.“나 벌써부터 너무 기대돼.”“아기 태어나면 내가 잘 키워줄게.”시어머니도 웃으며 그들의 말에 동조했고 술자리의 분위기는 점차 무르익어갔다.하지만 화장실에서 이 모든 것을 듣고 있던 나는 코웃음을 쳤다.고작 그 정도 수법으로 나는 속이려 하다니, 사실 그들은 이미 내가 놓은 덫에 걸려들어 있었다
식사 준비를 마치자 그들은 나를 상석에 앉혔다.여기 앉으니 정말 세상의 모든 것과 멀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전생의 나는 이 자리에서 그들에게 속아 넘어가 약을 마셔버렸지만 이번에는 내가 그들을 속일 차례였다.나는 곧 있을 재미난 구경거리를 기대하며 무표정을 유지한 채 가만히 앉아있었는데 내 예상대로 남편이 말을 걸어왔다.“생각은 해봤어? 아이 낳는 게 뭐 힘들다고 그렇게 밍기적거려?”“다시 한번 말하는데 거절하기만 해.거절하는 즉시 내 뺨을 때릴 심산인지 남편은 이글이글한 눈동자로 나를 주시하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정지훈이 웃으며 말했다.“형수님, 너무 걱정 마시고 마음 편하게 먹으세요.”“형수님이 아이만 낳아주시면 애한테는 제가 모든 조건을 다 최고로 맞춰줄 겁니다.”내가 시누이보다 예뻐서 전부터 나를 보는 정지훈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는데 이제는 제 아이를 낳아주게 생겨서 더 거리낌이 없어진 건지 그의 눈에는 탐욕이 가득했다.그는 제 발로 굴러들어온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고 나를 탐해보려는 것 같았다.그때 시어머니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또 나를 비꼬기 시작했다.“넌 대체 뭘 고민하는 거니? 어차피 애 낳아야 하는데 누구 애를 낳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이렇게 좋은 조건에 고민이 왜 필요하니? 나 같았으면...”시누이는 이번에도 시어머니의 말을 막으며 말했다.“엄마, 언니가 싫다는 거 억지로 안 시키기로 했잖아요.”나는 코웃음을 치며 한유라의 출중한 연기를 지켜보았다.어차피 나중에 나에게 약을 먹일 생각으로 연기를 하는 거겠지만 그들이 간과한 게 있는데 이번에 먼저 약을 탄 쪽은 바로 나라는 것이다.“언니, 오늘은 내가 잘못한 거니까 내가 한 잔 줄게요. 같이 마셔줘요.”술잔을 든 나는 다들 보는 앞에서 원샷을 했고 시누이도 술을 마신 뒤 한유현을 보며 말했다.“오빠도 언니한테 잘못한 게 있는데 한잔해야지?”“알았어, 마시면 될 거 아니야.”남편이 못마땅해하며 술잔을 비우자 한유라는 또 시어머니 쪽을 바라봤다.“애
“이 미친년이...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내 말을 들은 시어머니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 나를 욕했고 남편은 나에게로 다가오며 내 뺨을 때렸다.“짜악!”“너 미쳤어? 우리 엄마가 어떻게 애를 낳아!”나는 부어오른 볼을 감싸 쥔 채 남편을 노려보며 대꾸했다.“여자는 애 낳는 사람일 뿐이라며, 왜 어머니는 안되는 거야?”“나는 되고 어머니만 안돼?”내 말에 제대로 열 받은 남편은 내 목을 조르며 두 눈을 시뻘겋게 뜨고 말했다.“너 진짜 미쳤구나.”“감히 누구 앞이라고 그딴 말을 지껄여.”“애 안 낳겠다고 계속 버티면 내가 너 죽여버릴 거야.”남편의 손아귀에 힘이 잔뜩 실려있어 나는 점점 숨이 막혀왔고 저 얼굴을 계속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 치가 떨리게 싫었다.남편은 내가 울든 말든 계속 손을 휘두르고 있었고 내가 소리를 지르면 소리가 듣기 싫다고 그렇게 해서 정지훈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나 있겠냐고 타박했다.정지훈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제 여자도 갖다 바치는 저런 사람을 남편으로 선택한 나 자신도 점점 원망스러워졌다.“좀 예쁘게 울 순 없어?”“전에는 소리 잘만 쳤잖아, 왜 지금은 못 하는 척이야.”시누이는 옆에서 제 남편인 정지훈에게 매달린 채 고생한다고 아양을 떨어댔다.그녀는 내가 복이 있어 정지훈의 아이도 낳을 수 있게 된 거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그들 눈에 나는 그저 정지훈이라는 이 집안의 기둥을 기쁘게 하는 도구에 불과했다.하지만 다시 태어난 이상 나는 절대 그들에게 당해줄 생각이 없었다.지난 생에 나를 짓밟았던 사람들이 마땅한 대가를 치르게 해줄 생각이었다.그때 한유라가 갑자기 다가오더니 한유현을 밀치며 말했다.“오빠, 언니가 싫다는데 그만해. 와이프한테 이게 뭐 하는 짓이야.”말을 하면서도 눈을 연신 깜빡이는 한유라에 그녀의 저의를 알아챈 한유현은 휘두르던 손을 멈추었다.전생의 나는 한유라가 없던 양심이 갑자기 생겨 나를 도와준 줄 알았는데 사실 그들은 애초에 나에게 약을 먹일 생각으로 물러
“언니, 제발 저 한 번만 도와주세요.”“계속 애를 안 낳으면 남편이 저랑 이혼하겠대요.”“그런데 저 불임이잖아요, 그러니까 언니가 안 도와주면 전 진짜 끝장이에요...”시누이가 내 앞에 무릎 꿇은 채 내 손을 잡아 오며 울자 시어머니도 나서서 제 딸을 감싸고 돌았다.“지연아, 우리 유라 한 번만 도와줘. 유라가 평소에 너한테 얼마나 잘 해주니, 이렇게 남편한테 버림받는 걸 지켜보고만 있을 거야?”“네가 알겠다고만 하면 나도 같이 무릎 꿇으마.”“지연아, 엄마가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못 이기는 척 도와줘.”“여자는 원래 애 낳는 사람들인데 뭐 별로 힘든 것도 아니잖아.”시누이의 남편은 온 집안을 먹여 살리는 돈나무였기에 누구도 시누이의 이혼을 바라지는 않았다.하지만 남편까지 합세해서 나를 부추기려 드니 나는 자연스레 차가운 눈으로 그들을 내려다보게 되었다.사실 내 시누이는 불임이 아니라 그저 아이를 낳는 게 아플까 봐 대리모를 찾는 것뿐이었다.내가 그걸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지 시누이는 남편과 시어머니와 함께 싫다는 나를 기절시켜 제 남편의 침대에 눕혀놓았다.어찌저찌 임신을 한 다음에도 자괴감에 든 내가 삶을 끝내려 하면 그들은 나를 침대에 묶어놓고 먹고 싸는 모든 것을 그 위에서만 해결하게 했다.전생의 나는 그야말로 그들의 꼭두각시 인형이었다.그렇게 열 달이 지나 아이를 낳았는데 그때부터 내 눈앞에는 진짜지 옥이 펼쳐졌다. 남존여비 사상이 뿌리를 내린 집안에서 내가 낳은 딸아이는 세상을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하고 바닥에 던져져 죽어버렸고 남편은 내 목을 조르며 금방 출산을 마친 나를 피 터지게 때렸다.“쓸모없는 년! 애 하나도 제대로 못 낳는 너를 내가 왜 데리고 있어야 하는 건데!”그날 남편에게 죽도록 맞은 나는 자궁출혈까지 겪게 되었고 다시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남편뿐 아니라 시어머니도 눈을 부라리며 말을 거들었다.“열 달이나 시중들어줬더니만 죽 쒀서 개 준 꼴이잖아! 이렇게 손 놓고 있을 순 없어.”시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