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유영의 말을 듣고 한지음은 표정이 굳었을 뿐만 아니라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이 순간, 한지음의 머릿속에는 한가지 생각뿐이었다.‘나랑 이유영 둘 중에 도대체 누가 진정한 악마일까?’한지음은 줄곧 이유영의 삶을 파괴해 왔다.하지만 지금 이유영은 마치 악몽처럼, 더 정확히 말하면 악마 같았다.“집에 가서 배 속의 아이 놀라지 않게 몸 관리 잘해. 필경 이제 난 더 이상 너에게 호의가 남아있지 않아.”이유영의 말투는 아주 냉담했다.이 냉담한 말에 한지음은 확실하게 이유영의 자기에 대한 적의를 느꼈다.심지어 이유영의 무서움을 느꼈다!정확히 무서움이었다!한지음은 두 손에 주먹을 꼭 쥐고 일어섰다. 그녀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한지음은 이유영의 방향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이를 악물며 말했다.“이유영, 너 딱 기다리고 있어. 너랑 강이한은 불가능해!”이유영은 한지음의 말에 대꾸를 하지 않았다.이유영은 이 문제에 대해 집착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것들은 그녀에게 있어서 이미 다 끝나버린 일들이어서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한지음은 더듬거리며 사무실 출구 쪽으로 갔다.하지만 낯선 곳이어서 한지음은 도무지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여러 번 탁자 모서리에 부딪히지 않으면 소파 모서리에 부딪혔다.아주 낭패하게 바닥에 쓰러진 한지음을 이유영은 그저 옆에서 냉랭하게 보고만 있었다.모서리에 부딪혀 히스테리로 소리치면서 심지어 분노를 못 이겨 자기를 때리는 한지음의 발악하는 모습을 이유영은 보고만 있었다.당연히 한지음도 이유영에게 이런 낭패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한지음은 이런 무기력한 자신이 죽을 만큼 싫었다.이런 한지음을 이유영은 그저 냉랭하게 보고 있을 뿐 전혀 그녀를 도울 생각이 없었다.한지음이 아등바등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이유영은 전생의 자기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전생에서 이유영의 안 막은 지금 자기 눈앞의 이 여자의 눈에 들어있었다.그리고 전생의
그 결과 한지음의 모든 계획은 철저한 실패로 끝이 났다.‘하지만 지금… 그 후로부터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이렇게 어둠 속에서 지낸 지 얼마나 되었지?’사실 이 어둠에 이미 익숙해질 정도로 시간은 오래 지났다.이미 익숙해졌지만, 이유영이 이 질문을 했을 때 한지음은 여전히 마음이 조여들며 아파 났다.“후회해!”그러했다. 한지음은 후회가 되었다.아무리 지금은 이 어둠에 대해 습관이 되었다지만 자기의 두 눈으로 이유영을 모해하는 것과 맞바꾼 것에 대해 후회하냐는 질문을 들었을 때, 한지음의 대답은 후회한다는 것이었다.한지음의 답은 진심이었다. 한지음은 지금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다.진정으로 어둠 속에서 사는 사람들만이 그런 느낌을 알 수 있었다… 어둠은 그저 눈을 감고 보이는 깜깜한 것만이 아니었다.눈을 떴는데도 아무것도 안 보이는 그런 느낌이야말로 제일 무서운 것이었다.…한지음이 나가고 이유영은 온몸에 차가운 기운을 하고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안민은 입을 열고 물었다.“대표님, 저 사람을 그저 저렇게 놔줄 겁니까?”분명한 건 이유영의 주변 사람들도 이유영이 직접 청하시에서 그녀를 모함했던 나쁜 놈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렸으면 했다.이유영은 안민을 한눈 보고는 말했다.“안민 씨는 아까 저 여자의 저렇게 낭패한 모습, 제가 만들었다고 생각해요?”“아닙니까?”“…”이유영은 얼굴색이 어두워졌다.안민도 순간 자기가 실수를 저지른 걸 깨달았다.“죄송합니다. 우리 대표님은 그렇게 품위가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 여자가 스스로 만든 것 일 겁니다!”“확실히 자업자득이에요.”이유영은 뭐라 더 얘기하지 않고 그저 서류들을 들고 보았다.“그 일 알아냈습니다!”“어느 일?”안민이 갑작스럽게 꺼낸 말에 이유영은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필경 요즈음 일어난 일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너무 많은 나머지 이유영도 무슨 일을 말하는지 반응이 가지 않았다.안민은 이유영을 보며 말했다.“저번에 제가 보고드린 최근에 상장한 제일 진주라는 회사 말입니
이유영은 단 한 번도 강이한을 제대로 안 적이 없었다.예전에 이유영은 강이한의 곁에 있을 때, 강이한의 미간에 드리운 깊은 안개를 보며 그건 강씨 가문의 방계 친척들 때문이 아니라 아마 그 사람 배후에 더 깊고 큰 무언가 때문일 거로 생각했었다.“대표님, 괜찮으십니까?”안민은 이유영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함께 10년이나 같이 지냈었던 사람이, 지금에 와서 다시 보니 그때 같은 침대에 함께 잤던 사람이 자기가 본 것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받아들일 수 없지 않은가?’하지만 그건 안민의 괜한 걱정이었다.이유영은 필경 강이한의 제일 독한 모습까지 다 봤었는데 이 배후의 물건들은 그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괜찮다마다요.”이유영은 안민을 한눈 보았다. 그제야 이유영은 자기 주변에 이제 유용한 인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조민정은 외삼촌이 분사로 발령을 보냈고 지현우는 휴가를 냈다!이제 이유영의 옆에는 그저 안민만 남았다고 생각하니 아무래도 조금…“대표님?”넋이 나간 이유영을 보고 안민은 그녀를 불렀다. 순간 이유영은 다시 정신을 차렸다.안민을 바라보는 이유영의 눈빛은 매우 그윽했다.그러고는 이유영이 입을 열었다.“안민 씨, 제가 지금 안민 씨에게 아주 중요한 임무를 줄 거예요.”“뭡니까?”“강이한이 지금 이외에 또 어떤 비즈니스와 관련이 있는지 알아봐 주세요.”‘어떤 비즈니스가 더 있지?’‘예전의 홍원그룹은 그저 겉치레일 뿐이었어. 그럼, 지금의 제일 진주도 마찬가지일 수 있잖아!?’‘그래. 똑같은 게 틀림없어.’하지만 안민은 이 말을 듣고 순간 얼굴색이 굳어졌다. 이유영도 안민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왜요? 알아내기 어려워요?”“네!”“…”‘애도 참!’안민이 계속 말했다.“제일 진주에 대해 조사할 때 전 이미 강 도련님의 배후에 대해 조금 알아냈습니다. 하지만 좀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뭐가 이상한가요?”“저도 더 깊게 조사해 보려고 했지만, 대부분은 무
안민은 강이한을 그토록 실의에 빠지게 할 수 있는 두 번째 이유를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먼저 나가서 일 보세요.”이유영은 계속 이 이야기를 마저 하고 싶지 않았다.이때 그녀는 아무것도 계속 듣고 싶지 않았다.안민은 원래 뭘 더 말하고 싶었지만, 이유영의 안색을 보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이럴 때 좋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제일 현명하다는 걸 안민도 알고 있었다.안민은 결국 고개를 끄덕이었다.“네!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안민이 나가고 사무실에는 이유영 혼자만 남게 되었다.탁! 라이터를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 후 이유영은 담배에 불을 붙여 몇 모금 독하게 들이쉬고 나서야 가슴의 답답함을 겨우 억누를 수 있었다.혼란스럽다. 너무도 혼란스럽다.이런 혼란스러움은 이유영을 짜증 나게 했다.지금… 강이한뿐만 아니라 주변의 박연준도 그렇고 외삼촌과 외숙모도 그렇고 다들 속이 안 보였다.심지어 지금의 이유영도 언제부터인지 저도 모르게 가면을 써서 자기의 속마음을 남에게 보이지 않았다.마치 자기의 마음을 보호하는 것처럼, 사실 그것은 자기를 보호하는 방법의 일종이었다.“참 가엽네!”이유영은 중얼거리며 스스로를 비꼬았다. 그러고는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눌렀다.서류를 들려고 하던 찰나, 전화가 걸려 왔다.전화번호를 보니 강이한의 전화였다.‘받기 싫은데…’하지만 강이한의 손에 제일 중요한 소은지의 소식이 있다고 생각하니, 이유영은 결국 마지못해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당신이 나올래? 아니면 내가 올라갈까?”“…”강이한의 이런 무례한 방문에 이유영은 미간이 한데 찌푸려졌다.이 2년 동안 이유영은 일할 때 누가 와서 자기를 방해하는 걸 제일 안 좋아했다. 지금 강이한처럼 갑자기 나타나는 건 더 싫었다.이유영은 깊게 한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나 지금 일하는 중이야!”“당신은 지금 로열 글로벌의 대표님이잖아. 내가 올라가든, 당신이 내려오든 크게 달라질 게 없잖아.”“나 바쁘다고!”이유영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강이한은 이런 이유영을 보며 도무지 참을 수 없었다.그는 앞으로 다가서서 이유영의 손에 든 반 토막짜리 담배를 빼앗아 와 세게 재떨이에 꾹 꺼버렸다.“담배 피우면 몸에 안 좋아!”강이한의 말투는 좋지만 않았다.이유영은 이 말이 아주 익숙했다!그제야 이 말은 예전에 자기가 강이한한테 자주 했던 것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반대로 강이한이 이유영한테 이 말을 하고 있다.이유영은 강이한을 무시하고 또다시 담배 한 대를 지폈다.이유영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강의한의 눈에는 이름 모를 분노가 밀려왔다. 결국 그는 이유영의 손에 든 담배를 휙 빼앗아내고 담뱃갑도 함께 수거했다.“당신은 나 통제하려고 온 거야?”감정을 꾹 참고 있던 이유영은 끝내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이유영은 아주 쌀쌀하게 강이한을 바라보았다.그녀의 눈빛에 강이한은 가슴이 세게 철렁이었다.통제…이 단어가 두 사람에게 있어서 얼마나 엄숙한지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예전에 이유영이 강이한에게 시집올 때, 그녀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가족도 없었고 보호자도 없었다.하지만 강이한은 남편으로서 이유영을 데리고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순간, 강이한이 감당하는 건 남편의 책임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보호자, 그녀의… 의자 역할도 있었다.예전에 강이한이 이유영의 세사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었는지 참 한눈에 보였다. 하지만 지금…“그래. 난 널 통제해야겠어.”이유영의 차가운 눈빛과 마주한 강이한은 아주 엄숙하게 말했다.강이한의 말이 떨어지자, 이유영은 풉- 소리 내어 웃었다.그 웃음에는 풍자의 뜻이 들어있었고 강이한도 그걸 똑똑히 알아들었다.“그래. 그럼,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나를 통제하는지 말해봐.”“유영아.”“다 끝났다고, 알겠어? 진작에 다 끝났다고!”진작에 다 끝났다는 말은 마치 독이 든 가시가 되어 강이한의 가슴을 콕콕 찌르는 것 같았다.피는 안 보였지만 질식할 정도로 아팠다.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이유영의 눈은 싸늘하고 거리감 있었으며 강이한은…
하지만 확실히 이번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강이한은 이유영에 대해 다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유영도 이제는 그가 알고 있던 예전의 이유영이 아니었다.강이한은 일어서서 문 쪽으로 걸어갔다.“앞으로 한지음 괴롭히지 마.”“…”이유영은 얼음 냉동실에 온 것처럼 순간 몸과 마음이 다 한껏 차가워졌다.‘이것이야말로 강이한이 여기에 온 주요 목적이라고!?’‘이럴 필요가 있었을까? 오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얼마나 좋아? 도대체 이렇게 내 앞에서 나를 위하는 척 위선을 떨 필요가 뭐가 있어?’‘참 가엽구나!’강이한이 문을 여는 순간, 뒤에서 이유영의 싸늘한 말소리가 들려왔다.“그렇게 한지음을 아끼면 그녀를 데리고 떠나.”이유영의 말투는 아주 차가웠다.그리고 그 차가움 속에는 끝없는 평온함이 깃들어있었다.이런 평온함은 마치 두 사람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것처럼 아무런 감정이 기복이 없었다.강이한은 이유영더러 도원산에 와서 살라고 하고, 심지어 이 2년동안 박연준과 만난 날수만큼 그의 곁에 있어 줘야 한다고 했다.하지만 한지음은 이유영에게 자기가 임신했다고 했다!그리고 또 오늘 강이한은 다시 이유영에게 한지음을 괴롭히지 말라고 했다.‘강이한은 자기가 왕좌에 앉은 군왕이라도 되는 줄 알아? 일처일첩의 삶을 누리겠다는 거야?’“당신도 잘 알잖아. 여긴 파리고 내가 여기에서는 조금이나마 세력이 있다는 것을, 내가 한지음을 괴롭히려고 맘만 먹으면 쉬운 죽 먹기야!”“…”“그리고 당신도 날 막을 수 없어!”이유영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하였다.이런 이유영은 비록 평온해 보였지만 유달리 위험해 보였다.강이한은 고개를 돌려 이유영의 위험한 눈매와 마주쳤다. 정말이지 지금, 이 순간 이유영의 한 말들은 다 진심이었다.그리고 이유영이 말을 내뱉은 이상 꼭 그렇게 할 수 있었다.오늘날의 이유영은 무섭기에 그지없었다.강이한의 눈매는 싸늘해졌다.강이한은 눈앞의 이유영을 보며 마치 한 번도 그녀를 안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아니면 그녀의
강이한은 돌아갔다.하지만 한지음한테 빚졌나 안 빚졌나 이 문제에서 두 사람의 갈등은 일촉즉발이었다.‘내가 한지음한테 빚졌다고?’한지음이 이유영의 세상에 나타나서부터 쭉 이 한 개의 핑계만 대고 있었다. 이유영이 한지음한테 빚졌다고…“대표님 괜찮으십니까?”안민이 들어와서 걱정스럽게 이유영을 바라보며 물었다.이유영은 안민을 한눈 보고는 생각에서 빠져나와 머리를 저었다.“괜찮아요. 그 사람은 갔어요?”“네. 간 지 한참 되었습니다. 나갈 때 엄청나게 화나 보였습니다.”‘화났다고?’이유영은 냉소를 지었다.“그 한지음이라는 아가씨가 한 짓이죠?”“네. 맞아요. 낸 데서 그렇게 낭패하게 나갔으니, 이 기회를 타서 생색내지 않으면 그건 한지음이 아니죠.”이유영은 시큰둥하게 말했다.그리고 이유영의 말도 사실이었다.예전에 이유영이 한지음에게 무슨 짓을 했든, 심지어 아무 짓을 안 했어도 결국 강이한 앞에서 이유영은 극악무도한, 하마터면 한지음을 죽게 만든 사람이 되었다.예전에 그랬으니 아무리 지금은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오직 변하지 않은 것은 한지음이라는 존재였다.“그 여자는 피곤하지도 안답니까?”안민이 물었다.한지음은 피곤하지 않지만, 그녀한테 연루된 사람들은 다 피곤해 죽을 것 같았다.안민이 피곤하지 않냐고 물었을 때 이유영은 웃었다.그리고 이유영은 입을 열었다.“한지음이 피곤할 게 뭐가 있어요?”“…”“근데 안민 씨…”이유영은 여기까지 말하고 갑자기 안민을 쳐다보았다.“왜요?”“안민 씨는 첩이 나은 자식도 동등한 상속권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아니요. 하지만 법률은 다른 문제죠.”안민은 뒷마디를 말할 때 말투는 약간 울분했다.안민의 답을 듣고 이유영은 침묵했다.그 일이 있은 난 뒤, 아버지랑 어머니가 감정상의 변고가 있었다는 것을 안 후, 이유영의 입장에서는 한지음 이 모녀에게 한 푼도 줄 수 없었다.아버지랑 어머니가 남긴 물건은 두 사람 공동의 재산이었다.결국 이유영의 어머니는 죽기
“너무 번거로운 거 아니에요?”이유영은 참지 못하고 말했다.‘이렇게 되면 차라리 독립 안 하고 말지!’이유영은 강이한이 지금 자기에 대한 집착을 생각해서라도 이 일을 빨리 처리하고 싶었다. 그러면 계속 백산 별장에서 지내면 안 되었다.하지만 이유영이 반산월에서 지내면 외숙모가 이렇게 고생할 걸 생각하니 이유영도 속이 말이 아니었다.“괜찮아. 아야, 나 오늘 저녁에 중요한 연회가 있어서 난 이만 먼저 가볼게. 저 국 꼭 챙겨 먹어!”“네! 그럴게요.”임소미는 급히 떠났다.그리고 우지랑 우현을 보고 이유영의 마음속에는 감동이 가득했다.아까 돌아왔을 때부터 이유영은 이 주변의 보안 시스템을 보았다. 이로써 이유영이 여기로 이사 오는데 외숙모랑 외삼촌이 신경을 얼마나 많이 썼는지 알 수 있었다.“아가씨, 이 국은 사모님이 오후부터 정성 들여 끊인 겁니다. 꼭 챙겨 드셔야 합니다.”“네.”“…”“다른 건 필요 없어요.”비록 이 국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이유영은 원래 입맛이 별로 없었다.특히 이런 국물 앞에서라면.매번 외숙모가 국을 끓였다는 것을 들으면 이유영은 다른 걸 별로 먹지 않았다. 이유 영은 외숙모가 자기를 위해 준비한 모든 것을 다 엄청나게 아꼈다.외숙모가 엄청나게 고생하며 준비해 줬다는 것을 알면 이유영은 노력해서라도 국을 먹곤 하였다.“네! 좋아요.”우지랑 우현은 이유영을 강요하지 않았다. 이 국도 충분하게 영양가 높았다.그리고 이 반산월에 우지랑 우현 두 사람이 있는 한 이유영이 식사를 거를 일은 있을 수도 없었다.그들이 돌아서면 바로 외숙모한테 이를 게 뻔했다. 그러면 이유영의 귀가 또 아프게 된다.핸드폰의 지잉 지잉 진동 소리에 이유영은 손에 든 국그릇을 내려놓고 핸드폰을 한눈 보고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전화 반대편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이유영은 듣자마자 얼굴색이 순간 변했다.그리고 이유영은 바짝 긴장한 말투로, 심지어 떨린 목소리로 말했다.“그래요. 일단 사람을 병원으로 보내
이유영이 집으로 돌아온 뒤, 임소미는 사람을 시켜 조사를 시작했고 이유영이 강이한 곁에서 결코 평온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지 못했다.며칠 동안 진영숙의 광기에 가까운 모습을 목격한 뒤에야 그녀는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왜 서주로 떠나서 죽음을 가장했는지를.모두 이 여자 때문이었다. 진영숙이 그토록 괴롭게 만들었던 것이다.남편뿐만 아니라 지금 강이한의 행방조차 그녀는 알지 못했다. 여자로서 그 책임은 결코 작지 않았다.임소미는 감정을 가라앉힌 후에야 이유영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진영숙이 사실은 월이를 데려가려 했다는 것을.“며칠 동안 데려가겠다고 했다고요?”“그래서 내가 화가 났던 거야.”진영숙의 행동을 보면 며칠은 말뿐인 핑계였다.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임소미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이제 아무것도 없고 오직 손녀만 남았다고? 과연 손녀의 의미를 알고는 있는 사람인가?’이유영은 말없이 얼굴을 굳혔다.진영숙은 아이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유영아, 이번 일은 그녀에게 연민을 가질 필요 없어.”임소미의 목소리엔 단단한 결심과 냉기가 섞여 있었다.진영숙은 자신이 모든 걸 잃었기 때문에 아이라도 데려가고 싶다고 했지만 그런 상실에 대해 임소미는 전혀 동정하지 않았다.“알겠어요, 엄마. 제가 처리할게요.”이유영은 어머니를 안심시켰지만 그녀의 목소리 역시 차가웠다.“어떻게 처리할 거니?”‘어떻게 처리할까?’이유영의 눈빛이 점점 깊어졌다.그녀는 당연히 생각한 방법이 있었다.임소미를 진정시킨 뒤, 이유영은 백산 별장을 나섰고 밖에선 지혁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아가씨.”“풍산 그룹으로 가요.”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마음이 무거웠다. 가능하다면 평생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그곳은 과거가 덕지덕지 붙은 장소였고 이유영은 그것들과 멀어지고 싶었다.“윙윙윙.”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발신자는 박연준이었고 이유영은 망설임
이유영에게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그녀는 임소미의 품에 파고들며 가느다란 팔로 어머니의 허리를 꼭 안았다.“엄마, 미안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녀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었다.오래전 소은지는 이렇게 말했었다. 강이한은 연애 상대론 괜찮지만 결혼은 다르다고.그때 변호사였던 소은지는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맞지 않는 결혼이 얼마나 불행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녀가 강이한과 결혼을 결심했을 때, 소은지는 그녀를 말렸었다. 소은지는 그녀의 결혼을 말렸던 유일한 사람이었다.결국 소은지의 말은 모두 옳았음이 증명됐다.끝났다고 믿었던 그 관계는 여전히 그녀의 삶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심지어 가족들까지도 그 여파에 시달리고 있었다.그때, 등에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괜찮아. 엄마가 있잖아. 앞으로는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못할 거야.”이유영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고 눈물이 눈가에 가득 차올랐다. 참으려 해도 눈물이 뺨을 따라 끝없이 흘러내렸다.예전에도 어머니는 그녀를 이렇게 품어주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세계는 완전히 무너져 버렸고 그 이후로 어떤 일이 일어나면 모두 혼자 견뎌야만 했다.임소미가 감싸안아 주자 이유영의 마음은 다시금 따뜻함으로 물들어갔다.그리고 이 감정은 그녀의 마음 깊은 곳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앞으로는 아무도 엄마를 괴롭히지 못하게 할 거예요.”그녀가 말한 '아무도'는 명백히 진영숙을 가리키고 있었다.그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사람에게서 다시 이런 고통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엄마가 널 지켜줄게. 꼭 지켜줄게.”임소미는 그 말을 반복하듯 속삭였다.오늘 밤, 임소미의 마음속에 일어난 파장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었다.진영숙이 막말을 퍼붓고 손까지 쓰는 모습을 보며 이유영이 강씨 가문에서 겪었을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를 임소미는 문득 깨달았다.사모님의 우아한 모습은 진영숙에게서 찾아보기 힘들었다.불편한 감정이 들 때마다 손부터 나가는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과 살아야
이유영이 돌아오고 그녀는 진영숙과 임소미 사이에서 벌어진 격렬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두 명의 도우미가 진영숙을 붙잡아 끌어내고 있었다.임소미의 얼굴은 창백했고 가슴은 거세게 요동치고 있었다.그녀는 순간적으로 분노가 솟구쳤다.임소미는 이유영을 보자마자 재빨리 붙잡고 말했다.“너 먼저 위로 올라가.”“무슨 일이 있었어?”이유영이 물었다.정씨 가문에 돌아온 지 오래된 만큼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우아하고 온화한 사람인 만큼 지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임소미가 대답하기도 전에 진영숙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이유영, 넌 누가 너한테 눈을 기증해 줬는지 모르지? 강이한이 네게 빚을 졌다고 하지만 사실은...”“입 다물어!”진영숙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소미가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이유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서 있었고 진영숙은 여전히 무언가 더 말하고 싶어 했지만 더는 이어가지 않았다.그녀는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이유영을 노려보았고 그 눈빛엔 전례 없는 증오가 서려 있었다.예전에 강이한과 결혼했을 때도 진영숙은 이유영을 이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한 번도 따뜻한 시선을 준 적이 없었다.그리고 지금, 용성시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그 증오가 더욱 깊어진 듯했다.“유영아, 너 먼저 위로 올라가.”“엄마.”“올라가!”임소미는 이유영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격하게 소리쳤다.임소미가 이런 식으로 이유영에게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의 상황이 임소미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그대로 드러났다.이유영은 무언가 더 묻고 싶었지만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말문이 막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뒤돌아 안으로 들어갔다.그 순간, 진영숙은 자신을 붙잡고 있던 도우미들의 손을 뿌리치고 이유영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이유영, 강이한은 너에게 빚진 게 없어. 강이한은 오히려 너 때문에 모든 걸 잃었어. 너야말로 가장 잔인한 사람이야. 네 눈조차..
임소미는 혈압이 치솟았고 화가 극에 달한 상태였다.“내 말이 틀렸나요?”“틀렸냐고? 제대로 된 일을 한 적은 있고? 당신만 제대로 된 선택을 했더라면 유영이와 강이한이 이렇게까지 망가지진 않았을 거야.”임소미는 참았던 감정을 폭발시키며 격렬히 외쳤다.진영숙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임소미의 말이 맞았다. 진영숙은 두 사람 관계에서 많은 잘못을 했다.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달라졌다.강이한은 사라졌고 강서희도 여전히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남은 건 오직 월이 뿐이었다.오늘 이곳에 와서 월이를 보게 된 순간, 월이를 자신의 곁에 두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자리 잡았다.“사람 불러!”임소미가 크게 외치자 집사들과 도우미들이 급히 달려왔다.“이 여자를 당장 내쫓아!”“당신이 감히 그럴 수 있을까?”“뭐라고?”임소미는 잠시 귀를 의심했다.‘이 여자는 지금 도대체 뭐 하려는 걸까?’조금 전 아이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을 보며 아이에게 조금의 정이라도 남아 있는 줄 알았다.하지만 모든 것은 착각에 불과했다.결국 그녀는 후회라는 감정을 모르는 인간이었다.진영숙이 오늘 여기 온 것도, 월이에게 다정하게 굴었던 것도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았기 때문에 한 마지막 발악이었다.그녀의 말은 그저 그럴싸한 포장일 뿐 사실은 월이를 자신의 곁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그리고 뻔뻔하게도 무례하기까지 했다.진영숙은 임소미의 눈을 응시했다. 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따뜻함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매서운 날카로움뿐이었다.그녀는 침착하게 말했다.“우리 아들이 왜 서주를 떠났는지 내가 정말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임소미, 당신들은 정말 단 한치의 양심 가책도 못 느꼈어?”왜 강이한이 서주를 떠났는지 시간대와 상황을 조합해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추측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확신을 가졌다.특히 떠나기 전, 시윤이 건넨 말이 결정적이었다. 이유영이 용성시에서 수술을 받았던 그 시기에 강이한은 서주에
강이한은 그렇게 어둠 속에서 절망의 고통을 몸소 겪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괴로워도 수술을 받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한때 이유영이 어둠 속에서 얼마나 무섭고 무력했는지를 그는 이제서야 조금씩 체감하고 있었다....파리에서 진영숙은 다시 백산 별장을 찾았다. 여전히 강이한의 소식은 들리지 않았고 시윤은 강이한이 이정과 신시욱을 데리고 떠났다고 말했다.그 두 사람의 능력을 생각하면 강이한이 스스로 나타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그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진영숙은 어머니로서 절망에 가까운 마음으로 그를 수소문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그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그리고 알면 알수록 그녀의 마음은 점점 더 불편해졌다.“정말이지, 당신은...”백산 별정까지 찾아온 진영숙의 뻔뻔함에 임소미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굳은 표정으로 응수했다.진영숙은 한때 유능한 여성이었고 그런 그녀에게 감히 저런 얼굴을 하는 사람은 없었기에 그녀에겐 익숙하지 않은 대우였다.“저는 아무것도 없어요. 저 좀 봐주세요.”그녀의 목소리에는 전에는 없던 고통이 서려 있었다.그렇다. 지금의 진영숙에겐 주변에 기댈 친척도 함께할 가족도 없었다. 그녀의 앞에 있는 건 손녀인 월이 뿐이었다.오늘도 그녀는 월이를 위해 여러 장난감을 준비해 왔지만 임소미는 그 모든 행동이 불쾌하게만 느껴졌다.“당신도 어머니였잖아요. 제 마음이 얼마나 불편한지 알잖아요.”임소미는 차가운 목소리로 잘라 말했다.‘봐준다고? 당신이었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이유영이 강이한과 결혼했을 때, 진영숙은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심지어 뱃속의 아이조차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그런 사람이 지금 이토록 헌신적인 할머니 행세를 하니 임소미는 화가 났다.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연극으로밖에 안 보였다.진영숙의 눈엔 고통이 어렸다.“저는 정말 생각하지 못했어요.”임소미의 말에 그녀는 도무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아무리 자존심 강한 진영숙이라 해도 진실을 알게 된 지금, 과거
그녀는 어둠에 익숙해지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강이한을 떠난 뒤 어둠 속에서의 삶을 받아들이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하고 있었다.신시욱과 이정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 침묵에 잠겼다. 그 질문은 그들 사이에서도 너무나 무거운 것이었기 때문이었다.이유영이 그때 얼마나 오랜 시간을 그렇게 보냈는지, 사실 그들조차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또렷하게 남아 있는 건 그녀가 깊은 괴로움 속에 잠겨 있었다는 사실뿐이었다.그리고 그녀가 괴로워할수록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의 고독이 얼마나 잔혹한 감정인지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그녀는 깊은 절망 속에 빠져 있었다.그리고 지금의 강이한은 어쩌면 그때의 이유영보다 더한 심연 속에서 절망을 겪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벌하고 있었다. 그녀가 겪었던 고통을 똑같이 겪기 위해 같은 어둠 속에 몸을 던졌다.“선생님. 각막 이식 수술 관련 소식이 들어왔습니다.”신시욱은 조심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우천시에 머무는 동안, 신시욱과 이정은 한 번도 수술 신청을 멈춘 적이 없었다.그들은 강이한을 잘 알고 있었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지만 이유영이 원하지 않는 일이라면 그도 절대 강행하지 않았다.이유영이 시력을 잃었을 때, 그녀는 가족들이 몰래 준비했던 이식 수술조차 그녀는 단호히 거절했었다.그리고 지금의 강이한도 마찬가지였다.오랫동안 기다려 온 기회 앞에서 강이한은 조용히 거절했다.“필요 없어.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두 사람은 말문이 막혔다. 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던 두 사람은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필요 없다고? 그게 무슨 뜻이란 말인가?’“선생님.”신시욱의 목소리는 긴장감에 더욱 떨려왔다.그 어떤 강인한 남자라고 해도 이 순간 목소리에서 전해지는 떨림을 억누를 수 없었을 것이다.최근 며칠간 그가 어떻게 지내왔는지 두 사람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강이한은 자신을 벌하며 살고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정말 이미 충분했다.‘받아야 할 벌은 다 받았는데 왜 여전히 자신을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어둠 속에서 지낸 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을까?어둠 속에서 사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이제서야 알 것 같았다. 새들의 지저귐이 더 또렷하게 들리고 사소한 바람 소리 하나에도 감각이 예민해졌다.강이한은 우천시에 있는 주택 마당에 놓인 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우천시에 오늘같이 이렇게 따스한 햇살이 비추던 때가 언제였던가?이정이 조심스레 다가와 담요를 덮어주며 말했다.“햇살은 있어도 아직은 쌀쌀하네요.”말은 없었지만 강이한은 이정의 발걸음 소리와 숨소리로 그가 신시욱이 아님을 알아차렸다.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그때의 이유영도 지금처럼 감각이 예민했을까?“이정.”“네.”“유영이는 이 마당이 어떤 모습인지 전혀 보지 못했겠지?”“네.” 이정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이유영은 이곳에서 몇 개월을 머물렀지만 실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이 마당은 끝내 그녀에게 낯선 곳으로 남게 되었다.지금 그녀를 우천시로 다시 데려온다 한들 스스로 길을 찾아올 수도 없을 것이다.강이한은 낮게 중얼거렸다.“하지만 유영이는 이 마당에 뭐가 있는지는 알고 있었어.”그렇다. 보지 못했어도 그녀는 감각으로 모든 것을 구분했다. 마치 지금의 강이한처럼.이정이 조심스레 물었다.“이럴 가치가 있었습니까?”그가 이곳에 온 이후, 누군가가 처음으로 던진 질문이었다. 그는 말할 수 없이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가치가 있었는지는 사람이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야.”그것은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다.그리고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이유영에게 진 빚은 결코 눈 한 쌍으로는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이건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다.예전에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던 이유영의 손짓을 떠올리면 가슴이 미어졌다. 지금 자신이 어둠 속에서 겪고 있는 공포는 당시 그녀가 느낀 감정에 닿을 수조차 없었다.점심 식사 시간.“쨍그랑.”강이한이 손을 뻗는 순간, 접시와 그릇이 떨어지며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공기는 순간 얼어붙었다
이유영은 자신의 몸에 강이한과 관련된 어떤 흔적도 남기고 싶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남은 인생에서도 강이한과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얽히는 일을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월이의 일로 인해 그녀는 너무도 깊은 상처를 입었고 강이한을 평생 용서할 수 없었다.그런 사람의 눈을 자신이 기증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그리고 강이한 역시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는 수술 전에 모든 철수 준비를 마친 것이고 이유영에게는 아무것도 알리지 말라고 지시했다.이미 많은 상처를 준 이후, 아무리 많은 것을 베푼다 해도 이유영의 용서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자신과 이유영 사이에는 어떠한 선택지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래서 과감하게 그녀의 손을 놓은 것이다.‘이렇게 되면 두 사람 사이에 더 이상 빚진 것이 없게 되는 걸까?’하지만 단순히 눈을 기증했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유영아, 왜 강이한에 관해 묻는 거야? 혹시...”소은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결국 그녀는 언제나 이유영 편이었다.특히 수술 전, 마지막으로 강이한을 마주했을 때 그가 남긴 말을 들은 후로 그녀조차도 강이한을 용서할 수 없다고 느꼈다.“나랑 장난해?”소은지의 말에 이유영의 표정은 단숨에 싸늘해졌다.그 차가운 기색을 확인한 소은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렇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래, 그렇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소은지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나는 그냥 권력에 그토록 집착했던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서주를 내려놓았는지 궁금했을 뿐이야.”“음모일지도 모르지.”소은지는 잠시 생각하다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화제를 서둘러 다른 방향으로 돌리려 했다.“...”‘음모’라는 단어에 이유영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소은지는 그녀의 웃음을 보고 또 한 번 안도했다.“ 월이 보러 왔을 때, 그 사람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뭐라고 했는데?”“일어날 일은 언제든지 다시
강이한은 서주에서의 모든 일을 철수하고 사라졌다. 그와 함께하던 사람들도 함께 자취를 감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유영은 그저 강이한의 또 다른 속임수일 거라고 생각했다.강이한과 박연준, 두 사람은 누군가를 철저하게 속이는 데에 능숙한 사람들이었다.박연준은 진짜로 서주의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었고 진영숙은 파리에서 집요하게 강이한의 행방을 묻고 다녔다. 그걸 보며 이유영은 강이한이 정말로 사라졌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무슨 생각해?”반산월에서 소은지는 이유영의 어두운 얼굴을 보고 조심스레 물었다.이유영은 고개를 들며 말했다.“은지야.”“응?”“어떻게 된 거라고 생각해?”서주의 현 상황은 여전히 알 수 없는 부분이 많았지만 최근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며 이유영은 점점 확신에 가까워졌다.강이한은 정말 그의 사람들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그는 마치 세상에서 흔적 없이 사라진 듯했다.권력을 중시하던 인물이었기에 은둔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강이한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로 조용히 지낼 성격이 아니었다.“뭐라고?”소은지는 이유영의 갑작스러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듯 되물었다.이유영은 소은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강이한이... 정말 사라졌어.”“그래. 그 얘기 예전에도 했었잖아.”이유영이 이제서야 이 사실을 믿게 되었다는 것을 소은지는 알아챌 수 있었다.예전엔 믿지 않았던 이유영의 모습이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녀는 강이한의 실종을 인정하고 있었다.강이한과 박연준은 이유영의 마음속에서 그리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다.연서의 사건이 터진 이후, 그녀는 두 사람을 음모로 가득 찬 사람들로 생각했고 그래서 처음 강이한이 사라졌다고 했을 때도 이유영은 그것을 단순한 음모의 연장이라 여겼다.두 사람은 늘 서로 무관한 척 행동했지만 그 뒤에는 누구도 상상 못 할 거대한 연관성이 있었던 것이다.신지수는 여러 번 전화를 걸어왔다.강이한이 서주를 떠난 후, 신씨 가문도 연쇄적으로 피해를 보았고 그녀는 그 일을 처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