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영은 염 선생의 약에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수면 시간만큼은 확실히 바뀌었다. 점심 먹은 지 30분 후면 반드시 잠들어야 했다.하지만 소은지는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다.파리 쪽 상황이 소은지를 숨 막히게 했다. 특히 오늘, 파리에서 충격적인 뉴스가 떴다.기사에는 현우와 송연미의 사촌 동생인 송연정이 공개적으로 함께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는데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이었다.이 기사 때문에 소은지까지 휘말리게 되었는데 파리에서는 소은지와 현우가 이미 이혼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송연미의 말대로, 현우는 송연미 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파리의 상황은 짐작조차 불가능했다.서재에서.“웅...”휴대전화가 진동했고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소은지가 전화기를 받아 들었다.“여보세요.”“나야.”송연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너...”송연미는 자기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전화 너머로 송연미의 슬픔이 느껴졌다.송연정은 송연미의 사촌 동생이었다. 예전에 사이가 좋았던 현우와 결국은 파국을 맞이하였고 지금은 현우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송연정 입양에 협조하고 있었다.현우와 송연정의 모습으로 보아 송연미가 지금 파리에서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알 수 있었다.“소은지, 고마워!”송연미의 목소리는 여전히 슬펐지만, 소은지에게 감사하는 듯한 말투였다.소은지는 어딘가 이상함을 느꼈다.송연미에 관한 생각이 바뀌었지만 소은지는 여전히 쏘아붙이는 말투로 말했다.“나한테 그런 말할 자격 없어.”“...”“송연미, 잊지 마. 넌 이미 현우와 끝난 사이야!”소은지의 날카로운 말투와 차가운 태도는 송연미의 마음을 아프게 찌르고 있었다.송연미가 대답하기도 전에 소은지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송연미가 감사를 표하다니?송연미는 현우가 보낸 사람이고 소은지와 현우의 관계에 송연미가 간섭할 일은 아니었다.소은지는 처음으로 답답함을 느꼈다. 예전에는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대체 왜 이러는
강이한이......소은지는 어떻게 이유영 앞에 나타났는지 몰랐다. 이유영은 은은한 달빛처럼 고급스러운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우아하고 차분한 모습이었다."유영아, 네가 이런 드레스를 입은 건 처음 보네!"소은지의 말투에는 씁쓸함이 묻어났다.과거 강이한 곁에 있던 이유영은 경씨 가문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강씨 가문에서의 생활은 힘들었지만, 강이한은 경제적으로 이유영에게 아낌없이 후했다.이유영이 입고 쓰는 대부분은 명품이었고 그녀는 체구가 작아 강이한은 원피스를 입히는 것을 좋아했지만, 이런 전통적인 드레스는 거의 입지 않았다."우지 씨가 사준 건데, 예쁘지?""응, 우지 씨 눈썰미가 정말 좋네."키가 작은 사람이라 해서 전통 드레스를 못 입을 리가 없다. 이유영은 마른 체형이었지만, 전통 드레스가 정말 잘 어울렸다. 그 드레스를 입은 이유영은 더욱 빛났고 정말 예뻤다.소은지는 복잡한 표정으로 의자를 끌어다 이유영 옆에 앉고는 이유영의 차가운 손을 잡았다."유영아.""응?""최근 신씨 가문이랑 강이한이 엄청 얽히던데... 정말 네가 한 거야?""맞아."이유영은 덤덤하게 인정했다."..."이유영과 강이한 사이의 갈등은 끝내 해결되지 않았다.강이한은 이유영에게 있어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아이에게까지 손을 댄 것이 가장 큰 잘못이었다. 이온유가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월이가 강이한의 딸인 걸 몰랐다고 해도 그러면 안 됐다.월이는 이유영의 딸이었다. 강이한은 이유영에게 이미 많은 상처를 주고도 아이에게까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줬다.하지만 소은지는 서재에서 수술 동의서를 보고 경악했다.예전에 이유영과 소은지는 강이한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는 한지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유영이 더 중요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한지음도 오랫동안 시력을 잃었지만 강이한은 자신의 각막을 한지음에게 주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이유영한테는 달랐다.“왜 그래?”이유영은 소은지가 말이 없자 눈살을 찌푸렸다.이유영은
그 이상의 것에 대해선 이유영은 전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소은지는 그 말을 듣고 침묵했다.틀림없이 이유영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강이한에 대한 결론이 나 있었다.이유영뿐만 아니라, 강이한을 본 사람이라면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강이한에게 있어 이유영은 절대 한지음보다 중요한 존재가 될 수 없다고....파리에서.현우와 송연정의 일은 점점 더 커졌고 소은지는 처음에는 그저 지켜보았지만, 며칠 후부터는 아예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볼수록 마음이 더 답답해졌다.그날 저녁.소은지는 우천시의 야경을 보러 갔다. 정말 멋졌다. 청하시에 있을 때는, 우천시의 야경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곳으로 이곳만의 특징이라고 들었는데, 오늘 밤 직접 보고 나서 그 말이 정말 사실임을 알았다.돌아왔을 때, 마당 앞에 서 있는 차갑고 외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남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바로 현우였다!현우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파리의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 그런 데다 그와 송연정의 관계까지 점점 더 심각해지는 마당에 왜 여기에 나타난 거지?이유영 때문일까?혹시 이유영이 걱정돼서...그런 생각을 하자, 며칠 동안 겨우 진정되었던 소은지의 마음은 다시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답답하고 불안한 기분이었다.소은지는 현우의 뒤에 서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박연준이 계속 이유영 곁에 지키고 있어요.”현우가 예전에 말했듯이 박연준과 강이한은 지금 이유영의 수호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강이한이 지금 여기에 없더라도 박연준이 이유영 곁에 있으니 세상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이유영 곁은 가장 평화로운 곳일 거였다.소은지의 목소리를 들은 현우가 뒤로 돌아섰다. 현우의 눈은 깊고 어두웠다. 현우가 많이 야윈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소은지가 반응하기도 전에, 현우는 소은지의 목을 잡아끌어 품에 안았다.“으...”아팠다!곧이어 현우의 키스가 쏟아졌다.마치 폭풍처럼 억눌렸던 감정을 터뜨렸다.현우의 감정이 소은지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무겁고 마치 갇힌 짐승처럼 세
오늘 저녁, 박연준과 이유영 사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챈 소은지는 과감하게 도망치듯 외출했다.“그러면 안 돼요?”“지금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조심해야 해요.”“...”이유영을 자극하지 말라는 뜻이겠지? 누가 말 안 해도 조심할 거였다.하지만 현우가 그런 말을 하니, 소은지는 마음이 답답해 났다.현우가 소은지에게 손을 내밀었다.“뭐 하는 거예요?”“같이 가요. 오늘 여기서 자지 말고.”“무슨 뜻이에요?”또 이유영에게 보여주려는 건가?“제가 말했잖아요, 굳이...”“읍!”말을 마치기도 전에 현우는 소은지를 끌어안았고 소은지는 세상이 빙빙 도는 느낌을 받으며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현우의 차에 태워졌다.그리고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호텔이었다.화려한 스위트룸을 보고도 소은지는 어리둥절했다.“설마, 본가에서 사람 시켜서 지켜보고 있는 거예요?”반산월에 있을 때부터 소은지와 현우는 한방을 썼다. 하지만 여긴 우천시다.현우가 소은지의 가는 허리를 감싸안았다.소은지는 현우에게서 느껴지는 무거운 기운을 감지했고 저항하던 몸짓도 멈췄다.“요즘 많이 힘들었죠?”회장님이 갑자기 돌아가시고 엔데스 가문은 난리가 났다.여섯째 도련님뿐만 아니라 다섯째 도련님, 넷째 도련님, 셋째 도련님, 그리고 큰 도련님까지 모두 그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엔데스 가문은 파리에서 100년 된 명문가인 만큼 모두가 파리로 모이고 있었다.가문은 잔인한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현우는 아무 말 없이 조명을 껐고 그렇게 두 사람은 밤을 보냈다.그날 밤, 두 사람은 무거운 분위기에 휩싸였고 결국 소은지는 깊은 잠에 빠졌다.눈을 떴을 때, 현우는 방에 없었다. 그리고 어젯밤...소은지는 침대에 앉아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소은지와 현우는 부부 관계지만, 그 관계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저 파트너일 뿐이었다.소은지는 현우와 그렇게까지 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어젯밤, 그들은 다른 소용돌이에 빠진 것 같았다. 이게 대체
“우리 이혼해요.”격렬한 사랑이 끝난 뒤, 유영은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달뜬 목소리로 덤덤히 말했다.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탐스럽게 상기된 볼을 살짝 가렸다. 그녀의 두 눈은 더 이상 빛나지 않았고 표정은 처량했다.남자가 옷을 갈아입는 소리가 들렸다. 술을 잔뜩 마시고 돌아와서 씻지도 않고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지고 욕구를 방출시킨 남자, 그 어디에도 유영에 대한 존중은 없었다.10년을 사랑했지만 이제 더 이상의 미련은 남지 않았다.단추를 잠그던 강이한의 손이 움찔하더니 날카로운 시선으로 유영을 노려보았다.“갑자기?”“네.”유영의 말투는 단호했다.말을 마친 그녀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기억을 더듬어 화장실로 향했다.강이한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다가 천천히 다가가서 그녀를 부축했다.“손 이리 줘봐.”탁!유영은 매몰차게 그 손길을 뿌리쳤다.하지만 힘 조절을 잘못해서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저리 치워요. 당신 도움은 이제 필요 없어. 더러워.”이 남자와 같은 지붕 아래 숨 쉬고 있는 것 자체가 거북하고 불쾌했다.강이한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그는 허공에 손을 내민 채, 신경질적으로 유영을 노려보았다.지금 나한테 더럽다고 한 건가?유영은 바닥을 더듬으며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샤워기를 틀고 뜨거운 물로 몸에 남은 그의 흔적을 씻어냈다.할 수만 있다면 그의 손길이 닿았던 피부를 모두 도려내고 싶었다.욕실에서 나온 그녀는 벽을 더듬으며 옷장으로 향했다. 시력을 잃게 된 시간이 길지 않아서 암흑 같은 이 세상이 아직 적응이 되지 않았다.유영은 손끝에 닿은 느낌을 따라 옷 한 벌을 꺼내 입고는 호적 등본을 챙기고 그에게 말했다.“지금 법원으로 가요.”“이유영.”강이한이 이를 갈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그는 벌떡 일어나서 여자에게 다가가 그녀의 멱살을 잡았다.“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야? 이런 모습으로 나랑 이혼하면 어떻게 살려고 그래?”그녀는 가진 게 없었다
또각또각.익숙한 하이힐 소리가 코를 찌르는 향수 냄새와 함께 가까워지고 있었다.한지음!강이한의 첫사랑이자 그녀의 망막을 가져간 여자.유영은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그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고용인 부를 필요 없어. 내가 이미 불렀으니까.”자기가 뭐라도 되는 양, 의기양양한 말투.“여긴 왜 왔어?”유영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이미 모든 걸 잃은 그녀에게 또 뭘 바라고 온 것일까?한지음은 그녀의 싸늘한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벼운 말투로 그녀에게 말했다.“전해줄 말이 있어서 왔어. 좋은 소식이랑, 나쁜 소식이 있는데 어느 것부터 들을래?”유영은 고개를 돌려버렸다.“너 임신했더라.”유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한지음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물론 이한 씨는 이 아이를 낳으라고 하지 않을 거야. 나도 임신했거든.”쿵!차분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유영의 얼굴에 금이 갔다.‘강이한, 이런 거였어?’혈색을 잃은 그녀의 얼굴은 파리하게 질렸고 휠체어 손잡이를 잡은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유영은 치미는 분노를 꾹 참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 여자는 자랑하러 온 것이다. 이미 모든 걸 잃었는데 마지막 자존심은 지켜내고 싶었다.그녀는 길게 심호흡하고 애써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래? 어제 그 사람한테 내가 이혼하자고 했는데 싫다고 하더라?”그 말을 들은 한지음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유영도 그녀의 기분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비틀어 올리고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내 망막까지 빼앗아 가고 임신까지 했는데 그래서 뭐? 그이는 네가 이 집의 안주인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나 봐.”강이한을 좋아해서 한지음을 미워하는 건 아니었다. 단지 이 여자에게 더 이상 짓밟히고 싶지 않은 자존심이었다.강이한과는 이미 끝내기로 했지만 집까지 찾아와서 자신을 도발하는 여자에게 가만히 당하고 싶지도 않았다.“하, 그래서 이한 씨가 널 사랑한다고 말하고
“악!”유영은 비명을 지르며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마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있었다.피부에서 아직도 뜨거운 작열감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남자의 거친 손이 다가와서 그녀의 허리를 껴안았다. 익숙한 향기가 코끝에 전해졌다.“꿈꿨어? 조금만 더 자자.”유영은 움찔하며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고개를 돌려 보니 강이한의 준수한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유영은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머릿속이 하얘지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앞이 보여? 이게 어떻게 된 거지?’눈을 다시 감았다 뜨니 햇살이 비쳐 들어오는 창문이 보였다.천장, 커튼, 그리고 익숙한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설마?그녀는 남자의 손길을 뿌리치고 몸을 일으켜 핸드폰을 찾았다. 날짜와 시간을 확인해 보니 화재가 일어나기 몇 개월 전으로 돌아와 있었다.회귀… 한 건가?강이한은 뒤척이는 소리에 불만스럽게 눈을 떴다.“아침부터 왜 이래?”그러거나 말거나 유영은 핸드폰에 찍힌 날짜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 여자가 납치하기 전 날로 돌아와 있었다.“당신 왜 그래?”그녀의 이상한 반응에 남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재차 물었다.유영은 남자를 내버려두고 욕실로 들어가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젖살이 채 빠지지 않은 통통한 볼이 눈에 들어왔다.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손을 뻗어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화상 자국이 있어야 할 팔뚝도 말끔했다.아직도 불길이 자신을 덮친 그날의 느낌이 생생한데 그녀는 그 사고가 있기 전으로 돌아와 있었다.유영은 바닥에 앉아 양팔로 자신을 껴안고 중얼거렸다.“유영아, 하늘이 널 불쌍히 여겨 기회를 준 거야.”욕실을 나선 유영은 침대로 다가가서 남자를 내려다보았다.“우리 이혼해.”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싸늘한 목소리에 강이한이 벌떡 일어나며 그녀를 노려보았다.“지금 뭐라고 했어?”“은지한테 부탁해서 이혼 서류 준비시킬 거야. 못 믿겠으면 당신도 변호사 불러.”“대체 아침부터 왜 이러는 거야?”강이한은 이 상황이
잠시 후, 소은지가 팩스로 이혼 서류를 보내왔다.이유영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바로 사인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강이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고용인은 그녀가 위층으로 올라간 뒤에 바로 외출했다고 답했다.이유영은 더 이상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팩스로 그의 회사에 이혼 서류를 보냈다. 서류를 확인한 비서가 다급히 그녀에게 연락했다.“사… 사모님, 대표님은 아직 출근 전입니다만….”“그 사람 도착하면 바로 사인하고 법원에서 만나자고 전해주세요.”“네… 알겠습니다.”강이한의 비서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떨떠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유영은 전화를 끊은 뒤, 위층으로 올라가서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거울 속에 비춰진 그녀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마누라가 예쁘다고 남자가 한눈을 팔지 않는 건 아니었다.아무리 예쁜 외모라도 질릴 때가 있는 법, 그때가 되면 남자들은 바깥의 여자들에게 시선을 돌리게 된다.이유영은 바로 차를 타고 법원 앞으로 가서 기다렸지만 점심시간이 다 될 때까지도 강이한은 나타나지 않았다.그녀는 바로 강이한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한참이 지나서야 그가 전화를 받았다. 영상 속 배경을 보니 회의 중인 듯했다.이유영은 그러거나 말거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나 법원에서 두 시간을 기다렸어. 대체 협의서 어디가 마음에 안 들어서 안 나타나는 거야?”회의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모두의 시선이 강이한에게로 쏠렸다.대표님이 이혼? 게다가 재산분할?남자의 싸늘한 시선이 느껴지자, 사람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하지만 잠깐의 통화만으로도 대표가 곧 이혼한다는 소식은 그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30분 쉬었다가 다시 진행하지.”남자는 짜증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사람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회의실을 나가는 강이한을 바라보았다. 문이 닫히자, 현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사모님께서 지금 이혼을 제기하신 거 맞지?”“그렇게 온화한 분도 폭발할 때가 있구나.”“그럼 한 비서는 어떻
오늘 저녁, 박연준과 이유영 사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챈 소은지는 과감하게 도망치듯 외출했다.“그러면 안 돼요?”“지금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조심해야 해요.”“...”이유영을 자극하지 말라는 뜻이겠지? 누가 말 안 해도 조심할 거였다.하지만 현우가 그런 말을 하니, 소은지는 마음이 답답해 났다.현우가 소은지에게 손을 내밀었다.“뭐 하는 거예요?”“같이 가요. 오늘 여기서 자지 말고.”“무슨 뜻이에요?”또 이유영에게 보여주려는 건가?“제가 말했잖아요, 굳이...”“읍!”말을 마치기도 전에 현우는 소은지를 끌어안았고 소은지는 세상이 빙빙 도는 느낌을 받으며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현우의 차에 태워졌다.그리고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호텔이었다.화려한 스위트룸을 보고도 소은지는 어리둥절했다.“설마, 본가에서 사람 시켜서 지켜보고 있는 거예요?”반산월에 있을 때부터 소은지와 현우는 한방을 썼다. 하지만 여긴 우천시다.현우가 소은지의 가는 허리를 감싸안았다.소은지는 현우에게서 느껴지는 무거운 기운을 감지했고 저항하던 몸짓도 멈췄다.“요즘 많이 힘들었죠?”회장님이 갑자기 돌아가시고 엔데스 가문은 난리가 났다.여섯째 도련님뿐만 아니라 다섯째 도련님, 넷째 도련님, 셋째 도련님, 그리고 큰 도련님까지 모두 그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엔데스 가문은 파리에서 100년 된 명문가인 만큼 모두가 파리로 모이고 있었다.가문은 잔인한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현우는 아무 말 없이 조명을 껐고 그렇게 두 사람은 밤을 보냈다.그날 밤, 두 사람은 무거운 분위기에 휩싸였고 결국 소은지는 깊은 잠에 빠졌다.눈을 떴을 때, 현우는 방에 없었다. 그리고 어젯밤...소은지는 침대에 앉아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소은지와 현우는 부부 관계지만, 그 관계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저 파트너일 뿐이었다.소은지는 현우와 그렇게까지 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어젯밤, 그들은 다른 소용돌이에 빠진 것 같았다. 이게 대체
그 이상의 것에 대해선 이유영은 전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소은지는 그 말을 듣고 침묵했다.틀림없이 이유영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강이한에 대한 결론이 나 있었다.이유영뿐만 아니라, 강이한을 본 사람이라면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강이한에게 있어 이유영은 절대 한지음보다 중요한 존재가 될 수 없다고....파리에서.현우와 송연정의 일은 점점 더 커졌고 소은지는 처음에는 그저 지켜보았지만, 며칠 후부터는 아예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볼수록 마음이 더 답답해졌다.그날 저녁.소은지는 우천시의 야경을 보러 갔다. 정말 멋졌다. 청하시에 있을 때는, 우천시의 야경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곳으로 이곳만의 특징이라고 들었는데, 오늘 밤 직접 보고 나서 그 말이 정말 사실임을 알았다.돌아왔을 때, 마당 앞에 서 있는 차갑고 외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남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바로 현우였다!현우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파리의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 그런 데다 그와 송연정의 관계까지 점점 더 심각해지는 마당에 왜 여기에 나타난 거지?이유영 때문일까?혹시 이유영이 걱정돼서...그런 생각을 하자, 며칠 동안 겨우 진정되었던 소은지의 마음은 다시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답답하고 불안한 기분이었다.소은지는 현우의 뒤에 서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박연준이 계속 이유영 곁에 지키고 있어요.”현우가 예전에 말했듯이 박연준과 강이한은 지금 이유영의 수호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강이한이 지금 여기에 없더라도 박연준이 이유영 곁에 있으니 세상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이유영 곁은 가장 평화로운 곳일 거였다.소은지의 목소리를 들은 현우가 뒤로 돌아섰다. 현우의 눈은 깊고 어두웠다. 현우가 많이 야윈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소은지가 반응하기도 전에, 현우는 소은지의 목을 잡아끌어 품에 안았다.“으...”아팠다!곧이어 현우의 키스가 쏟아졌다.마치 폭풍처럼 억눌렸던 감정을 터뜨렸다.현우의 감정이 소은지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무겁고 마치 갇힌 짐승처럼 세
강이한이......소은지는 어떻게 이유영 앞에 나타났는지 몰랐다. 이유영은 은은한 달빛처럼 고급스러운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우아하고 차분한 모습이었다."유영아, 네가 이런 드레스를 입은 건 처음 보네!"소은지의 말투에는 씁쓸함이 묻어났다.과거 강이한 곁에 있던 이유영은 경씨 가문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강씨 가문에서의 생활은 힘들었지만, 강이한은 경제적으로 이유영에게 아낌없이 후했다.이유영이 입고 쓰는 대부분은 명품이었고 그녀는 체구가 작아 강이한은 원피스를 입히는 것을 좋아했지만, 이런 전통적인 드레스는 거의 입지 않았다."우지 씨가 사준 건데, 예쁘지?""응, 우지 씨 눈썰미가 정말 좋네."키가 작은 사람이라 해서 전통 드레스를 못 입을 리가 없다. 이유영은 마른 체형이었지만, 전통 드레스가 정말 잘 어울렸다. 그 드레스를 입은 이유영은 더욱 빛났고 정말 예뻤다.소은지는 복잡한 표정으로 의자를 끌어다 이유영 옆에 앉고는 이유영의 차가운 손을 잡았다."유영아.""응?""최근 신씨 가문이랑 강이한이 엄청 얽히던데... 정말 네가 한 거야?""맞아."이유영은 덤덤하게 인정했다."..."이유영과 강이한 사이의 갈등은 끝내 해결되지 않았다.강이한은 이유영에게 있어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아이에게까지 손을 댄 것이 가장 큰 잘못이었다. 이온유가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월이가 강이한의 딸인 걸 몰랐다고 해도 그러면 안 됐다.월이는 이유영의 딸이었다. 강이한은 이유영에게 이미 많은 상처를 주고도 아이에게까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줬다.하지만 소은지는 서재에서 수술 동의서를 보고 경악했다.예전에 이유영과 소은지는 강이한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는 한지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유영이 더 중요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한지음도 오랫동안 시력을 잃었지만 강이한은 자신의 각막을 한지음에게 주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이유영한테는 달랐다.“왜 그래?”이유영은 소은지가 말이 없자 눈살을 찌푸렸다.이유영은
이유영은 염 선생의 약에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수면 시간만큼은 확실히 바뀌었다. 점심 먹은 지 30분 후면 반드시 잠들어야 했다.하지만 소은지는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다.파리 쪽 상황이 소은지를 숨 막히게 했다. 특히 오늘, 파리에서 충격적인 뉴스가 떴다.기사에는 현우와 송연미의 사촌 동생인 송연정이 공개적으로 함께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는데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이었다.이 기사 때문에 소은지까지 휘말리게 되었는데 파리에서는 소은지와 현우가 이미 이혼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송연미의 말대로, 현우는 송연미 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파리의 상황은 짐작조차 불가능했다.서재에서.“웅...”휴대전화가 진동했고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소은지가 전화기를 받아 들었다.“여보세요.”“나야.”송연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너...”송연미는 자기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전화 너머로 송연미의 슬픔이 느껴졌다.송연정은 송연미의 사촌 동생이었다. 예전에 사이가 좋았던 현우와 결국은 파국을 맞이하였고 지금은 현우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송연정 입양에 협조하고 있었다.현우와 송연정의 모습으로 보아 송연미가 지금 파리에서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알 수 있었다.“소은지, 고마워!”송연미의 목소리는 여전히 슬펐지만, 소은지에게 감사하는 듯한 말투였다.소은지는 어딘가 이상함을 느꼈다.송연미에 관한 생각이 바뀌었지만 소은지는 여전히 쏘아붙이는 말투로 말했다.“나한테 그런 말할 자격 없어.”“...”“송연미, 잊지 마. 넌 이미 현우와 끝난 사이야!”소은지의 날카로운 말투와 차가운 태도는 송연미의 마음을 아프게 찌르고 있었다.송연미가 대답하기도 전에 소은지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송연미가 감사를 표하다니?송연미는 현우가 보낸 사람이고 소은지와 현우의 관계에 송연미가 간섭할 일은 아니었다.소은지는 처음으로 답답함을 느꼈다. 예전에는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대체 왜 이러는
소은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이유영이 자존심 강한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아무리 지금 익숙해졌다고 해도 소은지는 이유영이 여전히 안쓰러웠다.“괜한 생각하지 마. 너한테 도움이 되고 싶을 뿐이야.”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강이한 곁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도 소은지는 그랬다.이유영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소은지는 이유영 곁에서 함께 극복했다.소은지의 조심스러운 말투를 이유영은 알아채고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미소 지었다.“넌 참...”이유영의 미소에 소은지는 안도했다.“네가 날 특별하게 생각해 주는 거 알아. 나도 이미 익숙해졌어.”특별한 상황이니만큼 조심스럽게 대해주는 거였다.소은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난 그저...”이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먹여줘.”“응.”소은지의 목소리가 한결 가벼워졌다.소은지는 이유영 앞의 작은 그릇을 들고 조심스럽게 이유영에게 음식을 먹였다.“유영아, 괜히 적응하려고 애쓰지 마... 분명 좋아질 거야!”예전 일은 잊어도 좋았다. 이제 이유영 뒤에는 정씨 가문이 있고 정씨 가문은 이유영이 평생 어둠 속에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세상일은 내 맘대로 되지 않으니까.”소은지의 긴장된 말투와 달리 이유영은 차분했다.그 차분함에 소은지는 더욱 마음이 아팠다. 이유영은... 이미 지금의 어둠을 받아들인 걸까? 가슴이 더욱 아파져 왔다.“그래, 세상일이란 게 다 그렇지 뭐.”하지만 지금 이유영의 모습은 많이 안심되었다. 특별히 화를 내거나 하지 않았다.소은지는 조심스레 이유영에게 음식을 먹였다. 소은지는 이유영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유영은 지금까지 한 번도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소은지는 약간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약 먹고 정말 아무런 느낌도 없어?”소은지는 염 선생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유명한 사람이기에 그에게서 희망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다.“없어.”이유영은 솔직하게 말했다. 박연준에게 거짓말을 하
“벌받을까 봐 무서우면, 그때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지.”박연준은 할 말을 잃었다.여자의 마음을 건드린 잘못은 돌이킬 수 없었다.여자 마음속 가장 중요한 선을 넘어선 것이었다. 박연준과 강이한은 이유영의 마음속 금단의 선을 넘어섰다.“무슨 의미야?”“...”“그러면서 평생 빚졌다고 생각해?”이유영은 비웃었다.박연준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고 이유영의 말에 답답함이 밀려왔다.염 선생님의 약이 효과 없다면 평생 빚 이상의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강이한은 이미 수술 동의서에 서명해서 박연준에게 보냈다.강이한의 결정은 확고했다.만약 석 달 안에 약이 전혀 효과가 없다면... 그는 이유영을 데리고 강이한과 미리 약속한 병원으로 갈 것이다.그 병원에서 이유영은 수술을 받고 건강한 모습으로 정씨 가문으로 돌아갈 것이다.그리고 강이한은...그날 서재에서 말했듯, 강이한은 자기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그것이 그의 벌이라면 기꺼이 받겠다고 했다.이유영은 고집이 센 여자였다. 각막 이식 대기자 명단이 길다는 걸 알면서도 기다리고 있었다.정씨 가문 누구도 부정한 수단을 쓰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하지만 대기자는 너무 많았다.특별한 수단이 없다면 수술하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그녀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지경이 될 때까지 기다리게 되었다.그러니 지금 상황은 단순히 평생 빚을 졌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평생 빚보다 훨씬 더 잔혹한 일이었다.“유영아, 너는 아무것도 몰라...”박연준의 목소리가 낮고 무거웠다.맞다. 이유영은 아무것도 몰랐다.“그래, 아무것도 몰라! 예전에 연서가 너희에게 무슨 의미였는지 몰랐어.”“...”“너희 마음속에서 내가 연서의 대타일 뿐이었다는 것도 몰랐어!”단지 대타일 뿐이었으니, 어떻게 이용하든 상관없지 않았을까? 심지어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말이다.그것이 바로 박연준이었다.박연준은 숨이 막히는 듯했다.머리가 쿵쿵 울렸다. 그는 이유영이 고의로 그를 자극하여 곁에 있지 못하게 하
강이한 때문에 이유영은 이미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는데, 박연준 역시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였다.특히 소은지가 연서의 존재를 알게 된 후부터는 더욱 그렇다. 박연준과 강이한이 이유영에게 어떤 보호를 해주었는지와 상관없이 이유영은 그 둘에게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원했다.그 이유는 그들이 이유영에게 접근한 이유가 처음부터 너무나도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이유영이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자존심 강한 이유영은 진영숙의 억압 속에서도 강이한을 위해 참았지만, 이제 더는 참을 이유가 없었다.이유영의 현재 모습이 바로 그 고통스러운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다.…소은지가 부엌으로 간 사이, 박연준은 이유영의 손을 거칠게 잡아끌었다. 이유영은 손을 빼려 했지만 박연준은 더욱 힘을 주었다.“박연준!”이유영은 눈살을 찌푸리며 목소리를 높였다.박연준은 이유영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답답한 듯 말했다.“대체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박연준의 질문은 이유영의 마음을 더욱 흔들었다.어떻게 하면 좋을까?이미 다 설명했는데, 왜 이유영은 서로 힘들게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아무것도 할 필요 없어!”이유영의 차가운 대답은 박연준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요즘 이유영은 박연준이 무슨 말을 하든, 무슨 행동을 하든 항상 차가웠다. 마치 높은 벽을 쌓아놓은 듯, 넘어설 수 없을 만큼 차가운 태도였다. 박연준은 이유영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괴로워했다.이유영은 냉담한 시선으로 박연준을 바라보며 말했다.“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박연준은 말없이 이유영을 바라보았다.이유영의 차가운 말에 박연준의 끈기와 노력은 무너져 내렸고 결국 그는 답답한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섰다.“오늘, 약 먹고 어땠어?”박연준은 다시 물었다. 하지만 이유영이 대답하기 전에 박연준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유영아, 진심으로 대답해 줘. 네 건강과 관련된 문제야.”박연준은 이유영이 진심으로 이야기해 주기를 바랐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아무런 느
현우에 대한 생각은 소은지와는 달랐다.그들 사이의 관계는 처음부터 그런 방식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강제로 바꿀 수는 없었다.또한 그녀와 엔데스 명우의 관계는 그녀의 인생에서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치욕이었다.온몸이 더럽혀진 자신이 어떻게 그런 아름다운 남자, 현우와 어울릴 수 있겠는가?그는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존재였고, 그녀는 그에게 손을 내밀 자격도 없었다....소은지는 이유영의 곁으로 다가갔다.파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이유영에게는 그것이 마치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정확히 일주일이 지났고 소은지는 우천시의 날씨가 생각보다 불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여기는 정말 비가 자주 오네.”소은지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지는 비 오는 느낌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 기분은 정말 좋지 않았다.이유영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시간이 지나면 마음도 답답해지곤 해.”처음 이곳에 왔을 때, 밤에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 게 좋았다. 이런 곳에서 자면 꽤 편안함을 느꼈었다.하지만 밤이 되자, 소은지는 바로 이유영의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여기 밤에 정말 추워!”소은지는 이불을 두 겹 덮어도 여전히 추웠다.사람들은 우천시가 살기 좋은 곳이라고 했지만, 소은지는 이곳이 춥기만 했다. 여름밤에도 이불을 덮고 자야 한다니. 겨울이 오면 이곳 날씨는 정말 아무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소은지는 이곳이 벌써 싫어졌다.이유영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넌 정말!”그 목소리에는 살짝 애정 어린 톤이 담겨 있었다. 소은지는 이유영을 보며 말했다.“요즘 너 기분이 훨씬 좋아진 것 같아.”소은지는 이유영의 세상이 정말 간단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도 그녀의 부모님이 그녀를 그렇게 보호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그리고 박연준과 강이한 덕분에, 그녀는 비록 눈은 보이지 않지만 서주나 파리 어디에서도 그녀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이 없었다.이유영은 대답했다.“네가 왔으니까, 당연히 행복하지.”“그렇구나.”소은지
소은지는 이유영이 어둠 속에서 익숙하게 그릇을 들고 숟가락을 집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며, 마음속에서 더 깊은 안타까움과 아픔을 느꼈다.“그 사람은... 떠났어?”그는 강이한을 말한 거였다.박연준은 아침에 이유영과 불편한 대화를 나눈 후, 일 보러 밖으로 나갔다.게다가 엔데스 회장의 별세는 서주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고, 박연준은 이유영 곁에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를 둘러싼 일이 정말 많았다.“응.”이유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소은지는 말없이 이유영을 바라보았고 눈빛은 더욱 깊어져 갔다.여기에 오고 나서, 현우의 사람들은 이곳 주변이 아주 평온하다고 했다. 확실히 이곳은 아무도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안전한 곳이었다.소은지는 송연미의 말을 떠올렸다. 송연미는 그 이유를 말하길, 이유영 뒤에 있는 박연준과 강이한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그들이 엔데스 가문이 원하는 중요한 것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엔데스 가문 사람들은 이유영을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그와의 관계는 정말 끝난 거야?”소은지가 이유영에게 물었다.“응.”이유영은 아주 간단하게 답했다. 마치 그들 사이에 깊은 감정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그녀의 한마디는 그렇게 단호했다. 그 말은 마치 그들 사이에 애초에 아무 감정도 없었다는 듯이, 끝났다는 말조차 아무 감정 없이 무덤덤하게 말하는 듯했다.소은지는 웃었다.“예전부터 난 네가 행복하기만 바랐어, 강이한과 멀리해.”“맞아, 그때 넌 모든 걸 다 알고 있었지.”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유영은 그 가운데서 무엇도 보지 못했다.소은지는 여러 번 말했었다. 여자가 감정에 휘둘리면 이성이 사라진다고.그러나 그때의 이유영은 소은지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강이한에게 큰 상처를 받게 되었다.만약 그때 소은지의 말을 들었더라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처럼 이렇게 고통스러운 결말을 겪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은지야.”“응?”“엔데스 가문의 남자들, 조심해.”이유영은 소은지를 향해 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