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은 소만리의 말을 끊고 그녀 몸의 특징을 말하니 그들이 정말 사귄 적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이때, 소만영이 놀래며 다가왔다. "어머, 이분 네 전 남자친구 아니었어? 아… 매번… 돈 받고 만난 거구나… 그럼 너 몸 팔아서 돈 벌었던 거야? 만리야, 왜 그렇게까지 자신을 망치니!"소만리는 더욱 역겨워지자 반박하고 싶었지만 갑자기 종양이 있는 위치에 심한 통증이 밀려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의 이 침묵은 기모진이 보기엔 그저 묵인에 불과하다.예전에는 소군연, 지금은 또 육정이 나타났다.이 여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남자가 있을까.기모진의 이마에 핏줄이 불쑥 솟아오르며 무서워 보였다."모진아, 만리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너무 안쓰럽다." 소만영은 안타까워하듯이 말했다.“모진아 우리 가자.”기모진은 차갑게 소만리를 째려봤고, 소만영은 그의 팔짱을 끼고 돌아섰다."모진아… 그런 게 아니야…” 소만리는 너무 아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녀가 기모진의 뒷모습을 절망스럽게 바라보자 그의 눈빛은 혐오와 메스꺼움으로 가득했다. 기모진은 육정과 소만영의 말을 믿고 소만리가 돈 때문에 몸을 팔 수 있는 천한 여자라고 확신했다. 육정은 소만리를 방으로 끌고 왔다. 그는 욕정으로 가득 찬 눈으로 그녀의 옷을 무자비하게벗기고 있었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그는 당연히 놓칠 리 없었다.소만리는 도망갈려고 했는데 다시 끌려와 땅에 내동댕이쳐졌다. 방금 깨진 술병 유리 부스러기가 손바닥에 박혀 피를 줄줄 흘리고그 통증으로 인해 온몸이 떨렸다. 게다가 종양의 통증까지 더해져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자 옛날에 그녀의 발에 유리가 박혀 기모진이 그녀를 업고 보건소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심지어 기모진은 “아리, 앞으로 내가 지켜 줄게.” 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피를 흘리며 아파하는데 기모진은 그녀를 버리고 그냥 가버렸다.지난날의 모든 것이 지금 가장 우스운 거짓말이 되었다.소만리는 통증을 참으며 입구까지 기어올라갔고, 육정은 아
소만리, 너 정말 역겹다. 소만리를 혐오하는 그의 말이 소만리의 마음에 화살이 꽂히듯 아팠다. 그는 소만영의 모든 말을 믿었지만, 소만리에게는 변명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물이 코로 들어가 사레가 들려 견딜 수 없었지만, 소만리는 더 이상 발버둥치고 싶지 않았다.이대로 죽게 되도 괜찮을 것 같은데? 소만리가 절망적으로 눈을 감자 기모진이 갑자기 그녀를 잡아 들어올렸다. 소만리는 찢어진 인형처럼 온몸이 녹초가 되어 바닥에 웅크렸다.몸 안의 종양의 통증이 죽을 만큼 아팠다. 숨쉬는 것조차 아플 정도로 아픈 소만리는 안간힘을 다해 고개를 들었다. "나 정말 그 남자를 몰라. 기모진, 왜 넌 내 말을 안 믿는 거니...""너 같이 뻔뻔한 여자의 말을 내가 어떻게 믿어?"기모진이 화가 나 소만리의 옷깃을 잡아당겼고, 찢어진 옷자락에 드러난 검은 점, 육정이 한 말이 생각나자 갑자기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그는 분노하여 소만리가 입고 있는 치마를 찢었고, 폭군처럼 난폭 해졌다. 그녀를 바라보는 기모진의 눈빛은 소만리를 벌벌 떨게 했다.차가운 냉기에 소만리는 뼈가 으스러질 듯 아팠다."기모진, 하지마...""소만리 뭘 아닌 척해?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기모진의 낮은 목소리에 조롱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는 소만리를 술집 여자 취급하며 얼굴에 돈을 던졌다.소만리의 온몸이 순간 얼어붙었지만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기모진, 나 네 아내야!”기모진은 느긋하게 옷을 입고 경멸스럽게 말했다. " 나한테 이런 뻔뻔한 아내는없어..”그가 하는 말마다 소만리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만영이 아니었으면 너 지금 병원에 누워있었을 거야.""푸흡" 소만리는 소리 내어 웃었다.“맞아, 오늘 그 내연녀 덕분에 살았어.”기모진은 돌아서던 발길이 돌려 소만리의 목덜미를 조르며 그녀를 자신의 앞으로 끌어당겼다."너 한 번만 더 만영이 더럽혀봐, 정신병원에 있는 그 영감님 치료비 없을 줄 알아.”가슴이 두근거리며 얼굴색이 급격히 변한 소만리의 모습을 보고 기모진은
그녀는 우아한 귀부인이었다. 소만리는 귀부인과 몇 번을 마주친 후 그녀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경도 4대 명문 집안 사모님, 사화정 이였다.소만리는 사화정과 이야기할 때마다 왠지 모를 이상한 친근감이 느껴졌다.디자인 원고를 제출해야 하는 날, 사화정은 특별한 사정이 생겨 소만리를 집으로 불렀다.집에 가보니 그날이 사화정과 모현의 딸, 모보아의 24번째 생일이었다. 소만리는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소만리도 오늘이 생일이었다.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공주 같은 모보아가 너무 부러웠다.그녀는 부모의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다가, 그녀가 엄마가 되려고 할 때 하늘은 무심하게도 그녀의 목숨을 가져가려 했다. 가슴이 아파오자 그녀는 깊은 심호흡을 하고 웃음을 지었다.무슨 일이 있던 그녀는 외할아버지를 위해 수술비 5천만 원을 모아야 했다.모보아에게 생일 축하한다고 말을 하려던 그때, 소만영이 나타났다. 그녀는 아름답게 꾸미고 예쁘게 화장을 했고, 모보아와 팔짱을 끼고 다정스럽게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알고 보니 소만영과 모보아는 자매 같이 친한 사이였다. 소만리는 생각지도 못한 광경을 보고,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아 그냥 돌아가려고 할 때 소만영이 그녀를 불렀다."만리야, 진짜 너 구나! 나는 내가 잘못 본 줄 알았어, 여기 웬일이야?" 소만영이 나지막이 속삭였다."네가 상관할 바 아니야." 소만리는 차갑게 말했다.“내 동생인데 어떻게 나랑 상관이 없어? 오늘 나랑 제일 친한 친구 보아 생일파티에 재벌들이 이렇게 많이 있는데, 만약 네가 저번에 그랬던 것처럼 또 도둑질하면 어떡해?”소만영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지만, 그녀의 눈빛은 잔인했다."동생? 나는 너처럼 동생 남편 꼬시는 여우 같은 언니 둔 적 없어.”"너..." 소만영의 얼굴에 난처함이 확연히 드러났다.이때, 모보아가 걸어왔다. 초라한 옷차림의 소만리 앞에, 온몸에 명품을 휘두른 그녀가 서자 그녀 주변에 빛이 났다. 그녀는 흥미진진하게 소만리를 한 번 훑어
서화정의 말을 듣고 소만리는 모든 걸 다 알게 되었다.온갖 욕설과 오해를 받아도 괜찮지만, 그녀에게 이 반지 디자이너 일은 너무 중요했다. 소만영이 의아해했다. "디자인 초고? 만리 너 언제 디자이너가 됐어? 너 또 졸업작품 때처럼 인터넷에서 베끼고 네가 그린 척하는 거야? 만리야 너 왜 그렇게 갈수록 망가지니.” 소만영은 안타까워하며 말했다.이 말을 들은 사화정의 안색이 더욱 나빠졌다. 불쾌한듯 소만리를 한 번 노려보고 딸의 손을 잡고 가버렸다. 사화정의 눈빛을 보고 소만리의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팠다.사화정에게 해명하려고 쫓아 가던 중 누군가 소만리를 끌어당겼다.옆에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서야 소만영이 웃으며 얼굴을 드러냈다. "봤지? 너 같은 계집애가 감히 나한테서 기 씨 집안 며느리 자리를 뺏으려 해? 내 남자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줄게.”소만리는 거절 받은 디자인 초안을 손에 쥐고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는 소만영을 쳐다봤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소만영의 뺨을 때렸다."내가 어떻게 끝날지는 모르는 일이지, 근데 지금 네 얼굴에 남은 내 손바닥 자국은 눈에 보여!""소만리, 이 나쁜 년 감히 나를 때리다니!" 소만영은 분통을 터뜨렸다."때리면 때리는 거지, 처음도 아닌데 뭘, 가서 기모진에게 일러, 네 연기 하는거 좋아하잖아.”“......” 소만영은 볼을 만지며 이를 갈았다. 소만영도 소만리의 뺨을 때리려고 했다. 하지만 소만리는 홀가분하게 가버렸다.소만리는 소만영이 기모진에게 말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기모진에게 이렇게 빨리 전화가 올 줄 몰랐다. "지금 당장, 소가 집으로 와."그의 말투는 차분하게 들렸다. 하지만 이것은 폭풍우 전 고요함이라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 일이 일어난 뒤로 소만리는 소 가 집에 간 적이 없다.이때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자 소구와 전예가 죽일 듯이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고, 기모진은 냉랭하게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소만영은 기모진 옆에서 서럽게
소만리는 아파서 끙끙거렸다. 소구는 소만리의 손가락을 밟으며 위풍당당하게 말했다."모진아, 내가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아버지로서 딸이 이렇게 당하는 걸 보니 도저히 참을 수 없다. 만영이 뱃속 아기가 태어나면 너도 부모의 심정을 알 수 있을 거다."그는 말하면서 소만리의 손을 짓밟고 그녀의 손에서 피가 흘렀다. 그녀는 아프다고 소리치지 않고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다.기모진은 말없이 얼음처럼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소만리 눈에는 그가 그저 묵인하는 것 같았다. "모진아, 나 얼굴이 너무 아파. 얼굴에 상처 생기면어떡하지?" 소만영이 울며 하소연했다.기모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소만리 옆을 지나갔다. "맞아도 싸." 기모진은 소만리를 지긋지긋하게 노려봤다.그리고 그는 소만영을 안아주며 말했다. "바보야, 네 얼굴을 예전처럼 예쁘게 해줄게, 방에 가서 좀 쉬자."기모진의 말이 소만영에게는 웃음을 줬고, 소만리에게는 아픔을 줬다."나 괜찮아, 만리한테 가봐, 만리가 또 질투하면 어떡해." 소만영은 가식적으로 기모진을 떠밀어냈다."이런 뻔뻔한 여자는 질투해 죽는다고 해도 신경 안 써.” 기모진은 소만리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쳐 갔다. 그가 돌아서자 소구는 다시 소만리의 손을 쎄게 밟았다. 소만리는 이를 악물고 촉촉해진 눈망울로 소만영과 기모진의 뒷모습을 보며 가슴 아파했다.기모진이 방으로 들어가자 소구는 소만유의 어깨를 발로 걷어찼다."오늘은 여기서 끝내는 줄 알아! 감히 또 만영이 괴롭히면 사람 시켜서 네 손모가지를 부러뜨려 버릴 거야! 꺼져!”소만리는 이를 악물고 힘겹게 일어서며 굴하지 않았다. "소만영이 나를 또 건드리면 때려도 난 잘못 없어!”소구는 소만리가 그렇게 말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소구가 정신을 차렸을 때 소만리는 이미 가버리고 없었다.소만리가 소 가 집에서 나오자 전예의 원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그 나쁜 년 손을 부러뜨렸어야 했는데! 그년이 반지 디자인 초고 그려 주고 돈 번다며!”어두운
소만리는 휴대폰을 손에 쥐고 겨울밤 비바람을 맞고 있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천만 원이라는 돈은 그녀에게 너무 큰돈이었다.그녀는 경도 제일의 부잣집 며느리 대접을 받아본 적 이 없다. 오히려 초라한 꼴만 당했다.소만리는 시윤이 더 위험해질 것 같아 섣불리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다. 그녀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결국 기모진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하지만 기모진이 그녀를 차단했는지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았다. 두려워하고 있을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소만리는 소 가 집으로 되돌아 갔다.그녀가 오른손을 들자 소구가 얼마나 세게 짓밟았는지 손에 힘이 없어 잘 들어지지 않아 왼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고, 그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물 한 바가지를 맞았다."나가! 우리 집 앞을 더럽히지 마! 네가 만영이 이렇게 힘들게 할 줄 알았으면 입양도 안 했어!” 전예는 물대야를 들고 수만리를 향해 화내며 욕설을 퍼붓고 침을 뱉으며 쾅 하며 문을 닫았다.소만리가 미소를 지으며 어이없어 했다. 그녀는 자신의 골수로 병든 소만영을 구하고 이런 대우를 받을지 상상도 못했다. 소만리는 입술을 깨물고 소만영의 방 아래쪽으로 가서 고개를 들었다. 밤하늘 주룩주룩 비가 내려 그녀는 거의 눈을 뜰 수 없었다."기모진, 부부로서 한 번만 도와줘!" 그녀는 소만영의 방 창문에 대고 도와 달라고 외쳤다. "외할아버지가 병에 걸렸고, 지금 납치됐어! 할아버지를 구해줄 사람 너 밖에 없어, 모진아, 제발 도와줘!"소만리는 고개를 들고 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기모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씁쓸하게 입술을 깨물며 낙담하고 돌아서려고 할 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다. 소만리의 고요했던 심장박동이 빠르게 뛰었다. "모진아......”"모진이가 너 보기 싫대, 모진이 지금 내 방에서 목욕하고 있어." 소만리 눈앞에 소만영의 추악한 모습이 나타났다.소만리의 순식간에 얼굴이 일그러지며 가슴이 아팠지만, 그녀는 부탁하러 온 걸 잊지 않았다. “소만영
"이렇게 사악한 너에게 왜 내 골수를 줬을까!? 기모진이 눈이 삐어서 너 같은 여자를 사랑하나 보다!”소만리가 소만영의 뺨을 때리자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고 달려왔다.맞은 소만영을 보자 전예가 즉시 달려와 소만리의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고 발로 찼다. 하지만 소만리는 여전히 소만영을 죽일 듯 노려봤다."모진아, 아파! 모진아 살려줘! 만리가 나 때려죽이려고 해! 소만영이 울부짖자 기모진이 깜짝 놀랬다."소만리 너 미쳤구나!" 기모진은 넋이 나간 소만리를 밀치고 소만영을 끌어안았다."어어어엉...... 모진아, 아파, 얼굴이 너무 아파! 만리 쟤 미쳤어!" 소만영이 기모진 가슴에 안기며 하소연했다. 소만영은 곧장 달려갔다."소만영, 불쌍한 척하지 마! 울어야 할 사람이 나야! 내가 어쩌다 너 같은 년이랑 엮어서!”"모진아, 쟤 말하는 것 좀 봐라! 저 천한 계집애가 네 앞에서 만영이 때리고 욕을 하면서 죽어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안 하는 거 봐라! 저런 계집애랑 진작에 이혼했어야지! 전예는 소만영이 안쓰럽다는 듯 말했다.기모진의 긴 눈썹은 더욱 찌푸려졌고 눈에서는 섬뜩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소만리!” 그는 차갑게 말하며 소만리를 죽일 듯한 눈빛으로 원망했다."네가 계속 나를 시험하는 거지? 죽고 싶어?"허." 소만리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녀의 목숨은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기모진, 눈 크게 뜨고 똑똑히 봐, 네가 안고 있는 게 사람인지 짐승인지!”"찰싹!” 전예는 소만리의 뺨을 때렸다. “네가 감히 만영이를 욕해?”“저 여자 짐승이야!” 소만리는 불굴의 눈으로 기모진을 쳐다봤다. "네가 그토록 사랑하는 소만영이 얼마나 악랄한 짓을 저지른지 알아?! 우리 외할아버지를 납치해 천만 원을 요구했다고!”"소만리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어떻게 그런 짐승도 못할 짓을 할 수가 있어." 소만영이 억울하고 잘못 없다는 듯 말했다. “우리 친 외할아버지가 아니지만 나랑 너는 자매야, 나도 시윤 할아버지를 친 할아
기모진이 물었을 때 소만리는 이미 답을 예상한 듯했다.아니나 다를까, 전화기 너머로 간호사가 대답했다. "네? 폐암 이요? 정신적인 문제 말고 몸은 건강한데 무슨 폐암에 걸려요? 잘못 아신 거 아니에요?”정적이 흐르고, 소만리는 순간 몸이 굳었다.전화를 끊으려던 순간 간호사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시윤 할아버지 저번에 한 번 없어진 적은 있었어요, 근데 손녀가 숨바꼭질 하자고 숨으라고 했다고 그랬어요.”여기까지 듣자 소만리는 이미 다 알아차렸다.외할아버지는 폐암에 걸리지도 않았고, 납치된 적도 없다. 이 모든 것은 모두 소만영이 꾸민 짓이었다."만리야, 이제야 알겠다. 네가 외할아버지를 일부러 숨기고 또 내가 납치했다고 모함했구나.”소만영은 선수 쳐서 눈물을 글썽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만리야, 너 도대체 나에게 왜 그래, 난 너를 내 친동생으로 여기는데, 네가 어떻게 이런 짓으로 나를 모함할 수 있어, 네가 정말 그렇게 나를 미워한다고 해도 할아버지 목숨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되지.”"왜 그러겠어! 모진이가 너를 미워하게 만들려고 하는 거지!" 전예는 소만영과 같이 거짓 연기를 했다. "소만리 너 정말 가증스럽구나! 우리 소 씨네 집에서 대학까지 보내주면서 키워줬더니 네가 은혜를 원수로 갚어? 만영이 남자친구를 뺏는 것도 모자라서 이런 악랄한 짓까지 해? 넌 정말 사람도 아니야!”두 모녀가 번갈아 가며 소만리에게 죄를 뒤집어 씌었다.소만리는 갑자기 무력감을 느꼈고, 그녀는 자신이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이 모든 것이 다 소만영이 꾸민 음모였다. 소만리는 기모진이 자신의 변명을 믿지 않는 걸 알면서도 기모진에게 마지막 기대를 가졌다. “기모진, 네가 믿은 안 믿든 상관 없어, 하지만 난 이런 비열한 짓 한 적 없어.”“찰싹!”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만리 얼굴에 뺨을 날아와 입에 피가 났다.화끈거리는 볼의 통증 보다 기모진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더 아팠다."소만리, 더럽기만 한 게 아니라 양심도 없구나,
문 앞에 서 있던 소군연의 모친은 이 모습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군연의 부친이 옆에서 말렸다.“그만 좀 해.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길 바라는 거야?”“누가 지금 가서 훼방 놓으려는 줄 아세요? 가서 말해 줘야죠. 나도 이 혼사에 동의해도 되겠냐고.”“당신 동의하는 거야?”소군연의 모친이 막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연장 안 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안에서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소군연의 품에서 나온 예선은 소만리와 기모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심지어 나익현과 나다희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예선과 소군연을 향해 다가왔다.예선은 멍하니 소만리를 쳐다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소군연의 부모만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소군연은 절대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단지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좀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이듬해 봄.생명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들이 축제를 펼치는 계절.경도호텔 야외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그렇다.오늘은 소군연과 예선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주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두 부부의 눈에는 실로 눈앞의 모든 존재들이 기적과도 같았다.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막내와 그 옆을 잘 보살피고 있는 듬직한 기란군, 그리고 곱고 맑은 딸 기여온까지.“엄마 아빠, 나랑 막내한테도 뽀뽀해 줘.”“뽀뽀, 뽀뽀.”막내는 기란군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쳤다.“너랑 막내는 맨날 하잖아. 여온이는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특별히 좀 더 많이 해 줘야지.”기모진은 귀여운 기여온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여온아,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놈이 평소에 무섭게 굴지는 않아?”“당신이 말한 그놈이 혹시 나예요?”강자풍이 짐짓 뾰로통한 얼
예선의 말을 듣고 소군연의 모친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예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다.게다가 예선은 자신을 향해 ‘존중'이라는 단어를 썼다.예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소군연의 모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는 중 갑자기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네가 그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널 존중해 줄 줄 알아? 사람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거야.”“그렇지만 군연은 그들의 아들이잖아. 만약 내가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군연이랑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평생 나와 군연을 원망하며 살 거야.”예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군연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평생 힘들어하면서 살게 할 순 없어.”“그렇지만 예선아...”“소만리, 이제 그만해. 너 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지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이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안 그래?”예선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예선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선아, 그럼 이제 갈 거야? 소군연 선배 더 안 찾을 거야?”“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래도 못 찾는다는 건 아마도 군연과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군연이 혼자 조용히 있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예선이 돌아서자 소군연의 모친은 얼른 몸을 숨겼다.자신이 그들을 미행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소만리가 예선을 불러 세웠다.“예선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랑 군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때? 아직 안 가 본 곳이 혹시나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소군연 선배가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예선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직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해.”“거기가 어
멀리서 예선을 몰래 관찰하던 소군연의 부모는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흥. 군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깊다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군연이 어디 갔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군.”소군연의 모친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거렸다.소군연의 부친은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말 좀 이제 그만해. 지금은 군연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사실 난 저 예선이란 애, 꽤 괜찮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부모도 없다고 당신 많이 싫어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있고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갑부에 아빠는 유명한 의사인데 당신 뭐가 불만이 그렇게 많아? 정말 아들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할 셈이야?”소군연의 부친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당신도 예전에는 반대했잖아요? 나중에는 나도 동의했다구요. 하지만 아버님 체면 세워 드리느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건데 이제 와서 날 탓하면 어쩌라는 거예요?”“그만둬.”소군연의 부친이 아내의 말을 끊었다.“어째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예선이 움직였어!”소군연의 부친이 급히 액셀을 밟았고 소군연의 모친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소만리의 차는 경도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건물을 바라보며 예전에 함께 보냈던 날들을 떠올렸다.그들이 대학에 갓 입학한 첫날이었다.그때 그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해 선배의 남자와 부딪히게 되었다.그 남자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경도대학교에 있을 것 같아?”소만리가 물었다. 예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말처럼 군연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 왔어. 운에 한번 맡겨 보려고.”예선은 말을 마치며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학교는 개방식이어서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바로 들어갔
소군연의 할아버지는 소군연의 글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퇴원하자마자 한 여자 때문에 사라져?게다가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그는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군연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만약 소군연이 정말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들 소 씨 가문은 후사가 없게 되는 게 아닌가?낭패였다.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예선은 밖으로 뛰쳐나온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오전이 다 지나도록 소군연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소군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예선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그녀는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탈히 사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상실감이 확 밀려왔다.군연, 정말 날 포기하기로 한 거예요?우린 이렇게 헤어져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예선은 막막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바로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선은 얼른 그녀의 전화를 받아 소군연에게 일어난 상황을 전했고 소만리는 한달음에 예선에게 달려왔다.예선은 소만리를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소만리는 예선을 위로했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 거야. 널 포기했을 리가 없어.”“아니야. 포기한 거야.”예선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의 가족들이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하시고 최근에 발생한 일 때문에 다른 가족들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나빠졌어.”“그동안 일어난 일은 너랑 아무 상관없어. 넌 피해자야.”“하지만 그들은 날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소군연
”얼른 들어갈게요!”소군연의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는 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넌 오지 마! 우리 소 씨 가문에 널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소군연의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선은 소군연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예선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어떻게 소군연이 스스로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어제까지도 분명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소군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그러나 소군연은 받지 않았다.소군연에게 핸드폰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선은 계속 전화를 시도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소군연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드디어 예선이 소군연의 집에 도착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칼진 소군연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가 어떻게 스스로 집에 왔다는 거야? 방금 깨어난 거 아니야?”“이것 좀 봐 봐. 이거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야.”소군연의 부친은 원망 섞인 말투로 소군연의 모친에게 뭔가를 쥐여 주었다.예선이 얼른 현관에 들어서자 따가운 소군연의 모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넌 왜 또 왔어? 누가 널 환영한다구...”“됐어. 그만하고 이것 좀 보라니까.”소군연의 부친은 예선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군연의 모친 말을 끊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부친이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쫓아내지 않자 얼른 안으로 걸어갔다.소군연의 모친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메모지 한 장이었는데 메모지에는 짧은 몇 마디가 쓰여져 있었고 모두 소군연의 모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소군연은 자신이 이틀 전에 깨어났다고 실토하며 잠에서 깬 이후 자신의 엄마가 예선에게 모질게 투덜거리는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예선과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
예선은 아무도 없는 병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소군연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예선은 소군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이때 소군연의 엄마가 들어왔다.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소군연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본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 혹시 무슨 검사하도 하러 간 거야?”소군연의 엄마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예선에게 물었다.소군연의 엄마가 보이는 이런 태도에는 이골이 났는지 예선은 개의치 않으며 담담하게 돌아섰다.“저도 알고 싶어요.”“나보다 먼저 와 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제가 왔을 때도 병실에 아무도 없었어요.”예선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잠깐만.”소군연의 엄마가 예선을 멈추어 세우며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말을 해 둬야겠어. 군연인 이미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 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너 때문에 영 씨 집안 두 모녀는 감옥에 갇혔어. 이건 분명히 네가 우리 가문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네가 우리 군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든 우리 군연이 널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어. 넌 우리 소 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예선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 씨 집안 두 모녀가 감옥에 간 것까지도 예선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예선과 소군연은 엄연히 피해자였다.영내문 같은 악랄한 사람은 오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었다.영내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중의 악인이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벌여진 일들로 이 모든 것이 자명한데 소군연의 엄마는 여전히 예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예선은 더 이상 소군연의 엄마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시간 낭비 에너지
채수연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온아.”채수연이 기여온에게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여온아, 선생님이 여온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딜 가든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라. 그리고 하루빨리 말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게.”기여온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채수연은 일어서서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눈에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 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의 집착은 사라졌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집스럽게 쟁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채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자풍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강자풍도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기여온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 채수연에게 따뜻한 작별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채 선생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많이 신세 졌습니다. 고맙습니다.”채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절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걸로 이미 다 갚으셨어요. 하지만 강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그럼요, 언제든지요.”강자풍이 흔쾌히 승낙했다.친구가 된다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채수연은 그 자리에서 기여온을 안고 점점 멀어지는 강자풍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강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자풍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가득 품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뭐가 궁금하신가요?”“좋아하는 여자가 정말 있긴 한 거죠?”강자풍은 기여온의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시선을 잠시 떨구며 입을 열었다.“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여온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어쩌다가 듣게 되었어요.”강자풍은 순순히 시인했다.채수연은 강자풍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난감해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다만 약간의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강자풍은 채수연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더 난처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나와 여온이 일로 또 한 번 고민거리를 안겨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강자풍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기여온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예요.”채수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마음속에서 상실감이 강하게 몰아쳤다.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강자풍을 쳐다보며 강자풍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그의 말은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채 선생님, 여온이한테 더 잘 맞는 유치원을 찾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과도 더 가까워서 여온이 등하원하는 데도 훨씬 편리할 것 같아요.”강자풍의 말을 들은 채수연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여온이한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유치원을 옮기기로 하신 거예요?”강자풍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선생님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강자풍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기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채수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자신의 감정이 줄곧 일방적인 것이었고 닿을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자풍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채수연도 강자풍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저희 엄마와 엄마 친구가 강 선생님에 대해 한 말은 정말 부적절했어요. 죄송합니다.”강자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입
류 씨 성을 가진 남자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강자풍이 기여온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모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었다.이 남자도 양심은 있었던지 기여온의 모습은 블러 처리를 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지만 강자풍의 모습은 영상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채수연의 엄마는 한눈에 영상 속 사람이 강자풍임을 알아차렸다.영상 아래의 댓글을 본 채수연의 엄마는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수연아, 너 어떻게 이런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채수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맞아요. 부인하지 않을게요. 난 강 선생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뭐라고!”“아유... 수연아, 너 정말 이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진 씨 부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거렸다.“내가 보니까 여기 댓글 단 사람들이 벌써 이 남자 신상을 다 파헤친 것 같던데. 이 남자 예전에 우리 F국에서 한때 주름잡았던 그 강어라는 사람 동생이라더라구. 그 강연이라나 뭐라나 누나라는 사람은 업계에선 더욱 악명이 높았대.”“뭐! 그 강 선생이 강어와 강연의 동생이라고?”채수연의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악명 높은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나도 그 사람 형과 누나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하지만 강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에 개입한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벌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거예요.”채수연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게다가 강 선생님은 이 아이의 친아빠가 아니에요. 친구 딸인데 잠시 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걸로 자꾸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못 해서 누구보다 괴로운 건 이 아이잖아요. 입장 바꿔서 누군가가 아주머니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네?”“...”채수연의 입에서 뭐라도 가십거리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