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만영의 말을 듣자 기모진의 표정이 변했다. 그는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소만리의 주치 의사와 소만영의 이야기를 들었다."어떻게 이럴 수 있죠? 소만리가 이런 일을 저지를 줄 몰랐어요…" 소만영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기모진은 잘 들리지 않아 올라가려 할 때, 의사가 난감해하며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사실 의사로서 저한테 이런 거짓말을 하라는 것은 덕을 해치는 거에요. 동생분도 참… 임신도 안 했는데 임신한 척하고 가짜 피로 아이까지 있는 척해서 우리까지 속이다니. 정말 어이가 없네요!”이 말을 듣고, 기모진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연기? 소만리가 임신한것도 연기였고 흘린 피도 가짜란 말이야?!"만리가 이렇게까지 하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지만… 그래도 사람 목숨으로 거짓말할 줄 몰랐어요. 심지어 선생님들에게 남편한테 거짓말해달라고 부탁까지 하고, 정말 자기 맘대로네요!”"동생 좀 말려주세요, 남편도 언젠가 가짜 임신 눈치챌 거예요" 의사는 말을 끝내고 자리를 떠났다.소만영은 의사 선생님을 뒤쫓아가 말했다. "선생님, 제발 누구에게도 절대 이 일을 말하지 마세요. 특히 제 여동생 남편한테요. 동생 남편이 알게 되면 동생을 때려 죽일까 걱정돼요.”의사는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이 일은 당사자들이 해결하세요. 어차피 소만리씨 지금 당장 퇴원해도 됩니다.”“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소만영은 의사의 뒷모습을 향해 연신 감사 인사를 했다. 인사를 마친 소만영은 긴 한숨과 함께 미간을 찌푸렸다."만리야, 너 이번엔 정말 너무했어. 네가 나인 척 모진이 어릴 적 소꿉친구라고 거짓말한 거는 이해할게, 근데 어떻게 임신했다고 거짓말할 수 있어?” 소만영은 한숨을 쉬며 옆에 서 있는 기모진을 보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녀는 두려워 떨며 기모진을 바라봤다. "모진아, 너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기모진은 긴장해서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는 소만영을 보고 화를 가라앉히며 말했다. "소만리가 이런 일을 저지르는 걸 뻔히 알면서도 소
기모진은 싸늘하게 웃으며 소만리를 흘겨봤다. "하… 소만리, 내가 너를 너무 우습게 봤군. 감히 의사까지 동원해서 임신했다고 나를 속여? 내가 너 같은 여자한테 속아 넘어갈 거라고 생각했어?”소만리는 눈물을 글썽였다. “모진아 난 정말 널 속인 적 없어! 내가 어떻게 이런 일로 너를 속일 수 있어. 내 배를 만져봐, 여기 정말 아이가 있어..."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일어나 기모진의 손을 잡아당겼다. 그녀는 그가 자신의 말을 믿어주고, 뱃속에 있는 작은 생명이 움직이는걸 느끼길 바랬다.하지만 기모진은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저리 가! 더러운 손으로 나 만지지 마 !" 기모진의 눈빛이 칼처럼 날카로웠다. "임신했다고 말하지 마!" 지금 네가 정말 임신했다고 해도 나는 그 아이 원하지 않아, 너랑 안 어울리니까! 소만리, 너 같은 여자랑 나랑은 아무 상관이 없어!""모진아!" 떠나는 기모진을 보고 소만리는 비틀거리며 쫓아가 그의 팔을 잡았다. "모진아, 가지마, 네가 영원히 지켜주겠다고 약속 했잖아, 내가 너의 아리야, 설마 나 잊은 거 아니지?”애원하던 소만리의 말이 그를 자극했고, 소만리는 순간 살기를 느꼈다. 잠시 후, 기모진은 소만리를 밀쳐 바닥에 넘어졌다. 고통스럽게 아랫배를 부여잡고서 무서운 눈빛을 한 기모진을 보았다."소만리, 너 진짜!""모진아..." 소만리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그를 애타게 불렀지만 기모진은 모질게 말 하며 그녀가 죽든 말든 전혀 상관하지 않고 가버렸다.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바닥에서 일어났고,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아까 그의 다정함은 꿈이었을까? 꿈에서 깨어나니 더 슬펐다. 소만리는 자신을 비웃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모진 오빠은 더 이상 아리가 알던 소년이 아니었다...기모진은 더 이상 오지 않았고, 심지어 안부조차 묻지 않고 마치 이미 그녀를 잊은 듯했다. 소만리는 며칠째 병원에 있었지만 몸이 회복되지 않고 갈수록 허약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예선에게 부탁해 전문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지만 소만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모진은 소만리가 죽든 말든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그에게는 소만리가 죽는 게 더 나았다. 하지만 소만리는 뱃속의 아이를 위해 더 열심히 살아갔다.의사는 뱃속의 아이와 소만리가 상극이라고 했다. 아이가 자라는 위치가 종양을 누르고 있어 뱃속의 아이가 자랄수록 소만리의 상태는 더욱 악화될거 라고 했다..소만리는 인터넷으로 많은 회사에 이력서를 지원했지만 한 군데도 합격 통보가 오지 않았다.그러던 어느 날, 작은 회사에서 보수 좋은 반지 디자인 의뢰를 받고, 집에서 하루 종일 바쁘게 일 하며 밥을 챙겨 먹고 있었다.. 임신한지 3개월이 되었는데 겨울이라 두꺼운 스웨터를 입고 있어서 임산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안부를 묻지 않는 기모진이 익숙해졌다.이때, 갑자기 현관문에서 발걸음소리가 들리자 기모진이 들어왔다. 그는 검은색 가죽 자켓을 걸치고 욕망에 금치 못해 매혹적이었다. 그의 손에는 두개의 캐릭터 봉지가 들려 있었다. 소만리가 자세히 보니 아기의 옷이었다. 그녀는 매우 의아하며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모진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만영이 거야." 그가 다정하게 말했지만 이는 소만영을 위한 다정함이었다.소만리의 기대는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났다."소만리, 설마 이게 네 거라고 생각한 거야? 우리 사이에 어떻게 아이가 생겨.” 그가 비웃으며 덧붙인 그 한마디가 소만리의 마음을 더욱더 아프게 했다."기모진, 넌 정말 못됐어!" 그녀는 그의 차가운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너같이 뻔뻔한 여자한테 내가 다정하길 바라는 거야? 소만리, 네가 그럴 자격이 있어?” 그는 미소 지으며 가늘고 긴 눈망울로 핏기 없는 소만리의 얼굴을 흘겨보고 차갑게 돌아서 위로 올라가 버렸다.기모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소만리는 메마른 입가에 쓴웃음을 지으며 나지막이 웅얼거렸다“기모진, 내가 너랑 그렇게 안 어울리는데 왜 그때 나랑 그런 약속을 한 거야?”소만리는 산부인과에 가서 검진을 받아보니 몸
소만리의 말을 듣고 예선은 다급하게 말했다.”소만리, 너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나 진지해.” 소만리는 희미하게 웃으며 눈앞의 푸른 바다를 바라보았고, 그녀의 눈에는 아름다운 추억의 장면이 담겨있었다."이 바다에서 모진이랑 결혼을 약속했었어."라고 말하더니 소만리는 곧바로 말을 바꿨다. "아니지… 나 혼자 사랑을 시작한 곳이라고 봐야지.”예선은 잠시 멍 했고, 문득 뭔가 떠올랐다. “이곳이 바로 너희가 처음 만났던 곳이구나!”소만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 눈을 감았고, 그녀의 계란형 얼굴에 햇빛이 쏟아졌다. “처음 만날 날 기모진이 ‘아리, 나중에 커서 나의 신부가 되어줘.’ 라고 말했어.” 그녀는 말하면서 천천히 눈을 떴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렀다."남자들이 하는 말 다 거짓말이야!” 기모진이 여자들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을 진짜로 받아들이니!”"응, 진짜라고 믿었어. 진짜가 아니어도 나 진지해.""만리야, 포기해. 기모진 같은 남자 네가 사랑할 가치가 없어." 예선은 소만리의 노력이 아깝다고 말하며 그녀를 설득했다.그러나 소만리는 그저 웃으며 말했다. “예선아, 12년이야… 기모진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어.” 기모진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이미 뼛속 깊이 파고들었다. 기모진을 포기한다는 게 어디 말처럼 그렇게 쉽나?"그래서 이 남자 때문에 목숨까지 걸겠다는 거야?" 예선의 말과 함께 싸늘한 찬바람이 불어와 소만리의 마음이 차가워졌다.“기모진만 행복하면 돼.” 기모진에게 빠진 소만리는 그녀 자신조차 잃었다.“예선아, 나 아마 아이 못 낳을 것 같아.”소만리가 조개껍질을 주워 들자 머릿속에 추억의 장면이 떠올라 입술을 꽉 깨물었다."내가 더 이상 귀찮게 안 하면 기모진도 좋아할 거야. 나도 이제 우리 아기와 함께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영원히 이 바다에 잠들 수 있으니 행복해, 영원히…”예선은 소만리를 바라보며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지금도 웃고 있는 소만리가 바보같이 보였다. 그 무정한 남자를 얼마나 사랑
기모진의 태도에 소만리는 의아했지만, 그녀도 더 이상 예전처럼 그의 비위에 맞춰주지만않았다. "기모진씨가 하고 싶은 말씀이 뭐에요?"“방금 뭐라고 불렀어?"소만리가 자신을 부르는 호칭에 기모진은 불만스러웠다."뭐라고 부르든 그게 뭐가 중요해요? 어차피 기모진씨는 항상 저를 무시했잖아요.” 기모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만영이 배가 점점 커져서 이제 곧 만영이에게 내 아내 자리를 돌려 주려고.”소만리는 기모진이 언젠가는 이혼을 강요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 순간이 막상 오니 하늘이 무너지는거 같았다. 소만리는 차가운 얼굴의 기모진을 보고 웃으며 물었다."그럼 저는요?" 그녀는 이 말을 하자, 마치 자신과 뱃속 아이가 웃음거리로 느껴졌다.기모진은 깊고 날카로운 눈으로 소만리를 쳐다봤다."네가 내 말을 들으면 우리 관계는 유지할 수 있어."소만리는 잠시 멍하고 있다가 웃었다. “그러니까 기모진씨 말씀은 그 뻔뻔한 내연녀에게 내 자리를 양보 하라는 거죠?” 소만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모진의 표정이 싸늘해졌다.소만리의 가슴이 조여지자 입술을 깨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기모진, 내가 죽지 않는한 절대 소만영 그 내연녀 뜻대로 되게 두진 않을 거야!” 소만리는 급히 위층으로 올라가서 방 문을 잠갔다. 그녀는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녀는 조금만 늦었으면 기모진에게 이혼하지 말아 달라고 매달릴까 두려웠다.그녀의 바램은 변하지 않았다. 영원히 그의 곁에 있을 수 있다면 만족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모진이 그녀와 영원히 함께 있겠다고 약속한다고 해도 그의 무정함은 그녀의 상상 이상이었다.소만리는 기모진을 마주칠 자신이 없어 이사를 했다. 그가 혹시 또 이혼합의서의 사인을 강요하고 소만영 때문에 어떻게든 뱃속의 아이를 해칠까 봐 두려웠다.소만리는 혹시 기모진이 집 나온 자신에게 안부를 물을까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그에게는 전화 한 통 없는 것을 보아 그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매일 소만영과 사랑을 나눴을
소만리는 곧바로 기모진을 찾아갔다. 그는 평소처럼 고귀한 자태로 책상에 앉아 서류를 검토하며 그녀가 들어와도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5천만 원을 빌려 달라는 소만리의 부탁에 기모진은 피식 웃었다."소만리, 돈은 내게 숫자에 불과해, 근데 너에게는 한 푼도 못 줘.”소만리는 이를 악물며 계속 부탁했다. “외할아버지가 폐암에 걸려서 치료비가 필요해, 부탁할게 모진아, 내가 꼭 갚을게.”"갚아? 네가 무슨 수로 갚아?" 그는 그녀가 죽어도 이 큰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 것을 알지만 갑자기 한 발 물러서며 말했다. “못 빌려줄 것도 없지, 내 요구만 들어준다면.”소만리가 옷자락을 꽉 쥐었다.기모진의 요구는 소만영을 자신의 아내로 삼고, 소만리를 내연녀로 둔갑하는 것이었다. 소만리는 급격히 아파오는 마음을 억누르고 애써 평온한 척 말했다."모진아, 그거 말고는 무엇이든 다 들어줄 수 있어."기모진이 서류를 덮으며 훤칠한 몸집에 싸늘하게 굳은 눈빛으로 말했다."이거 아니면 돈 한 푼 빌릴 생각 마.”소만리는 돌아서는 기모진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모진아 제발, 외할아버지 좀 도와줘. 할아버지 병세는 더 이상 심각해지면 안돼.."기모진은 낮은 목소리로 냉랭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래서?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소만리는 등골이 서늘해졌고, 눈앞의 기모진이 오늘따라 더 낯설고 차가웠다.깊은 생각에 빠지자 소만리는 턱이 몹시 아팠다. 정신을 차렸을 때 기모진의 섬뜩한 눈빛에 비웃음이 가득했다."내가 방법 알려줄게, 돈이 급하면 몸이라도 팔아, 네 그 뻔뻔한 얼굴로 5천만 원은 별거 아니잖아.”그는 그녀를 뿌리치고 그녀의 눈앞에서 멀어져갔다.기모진의 차가운 말이 소만리의 가슴에 못을 박인듯 아팠고 그녀의 종양이 더 아파졌다. 그녀는 종양이 난 자리를 감싸 안으며 가방에서 진통제 한 알을 꺼내 먹었다. 기모진의 싸늘한 말이 여전히 귓가에 맴돌자 그녀는 애써 눈물을 삼키며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기모진의 말이 맞다. 자신을 팔아서라도 외할아버지
몸을 판다고?… 소만리는 몸을 팔러 왔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소만영은 소만리가 술집에 몸 팔러 왔다고 단정 지으며 말했다.기모진의 매서운 눈에는 마치 지옥에서 온 악마 같이 소만리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났다.“몸 팔러 다니면서 감히 남자는 나하나 뿐이라고 해? 정말 뻔뻔하다.”"만리야, 언니 말 들어. 빨리 집에 가. 모진이 더 화나면 나도 모진이 말릴 수가 없어.” 소만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권유하자 소만리는 역겨웠다.소만리는 웃으며 소만영을 바라봤다. “집? 아직도 내 집이 있어? 너 같은 뻔뻔한 내연녀가 뺏어간 거 아니었어?”소만영은 당황한 얼굴로 입술을 삐죽거리며 억울한 듯 기모진을 바라봤다. "모진아, 만리에게 화내지 마, 다 내 잘못이야, 내가 너를 사랑한 탓이야. 모든 것이 다 내 잘못이라고...”누가 봐도 가식적인 연기였지만 기모진만 알아채지 못하고 소만영을 끌어안았다."바보야, 네가 뭘 잘못했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너야, 잘못한 사람은 혼자 김칫국 마시고 뻔뻔하게 내 침대에 올라간 소만리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너야. "기모진의 이 한마디에 소만리의 마음은 심하게 짓밟혔다.“하하하” 언제부턴가 소만영이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좋아했던 여자아이가 되었다.“아리야, 너를 만난 게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야. 사랑해.”소만리는 그녀의 기억 속 남자아이가 그녀를 업고 석양 아래를 걸으며 했던 말을 기억하자 너무 괴로웠다. 마음뿐만 아니라, 몸 속에 있는 종양도 갑자기 심하게 아파왔다.그녀는 이 가슴 아픈 장면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자리를 떠나려 했을 때, 막 돌아서는 사람과 부딪혔다. 그녀는 얼떨떨해하다 손에 들고 있던 비싼 와인병을 놓쳐 땅에 떨어져 깨져버렸다.소만리의 얼굴이 창백해지자 누군가 손목을 잡아당겨 끌고 갔다."소만리, 오랜만이야."남자의 비웃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소만리는 몸이 자동으로 멍해졌다.그녀가 고개를 들자, 역시나 역겨운 얼굴이 보였다.남자의 정체는 소만영의 전 애인
육정은 소만리의 말을 끊고 그녀 몸의 특징을 말하니 그들이 정말 사귄 적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이때, 소만영이 놀래며 다가왔다. "어머, 이분 네 전 남자친구 아니었어? 아… 매번… 돈 받고 만난 거구나… 그럼 너 몸 팔아서 돈 벌었던 거야? 만리야, 왜 그렇게까지 자신을 망치니!"소만리는 더욱 역겨워지자 반박하고 싶었지만 갑자기 종양이 있는 위치에 심한 통증이 밀려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의 이 침묵은 기모진이 보기엔 그저 묵인에 불과하다.예전에는 소군연, 지금은 또 육정이 나타났다.이 여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남자가 있을까.기모진의 이마에 핏줄이 불쑥 솟아오르며 무서워 보였다."모진아, 만리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너무 안쓰럽다." 소만영은 안타까워하듯이 말했다.“모진아 우리 가자.”기모진은 차갑게 소만리를 째려봤고, 소만영은 그의 팔짱을 끼고 돌아섰다."모진아… 그런 게 아니야…” 소만리는 너무 아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녀가 기모진의 뒷모습을 절망스럽게 바라보자 그의 눈빛은 혐오와 메스꺼움으로 가득했다. 기모진은 육정과 소만영의 말을 믿고 소만리가 돈 때문에 몸을 팔 수 있는 천한 여자라고 확신했다. 육정은 소만리를 방으로 끌고 왔다. 그는 욕정으로 가득 찬 눈으로 그녀의 옷을 무자비하게벗기고 있었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그는 당연히 놓칠 리 없었다.소만리는 도망갈려고 했는데 다시 끌려와 땅에 내동댕이쳐졌다. 방금 깨진 술병 유리 부스러기가 손바닥에 박혀 피를 줄줄 흘리고그 통증으로 인해 온몸이 떨렸다. 게다가 종양의 통증까지 더해져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자 옛날에 그녀의 발에 유리가 박혀 기모진이 그녀를 업고 보건소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심지어 기모진은 “아리, 앞으로 내가 지켜 줄게.” 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피를 흘리며 아파하는데 기모진은 그녀를 버리고 그냥 가버렸다.지난날의 모든 것이 지금 가장 우스운 거짓말이 되었다.소만리는 통증을 참으며 입구까지 기어올라갔고, 육정은 아
문 앞에 서 있던 소군연의 모친은 이 모습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군연의 부친이 옆에서 말렸다.“그만 좀 해.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길 바라는 거야?”“누가 지금 가서 훼방 놓으려는 줄 아세요? 가서 말해 줘야죠. 나도 이 혼사에 동의해도 되겠냐고.”“당신 동의하는 거야?”소군연의 모친이 막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연장 안 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안에서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소군연의 품에서 나온 예선은 소만리와 기모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심지어 나익현과 나다희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예선과 소군연을 향해 다가왔다.예선은 멍하니 소만리를 쳐다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소군연의 부모만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소군연은 절대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단지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좀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이듬해 봄.생명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들이 축제를 펼치는 계절.경도호텔 야외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그렇다.오늘은 소군연과 예선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주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두 부부의 눈에는 실로 눈앞의 모든 존재들이 기적과도 같았다.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막내와 그 옆을 잘 보살피고 있는 듬직한 기란군, 그리고 곱고 맑은 딸 기여온까지.“엄마 아빠, 나랑 막내한테도 뽀뽀해 줘.”“뽀뽀, 뽀뽀.”막내는 기란군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쳤다.“너랑 막내는 맨날 하잖아. 여온이는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특별히 좀 더 많이 해 줘야지.”기모진은 귀여운 기여온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여온아,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놈이 평소에 무섭게 굴지는 않아?”“당신이 말한 그놈이 혹시 나예요?”강자풍이 짐짓 뾰로통한 얼
예선의 말을 듣고 소군연의 모친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예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다.게다가 예선은 자신을 향해 ‘존중'이라는 단어를 썼다.예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소군연의 모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는 중 갑자기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네가 그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널 존중해 줄 줄 알아? 사람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거야.”“그렇지만 군연은 그들의 아들이잖아. 만약 내가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군연이랑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평생 나와 군연을 원망하며 살 거야.”예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군연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평생 힘들어하면서 살게 할 순 없어.”“그렇지만 예선아...”“소만리, 이제 그만해. 너 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지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이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안 그래?”예선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예선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선아, 그럼 이제 갈 거야? 소군연 선배 더 안 찾을 거야?”“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래도 못 찾는다는 건 아마도 군연과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군연이 혼자 조용히 있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예선이 돌아서자 소군연의 모친은 얼른 몸을 숨겼다.자신이 그들을 미행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소만리가 예선을 불러 세웠다.“예선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랑 군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때? 아직 안 가 본 곳이 혹시나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소군연 선배가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예선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직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해.”“거기가 어
멀리서 예선을 몰래 관찰하던 소군연의 부모는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흥. 군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깊다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군연이 어디 갔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군.”소군연의 모친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거렸다.소군연의 부친은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말 좀 이제 그만해. 지금은 군연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사실 난 저 예선이란 애, 꽤 괜찮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부모도 없다고 당신 많이 싫어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있고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갑부에 아빠는 유명한 의사인데 당신 뭐가 불만이 그렇게 많아? 정말 아들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할 셈이야?”소군연의 부친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당신도 예전에는 반대했잖아요? 나중에는 나도 동의했다구요. 하지만 아버님 체면 세워 드리느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건데 이제 와서 날 탓하면 어쩌라는 거예요?”“그만둬.”소군연의 부친이 아내의 말을 끊었다.“어째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예선이 움직였어!”소군연의 부친이 급히 액셀을 밟았고 소군연의 모친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소만리의 차는 경도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건물을 바라보며 예전에 함께 보냈던 날들을 떠올렸다.그들이 대학에 갓 입학한 첫날이었다.그때 그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해 선배의 남자와 부딪히게 되었다.그 남자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경도대학교에 있을 것 같아?”소만리가 물었다. 예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말처럼 군연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 왔어. 운에 한번 맡겨 보려고.”예선은 말을 마치며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학교는 개방식이어서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바로 들어갔
소군연의 할아버지는 소군연의 글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퇴원하자마자 한 여자 때문에 사라져?게다가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그는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군연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만약 소군연이 정말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들 소 씨 가문은 후사가 없게 되는 게 아닌가?낭패였다.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예선은 밖으로 뛰쳐나온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오전이 다 지나도록 소군연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소군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예선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그녀는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탈히 사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상실감이 확 밀려왔다.군연, 정말 날 포기하기로 한 거예요?우린 이렇게 헤어져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예선은 막막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바로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선은 얼른 그녀의 전화를 받아 소군연에게 일어난 상황을 전했고 소만리는 한달음에 예선에게 달려왔다.예선은 소만리를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소만리는 예선을 위로했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 거야. 널 포기했을 리가 없어.”“아니야. 포기한 거야.”예선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의 가족들이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하시고 최근에 발생한 일 때문에 다른 가족들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나빠졌어.”“그동안 일어난 일은 너랑 아무 상관없어. 넌 피해자야.”“하지만 그들은 날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소군연
”얼른 들어갈게요!”소군연의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는 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넌 오지 마! 우리 소 씨 가문에 널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소군연의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선은 소군연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예선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어떻게 소군연이 스스로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어제까지도 분명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소군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그러나 소군연은 받지 않았다.소군연에게 핸드폰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선은 계속 전화를 시도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소군연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드디어 예선이 소군연의 집에 도착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칼진 소군연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가 어떻게 스스로 집에 왔다는 거야? 방금 깨어난 거 아니야?”“이것 좀 봐 봐. 이거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야.”소군연의 부친은 원망 섞인 말투로 소군연의 모친에게 뭔가를 쥐여 주었다.예선이 얼른 현관에 들어서자 따가운 소군연의 모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넌 왜 또 왔어? 누가 널 환영한다구...”“됐어. 그만하고 이것 좀 보라니까.”소군연의 부친은 예선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군연의 모친 말을 끊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부친이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쫓아내지 않자 얼른 안으로 걸어갔다.소군연의 모친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메모지 한 장이었는데 메모지에는 짧은 몇 마디가 쓰여져 있었고 모두 소군연의 모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소군연은 자신이 이틀 전에 깨어났다고 실토하며 잠에서 깬 이후 자신의 엄마가 예선에게 모질게 투덜거리는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예선과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
예선은 아무도 없는 병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소군연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예선은 소군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이때 소군연의 엄마가 들어왔다.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소군연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본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 혹시 무슨 검사하도 하러 간 거야?”소군연의 엄마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예선에게 물었다.소군연의 엄마가 보이는 이런 태도에는 이골이 났는지 예선은 개의치 않으며 담담하게 돌아섰다.“저도 알고 싶어요.”“나보다 먼저 와 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제가 왔을 때도 병실에 아무도 없었어요.”예선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잠깐만.”소군연의 엄마가 예선을 멈추어 세우며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말을 해 둬야겠어. 군연인 이미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 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너 때문에 영 씨 집안 두 모녀는 감옥에 갇혔어. 이건 분명히 네가 우리 가문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네가 우리 군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든 우리 군연이 널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어. 넌 우리 소 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예선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 씨 집안 두 모녀가 감옥에 간 것까지도 예선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예선과 소군연은 엄연히 피해자였다.영내문 같은 악랄한 사람은 오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었다.영내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중의 악인이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벌여진 일들로 이 모든 것이 자명한데 소군연의 엄마는 여전히 예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예선은 더 이상 소군연의 엄마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시간 낭비 에너지
채수연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온아.”채수연이 기여온에게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여온아, 선생님이 여온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딜 가든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라. 그리고 하루빨리 말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게.”기여온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채수연은 일어서서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눈에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 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의 집착은 사라졌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집스럽게 쟁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채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자풍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강자풍도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기여온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 채수연에게 따뜻한 작별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채 선생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많이 신세 졌습니다. 고맙습니다.”채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절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걸로 이미 다 갚으셨어요. 하지만 강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그럼요, 언제든지요.”강자풍이 흔쾌히 승낙했다.친구가 된다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채수연은 그 자리에서 기여온을 안고 점점 멀어지는 강자풍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강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자풍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가득 품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뭐가 궁금하신가요?”“좋아하는 여자가 정말 있긴 한 거죠?”강자풍은 기여온의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시선을 잠시 떨구며 입을 열었다.“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여온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어쩌다가 듣게 되었어요.”강자풍은 순순히 시인했다.채수연은 강자풍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난감해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다만 약간의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강자풍은 채수연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더 난처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나와 여온이 일로 또 한 번 고민거리를 안겨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강자풍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기여온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예요.”채수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마음속에서 상실감이 강하게 몰아쳤다.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강자풍을 쳐다보며 강자풍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그의 말은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채 선생님, 여온이한테 더 잘 맞는 유치원을 찾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과도 더 가까워서 여온이 등하원하는 데도 훨씬 편리할 것 같아요.”강자풍의 말을 들은 채수연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여온이한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유치원을 옮기기로 하신 거예요?”강자풍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선생님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강자풍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기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채수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자신의 감정이 줄곧 일방적인 것이었고 닿을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자풍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채수연도 강자풍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저희 엄마와 엄마 친구가 강 선생님에 대해 한 말은 정말 부적절했어요. 죄송합니다.”강자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입
류 씨 성을 가진 남자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강자풍이 기여온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모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었다.이 남자도 양심은 있었던지 기여온의 모습은 블러 처리를 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지만 강자풍의 모습은 영상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채수연의 엄마는 한눈에 영상 속 사람이 강자풍임을 알아차렸다.영상 아래의 댓글을 본 채수연의 엄마는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수연아, 너 어떻게 이런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채수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맞아요. 부인하지 않을게요. 난 강 선생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뭐라고!”“아유... 수연아, 너 정말 이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진 씨 부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거렸다.“내가 보니까 여기 댓글 단 사람들이 벌써 이 남자 신상을 다 파헤친 것 같던데. 이 남자 예전에 우리 F국에서 한때 주름잡았던 그 강어라는 사람 동생이라더라구. 그 강연이라나 뭐라나 누나라는 사람은 업계에선 더욱 악명이 높았대.”“뭐! 그 강 선생이 강어와 강연의 동생이라고?”채수연의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악명 높은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나도 그 사람 형과 누나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하지만 강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에 개입한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벌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거예요.”채수연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게다가 강 선생님은 이 아이의 친아빠가 아니에요. 친구 딸인데 잠시 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걸로 자꾸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못 해서 누구보다 괴로운 건 이 아이잖아요. 입장 바꿔서 누군가가 아주머니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네?”“...”채수연의 입에서 뭐라도 가십거리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