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만리는 기란군이 갑자기 자신의 품에 안겨 엄마라고 부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소만리는 기란군이 매우 불안하며 안정감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기란군은 소만리의 품에 꼭 기대어 두 손을 꼭 잡고 두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마치 이렇게 해야 무섭지 않은 것 같았다. 소만리는 불안해하는 기란군을 보고 있으니 그녀의 마음이 무엇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았다. 오랜 만에 느끼는 뼈아픈 아픔이 그녀의 가슴을 또 한 번 파고들었다.소만리는 기란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괜찮아, 란군아 무서워하지 마."소만리가 기란군을 다독이자 상태가 점점 좋아지며 덜 긴장하고, 불안해하지 않았다. “엄마, 란군 오빠 왜 그래요?염염이는 살며시 다가와 순진한 얼굴로 물었다."괜찮아. 걱정하지 마, 엄마가 간식 만들었으니까 가서 같이 먹자." 소만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요!" 염염이가 기뻐하며 기란군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란군 오빠, 엄마가 만든 간식 먹으러 가자, 우리 엄마가 만든 케이크 엄청 맛있어!”정적이 흐르고, 기란군은 비로소 두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듯했다.기란군은 가늘고 긴 큰 눈으로 소만리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기란군은 눈을 깜빡이며 잘생긴 얼굴이 붉어지며 마치 미안해하는 것 같았다."죄송합니다." 기란군이 갑자기 사과했다.소만리는 기란군의 사과가 매우 성숙하게 들렸다.소만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기란군의 볼을 쓰다듬었다. “란군아, 네가 왜 사과를 해, 넌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소만리의 부드럽고 상냥하게 웃는 얼굴을 바라보던 기란군의 눈에 부러움이 가득했다. 온화하고 다정한 엄마를 가진 염염이가 부러웠다.기란군의 컨디션이 회복되자 소만리도 왠지 마음이 놓이는 듯했다.두 아이가 나란히 앉아 그녀가 만든 케이크를 먹는 것을 보고 있으니 그녀는 왠지 모르게 기뻤다. 특히 기란군이 염염이 입가에 묻은 생크림을 다정하게 닦아주는 모습을 보니 행복했다. 그러나 소만리는 죽은 아이가 생각나
소만리는 이렇게 어린 기란군이 과거의 자신을 신뢰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이제부터 미랍 누나라고 불러도 돼요?” 기란군이 기대하는 눈빛으로 소만리를 바라봤다.소만리는 방금 기란군이 자신을 엄마라고 부른 것이 생각나 어리둥절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소만리의 대답에 기란군의 얼굴에 드디어 함박웃음이 번졌다.소만리는 3년 전이나 후나 지금까지 기란군이 웃는 것을 처음 봤다. 기란군의 웃는 모습은 매우 빛나고 사랑스러웠다. 입술 옆에는 염염이와 똑같은 보조개가 보일 듯 말 듯했다. 그 순진한 웃는 얼굴을 보고 소만리의 마음도 왠지 훈훈해졌다.얼마 지나지 않아 기모진이 도착했다.기모진이 집안으로 들어오려고 했지만 소만리가 그를 문밖에서 막았다."기대표님, 다음부터는 귀한 아들을 잘 보살펴 주세요. 어쨌든 당신과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여자랑 낳은 아들이잖아요." 소만리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그녀는 기란군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란군아, 아빠 오셨으니까 집에 가자, 다음에 또 놀러 와.”"네." 기란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기모진의 곁으로 다가갔다.하지만 기란군도 기모진을 아빠라고 부르지 않고 그저 조용히 그의 곁에 서 있었다. 두 부자는 마치 낯선 사람처럼 거리감 있어 보였다. “미랍씨, 고마워요.” 기모진은 감사 인사를 하고 무언가 더 말하려고 할 때 전화벨 소리가 그의 말을 끊었다. 소만영에게 온 전화였다. 기모진은 잠시 머뭇거린 끝에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자마자 소만영이 통곡하며 호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진아! 방금 란군이 데리러 유치원에 갔는데, 선생님이 천미랍이 우리 란군이 데려갔데!” 천미랍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 거야? 왜 란군이를 납치하려고 하는 거야? 모진아, 우리 이제 어떻게 해? 천미랍이 분명 란군이 해칠 거야, 무서워! 모진아..."소만영의 목소리가 너무 과장돼서 소만리는 안들을 수가 없었다. 소만리는 기모진의 눈살이 잔뜩 찌푸려지는 것을 보았다. 그가 입을 열려고
기모진은 소만리의 눈에 담긴 풍자와 거부감에 불안했다.그는 얇은 입술을 꽉 깨물며 소만리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러니 기 대표님, 다시는 저 찾아오지 마세요, 저 더 이상 죽은 사람으로 취급받고 싶지 않아요.” 소만리는 차갑게 거절했다.잠시 말이 없던 기모진이 입을 열었다.그는 소만리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약속할게요.”소만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기 대표님, 그날 저를 시험했던 거 인정하시는 거예요?”소만리의 질문에 기모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과거에 소만리가 수치스러운지 모르고 기모진을 사랑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기모진이 소만리를 사랑했다는 사실은 기모진 혼자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날도 소만리를 떠본 게 아니라, 정말 술에 취해 정신을 잃어서 그녀가 살아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환상은 어디까지나 환상일 뿐이었다. 기모진이 정신을 차리니, 눈앞에 있는 여자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기모진이 말을 하지 않자 소만리도 가만히 있었다. 소만리는 낮은 목소리로 차갑게 말했다. "기 대표님 초대에 응할게요. 기 대표님에게 잘못 보이면 앞으로 경도에서 지내기가 힘들 것 같아서요."소만리는 마지못한 듯 초대에 응했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기가 50주년 축하식은 반드시 참석할 계획이었다. 유명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소만영의 또 다른 얼굴을 모두에게 보여주겠다는 의도가 있었다. 소만리는 기모진에게 초대장을 받았다. 그리고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익명의 이름으로 초대장을 보냈다. 그녀는 초대장을 보내고 백화점에 가서 인터넷에서 미리 봐 둔 드레스를 찾았다.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소만리가 백화점에 들어서자마자 매장 안에 있는 소만영을 봤다. 몇 명의 직원들이 열정적으로 소만영을 접대하고 있어 소만리가 들어온 것을 모르고 있었다. "아가씨, 이것들은 모두 지난주에 막 들어온 신상이에요. 특히 이 스타일들은 아가씨
소만리는 자신을 무시하는 직원들과 기고만장한 소만영을 보며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경호원을 부른다는 직원 얼굴에 던졌다. “주워서 잘 보세요. 제가 이 치마를 가질 수 있는지 없는지.”소만리의 기세에 놀란 직원은 얼른 명함을 주워 보자마자 안색이 달라졌다. 직원들은 당황하며 빨개진 얼굴로 얼른 소만리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천미랍 고객님 이였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세요."다른 점원들도 이를 보고는 소만리가 던진 명함을 보더니 안색이 달라져 급히 소만리에게 사과했다.소만영은 직원들이 갑자기 소만리에게 공손한 태도로 사과하자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 "이게 뭐 하는 거예요?” 왜 갑자기 저 여자한테 공손하게 대하는 거죠?" 소만영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저 여자 명함이 뭐 그리 대단한데 이렇게 놀라요?"소만영은 시큰둥하게 점원이 들고 있던 명함을 빼앗아 보았다. "흥, 결국 액세서리 파는 거 아니야, 뭐 별거 있..." 비아냥거리며 말하던 소만영의 안색이 갑자기 바뀌었다. 그녀의 눈에는 의심스럽고 받아들이기 싫은 듯 소만리를 노려봤다. “네가 이 브랜드 글로벌 명예회원이라고?”보라색 명함을 손에 쥔 소만영의 눈에는 질투와 의심이 가득했다. 하지만 명함에는 ‘천미랍’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소만영은 모 가 집안 아가씨가 된 후, 그녀의 이름으로 많은 명품 브랜드의 명예회원 카드를 가졌다. 소만영도 글로벌 명예회원 신청을 해 자신의 품격을 높이고 싶었지만 아직 신청 조건에 미치지 못했다. 소만영이 그토록 싫어하는 천미랍이 글로벌 명예 회원일 줄이야! 소만리가 화난 얼굴로 소만영을 노려보며 말했다. "액세서리 파는 제가 이제 이 치마를 가져가도 되겠죠?" 그는 소만영의 손에서 명함을 가져오며 이내 우아하게 돌아섰다. "거기 서!" 소만영이 소만리를 막아섰다. "천미랍, 네가 이 명함을 가지고 있으면 뭐? 이 치마는 이미 다른 사람이 예약했어.” 소만영은 팔짱을 끼고 차갑게 웃었다.
소만영은 화가 잔뜩 난 상태로 모가 집으로 돌아갔다. 여집사는 소만영이 돌아오자 차를 따라주며 과자를 건넸다."만영 아가씨, 왜 그렇게 화났어요? 과일 주스 좀 마시고 화 푸세요." 여 집사가 활짝 웃으며 소만영의 비위를 맞췄다. “제 일에 무슨 상관이에요? 소만영은 불만스럽게 눈을 부릅떴다. "엄마는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 앞에서 차 소리가 들렸다. 여집사는 밖을 내다보며 소만영에게 말했다. "사모님 오셨나 봐요.” 소만영이 여집사의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났다. "엄마가 저 찾으면 방에 있다고 하세요.”소만영은 여집사에게 명령을 하고 가방을 챙겨 위층으로 재빨리 올라갔다.여집사는 연신 대답하며 증오의 눈빛으로 소만영의 뒷모습을 노려봤다."소만영, 너도 간접적으로 보아를 죽인 살인범이야, 만약 네가 갑자기 나타나 보아의 자리를 빼앗지 않았더라면, 보아는 여전히 풍족한 아가씨의 삶을 누리고 있을 텐데!”그녀가 울분을 토하는 말을 마치자마자, 갑자기 사화정의 발걸음이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이모, 만영이 집에 왔어요?" 사화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여집사의 나이는 사화정과 비슷하지만 외모와 품격은 사화정과 비교할 수 없었다. 여집사는 사화정에게 공손에게 대답했다. "아가씨가 방금 들어왔어요. 방 안에 계실 거예요."사화정은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를 지으며 위층으로 올라갔다."만영아, 엄마가 뭘 사왔는지 봐봐, 경도에서 이 액세서리가 어울리는 사람은 우리 딸밖에 없어, 기가 그룹 50주년 파티에서 네가 가장 빛날 거야.”사화정이 혼잣말을 하며 소만영의 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사화정은 방안에 있는 소만영을 보고 깜짝 놀라 액세서리 상자를 떨어뜨렸다. “만영아!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사화정이 쏜살같이 달려가 소만영이 들고 있던 과도 칼을 빼앗았다. "만영아, 무슨 일 있었니? 누가 널 괴롭혔어? 엄마한테 말해봐, 우리 딸에게 상처 주는 사람은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사화정은 손목을 그어 자살하려던 소만영을 품에 안았다.
기가 그룹의 50주년 축하식이 다가왔다.소만리는 여유롭게 스파를 끝내고 화장대에 앉아 화장을 했다. 그녀는 화장을 마치고 소만영이 구하지 못한 치마를 입고 명품 가방을 챙겨 차를 타고 경도 제일의 호화로운 6성급 호텔로 향했다.어두운 밤이 되자 가로등이 켜졌다. 소만리는 창문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이마의 잔머리를 정리하며 미소를 지었다. 운전을 하던 기사가 백미러로 아름답게 미소 짓는 소만리를 보다 신호위반을 할 뻔했다.그는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를 처음 봤다. 이때, 6성급의 호텔 정문 앞에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찼다. 언론사 기자들이 앞다퉈 사진을 찍으며, 많은 행인들이 선물을 받으러 왔다.초대장을 받고 온 손님들은 하나같이 호텔로 들어가 연회장으로 향했다. 기가 그룹 50주년 축제에는 경도의 모든 유명 인사들이 참석해 연회장 분위기는 남달랐다.소만영은 마음에 드는 드레스를 입지 못했지만, 고급스러우면서도 단아함을 잃지 않게 단장했다. 소만영은 결국 기씨네 미래 며느리 신분으로 파티에 참석했다. 게다가, 오늘 밤 파티는 그녀에게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의상에 더욱 신경을 썼다. 오늘 밤 기모진은 제작한 검은색 슈트를 입고 품위 있게 파티장으로 들어왔다. 몸에 꼭 맞는 슈트가 기모진의 균형 잡힌 몸매를 완벽하게 보여줬다. 샹들리에 따뜻한 빛이 그의 남성적인 얼굴에 떨어지며 고귀한 왕의 기질을 풍겼다. 많은 부유층 여자들이 기모진에게 다가가 말을 걸려고 했지만 기모진의 차가운 눈빛에 모두 물러났다.소만영은 기모진의 옆에서 걸으며 기가 집안 며느리 신분으로 사람들과 인사했다. 그때마다 소만영은 특히 그녀를 부러워하는 여자들의 시선을 즐겼다. 그녀가 기모진의 곁에 설 수 있다는 것은 명예와 지위의 상징이었다. 반면 기모진은 주위를 둘러보며 언짢은 듯 말했다. "무슨 기자들이 이렇게 많이 왔어?”소만영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웃으며 대답했다. "오늘은 기가 그룹 50주년 축하식이니까 기자들이 인터뷰하러 오는 건 당연하지.”"
소만리가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에 놀란 사람들의 눈길이 쏟아졌다.기모진은 소만리가 전화를 받지 않자 눈살을 찌푸렸다.기모진은 갑자기 누군가가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기는 것을 느껴 바라보자 무표정인 기란군의 얼굴이 보였다. "미랍 누나는요? 아직 안 왔어요?" 기란군은 소만리가 오기를 매우 기대하고 있었다. 기모진은 아들을 보니 심리적으로 소외된 느낌이 들었다. 그는 기란군을 보자 그와 소만리의 아이가 생각났다. 자신의 손으로 재가 된 아이.소만리가 마지막으로 그의 옷깃을 붙잡고 한 유언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매우 심란했다."란군아." 소만영의 목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왔다.기란군은 기모진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있던 작은 손을 더 꽉 잡으며 맑은 두 눈이 또다시 어두움으로 번졌다. 기란군은 손을 놓고 도망가려고 했으나 소만영에게 붙잡혔다. "란군아, 어디 가려고?"소만영은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기란군의 가녀린 손목을 잡고 기모진을 향해 부드럽게 웃었다."모진아, 어머니께서 여기서 중요한 일을 발표한다고 너랑 같이 가보라고 하셨어."기모진이 그녀를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 "발표? 무슨 발표를 해?"소만영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나도 모르겠어, 아마 기가 그룹에 관련된 일인가 봐, 우리가 먼저 가 있자.” 기모진은 이미 단상에 올라선 어머니를 의아하게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기모진이 속아 넘어간 것을 보고 소만영은 기란군을 잡아당겼다. ”빨리 걸어!”기란군은 빠져나가고 싶었지만 힘이 없어 소만영이 자신을 이용하게 내버려뒀다.이때 기모진의 어머니가 단상에 올라 소만영이 기모진과 기란군을 데리고 오는 것을 보고 마이크를 들었다. "손님 여러분과 기자 여러분, 오늘 밤 파티에 참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기모진의 어머니입니다. 오늘 이자리를 빌어 여러분들께 기쁜 일을 발표하려고 합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가 증인이 되길 바랍니다. “기쁜 일?”"기 도련님과 소만영 씨의 결혼이 아닐까요?"
기모진의 이상한 반응을 보더니 소만리는 더욱 생긋 웃었다.“왜 그러죠? 나…… 만리인데.”“……”만리라고!이름 두 글자가 비수마냥 날카롭게 모진의 심장에 꽂혔다. 이런 강렬한 충격이라니!소만리는 당황한 기모진의 표정을 보더니 슬그머니 입 꼬리를 올리고는 다소곳이 그에게 다가갔다. “왜 그래요? 잊어버렸어요? 전처 역할로 오늘 행사에 참석해달라고 했잖아요?”그녀의 다정한 목소리가 흡사 촘촘한 그물인양 기모진의 두근대는 심장을 조여오는 듯 했다.대답을 듣고 나서야 기모진의 미친 듯 뛰어대던 심장은 서서히 평온을 찾았다.아, 그랬었지.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 나니 마음이 온통 함락될 것 같았다.기모진은 그런 감정은 한 치도 드러내지 않고 섹시한 입술꼬리를 올리며 씩 웃더니 말했다. “왔어요?”소만리는 살짝 웃었다.“네. 왔네요.”소만영은 그 꼴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소만리가 기모진과 바짝 붙어서 이야기를 나누는 꼴이 특히 눈꼴 시었다. “난 또 누구시라고, 미랍 씨잖아?”가식적인 웃음을 띠고 다가오며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우뚱 하고는 호기심에 찬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미랍 씨랑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해? 나도 좀 끼워줘.”“만영 씨는 모르는 게 낫겠는데, 나랑 모진 씨 사이의 비밀이거든. 그렇지?”소만리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띠고 말했다.“…..”가식적인 웃음을 짓고 있던 소만영의 입꼬리가 서서히 내려가려 했으나 사람들 앞에서 추태를 보이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다시 억지 웃음을 띠며 말했다.“기왕 왔으니 재미있게 놀다가요. 기모진 씨의 약혼녀로서 환영할게요!”“……”말을 마치더니 소만영이 기모진에게 돌아서며 말했다.“자기, 어머님께서 발표할 게 있다시더니 아직 말씀이 없으시네. 아무래도 어머님 말씀하실 때까지 기다려 봐야 할 것 같아!”그녀는 무대에서 멍하니 있는 기모진의 어머니를 올려다 보며 급히 눈짓을 해 보였다.소만리는 웃음 띤 눈으로 아무 말 없는 기모진의 얼굴을 흘끗 보더니 말했다
문 앞에 서 있던 소군연의 모친은 이 모습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군연의 부친이 옆에서 말렸다.“그만 좀 해.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길 바라는 거야?”“누가 지금 가서 훼방 놓으려는 줄 아세요? 가서 말해 줘야죠. 나도 이 혼사에 동의해도 되겠냐고.”“당신 동의하는 거야?”소군연의 모친이 막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연장 안 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안에서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소군연의 품에서 나온 예선은 소만리와 기모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심지어 나익현과 나다희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예선과 소군연을 향해 다가왔다.예선은 멍하니 소만리를 쳐다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소군연의 부모만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소군연은 절대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단지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좀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이듬해 봄.생명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들이 축제를 펼치는 계절.경도호텔 야외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그렇다.오늘은 소군연과 예선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주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두 부부의 눈에는 실로 눈앞의 모든 존재들이 기적과도 같았다.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막내와 그 옆을 잘 보살피고 있는 듬직한 기란군, 그리고 곱고 맑은 딸 기여온까지.“엄마 아빠, 나랑 막내한테도 뽀뽀해 줘.”“뽀뽀, 뽀뽀.”막내는 기란군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쳤다.“너랑 막내는 맨날 하잖아. 여온이는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특별히 좀 더 많이 해 줘야지.”기모진은 귀여운 기여온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여온아,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놈이 평소에 무섭게 굴지는 않아?”“당신이 말한 그놈이 혹시 나예요?”강자풍이 짐짓 뾰로통한 얼
예선의 말을 듣고 소군연의 모친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예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다.게다가 예선은 자신을 향해 ‘존중'이라는 단어를 썼다.예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소군연의 모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는 중 갑자기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네가 그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널 존중해 줄 줄 알아? 사람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거야.”“그렇지만 군연은 그들의 아들이잖아. 만약 내가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군연이랑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평생 나와 군연을 원망하며 살 거야.”예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군연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평생 힘들어하면서 살게 할 순 없어.”“그렇지만 예선아...”“소만리, 이제 그만해. 너 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지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이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안 그래?”예선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예선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선아, 그럼 이제 갈 거야? 소군연 선배 더 안 찾을 거야?”“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래도 못 찾는다는 건 아마도 군연과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군연이 혼자 조용히 있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예선이 돌아서자 소군연의 모친은 얼른 몸을 숨겼다.자신이 그들을 미행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소만리가 예선을 불러 세웠다.“예선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랑 군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때? 아직 안 가 본 곳이 혹시나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소군연 선배가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예선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직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해.”“거기가 어
멀리서 예선을 몰래 관찰하던 소군연의 부모는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흥. 군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깊다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군연이 어디 갔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군.”소군연의 모친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거렸다.소군연의 부친은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말 좀 이제 그만해. 지금은 군연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사실 난 저 예선이란 애, 꽤 괜찮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부모도 없다고 당신 많이 싫어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있고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갑부에 아빠는 유명한 의사인데 당신 뭐가 불만이 그렇게 많아? 정말 아들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할 셈이야?”소군연의 부친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당신도 예전에는 반대했잖아요? 나중에는 나도 동의했다구요. 하지만 아버님 체면 세워 드리느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건데 이제 와서 날 탓하면 어쩌라는 거예요?”“그만둬.”소군연의 부친이 아내의 말을 끊었다.“어째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예선이 움직였어!”소군연의 부친이 급히 액셀을 밟았고 소군연의 모친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소만리의 차는 경도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건물을 바라보며 예전에 함께 보냈던 날들을 떠올렸다.그들이 대학에 갓 입학한 첫날이었다.그때 그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해 선배의 남자와 부딪히게 되었다.그 남자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경도대학교에 있을 것 같아?”소만리가 물었다. 예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말처럼 군연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 왔어. 운에 한번 맡겨 보려고.”예선은 말을 마치며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학교는 개방식이어서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바로 들어갔
소군연의 할아버지는 소군연의 글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퇴원하자마자 한 여자 때문에 사라져?게다가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그는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군연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만약 소군연이 정말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들 소 씨 가문은 후사가 없게 되는 게 아닌가?낭패였다.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예선은 밖으로 뛰쳐나온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오전이 다 지나도록 소군연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소군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예선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그녀는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탈히 사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상실감이 확 밀려왔다.군연, 정말 날 포기하기로 한 거예요?우린 이렇게 헤어져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예선은 막막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바로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선은 얼른 그녀의 전화를 받아 소군연에게 일어난 상황을 전했고 소만리는 한달음에 예선에게 달려왔다.예선은 소만리를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소만리는 예선을 위로했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 거야. 널 포기했을 리가 없어.”“아니야. 포기한 거야.”예선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의 가족들이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하시고 최근에 발생한 일 때문에 다른 가족들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나빠졌어.”“그동안 일어난 일은 너랑 아무 상관없어. 넌 피해자야.”“하지만 그들은 날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소군연
”얼른 들어갈게요!”소군연의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는 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넌 오지 마! 우리 소 씨 가문에 널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소군연의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선은 소군연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예선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어떻게 소군연이 스스로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어제까지도 분명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소군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그러나 소군연은 받지 않았다.소군연에게 핸드폰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선은 계속 전화를 시도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소군연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드디어 예선이 소군연의 집에 도착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칼진 소군연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가 어떻게 스스로 집에 왔다는 거야? 방금 깨어난 거 아니야?”“이것 좀 봐 봐. 이거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야.”소군연의 부친은 원망 섞인 말투로 소군연의 모친에게 뭔가를 쥐여 주었다.예선이 얼른 현관에 들어서자 따가운 소군연의 모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넌 왜 또 왔어? 누가 널 환영한다구...”“됐어. 그만하고 이것 좀 보라니까.”소군연의 부친은 예선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군연의 모친 말을 끊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부친이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쫓아내지 않자 얼른 안으로 걸어갔다.소군연의 모친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메모지 한 장이었는데 메모지에는 짧은 몇 마디가 쓰여져 있었고 모두 소군연의 모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소군연은 자신이 이틀 전에 깨어났다고 실토하며 잠에서 깬 이후 자신의 엄마가 예선에게 모질게 투덜거리는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예선과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
예선은 아무도 없는 병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소군연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예선은 소군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이때 소군연의 엄마가 들어왔다.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소군연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본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 혹시 무슨 검사하도 하러 간 거야?”소군연의 엄마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예선에게 물었다.소군연의 엄마가 보이는 이런 태도에는 이골이 났는지 예선은 개의치 않으며 담담하게 돌아섰다.“저도 알고 싶어요.”“나보다 먼저 와 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제가 왔을 때도 병실에 아무도 없었어요.”예선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잠깐만.”소군연의 엄마가 예선을 멈추어 세우며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말을 해 둬야겠어. 군연인 이미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 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너 때문에 영 씨 집안 두 모녀는 감옥에 갇혔어. 이건 분명히 네가 우리 가문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네가 우리 군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든 우리 군연이 널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어. 넌 우리 소 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예선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 씨 집안 두 모녀가 감옥에 간 것까지도 예선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예선과 소군연은 엄연히 피해자였다.영내문 같은 악랄한 사람은 오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었다.영내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중의 악인이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벌여진 일들로 이 모든 것이 자명한데 소군연의 엄마는 여전히 예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예선은 더 이상 소군연의 엄마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시간 낭비 에너지
채수연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온아.”채수연이 기여온에게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여온아, 선생님이 여온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딜 가든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라. 그리고 하루빨리 말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게.”기여온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채수연은 일어서서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눈에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 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의 집착은 사라졌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집스럽게 쟁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채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자풍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강자풍도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기여온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 채수연에게 따뜻한 작별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채 선생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많이 신세 졌습니다. 고맙습니다.”채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절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걸로 이미 다 갚으셨어요. 하지만 강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그럼요, 언제든지요.”강자풍이 흔쾌히 승낙했다.친구가 된다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채수연은 그 자리에서 기여온을 안고 점점 멀어지는 강자풍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강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자풍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가득 품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뭐가 궁금하신가요?”“좋아하는 여자가 정말 있긴 한 거죠?”강자풍은 기여온의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시선을 잠시 떨구며 입을 열었다.“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여온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어쩌다가 듣게 되었어요.”강자풍은 순순히 시인했다.채수연은 강자풍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난감해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다만 약간의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강자풍은 채수연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더 난처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나와 여온이 일로 또 한 번 고민거리를 안겨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강자풍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기여온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예요.”채수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마음속에서 상실감이 강하게 몰아쳤다.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강자풍을 쳐다보며 강자풍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그의 말은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채 선생님, 여온이한테 더 잘 맞는 유치원을 찾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과도 더 가까워서 여온이 등하원하는 데도 훨씬 편리할 것 같아요.”강자풍의 말을 들은 채수연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여온이한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유치원을 옮기기로 하신 거예요?”강자풍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선생님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강자풍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기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채수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자신의 감정이 줄곧 일방적인 것이었고 닿을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자풍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채수연도 강자풍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저희 엄마와 엄마 친구가 강 선생님에 대해 한 말은 정말 부적절했어요. 죄송합니다.”강자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입
류 씨 성을 가진 남자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강자풍이 기여온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모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었다.이 남자도 양심은 있었던지 기여온의 모습은 블러 처리를 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지만 강자풍의 모습은 영상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채수연의 엄마는 한눈에 영상 속 사람이 강자풍임을 알아차렸다.영상 아래의 댓글을 본 채수연의 엄마는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수연아, 너 어떻게 이런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채수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맞아요. 부인하지 않을게요. 난 강 선생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뭐라고!”“아유... 수연아, 너 정말 이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진 씨 부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거렸다.“내가 보니까 여기 댓글 단 사람들이 벌써 이 남자 신상을 다 파헤친 것 같던데. 이 남자 예전에 우리 F국에서 한때 주름잡았던 그 강어라는 사람 동생이라더라구. 그 강연이라나 뭐라나 누나라는 사람은 업계에선 더욱 악명이 높았대.”“뭐! 그 강 선생이 강어와 강연의 동생이라고?”채수연의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악명 높은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나도 그 사람 형과 누나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하지만 강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에 개입한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벌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거예요.”채수연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게다가 강 선생님은 이 아이의 친아빠가 아니에요. 친구 딸인데 잠시 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걸로 자꾸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못 해서 누구보다 괴로운 건 이 아이잖아요. 입장 바꿔서 누군가가 아주머니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네?”“...”채수연의 입에서 뭐라도 가십거리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