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만영이 기모진 앞에서 히스테리를 부리며 소리 지른 것은 처음이었다. “천미랍! 네가 나쁜 맘을 먹고 있다는 거 진작에 알았어, 선물은 무슨, 처음부터 모진이 꼬시려고 온 거였어! 소만리는 소만영의 시끄러운 소리가 짜증났다. 만약 그녀가 소만영을 화나게 한 것이 아니었다면 그녀의 뺨을 때리고 싶었다. 하지만 소만리는 그녀의 뺨을 때리지 않고 머리가 어지러운 듯 눈을 찌푸렸다. "만영씨, 오해예요.”“오해는 무슨, 내가 똑똑히 봤어, 이 악랄한 년!” 소만영은 노발대발하며 소만리의 뺨을 때리려 했다.“찰싹!”소만영이 소만리의 뺨을 때리기 전에 기모진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그냥 잡아준 것뿐인데 그렇게 욕까지 할 필요 있어?" 기모진은 그윽한 눈으로 차갑게 소만영을 바라봤다. 기모진의 말투가 냉담하자 소만영은 억울해서 눈물을 흘릴 것 같았다."모진아, 너 나한테 이렇게 말 한 적 없었잖아..." 소만영은 끝내 눈물을 흘렸다.기모진이 소만리의 손을 놓았지만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나는 항상 이렇게 말했어, 너무 지나치게 생각하지 마, 근데 방금 네 그 행동은 너무 지나쳤어, 미립씨에게 사과해.” "뭐? 사과 하라고?” 소만영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너한테 절대 사과 안 해!” 소만영은 기모진의 옆에 서 있는 소만리를 보고 이를 악물었다."괜찮아요, 사과할 필요 없어요. 제가 똑바로 서있지 못한 탓이죠, 만영씨 기분 나쁘게 했다면 미안해요."소만리는 부드럽게 말하며 화가 잔뜩 난 소만영을 쳐다봤다."천미랍, 착한 척 그만해! 네가 모진에게 관심 있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네까짓 게 나한테 사과받을 자격이 있어?”"무슨 말을 그렇게 해!" 기모진은 소만영의 말을 끊으며 차갑게 쳐다봤다. "오늘은 네 생일이고, 미랍씨는 손님인데 그런 태도로 손님을 대해? 어서 사과해.”“절대 사과 안 해! 저 여자 일부러 저러는 거야!” 소만영은 억울해 붉어진 눈으로 말했다. 일부러? 소만리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정
소만영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여전히 가식적으로 부드럽게 웃었다."미랍씨, 미안해요. 제가 제 약혼자를 너무 사랑해서 그랬어요, 제가 한 말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만영씨가 기모진씨를 많이 사랑하는 게 눈에 보여요. 저도 제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랑 가까이 지내면 질투해서 만영씨 감정 이해해요.” 소만리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소만리의 말이 끝나자 그녀를 바라보는 기모진과 소만영의 눈빛이 한순간에 묘하게 달라졌다.“미랍씨 남자친구 있어요?” 소만영의 얼굴에 웃음기가 돌았다."네." 소만리는 우아하게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자 기모진과 눈이 마주쳤다.“미랍씨 남자친구 있었구나, 그럼 남자친구분 불러서 소개 좀 시켜줘요.” 기모진이 여전히 소만리를 쳐다보자 소만영은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지금 경도에 없어요, 나중에 기회 되면 소개해드릴게요.” 소만리가 웃으며 말했다.소만영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물을 훔치며 온화한 얼굴로 웃음을 지었다. "모진아, 손님들 기다리게 하지 말고 어서 나가자.”기모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소만영의 팔짱을 빼고 걸음을 옮겼다."모진아, 방에서 청혼해주겠다고 한 약속 변치 않는 거지?소만리는 소만영이 비굴하게 부탁하는 것을 멀리서 들었다.소만리도 이 3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기모진이 소만영에 대한 사랑이 식은 것인지 궁금했다.하지만 그는 여전히 소만영의 뜻을 따르고, 소만영을 좋아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소만영이 계속 기모진의 곁에 맴돌 수 있을까.소만리는 기모진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느 정도 느꼈다. 비록 그의 마음은 알 수 없지만 기모진의 표정을 보고 그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고 확신했다.이것은 복수의 첫걸음이었다.소만리가 발걸음을 옮겨 정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그녀를 몰래 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소만리가 집을 나서자 담 뒤에 숨어있던 사람이 나와
"모진아 가지 마, 어디 가? 우리 결혼은..." 소만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기모진을 붙잡았다."오늘은 그럴 기분 아니야." 기모진은 담담하게 소만영의 손을 뿌리쳤다."모진아!" 소만영이 계속 소리쳤지만 기모진은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사화정과 모헌 부부, 그리고 손님들도 기모진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청혼은커녕 소만영이 귀찮아 보였다. 사람들은 기모진이 소문처럼 소만영을 그리 사랑하지는 않은 것 같다며 의심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결혼을 계속 미루고, 심지어 이런 자리에서 소만영을 버리고 간 것은 분명 기모진이 소만영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소만영이 기모진을 쫓아가자 앞에 있는 소만리가 보였다. 기모진이 그녀 앞에 차를 세워 젠틀하게 문을 얼어주고 그녀를 차에 태우고 가버렸다. 이를 지켜보던 소만영은 치맛자락을 꽉 쥐며 분노를 터뜨렸다.“천! 미! 랍!” 소만영은 이를 갈며 이 세 글자를 내뱉으며 화가 나서 입술까지 떨고 있었다.......소만리도 사실 기모진이 그녀를 따라 나올 것이라고 확신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모진은 소만영을 내팽개치고 나와 소만리를 차에 태웠다. 그의 차가 돌고 돌아 사월산의 그 해안에서 멈추었다.소만리는 조금 의외였다. 하지만 그날 기모진과 소만영이 해안에서 포옹하는 모습을 생각하니 이 해안에 거부감이 들었다.기모진이 차 문을 열어주자 소만리가 차에서 내렸다.소만리는 늦여름의 바닷바람 냄새를 맡고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갑자기 담뱃불 붙이는 소리가 들렸다. 소만리가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기모진의 손가락 사이로 담배연기가 새어 나왔다. 기모진은 나른한 자태로 스포츠카 옆에 기대어 섹시한 입술로 담배연기를 뿜어냈다. 하얀 담배연기가 그의 멋있는 얼굴을 가리자 그의 표정이 변했다."기모진씨, 약혼녀를 놔두고 저를 왜 여기로 데리고 왔어요?" 소만리는 난처한 표정으로 기모진을 쳐다봤다. “저 약속 있어서 빨리 가봐야 돼요.”“미랍씨 남자친구랑 약속 있어요?” 기모진이 그녀를 그윽하게 쳐다보며
소만리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기모진씨, 굳이 전처와 똑같이 생긴 여자와 친구 할 필요 있어요? 내 얼굴 보면 역겹지 않아요?"미랍씨 얼굴은 아름다워요.” 기모진은 고개를 돌려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소만리를 바라봤다.그렇다. 천미랍은 아름답다.소만리처럼 아름답다. 아니, 소만리가 더 아름답다.소만리의 얼굴에 순수함이 마치 처녀처럼 아름다웠다.기모진은 눈앞에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허전한 마음을 조용히 달랠 수밖에 없었다.갑자기 울리는 휴대폰 벨 소리에 기모진이 정신을 차렸다. 핸드폰 화면을 보고 거부감을 느낀 얼굴이었지만 기모진은 결국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야?"소만리는 바닷바람 소리가 너무 거세 전화기 너머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기모진이 내키지 않는 듯 대답하는 것을 들었다. "곧 갈게."소만리는 돌아가는 길에 기모진이 길가에 내려줄 거라 생각했지만 기모진은 멈추지 않고 계속 갔다. 소만리는 가면 갈수록 익숙한 길 같았다. 그리고 차가 기가 집안 앞에 멈췄다. 소만리는 기모진이 아직도 자신의 신분을 의심해 집으로 데려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만리도 이미 기씨 집안사람들과 맞설 준비가 돼 있었다.차소리를 듣고 기모진의 어머니가 나왔다. 그의 어머니는 조수석에서 내리는 소만리를 보고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귀신이야! 귀신!”“모진씨, 제가 중간에 내려줘도 된다고 했잖아요, 그럼 어머니가 이렇게 놀라지 않으셨죠.”"모진아,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소만리는 이미 죽은 거 아니야? 어떻게 아직도 살아 있는 거야?” 기모진의 어머니가 그의 뒤에서 소만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분은 천미랍이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F 나라에서 자랐고, 이번에 처음으로 경도에 왔어요.” 기모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저는 천미랍이라고 합니다." 소만리가 기모진의 어머니에게 인사했다.기모진의 어머니는 반신반의하며 말했다.“이게 사실이냐? 방금 네 미래 사돈께 전화가 와서 소만리랑 똑같이 생
기모진은 소만리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이고 그녀의 손을 잡고 할아버지에게 갔다. 나이 들어 눈이 좋지 않은 할아버지는 기모진이 긴 머리를 날리는 여자를 데려오는 것을 봤다. 그러나 소만리가 앞에 다가오자 할아버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지팡이를 짚고 비틀거리며 소파 옆에서 벌떡 일어섰다."너…너는…만리?"할아버지는 확신하지 못한 듯 소만리를 향해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눈앞에 있는 것이 사람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다. 소만리는 할아버지의 기대하는 눈빛을 보자 슬퍼졌다. 하지만 이 슬픔속에 달콤함이 있었다.경도에 그녀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도 있었다. 그녀는 웃으며 손을 내밀어 할아버지의 떨리는 두 손을 잡았다."너 정말 만리니?" 할아버지가 감격하며 물었다. 이때 기모진의 어머니는 곁에서 지켜보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할아버지, 당연히 만리죠.” 기모진이 소만리를 대신해 대답했다. "뭐? 정말 소만리야? 모진아 너 아까...” 기모진 어머니의 안색이 변했다. 기모진이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어머니의 말을 끊었다.할아버지는 기모진 어머니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차가운 두 손으로 소만리의 손을 꽉 잡고 자기 옆으로 끌어당겼다.할아버지의 얼굴에는 애석함이 가득했다. 산전수전을 겪은 눈에는 온화함이 배어 있으며 유달리 자상했다. "만리야, 정말 만리구나, 살았으면 됐다, 살았으면 됐다..." 할아버지가 속삭이는 걸 보니 정말 기뻐하는 것 같았다.소만리는 미소를 지었지만 심장이 출렁였다.이 세상에서 예선과 남자친구를 제외하면 기 씨 할아버지만 진심으로 그녀를 친가족으로 생각했다.기 씨 할아버지는 요즘 몸이 좋지 않았다. 거동이 불편하셔서 늘 휠체어를 타고 다니셨는데, 오늘 소만리를 보고 벌떡 일어나셨다.소만리는 할아버지 말씀에 연신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기모진이 자신을 의심하는 행동을 결코 드러내지 않았다. 소만리는 기모진이 아직도 무언가를 의심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할아버지가 소만리와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깊은 눈으로 소만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치 무언가를 꿰뚫어보는 듯했다. “미랍씨, 제 무리한 요구에 협조해서 고마워요.” 차 안에서 기모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무리한 요구인 만큼 다음엔 이런 일 없길 바래요.” 소만리는 싸늘하게 말했다.“기모진씨 때문에 제시간이 많이 지체됐는데, 어서 데려다주고, 기모진씨도 빨리 가서 약혼녀 위로 해주세요.”기모진은 소만리의 냉담하고 짜증 섞인 표정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미랍씨, 남자친구와 데이트 시간 방해해서 미안해요, 제가 사과의 의미로 다음에 식사 대접하겠습니다.”“괜찮아요, 남자친구가 질투할 것 같아요.” 소만라는 대충 얼버무리며 말했다.기모진도 더 이상 말 하지 않고 소만리를 데려다주고 돌아갔다.소만리는 거리에 서서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봤다. 손안에 아직 따뜻한 여운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할아버지.할아버지는 항상 저를 기억하고 계셨군요.그녀는 마음의 상처가 조금 어루만지는 것을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그날 저녁, 소만리는 웨이보에서 소만영의 생일파티에 관한 게시물을 찾아봤다.생일파티에 참석한 손님 중 누군가 폭로한 글이 올라왔다. 기모진이 소만영 생일날 그녀에게 청혼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여자를 위해 소만영을 버리고 떠났다는 글이 올라왔다.댓글에서는 여자의 정체를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소만영이 기모진에게 끈질기게 매달리는 것이지 기모진은 소만영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소만영은 3년 동안 기모진과 모 가 집안의 도움으로 떠오르는 뷰티 블로거가 되어 몇백만 명의 팬을 보유하고 있었다. 소만영에 대한 폭로 글이 인기 검색어에 오르자 소만영에게 세뇌당한 팬들이 그녀를 응원하기 위해 몰려들었다.소만영의 팬들은 기모진과 소만영은 천생연분이고, 3년 전에 이미 약혼했고, 소만리라는 악랄한 여자가 아니라면, 소만영 여신님은 이미 기모진과 결혼했다며 소만영의 편을 들었다. 어찌된 일인지 화제가 뒤바뀌며 댓글에서 사람들이 모두
염염이는 겨우 세 살이지만 몸이 날렵해 소만영이 때리려 하자 얼른 피했다.소만영의 손이 공기를 스쳤다. 더욱 화가 난 소만영은 염염이의 얼굴을 꼬집으려 했다.염염이는 조용히 귀여운 입으로 소만영의 손등을 물었다."아!" 소만영이 소리를 질렀다. 염염이는 작은 입을 벌리고 예쁜 큰 눈을 껌벅거리며 말했다. “아줌마, 우리 엄마가 어린애 때리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아줌마는 나쁜 사람 이예요, 나쁜 사람은 소리지르면서 때려요.” "뭐…? 너 뭐라고 했어?" 소만영은 세 살짜리 여자아이에게 혼날 날이 올 거라고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소만영은 잔뜩 화가 났다. 그녀는 가게로 들어가는 염염이를 보고 뒤쫓아갔다. 이때, 소만영의 발 밑에 있던 유리구슬이 미끄러졌다. 하이힐을 신고 있던 그녀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넘어지며, 옆에 있던 동생까지 덩달아 넘어졌다. “씨!”염염이는 발걸음을 멈추고 뒤 돌아 소만영에게 혀를 내밀었다,"메롱메롱~ 나쁜 아줌마, 흥! 그러게 누가 저를 괴롭히래요." 염염이는 말을 마치자마자 뒤돌아 가버렸다. “너 이 못된 계집애!”소만영은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하이힐을 벗어 염염이 뒤통수에 힘껏 던졌다.하이힐이 염염이의 뒤통수를 칠 찰나, 갑자기 멋진 그림자가 나타나며 한 남자가 염염이를 안아 옆으로 피했다. 그리고 하이힐은 가게 유리창으로 날아가 금이 갔다.소만영은 유리창이 깨질만큼 있는 힘껏 하이힐을 던졌었다. 이 하이힐이 염염이 뒤통수에 맞았다면 정말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소만영은 갑자기 누군가 튀어나와 못된 계집애를 구해줄지 생각도 못 했다. 소만영은 남자에게 화를 내려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남자는 기모진이였다. 순간 소만영의 안색이 달라지며 부랴부랴 일어나 옆에 있던 동생에게 하이힐을 주워 오라고 했다."모진아, 네가 여기 웬일이야?" 소만영은 어색하지만 부드러운 웃음을 잃지 않으며 말했다.기모진은 염염이가 다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소만
”오늘도 염염이 구해줘서 고맙습니다, 저희 엄마 오셨으니까 이제 내려줘도 되요.” 염염이는 유리 같은 눈을 깜박이며 기모진을 바라보았다. 기모진은 품속의 귀여운 염염이를 바라보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네 이름이 염염이야?”"네…근데, 엄마만 저를 염염이라고 부르고, 아빠는 그렇게 부르지 않아요." 염염이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귀여운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기모진은 아빠라는 두 글자가 이렇게 귀에 거슬린 적이 없었다.귀에 거슬리고 낯설다.기모진은 기란군이 생각났다. 3년 동안 기란군은 기모진에게 아빠라고 부른 적이 거의 없었다. 어찌 된 일인지 심장이 갑자기 빠르게 뛰었다.기모진이 염염이를 내려놓자 곧바로 소만리에게 뛰어갔다. “엄마, 방금 저 아줌마가 저 때리려고 하다가 혼자 넘어졌어요. 그리고 다행히 아저씨가 저를 구해줬어요." 염염이는 소만리에게 열심히 설명했다.소만리는 부드럽게 웃으며 딸을 안았다. "기 대표님, 감사합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약혼녀가 저희 사이 의심하지 않도록 저 찾아오지 마세요. 저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괜찮지만, 제 딸을 다치게 하면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깨진 유리창은 금액 확인해서 모씨그룹으로 보낼 테니 잊지 말고 배상해주세요." 소만리는 소만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뭐?" 소만영은 눈을 부릅뜨고 소만리를 노려봤지만 소만리는 그대로 돌아서 가버렸다."천미랍 너…""아직도 분이 안 풀려?" 기모진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소만영은 놀라 당황하며 기모진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가 냉랭하게 뒤돌아 가자 소만영이 재빨리 쫓아갔다."모진아, 모진아, 잠깐만, 네가 오해한 거야, 모진아, 내 말 좀 들어봐!"소만영이 기모진을 쫓아가며 소리쳤지만 기모진이 전혀 듣지 않자 초조해졌다.이때 소만영이 길에 있는 유리 부스러기를 보고 독한 마음으로 유리를 밟았다."아!" 소만영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모진아, 나 너무 아파….”기모진은 걸음을 멈추고 바닥에 쓰러진 소만영을 힐끗 쳐다봤다. 소만영의
문 앞에 서 있던 소군연의 모친은 이 모습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군연의 부친이 옆에서 말렸다.“그만 좀 해.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길 바라는 거야?”“누가 지금 가서 훼방 놓으려는 줄 아세요? 가서 말해 줘야죠. 나도 이 혼사에 동의해도 되겠냐고.”“당신 동의하는 거야?”소군연의 모친이 막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연장 안 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안에서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소군연의 품에서 나온 예선은 소만리와 기모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심지어 나익현과 나다희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예선과 소군연을 향해 다가왔다.예선은 멍하니 소만리를 쳐다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소군연의 부모만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소군연은 절대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단지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좀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이듬해 봄.생명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들이 축제를 펼치는 계절.경도호텔 야외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그렇다.오늘은 소군연과 예선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주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두 부부의 눈에는 실로 눈앞의 모든 존재들이 기적과도 같았다.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막내와 그 옆을 잘 보살피고 있는 듬직한 기란군, 그리고 곱고 맑은 딸 기여온까지.“엄마 아빠, 나랑 막내한테도 뽀뽀해 줘.”“뽀뽀, 뽀뽀.”막내는 기란군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쳤다.“너랑 막내는 맨날 하잖아. 여온이는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특별히 좀 더 많이 해 줘야지.”기모진은 귀여운 기여온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여온아,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놈이 평소에 무섭게 굴지는 않아?”“당신이 말한 그놈이 혹시 나예요?”강자풍이 짐짓 뾰로통한 얼
예선의 말을 듣고 소군연의 모친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예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다.게다가 예선은 자신을 향해 ‘존중'이라는 단어를 썼다.예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소군연의 모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는 중 갑자기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네가 그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널 존중해 줄 줄 알아? 사람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거야.”“그렇지만 군연은 그들의 아들이잖아. 만약 내가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군연이랑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평생 나와 군연을 원망하며 살 거야.”예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군연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평생 힘들어하면서 살게 할 순 없어.”“그렇지만 예선아...”“소만리, 이제 그만해. 너 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지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이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안 그래?”예선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예선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선아, 그럼 이제 갈 거야? 소군연 선배 더 안 찾을 거야?”“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래도 못 찾는다는 건 아마도 군연과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군연이 혼자 조용히 있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예선이 돌아서자 소군연의 모친은 얼른 몸을 숨겼다.자신이 그들을 미행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소만리가 예선을 불러 세웠다.“예선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랑 군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때? 아직 안 가 본 곳이 혹시나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소군연 선배가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예선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직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해.”“거기가 어
멀리서 예선을 몰래 관찰하던 소군연의 부모는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흥. 군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깊다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군연이 어디 갔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군.”소군연의 모친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거렸다.소군연의 부친은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말 좀 이제 그만해. 지금은 군연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사실 난 저 예선이란 애, 꽤 괜찮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부모도 없다고 당신 많이 싫어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있고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갑부에 아빠는 유명한 의사인데 당신 뭐가 불만이 그렇게 많아? 정말 아들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할 셈이야?”소군연의 부친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당신도 예전에는 반대했잖아요? 나중에는 나도 동의했다구요. 하지만 아버님 체면 세워 드리느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건데 이제 와서 날 탓하면 어쩌라는 거예요?”“그만둬.”소군연의 부친이 아내의 말을 끊었다.“어째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예선이 움직였어!”소군연의 부친이 급히 액셀을 밟았고 소군연의 모친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소만리의 차는 경도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건물을 바라보며 예전에 함께 보냈던 날들을 떠올렸다.그들이 대학에 갓 입학한 첫날이었다.그때 그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해 선배의 남자와 부딪히게 되었다.그 남자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경도대학교에 있을 것 같아?”소만리가 물었다. 예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말처럼 군연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 왔어. 운에 한번 맡겨 보려고.”예선은 말을 마치며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학교는 개방식이어서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바로 들어갔
소군연의 할아버지는 소군연의 글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퇴원하자마자 한 여자 때문에 사라져?게다가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그는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군연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만약 소군연이 정말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들 소 씨 가문은 후사가 없게 되는 게 아닌가?낭패였다.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예선은 밖으로 뛰쳐나온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오전이 다 지나도록 소군연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소군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예선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그녀는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탈히 사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상실감이 확 밀려왔다.군연, 정말 날 포기하기로 한 거예요?우린 이렇게 헤어져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예선은 막막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바로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선은 얼른 그녀의 전화를 받아 소군연에게 일어난 상황을 전했고 소만리는 한달음에 예선에게 달려왔다.예선은 소만리를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소만리는 예선을 위로했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 거야. 널 포기했을 리가 없어.”“아니야. 포기한 거야.”예선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의 가족들이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하시고 최근에 발생한 일 때문에 다른 가족들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나빠졌어.”“그동안 일어난 일은 너랑 아무 상관없어. 넌 피해자야.”“하지만 그들은 날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소군연
”얼른 들어갈게요!”소군연의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는 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넌 오지 마! 우리 소 씨 가문에 널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소군연의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선은 소군연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예선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어떻게 소군연이 스스로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어제까지도 분명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소군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그러나 소군연은 받지 않았다.소군연에게 핸드폰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선은 계속 전화를 시도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소군연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드디어 예선이 소군연의 집에 도착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칼진 소군연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가 어떻게 스스로 집에 왔다는 거야? 방금 깨어난 거 아니야?”“이것 좀 봐 봐. 이거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야.”소군연의 부친은 원망 섞인 말투로 소군연의 모친에게 뭔가를 쥐여 주었다.예선이 얼른 현관에 들어서자 따가운 소군연의 모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넌 왜 또 왔어? 누가 널 환영한다구...”“됐어. 그만하고 이것 좀 보라니까.”소군연의 부친은 예선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군연의 모친 말을 끊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부친이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쫓아내지 않자 얼른 안으로 걸어갔다.소군연의 모친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메모지 한 장이었는데 메모지에는 짧은 몇 마디가 쓰여져 있었고 모두 소군연의 모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소군연은 자신이 이틀 전에 깨어났다고 실토하며 잠에서 깬 이후 자신의 엄마가 예선에게 모질게 투덜거리는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예선과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
예선은 아무도 없는 병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소군연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예선은 소군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이때 소군연의 엄마가 들어왔다.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소군연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본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 혹시 무슨 검사하도 하러 간 거야?”소군연의 엄마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예선에게 물었다.소군연의 엄마가 보이는 이런 태도에는 이골이 났는지 예선은 개의치 않으며 담담하게 돌아섰다.“저도 알고 싶어요.”“나보다 먼저 와 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제가 왔을 때도 병실에 아무도 없었어요.”예선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잠깐만.”소군연의 엄마가 예선을 멈추어 세우며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말을 해 둬야겠어. 군연인 이미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 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너 때문에 영 씨 집안 두 모녀는 감옥에 갇혔어. 이건 분명히 네가 우리 가문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네가 우리 군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든 우리 군연이 널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어. 넌 우리 소 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예선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 씨 집안 두 모녀가 감옥에 간 것까지도 예선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예선과 소군연은 엄연히 피해자였다.영내문 같은 악랄한 사람은 오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었다.영내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중의 악인이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벌여진 일들로 이 모든 것이 자명한데 소군연의 엄마는 여전히 예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예선은 더 이상 소군연의 엄마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시간 낭비 에너지
채수연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온아.”채수연이 기여온에게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여온아, 선생님이 여온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딜 가든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라. 그리고 하루빨리 말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게.”기여온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채수연은 일어서서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눈에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 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의 집착은 사라졌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집스럽게 쟁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채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자풍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강자풍도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기여온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 채수연에게 따뜻한 작별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채 선생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많이 신세 졌습니다. 고맙습니다.”채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절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걸로 이미 다 갚으셨어요. 하지만 강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그럼요, 언제든지요.”강자풍이 흔쾌히 승낙했다.친구가 된다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채수연은 그 자리에서 기여온을 안고 점점 멀어지는 강자풍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강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자풍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가득 품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뭐가 궁금하신가요?”“좋아하는 여자가 정말 있긴 한 거죠?”강자풍은 기여온의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시선을 잠시 떨구며 입을 열었다.“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여온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어쩌다가 듣게 되었어요.”강자풍은 순순히 시인했다.채수연은 강자풍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난감해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다만 약간의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강자풍은 채수연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더 난처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나와 여온이 일로 또 한 번 고민거리를 안겨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강자풍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기여온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예요.”채수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마음속에서 상실감이 강하게 몰아쳤다.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강자풍을 쳐다보며 강자풍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그의 말은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채 선생님, 여온이한테 더 잘 맞는 유치원을 찾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과도 더 가까워서 여온이 등하원하는 데도 훨씬 편리할 것 같아요.”강자풍의 말을 들은 채수연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여온이한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유치원을 옮기기로 하신 거예요?”강자풍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선생님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강자풍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기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채수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자신의 감정이 줄곧 일방적인 것이었고 닿을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자풍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채수연도 강자풍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저희 엄마와 엄마 친구가 강 선생님에 대해 한 말은 정말 부적절했어요. 죄송합니다.”강자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입
류 씨 성을 가진 남자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강자풍이 기여온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모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었다.이 남자도 양심은 있었던지 기여온의 모습은 블러 처리를 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지만 강자풍의 모습은 영상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채수연의 엄마는 한눈에 영상 속 사람이 강자풍임을 알아차렸다.영상 아래의 댓글을 본 채수연의 엄마는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수연아, 너 어떻게 이런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채수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맞아요. 부인하지 않을게요. 난 강 선생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뭐라고!”“아유... 수연아, 너 정말 이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진 씨 부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거렸다.“내가 보니까 여기 댓글 단 사람들이 벌써 이 남자 신상을 다 파헤친 것 같던데. 이 남자 예전에 우리 F국에서 한때 주름잡았던 그 강어라는 사람 동생이라더라구. 그 강연이라나 뭐라나 누나라는 사람은 업계에선 더욱 악명이 높았대.”“뭐! 그 강 선생이 강어와 강연의 동생이라고?”채수연의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악명 높은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나도 그 사람 형과 누나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하지만 강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에 개입한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벌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거예요.”채수연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게다가 강 선생님은 이 아이의 친아빠가 아니에요. 친구 딸인데 잠시 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걸로 자꾸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못 해서 누구보다 괴로운 건 이 아이잖아요. 입장 바꿔서 누군가가 아주머니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네?”“...”채수연의 입에서 뭐라도 가십거리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