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 맞지?”“괜찮게 생겼네.”“그럼 놀아 볼까!”몇 명의 남자가 양이응을 에워쌌다. 양이응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몸이 제대로 통제되지 않고 오히려 이 남자들을 받아들이려고 하고 있었다.이 남자들은 생김새가 밉살스럽고 추하고 보기 흉했지만 지금 이 순간 양이응에 있어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중요한 것은 그들이 남자라는 것이었다.그리고 그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그녀의 욕구를 풀어줄 남자가 지금 당장 필요했다.소만리는 그 룸에서 나온 후 몇 명의 남자가 양이응이 있는 룸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그녀는 이것이 양이응이 그녀에게 씌우려던 올가미라는 것을 알았다.아니나 다를까 소만리가 이 클럽을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 핸드폰에 강렬하고 뜨거운 제목의 기사들이 마구 올라왔다.내용인즉슨 경도의 모 이름난 규수가 지금 몇 명의 남자와 룸에서 뒤엉키며 놀고 있다는 것이었다.게다가 모 이름난 규수가 소만리라는 것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었다.소만리는 손이 가는 대로 그중 한 생방송 플랫폼을 열어 동영상을 보았다. 보자마자 소만리는 진저리가 쳐지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방금 그 룸에서 몇 명의 남자와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양이응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었다.화면 속 양이응은 제멋대로 완전히 기분이 흥분되어 있었다. 평소 사람들 앞에서 단정하고 엄숙한 숙녀 이미지와는 완전히 정반대였다.이 장면을 보면서 소만리의 손이 분노로 덜덜 떨렸다.만약 그녀가 식당에서 눈치를 채지 않았으면 지금 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의 여주인공은 그녀 자신이었던 것이다!그녀는 모든 사람들이 비웃으며 경멸하는 대상이 되었을 것이고 철저하게 인생을 실패하게 되어 너무 슬픈 나머지 죽고 싶은 심정이 되었을 것이다.소만리는 핸드폰을 꼭 쥐었다. 정신이 번쩍 들어 눈빛은 오히려 또렷해졌다.강연, 네가 그랬지, 맞지?네가 양이응을 시켜 나한테 이런 짓을 꾸민 거지.그러나 강연 너, 날 우습
이런 꼴을 하고 있는 양이응을 보고 강연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몸을 돌려 나가려고 했으나 경연이 룸 입구에서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양이응이 한 무리의 남자들과 제멋대로 엉켜있는 모습을 본 경연은 거의 얼이 빠져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나 양이응은 경연을 보고 오히려 더 흥분하여 그를 불렀다.“경연, 같이 놀자~”경연은 결벽증이 있는 사람이라서 평소 자기 차에도 다른 사람이 앉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데 하물며 지금 자신의 약혼녀와 한 무리의 남자들이 제멋대로 놀고 있는 모습을 본 것이었다.그는 온몸이 소름이 돋고 역겨워서 구역질이 나려고 했다.고개를 돌려 경연이 가버리자 강연은 울부짖으며 말했다.“자기야, 누가 나한테 약을 먹여서 이렇게 된 거야. 경연, 설마 그냥 가는 거야, 나 이렇게 모함한 사람 그냥 놔둘 거야?”“약을 먹였다고?”경연은 떠나던 발걸음을 갑자기 멈췄다. 강연은 아예 비난의 화살을 소만리에게 돌리며 말했다.”당연히 누군가 약을 먹여서 이렇게 된 거죠. 당신 양이응이 지금 이렇게 된 게 정상인처럼 보여요? 경연, 양이응이 얼마 전까지 누구랑 있었는지 아세요? 그 사람이 분명히 먹지 말아야 할 약을 먹인 게 틀림없어요.”얼마 전에 양이응이 같이 있던 사람?경연은 잠시 소만리를 떠올리며 말했다.“얼마 전까지 그녀는 기 사모님과 함께 식당에 있었어요.”“기 사모님? 소만리 말이에요?”강연이 일부러 모르는 척하고 말했다.“어쩐지 양이응이 결혼반지 디자인 때문에 소만리와 언쟁을 벌였는데 보아하니 소만리가 양이응에게 먹인 거로군요.”“그럴 리가 없어요. 소만리는 이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에요.”경연이 부정했다.“그녀 말고는 누가 있어요? 설마 당신 소만리를 믿을지언정 이응이를 못 믿는 거예요?”강연이 고의로 이렇게 물었다.경연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양이응이 눈앞에서 몇몇의 남자와 얽혀 있는 모습을 보았다.그는 더 이상 쳐다보지도 못하고 찬물 한 바
CCTV에 따르면 소만리가 가방에서 향수를 꺼냈을 때 열쇠고리가 마침 바닥에 떨어졌다.소만리는 양이응에게 주워달라고 했고 양이응이 몸을 숙이는 순간 소만리가 손을 썼다.그녀는 아주 신속하게 그녀의 와인잔과 양이응의 와인잔을 바꾼 후 아무렇지 않은 듯 양이응과 잔을 부딪히고 술을 마셨다.그러나 경연은 어떻게 소만리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지 끝까지 믿어지지 않았다.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가 알기로는 소만리가 이전에 그 모천리였고 소만리는 그에게는 말하자면 각별한 존재다.“자기야, 지금 봤어? 소만리가 나한테 약 먹이는 거. 만약에 그녀가 아니라면 왜 내 잔을 바꿔치기해?”양이응은 더욱 슬퍼하며 울었다.“난 정말 소만리가 이렇게 못된 사람인 줄 몰랐어. 내가 지난번에 디자인에 관해서 몇 가지 건의를 했더니 마음에 앙심을 품고 이런 방식으로 날 대하다니. 자기야,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사람을 만날 수가 있겠어?”경연의 부모님도 이때 친척들과 친구들로부터 양이응이 한 무리의 남자들과 벌인 일에 대해 들어서 알게 되었다. 황급히 2층으로 뛰어올라가 핸드폰에 동영상의 그 여자를 가리키며 양이응에게 물었다.“양이응, 네가 이런 짓을 하다니? 너 우리 경연이랑 결혼할 생각하지 마라. 우리 경 씨 집안은 너 같은 이런 부끄러운 사람을 며느리로 받아들일 수 없어!”양이응은 울며 하소연했다.“아버님, 어머님. 누가 날 모함해서 그렇게 된 거예요. 소만리가 저한테 약을 먹여서 제가 그렇게 되어 버린 거예요.”그녀는 편집한 CCTV 내용을 경연의 부모님께 보여주겠다고 말했다.화면 속에서 소만리가 와인 잔을 바꾸는 동작을 보고 그들은 소만리가 와인 잔에 마음을 현혹시키는 약을 넣어서 양이응에게 주었다고 입을 모았다.“이 소만리는 모 씨 집안에서 2년 동안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그 딸 아니냐? 우리 경도 제일의 기 씨 집안 며느리가 어찌 이런 일을 꾸며? 이건 정말 있을 수도 없는 일이야!”“경연아, 이응의 일은 온 동네에 다 알려
소만리가 꼬물이를 안고 뽀뽀를 하려는데 갑자기 문 입구에서 몇 명이 들이닥쳤다.경연의 부모님과 소만리는 서로 알아보지 못했으나 양이응과 소만리는 알아보았다.얼마 전에 일어난 일이 떠올라 소만리는 양이응을 향해 의미심장하게 차가운 미소를 보냈다.“양이응 씨, 화면에 너무 잘 나오던데요. 양이응 씨가 화면에 잘 나오는 사람일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양이응은 속으로는 가슴이 터질 듯이 화가 났고 얼굴에는 걱정하고 분노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소만리, 당신 왜 날 모함해요? 날 이렇게 괴롭히면 당신한테 뭐가 좋아요?”“내가 당신을 괴롭힌다고?”소만리는 가소로운 듯 웃으며 품에 안긴 아기를 간병인에게 건네주었다.간병인은 아기를 안고 서둘러 병실을 나갔다.“소만리, 당신도 명문가의 명망 높은 딸이면서 어떻게 우리 이 참한 양이응을 괴롭히고 그런 짓을 해!”경연의 부모는 양이응을 옹호하며 소만리에게 호통쳤다.“당신 이렇게 하얗고 예쁘게 생겼는데 어떻게 속은 그렇게 더러운 짓을 할 수가 있어! 소만리, 양이응의 일로 우리는 더 이상 당신과 상대하지 않을 거야!”경연의 부모와 양이응의 질책을 듣고 소만리는 놀라지도 않고 아직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서 있는 경연을 향하여 말했다.“경연 씨, 당신은 제 고객이에요. 그리고 당신은 나를 도와주었고 난 당신을 친구처럼 여겼어요. 그날 점심 식사 자리는 당신이 있는 줄 알고 간 거였어요. 다른 일은 더 말하고 생각이 없어요. 다만 제가 꼭 당신한테 말하고 싶은 것은 저는 사람으로서 못할 짓을 한 적이 결코 없어요.”경연은 소만리의 말을 듣고 소만리에게 대답했다.“난 기 사모님이 이런 황당한 일을 벌이지 않았을 거라고 믿어요. 이 일은 내가 철저히 조사해 볼게요.”“경연 너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냐? 이렇게 증거가 눈앞에 있는데 아직도 너 이 여자 믿는 거냐?”경연의 부모는 경연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양이응은 더욱 억울해서 눈물을 흘리며
군중 속에서 갑자기 누군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울리며 끼어들었다.이 소리에 소만리는 의외여서 깜짝 놀랐지만 눈을 들어보니 위청재가 보온통을 들고 사람들을 헤치며 병실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경연의 부모는 위청재를 비즈니스 연회에서 만난 적이 있어서 약간의 교류가 있는 사이였다.그러나 사람들의 인상 속에 위청재는 소만리라는 며느리를 굉장히 싫어했다고 기억되고 있었다.그런데 지금 보니 소만리를 옹호하는 말을 하고 있다니. 역시 한 가족인 건가.경연의 부모는 잠자코 있다가 경멸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위청재, 당신 며느리가 내 며느리한테 이런 짓을 했는데도 감싸주다니!”위청재는 차갑게 양이응을 힐끗 바라보았다.“당신들은 이런 방탕하고 염치도 모르는 며느리도 그렇게 감싸주면서 왜 내 며느리는 감싸주지 않는 거예요? 내 며느리는 어질고 착하다구요. 당신들 며느리보다 훨씬 더 결백하고 고귀하다고!”“당신...”양이응이 화를 내려고 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걸 자각하고 억지로 참았다.그러나 경연의 부모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위청재, 사실을 직시하고 좀 말해 보세요. 당신 며느리가 우리 며느리 인생을 망쳐놨다구! 당신 이거 좀 봐요. 당신 며느리가 뭘 했는지!”위청재는 대수롭지 않게 화면을 보았다.화면 속 소만리가 와인잔을 바꿀 때 위청재도 좀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어떻게든 소만리의 편을 들었다.위청재가 그렇게 똑똑한 편은 아니었지만 한두 번 소만리가 그녀를 위기에서 구해준 적을 떠올려 보았다. 그녀가 어떻게 소만리의 인품을 의심할 수 있겠는가.위청재는 담담하게 CCTV를 보고 물었다.“이 동영상은 앞뒤 다 잘려있는데 어떻게 내 며느리가 당신 며느리에게 약을 먹였다고 단정할 수 있어요? 약 넣는 장면은요? 약은 어딨는데요?”위청재가 이렇게 묻자 경연의 부모님을 포함해 주변에 있던 사람들 그리고 양이응까지 모두 어리둥절했다. 의문점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온 것을 면치 못하자 양
”말이 나온 김에 말해 둘게. 이 CCTV는 너희가 입수하기 전에 식당 사람들에게 달라고 부탁했었어. 네가 굳이 나를 적반하장으로 몰지 않았다면 난 이 동영상을 내보내지 않았을 거야.”소만리가 계속 말을 이었다.“양이응, 먼저 건드리는 사람이 비열한 법이야. 자신이 뿌린 씨는 자기가 거두는 거고. 잘 알아 둬.”“소만리, 네가 감히!”양이응은 화가 나서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불덩이를 주체하지 못하고 손을 들어 소만리를 치려고 했다.그러나 허공에 손을 뻗자마자 경연의 아버지에게 심하게 뺨을 맞았다.“이 염치없는 여자야. 자기가 이런 짓을 하고도 무고한 척하고 우리가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을 비난하게 하다니! 잘 들어. 경연과 너의 결혼은 취소야. 우리 경 씨 집안은 절대로 너 같은 여자를 며느리로 받아들일 수 없어!”경연의 부모는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사람들 앞에서 말을 마치고 훌쩍 자리를 뜨려고 했다.위청재는 이들을 가로막으며 정색을 하며 말했다.“이러고 그냥 가려구? 당신들 내 며느리한테는 아직 사과 안 했잖아.”경연의 부모는 잘못을 알고 즉시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하며 소만리에게 사과했다.사과를 마치자마자 경연을 데리고 갔다. 경연은 미안한 듯 소만리를 보고 그제야 자리를 떠났다.양이응은 황급히 쫓아갔다.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맞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황급히 얼굴을 가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져나갔다.구경꾼들은 여전히 수군거리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소만리에게 사과를 했다.위청재는 손을 흔들며 이들을 문밖으로 막은 뒤 문을 닫았다.이제 병실에는 위청재와 소만리만이 남았다.위청재는 오히려 어찌할 바를 몰라 그냥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직접 끓인 국물을 내려놓았다.“나 일이 있어서 먼저 가마.”위청재는 감히 소만리를 정면으로 쳐다보지 못하고 문으로 향했다.소만리는 위청재의 뒷모습을 보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문고리를 잡은 위청재의 손이 저절로 움찔했
소만리는 사람 그림자가 드리우는 느낌이 들었다. 힐끗 보고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되어 급히 자세를 틀었다.하지만 그 순간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가 기모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기모진은 방문을 잠그고 한 걸음 한 걸음 침대 곁으로 걸어와서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소만리를 보았다.그의 얼굴은 맑고 깨끗했다. 그윽한 눈빛은 일말의 감정도 싣지 않은 채 소만리를 바라보았다.소만리도 더 이상 피하지 않고 자신에게 다가온 남자를 태연하게 마주했지만 귓가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다.“좌한 당신, 무슨 일로 오셨어요?”비록 이렇게 불렀지만 소만리는 그가 바로 기모진이라는 것을 안다. 기모진은 그녀를 보고 얇은 입술을 열었다.“당신이 내 여자의 기분을 나쁘게 만들었어. 나도 그래서 당신의 기분을 나쁘게 만들어 주려고 왔어.”소만리는 아기를 안은 손가락에 살짝 힘을 주었지만 지금 이런 상황에서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품에 안은 이 녀석은 통통하고 큰 눈을 뜨고 열심히 젖을 먹고 있었다.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그녀는 아기를 낳을 때 기모진이 그녀와 함께 열심히 아이를 키우고 하루하루 지낼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하느님은 늘 그녀에게 온갖 시련을 안겨주셨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웃으며 품속의 아기를 바라보았다. 아이를 보니 마음이 한층 위로가 되었다.다만 다시 눈을 들어보니 기모진은 여전히 자신을 아무런 감정 없이 바라보고 있었고 그의 시선은 점점 아래로 내려와 그녀의 가슴 위로 떨어졌다.소만리는 갑자기 뺨이 뜨거워졌다. 소만리의 몸을 그가 이미 수도 없이 봤겠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그가 보고 있으니 소만리는 조금 불편했다.그녀는 몸을 돌려 자리를 피하려는데 기모진이 갑자기 손을 내밀었다.따뜻한 손끝이 그녀의 왼쪽 가슴에 있는 작은 점 위에 떨어졌다.닿는 순간 소만리의 몸에는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 그녀는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비로소 기모진이 줄곧 그 점을 바라보고 뭔가 생각에 잠긴
그는 소만리를 놓아주고 조금도 미련 없이 돌아섰다.소만리가 지금 신경 쓰는 것은 그녀에 대한 기모진의 태도가 아니라 오로지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아이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의 친혈육을 조금도 눈여겨보지 않았다.혈육이니 어쨌든 약간의 감정이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모진, 아마도 지금 당신의 마음속에는 강연 그 여자밖에 없겠죠?”소만리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다시 아기 인큐베이터 옆으로 가서 잠든 아기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음이 괴롭기도 하고 또 행복하기도 했다.다음날 소만리는 기모진의 말을 따르지 않고 그가 말한 장소에 나가지 않았다.그녀는 그가 정말 모든 인간성을 상실하고 그녀의 아이를 건드릴 거라고는 정말 생각하지 않았다.그런데 오후에 그녀가 잠시 자리를 비우고 다시 병실로 돌아왔을 때 갑자기 간병인이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말했다.“방금 내가 병실에 들어왔을 때 어떤 남자가 여기서 나가는 걸 봤어요. 내가 아기를 봤더니 아기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고 숨도 쉬지 않아서 지금 응급실에서 응급처치를 하고 있어요.”소만리의 심장은 보이지 않는 두 손으로 매섭게 찔리는 듯 쪼이고 아파왔다. 핸드폰을 꺼내 기모진의 사진을 간병인에게 보여주며 말했다.“이 남자가 맞아요?”간병인은 잠시 사진을 바라보며 말을 얼버무렸다.“네. 이 남자예요. 엄청 잘생긴 남자였어요.”이 대답이 귀에 들어오자 소만리는 자신의 마음이 산산조각이 나버리는 것 같았다.모현과 사화정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 소만리는 갑자기 몸을 돌려 뛰쳐나갔다.“소만리? 소만리 어디 가!”교외 별장.기모진은 별장에서 소만리를 한나절 내내 기다렸는데도 그녀는 오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바로 차를 몰고 소만리를 찾으러 갈 준비를 했다.그런데 막 현관 입구를 나서자마자 기모진은 갑자기 차 한 대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소만리의 얼굴빛은 얼음장처럼 차갑
문 앞에 서 있던 소군연의 모친은 이 모습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군연의 부친이 옆에서 말렸다.“그만 좀 해.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길 바라는 거야?”“누가 지금 가서 훼방 놓으려는 줄 아세요? 가서 말해 줘야죠. 나도 이 혼사에 동의해도 되겠냐고.”“당신 동의하는 거야?”소군연의 모친이 막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연장 안 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안에서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소군연의 품에서 나온 예선은 소만리와 기모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심지어 나익현과 나다희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예선과 소군연을 향해 다가왔다.예선은 멍하니 소만리를 쳐다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소군연의 부모만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소군연은 절대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단지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좀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이듬해 봄.생명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들이 축제를 펼치는 계절.경도호텔 야외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그렇다.오늘은 소군연과 예선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주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두 부부의 눈에는 실로 눈앞의 모든 존재들이 기적과도 같았다.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막내와 그 옆을 잘 보살피고 있는 듬직한 기란군, 그리고 곱고 맑은 딸 기여온까지.“엄마 아빠, 나랑 막내한테도 뽀뽀해 줘.”“뽀뽀, 뽀뽀.”막내는 기란군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쳤다.“너랑 막내는 맨날 하잖아. 여온이는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특별히 좀 더 많이 해 줘야지.”기모진은 귀여운 기여온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여온아,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놈이 평소에 무섭게 굴지는 않아?”“당신이 말한 그놈이 혹시 나예요?”강자풍이 짐짓 뾰로통한 얼
예선의 말을 듣고 소군연의 모친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예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다.게다가 예선은 자신을 향해 ‘존중'이라는 단어를 썼다.예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소군연의 모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는 중 갑자기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네가 그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널 존중해 줄 줄 알아? 사람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거야.”“그렇지만 군연은 그들의 아들이잖아. 만약 내가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군연이랑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평생 나와 군연을 원망하며 살 거야.”예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군연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평생 힘들어하면서 살게 할 순 없어.”“그렇지만 예선아...”“소만리, 이제 그만해. 너 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지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이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안 그래?”예선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예선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선아, 그럼 이제 갈 거야? 소군연 선배 더 안 찾을 거야?”“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래도 못 찾는다는 건 아마도 군연과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군연이 혼자 조용히 있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예선이 돌아서자 소군연의 모친은 얼른 몸을 숨겼다.자신이 그들을 미행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소만리가 예선을 불러 세웠다.“예선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랑 군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때? 아직 안 가 본 곳이 혹시나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소군연 선배가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예선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직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해.”“거기가 어
멀리서 예선을 몰래 관찰하던 소군연의 부모는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흥. 군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깊다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군연이 어디 갔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군.”소군연의 모친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거렸다.소군연의 부친은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말 좀 이제 그만해. 지금은 군연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사실 난 저 예선이란 애, 꽤 괜찮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부모도 없다고 당신 많이 싫어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있고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갑부에 아빠는 유명한 의사인데 당신 뭐가 불만이 그렇게 많아? 정말 아들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할 셈이야?”소군연의 부친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당신도 예전에는 반대했잖아요? 나중에는 나도 동의했다구요. 하지만 아버님 체면 세워 드리느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건데 이제 와서 날 탓하면 어쩌라는 거예요?”“그만둬.”소군연의 부친이 아내의 말을 끊었다.“어째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예선이 움직였어!”소군연의 부친이 급히 액셀을 밟았고 소군연의 모친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소만리의 차는 경도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건물을 바라보며 예전에 함께 보냈던 날들을 떠올렸다.그들이 대학에 갓 입학한 첫날이었다.그때 그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해 선배의 남자와 부딪히게 되었다.그 남자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경도대학교에 있을 것 같아?”소만리가 물었다. 예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말처럼 군연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 왔어. 운에 한번 맡겨 보려고.”예선은 말을 마치며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학교는 개방식이어서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바로 들어갔
소군연의 할아버지는 소군연의 글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퇴원하자마자 한 여자 때문에 사라져?게다가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그는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군연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만약 소군연이 정말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들 소 씨 가문은 후사가 없게 되는 게 아닌가?낭패였다.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예선은 밖으로 뛰쳐나온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오전이 다 지나도록 소군연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소군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예선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그녀는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탈히 사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상실감이 확 밀려왔다.군연, 정말 날 포기하기로 한 거예요?우린 이렇게 헤어져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예선은 막막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바로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선은 얼른 그녀의 전화를 받아 소군연에게 일어난 상황을 전했고 소만리는 한달음에 예선에게 달려왔다.예선은 소만리를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소만리는 예선을 위로했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 거야. 널 포기했을 리가 없어.”“아니야. 포기한 거야.”예선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의 가족들이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하시고 최근에 발생한 일 때문에 다른 가족들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나빠졌어.”“그동안 일어난 일은 너랑 아무 상관없어. 넌 피해자야.”“하지만 그들은 날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소군연
”얼른 들어갈게요!”소군연의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는 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넌 오지 마! 우리 소 씨 가문에 널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소군연의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선은 소군연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예선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어떻게 소군연이 스스로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어제까지도 분명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소군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그러나 소군연은 받지 않았다.소군연에게 핸드폰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선은 계속 전화를 시도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소군연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드디어 예선이 소군연의 집에 도착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칼진 소군연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가 어떻게 스스로 집에 왔다는 거야? 방금 깨어난 거 아니야?”“이것 좀 봐 봐. 이거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야.”소군연의 부친은 원망 섞인 말투로 소군연의 모친에게 뭔가를 쥐여 주었다.예선이 얼른 현관에 들어서자 따가운 소군연의 모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넌 왜 또 왔어? 누가 널 환영한다구...”“됐어. 그만하고 이것 좀 보라니까.”소군연의 부친은 예선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군연의 모친 말을 끊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부친이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쫓아내지 않자 얼른 안으로 걸어갔다.소군연의 모친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메모지 한 장이었는데 메모지에는 짧은 몇 마디가 쓰여져 있었고 모두 소군연의 모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소군연은 자신이 이틀 전에 깨어났다고 실토하며 잠에서 깬 이후 자신의 엄마가 예선에게 모질게 투덜거리는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예선과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
예선은 아무도 없는 병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소군연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예선은 소군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이때 소군연의 엄마가 들어왔다.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소군연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본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 혹시 무슨 검사하도 하러 간 거야?”소군연의 엄마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예선에게 물었다.소군연의 엄마가 보이는 이런 태도에는 이골이 났는지 예선은 개의치 않으며 담담하게 돌아섰다.“저도 알고 싶어요.”“나보다 먼저 와 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제가 왔을 때도 병실에 아무도 없었어요.”예선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잠깐만.”소군연의 엄마가 예선을 멈추어 세우며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말을 해 둬야겠어. 군연인 이미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 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너 때문에 영 씨 집안 두 모녀는 감옥에 갇혔어. 이건 분명히 네가 우리 가문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네가 우리 군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든 우리 군연이 널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어. 넌 우리 소 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예선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 씨 집안 두 모녀가 감옥에 간 것까지도 예선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예선과 소군연은 엄연히 피해자였다.영내문 같은 악랄한 사람은 오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었다.영내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중의 악인이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벌여진 일들로 이 모든 것이 자명한데 소군연의 엄마는 여전히 예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예선은 더 이상 소군연의 엄마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시간 낭비 에너지
채수연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온아.”채수연이 기여온에게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여온아, 선생님이 여온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딜 가든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라. 그리고 하루빨리 말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게.”기여온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채수연은 일어서서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눈에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 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의 집착은 사라졌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집스럽게 쟁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채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자풍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강자풍도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기여온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 채수연에게 따뜻한 작별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채 선생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많이 신세 졌습니다. 고맙습니다.”채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절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걸로 이미 다 갚으셨어요. 하지만 강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그럼요, 언제든지요.”강자풍이 흔쾌히 승낙했다.친구가 된다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채수연은 그 자리에서 기여온을 안고 점점 멀어지는 강자풍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강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자풍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가득 품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뭐가 궁금하신가요?”“좋아하는 여자가 정말 있긴 한 거죠?”강자풍은 기여온의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시선을 잠시 떨구며 입을 열었다.“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여온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어쩌다가 듣게 되었어요.”강자풍은 순순히 시인했다.채수연은 강자풍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난감해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다만 약간의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강자풍은 채수연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더 난처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나와 여온이 일로 또 한 번 고민거리를 안겨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강자풍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기여온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예요.”채수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마음속에서 상실감이 강하게 몰아쳤다.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강자풍을 쳐다보며 강자풍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그의 말은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채 선생님, 여온이한테 더 잘 맞는 유치원을 찾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과도 더 가까워서 여온이 등하원하는 데도 훨씬 편리할 것 같아요.”강자풍의 말을 들은 채수연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여온이한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유치원을 옮기기로 하신 거예요?”강자풍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선생님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강자풍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기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채수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자신의 감정이 줄곧 일방적인 것이었고 닿을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자풍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채수연도 강자풍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저희 엄마와 엄마 친구가 강 선생님에 대해 한 말은 정말 부적절했어요. 죄송합니다.”강자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입
류 씨 성을 가진 남자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강자풍이 기여온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모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었다.이 남자도 양심은 있었던지 기여온의 모습은 블러 처리를 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지만 강자풍의 모습은 영상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채수연의 엄마는 한눈에 영상 속 사람이 강자풍임을 알아차렸다.영상 아래의 댓글을 본 채수연의 엄마는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수연아, 너 어떻게 이런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채수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맞아요. 부인하지 않을게요. 난 강 선생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뭐라고!”“아유... 수연아, 너 정말 이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진 씨 부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거렸다.“내가 보니까 여기 댓글 단 사람들이 벌써 이 남자 신상을 다 파헤친 것 같던데. 이 남자 예전에 우리 F국에서 한때 주름잡았던 그 강어라는 사람 동생이라더라구. 그 강연이라나 뭐라나 누나라는 사람은 업계에선 더욱 악명이 높았대.”“뭐! 그 강 선생이 강어와 강연의 동생이라고?”채수연의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악명 높은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나도 그 사람 형과 누나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하지만 강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에 개입한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벌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거예요.”채수연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게다가 강 선생님은 이 아이의 친아빠가 아니에요. 친구 딸인데 잠시 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걸로 자꾸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못 해서 누구보다 괴로운 건 이 아이잖아요. 입장 바꿔서 누군가가 아주머니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네?”“...”채수연의 입에서 뭐라도 가십거리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