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영설의 갑작스러운 표정 변화에 소만리는 소만영을 생각했다.그녀는 희미하게 무언가를 알아차렸고, 뒤에서 익숙한 발소리가 들렸다."모진 오빠, 잘 왔어요. 갑자기 새언니가 저에게 욕을 하고, 또 나를 바닥에 밀어버려서 너무 아파요, 흑흑흑......”쳇.역시 위영설의 얼굴이 갑자기 바뀐 것은 기모진이 왔기 때문이었다.이 친숙한 장면은 소만리의 기억을 되살려주었다.소만영이 기모진 앞에서 몇 번이나 이런 수작을 부렸는지, 그녀의 마음을 정말 오싹하게 했던 것은 기모진이 매번 소만영을 믿었다는 것이었다.지금 이 순간 소만리는 기모진의 생각을 기대하지 않았다.그가 믿든 믿지 않든 그녀에게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모진 오빠, 저 발을 삔 것 같아요. 너무 아파서 일어날 수가 없어요, 날 좀 일으켜 주시겠어요?"기모진을 향해 애처롭게 손을 내미는 위영설에게 기대가 모아졌다.소만리는 기모진이 사촌동생을 확실히 부축해 줄 거라고 생각했을 때, 남자는 보고도 못 본 척하며 곧장 소만리 곁으로 가더니,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천리, 여기 바람이 많이 불어서 추운데 위층으로 갈래?"위영설의 안색이 갑자기 돌변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모진 오빠, 이 여자는 다른 남자와 손잡고 오빠가 힘들게 일궈놓은 사업을 무너뜨렸어요. 고모가 화가 나서 밥도 못 먹겠다고 하고 아까 그렇게 악랄하게 밀었는데 오빠는 왜 그녀가 춥던 안 춥던 상관해요?"기모진의 눈동자에 차가운 빛이 스며들었다.“내 앞에서 연기하며 장난치지 마, 내가 너의 말을 믿을 거라고 생각해?”"…….."위영설은 난처해하며 얼굴이 빨개졌지만, 여전히 논쟁하고 싶어했다."모진오빠, 나, 내가 말한 건 진실이에요, 이 여자가 정말 나를 밀었다고요!”“내 아내는 너 같은 캐릭터 신경도 안 써. 그런데 너를 밀었다고? 그녀의 손만 더럽혀졌을 것 같은데."“………”기모진이 자신을 자기 아내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을 때, 소만리는 조금 의외였지만, 그
이 말을 들은 소만리는 표정이 살짝 변했다."당장 군군을 끌어안고 내려오세요. 방금 당신 사촌이 나에게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당신이 직접 봤어야 했어요. 나는 제2의 소만영이 나타나길 원하지 않았어요. 나를 싫어하기 때문에 원한을 군군에게 쏟았잖아요."기모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올라가 기란군을 끌어안고 내려왔다.위청재는 문 앞까지 쫓아와서, 기모진에게 왜 갑자기 기란군을 데려갔는지 물었다.기모진은 그녀에게 대답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뒤따라온 위영설은 체면에 먹칠하는 것을 부추기기 위해 입을 열었다.“고모, 그 소만리를 방금 밑에서 만났는데, 그녀가 저를 괴롭혔을 뿐만 아니라 사촌 오빠에게 당신이 군군을 해칠까 봐 걱정된다며 바로 군군을 돌려주라고 했어요!”이 말을 들은 위청재는 화가 나서 이를 악물며 말했다.“이년은 예전부터 분별을 못했는데, 지금은 더 분별을 못하네! 내가 얼마나 대단한지 꼭 그녀에게 알려줘야겠어!”위청재의 이빨이 증오로 간질거리는 것을 보고 위영설은 천하가 어지럽지 않을까 하는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기란군은 너무 깊이 잠들어서 별장에 돌아왔을 때 깨어나지 못할 정도로 잠을 푹 잤다.소만리는 꼬마를 침대 위로 데려가, 살뜰히 이불을 덮어주었다.꼬마가 잠든 작은 얼굴을 바라보며 그녀는 몸을 숙이고 다정하게 키스를 했다.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소만리는 방 안을 휙 둘러보았다.방 안에 완구 문방구가 모두 갖추어져 있어 기란군의 생활 여건이 상당히 양호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하지만 정신적으로 이 아이가 정말 기뻤던 날은 소만리를 다시 만난 날로부터였다.소만리는 마음이 아팠고, 갑자기 책상 위에 놓인 한 장의 그림에 시선이 꽂혔다.그녀가 들고 자세히 보니 크레파스 그림으로 기란군이 직접 그린 그림으로 보였다.어른 두 명이 어린 소년의 손을 잡고 있는 도화지에는 세 사람 모두 비슷한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싱그러운 풀밭을 거닐고 있었다.이
소만리는 기모진의 손바닥에 있는 물건을 집어 들었다.그녀는 눈빛이 반짝이고, 기억에 이끌려 오래전 그 여름으로 그녀를 데려갔다....그 해 열 살 때, 그녀는 열두살의 기모진을 만났다.그때, 그녀는 그에게 알록달록한 조개껍데기를 주며 그가 영원히 즐겁고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당시 기모진의 눈에는 경계심이 가득했지만, 그는 마침내 소만리에게 보기 드문 미소를 지었다.열 살의 소만리의 생각은 무지하게 단순했지만 나중에 기모진이 그녀를 돌아볼 때 그의 마음의 두근거림이 영원함을 알게 되었다.나중에 기모진은 직접 나뭇잎으로 책갈피를 만들어 선물했다.그녀는 항상 조심스럽게 간직해 오며 일기장에 보관하고 가끔 한번쯤은 들여다보곤 했다.그런데 한번은 옛날 일기 내용을 뒤져보려는데, 일기장이 없어졌고 거기에 끼워진 책갈피마저 없어졌다.그 때 그녀는 오랫동안 상심하고 괴로워했다.모진 오빠가 남긴 유일한 물건이기 때문이었다.그런데,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이 책갈피가 어떻게 기모진에게 나타날 수 있지?"기모진, 대답해 주세요. 이 책갈피가 어떻게 당신 손에 있죠?"소만리는 따지는 눈빛으로 다급함을 감추지 못했다.치모진의 눈빛은 오히려 부드러웠지만 소만리는 이 책갈피에 신경을 썼다.그때 그는 이미 매우 행복했다."왜 나한테 있냐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천리가 아직도 그걸 기억하고 있다는 거야.”소만리의 심장 박동이 약간 어긋나자, 그녀는 마음을 다잡고 책갈피를 움켜쥐며 말했다."내가 당신을 다시 만나기를 가장 간절히 바랬을 때, 당신은 이미 나를 거절했고, 내가 이 책갈피를 보물처럼 소중히 여겼을 때 이미 나를 잊었어요. 기모진, 이 책갈피는 이미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당신이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요."소만리는 차갑게 스쳐 지나갔고, 기모진은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쓸쓸함이 가슴속 깊이 스며들었다.소만리는 이 책갈피가 왜 기모진에게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는 그 해
이미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고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다가와 앉았다.“너 왔구나.”그녀는 말투는 가벼웠고 마치 죽음을 각오한 듯 편안한 모습이었다.“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네 계좌에 정말 십억이 있어? 육정은 초조한듯 추궁했다."기모진을 몇 년 동안 따라다녔더니 좀 이득을 봤어."소만영은 거만하게 비웃으며 의자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먼저 내 다른 계좌로 가서 일억을 찾으면 되고, 일이 마무리되면 또 다른 계좌의 비밀번호를 알려줄게.”육정의 눈이 순식간에 빛났지만, 여전히 약간의 의심이 있었다."넌 나한테 수작 부리지 마.""흥, 보름만 더 있으면 죽을 텐데 내가 이 돈을 갖고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소만영은 태연하게 말했지만, 갑자기 주먹을 꽉 쥐더니, 그녀의 눈에 광기가 돌았다."하지만 내가 죽기 전에 소만리 그 년 먼저 죽는 걸 꼭 보고 싶어!”"네가 이 일을 도와줄 수만 있다면, 십억은 당신 것이야!”소만영은 유혹에 빠진 육정의 눈에서 매우 탐욕스러운 빛을 보며 그녀는 그를 계속 부추겼다."육정, 어쨋든 우리도 잘 한번 해보자, 소만리가 전에 당신을 그렇게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당신이 진짜 남자라면, 어떻게든 혼내줘야 하지 않겠어?""내가 당연히 진짜 남자지!"육정은 쉽게 속았다."좋아, 넌 이 돈만 제대로 주면 돼, 내가 꼭 이 일을 처리할게!""그럼 좋은 소식을 기다릴게!"소만영은 하하 웃으며 일어나 면회실을 떠났다.육정은 소만영이 말한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를 적어 두고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서둘러 떠났다.그가 교도소에서 막 걸어 나오는데, 우연히 소만리가 흰색 승용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았다.육정은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옆으로 비켜서 소만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몰래 관찰했다.소만리가 감옥에 들어간 것을 보고 육정은 그제야 소만리의 차 옆으로 살금살금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았다......수감된 감옥으로 돌아온 소만영이 갑자기 누군가 그녀를 다시 만나러
동시에 소만리는 그때 일기장이 사라진 진실이 바로 소만영 필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확신했다."소만영 그때 네가 내 일기장을 훔쳤어. 그 내용을 보고 내가 기모진과 어렸을 때 그런 인연이 있었다는 걸 알고서 너는 옛날의 나인 척하고 사기극을 꾸몄어. 기모진은 너를 그가 처음에 약속했던 여자 아이라고 속임수를 써서 믿게 만들었어.”모든 이야기와 진실을 밝히자 소만영의 눈빛이 움츠러들었다.그녀는 변명하지 않고 이미 묵인했다.기모진도 이미 이 일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보기에 변명도 소용이 없는 듯 보였다.소만리는 손가락을 꽉 조이고 아름다운 눈에는 차가운 빛이 비쳤다."소만영, 너 정말 가엽구나."이 말을 들은 소만영은 갑자기 강렬하게 빛나는 음흉한 눈을 번쩍 들어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너 뭐라고? 소만리 너 뭐라고 하는 거야! 내가 가엽다고?”"맞아, 넌 가여워."소만리는 차갑게 비웃었다.“지금까지 너는 기모진이 지난 몇 년 동안 왜 너를 그렇게 묵인해 온 이유를 잘 알고 있을 거야, 그가 너를 좋아한다는 것은, 모두 그가 나를 잊지 못하는 것으로 비롯된 것이고, 너는 단지 우스꽝스럽고 한심한 대체품일 뿐이야.""닥쳐! 난 너의 대체품이 아니야! 모진이는 나를 사랑했어, 그는 나를 사랑했다고!"소만영은 걷잡을 수 없이 소리지르며 미친 듯이 그녀에 대한 기모진의 사랑을 강조했다.소만리는 여유롭게 대답했다."그는 너를 전혀 사랑하지 않아요. 만약 그가 너를 정말 사랑한다면 당신은 오늘과 같은 결말을 맺을 수 없을 거야.”"헛소리하지 마! 모진은 나를 사랑해, 그는 나를 가장 사랑했어! 내가 이렇게 하고 싶어하면 이렇게 하게 해주고 모진은 내 뜻을 거스르지 않았어! 오히려 너를, 모진이가 너를 가장 싫어했지. 그는 니가 죽기를 원했어!"소만영은 두 눈을 붉히며 열변을 토했다."소만리 차라리 죽지 않고 왜 돌아왔어? 니가 돌아오지 않았으면, 나와 모진은 이미 결혼했어! 그리고 우리는 행복할
하지만 그녀는 소만리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교도관에게 제압당했다.그러나 소만영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욱 미친듯이 소리를 질렀다."난 절대로 너와 모진이 함께 있게 하지 않을 거야! 니가 원하는 대로 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소만리!""모진은 내 꺼야, 그는 내 꺼야! 소만리 왜 내게서 남자를 뺏어? 너 같은 여자가 왜 18년 동안이나 모진의 마음을 차지해! 도대체 왜!"18년…….소만영이 소리 지르는 이 말에 소만리의 심장은 갑자기 빠르게 뛰었다.그러나 그녀는 곰곰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소만영은 미친 듯이 소리쳤다."이 년아! 이 년아! 만약 니가 아니었다면, 그해에 대학 첫날 모진이가 첫눈에 반한 사람은 나였어! 넌 일부러 모진에 부딪힌 척하며 관심을 끌기 위해 장난을 쳤어! 모진이는 너 때문에 내가 쓴 러브레터를 그냥 지나쳤어!”알고 보니 소만영이 나를 사칭하기 전에, 그녀가 기모진에게 러브레터를 썼어?소만리는 의아해하며, 소만영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소만영의 얼굴에는 한 가닥의 슬픔의 흔적이 배어 있었다.“그런데 내가 그 어린 소녀라고 말하자 모진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어! 왜 내가 너같이 천한 여자로 사칭해야 모진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거야? 왜!”"소만리 니가 너무 미워! 난 니가 죽도록 입다고! 모진처럼 완벽하고 훌륭한 남자가, 어떻게 이런 천한 촌년을 사랑할 수 있어? 내가 그를 따라다녔던 요 몇 년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나를 건드리지도 않았고, 술에 취했을 때도 천리천리 외쳤어."“니가 죽은 건 죽은 건데 왜 그가 잠을 못 이룰 정도로 마음이 아파하냐고! 그는 아직도 너를 위해 무덤까지 세웠어! 세시간에서 다섯시간마다 장미꽃 한 송이를 사서 묘지에 가서 혼자 멍하니 무덤에 대고 말했지, 사랑하는 아내? 니가 무슨 사랑하는 아내야! 니가 자격이 있어? 소만리 니가 자격이 있냐고!”소만영이 무너지듯 고함을 치고, 소만리는 미친 듯이 소리지르는 소만영을 멍하니 바라보며 두 눈을 붉혔지만 그녀
이 말을 듣고, 소만영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자신이 방금 하지 말아야 할 진실을 말했음을 깨달았다!그녀의 그 말은 그녀가 보기에, 소만리에게는 정말 큰 선물이었지만, 그녀 자신에게는 정말 최악의 풍자였다!소만영의 안색이 돌변하여 아까의 말을 되돌리고 싶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소탈하게 돌아서는 소만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녀는 당황하여 소리쳤다."소만리, 돌아와! 돌아와! 방금 내가 한 말은 모두 거짓말이야, 모진은 너를 사랑하지 않아! 그는 너를 전혀 사랑하지 않아, 그는 나를 사랑해! 바로 나라고."끝까지 억지를 부리던 소만영의 정서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하지만 그녀가 그토록 감추려고 억지를 부리는 것은 소만리에게 기모진이 그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더욱 확신하게 만들 뿐이었다.차를 몰고 돌아가는 길에 소만리의 마음은 여러 번 방황했고 그녀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소만영이 외친 그 말들이 귓가에 계속 메아리쳤고, 그 믿을 수 없는 진실들이 그녀의 마음을 깊숙이 찔렀다.만리에게 가장 놀라웠던 것은, 기모진이 소만영을 그렇게 오랫동안 단 한번도 만진적이 없다는 것이었다.소만영이 두 번 '임신'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소만영이 기모진에게 만든 환상에 취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당초 전화의 소만영의 애매한 목소리는 지금 보기에 완전히 가장한 것으로, 기모진의 핸드폰을 이용해 일부러 그녀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소만영이 기모진의 핸드폰을 손에 쥐게 된 이상, 6년 전 기모진의 이름으로 보내온 모욕적인 문자 메시지도 소만영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았다.기모진이 일을 처리하는 스타일로 봐서 그가 어떻게 그렇게 지루하게 문자를 보낼 수 있을까? 이제야 확실히 그런 것 같았다. 그는 언제나 예리하고 단호하게 행동했고, 그녀를 괴롭히려고 해도 그는 모두 공개적으로 직진했다.괴로웠다...그 피비린내 나고, 어둡고 서늘했던 추억들이 다시 그녀의 마음에 밀려와 그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충격과 함께 두근거림,
안타깝게도 우리는 엇갈리고 말았어요.아빠, 엄마가 오늘은 왜 나를 보러 안 오세요? 이번 주말에 같이 놀아주겠다고 했어요."기란군의 은방울 같은 목소리가 소만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그녀가 눈을 들어 보니, 꼬마 녀석이 끄는 기모진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기대하는 눈빛으로 물었다.기모진은 손을 내밀어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작은 머리를 쓰다듬었다."군군, 다음 주 월요일부터 아빠가 출장을 가서 오랫동안 못 오는데 엄마 말 잘 들어, 알겠지?""오랫동안이 몇 시간이에요?" 꼬마가 천진난만하게 물었다.기모진, 아픔을 참으며 미소 지었다.“군군이 크면 알게 될 거야."기란군은 밝고 명랑하게 큰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그럼 군군이 빨리 자라서 아빠를 빨리 다시 만날 수 있게 할 거예요.""우리 아기 착하지."기모진은 칭찬하다가 갑자기 몸을 웅크리고 앉아 기란군을 품에 안았다.“아빠, 왜 그래요?”기란군이 무의식적으로 눈을 깜박였다.기모진은 어린아이를 어루만지며 울먹였다."아빠가 군군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미안하다고요?""군군, 아빠가 미안해. 지난 몇 년 동안 아빠가 너를 잘 돌보지 못해서 너를 많이 힘들게 했어. 아빠가 정말 미안해.”기모진은 사과했고, 한 글자 한 글자 모든 말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심이었다.“군군, 아빠랑 강하고 현명한 남자가 되겠다고 약속하고, 아빠 대신 엄마를 지켜주고, 엄마를 행복하게 해줘.”"아빠는 스스로 엄마를 잘 지켜주지 않고, 엄마를 행복하게 해 주지 않아요?”기모진은 포옹을 풀고 소만리를 닮은 큰 눈을 바라보았다.“아빠가 실수를 해서 더 이상 엄마에게 행복과 기쁨을 줄 자격이 없어.”기모진의 사죄의 말이 무겁고 깊은 목소리로 귓가에 흘러 들어왔다.소만리 가슴이 두근두근거려서 더 듣고 싶지 않아서 그냥 차를 몰고 가려던 참에 기모진의 핸드폰 벨소리가 급하게 울리기 시작했다.“할아버지께서 응급실에 들어가셨다고?”그녀는 기모진이 조바심 내며
문 앞에 서 있던 소군연의 모친은 이 모습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군연의 부친이 옆에서 말렸다.“그만 좀 해.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길 바라는 거야?”“누가 지금 가서 훼방 놓으려는 줄 아세요? 가서 말해 줘야죠. 나도 이 혼사에 동의해도 되겠냐고.”“당신 동의하는 거야?”소군연의 모친이 막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연장 안 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안에서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소군연의 품에서 나온 예선은 소만리와 기모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심지어 나익현과 나다희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예선과 소군연을 향해 다가왔다.예선은 멍하니 소만리를 쳐다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소군연의 부모만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소군연은 절대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단지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좀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이듬해 봄.생명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들이 축제를 펼치는 계절.경도호텔 야외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그렇다.오늘은 소군연과 예선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주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두 부부의 눈에는 실로 눈앞의 모든 존재들이 기적과도 같았다.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막내와 그 옆을 잘 보살피고 있는 듬직한 기란군, 그리고 곱고 맑은 딸 기여온까지.“엄마 아빠, 나랑 막내한테도 뽀뽀해 줘.”“뽀뽀, 뽀뽀.”막내는 기란군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쳤다.“너랑 막내는 맨날 하잖아. 여온이는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특별히 좀 더 많이 해 줘야지.”기모진은 귀여운 기여온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여온아,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놈이 평소에 무섭게 굴지는 않아?”“당신이 말한 그놈이 혹시 나예요?”강자풍이 짐짓 뾰로통한 얼
예선의 말을 듣고 소군연의 모친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예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다.게다가 예선은 자신을 향해 ‘존중'이라는 단어를 썼다.예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소군연의 모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는 중 갑자기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네가 그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널 존중해 줄 줄 알아? 사람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거야.”“그렇지만 군연은 그들의 아들이잖아. 만약 내가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군연이랑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평생 나와 군연을 원망하며 살 거야.”예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군연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평생 힘들어하면서 살게 할 순 없어.”“그렇지만 예선아...”“소만리, 이제 그만해. 너 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지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이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안 그래?”예선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예선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선아, 그럼 이제 갈 거야? 소군연 선배 더 안 찾을 거야?”“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래도 못 찾는다는 건 아마도 군연과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군연이 혼자 조용히 있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예선이 돌아서자 소군연의 모친은 얼른 몸을 숨겼다.자신이 그들을 미행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소만리가 예선을 불러 세웠다.“예선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랑 군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때? 아직 안 가 본 곳이 혹시나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소군연 선배가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예선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직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해.”“거기가 어
멀리서 예선을 몰래 관찰하던 소군연의 부모는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흥. 군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깊다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군연이 어디 갔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군.”소군연의 모친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거렸다.소군연의 부친은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말 좀 이제 그만해. 지금은 군연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사실 난 저 예선이란 애, 꽤 괜찮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부모도 없다고 당신 많이 싫어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있고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갑부에 아빠는 유명한 의사인데 당신 뭐가 불만이 그렇게 많아? 정말 아들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할 셈이야?”소군연의 부친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당신도 예전에는 반대했잖아요? 나중에는 나도 동의했다구요. 하지만 아버님 체면 세워 드리느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건데 이제 와서 날 탓하면 어쩌라는 거예요?”“그만둬.”소군연의 부친이 아내의 말을 끊었다.“어째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예선이 움직였어!”소군연의 부친이 급히 액셀을 밟았고 소군연의 모친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소만리의 차는 경도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건물을 바라보며 예전에 함께 보냈던 날들을 떠올렸다.그들이 대학에 갓 입학한 첫날이었다.그때 그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해 선배의 남자와 부딪히게 되었다.그 남자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경도대학교에 있을 것 같아?”소만리가 물었다. 예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말처럼 군연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 왔어. 운에 한번 맡겨 보려고.”예선은 말을 마치며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학교는 개방식이어서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바로 들어갔
소군연의 할아버지는 소군연의 글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퇴원하자마자 한 여자 때문에 사라져?게다가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그는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군연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만약 소군연이 정말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들 소 씨 가문은 후사가 없게 되는 게 아닌가?낭패였다.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예선은 밖으로 뛰쳐나온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오전이 다 지나도록 소군연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소군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예선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그녀는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탈히 사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상실감이 확 밀려왔다.군연, 정말 날 포기하기로 한 거예요?우린 이렇게 헤어져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예선은 막막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바로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선은 얼른 그녀의 전화를 받아 소군연에게 일어난 상황을 전했고 소만리는 한달음에 예선에게 달려왔다.예선은 소만리를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소만리는 예선을 위로했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 거야. 널 포기했을 리가 없어.”“아니야. 포기한 거야.”예선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의 가족들이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하시고 최근에 발생한 일 때문에 다른 가족들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나빠졌어.”“그동안 일어난 일은 너랑 아무 상관없어. 넌 피해자야.”“하지만 그들은 날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소군연
”얼른 들어갈게요!”소군연의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는 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넌 오지 마! 우리 소 씨 가문에 널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소군연의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선은 소군연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예선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어떻게 소군연이 스스로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어제까지도 분명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소군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그러나 소군연은 받지 않았다.소군연에게 핸드폰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선은 계속 전화를 시도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소군연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드디어 예선이 소군연의 집에 도착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칼진 소군연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가 어떻게 스스로 집에 왔다는 거야? 방금 깨어난 거 아니야?”“이것 좀 봐 봐. 이거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야.”소군연의 부친은 원망 섞인 말투로 소군연의 모친에게 뭔가를 쥐여 주었다.예선이 얼른 현관에 들어서자 따가운 소군연의 모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넌 왜 또 왔어? 누가 널 환영한다구...”“됐어. 그만하고 이것 좀 보라니까.”소군연의 부친은 예선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군연의 모친 말을 끊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부친이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쫓아내지 않자 얼른 안으로 걸어갔다.소군연의 모친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메모지 한 장이었는데 메모지에는 짧은 몇 마디가 쓰여져 있었고 모두 소군연의 모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소군연은 자신이 이틀 전에 깨어났다고 실토하며 잠에서 깬 이후 자신의 엄마가 예선에게 모질게 투덜거리는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예선과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
예선은 아무도 없는 병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소군연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예선은 소군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이때 소군연의 엄마가 들어왔다.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소군연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본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 혹시 무슨 검사하도 하러 간 거야?”소군연의 엄마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예선에게 물었다.소군연의 엄마가 보이는 이런 태도에는 이골이 났는지 예선은 개의치 않으며 담담하게 돌아섰다.“저도 알고 싶어요.”“나보다 먼저 와 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제가 왔을 때도 병실에 아무도 없었어요.”예선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잠깐만.”소군연의 엄마가 예선을 멈추어 세우며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말을 해 둬야겠어. 군연인 이미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 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너 때문에 영 씨 집안 두 모녀는 감옥에 갇혔어. 이건 분명히 네가 우리 가문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네가 우리 군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든 우리 군연이 널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어. 넌 우리 소 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예선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 씨 집안 두 모녀가 감옥에 간 것까지도 예선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예선과 소군연은 엄연히 피해자였다.영내문 같은 악랄한 사람은 오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었다.영내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중의 악인이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벌여진 일들로 이 모든 것이 자명한데 소군연의 엄마는 여전히 예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예선은 더 이상 소군연의 엄마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시간 낭비 에너지
채수연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온아.”채수연이 기여온에게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여온아, 선생님이 여온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딜 가든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라. 그리고 하루빨리 말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게.”기여온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채수연은 일어서서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눈에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 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의 집착은 사라졌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집스럽게 쟁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채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자풍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강자풍도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기여온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 채수연에게 따뜻한 작별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채 선생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많이 신세 졌습니다. 고맙습니다.”채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절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걸로 이미 다 갚으셨어요. 하지만 강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그럼요, 언제든지요.”강자풍이 흔쾌히 승낙했다.친구가 된다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채수연은 그 자리에서 기여온을 안고 점점 멀어지는 강자풍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강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자풍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가득 품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뭐가 궁금하신가요?”“좋아하는 여자가 정말 있긴 한 거죠?”강자풍은 기여온의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시선을 잠시 떨구며 입을 열었다.“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여온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어쩌다가 듣게 되었어요.”강자풍은 순순히 시인했다.채수연은 강자풍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난감해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다만 약간의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강자풍은 채수연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더 난처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나와 여온이 일로 또 한 번 고민거리를 안겨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강자풍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기여온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예요.”채수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마음속에서 상실감이 강하게 몰아쳤다.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강자풍을 쳐다보며 강자풍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그의 말은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채 선생님, 여온이한테 더 잘 맞는 유치원을 찾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과도 더 가까워서 여온이 등하원하는 데도 훨씬 편리할 것 같아요.”강자풍의 말을 들은 채수연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여온이한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유치원을 옮기기로 하신 거예요?”강자풍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선생님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강자풍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기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채수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자신의 감정이 줄곧 일방적인 것이었고 닿을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자풍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채수연도 강자풍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저희 엄마와 엄마 친구가 강 선생님에 대해 한 말은 정말 부적절했어요. 죄송합니다.”강자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입
류 씨 성을 가진 남자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강자풍이 기여온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모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었다.이 남자도 양심은 있었던지 기여온의 모습은 블러 처리를 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지만 강자풍의 모습은 영상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채수연의 엄마는 한눈에 영상 속 사람이 강자풍임을 알아차렸다.영상 아래의 댓글을 본 채수연의 엄마는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수연아, 너 어떻게 이런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채수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맞아요. 부인하지 않을게요. 난 강 선생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뭐라고!”“아유... 수연아, 너 정말 이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진 씨 부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거렸다.“내가 보니까 여기 댓글 단 사람들이 벌써 이 남자 신상을 다 파헤친 것 같던데. 이 남자 예전에 우리 F국에서 한때 주름잡았던 그 강어라는 사람 동생이라더라구. 그 강연이라나 뭐라나 누나라는 사람은 업계에선 더욱 악명이 높았대.”“뭐! 그 강 선생이 강어와 강연의 동생이라고?”채수연의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악명 높은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나도 그 사람 형과 누나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하지만 강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에 개입한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벌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거예요.”채수연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게다가 강 선생님은 이 아이의 친아빠가 아니에요. 친구 딸인데 잠시 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걸로 자꾸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못 해서 누구보다 괴로운 건 이 아이잖아요. 입장 바꿔서 누군가가 아주머니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네?”“...”채수연의 입에서 뭐라도 가십거리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